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의 70이레는 천문학과 컴퓨터기술 그리고 고고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이제는 바벨론과 메대와 바사시대의 역사와 더불어 그 비밀을 정확히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70이레의 시작점과 끝점도 역사적으로 그 연대를 정확히 밝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언제 시작되었고 또한 언제 성취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이 예언을 통해서 진정 무엇을 배울 수 있어야 하는가? 이제는 다니엘의 70이레의 다양한 해석과 그 비밀을 들여다보자.
1. 들어가며
다니엘의 70이레는 예언이자 계시다. 그렇다면 예언은 어떤 성격과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특히 메시야에 관한 예언 중의 하나인 다니엘의 70이레의 계시는 메시야에 관하여 어떤 것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이 예언은 초림의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예언한 것인가 아니면 재림하시는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한 것인가? 학자마다 저마다의 근거를 가지고 이 예언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그러나 연대기적으로 이 말씀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이 예언이 갖고 있는 특수성과 더불어 예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까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예언과 환상 가운데 가장 난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70이레의 예언을 연대기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어떻게 이 예언이 메시야이신 예수님에까지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예언이 갖는 특징과 교훈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2. 구약에 나오는 모든 예언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구약에 나오는 모든 예언들은 일정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예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그 예언이 무엇을 보고 혹은 무엇을 두고 예언한 것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봐야 비로소 그 의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9:6의 예언에 의하면, 장차 태어난 메시야는 아기이자 아들이라고 되어있지만, 뒷부분에 가면 그분은 전능한 하나님이요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예언의 의미를 당시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둘째, 하나의 예언을 가지고서 다른 모든 것까지 다 포괄하여 전체를 말해주는 그러한 예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언은 장차 있을 일들에 관한 일부분(파편)에 불과한 것이지 그것 하나가 다른 모든 예언들을 다 포함하는 예언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자마다 자기들이 본 것은 어떤 것의 일부분만을 본 것이지 모든 것을 다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요, 또한 하나님께서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보여주지도 않으시기 때문이다. 셋째, 예언에 나오는 숫자 특히 종말론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는 숫자들은 대부분 날짜를 맞춰보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이 아니므로, 그것들의 숫자를 맞추어 미래에 되어질 일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도 여기에 속한다. 넷째, 구약의 모든 예언들은 하나의 징검다리 예언으로서, 장차 이루어질 진짜에 대한 예표론적인 성격이 매우 짙다는 것이다. 오늘 다룰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도 예표론적인 것이지 메시야에 관한 완전한 예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예언이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완전히 성취된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진짜에 대한 예표로서 주어진 예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사실이다.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도, 장차 이 땅에 오셔서 기름부음을 받고 죽으실 메시야에 관한 징검다리 예언인 것이요,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징검다리 예언이라는 것이다.
3.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무엇에 관한 예언인가?
그렇다면,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대체 어떤 것에 관한 예언인가? 그것은 다니엘에게 70이레의 예언을 직접 해석해준 가브리엘의 천사에 의하면, 이 예언은 "네(다니엘의) 민족과 네(다니엘의) 거룩한 성"의 회복과 쓰임에 관한 예언으로서, 이미 포로로 붙잡혀 있는 이스라엘 민족과 그리고 이미 파괴되어서 유명무실화된 채 있는 예루살렘 성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단9:24). 그리고 이 예언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면, 이 예언 안에는 예루살렘의 성소(성전)에 관한 예언도 담고 있어서(단9:26~27), 이 예언은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 그리고 제2성전"에 관한 예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4. 70이레의 예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그럼, "70이레"의 예언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우선 "70이레"의 예언은 "일흔 번의 일곱 번(70*7)" 혹은 "일곱 번의 일흔 번(7*70)"에 관한 예언이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 가운데서도 나온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형제가 죄를 짓고 와서 자기의 죄를 용서해줄 것을 요구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주어야 하는지를 예수님께 물어본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하라고 하셨다(마18:22). 이 말의 본뜻은 490번까지만 용서하라는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요, "10"이라는 숫자는 충만한 수이기 때문에, 490도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형제의 죄를 490번만 용서해줄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라도 충분히 용서해주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리고 "70이레"는 그것이 과연 490시간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490일, 490달, 490년을 의미하는 것이인지 사실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보통 구약의 예언을 해석할 때 자주 등장하는 해석법으로서, 하루를 1년으로 계산하는 방법(민14:34, 겔4:6)에 따라서, "70이레"는 490년에 관한 예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아닐 수도 있다).
