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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서의 사상적 배경


 

Ⅰ. 서론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과 그로부터 필연적으로 영향받게 되는 사상적 경향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요한복음서 역시 이것이 소홀히 여겨질 수 없으며 그 어떤 복음서보다도 그 배경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해석상의 열쇠를 제공해 줄 복음서 저작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 대한 상이한 견해들이 요한복음서를 해석하는데 상당한 영향들을 준 것이 사실이다.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견해들을 이해하고 이 견해에 의해서 지적된 사항들이 실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행사했는지 고찰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본 소고는 이러한 의견들을 고찰해 보고 요한복음서에 나타나는 유사 개념들을 대비해 봄으로써 그 영향의 추이를 살펴볼 것이다.



 

Ⅱ.요한복음서의 저작 연대

 

오늘날에 있어서 요한복음서의 저작 연대를 추정하는 것에는 근사치를 상정해 볼 수 있을 뿐 정확한 연대를 제시하기는 어렵다.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 상한선과 하한선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요한복음서 기록 시기는 요한복음에 영지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때는 영지주의가 한창 영향력을 떨치던 2세기 중엽으로 추산되기도 했었다.그러나 요한복음의 18:33-35,37-38이 기록되어 있는 파피루스의 단편,일명 Roberts Fragement가 이집트에서 발견되면서부터 비교적 확실한 결론에 이르고 있다.그 파피루스의 기록 연대가 주후 115-125년경으로 추산되고 있어,요한복음은 그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우리는 요한복음서의 그 저작 연대에 대한 하한선을 A.D.140년대 이전으로 잡을 수 있다.하지만 그 상한선을 확정하는데는 거 큰 어려움이 있다.왜냐하면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를 보가 이르게 잡는데 필요한 외적 근거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우리는 이 복음서가 프톨레마이우스와 같은 영지주의자에게 잘 알려진 책이며,또 2세기 중엽에 그에 의해 사용되었음도 알고 있다.그것은 또한 외경에 속하는 ⌜베드로 복음서⌟의 저자나 발렌티누스파 문서인 ⌜진리의 복음⌟ 의 기록자들에게서도 인용되고 있는데,구 책들은 케노보스키온 도서관에 있는 융 사본의 일부를 이룬다.그 때 이후로 요한복음서가 알려졌고 또 의문의 여지가 없는 요한의 작품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A.D.150년경 이전의 2세기 저술가들이 요한을 알았다는 증거를 전혀 가지지 못한다.이것이 요한 복음서를 2세기 작품으로 잡으려 한 이전의 여러 시도의 한 이유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이 복음서의 최고 연대를 확정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서의 저작 연대의 상한선을 긋기 위해서는 몇 가지 내적인 관심과 관계의 연구를 통하여 그 시기를 산출해 나가는 것이 가장 근거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우선.그 시기의 대략을 알기 위해서는 공관복음서와의 관계를 들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서의 이야기의 범위는 적어도 그 대강에 있어서는 다른 복음서들의 범위와 비슷하다.하지만 그 내용에서 피력하고 있는 진술상의 독특성으로 요한복음서 자체내의 성격이 특징지워져 왔고 이같은 것은 바레트의 주장과 같이 상당히 자료가설에 의존하는 바 크다.따라서 큄멜이 말하고 있듯이 요한복음서는 누가복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이 복음서가 약 80-90년 이전에 쓰여졌을 리는 없다.

