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강해(13) 민족을 향한 다니엘의 회개중보기도와 70이레의 예언 및 해석(1)(단9:1~27)_2020-06-03(수)

by 갈렙 posted Jun 0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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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p6vrmqsNkg0
날짜 2020-06-03
본문말씀 다니엘9:1~27(구약1248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다니엘의기도,70이레,회개기도,간구기도,예레미야의예언,70년포로,율법불순종,하나님의음성불순종,주의종선지자불순종,대재앙,예루살렘성파괴,성전파괴

다니엘은 어떤 기도를 드렸길래 그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께서는 천사장이었던 가브리엘까지 꼭 그에게 보내야 했던 것인가? 그의 기도는 자신의 민족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지만, 실제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이스라엘민족의 모든 경륜이 들어있는 70이레의 비밀로 나타났다. 그의 기도에는 크게 몇 가지 특징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즉시 상달되는 기도, 자신이 기도했던 것보다 더 큰 응답이 주어지는 다니엘의 기도, 그의 기도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1. 들어가며

  다니엘서 9장은 다니엘서 가운데 제일 난해한 본문으로서 "70이레(70주)(Seventy sevens)"에 관한 예언이 등장한다. 오늘날의 상당수의 종말론자들(대부분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의 70이레 예언을 종말론적인 예언의 진수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70이레가 인류종말에 있을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알려주는 본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오늘날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영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누가 무슨 말을 주장했다고 해서 더이상 무턱대고 따라가는 시대는 더이상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70이레에 관한 다양한 해석을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70이레는 과연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그래서 오늘은 다니엘의 70이레의 예언이 왜 다니엘서 9장에 기록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70이레의 예언은 종말에 관한 예언이니까 한 번 들어보라고 들려주신 예언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대체 하나님께 그날 무슨 기도를 드린 것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다니엘에게 가브리엘 천사장을 시켜 70이레의 예언을 들려준 것인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70이레의 예언과 그 해석을 접하게 되면 배가 산으로 올라가하는 것을 보게 될른지도 모른다. 

 

2. 다니엘은 왜 기도하게 되었는가?

  다니엘은 왜 기도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읽다가 기도하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가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다니엘은 유다인들이 바벨론에서 언제까지 포로생활을 해야 할 것인지 그리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은 언제 다시 회복되고 성전은 건축될 수 있을른지에 관하여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어떻게 구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예레미야서를 구하여 그것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 무려 2번씩이나 유대인들이 바벨론왕을 언제까지 섬겨야 하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렘25:11~13). 그리고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민족이 바벨론에서 언제 포로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 성으로 귀환하게 될 것인지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렘29:10). 그것은 한 마디로 유다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왕을 섬기고 있지만 70년이 차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니엘은 여기에다가 한 가지 더 알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고 엄청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결코 성취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겔36:37).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니라(겔36:37)" 그래서 다니엘은 그날부로 베옷을 입은 채, 재를 덮어쓰고 금식하면서 주 하나님께서 기도하기 시작한다(단9:3).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40년 이상을 기도한 것 같다. 왜나하면 그가 기도를 시작하던 B.C.575년은 연대기적으로 볼 때, 그가 바벨론에 끌려온지 24년 정도가 흘러간 시점이므로, 앞으로도 46년 정도가 더 지나야 바벨론 포로귀환이 성사될 것이기 때문이다. 

 

3. 다니엘은 언제 기도를 시작했는가?

