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한 그릇에서 귀한 그릇으로(딤후2:20~21)_2020-07-19(주일)

by 갈렙 posted Jul 19,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유투브 주소 https://youtu.be/pbxya5ELNm0
날짜 2020-07-19
본문말씀 디모데후서 2:20~21(신약 34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창립감사주일,회개와천국복음,그릇의용도,그릇의재질,깨끗한그릇,회개와성도,

1. 들어가며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궁극적인 것은 성도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벧전1:8).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는데 죽어서 결국 지옥에 떨어졌다면 그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러니까 교회는 한 영혼이 교회에 출석하는 그 순간부터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그날까지 그가 천국에 입성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요소는 대체 무엇인가?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바와 같이 "오직 믿음"이면 다 되는 것인가?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창립기념주일을 맞아, 그동안 동탄명성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사람이 천국가는 길이란 대체 무엇이며, 그중에서 회개의 역할이 어떤 것이고, 회개가 어떤 방면이 있으며, 거기에 따라서 어떤 결과를 맺게 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2. 회개의 두 방면은 무엇인가요?
  회개에는 두 방면이 있다. 하나는 "구원얻게 하는 회개"가 있다. 사람이 구원받으려면 죄를 회개해야 하기 때문이다(마4:17). 먼저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회개가 필요하며, 하나님을 믿지 않고 떠나 살았던 죄를 또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은 죄들은 낱낱이 회개하여 용서를 빌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구원얻게 하는 회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회개가 있다. 이것은 구원얻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회개"요, "축복의 통로를 여는 회개"가 있다. 이 회개는 과거에 지었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예수믿기 전에 우상숭배하고 살았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이때는 내가 우상숭배한 죄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내 조상들이 우상숭배하여 살았던 죄 곧 후손 3~4대까지 내려가게 했던 죄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저주가 떠나가기 시작한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지만 아픈 사람은 과거에 우상숭배했던 죄를 진정 회개했는지를 살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는 "회개기도문"을 가지고 조상들이 지었던 죄와 내가 지었던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하고 있다. 벌써 한 달이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3. 죽음을 얼만 남겨놓지 않은 사도바울이 딤후2:20~21에서 디모데에게 당부했던 말은 무엇인가? 

  A.D.66~67년경 재차 로마감옥에 갇힌 사도바울은 이제 에베소에 목회자로 파송한 디모데를 향해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거기에서 사도바울은 그릇의 이야기를 꺼낸다. 과연 사도바울은 무슨 말을 디모데에게 한 것일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시]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어떤 것들은]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다른 것들은]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만일]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자신]를 깨끗하게 하면 [그는 장차]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게 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게 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그렇다. 큰 집으로 일컬어지는 교회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는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으며, 나무그릇과 질그릇(흙그릇)도 있다. 하지만 사도바울은 교회의 성도들에게 어떤 그릇이 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소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그릇으로 태어나는가 하는 것은 사실 태어나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서 당신의 목적과 뜻에 따라 사람의 영을 창조하시어 이 땅에 내려보내신다(렘1:5). 그러나 보내실 때에 태어날 아기의 부모의 조상들의 모든 은사와 달란트를 종합하여 육체 속에 넣어주신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나무그릇이나 질그릇으로 만들어졌다고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아니 된다. 그것을 원망하는 것은 그릇이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를 원망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나를 만드셨음을 믿으라(갈1:15).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한 번도 성도들에게 "너는 금그릇이 되기 위해 힘쓰라", "너는 은그릇이 되기 위해 힘쓰라"고 명령한 적이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는 그릇이 되도록 너희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고 권면하였다. 
 
