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1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 스물네번째주일) | ||||
[제 목] 로마서강해(06) 누가 참된 유대인인가? | [찬 송] | 찬 428장 내 영혼에 햇빛비치니 찬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찬 459장 누가 주를 따라 | ||
[말 씀] 롬2:17~3:8(신약 242면) | [키워드] | 유대인의 교만과 우월감, 유대인의 나음, 실천적인 믿음, 이면적 유대인, 하나님의 공의, 유대인들의 궤변 |
1. 서론
로마서는 A.D.57년경 사도바울이 제3차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3개월간 머물 때에 쓴 편지다. 로마서는 편지구조상 3부분으로 되어 있다. 편지의 첫인사말에 해당하는 도입부(1:1~17)가 있고, 본론부(1:18~15:13)와 편지의 끝인사에 해당하는 종결부(15:14~16:17)가 있다.
본론은 다시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1:18~8:39부분으로, 기독교 구원론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이신득의의 필요성과 원리와 그 결과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9:1~11:36부분으로, 선민의 역사 가운데서 확인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섭리를 통해서 보여지는 이신득의의 진리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12:1~15:13부분으로서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 자의 바른 생활에 대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특히 롬1:18~3:20까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타락상과 이신득의의 은혜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중에서 롬1:18~32에서 사도바울은 타락한 이방인들의 범죄의 실상과 더불어 그로 인한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에 대해 논증하였다. 이어지는 롬2:1~5의 말씀은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롬2:6~16의 말씀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불문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인 보편성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다루게 될 롬2::17~29절에서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구약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교만과 위선 및 표면적 유대인의 무익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롬3:1~8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한 통렬한 지적에 따라 예상되는 유대인들의 의문과 궤변에 대해 설파한다.
2. 구약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교만과 위선 및 표면적 유대인의 무익성(롬2:17~29)
1)본문내용(롬 2:17~29)
첫째,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교만과 우월감 지적(17~20절)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과 선한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다. 또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진리가 구체화된 율법을 가진 자로서 이방인들에게 대해 소경의 인도자,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 어리석은 자의 지도자, 어린 아이의 선생 등과 같은 지위를 가졌다고 자처하고 있었다.
둘째, 율법을 지키지 않는 유대인들의 실제 모습을 고발함(21~24절)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는 위선과 모순을 범하고 있었다. 그 구체적인 실례로 남에게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가르치면서도 정작 자신은 도적질하고 간음을 행하고 있었다. 또 율법의 가르침을 따라 우상을 가증이 여기면서도 이방신전의 물건을 훔치는 모순을 범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사52:5의 말씀을 인용하여,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이 실제로는 율법을 범함으로써 오히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셋째, 형식적 할례와 율법을 소유한 표면적 유대인의 무익성 강조(25~29절)
유대인들이 율법을 행한다면 할례가 유익하겠지만 율법을 어긴다면 할례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선언한다. 만일 무할례자들인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킨다면 그들이 할례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간주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더 나아가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유대인들을 도리어 판단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표면적 유대인과 할례는 진정한 유대인과 할례가 아닌 것을 선언한다. 즉 내면적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며 참된 할례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하는 것이지 법조문에 따라 육체에 행하는 것이 아님을 선언한다. 더불어 내면적 유대인에게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을 선언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율법을 주신 목적은 생각하지 않은 채 율법을 소유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18절)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율법을 통해서 첫째,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는 것이고(롬3:20), 둘째, 그래서 율법이 죄인인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게 하는 데에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였으되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오직 율법자체만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으며, 또 그것을 배워서 안다는 사실을 의의 기준과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의롭게 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선민의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6살경부터 부모의 무릎에서 율법을 읽고 암송하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말씀과 매우 친숙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다고 자만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들의 문제는 율법을 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만족하고서, 지켜 준행해야 할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을 율법의 문자적인 지식에 대해서는 뛰어났을른지 모르나 정작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진정 율법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했더라면 그들은 모세가 예언한 그리스도(신18:15~18)을 거부하거나 배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반대로 행했다.