둘째, "70이레"의 예언은 총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7이레"(7*7=49년)와 "62이레"(62*7=434년)와 "한 이레"(1*7=7년)가 그것이다. 이중에서 첫번째 부분으로서, "70이레(490년)" 안에 끝날 일들이 여럿이 있다. 그것은 6가지다. 그것은 3개씩 나뉜다. 첫번째는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될 것이라고 했다. 두번째는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단9:24). 이것만 가지고 따진다면 이것들은 다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만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두번째 부분은 일곱 이레(49년)와 예순두 이레(434년) 부분에 있을 일들이 있다. 이때는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이 날 때에 일곱 이레가 시작되고, 그리고 이 기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나기드=지도자)가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일곱 이레가 지나고 기름부음을 받은 지도자가 일어나고 다시 62이레가 지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7이레와 62이레, 도합 69이레 안에 예루살렘 성은 건축될 것이요, 그때에 광장과 거리가 다시 지어질 것이라고 했다(단9:25). 그러므로 두번째 부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69이레 안에, 아마도 7이레가 지나고 62이레가 시작되기 전에 일어난다는 뜻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 세번째 부분은 69이레(483년) 후의 일들이다. 그렇다면 이제 한 이레(7년)만 남기고 있는 상황인데, 그것 안에는 한 이레(7년) 안에 일어날 일이 있고, 69이레 후에 일어날 일이 따로 있다. 둘은 구분되면서 겹치기도 한다. 먼저 69이레 이후에 일어날 일은 딱 2가지다(단9:26) 먼저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예루살렘 성과 성소(성전)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파괴했던 한 왕의 백성은 갑자기 홍수에 휩쓸림 같이 죽게 될 것이다고 했다. 그리고 한 이레 안에 일어날 일들이 있다. 먼저는 한 왕의 백성이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맺을 것이라고 했다(단9:27a). 그리고 그가 그 이레(한 이레)의 중간(약3년반이 지난 후)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그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황폐하게 할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때 황폐케 하는 자 곧 한 왕의 백성에게 진노가 쏟아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일이 장차 오실 인류의 구원자이신 메시야에게 일어날 예언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 예언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성취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야의 사건은 오직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 성 안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69이레 후에 끊어져 없어질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장차 메시야로 오셔서, A.D.30년경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예수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69이레 후에 어느 시점에 있을 일로서, 예루살렘 성과 제2성전을 파괴할 자는 A.D.70년에 예루살렘 성을 정복하고 성전을 파괴했던 로마의 디도(타이터스) 장군을 지칭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5. 70이레에 관한 해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렇다면, 70이레에 관한 해석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다들 나름대로의 근거들이 조금씩은 있다. 하지만 완전하게 문자 그대로 성취된 사건으로서 해석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70이레의 예언은 장차 오실 인류의 구원자인 메시야에 관한 예표적인 사건으로 예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0이레"관하여는 어떤 해석들이 있는 것인가? 대략 7가지 해석들이 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비평적인 해석이 있다. 이것은 "70"이레의 기간을 예루살렘의 멸망(B.C.586년)부터 헬라제국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4세의 사망 때까지(B.C.163)로 보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423년밖에 안 되는 기간이라 설득력이 떨어진다.
