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3월 15일(수) 수요기도회설교(사순절둘째주일) | ||||
[제목] 이사야강해(39) 히스기야왕의 실수 | [찬 송] | 찬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찬 405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찬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찬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 ||
[말씀] 사38:1~22(구약 1012면) | [키워드] | 히스기야의 실수, 히스기야왕의 불신앙과 교만, 겸손의 필요 |
1. 서론
이사야서는 선민과 그 선민 중의 남은 자를 중심으로 전개될 심판과 구원에 대한 경고와 약속 및 종말론적 구원의 궁극적인 도래에 대한 다중 교차 예언이 주제이다.
이사야서의 내용은 심판예언(1~35장)과 성취(36~39장) 그리고 회복예언(40~66장)으로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야서는 일종의 삽입단락격인 36~39장(4장)사이의 제2부를 전후로 해서 총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제1~35장까지로서 중요주제는 ‘심판’이며, 제2부는 36~39장까지로서 ‘성취’이며, 제3부는 40~66장까지로서 중요주제는 ‘회복’과 ‘구원’이다. 중간의 삽입단락을 제외하고는 이사야서는 3대 기본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째, 선민과 열방의 범죄에 대한 심판, 둘째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남은 자들을 통해 이루어질 선민의 회복과 구원, 셋째는 세상 끝날의 여호와의 심판과 구원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실현(전체)이 그것이다.
제1부(1~35장)는 이사야활동 중에서도 전반부인 B.C.740~701년경 사이 곧 앗수르 제국이 근동 지역에서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때를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리고 중간삽입단락인 제2부(36~39장)에서는 B.C.701년 앗수르의 유다침공사건 전후에 발생한 남유다 제13대왕 히스기야시대(B.C.716~687)의 3대 역사적인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36~37장은 앗수르로부터의 유다구원 예언의 성취사건을 보도하고 있고, 제38장은 히스기야의 생명이 15년이 연장되는 큰 기적을 보도하고 있으며, 제39장은 교만해진 히스기야의 실수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 예언되고 있다. 그리하여 제2부는 제3부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 제3부(40~66장)은 남유다가 이미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한 B.C.586년 이후의 일들을 예언하고 있다. 곧 바벨론의 포로시대와 B.C.537년 이후의 포로귀환시대를 배경으로 미래적인 예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제1부는 예루살렘 멸망과 바벨론 포로라는 이스라엘 민족 최대의 결정적 심판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심판의 측면이 보다 더 많은 분량으로 조명되고 있고, 제3부에서는 이미 그 같은 대심판이 이루어진 후의 회복과 은혜의 측면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할애되고 있다고 하겠다.
본서는 제1부는 1~35장, 제2부 36~39장, 제3부 40~6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3부 중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구속과 회복약속을 보도고 있는 사49~57장까지의 연속기사 중 52:13~53:12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의지한 선지자의 선민을 향한 삼중 각성촉구를 보도하고 있는 51:17~52:12에 이어, 본서에 수록된 총 4편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유명한 마지막 네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비단 여호와의 종의 수난만을 예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의 종의 대속 수난 뒤의 승귀를 강조한다. 그래서 슬픔이나 절망보다는 승리와 환희 감격을 갖게 한다.
웃시야에서 히스기야왕에 이르는 선민에 대한 심판경고와 회복약속 및 열방에 대한 역사적인 심판을 종말론적 구원예언과 관련하여 예언하고 있는 본서 제1부(1:1~35:10)는 총 4단락(1~12장, 13~23장, 24~27장, 28~35장)으로 되어 있다. 이중 먼저 제1단락(1:2~12:8)은 여호와를 배반한 선민의 자손 유다를 향한 심판과 회복 예언을 다룬다. 또한 제2단락(13~23장)은 선민의 자손 유다와 10대 열방을 향한 심판예언을 다룬다. 그리고 제3단락(24~27장)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불리는 부분으로, 여호와의 종말론적 심판과 메시야의 왕국의 승리에 대한 선포를 통하여 13~23장에서 언급한 역사의 진행 중에 나타날 여호와의 철저한 공의의 심판원리가 역사가 최종 종결되는 날에 이 세상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적용될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예언은 심판을 받는 자들의 비참함과 영광스러운 메시야의 왕국에서 누릴 선민의 복락의 대조를 통하여 인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제4단락(28~35장)이 나온다.
