어떻게 살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목적으로 나를 지으셨는가?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사람들은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서 살 거룩한 자(성도)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에 어떤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따라 사역자로 지음받은 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최적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1. 들어가며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을 일컬어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했다(히3:1). 그는 왜 성도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고 말했는가? 그리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는 대체 무엇이며, 오늘날 우리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또한 무엇인가?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인간의 시작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는 과정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과정까지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인간은 어디에서 시작된 존재인가?
인류의 시조였던 아담은 언제 어디에서 창조되었는가? 인류의 시조 아담은 이 땅에 있는 흙(티끌)로 빚어졌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생명의 숨 곧 영을 불어넣어서 사람이 되었다(창2:7).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동방에 있는 에덴(평원)에 동산을 하나 만드셨다. 그리고 지으신 아담을 그곳에 두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은 일종의 '낙원'이었다.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담은 이내 그곳에서 쫓겨나고 만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후 언젠가 에덴동산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신약에 들어와서 에덴동산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였다. 예수께서는 회개했던 한 편 강도에게 그가 죽은 후에 예수님과 함께 낙원(동산)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낙원이란 곧 에덴동산으로서, 이곳은 사람이 죽은 후에 가는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환상 중에 낙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고후12:4). 그리고 A.D.95~96년경 사도요한은 환상 중에 주님을 뵈었고 주님께서 써보내라고 하신 말씀에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가 언급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기는 자들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어떤 것으로 등장한다(계2:7). 그곳에 생명나무가 있다. 고로, 우리는 오늘날에 들어와 낙원은 천국에 있거나 천국의 한 켠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한 때 이 세상에도 천국에 있는 생명나무가 존재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바로 아담이 에덴동산에 있을 때였다. 아담과 하와가 그곳에서 쫓겨난 직후 인간은 생식을 통하여 자녀를 산출하기 시작했다. 가인과 아벨은 첫째와 둘째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생명나무로 이 땅에 오셔서 생명을 주시고 있다.
3. 인간의 영혼은 언제 어디에서 창조되는가?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은 언제 생성되며 어디에 오는가? 사람은 일반 동물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특징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아주 특별한 존재다. 그런데 우리도 잘 알거니와 사람의 육체는 부모의 수정란이 만나서 세포분열을 하여 생겨난다. 하지만 거기에는 유전자정보가 함유되어 있어 그 정보대로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영은 어떻게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수정란에 만들어질 때에 갑자기 영이 만들어져서 갑자기 그 수정란 속에 들어가게 되는가? 이에 관하여 정보를 알려주는 2가지 단서가 있다. 첫째는 렘1:5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빚기)도 전에 너를 알았다(렘1:5)" 다시 말해, 아기가 엄마의 태중에서 생성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영이 어떠한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이 땅에 육신의 어머니의 태중에 잉태되기 전에 영이 먼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육체는 이 세상에 있는 모친의 태중에서 생성되지만 영은 하나님께서 먼저 창조하신 후 그 사람 속에 넣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믿음의 조상들이 소망했던 장소가 어딘가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그곳은 하늘 본향이라고 나온다(히11:13~16). 여기서 "본향"이라는 단어는 "파트리스"라는 단어로서, 이는 "아버지의 나라", 곧 "조국"이라는 뜻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가 태어난 곳" 곧 "고향"이라는 의미까지 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들어가기를 바라고 소망했던 곳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이었던 것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사람의 영이 원래는 하늘에 있다가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의 영이 창조되는 공간은 하늘이며, 아직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영이 그곳에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다음, 사람의 육체 속에 들어감으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4. 사람의 크기와 분량은 언제 어떻게 정해지는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에 관한 크기와 분량은 사실 이 땅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사람'이라고 지칭한 것은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사람의 영의 크기와 분량은 이 세상에서 사람이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보시고 새롭게 결정하시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그러한 그릇으로 만드셔서 그러한 그릇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미 하나님에 의해서, 하늘에서 영이 창조될 때 이미 결정되어 있다가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하신 바에 따라 창조된 영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 보내짐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을 보라.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사49:1,3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3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나의 종이요 내 영광을 네 속에 나타낼 이스라엘이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태를 짓기 전에 예레미야의 영을 창조해 놓으셨기에 그를 알고 있다는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모친의 뱃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영을 집어넣어주셨기에, 그가 선지자적인 사명을 갖게 된 것이고, 때가 되어서 그를 부르셨기에 그가 선지자로 쓰임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선지자도 이미 자기를 어머니의 모태부로서 선지자로 부르셨고 자기 이름을 기억하고 "너는 나의 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창조하신 후 이 땅에 보내시는가?
