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異端), 그노시스학파(Gnosticism)
그노시스학파(Gnosticism)는 바울 교리를 배척하고 오랜 전통의 할례를 금하며, 안식일과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철저히 지키고,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며, 인성을 주장하는 에비온파(Ebionites)와 예수는 아담이 다시 사람이 되어 나왔고, 앞으로도 다시 육신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엘카이파(Elkesai)와 함께 대표적인 유대교적 이단이었습니다
그노시스학파(Gnosticism)는 주후 1~2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에 로마,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등 지중해 동해안 지역을 따라 널리 형성되어 있는 이단이었습니다 그노시스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인식, 앎, 지식, 깨달음" 으로 번역되며 헬라어로 "영지" 또는 "지식" 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적 주지주의를 주창하고 이성 편중에 기독교적 신앙지식 이상의 신비적이고 고차원적인 신앙지식에 도달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적 태도는 신앙의 실체를 벗어나 괴변에 빠지고 그 결과 그리스 철학 및 동양의 세계관과 기독교의 혼합이 생겨나 순수하고 소박한 신앙심을 현혹시켰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되어 있는 마술사 "시몬" 이 처음이었으며 2세기의 "사토르닐로스"(Satornilos), "바실리데스"(Basilides), 3세기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창조주와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구별하여 전자를 "데미우르고스"(제작자)라는 하급신으로 분류하였으며 또 우주가 이 하급신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영과 물질을 이원적으로 대립시켜 그리스도가 취한 육신은 가상의 육신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 가현설"(Docetism)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영의 힘으로 육체를 벗어나 영적 변화하는데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정통기독교로 부터 배척되어 3세기 이후로는 쇠퇴하였던 것입니다
그노시스파들은 우주의 기원과 죄악의 기원의 문제를 중요시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철학적이고 사색적으로 해석하려는 헬라철학과 신플라톤주의를 접목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권을 인정하면서 현존세계의 모순을 설명하려는 노력에 주관적인 견해가 항상 들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결과는 이단적인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운동은 여러 사상의 혼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주장이 지역과 사람에 따라 차이가 생겨났습니다
저스틴(Justin)의 변증서에 의하면 신약의 사도행전 8장에 기록된 마술사 시몬은 세례를 받고도 끝내 그노시스 이단으로 전락하였다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신으로 격상시키고 여제자 헬레나(Helena)를 여신으로 봉하였으며, 제자 메안더를 통하여 사마리아지역에서 전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헬레나를 통하여 천사들이 생기고 천사들을 통하여 세계가 지음을 받았다고 억지주장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몬의 주장은 시리아와 베니게의 신화에서 근거하고 있으며 후에 복잡한 천사론과 점성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몬의 철학을 두고 이레니우스는 그노시스파의 시조라고 하였습니다
시몬과 메안더의 제자이며 시리아 그노시스파의 창시자인 "사토르닐로스"(Satornilos) 는 하나님은 알 수 없는 아버지로서 천사장들과 권세자들과 주관자를 만들었으며, 이 세상은 일급 천사에 의해 만들어 졌고 사람도 천사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는 사람은 자비와 생명의 빛을 받아 서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천사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제외하고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하러 왔으며 예수의 몸은 육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양만 갖춘 것으로 결혼과 육식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구원은 예수의 빛을 받아 금욕하는데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노시스파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타티안"(Tatian) 은 저스틴의 제자로서 기독교를 위한 변증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는데 주후 165년 시리아의 그노시스파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디아테사론" 이란 책을 저술하여 그의 새로운 사상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복음서를 단일복음서로 개편하였으며 탈 유대주의를 시도하였고 예수의 족보나 유대적 배경을 삭제하고 극단적 금욕주의를 옹호하였습니다 또한 결혼과 육식을 배격하고 성찬의 포도주를 물로 대신하였으며 구약을 경시하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를 부인하였습니다 디아테사론은 5세기경까지 시리아를 배경으로 널리 애독되었으며 시리아 교회의 변질을 가져오게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주후 133년 알렉산드리아 출신이며 범신론을 주장하는 "바실리데스"(Basilides)가 그노시스파의 종교적 지도자로 