B.C.8세기의 시대적인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 본서는 내용상 구조적으로 ①하나님의 택하신 나라인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는 전반부(1~39장)와 ②하나님의 구원과 위로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는 후반부(40~66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좀 더 구분하면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1~12장), 만국의 심판(13~27장), 재앙과 복의 선언(28~35장), 역사적인 서술(36~39장), 이스라엘의 구원(40~48장), 여호와의 종(49~57장), 예루살렘의 영광(58~66장)으로 나눌 수 있다.
제2부 이사야 제36~39장은 제1부(1~35장)과 제3부(40~66장) 사이의 일종의 중간삽입기사로서 B.C.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의 유대침공사건 전후에 발생한 남유다 제13대왕 히스기야시대(B.C.725~697)의 3대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소개다. 그중 제36~37장은 그 첫 번째로서 제1부에 에언된 내용 중 당시로는 가장 초미의 관심상쳤던 앗수르로부터의 구원예언의 성취사건을 보도고 있다. 즉 앗수르의 유다침공과 예루살렘 포위로부터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역사로 말밈암아 극적으로 구원받은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이사야 36장과 37장은 B.C.701년 앗수르의 산헤립의 1차침공에 이어, 2년뒤에 있었던 산헤립왕의 2차침공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앗수르의 유다침공과 예루살렘포위로부터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구원받을 것임을 보도한다. 특히 사37:14~20에서는 산헤립의 2차항복요구를 받은 히스기야의 신앙고백적인 기도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다. 사37:21~35에서는 히스기야의 신앙고백적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서 당신 앞에 기고만장하여 온갖 모독적인 언사를 내뱉는 산헤립의 패퇴와 예루살렘의 구원에 대하여 약속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사37:36~38에서는 히스기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사실로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로 말미암아 산헤립이 패퇴해 퇴각하고 시해당한 것을 보도한다.
이어서 이사야 38장은 두 번째 사건으로 죽을 병에 걸렸던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믿음과 기도로 치유함을 받고 그 생명을 15년이나 연장받은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이 사건은 산헤립의 유다침공과 패퇴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제36~37장에 이어 나오기 때문에 연대기적으로 보면 제36~37장보다 후대에 일어난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그 반대다. 왜냐하면 6절에서 “너와 이 성을 앗수르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성을 보호하리라”거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사야 38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인 1~8절은 임종에 처한 히스기야의 회복간구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으며, 후반부 9~22절은 생명연장의 축복을 받은 히스기야의 감사찬양을 보도하고 있다.
이어지는 39장은 히스기야에게 일어난 세 번째 사건보도다. 이것은 38장의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사건으로, 히스기야의 치유를 축하하기 위한 바벨론의 사절단의 방문과 그에 즈음한 히스기야왕의 실수와 그로 말미암은 유다의 멸망경고에 대하여 보도한다.
히스기야는 반앗수르 정책을 취하고 있는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의 서신을 통해 동맹제의를 받는다. 그때 히스기야는 남유다의 재력과 군사력의 다 보여줌으로 얼마나 남유다가 동맹을 맺을만한 국가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그가 하나님보다 군사력을 더 의지하려는 불신앙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요, 자기자신을 자랑하려는 교만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히스기야의 불신앙과 교만 때문에 남유다는 그들의 의지하려 했던 바벨론에 의해 오히려 아끼는 소중한 보물들을 다 빼앗기게 되며, 히스기야의 자손이 바벨론의 환관이 되는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을 경고받는다. 이에 자신의 죄를 알게 된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심판에 수긍한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시대에는 그러한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에 감사를 표한다. 이상을 통해 우리는 그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바벨론 축하 사절단의 방문과 히스기야의 실수(사39:1~8, 병행문단 왕하20:12~19, 대하 32:24~31)
1)본문내용(사39:1~8)
첫째, 바벨론의 히스기야 쾌유 축하 사절단 파견(1절)
그때에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왕이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히스기야에게 글과 예물을 보낸다.