  다니엘이 금식하면 기도를 시작하던 시기는 언제였는가?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다니엘이 80~90세 정도의 고령의 나이가 되었고, 그가 고령의 나이에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70이레의 예언을 받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하지만 그러한 역사는 수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자신이 중보기도하고 70이레의 예언을 받았던 시기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받던 첫 해 곧 그의 통치 원년에(단9:1~2a)" 그렇다. 그는 메대왕 다리왕의 통치 원년에 책을 읽다가 기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정확히 언제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때를 B.C.538년쯤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에 바벨론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고 메대왕 다리오가 나라를 얻었다고 다니엘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단5:30~31). 그러나 우리는 지난 번 다니엘서 5장 강해 시간에 석회벽(분벽) 위에 쓰인 글씨에 대한 해독을 듣고난 후 신하들에게 갑자기 암살당한 벨사살 왕은 바벨론의 나보니두스왕(B.C.55~539)의 아들이었던 벨사살 2세(B.C.550~539)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연대기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석회벽에 위에 쓰여진 글씨 해독후 암살당한 벨사살 왕은 나보니두스의 아들이 아니라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벨사살은 자신의 아버지 느부갓네살이 갑자기 광인병에 걸려 사람들로부터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는 사람이 되자(느부갓네살 왕은 그렇게 7년 동안을 살아야 했다. B.C.577~571), 그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때로부터 바벨론을 다스렸고, 그가 죽었던 해는 그로부터 약 3년이 흐른 뒤(B.C.575년)였다. 그때에 석회벽에 손글씨의 기적이 나타났고 그 사건 이후 벨사살은 신하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의 아내였던 아미티스 왕비가 자기의 남동생(메대의 다리오)을 불러들여 바벨론(갈대아)을 통치하게 한다. 그러자 메대의 다리오(아스티게아스. B.C.575~540)가 갈대아의 통치자로 들어온다. 다시 말해, 아미티스 왕비(누나)와 다리오(남동생)의 아버지였던 메대왕 아하수에로(키악사레스)(B.C.615~575)는 바벨론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자, 자기의 딸 아미티스 공주를 바벨론의 나보폴랏사르의 아들인 느부갓네살(B.C.605~562)과 정략 결혼을 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키악사레스와 나보폴랏사스가 사돈 관계를 맺어, 나이가 좀 있는 느부갓네살 왕과 젊은 아미티스 공주가 결혼을 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는 뒤에 메대왕 다리오가 드디어 누나의 요청에 의해 바벨론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메대왕 다리오가 "메대왕"으로서 세움을 받았다고 기록하지 않고, "갈대아 나라의 왕으로 세움을 입었다"고 언급되어 있다(단9:1). 그리고 다시 4년이 흐른 뒤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도 정신이 돌아온다. 그러자 다리오는 자신이 맡았던 바벨론을 다시 자신의 매형인 느부갓네살왕에게 도로 넘겨주게 된다. 그러므로 연대기에 따라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서책을 본 후에 기도하기를 시작하던 해는 B.C.538년이 아니었다. 그때는 바로 B.C.575년인 것이었던 것이다. 이 해는 느부갓네살왕이 광인병에 걸린지 3년차가 되는 해요, 그의 아들 벨사살왕이 왕으로 통치한지 3년이 흐른 직후였다. 그러니까 이때 당시 다니엘의 나이는 약 40세 전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다니엘은 무슨 기도를 드렸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은 그때 무슨 어떤 기도를 드렸는가?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딱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단9:20에 나온다. 이 말씀을 표준새번역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내가 아직 아뢰어 기도하면서 나의 죄와 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백하고 나의 하나님의 거룩한 산 성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주 나의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단9:20)" 그랬다. 그는 먼저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회개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산 곧 시온산이 있는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간구한 것이다. 

  먼저, 그는 자기와 자기 민족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했다(단9:5~15). 사실 구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이지만 사실 흠 하나 없고 죄짓지 아니한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도 다니엘은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과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해 드린 기도에서 그는 결코 자신을 예외로 두지 않으며 꼭 자기를 포함시켜 죄를 자복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나님께 "죄를 범한 대상"을 "우리"라는 말로 계속해서 표현하였다(무려 '우리'라는 단어를 55회나 사용하였다). "우리가 범죄하였고 패역하였으며, 행악하였고, 반역하였다"고 고백한다(단9:5,9). 그리고 자기와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한 것을 3가지로 말했는데, 첫째는, 주의 법도와 규례 곧 주의 율법을 어겼다고 말했다(단9:5,11절). 둘째는,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음성)를 듣지 아니했다고 말했다(단9:10,11,14).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주님께서 보낸 주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고 말했다(단9:6). 

