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8월 16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째주일)
[제 목] 요한계시록강해(08)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
[찬 송] 찬 520장 듣는 사람마다, 찬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찬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말 씀] 계2:18~29(신약 401면)
[키워드] 두아디라교회, 이세벨거짓선지자, 불꽃같은 눈과 빛난 주석같은 발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 우상숭배와 간음자에 대한 징계, 만국권세
1. 서론
요한계시록의 원 제목은 “아포칼륍시스 이오안누(요한의 계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도요한이다(1:1,4,9, 22:8). 그리고 이 책은 로마 제10대 황제였던 도미시안황제의 통치(A.D.81~96)의 말기이자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었던 시기인 A.D.95~96년경에 쓰여졌다. 이 책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비롯하여(1:4,11), 로마제국의 핍박 및 황제숭배를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한 A.D.1세기 말엽의 그리스도인들이 1차 수신 대상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역사적 종말론 차원에서의 교회의 환난과 승리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통한 지상역사의 종결 및 구속사의 완성 과정이다.
요한계시록은 형식상 계시(묵시)와 예언과 서신의 책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은 묵시서다. 신적 계시의 책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문학적인 상상력이나 헛된 환영의 산물이 아니다. 특별히 유대묵시문학을 닮았는데, 유대묵시문학과 다른 점은 가명(에녹, 아브라함, 에스라 등)이 아니라 저자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많은 환상과 시각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다(1:3, 22:7,10,18,.19).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되어질 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종말을 다루고 있다. 심오한 상징을 사용한다. 셋째, 서신의 책이다. 발신자(사도요한)와 수신자(초대교회 당시의 소아시아일곱교회 성도들) 및 내용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종의 회람서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내용상 위로 소망의 책이며, 완성과 결론의 책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표현들과 암시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잘 해석하려면 첫째, 과거주의적인 관점(1세기 상황)과 둘째, 미래주의적 관점(미래의 종말), 셋째, 역사주의적 관점(초대교회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역사), 넷째, 이상주의적 관점(악에 대한 선의 승리, 영적 세례의 실체, 예, 짐승은 적그리스도)으로 보아야 한다.
사도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통치 말년에 본서를 기록하였는데, 이때는 황제숭배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네로보다 더 폭군이었던 도미시안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를 것을 명하였다. 이러한 황제칙령에 의해 로마전역에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성도들은 황제가 주인지 예수님이 주인지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때 안디바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어떠한가? 크게 보면, 재림이전에 있을 환난과 심판(1~20장), 재림이후에 있을 신천신지의 도래(21~22장)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계1:19의 기준에 따라 과거(1장), 현재(2~3장), 미래(4~22장)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서신으로 볼 때에는 시작하는 말(1:1~8)과 본론부(1:9~22:5) 그리고 끝맺는 말(22:6~21)로 대별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1~22:5)로 구성되어 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4~18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3대7중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나선형순환구조로서, 환상이 연속될수록 재앙의 강도가 더해가는 특징을 지닌다. 4~5장의 하늘보좌 및 어린양의 환상은 배경이자 출발점이다. 그리고 19~22:5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백보좌심판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총 10가지다. 첫째, 신적 계시로서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둘째,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음성이 들어있다. 셋째, 인간역사의 진정한 주관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주인이다. 넷째, 천국생활의 본질이 찬양과 경배인 것을 말한다. 하늘보좌 주변에 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 천사들, 구속받은 무리들이 보좌에 계신 이 곧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다섯째, 박해와 환난에 대한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노래한다. 여기서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다. 여섯째, 세속문명에 대한 성도의 바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세상은 큰 음녀의 파멸과 순결한 여인의 복을 이야기한다. 일곱째, 인류의 원수인 사탄의 최후 멸망을 보여준다. 사탄은 유황불못에 던져진다. 여덟째, 만물의 갱신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말한다. 아홉째, 고난을 이긴 성도들의 위로와 안식을 말한다. 눈물과 수고가 변하여 기쁨이 되고 수고를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열째,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서신으로 볼 때, 시작하는 말과 본론부와 끝맺는 말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1~22:5)로 구분해볼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제 있는 일(계2~3장)의 내용 중에서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보낸 편지였던 요한계시록은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는 일곱교회를 향해서 사도요한이 써 보낸 편지이다. 그렇다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유형은 사도요한 그때 교회만 존재하는 교회였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일곱교회의 말미에 있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후렴구들(계2:7, 11, 17, 29, 3:6, 13, 22)이 각 서신들의 내용이 특정교회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곱교회들을 향한 편지는 대체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데, ①받는 자(~교회의 사자에게) ②쓰라는 명령 ③보내는 자(예수님의 자아와 명칭) ④칭찬과 격려 ⑤책망(회개)과 경고 ⑥성령의 촉구(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⑦약속(이기는 자들)으로 되어있지만 각 수신교회에 따라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없이 칭찬만 있는 교회이며,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없이 책망이 있는 교회이며, 나머지 4개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는 교회들이다.