다음의 추정을 위한 중요한 단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유대인들잉 '회당으로부터 출교'당했을 가능성을 언급한 요한복음 9:22 및 16:2에 의해 제공된다.만약 이것이 편집이라면,그리고 랍비 가말리엘에 의해 A.D. 85 - 90년 어간에 소개된 시범 기도를 언급하는 것이라면,그것은 이 복음서의 한 판 연대의 하한선을 가리킬 것이다.동일한 논리가 요한이 유대-그리스도교 논쟁들과 전반적으로 가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접촉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그 접촉은 이 복음서가 설령 A.D.85년 이후에 완결되었다 할 지라도,그 해 이전에 이 책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상정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요한 나름의 신학 발전에 필요한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이 논증에 근거한 결론들은,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스러우리 만치 신빙성이 없으며 주관적인 것들이다.일목 요연한 신약 신학의 '선적(線的) 발전 과정은 그 어떤 경우에도 추적이 불가능하다.따라서 종국에 이르러 이 복음서가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되었다고 추정한다 할지라도,이것이 다른 원천 자료들을 내포하는 것으로 부연될 수 있다면 요한 복음서가 처음부터 단일 저자인 요한복음서 기자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적 간격에 걸쳐 유수한 편집자들의 손길에 의해 쌓아올려졌다는 가정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그 시기를 적절히 상정해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 하한선을 A.D. 140대에 두고 그 상한 선을 위 사실을 비추어 볼 때 A.D.85년 이후로 놓을 수 있게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요한 복음서의 완성된 형태로서의 연대를 A.D.85 - 140년 경으로 어림잡을 수 있을 뿐이다.

 


 

Ⅲ.요한복음서에 끼친 사상적 영향들


 

요한복음서의 문제들이 제기된 후 그 문제의 배후에 자리잡은, 즉 요한복음서의 사상적 특징을 갖게 한 제반 요인들을 알아보는 것은 요한복음서 저자에 대한 문제와 함께 얽혀진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본 소고의 목적상 그 범위를 사상적인 영향을 끼친 저작 당시에 사상적 조류를 알아보는 것으로 제한할 것임을 밝혀 두는 바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요한 서신의 저작 연대를 A.D.85 년부터 A.D.140년대 사이로 본다면 그 당시에 영향을 끼쳤을 만한 각각의 요소들을 상정해 보고 실제로 그러했는지 아닌지를 지적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A. 원시 기독교

 

이 복음서는 원시 기독교의 역사와 분리되어서 생각될 수 없다. 이 복음서는 원시 기독교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산출되었으며,원시 기독교 신학의 배경을 떠나서는 해석될 수 없다.저자가 목격자 중의 한사람이었거나 목격자와 관계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도 없는 사실이다. 본 소고를 접하는 자들은 한번쯤은 공관 복음 전승이 요한 복음서에 끼친 영향을 다루었을 것이며 그러한 기본 지식을 습득했을 것이다.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영향을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 복음의 묘사는 공관 복음의 묘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비록 요한 복음서의 강조점이 다르다는 것이 명백하기는 하지만 둘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한 대답일 것이다.왜냐하면 공관 복음을 역사적 기록으로 요한 복음을 신학적 증거로 보는,즉 공관 복음은 주로"사실"(fact)에 관심한 반면에 요한 복음서는 "의미"(meaning)혹은 사실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에 치중하였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복음서 연구가들의 생각을 지배해 왔었지만 최근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이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복음서들은 모두가 다 복음서 기자 자신들의 독특한 신학적 입장과 신학적 강조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널리 인정되었다.또한 요한 복음서 전승이 독립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닌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높다.따라서 예수 전승에 관한 요한의 기록에는 요한 복음 자체의 신학적 조형에도 불구하고,전반적으로 공관 복음 기록 못지 않은 정확성,아니 때로는 한결 높은 신빙성을 지닐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공관 복음 전승과 요한 복음서 사이에 연계점들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런 사실이고 그 연계점들은 우리로 하여금 한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로 옮겨졌을 가능성보다는 차라리,공통적인 원시 기독교 전승을 모든 복음서 기자들이 공유하였을 가능성을 떠올리게 만든다.이와같이 볼 때 요한복음 본문의 초기적인 특성이 인정된다면 이 본문은 원시 기독교와 동시대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다시 말해서 이 복음서는 진정성에 공관복음서의 전승에 필적할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어쨌든 이 복음서가 초기 전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B. 바 울 사 상

 