나타났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제 1신은 무(無)의 존재로서 무(無)에서 유(有)가 생기는데 이것이 우주의 창조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것을 하나의 발전적 철학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주의 씨를 낳고 이 씨는 세아들을 낳게 되는데 영적인 것, 궁창같은 비 물질적인 것, 물질과 결부된 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로마와 애굽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대표적인 그노시스파인 "발렌티누스"(Valentinus)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다 135~160년까지 로마에서 활동하며 기독 지성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가지 즉, 물질과 정신, 그리고 영적인 것에 관한 논리를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천지의 근원을 "깊음"이라고 하였으며 이 "깊음" 과 함께 "고요함" 이 있어 이 두가지가 영원한 음양관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음과 진리가 나오며 말씀과 생명이 나와서 사람과 교회가 시작되는데 이러한 생성과정에서 완전한 숫자인 열개의 "이언"(Aeon) 을 낳으며, 이 가운데 마지막 이언이 "지혜"라는 것입니다 이 지혜의 이언이 알 수 없는 아버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플레로마"(Pleroma) 세계에서 분리되어 방황하다가 낙태하게 되는데, 이 상태에서 생긴 것이 물질 세계이며 이 물질세계를 지은자가 "데미우르고스"(Demiurgos) 로 구약의 하나님,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음과 진리는 이러한 타락에서 건지려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보냈다고 주장하며 구원이란 인간을 물질세계에서 구출하여 "플레로마"(Pleroma) 세계로 옮겨 영적인 자유를 주는 것이라는 등의 복잡한 이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처럼 이미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에서 그 형태를 볼 수 있는 그노시스 사상은 이원론적 우주관 아래 동방의 종교사상과 이교철학, 그리스신화, 점성학 등의 내용이 기독교 교리와 무분별하게 혼합된 것으로 참된 인식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매력을 주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그노시스주의는 오래동안 교회 내부 깊숙히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때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혼선을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영생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 주신 에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라는 요한복음의 인용이라든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테오필루스 등의 "그리스도인은 참된 지식, 즉, 그노시스를 지닌 사람들이다" 라는 설명이 단적인 예로 정통주의 입장에서 거짓 그노시스를 구분하기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그노시스파가 이단으로 탈선하게 된 것은 "이레나이우스" 등의 교부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세상과 역사, 그리고 물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인 예수의 강생 그 자체와 의미를 부인하고 그 역사적 사실과 함께 인성을 취한 구원의 방법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단사상의 난립과 생성으로 말미암아 정통신학의 체계화와 논리적 정리의 필요성을 갖게 되었고 신학적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그노시스파에는 중요한 다섯가지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원론, 도케니즘, 유출설, 반유대주의, 영지주의로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성도들에게매력적인 유혹이 될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1) 이원론
나스티시즘 체계들은 대체로 그 성격이 전형적인 이원론으로서, 나스틱파들은 세상이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를 가졌거나, 또는,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를 통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스 죠나스(Hans Jonas: 1903-1993, 독일 철학자 및 나스티시즘 연구가)는 "나스틱 사상의 주요한 특징은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가) 신과 세상의 관계를 지배하고, 따라서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가)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지배한다는 급진적 이원론(radical dualism)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원론이 세상은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 또는 '두 개의 근본 원리 또는 실체를 통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견해라는 정의 하에서 살펴볼 때, 나스틱파들이 가졌던 교의 체계들은 마니교의 '급진적 이원론(radical dualism)'으로부터 고전 나스틱 운동의 '완화된 이원론(mitigated dualism)'에 이르기까지 이원론의 전 영역을 혼합하고 있었습니다 발렌티누스주의는 일원론에 근접하였으며 그 용어들은 이원론에서 사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물질계와 영계를 분리하고 물질을 죄악시 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데미우르고스를 나누어 하나님은 영계를 다스리고 데미우르고스는 물질계를 다스린다는 식의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류의 근원적 문제는 성경을 중심으로 학습하려 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과 철학에 의지한 연유인 것입니다