둘째, 인간적 책략과 과시욕에서 기인한 히스기야의 국가 기밀 유출의 실수(2절)
히스기야가 사절다능로 말미암아 기뻐하다가 그들에게 보물창고 즉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아울러 모든 무기고 있는 것을 다 보여 주게 된다. 이로 인해 궁중의 모든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그들에게 다 보여주게 된다.
셋째, 이사야의 히스기야를 향한 여호와의 징계 예언 선포(3~7절)
히스기야의 우생을 각성시키기 위한 이사야와 히스기야 사이에 질의 응답이 이어잔다.
그때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묻는다. ‘그 사람들의 무슨 말을 했으며, 어디서 왕에게 나왔나이까?’ 그러자 히스기야는 ‘그들이 원방 곧 바벨론에서 내게로 왔나이다’고 했다. 그러자 이사야가 ‘그들이 왕의 궁전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하니 히스기야는 ‘그들이 내 궁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았나이다. 내 창고에 있는 것 중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했다.
그러자 이사야는 히스기야에게 여호와의 징계를 전달한다. 즉 이사야는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시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조상들이 오늘까지 쌓아둔 모든 것이 다 바벨론의 옮긴 바 될 것이다. 그래서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고 “네게서 태어날 자손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하였다.
이에 히스기야는 이렇게 반응한다. “당신이 말한 여호와의 말씀은 바람직하나이다.” 그리고 또 말하기를 “내 생전에는 평안과 견고함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2)영적교훈
첫째, 인간은 누구도 완전할 수 없다(1~8절)
히스기야왕은 통일왕국과 남북왕조의 3대왕 중의 하나다. 통일2대 다윗왕, 남유다 13대 히스기야왕, 남유다 16대 요시야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스기야왕도 실수했다. 그에게도 불신앙적인 요소가 있었고, 교만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 뿐이겠는가? 가장 완벽한 왕으로 추앙받는 다윗왕도 한 때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의 중년에 간음죄와 살인교사죄와 탐심죄를 범했기 때문이요, 그의 말년에 군사력을 의지했기 때문이다(삼하24:1~10). 그로 인하여 얼마나 힘들었으며 어떤 징계를 받았는가? 자신의 아들 압살롬에 의해 자신의 후궁들이 성적 유린을 당해야했고, 아들 4명이 죽어야했다. 밧세바가 간음 중에 낳았던 아기가 죽었고, 첫째아들 암논이 죽었고, 셋째아들 압살롬이 죽었으며, 넷째아들 아도니야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 온역(전염병)으로 인해 칠만명의 백성이 죽어야 했다(삼하24:15). 한 나라의 왕의 잘못은 국가적인 어려움과 환난을 초래하게 한다.
둘째, 근신하고 깨어있지 아니하면 사탄은 우리를 언제든지 넘어뜨릴 수 있다(1절)
그때는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생명을 15년간이나 더 연장받을 때였다. 하지만 그가 쾌유하자 바벨론의 므로닥발라단 왕이 그에게 축하사절단을 보낸다. 한 나라의 왕이 중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이웃 나라에게 사신을 보내 축하하며 예물을 보내는 것은 관례요 예의였다. 하지만 므로닥발라단의 관심은 유다와 군사적 동맹을 맺어 앗수르에 대항하고자 함이었다. 이에 사절단을 받은 히스기야왕은 바벨론과 군사적인 동맹을 맺고 자신의 보물 창고와 군사무기창고를 열어 그곳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행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첫째,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그 순간을 자기를 자랑하는 데에 쓰고 말았다. 한 마디로 교만해서 자기를 높이려고 했던 것이다. 교만의 죄를 범한 것이다. 둘째, 히스기야는 전능자인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에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불신앙의 죄를 범한 것이다.
그렇다. 근신하고 깨어있지 아니하면 성도들은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리고 만다. 사탄의 유혹은 강력하고도 집요하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들어온다. 한 순간도 방심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평가에 마음을 기울이라(2절).