어떤 학자들은 이 복음서의 저자가 바울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이런 형태의 이론은 바울의 가르침이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발전된 것처럼 요한복음의 신학은 바울의 가르침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라고 가정했고 히브리서는 이런 발전 선상에서 바울과 요한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고 가정했다.이 생각에 따르면 요한복음은 기독교 신학에서 가장 나중의 것으로 밀려나게 된다.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이런 식으로 발전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조류들이 초기 단계에서 동시에 발전되었으며 바울의 사상과 히브리서와 요한복음은 이런 동시대의 조류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것 같다.다드는 요한복음을 해석하는 데 바울의 사상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촉구하고 있고 서중석 역시 요한복음서를 바울 서신과 동일선상에 놓고 취급한다면 높은 위험 부담률을 갖데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양자는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C. 유 대 교

 

요한복음서가 유대교적 영향을 입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주장일 것이다.요한복음서가 보도하고 있는 사실 즉, 유대인인 예수의 생애를 추적하고 있으며 또한 이 복음서를 읽는 독자들은 필경 유대인이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과 동시대의 유대교 사이에 전혀 접촉점들이 없다면 그것은 놀라운 일일 것이다

금세기 초반에 요한복음서와 유대교 사이의 상호 관련점들이 재강조되었으며 ,요한복음이 순전히 헬레니즘적 기조에서 말미암았다는 믿음은 도전을 받았다.또한 사해문서군의 발견은 고고학적인 증거와,요한의 전승이 독자적이며 따라서 역사적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문서비평을 통해 제기된 가능성을 기초로 한 증거와 결합되어,이 질문을 다시금 야기시켰다.요한의 전승과 사상에 영향을 준 근본적 배경은 아시아적이고 헬레니즘적인 것이 아니라 팔레스틴적이고도 유대적인 것이라는 주장이 점차 높이 제시되고 있는 형편이다.예수 당시의 팔레스틴 유대주의는 다양하였다.그리고,브라운이 지적한 바와 같이,이것은 요한 자신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다양성의 근본 원인 일 수도 있다.

 

1. 팔레스타인 유대교

 

우리는 쿰란 문헌에 나타나는 특징들 중 몇 가지가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헬라 사상의 특징인 추상적인 개념들 중 많은 것들이 쿰란 문헌에도 발견된다는 점으로 볼 때 요한복음이 전적으로 헬라주의적이라는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쿰란의 문헌들도 헬라주의적 문헌들처럼 빛과 어둠,진리와 거짓 등이 대조되는 개념들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으며,또한 양자는 언어상의 유사성이 현저하기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적인 문제는, 요한복음서 속에서,예수,세례자,그리고 유대인들은 물론,복음서 기자 자신이 이야기하고 있는 개념 세계의 기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요한의 언어적 특징은 빛과 어두움,거짓과 진실,위와 아래의 대조, 예수의 말에 사용된 수많은 ՅՃ՞ ՅԿՌՉ 즉, 생수,생명의 떡,세상의 빛 등의 구속사적인 개념들등 공관복음서의 예수가 있던 팔레스타인 -유대교적 개념세계와는 다른 점들이 있다.예컨대 쿰란 문헌과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빛의 자녀"란 구절이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은 오해이다.

사해공동체는 자신이야말로 예루살렘에서의 진정한 예배를 수행하기에 충분할 만큼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유일한 자들이라고 믿었다.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주도권을 부당하게 빼앗은 못된 제사장들을 쫓아내고,자신들을 거룩한 성에 세움으로써 신실한 빛의 자녀의 정당함을 입증해 줄 것을 바라며,그들은 사막에서 살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그 사건은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반면에 요한 공동체는 성전이 파괴되고 그것이 새로운 예배 장소,곧 "예수의 몸된 성전"(요 2:19-21)으로 대체될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요한복음서에서 예수는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동안 성전과 관계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가복음 13장이나 이와 비슷한 다른 구절에서처럼 그 성전을 그 성전을 비난하는 발언조차 하지 않았다.더구나 쿰란 사람들의 경우처럼 계약에의 참여가 특정한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되지도 않았다."예수를 보러"온 헬라 사람들이 상징하듯이(요12:20-23)이방인도 구하기만 하면 계약 백성이 될 수 있었다.또한 요한 복음서에서는 사해 문서에 나타나는 우주적인 싸움이라든지 원수의 세력으로부터의 즉각적이고도 극적인 구원의 약속 같은 것을 암시하는 내용은 없다.쿰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묵시적 기대나 그러한 내용을 담은 언어도 들어 있지 않다,그러므로 우리는 사해 소종파 집단이 그리스도로 교화한 것이 곧 요한 공동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2.유대 지혜 문학