둘째, 성도는 자신의 역할과 지위를 혼돈해서는 아니 된다(17~24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따르는 자신들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구원받고 자신 외에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구원으로부터 제외되었다는 아주 엉뚱한 오해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오해는 역할과 지위의 혼돈에서 기인한다. 이스라엘의 역할은 이방나라에게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이방민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여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도록 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이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선민으로서 역할을 지위로 오해했다. 그러므로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를 전혀 이루어드릴 수가 없었고, 나아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치명적인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은 유대인들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미 구원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인 양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자연스럽게 형식적으로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구원의 문제가 다 해결된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진실된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철저히 살아야 할 필요성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들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지위로 혼돈하여 큰 역할을 맡은 사람일수록 군림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애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도의 역할은 사라지고 지위만 남는다면 섬김은 사라지고 높아지려는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셋째, 명예스러운 이름은 아름다우나 따르는 책임이 무겁다(17절)
유대인이란 이름은 자존심과 명예를 가지고 있는 자랑스런 이름이다. 왜냐하면 유대인이라 불리는 남쪽의 2지파는 북쪽의 10지파처럼 혼혈민족이 되지도 않았고 비록 포로로 잡혀가 살았더라도 끝까지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며 음식을 가려먹는 등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자들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그들을 명예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의 명예스러운 이름만을 드러내며 현재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감당하지 못했다.
넷째, 성도들은 영광받아야 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해서는 아니 된다(23~24절)
유대인들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기에 하나님을 대신하며 하나님을 대표하는 민족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오히려 율법을 어김으로 그들의 하나님의 영광에 모욕을 끼치고 모독을 하고 있었다.
성도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의 영광만을 구하려 생각없이 행동할 때에는 반드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모욕과 모독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신하거나 대표하는 자일수록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한다.
다섯째, 내실이 없는 종교는 백해무익하다(25절)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할례받은 자신들을 바라볼 때, 여전히 자신은 언약 백성이요 의로운 백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율법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자 그들은 종교의식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의로움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와 분향, 절기와 대회 등을 철저히 지키려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종교의식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신의 의로움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의식은 화려했다. 특히 바리새인들의 옷은 화려했다. 그러나 형식에 희망을 두는 것은 미신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자신들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점차 얼굴이 두꺼운 백성, 교만한 백성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섯째, 오직 말씀의 실행만이 성도가 지닌 모든 기득권적 선점을 보호할 수 있다(26~27절)
사도바울은 말한다. 무할례자라도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할례자가 여김을 받을 수 있으며, 나중에 심판 때에는 율법의 조문과 할례만을 주장하는 유대인들을 오히려 심판할 것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아무리 좋은 직분을 가지고 있어도 즉 먼저 믿었고 오래 믿었어도 그 사실 자체만으로 그들이 가진 기득권이나 구원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믿고 오래 믿은 것을 존중받으려면 우리는 자리나 연륜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실천이 뒤따라아야 하는 것이다.
일곱째, 하나님께 속하게 하는 진정한 할례는 마음 가죽을 베는 것이다(28~29절)
사도바울은 살가죽에 할례를 받았다고해서 그것이 할례받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할례란 몸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가죽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렘4:4).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형식적으로 제물을 드린 것이 그 사람의 죄를 사함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마음을 찟는 회개 즉 통회자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듯이, 할례도 살가죽만을 베어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할례는 마음가죽을 베어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아브라함이 행한 할례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육체를 따라가다가 하나님 자신을 놓치고 하나님의 뜻과 역행되는 일을 하게 되었음에 대한 회개의 표시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통회자복하는 마음이 없는 할례의식은 무익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3. 예상되는 유대인들의 의문과 궤변에 대한 설파(롬3:1~8)
1)본문내용(롬 3:1~8)
첫째, 유대인들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첫 번째 질문을 제시하고 답변함(1~2절)
바울은 그렇다면 유대인이 되었다는 것 혹은 할례받은 것의 유익이 무엇이냐고 유대인들이 질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문을 제시한다. 그 답은 여러 측면에서 먼저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을 가졌다고 말한다.