사람은 이 땅에서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늘에서 그 크기와 분량과 쓰임새가 결정된다. 그것은 하나님의 고유의 권한이다. 그분은 토기장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어떤 존재로 생각하시고 창조하신 것일까? 그것은 천국에서 사는 "거룩한 자(성도)"로 생각하시고 창조하시어 내려보내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신 목적이 "거룩한 자(성도)"로 조성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롬1:7, 고전1:2).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그 사람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내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 만세 전에 품으신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함으로 지옥에 떨어지고, 예수님을 믿었던 자라도 죄짓다가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다.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피눈물을 흘리신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크게 쓰시려고 준비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어떤 직분이나 직책이 주어져 있던 자들이다. 그들이 때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게 되면 그들은 구약시대로 치면, 선지자로(렘1:5, 사49:1.3), 왕으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 신약시대로 치면, 사도와 복음전하는 자, 목사로 부름을 받는 것이다(엡4:11, 고전1:1). 그런데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늘에 있을 때 어떤 그릇으로 만들었는지 우리가 알고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복된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특별한 자는 특별한 부르심으로 그를 불러내신다. 특별한 부르심이 없이 특별한 사역자로 쓰임받는 일은 거의 없다.
6. 자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입었는지는 알았던 자들은 누구인가?
그런데 신비하게도 이 땅에 사는 부모들 중에는 자기 자녀가 하나님의 특별한 종으로 쓰임받는다는 것을 알았던 자들도 있었다. 성경의 기록으로 보면, 모세의 부모인 아므람과 요게벳은 대표적인 경우다. 그들은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는 빼어난 아이라는 것을 즉각 알았다(히11:23). 그러므로 그는 나일강에 던져 죽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몰래 3달을 키웠다. 그런데 더 이상을 숨겨 키울 수 없었던 부모는 그 아이를 하나님께서 돌려드리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그 부모는 그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워보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로의 공주가 건져 양자로 키우게 하신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 들어가 모든 학문과 기술와 무예를 익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른 삶을 살아가도록 안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자로 쓰임받을 사람은 아이가 잘 길러질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사무엘의 부모였던 엘가나와 한나의 경우를 보자. 당시 엘리 제사장 가문은 타락했고 그의 아들들을 불량자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제사장이 될 자를 이 땅에 보내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때 아이가 없어서 하나님께 아들을 주시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하는 기도가 올라온다(삼상1:11).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가정에 사무엘을 보내셨다. 그래서 그는 초기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왕정제도를 세우는 일이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 이러한 예는 신약에 들어와서는 예수의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고, 세례요한의 부모였던 사가랴와 엘리샤벳의 경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7.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평신도로 나는 어떻게 살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가? 그것은 첫째, 내가 어떤 존재로서 이 땅에 태어나게 되었는지를 알고 주님께 감사하는 것이다(딤후1:9). 우리가 이 땅에 보내어질 때에는 멸망으로 들어가도록 보내어진 것이 아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알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용서받아 하늘의 거룩한 자로서 살도록 보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내가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군지를 알고 예수님을 믿어 하늘의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늘의 성도가 되는 것이다. 둘째, 내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동역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히3:1). 우리는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동역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를 산출하는 일에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신실해야 한다. 셋째, 특별히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고 이 땅에 보내어진 사역자들을 도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나가는 것도 요청된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름받았다는 것은 자기는 안다.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는 것이요, 다른 주변의 지도자들도 그것을 알고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많지는 않다. 우리는 우리교회에게 부여하신 사명만으로도 가슴 벅찬 사명임을 깨닫고 충성하면 되는 것이다.
8. 나오며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원래 하늘나라에서 시작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찌하든지 우리는 원래 고향 곧 하늘의 본향으로 되돌아가기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땅에서 살 때, 내가 누구며 어떤 존재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인 뒤에는 하늘의 본향으로 돌아가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되어야 한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일이다. 믿음 없이 생명얻을 수 없고, 회개 없이 죄용서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땅에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도 이러한 부르심에 참여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부르심을 입은 목회자를 도와서 하나님의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기는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7월 12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