그리스도의 칭찬 및 책망의 내용에 따라 일곱 교회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인내로서 정통신앙을 유지하며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열매들도 있었으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즉 교리나 행위에 있어서 바르고 성숙한 교회였으나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와 성도간의 교제 면에서 소원해져버린 교회였던 것이다.
둘째,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이라는 힘든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여 칭찬을 듣는 교회였다.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의 때에 순교자를 배출하기까지 하는 등 귀한 영적 유산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으나 일부 교인들이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름으로서 세속화될 위기를 맞고 있는 교회였다.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은 교회였지만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선지자를 용납한 교회였다. 즐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장을 거듭하는 교회였지만, 이단을 용납하고 타협함으로서 진리를 훼손시키는 교회였다.
다섯째, 사데교회는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대조되는 교회로서, 즉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주님에게는 ‘죽은 교회’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은 교회인 것읻. 한 마디로 사데교회는 인본주의적인 교회였던 것이다.
여섯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킨 교회 즉 교회의 외적인 규모나 힘은 미약했지만 그 믿음은 진실하여 교회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한 교회였던 것이다.
일곱째, 라오디게아교회는 한 마디로 미지근한 교회였다. 즉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아무런 환난도 없으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앙적으로 열의를 상실하고 영적인 곤고와 헐벗음에 처한 교회였던 것이다.
이상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사도요한 당시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이들 교회는 모든 시대에 다양한 유형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들이다. 즉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대상으로 한 편지의 내용은 바로 오늘날 각 유형의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한편,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주제와 교회의 역사적인 시대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거짓이단적 교리를 분별하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서, 기독교초기시대의 교회(주후1세기교회)를 가리킨다(A.D.65~95).
둘째, 서머나교회는 죽기까지 신앙을 지킨 교회 즉 유대인들과 로마에 의해 핍박을 받는 교회로서, 로마 박해시대의 교회(순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95~313).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을 면하기 위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인 교회, 곧 타협하는 교회로서 로마국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313~590)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영적지도자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인정하고 사는 교회, 중세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590~1517).
다섯째,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들과 똑같이 사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1517~1700)
여섯째, 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보존하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의 잘못된 것에서 다시 원래의 초기교회의 신앙으로 회복하는 교회를 가리킨다(A.D.1700~1900)
일곱째,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뜨뜻 미지근한 교회로서, 말세의 교회를 가리킨다(A.D.1900~주님 재림전).
2.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네 번째 편지(계2:18~29)
1)본문내용(계2:18~29)
첫째, 네 번째 편지의 수신자와 송신자(18절)
네 번째 수신자로서 두아디라 교회가 거명된다. 송신자는 그리스도는 그의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로 소개된다.
둘째,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19절)
두아디라 교회의 사역들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모두 아신다고 하신다. 두아디라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더 나은 교회라고 칭찬하신다.
셋째,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책망과 경고(20~23절)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거짓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신다. 이세벨이 주의 종들을 유혹하여 행음과 우상제물을 먹는 죄에 빠지게 한다고 지적하신다. 주께서 거짓 여선지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코자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거짓 여선지자에게 침상에 던져지는 심판을 내릴 것이며 이세벨과 간음한 자들 역시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또한 거짓 여선지자의 자녀들을 죽이실 것이며, 이로써 모든 교회가 주께서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께서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실 것임을 천명하신다.
넷째, 두아디라 교회의 선한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격려와 권면(24~25절)
그러나 두아디라 교회에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지 않은 자들 곧 사단의 은밀한 유혹에 빠지지 않는 자들이 있으며, 그들에게는 달리 지적할 것이 없음을 밝히신다. 다만 그들이 주의 재림 때까지 가지고 있는 바 정결한 믿음을 끝까지 지킬 것을 권면하신다.