둘째, 예상되는 두 번째 질문을 제시하고 답변함(3~4절)
일부 유대인들의 불신앙이 전체 이스라엘과의 언약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하겠느냐고 유대인들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두 번째 질문을 제시한다. 그 답은 결코 그럴 수 없으며 사람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참되시다고 답변한다. 그리고 시편51:4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의 의로움과 판단의 정당함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결코 약속을 변개하지 않으실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유대인들의 궤변들을 제시하고 설파함(5~8절)
‘우리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한다면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시다’고 말하려는 유대인들의 궤변을 예상하며 제시한다. 이러한 궤변에 대해 사도바울은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고 단언하며, 만일 그렇다면 어찌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심지어 ‘나의 거짓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욱 드러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으로 정죄를 받겠느냐’고 하는 예상되는 궤변을 제시한다. 혹은 ‘선을 이루기 위해서 악을 행하자’고 하는 극단적인 궤변을 예시하며, 오히려 어떤 이들은 이런 궤변을 바울 일행이 주장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러나 이러한 유대 궤변론자들은 정죄받아 마땅하다고 단호히 선언한다.
2)영적 교훈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은 최고의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1~2절)
할례받은 유대인의 나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롬9:4~5에 보면, 유대인들의 나음의 항목이 더 나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에 점성술이나 마술 또는 새나 짐승 등을 통해서 신의 뜻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것들을 통해서는 희미하게나마 그 뜻을 파악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명백하고도 선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은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아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왜 그것이 특권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달을 수 있고, 보내실 메시야를 믿어 구원얻을 수 있는 기회가 먼저 주어지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어느 민족보다도 먼저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이 선택하셨던 유대인들 가운데 상당수 유대인들의 불신앙이 전체 이스라엘과 언약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3~4절)
일부 유대인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맺은 약속은 여전히 파기되지 않고 유효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기 때문이다. 유대인들 중에 다수가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하고 거부하였다고 하여 유대인들을 통하여 주어진 바 하나님의 약속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이란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참되신 분이므로 그분의 말씀은 항구적이며 불변한 것이다.
셋째, 유대인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나게 한다 할지라도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시다(5~6절)
유대인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로움을 드러나게 한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한 유대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대상이 누구이든지 자신의 불의에 대해서 보응을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예를 들어 가룟유다의 배신이 역으로 예수께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잘 했다고 그의 행위를 눈감아주고 그의 허물을 사해주실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더욱 드러나게 했다고 해서 불의를 행한 그들에게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시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불의를 행한 그들에게 형벌이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을 불문하고 공의로서 심판하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죄인인 인간은 멸망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넷째, 그것이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악행은 그 어떤 것이라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7절)
인간의 거짓이 하나님의 참되심을 더욱 드러나게 하였으니 인간의 범죄를 정죄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어떤 죄도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신다. 거짓말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주장 자체가 궤변인 것이다.
다섯째, 누군가가 선이 더 드러나게 하기 위해 악을 행한다고 해서 그 악을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8절)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일체의 악을 용납하지 않으시므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의 악함을 회개하기는커녕 도리어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을 찾고자 하였다. 이와같이 논리적 추론으로 악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도덕폐기론이라고 한다. 악에는 형벌이 따를 뿐이니 그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냈다고 칭찬받을 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로마서 2:17~3:8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누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인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율법을 소유했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은 한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율법을 맡은 자의 역할을 지위로 혼돈하게 되면 구원에 혼돈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할례받은 언약백성이라도 그것을 지키지 않은 채 종교의식과 같은 형식적인 것으로 자신들의 의로움을 찾으려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받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혈통적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특권이 있었지만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사람이 불의를 행함으로 비록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하면 여전히 심판을 받으며, 진노를 받으며 또한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자신의 역할을 자신의 지위와 혼돈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외적인 종교의식을 통해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을 시도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할례는 마음에 받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궤변을 버리고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실천적인 믿음을 우습게 여기도록 미혹했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형식과 의식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조장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할례는 마음에 받을지어다. 듣는 자가 아니라 실천하는 자가 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듣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을 실천하는 자로구나.
2. 역할을 지위로 혼돈하면서 구원에 혼돈이 생기는 거로구나.
3. 외적인 종교의식이 사람을 의롭게 만들지는 못하는구나.
4. 표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될 수 있구나.
5. 지위를 누리려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수행하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결국 망하고 말았구나.
6.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