둘째, 무천년설주의자들의 해석이 있다. 이것은 "70이레"는 상징적인 기간으로 본다. 그리고 이 해석은 70이레의 시작점을 바사 고레스왕의 칙령(B.C.538년)으로 보고, 마지막 한 이레(7년)의 끝을 A.D.70년으로 본다.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는 사건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70이레의 기간이 490년이 아니라, 608년이 되므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셋째, 상징적인 해석이 있다. 이것은 "70이레"의 기간을 고레스왕의 칙령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로 본다. 그리고 처음 "일곱이레"는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B.C.538년)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까지로 보며, "62이레"는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적그리스도에 의한 박해를 받는 종말까지의 교회시대로 본다. 그리고 마지막 "한 이레"는 종말에 적그리스도에 의한 교회의 대대적인 박해기간으로 본다. 그러나 이 예언은 메시야(그리스도)의 초림과 죽음, 그리고 예루살렘 성의 파괴까지만 나타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넷째, 간극설 곧 세대주의자들 혹은 전천년주의자들의 해석이 있다. 이 해석이 가장 큰 문제라면 문제다. 왜냐하면 69이레 후에 마지막 한 이레를 먼 미래의 일로 가져가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처음 7이레(49년)와 69이레(434년)까지는 문자 그대로 문자적으로 483년을 채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이레(7년)도 문자적으로 7년인데, 69이레 후에 시간적인 간격이 있은 후에 마지막 때에 한 이레가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로마카톨릭에서 만들어낸 가짜 해석으로서, 종교개혁 당시 종교개혁자들이 적그리스도를 로마 교황이라고 지명하자, 로마카톨릭에서 적그리스도는 장차 미래에 이스라엘과 7년간의 평화협정을 맺을 적그리스도라고 해석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것이다. 이것이 영국의 신부 존 넬슨 다비가 수용하였고, 이것을 미국으로 가져간다. 그리하여 결국 미국에서 세대주의적인 종말론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마지막 한 이레가 69이레 후에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성취될 것이라고 암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70이레의 예언은 종국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쓰임과 예루살렘 성의 파괴의 예언이므로, 이 예언에 나오는 "한 이레"를 먼 미래의 종말론적인 일로 해석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운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안식교(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의 해석이 있다. 이 해석은 "70이레"를 문자적으로 실제의 490년으로 보는 해석인데, 단, 예루살렘 중건영을 바사왕 고레스 원년(B.C.538년)으로 보지 않고, 바사왕 아닥사스다 제7년(B.C.457년)으로 본다. 그런데 신비하게도 이 해석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연도가 일치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처음의 "일곱 이레(49년)"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지도자가 일어난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리고 단9:27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과 한 이레의 언약을 굳게 맺을 자를 "한 왕의 백성"으로 보지 않고, 예수님으로 본다. 그때 예수께서 이스라엘과 7년 언약을 맺고, 이 중간인 3년반후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제사와 예물을 더이상 드리지 않아도 되게금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한 이레의 언약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는가하고 질문했을 때에는 그것이 맞다고 말할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한 예수께서 3년반 후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은 맞지만, 그때에 곧바로 모든 제사와 예물이 중지된 것은 아니므로, 정확한 해석이라고도 할 수 없다. 제사와 예물은 예수께서 죽고난 후 40년 뒤인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면서 비로소 중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닥스다왕 제7년은 연대기적으로 볼 때 B.C.457년이 아니라 B.C.515년이므로, 그 뒤의 역사 모두가 하나도 들어맞지 아니하는 해석이 되고 만다.
여섯째, 연대기적인 해석이 있다. 이 해석은 미국의 연대기 학자인 유진 폴스티히가 주장한 것으로서, 변하지 않는 우주적인 시간으로 역사를 재구성하여, 역사적으로 70이레를 해석한 것이다. 이것은 조금 있다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인데, 가장 타당한 예언 해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일곱째, 문자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인 해석이 있다. 이 해석은 필자가 보는 해석으로서, "70이레"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성취될 사건으로 보면서도,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보는 해석으로서, 앞에 성취된 490년의 사건을 장차 진짜 있게 될 메시야에 관한 예표론적 사건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490년 안에 이 모든 일이 그대로 성취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것은 장차 메시야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의 예표라는 해석하는 것이다. 일종의 예표론적인 해석이요 점진론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70이레의 예언은 어떻게 문자적으로 실제 일어난 것일까?