다섯째, 모든 교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약속 및 성령의 말씀 청종 촉구(26~29절)
이기는 자 곧 끝까지 주의 뜻을 따라 행하는 자에게는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러한 성도는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 철장 권세로서 만국을 다스리게 될 것임을 밝히신다. 또한 이기는 성도들에게는 새벽 별 곧 주님 자신이 받았던 영광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말씀에 청종할 것을 촉구하신다.
2)본문이해
가. 두아디라와 두아디라 교회
두아디라 도시는 지정학적으로 버가모에서 동남쪽으로 약 6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다. 이전에는 펠로피아, 유힙피아로 불리다가 오늘날에는 아킷사르(Akhissar)로 불린다. 이곳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한 후에 B.C. 약280년경 셀류커스 니카토르에 의해 군사적 요충지로 건립되어 두아디라라고 명명되었다.
B.C.190년에 로마군의 침공으로 점령되어 로마에 복속되었다. 이곳은 카이쿠스 계곡과 허마스 계곡 사이에 자리한 지정학적인 조건으로 무역이 번창하였고, 많은 무역상인들이 거주했다. 이곳에는 털실 제조업자, 아마포 제조업자, 외투 제조업자, 염색공, 제혁업자, 옹기장이, 빵 제조업자, 노예 판매상 그리고 청동 제조업자들이 많이 살았다. 이곳에 유명한 염색공장 지대였다는 것은 행16:14에 자주장사 루디아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녀는 여기서 건너편 빌립보로 이주한 여자였던 것 같다.
이 도시 역시 당시 소아시아에서 대부분 도시가 그러했듯이 우상숭배가 난무하던 곳이었다. 먼저는 이 도시의 수호신은 시나 음악, 예언이나 의술을 주관하는 신으로 추앙받던 태양신 아폴로였는데, 마케도니아어로는 티림노스(Tyrimnos)라고 불렸다. 이 신은 각종 제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들의 수호신으로 간주되어 티림노스 숭배 축제에서 그들의 상당한 존중을 받았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아폴로 신전 외에도 아르테미스 신전, 삼바타 신전, 헬리오스 신전 등이 우후죽순격으로 건립되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 가운데 상당수의 신들의 신전이 있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황제숭배의 흔적들은 남아 있지 않다.
한편, 이곳에 두아디라 교회가 언제 어떻게 개척되었는지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바울이 에베소에 약3년동안 체류할 때에 이곳을 순회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행19:26). 그러나 이 교회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허용하는 가르침을 전파하는 여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성도들이 이 여자의 가르침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래야 ‘길드’라는 상업조직에 들어가서 장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세벨이 잘못된 가르침을 베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3단계로 징계를 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에는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참된 성도들도 있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라고 권면하셨다. 그러면 주님이 오시는 날 철장권세로 만국을 칠 것이고, 새벽별과 같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특히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다른 어떤 교회에게 주신 말씀보다 분량이 많으며, 또한 장차가 아니라, 그 당시 현재 그 교회에게 징계를 내리고 있는 분이신 것을 현장감있게 소개하고 있다.
나. 버가모 교회(직역강해)
(18절) 그리고 두아디라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단번에] 쓰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마치 불꽃같은 그의 눈들을 [현재] 갖고 계신 이가 그리고 그의 발들은 빛난 주석과 유사하다(비슷하다).
예수님은 이 교회에게 자신을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신다. 이것은 자신이 본래는 하나님이시지만 아들의 신분으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말씀하시면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분이심을 언급하신다. 하지만 그분은 이제 부활승천후 두아디라교회에게는 2가지 속성을 가지신 이로 말씀하신다. 하나는 신적인 통찰력으로 모든 것을 아시는 분 곧 전지하신 분으로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이 가진 철장권세로 행위대로 엄위하게 심판하시는 분 곧 심판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이 교회에 숨어있는 사탄의 깊은 것을 다 알고 계시는 분이심과 동시에 이 교회가 우상숭배를 이기게 되면 만국을 심판하는 자로서 하늘의 영광을 얻는 자로서 참여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19절) 나는 너의 그 일들을 알아온 채 있다. 그리고 그 사랑과 그리고 그 섬김과 그리고 그 믿음을 그리고 너의 그 인내를 그리고 너의 그 일들을 그리고 마지막의 것들(행위들)이 처음의 것들(행위들)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주님께서는 신적 통찰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이미 두아디라교회의 상황을 다 꿰뚫고 있었다. 두아디라교회는 칭찬받을 만한 것이 훨씬 많았고 꾸중들을 일은 적었다. 특히 그들은 에베소교회와는 반대로 마지막의 행위들(사랑, 섬김, 믿음, 인내)이 처음의 것들보다 더 풍성한 교회였다. 이는 에베소교회가 처음사랑을 버리고 정통신앙을 고수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두아디라교회는 처음사랑은 유지하고 더 풍성했으나 정통신앙을 버린 교회였다.