히스기야는 자기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사절단을 보내온 바벨론의 행동에 매우 기뻤다. 그러다가 자기자랑을 하고만다. 그는 그 순간만큼은 사람의 평가를 중요시했던 것이다. 바벨론이 자신을 높이 평가해준 것에 대해 우쭐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자 모든 보물과 무기들을 다 보여주었다. 결국 그것을 본 바벨론은 처음에는 동맹국이 되었지만 나중에는 그 보물이 탐이 나서 남유다를 침공해서 멸망시켜버린다.
넷째, 성도는 오직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하며, 하나님만 자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2절).
히스기야는 바벨론 사절단에게 재정과 군사를 다 보여주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그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기도처요, 아하스의 일영표를 통해 하나님을 자랑하고 소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보화와 자신의 군사력을 상징하는 무기고를 보여주었다.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했던 히스기야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느부갓네살이나 헤롯도 이방인이었지만 자기 영광 자랑하다가, 미치광이기 되었으며(단4:28~33), 벌레가 먹어 죽고만다(행12:21~23). 우리 성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만을 자랑하자.
다섯째,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물으신다(3~4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얼하고 있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있음과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음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창3:9)”,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왕상19:9)”고 묻는다. 우리는 항상 자신의 영적 상태를 살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길로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여섯째, 참된 하나님 말씀의 대언자는 가감없이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5~7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히스기야왕의 자기자랑과 교만을 책망하셨다. 참된 선지자는 누구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어떤 사람의 눈치도 살핌이 없이 오직 받은 말씀을 가감없이 선포해야 한다. 성도들이 싫어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사랑만을 강조하고, 심판보다는 축복을 강조하고, 참된 회개보다는 근거없는 무조건적인 위로를 강조하고, 십자가를 통해 고난과 구원보다는 물질적인 축복만을 강조해서는 아니 된다.
일곱째,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은 결국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짓는 기초가 된다(6절).
히스기야왕의 어리석은 판단 하나로 인해, 그가 쌓은 모든 것은 다 하루아침에 바람처럼 날아가게 생겼다. 더욱이 그의 후손이 바벨론 나라에 끌려가 환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의 행동은 오늘과 미래를 결정한다. 신중해야 한다. 특히 왕과 같은 대표자의 신분을 가진 자의 범죄는 한 나라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좀 더 거룩하고 아름다운 것과 좀 더 성결하고 덕스러운 것으로 가꾸어 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여덟째, 세상을 의지하고 그것을 서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넘어질 수 있다(6~7절).
하나님의 심판은 재산에 대한 심판과 사람에 대한 심판으로 나눈다. 재산은 빼앗기고, 사람은 포로로 잡혀가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 때문에 발생한 것인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과 군사력을 의지하려 함 때문이었다. 바벨론과 동맹을 맺어 하나님 없이 바벨론의 힘으로 앗수르를 막아보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되었는가?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만 나오게 되었다.
아홉째, 하나님의 징계를 선히 받아들일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한다(8절).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질문을 받으면서 즉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3절).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처분에 대해 마땅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겸비로 인하여 당대에는 그것을 내리지 아니하고 후대에 내릴 것이라고 했다. 심판을 즉시 행하지 않고 유보하신 것이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징계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억울함을 표현하지 않고, 당연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가 범죄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무조건 낙심하고 불평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 이사야서 39:1~8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사람은 결코 완전할 수 없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내게 가장 영광스러움이 주어질 때 사탄의 공격이 가장 날카롭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누구든지 섰다 하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누구든지 깨어 근신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의 평가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해야 하는지를 귀 기울여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드러낼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드러낼 수 있어야 함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언제나 내 위치가 어디인지 살펴야 하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지금 나의 말과 행동이 나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징계를 선히 받아들일 때에 오히려 징계 중에서도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무슨 일이든지 주의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한 번 생각하고 말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한 번 생각하고 반응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의 평가에 귀기울이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사람을 의식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람의 평가에 우쭐대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주님만 자랑할지어다. 겸손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히스기야왕도 실수할 때가 있었구나.
2. 사람은 자기를 자랑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로구나.
3. 하나님은 보시지 않는 듯 하나 항상 중심을 보고 계시는구나.
4. 자신의 현재의 삶은 지금과 미래를 결정짓게 하는 요소로구나.
5. 자신의 잘못을 선히 받아들일 때 심판 중에도 긍휼이 주어지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