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9월 13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넷째주일)
[제 목] 요한계시록강해(11)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주신 승천하신 주 예수님의 말씀
[찬 송]
찬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찬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찬 495장 익은 곡식 거둘 자가
[말 씀] 계3:14~22(신약 402면)
[키워드] 라오디게아교회,책망만받은교회,차든지뜨겁든지,흰옷,뜨뜻미지근한교회,안약,회개,이기는자,문밖에서계시는예수그리스도,하나님의보좌,계3장강해
1. 서론
요한계시록의 원 제목은 “아포칼륍시스 이오안누(요한의 계시)”다. 이 책의 저자는 사도요한이다(1:1,4,9, 22:8). 그리고 이 책은 로마 제10대 황제였던 도미시안황제의 통치(A.D.81~96)의 말기이자 요한이 밧모섬에 갇혀 있었던 시기인 A.D.95~96년경에 쓰여졌다. 이 책의 수신자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를 비롯하여(1:4,11), 로마제국의 핍박 및 황제숭배를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한 A.D.1세기 말엽의 그리스도인들이 1차 수신 대상이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역사적 종말론 차원에서의 교회의 환난과 승리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통한 지상역사의 종결 및 구속사의 완성 과정이다.
요한계시록은 형식상 계시(묵시)와 예언과 서신의 책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은 묵시서다. 신적 계시의 책인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문학적인 상상력이나 헛된 환영의 산물이 아니다. 특별히 유대묵시문학을 닮았는데, 유대묵시문학과 다른 점은 가명(에녹, 아브라함, 에스라 등)이 아니라 저자가 누군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으며, 많은 환상과 시각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요한계시록은 예언서다(1:3, 22:7,10,18,.19).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장차 되어질 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종말을 다루고 있다. 심오한 상징을 사용한다. 셋째, 서신의 책이다. 발신자(사도요한)와 수신자(초대교회 당시의 소아시아일곱교회 성도들) 및 내용으로 구별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일종의 회람서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내용상 위로 소망의 책이며, 완성과 결론의 책이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표현들과 암시들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잘 해석하려면 첫째, 과거주의적인 관점(1세기 상황)과 둘째, 미래주의적 관점(미래의 종말), 셋째, 역사주의적 관점(초대교회부터 종말에 이르는 전역사), 넷째, 이상주의적 관점(악에 대한 선의 승리, 영적 세례의 실체, 예, 짐승은 적그리스도)으로 보아야 한다.
사도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통치 말년에 본서를 기록하였는데, 이때는 황제숭배가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다시 말해, 네로보다 더 폭군이었던 도미시안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주와 하나님으로 부를 것을 명하였다. 이러한 황제칙령에 의해 로마전역에 황제숭배를 위한 신전이 건립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성도들은 황제가 주인지 예수님이 주인지 선택할 것을 강요받았다. 그때 안디바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어떠한가? 크게 보면, 재림이전에 있을 환난과 심판(1~20장), 재림이후에 있을 신천신지의 도래(21~22장)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계1:19의 기준에 따라 과거(1장), 현재(2~3장), 미래(4~22장)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로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서신으로 볼 때에는 시작하는 말(1:1~8)과 본론부(1:9~22:5) 그리고 끝맺는 말(22:6~21)로 대별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1~22:5)로 구성되어 있다.