(20절) 그러나 내가 네게 대항하여 작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는 네가, 스스로가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는 여인 이세벨을 [계속해서] 내버려두고 있는(용납하고 있는,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계속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 종들에게 [단번에] 음행하도록 그리고 (그녀가 내 종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단번에] 먹도록 [계속해서] 꾀고(미혹하고, 길을 잃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는 작지만 아주 중요한 책망받을 것이 있었다. 그것은 자칭 선지자라 주장하는 한 여인 이세벨을 계속해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길드상업조합에 참여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하는 일들은 죄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은 구약시대 시돈 왕의 딸로서 북이스라엘의 제7대왕이었던 아합(B.C.874~853)의 왕비였던 여자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다. 구약시대 이세벨은 이스라엘에 우상바알을 끌어들여 여호와 유일신앙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악녀였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참된 예언자들을 무참히 살해하였고,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핍박했다. 하지만 현재 이 여자는 우상숭배와 음행과 같은 행위를 두아디라교회에 거짓된 가르침으로 오염시키고 있었다. 특히 이 여자는 버가모교회의 주의 종들마저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여기서 “이세벨의 가르침”이란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에 침투한 니골라당의 가르침이나 버가모교회에 침투한 발람의 가르침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 여자는 교회에서 축출되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는 그녀를 용납했고 그들 역시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 범죄하고 있었다. 이는 교회가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 뿐만 아니라 진리를 사수하고자 하는 불타는 투지가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오늘날에 많은 교회들과 목사들이 이단적인 신사도와 빈야드와 같은 은사주의 운동들과 세대주의나 천주교회를 포용하거나 심지어 동성애 같은 악을 포용하고 있다. 주께서는 확실하게 그들에 대해서도 책망하실 것이다.
(21절)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으로부터 [단번에] 회개하도록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음행으로부터 [단번에] 회개하는 것을 [계속해서] 원하지 않고 있다(않았다/TR).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녀가 회개하도록 시간(크로노스)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구약시대 이세벨 왕비에게도 하나님께서 3번의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 하나는 삼년반동안 가뭄의 때였으며(왕17:1), 둘째는 바알선지자 450명과 엘리야와의 갈멜산 대결 때였으며(왕상18:38), 마지막으로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 다시 비가 내렸을 때였다(왕상18:45). 하지만 그녀는 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남편이 전쟁터에서 죽게 했으며, 70명의 자녀들마저 예후장군에게 다 살해당하도록 허락했으며, 그녀 역시 높은 망대에서 떨어뜨림을 당해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왕상21:23~29, 왕하9:33~36, 10:1~11).
(22절) 보라! 내가 그녀를 침상 안으로 [현재]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현재] 간음을 행하고 있는 자들도 만일 그들이 그녀의(그들의/TR) 행위들로부터 [지금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커다란 환난 안으로 (던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상숭배하고 난 후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을 저지르는 이세벨에게 이미 징계를 내리고 있었다. 침상(클리네)에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의 “침상”이란 “질병의 침상(심판)”(마9:2,5 막4:21,7:30, 눅5:18, 8:16, 17:34, 행5:15)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녀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있는 주의 종들 역시 장차 커다란 환난 안으로 던질 것이라고 하셨다.
(23절) 그리고 내가 그녀의 자식들을 사망 안으로 [곧] 살해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교회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콩팥(의지와 감정)과 심장(마음)을 [현재] 살피고 있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너희의 행위들을 따라 너희 각자에게 [곧] [갚아]줄 것이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이세벨의 자식들”을 살해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모든 교회가 예수님이야말로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뜻(네프루스)과 마음(카르디아)을 감찰하는 분이며(렘17:10), 빛난 주석과 같은 발로서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예수님이 곧 구약의 여호와이시다. 한편, 여기에 나오는 “이세벨의 자식들”이란 실제의 자식이 아니라 이세벨과 영적으로 야합한 그녀의 영적인 후손들이라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렘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24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리고 두아디라 안에 남아있는 [너희에게]. 그들(이세벨을 따르는 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러한 가르침을 [현재] 갖지 아니하는 만큼 그리고 사탄의 깊은 것들을 [과거에] 알지 못한 만큼. 나는 너희 위에 다른 짐을 맡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두아디라 성도들 중에는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주님은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따라가는 자들 곧 사탄의 깊은 것들을 알지 않았던 자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마도 “사탄의 깊은 것들”이란 자기들만이 알고 있다는 영지(영적인 지식)로서, 니골라당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래서 주님은 이들에게는 다른 짐을 맡기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아마도 “다른 짐”이란 예루살렘공의회가 이방인들에게 하지 말라고 결의한 사항 곧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 것(행15:20,29)을 의미하는 것 같다.