6. 연대기적인 해석으로 살펴본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은 어떠한가?
이제는 연대기적으로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이 어떻게 실제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연대기의 저자 유진 폴스티히는 컴퓨터와 천문학적 자료를 통하여 연대기적으로 바벨론, 메대와 바사, 헬라, 로마제국의 역사를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다. 그랬더니,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져있는 역사가 실제와는 상당한 오차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였다. 그것이 연대기가 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한국의 김명현박사(성경과학연구소 소장)께서 한국에 소개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나온 성경의 역사 가운데 가장 사실에 가까운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연대기 연구가인 유진 폴스티히에 의하면, 다니엘의 70이레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일어났다고 본다.
예루살렘을 중건(다시 건설)하라는 명령은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있었다(B.C.551년). 그런데 그때는 이미 알려진 B.C.538년이 아니었고, 실제는 B.C.551년이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일곱 이레"(49년)가 지난 다음인 B.C.502년에, 역시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지도자가 일어났으니, 그는 바로 '느헤미야'였다. 그는 바사왕 아닥스사스다 7년에 왕의 허락을 받아 제3차 포로귀환을 이끈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예순두 이레가 지났을 때에는 B.C.68년이 된다. 이제는 "한이레"(7년)만이 남겨놓았다. 그런데 이때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안식일에 침공하여, 당시 유다인들의 왕 겸 대제사장이었던 힐카누스2세(장남)를 폐위시키고, 아리스토불루스2세(차남)를 그 자리에 앉힌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과 평화계약을 맺는다. 하지만 3년 3개월만에 아리스토불루스2세는 폼페이우스 장군을 배반하게 된다. 그러자 3년3개월만에 폼페이우스가 다시 예루살렘에 쳐들어왔는데, 이때는 성전 안에 들어가 제사장들을 죽이면서 몇몇 군사들과 더불어 지성소까지 들어가는 신성모독을 저지르게 된다. 그래도 폼페이우스와 병사들은 죽지 않았다. 그때 폼페이우스는 저항하는 제사장들의 손과 발을 잘라버리고 혀까지 잘라버렸지만 아무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더 이상 제사와 예물을 드리지 못하도록 금지시켜 버렸다. 그리고 힐카누스2세를 다시 대제사장에 앉혔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왕직을 허용하지 않아서 왕관을 쓰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도 3년 9개월 뒤인 B.C.61년에 갑자기 홍수에 휩쓰리듯 암살당하고 만다. 그래서 마지막 한 이레가 끝난 것이다. 그리하여 70이레는 역사상에 문자적으로 고스란히 실현되었다.