 

또다른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요한복음서와 가장 밀접하게 관계시킬 수 있는 것은 유대인의 지혜문학이다.유대교가 바벨론 포로기와 그 이후에 이르는 동안 하나님의 초월성을 더욱 더 강조하게 됨에 따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중재자 역할을 하고 또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인간에게 전달해 주기도 하는 그 어떤 존재를 설정할 필요성이 생겨났다.그 중재의 도구가 바로 지혜였다.그것은 인격적인 존재로 간주되었다.또 다른 지혜 전승에 의하면 하나님의 영광의 유출이다.고대 근동하에서 유대인의 지헤전승을 분석해 온 학자들은 유대교내에서의 지혜의 개념의 발전과 동시대의 애굽의 종교 중 이시스의 역할의 변화사이에 관련이 있음을 오래전부터 인식해 왔다,주전 5세기에 이시스는 세계를 창조하고,보존하며,신들의 듯을 준행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와 동정을 베푸는 인물이 되는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으로 등장하게 된다.이 일들은 유대교 안에서 지혜가 맡아 했던 일과 완전히 일치된다.주전 2세기 초에는 이미 이시스는 각종 제의의 중심이 되었고 창도의 대리자로서,신도들을 자기 주변에 모여들게 하는 중심적 존재로서,신성한 지혜의 선포자로서 섬겨지게 된다,이때 이 여신은 청중에게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이시스다"라고 말한다.지혜와 요한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는 명백한 유사점을 갖는다.지혜의 대리자를 뜻하는 여성명사 소피아(Sophia)대신에 요한은 예수의 성과 일치시키기 위해 해당 남성 명사인 로고스(logos)를 쓰고 있을 뿐이다.그러나 지혜에 대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사변과는 달리 요한은 인간의 몸으로 온 지혜의 측면을 강조한다.즉,하나님의 지혜가 예수안에서 완전하게 인간의 형태를 취했으며,또한 그 지혜가 죽음과 부활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한 인간의 삶 속에서 구현되었다고 주장한다.결국 요한복음서에서 우리는 지혜에 대한 사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삶의 세계를 찾아볼 수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요한 복음서에 나타나는 성육신 교리는 로고스가 육신이 됨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어떠한 이방인의 제의나 유대인의 인격화된 지혜와동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랍비적 유대주의

 

요한복음서와 유대교의 연계로 탐색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면은 랍비들의 문학,즉 탈굼 전승들과 미슈나와 탈무드 및 미드라쉼등이다.그러나 랍비문서들은 그 연대 결정이 그리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난점을 포함하게 된다.이러한 문서들은 그리스도교 시대에 속하며,종종 초기의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는 것도 있다.그러나 이러한 랍비적 유대주의 사상을 연구할 때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요한복음서에 나타나는 랍비적인 문학과의 병행문구들이 제1세기적인 유대인의 사유를 반영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 도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의 증거들이 후대의 것이라는 점이다.그러나 최소한 유대교가 요한복음의 배경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많은 병행구들이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요한이 기록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랍비들의 가르침 사이에는 유사점들보다는 차이점들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오데버그는 이 복음서가 때때로 랍비들의 사상보다는 유대교의 신비주의에 더 가까운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는 다시 이런 신비주의와 요한복음간의 차이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D. 필 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헬레니즘적인 유대교의 대표자이며,이런 점에서 볼 떼 훨씬 더 영향력 있는 이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이러한 필로는 유대주의 및 당대의 철학 체계들 즉,플라톤주의와 스토아주의들에서 유래한 요소들을 조합하는 절충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었다.필로의 작업은 헬레니즘적 범주내에서 유대주의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려는 시도였으며 ,또한 그가 구약성서의 경건 뿐만 아니라 그리이스 철학자들의 종교적 견해에 얼마나 깊이 영향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요한복음서와 필로의 중요한 접촉점은 요한복음의 프롤로그와 관련되어 있는데,여기서 나오는 로고스 개념이 필로의 개념에 의거해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되었다.그러나 이 관점은 최근에 로고스 개념의 근원을 히브리 사상 속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점차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줄어들게 되었다.그러나 필로는 초기 기독교의 역사와 같은 시기에 헬레니즘적인 유대교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복음서의 배경을 고찰할 때 그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본 소고의 목적상 유익하다고 판단된다.