행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15: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25절) 다만 너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장차] 올 때까지 확실히 굳게 잡으라.
그러므로 신실한 성도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참된 진리를 붙잡고 있었는데 주님은 그것을 주님이 재림할 때까지 붙잡고 있으라고 권면하셨다. 이것은 그들의 행위들 곧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 뿐만 아니라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함을 의미한다.
(26절) 그리고 [현재] 이기고 있는 자와 끝까지 내 일들을 [계속해서] 지키는 자는 내가 그에게 만국 위에 [있는] 권세를 [장차] 줄 것이다.
주님은 이어서 이기는 자들과 주님의 일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2가지를 축복으로 약속하셨다. 하나는 만국 위에 있는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새벽별을 주신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만국 위에 있는 권세”란 시편2:8~9에 나오는 것으로서, 장차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철장으로 만국을 치는 권세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재림시 주님과 함께하여 만국을 치는 것을 의미한다(계12:5, 19:15).
시2:8-9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계12: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계19: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27절) 그리고 그가 [현재] 질그릇들을 깨뜨리고 있는 것처럼, 나도 [이미]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채 있는 것처럼, 그는 [지금] 쇠지팡이 안에서 그들(만국)을 다스리고 있다.
그런데 이 “철장권세”란 질그릇을 폭삭 깨뜨리는 권세로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단번에 내리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께서도 이미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권세로 통치하는 자들도 그 교회에 있었다.
이것은 장차 이기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있다고 말하는 천년왕국에서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이란 산술적인 천년동안의 왕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있었다면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에 언급하셨을 것인데 존재하지 않으며, 사도바울도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천년”이란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예수믿다가 죽은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서 주님 재림전까지 왕노릇하다가, 주님재림시 같이 동참하여 철장권세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계20장에서 보다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28절) 그리고 내가 새벽의(이른 아침에 빛나는) 별을 그에게 [장차] 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들에게 두 번째 약속을 하셨는데, 그때에는 “새벽의 빛나는 별” 곧 예수께서 부활승천후 받으신 그 영광을 그들에게도 주시겠다고 하셨다(고전15:41). 사실 예수님께서도 부활승천후에 빛나는 새벽별이 되셨다(계21:7). 영광을 얻으신 것이다.
고전15:41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29절)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단호하게] 들어라.
그러므로 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지금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듣고 즉시 순종해야 한다.
< 요한계시록 2:18~29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예수님께서는 전능한 하나님이시지만 아들로 오셔서 세상의 비진리와 치열하게 싸우셨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시는 전지하신 분이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님은 빛난 주석같은 발로서 모든 사람들을 각자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신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는 주의 종들에 대한 처음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할 뿐만 아니라, 거짓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교회에 자칭 선지자라 하나, 거짓된 가르침으로 미혹하는 이세벨과 같은 지도자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믿는 자는 우상숭배와 음행을 해도 괜찮다는 가르침은 바로 사탄의 가르침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거짓된 이세벨의 가르침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주님은 반드시 보상해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기는 자는 철장권세의 통치권과 새벽별의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사탄의 미혹에 속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거짓된 가르침을 용납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거짓된 가르침을 배척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비진리와 철저히 싸우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우상숭배와 음행에 미혹되지 않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비진리와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거짓 이세벨의 영은 떠나갈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비진리를 거부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도덕을 철저히 지킬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신적통찰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자 심판주시로구나.
2. 교회는 아직도 비진리를 가르치는 이세벨로 인해 징계와 저주가 끊이질 않구나.
3.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 때문에 질병과 커다란 환난과 사망이 임하는구나.
4. 우상숭배와 음행의 죄 때문에 나와 내 동료와 내 자식에게 징계와 저주가 임하는구나.
5. 회개할 기회를 놓쳐버리면 결국 빛난 주석같은 발로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 서야 하는구나.
6. 이기는 자에게는 철장권세의 통치권과 새벽별의 영광이 주어지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