2) 도케니즘(Docetism)
예수의 인성과 육체탄생을 부인하고 가상의 육체를 주장하는 등의 가현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유출설
최고 존재인 하나님으로 부터 유출해서 이언(Aeon)들이 생기고 그것은 플레로마(Pleroma)에서 살게 되는 데 이 가운데 가장 타락한 존재가 데미우르고스로 이어서 물질세계가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요소들이 전혀 다른 이단을 생성케 하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4) 반 유대교주의
유대교를 사탄의 종교로 규정하고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5) 영지주의
나스티시즘(Gnosticism, 영지주의, 그노시즘; γνῶσις, gnōsis, 그노시스, 지식, knowledge)은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 종교 운동들 중의 하나입니다 '나스틱(Gnostic, 영지주의자)' 또는 '나스틱파(Gnostics, 그노시스파)'는 이 종교 운동의 반대자들이 만든 이름이었으며, 이 종교 운동의 분파들 중 기독교 계통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기독교인들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나스티시즘(Gnosticism)'이라는 사상은 이 종교 운동을 가리키기 위해 현대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특정한 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스티시즘은 다양한 신앙체계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나스티시즘의 제 분파들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체로 일치하였습니다
물질우주는 데미어지(demiurge)라고 부르는 불완전한 신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물질 우주를 창조할 때 데미어지는 최고의 신 스피릿(spirit = 뉴마 = pneuma = 숨)의 일부를 사용하여 물질우주를 창조하였습니다 데미어지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신, 즉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신으로 분류되지만 히브리서의 견해와는 전혀 상반되는 것입니다 데미어지는 플레로마(Pleroma = 빛의 세계)나 신성과 같은 상위의 세계 또는 존재와 대비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6) 이언(Æon)
많은 나스티시즘 체계들에서 이언들(æons)은 지고한 신의 다양한 발출물입니다 지고한 신은 다른 이름으로 하나인 존재(One), 모나드(Monad), 아이온 텔레오스(Aion teleos, 완전한 이언), 바이토스(Βυθος, Bythos, 심연, 심원한 존재), 프로아르케(προαρχη, Proarkhe, 태초 이전의 존재), 에 아르케(ἡ ἀρχή, E Arkhe, 태초의 존재), 빛의 에노이아(Ennoia of the Light, 빛의 생각), 시게(Σιγη, Sige, 침묵) 등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이 최초의 존재는 또한 하나의 이언이며 이 최초의 존재로부터 일련의 다른 발출물들이 생성하는데 몇몇 나스틱 문헌들에 따르면, 제일 첫째 발출물은 양성일체(兩性一體)인 바르벨로(Barbelo)입니다 그리고 바르벨로로부터 하위 이언들의 쌍들이 발출되며 이 이언들의 쌍들은 시즈지들(syzygies)이라 불리는 남성-여성의 쌍으로 발출됩니다 이들 시즈지들의 숫자는 문헌들에 따라 서로 다르나 몇몇 문헌들은 이 시즈지들의 총 개수가 15쌍, 즉 30인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언들의 전체는 플레로마, 즉 "빛의 세계(region of light)"를 구성하며, 플레로마의 가장 하급의 지역들이 어둠(darkness), 즉 물질세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세계입니다
가장 흔히 쌍을 이루는 이언들 중에는 예수(Jesus)와 소피아(Sophia, 지혜, Wisdom)의 쌍이 있습니다 《발렌티누스파의 주해서(A Valentinian Exposition)》에서 소피아는 예수를 자신의 '배우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소피아는 자신의 배우자 없이 어떤 존재를 발출한 결과 데미어지(Demiurge, 문자 그대로는 "공공 작업자"를 의미한다)를 낳게 되었습니다 데미어지는 얄다바오트(Yaldabaoth) 또는 이와 비슷한 다른 이름들로 몇몇 나스틱 문헌들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데미어지가 발출된 후소피아는 데미어지를 플레로마밖으로 숨기게 되고, 그 후 데미어지는 플레로마 밖에서 혼자 있으면서 혼자 생각하면서 있다가,물질 세상과 자신의 동료 지배자들을 창조한다는 것입니다
이 동료 일꾼들을 아르콘들(archons)이라 하며 데미어지는 인간을 창조하였는데, 인간을 창조할 때 소피아로부터 훔쳐 온 플레로마의 요소를 인체속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이에, 지고한 신은 두 명의 구세주 이언들인 크라이스트(Christ)와 성령(Holy Spirit)을 발출하였으며, 이 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형상으로 화신하였는데 그 목적은 사람들에게 그노시스를 성취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그 결과 플레로마로 되돌아 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영지주의 (나스티시즘, 그노시즘) |
시리아-이집트의 영지주의 도마주의 바실리데스주의 발렌티누스주의 세트파 |
이란 지역의 영지주의 만다야교 마니교 |
기독교 영지주의 교부들 마르키온 바실리데스 발렌티누스 시몬 마구스 케린투스 |
초기 영지주의 오피스파 카르포크라테스주의 카인파 |
중세의 영지주의 바오로파 보고밀파 카타리파 |
영지주의 문헌 나그함마디 문서 유다의 복음서 차코스 사본 |
관련 항목 그노시스 신지학 아브라삭스 영지주의파 목록 피타고라스주의 |
23. 로마제국과 유대교의 관계