7. 나오며
참으로 성경은 신묘막측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이미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다 아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환상을 통해 그리고 계시의 예언을 통해 미리 알려주셨다. 하지만 모든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러 그 끝을 보게 된다. 특히 다니엘이 가브리엘 천사장으로부터 들었던 70이레의 예언도 마찬가지였다. 이 예언은 당시 B.C.575년에 다니엘이 본 예언으로서, 장차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쓰임과 파멸한 관한 예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언도 하나의 예표에 불과했다. 진짜는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성취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환상과 예언들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께서 구약에 350가지 이상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70이레의 예언과 성취를 통해서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는 것이 오직 이스라엘 민족 뿐이겠는가? 아니다. 모든 민족과 국가에도 있을 것이고, 교회와 개인에게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의 사명을 깨닫는 것이다. 자신과 교회, 민족과 국가에 대한 사명을 깨닫고 그 뜻에 부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지금 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한 번 자기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6월 17일(수)
정병진목사
[참고자료] 다니엘의 연대기
연표 |
중요사건 |
B.C.599 |
바벨론 느부갓네살왕 통치 7년에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다니엘, 에스겔 포로로 잡아간다(바벨론 제1차포로), 남유다 18대 여호야김 왕이 죽다. |
B.C.598 |
남유다 19대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혀가다. 남유다 20대 시드기야가 즉위하다. |
B.C.594 |
에스겔이 환상을 보기 시작하다(겔1:1) |
B.C.590 |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다. 바벨론의 70년 포로기 시작(~520년까지. 70년간) |
B.C.588 |
남유다 멸망하다. 시드기야 사망하다. 솔로몬 성전이 불타다(바벨론 제2차포로) |
B.C.582 |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 23년에 남유다백성을 포로로 잡아가다(바벨론 제3차포로). 다니엘2장 – 느부갓네살 왕 남유다 통치 2년에 금 신상의 꿈을 꾸다 |
B.C.578 |
다니엘4장 – 느부갓네살 왕이 큰 나무에 대한 환상을 보다 |
B.C.577 |
다니엘7장 – 다니엘이 네 짐승에 관한 환상을 보다.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미친 사람이 되어 동물처럼 지내다 |
B.C.575 |
다니엘8장 – 다니엘이 숫양과 숫염소에 관한 환상을 보다(바벨론 벨사살왕3년=메대 다리오왕 원년] 다니엘9장 – 다니엘이 70이레의 예언을 듣다. |
B.C.574 |
다니엘6장 – 메대 다리오 왕 2년에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던져지다 (메대왕 다리오=아스티게아스=아하수에로=에스더의 남편) 바벨론 벨사살 왕이 그의 통치 3년만에 죽다. |
B.C.571 |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이 복귀하다. 메대 다리오왕이 바벨론을 매형(느부갓네살왕)에게 넘겨주다. |
B.C.569 |
에스더가 메대 다리오(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되다(왕비 나이=30세, 다리오 나이=67세) |
B.C.563 |
포로로 잡혀온 유다인들이 하만을 이기고 건짐을 받다(메대 다리오왕 12년 12월 3일=부림절) 2주 후에 남유다 19대 여호야긴(여고니야) 왕이 풀려나다. |
B.C.551 |
바사 고레스 왕이 포로해방 칙령을 발표하다. 다니엘 9장의 70이레(490년)가 시작되다(~B.C.61). 다니엘이 70이레의 예언을 들은 뒤 24년만의 일이다(B.C.575+24=551년). 바벨론에서 제1차 포로귀환이 시작되다. 이때 인도자는 총독 스룹바벨,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도 함께 귀환하다(스2:2, 느7:7) |
B.C.540 |
바사 고레스 왕이 바벨론에 무혈입성하다(메대왕 다리오 왕을 정복하다). |
B.C.520 |
메대 다리오 왕이 바벨론을 함락시키다(완전 멸망) 바벨론의 포로 70년이 끝나다(B.C.590~520)(학2:18,슥1:7) |
B.C.516 |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다(바사 다리오 왕 제6년 12월 3일)(스6:15) |
B.C.515 |
바벨론 제2차 포로귀환(에스라 인도, 바사 다리오 왕=아닥사스다 왕 7년) *[기존]B.C.457 |
B.C.502 |
바벨론 제3차 포로귀환(느헤미야 인도, 바사 다리오 왕=아닥사스다 왕 20년) *[기존]B.C.445 다니엘9장의 처음 일곱이레(49년)가 끝나다. (B.C.551년+49년=B.C.502년) |
B.C.491 |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되다(성문은 52일만에 완공하다). 이는 3차귀환후 12년만의 일이다. |
B.C.490 |
느헤미야가 성벽공사를 완료하고 바사국으로 돌아가다. |
B.C.484 |
느헤미야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