이 저술가와 요한 사이의 근사점들은 쉽게 지적할 수 있다.,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인간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필로에게 있어서 거듭남은 신성화를 뜻하지 않는다.또한 필로는 플라톤적인 가르침을 베풀었고 로고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단연 로고스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또한 필로는 상징법,예를들면 하나님을 빛,샘,목자 등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요한 복음서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필로와 요한복음서 사이에 나타나는 뚜렷한 연계점들은 이미 오래 전에 부각되기 시작하였다.요한복음서 기자 역시 영원한 생명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는 것으로 묘사하며,또 필로와 마찬가지로 로고스 교리를 빌어 자신의 구원 신학을 표현하고 있다.한걸음 더 나아가,요한은 몇몇 술어 및 개념들을 철저히 필로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그러나 비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진 다른 모든 요소들처럼 이 양자간에도 유사점들보다는 차이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이 차이점들이 본질적인 것들과 관계되어 있는 반면에 유사점들은 주변적인 것들에 관계되어 있다.요한복음서에서는 로고스가 그리스도로 성육신화되어 있는데 이런 개념은 필로에게는 생소한 것이다.

 

E. 그리스도교 영지주의

 

'영지주의'라는 용어는 초기 그리스도교 수세기 동안에 걸쳐 신비의 그노시스를 오한 구원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인간과 세계의 근본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광범위한 종교적 운동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영지주의는 사실상 하나의 종교 체계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사상적 풍토였다. 초기 교부들이 영지주의 운동을 오로지 그리스도교의 이단적 변형으로 보았던 데 반해,현대의 학계는 영지주의를 그리스도교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것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종교적,철학적 견해로 전망한다.그러나 모든 학자들이 영지주의의 제 기원에 관해서, 또는 그 용어의 정확한 정의에 관해서 조차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옳다.그렇기 때문에 본 소고의 목적상 요한기자에게 영향을 끼쳤을 만한 헬레니즘하의 영지주의를 고찰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영지주의는 바실레데스나 발렌티누스 같은 사상가들의 현학적이고도 세련된 체계들을 바탕으로, A.D. 2세기 어간에 개화기를 맞았다.이러한 그리스도교 영지주의의 사상들은 한때,영지주의의 가르침을 배척했던 초대 교회의 교부들의 저작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전해졌다.그러나 나그함마디 서고의 '케노보스키온'에서의 발견은 우리로 하여금 A.D.2세기 영지주의에 곧바로 접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그래서 이 문서에서 발견되는 요한복음 서간의 유사 개념들을 살펴보고 그것이 영지주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고 그에대한 영향이 실제적으로 있었는지 고찰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나그함마디에서 나온 영지주의 문서에도 빛과 어두움의 비유가 사용되어 있으며 또한 거기에는 물질 세계에 갇혀 있는 신실한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성한 구세주가 묘사되어 있다.얼핏 보기에 이것은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로 그린 요한복음서(3:13;6:62)와 비슷하다.영지주의 문서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도마복음서에 따르면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악한 것으로 되어 있다.구원의 목표는 처음부터 인간 존재를 규정해 왔던 성의 차이를 극복하는 일이다.즉 도마 복음서에 따르면 인간은 자웅동체적인 존재로 바뀌어야 한다.그러나 요한복음서에서는 피조 세계는 육신이 된 말씀을 통한 하나님의 일의 결과이다.세상을 만든 하나님이나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나 그 어느 것도 영지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악하지 않다.구원의 목적은 사랑을 통해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주는 것이다.구원을 가로막는 것은 이 세상의 물질적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려 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고의적인 반역이다.도마복음서는 구세주를 가리켜 "여자에게서 나지 않은"자로 그리고 있지만 요한은 육체를 입은 예수의 인간됨을 강조한다.창조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과 육신이 된 말씀을 통한 구속의 소망을 강조하는 점에서 요한복음서는 나그함마디에서 나온 보다 후대의 영지주의 문서의 한 단계 더 발전한 이원론적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도마복음서와도 멀리 떨어진 세계 안에 있다.