기독교 최초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고난과 투쟁의 연속적 수난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주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제국을 패망시킴으로서 로마제국이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은 헬레니즘 이념위에 기초하고 있었으며 헬라문명으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가 정복한 지역들은 대부분 헬라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헬라적 이념은 서로 다른 국가들의 신들을 동일시 하여 혼합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모든 신들은 다 같은 것이라는 범신론적 논리를 적용하였습니다 헤롯왕은 특히 헬라화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들의 노력에 대항하였으며 그 결과 주후 70년경 헤롯의 아들 아켈레우스에 의해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대인(히브리어:יהודי Yehudi) 또는 유태인(猶太人, 영어:The Jews, Jewish people)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유대교인을말하는 것이며, 민족적으로는 고대 히브리민족의 후예가 되는 구약성경에 기반을 둔 민족입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 가나안 땅에서 사울왕을 초대왕으로 추대하여 히브리왕국을 창건하였습니다 2대 다윗왕은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왕국의 오랜 수도로 삼았으며, 3대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에 그들이 소망하던 유대교의 대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사후에 가혹한 부역활동에 대한 반항으로 반란이 일어나,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으며, 북이스라엘은주전 8세기경 앗시리아의 살마네세르 5세에게 멸망당하고 남유다는 주전 6세기경, 신(新)바벨로니아에 멸망당하였습니다
유다의 엘리트들은 바빌론의 포로가 되지만 이후 바빌로니아가 벨사살을 암살한 다리우스가 세운 페르시아에 망한 뒤 그중 일부가 유다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인의 명목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 유대인들의 땅은 페르시아제국이 알렉산드로스에게 정복당한후 시리아 지역에서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승계 셀레우코스(Seleucid)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탈바꿈하려 하자 유대교 정통파들은 마카베 가문(Maccabees)의 지도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된 유대인 왕국을 세웠는데 당시 에피파네스 왕조의 반유대주의 및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은 구약성경의 외경인 마카베오 전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카베오 가문의 반란으로 세워진 왕조를 하스몬왕조(Hasmonaean Dynasty)라 하는데주전 165년에서 63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전 63년 거대한 로마제국의 유다이아(Judaea) 주로 편입됨으로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주후66년경, 유대인들은 총독과 세리를 통해 자신들을 탄압하고 수탈하는 로마 제국에 대해 제1차유대-로마전쟁을 일으켜 저항하였으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하여 유린하였으나,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해서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도시대의 전도자들은 대부분 유대인으로서 개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전도를 위해 힘썼던 사도 바울 역시 항상 유대인들을 먼저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우선순위를 정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새로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으로는 기독교인을 박해하고 밖으로는 로마 정부에 대항하여 투쟁하였습니다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로 유대인들은 성전의 대안으로 회당을 구성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미 바벨론 포로시대부터 민족적 비상시에 해오던 모임으로 수세대를 걸쳐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주관하던 성전이 무너지고 바리새인들이 관여하는 회당이 민족적 구심점으로 등장하자 그곳으로 복음전파의 접촉점을 삼으려던 사도들의 선교정책도 새로운 국면에 부딪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영향력이 점차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로마 정부에 대한 유대인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반감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으며, 이에 따라 로마 정부와의 충돌현상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로 알렉산드리아, 가이사랴, 안디옥 등지에서 유대인들의 배척운동이 일어났으며 로마에서도 감정은 격화되어 갔습니다 단적인 예로 헤롯 아그립바(Herod Argippa2)의 여동생 베레니스(Berenice가 유대인과의 혈연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결혼을 파기한 디도(Titus) 왕자의 결정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양측관계를 짐작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반 유대감정은 그 출발이 로마 정부의 유대정책의결과에서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즉, 로마가 유대를 점령한 후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로마 치하의 유대인 가운데 20세 이상의 성인들은 예외없이 반 세겔에 해당하는 세금을 매년 납부해야 했습니다 세금징수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전 의 유지와 제사장들의 사례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반드시 종교적 사유로만 집행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세금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에도 계속 부과되었으며, 더 나아가 로마의 캐피토린 언덕에 세워진 쥬피터 신전을 위해 부과된 헬레니즘화를 위한 세금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을 자극하는 발단이 되었습니다