  그렇다면, 다니엘은 자기와 자기 민족이 지은 죄로 인하여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는가? 그것은 그것으로 인해 주의 분노가 임하여 3가지의 결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첫째는 큰 재앙이 임했다고 말했다(단9:13~14). 둘째는 수치가 자기들 위에 임했다고 했다(단9:7,8,9,16). 셋째, 성과 성전에 황폐함이 임했다고 말했다(단9:17,18). 그것은 참으로 처참한 것이었다. 적국에 칼에 죽임을 당하고, 산 자들은 기근으로 죽어나갔고, 어떤 이는 적국에 노예로 끌려가거나 팔려갔으며,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허물어졌으며,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신 성전은 훼파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둘째, 다니엘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의 회복을 위해 간구했다(단9:16~19). 그런데 이때 다니엘이 드린 기도가 좀 특별하다. 첫째, 주님의 분노를 당신의 성 예루살렘과 당신의 산 시온산에서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단9:16). 둘째, 주님 자신을 위하여 당신의 얼굴 빛을 당신의 성전에 비추어달라고 했다(단9:17). 셋째, 주님께서 눈을 떠서 당신의 이름으로 일컫는 예루살렘 성을 보시기를 간구했다(단9:18). 그러면서 주님의 큰 긍휼을 베풀어달라고 하면서, 주님 자신을 위하여 이미 약속한 말씀을 지체하지 말고 이루어주시기를 간구한 것이다(단9:19). 이처럼 다니엘의 중보기도는 오직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해 달라는 기도였던 것이다. 우리 같으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을텐데, 그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회복시켜주시고,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다시 짓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5. 다니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렇다. 누구든지 응답받는 기도를 하려면 다니엘처럼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첫째로, 그는 회개기도를 통하여 주의 분노가 가라앉도록 납짝 엎드리는 기도를 했다(단9:16). 그것도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쓰고 베옷을 입고 금식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나서 간구하는 기도를 올려드렸다. 둘째로, 그는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따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것을 이뤄달라는 기도를 드렸다(단9:17~19). 오직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자비가 이 땅에 속히 이뤄지기를 간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쾌락이나 욕망을 추구하고자 하는 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의 회복을 위한 기도였다. 그렇게 기도함으로써 다니엘은 속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지기를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그의 기도에 응답해주신 것이다. 그런데 다니엘이 받았던 기도응답을 통해 알 수 있는 놀라운 기도의 영적인 비밀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과 뜻에 합당한 기도를 드린다면 훨씬 더 빨리 기도가 응답될 것이라는 사실이다(단9:21). "가브리엘에 빨리 날아서"(단9:21)"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에 대한 응답은 벌써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일어난다는 사실이다(단9:23).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다내:23)" 셋째, 기도의 응답은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룰 수 있는 천사들이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단9:21).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라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단9:21)" 넷째, 마지막으로 악의 영들에 의하여 기도응답이 혹 지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단9:21).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에 내렸으므로(단9:23)",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단9:21)" 그렇지만 다니엘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 두시는 천사장 가브리엘을 통하여 응답받게 하였던 것이다. 

 

6. 나오며

  성도라면 누구나 기도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응답받는 기도 내지는 기도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응답을 가져오는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러한 기도를 드렸다. 그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법을 이미 터득한 채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날마다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는 것을 통해 내공이 쌓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는 첫째, 간구하는 기도를 드리기 전에 회개 기도를 먼저 드림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가라앉게 하는 기도를 드렸다. 납짝 엎드리는 기도를 먼저 드린 것이다. 또한 합당한 자세까지 취했다. 그는 베옷을 입었고 재를 덮어쓰며 금식하면서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에 그는 비로소 간구하는 기도를 조심스럽게 하나님께 드렸다. 둘째, 그의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주기를 위한 기도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어지도록 기도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 이스라엘 민족과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까지 다 보여주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기도는 어떠한가? 과연 이기적인 자신의 욕망만을 드러내는 기도인가 아니면 이타적인 중보기도인가? 나만을 위한 기도인가 아니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기도인가? 시늉만 하는 기도인가 아니면 간절한 기도인가? 몇 번만 하고 끝내려는 기도인가 아니면 응답받을 때까지 드리는 끈질긴 기도인가? 악한 영들을 뚫고 올라가는 기도인가 아니면 올라가다가 땅에 떨어지는 기도인가?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기도의 자세와 방법과 태도를 돌아보고 응답받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다. 

 

2020년 06월 03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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