4.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은 어떤 그릇으로 창조되어 태어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은사와 달란트가 각기 다른 사람들을 지금도 냐려 보내시고 있다. 하지만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창조하시어 보내시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그릇을 사용하실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그릇이 "금그릇"이라고 더 잘 사용하고, "질그릇"이라고 덜 사용하는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큰 집의 주인처럼 어떤 음식을 내오시는데, 그릇의 재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그릇을 찾으신다. 그것에 그것을 사용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릇에 들어갈 내용을 보시고는, 그 음식을 가장 먹음직스럽게 만들어주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그릇을 가져다가 사용하신다. 예를 들어보자. 들깨가루를 빻아 야채에 버무린 도토리묵을 내온다고 치자. 주인은 어떤 그릇에 도토리묵을 담을까? 무조건 금그릇이 비싸니까 거기에 담아내는 것인가? 아니다. 도토리묵의 색깔과 야채에 가장 어울리는 그릇에 그것을 담아낼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나무의 숨결이 살아있고 나이테가 은은히 어울어진 그러한 나무그릇에 내올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음식에 어떤 그릇이 적합한가를 보시고 그릇을 사용하시는 것이지, 무조건 비싸다고 그 그릇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싸다고 어떤 그릇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못나게 만드셨나요?"라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이미 나는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릇대로 빚어져서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5. 사람은 왜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이 땅에 살 때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을 깨끗한 그릇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여 자신을 깨끗하고 성결하게 해야 한다. 왜 그런가?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그릇은 천한 그릇으로 사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귀한 그릇으로 사용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금그릇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일평생 불평불만하고 살 것이 아니라, 어떤 그릇이 되었든지 하나님께서 필요하시기에 그렇게 만드셨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이 쓰임받을 날이 올 것임을 기대하고, 주인이 언제라도 쓰시도록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만일 누구든지 오늘도 여전히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자라면, 그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이렇게 3가지로 말했다. 첫째, 그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딤후2:21). 성령은 거룩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을 더렵혀 죄로 얼룩져 있는 사람은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죄를 씻어내어 회개하고 있는 자엑 역사하시는 것이다. 더러운 그릇이지만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깨끗한 그릇이 되게 한다면 성령께서 사용하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어 거룩하게 된 자만이 주님의 얼굴을 볼 수가 있으며 나중에 죽어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될 것이다(히12:14).
  둘째, 그는 주님이 쓰시기에 매우 유익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딤후2:21). 구약성경 사무엘상1장을 보면, 엘리가문에 타락하여 하나님께서 더 이상 엘리가문을 끝내시려고 하셨다. 왜냐하면 세습직이었던 대제사장을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맡고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불량자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가문을 끝내시고 제사제도를 회복할 새 제사장을 이 땅에 보내고 싶으셨다. 그런데 마침 실로의 성막에서 기도가 올라왔다. "주님, 부디 이 종을 돌아보사, 저에게 아들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주님이 쓰시도록 바치겠나이다" 그런데 그것은 주님께서 찾고 있었던 바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뱃속에 전무후무한 인물 사무엘선지자 겸 제사장을 보내셨다. 그렇다. 만약 우리가 주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준비된 사람이 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쓰실 것이다. 
  셋째, 그는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언제든지 준비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딤후2:21).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을 이 땅에 내려보내시고 있다. 그런데 때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자를 보내신다. 그래서 이 땅에 같은 종류의 달란트를 가진 자들이 여섯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같은 달란트를 가진 자들 중에 어떤 사람을 쓰시겠는가? 그것은 준비된 일꾼이다. 주님이 사용하실 것을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다. 고로 우리는 주인이 언제라도 쓰실 수 있도록 자신을 깨끗한 그릇로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러면 우선 선정대상이 되는 것이다. 
 
6. 성도가 자신을 더럽게 하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본문의 앞구절을 살펴 보니 그것은 2가지였다. 첫째, 잘못된 교리와 가르침을 따라가는 것이다(딤후2:15~17). 후메내오와 빌레도은 자신이 양심이 아니라고 거절하는데도, 잘못된 교리와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잘못된 교리와 가르침인지 분별도 하지 않은채, 자신이 믿고 싶은대로 믿으면서 그냥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왜 그 성도가 깨끗해지지 못하는가? 잘못된 교리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성경말씀은 한 구절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오늘날 개신교회에서는 거의 교리화되었기에 무턱대로 분별도 하지 않은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을 결코 회개하지 않을 것이다. 회개하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으니 말이다. 
  둘째, 그것은 무엇이 불의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딤후2:19). 그들은 무엇이 죄인지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떠나기도 않았다. 죄 가운데 계속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그것과 단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절대 그는 깨끗해지지 않는다. 죄를 회개하고 죄를 멀리해야 죄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깨끗하게 되는 것인데도, 후메내오와 빌레도는 그렇게 살지 않았던 것이다. 
 
7.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자신을 준비해나가야 하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언제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내가 어떤 그릇으로 이 땅에 보내어졌는가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 둘째, 이것이 더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께 귀한 그릇으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것의 핵심은 더러운 것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이다. 자기자신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기를 소망하여도,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놓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가 없다. 
 
8. 나오며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나와 내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주시지 아니한가를 하나님께 따지기 전에, 나 자신에게 회개하지 않은 죄가 무엇이 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왜 나의 기도에 응답해주시지 않는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내가 과연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왜 내게 은사를 주시지 않느냐고 묻기 전에, 자신에게 남아있는 더러움은 대체 무엇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죄를 찾아 회개하다보면 어느새 그릇은 깨끗하게 준비될 것이다. 파란물이 담긴 컵에 물을 계속 부으면 언젠가는 그 물이 투명한 색깔로 바뀌게 되듯이 날마다 회개하다면 어느새 내 죄를 말갛게 씻겨져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회개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가? 그래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고로 만약 우리에게 지금도 저주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내가 회개할 죄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아직도 축복의 통로가 막혀있다면 그는 조상적부터 지은 죄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되지 못하고 쓸모없는 사람이라 판단된다면, 회개하지 않고 남아있는 죄라도 빨리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무력감이나 우울증이 떠나가고 건강도 회복하고 자신감도 회복되고 하나님께 귀히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2020년 07월 19일(주일)
정병진목사
 
 

 


Articles

7 8 9 10 11 12 13 14 1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