주후 81~96년까지 계속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는 황제에 대한 예배에 대한 불복이 도화선이 되어, 기독교도 때문에 로마의 모든 신이 진노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차별적인 박해를 가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에 박해를 피하여 지하무덤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카타콤"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당국자들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교 신자와 기독교 신자를 구별하지 않는 새로운 박해, 즉, 무차별적 박해를 시작하였던것입니다 이러한 박해속에서 메시아를 대망하는 요한계시록이 작성되었던 것입니다
로마 정부의 이러한 불법적인 처사는 한걸음 더 나아가 유대인들을 비롯한 유대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경건한 자들(God-fearers) 즉, 할례를 받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까지 세금을 부과하기에 이르는 등 박해의 대상과 범위를 확대해 나갔습니다 이어 트라야누스 황제(주후97~117년)는 황제의 권위를 최극단까지 높여 황제앞에서 무릎꿇고 경배하기를 강요하고 유대인들을 무조건 죄인 취급했으며, 뒤를 이은 하드리아누스황제(주후117~138년)는 117년에 칙령을 내려 할례와 안식일을 금지하고 회당에서 율법낭독을 금지시킴으로서 박해의 강도를 한 층더 높여갔습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 성전 터위에 쥬피터 신전을 세워 유대교 말살정책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러한 오랜 박해에 대항하여 주후 132년에 메시아로 자처한 발코크바(Bar Kokhba)가 주도하는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구약이 예언한 별의 아들로 태어낫다고 주장하며 구레네와 애굽과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사람들을 규합하여 반군을 조직하였습니다 발코크바의 추종자들은 기독교인들이 반란에 참여하기는 커녕 발코크바를 이단으로 규정하자 로마에 대항하는 가운데 기독교인들까지도 함께 박해를 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란은 3년을 넘기지 못햇고 주후 135년 로마군의 대반격에 의해 50여만명이 희생되는 대학살끝에 항복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을 로마의 도시로 재건하고 유대인들의 출입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교회의 설립마져 금지시킨 것은 아니었으며 이방인 교회의 설립을 허락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예루살렘의 교회들은 이방인들이 감독이 되어 다스렸고 로마의 간섭없이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소수의 유대인들은 이방중심의 교회에 서서히 동화되어갔고 로마의 평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유다이아 땅의 유대인들은 대다수 노예로 팔리거나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었으며,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것을 두고 "디아스포라" 라고 칭하였습니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 상당수는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등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 일부는 인도와 중국에 까지 진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유대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하자르인(Khazars), 에돔인(Edomites), 에티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흔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럽의 유대인들은기독교인들로 부터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직업과 거주지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하였습니다 일반 직업에 종사할 수 없게된 유대인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인정하지 않던 금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오늘날 정치,경제적으로 거부가 되는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이방중심의 교회와는 독립적으로 신앙생활을 영위하려 하였고 그들의 순수한 복음도 변질되어 갔습니다 이러한 탈복음화 경향은 여러개의 소집단으로 분열되었으며 그 특색에 따라엘 케사이 파(El Kesaites)와 에비온 파(Ebionites) 등 특이한 종파 운동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24. 