이와 같이 때때로 영지주의가 언어상으로 요한복음과 유사하며,특히 이원론적인 사고와 구속의 개념들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말해 왔다.그러나 최근의 연구들이 발전된 형태의 영지주의와 영지주의의 초기 단계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요한복음과 어떤 관련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후자뿐이다.그러나 초기적인 형태의 영지주의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난점들이 있다.현존하는 대부분의 문헌들은 우기 단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그러나 영지주의적인 개념들이 아시아의 교회들과 이교도들 사이에서 좀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때 요한복음서가 쓰여졌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 때 저자가 이러한 구체적인 위험(만약 이것이 가현설의 초기 형태가 아니라면)-대항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자료를 선별해서 채택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F.만다이 문학,

 

만다이즘은 요한복음서의 배경으로 주장된 또 하나의 운동이다.1788년에,J.d. Michaelis는 요한복음서 안에서 "요한의 제자들인 만디안들에 반대하는"논쟁을 발견하였다 그것을 W.Wrede가 이 가정을 발전시겼고 이것을 다시 불트만에 의해서 그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띄게 된다.

만디안 문서들 속에는 요한의 이원론적인 언어들과 수많은 병행들이 발견될 뿐만 아니라,하늘로부터 보냄 받은 분이라는 요한의 개념과 분명한 병행이 하늘의 구원자라는 만디안 신화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불트만과 바우워 같은 학자들은 요한복음서 주석의 근거를 만디안문서에서 찾았다.이후 학자들은 각자의 연구를 진행시켜 그 기원과 경향에 대해서 대체적인 의견 접근을 보게 되었다.즉 만디안 종교의 기원은,원시 기독교와 지역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근접해 있었고,둘 다 영지주의화한 유대교에서 발전된 것이며,아니면 혼합주의적인 유대교의 논쟁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이러한 만다이즘에 관한 자료들은 레이첸스타인이 주장한 것과 같이 기院교 이전의 집단들에게 어떤 사상을 제공하기는 너무나 후대의 것이다.만약 양자간에 어떤 유사성이 있다면 그 것은 요한복음이 후대의 만다이즘 운동에 어떤 사상적인 토대들을 제공한 것이지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Ⅴ. 결 론


 

이상과 같이 요한복음서 속에 내재되어 있음직한 여러 요소들을 고찰해 봄으로 해서 대략적인 복음서의 사상적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문제를 고찰해 봄에 있어서 자자 문제는 저작 시기 문제와 아울러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왜냐하면 어떠한 작품 속에는 그 작품을 쓴 작가의 철학과 사상이 담겨 있기 때문에 저자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은 복음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살펴본 대로 요한 기자는 그 당시 있던 사상과는 독특한 사상을 피력하고 그 사상이 복음서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이것은 요한 기자 자신이 사용한 자료 자체가 원시 기독교에서는 공통적인 전승의 출발을 갖게 했던 중요한 요소이었다. 또한 폭넓은 전승 자료의 이용과 같이 다른 복음서 저자들처럼 자신의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더 풍부한 자료들로 인하여 더욱 더 요한복음서의 이해가 증가하며 그 연구의 깊이를 더해 갈 것이므로 본 소고 역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 전의 대략적인 것을 살펴보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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