이단(異端),모나키안주의(主義)(Monarchianism)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하여 조직적인 신학체계를 갖추지 못한 초대교회에 그리스도론에 대한 이론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인격속에 그저 머물러 있다고 믿는 경향과 그는 영원전으로 부터 하나님으로 부터 존재하였다고 믿는 경향이 공존해 있었습니다 저스틴은 "트리포와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에서 예수께서 세례받으신 일과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조화 문제를 제기하였습니다 주후 2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문제는 한층 더 심도있게 연구되어 "삼위일체" 교리가 발달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에 반대하는 이론으로 모나키안주의(Monarchianism)가 나타났으며 이 이론은 한분 하나님이라는 원칙에 있어서는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세부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이 다이나믹하게 그속에 머물러 계신다는 다이나믹 모나키안주의(Dynamic Monarchianism)와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이신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이시나 모양만 다르게 나타나신 분으로 해석하는 양태적(樣態的) 모나키안주의(Modalistic Monarchianism)로 양분되었습니다
1) 다이나믹 모나키안주의(Dynamic Monarchianism)
1-1. 데오투도스(Theodotus)
비잔티움 출신인 데오투도스는 다이나믹 모나키안 주의를 주창한 대표적 인물로서 주후 190년 경 로마에서 자신의 주장을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독특하고 특별한 동정녀 탄생을 신앙하였으나, 예수께서 세례를 받기까지는 우리와 유사한 인간에 불과하였으며,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신의 속성이 그에게 함께 임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양자설(Adoptionism)로 로마의 감독 빅토(Victor)에 의해 정죄되었습니다
1-2. 사모사타의 바울(Paul of Samosata)
바울은 주후 260년에 안디옥의 감독이 된 후 교회를 치리하며, 여왕 제노비아(Zenobia)의 신임을 얻어 그녀의 정치고문도 함께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사모사타는 안디옥의 동북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팔미라(Palmyra) 왕국의 한 도시였습니다 주후 269년에 바울은 지방 총회에서 파면되었고, 272년 여왕의 퇴위로 정치고문직에서도 해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메소포타미아, 아르메니아 등지에서 영향을 끼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단일인격(Unipersonality)을 주장하고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는 등 데오투도스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고스(Logos)는 모세와 선지자에게 계시던 분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기능일 뿐이며, 제 2의 인격을 가진 분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단지 예수 그리스도 위에는 특별하고 비상한 정도로 머물러 역사하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 양태적(樣態的) 모나키안주의(Modalistic Monarchianism)
양태적(樣態的) 모나키안주의(Modalistic Monarchianism)는 동방 에서 부신수고설(父神受苦說, Patripassionism)로, 서방에서는 사벨리우스(Sabelius)로 나타났습니다
2-1. 프락세스(Praxeas)
프락세스는 소아시아 교회 지도자로 주후 195년경,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를 방문하고 몬타너스파(Montanists)를 로마의 감독들이 거부하기를 역설했습니다 푸락세스(Praxeas)는 로마에서는 히포리터스(Hippolytus)와 논쟁하고, 카르타고에서는 터툴리안(Tertullian)과 대결하였습니다 터툴리안은 푸락세스를 "성령을 추방하고 성자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 으로 비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락세스는 카르타고에서 환영을 받았습니다 삼위일체를 일체의 삼현(三現)으로만 바라볼때 이러한 비판을 받기 마련인 것입니다 "하나의 신격(神格)이 각각 다른 상태로 모양을 나타낸다" 는 주장은 삼위일체설과 유사한듯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전혀 다른 주장이 되고 만 것입니다
2-2. 사벨리우스(Sabellius)
사벨리우스(Sabellius)는 북아프리카 출신으로 주후 3세기 초에 로마에 가서 신학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푸락세스(Praxeas)설을 한 층더 발전시켜 성령에 관하여 더 자세한 설명을 확보하였습니다 부신수고설(父神受苦說, Patripassionism)에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나 사벨리우스는 성령에 대하여 아버지(성부하나님)와 비교하여 설명할 때에 섭리 영역을 담당하시는 신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격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초월하여 배후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 신격의 하나님을 모노스(Monos)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모노스인 하나님은 창조자이시며 입법자이신 아버지로 나타나시고, 죄인을 구원하실때에는 구세주의 아들로 나타나시며, 또한 이것을 섭리하시며, 이행하시는 성령으로도 나타나신다고 주장하면서 이 모든 창조와 구원의 역사가 끝나면 본래의 모노스(Monos)로 다시 환원한다는 것입니다 이 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며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였으나 예수의 인격을 부인하였으므로 교회의 회의에서 정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