종말에 대한 예언은 4~18장에 걸쳐서 나오는데, 3대7중재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연속적이라기보다는 나선형순환구조로서, 환상이 연속될수록 재앙의 강도가 더해가는 특징을 지닌다. 4~5장의 하늘보좌 및 어린양의 환상은 배경이자 출발점이다. 그리고 19~22:5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최후의 백보좌심판 및 신천신지의 도래를 기록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총 10가지다. 첫째, 신적 계시로서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둘째,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음성이 들어있다. 셋째, 인간역사의 진정한 주관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한다.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 주인이다. 넷째, 천국생활의 본질이 찬양과 경배인 것을 말한다. 하늘보좌 주변에 있는 네 생물과 24장로들, 천사들, 구속받은 무리들이 보좌에 계신 이 곧 주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것이다. 다섯째, 박해와 환난에 대한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를 노래한다. 여기서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다. 여섯째, 세속문명에 대한 성도의 바른 시각을 보여준다. 이 세상은 큰 음녀의 파멸과 순결한 여인의 복을 이야기한다. 일곱째, 인류의 원수인 사탄의 최후 멸망을 보여준다. 사탄은 유황불못에 던져진다. 여덟째, 만물의 갱신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을 말한다. 아홉째, 고난을 이긴 성도들의 위로와 안식을 말한다. 눈물과 수고가 변하여 기쁨이 되고 수고를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열째,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성도의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서신으로 볼 때, 시작하는 말과 본론부와 끝맺는 말로 구분할 수 있는데, 본론부는 본 것(1:9~20)과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1~22:5)로 구분해볼 수 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제 있는 일(계2~3장)의 내용 중에서 에베소교회와 서머나교회에게 주신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보낸 편지였던 요한계시록은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실제 존재하고 있는 일곱교회를 향해서 사도요한이 써 보낸 편지이다. 그렇다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의 유형은 사도요한 그때 교회만 존재하는 교회였을까? 아니다. 왜냐하면 일곱교회의 말미에 있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후렴구들(계2:7, 11, 17, 29, 3:6, 13, 22)이 각 서신들의 내용이 특정교회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곱교회들을 향한 편지는 대체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데, ①받는 자(~교회의 사자에게) ②쓰라는 명령 ③보내는 자(예수님의 자아와 명칭) ④칭찬과 격려 ⑤책망(회개)과 경고 ⑥성령의 촉구(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⑦약속(이기는 자들)으로 되어있지만 각 수신교회에 따라 차이가 있기도 하다.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는 책망없이 칭찬만 있는 교회이며,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없이 책망이 있는 교회이며, 나머지 4개교회는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는 교회들이다.
그리스도의 칭찬 및 책망의 내용에 따라 일곱 교회들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인내로서 정통신앙을 유지하며 외적으로 나타나는 행위의 열매들도 있었으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다. 즉 교리나 행위에 있어서 바르고 성숙한 교회였으나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와 성도간의 교제 면에서 소원해져버린 교회였던 것이다.
둘째, 서머나교회는 환난과 궁핍이라는 힘든 처지에 있었으나 영적으로 부요하여 칭찬을 듣는 교회였다.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의 때에 순교자를 배출하기까지 하는 등 귀한 영적 유산과 전통을 가지고 있는 교회였으나 일부 교인들이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름으로서 세속화될 위기를 맞고 있는 교회였다.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은 교회였지만 ‘이세벨’이라고 하는 거짓선지자를 용납한 교회였다. 즐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성장을 거듭하는 교회였지만, 이단을 용납하고 타협함으로서 진리를 훼손시키는 교회였다.
다섯째, 사데교회는 사람들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가 대조되는 교회로서, 즉 사람들에게는 ‘살아있는 교회’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주님에게는 ‘죽은 교회’라는 정반대의 평가를 받은 교회인 것이다. 한 마디로 사데교회는 인본주의적인 교회였던 것이다.
여섯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으로도 믿음을 지킨 교회 즉 교회의 외적인 규모나 힘은 미약했지만 그 믿음은 진실하여 교회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잘 감당한 교회였던 것이다.
일곱째, 라오디게아교회는 한 마디로 미지근한 교회였다. 즉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아무런 환난도 없으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신앙적으로 열의를 상실하고 영적인 곤고와 헐벗음에 처한 교회였던 것이다.
이상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는 사도요한 당시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교회였다. 하지만 이들 교회는 모든 시대에 다양한 유형의 교회들을 대표하는 교회들이다. 즉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대상으로 한 편지의 내용은 바로 오늘날 각 유형의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메시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한편, 소아시아 일곱교회를 주제와 교회의 역사적인 시대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에베소교회는 거짓이단적 교리를 분별하다가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로서, 기독교초기시대의 교회(주후1세기교회)를 가리킨다(A.D.65~95).
둘째, 서머나교회는 죽기까지 신앙을 지킨 교회 즉 유대인들과 로마에 의해 핍박을 받는 교회로서, 로마 박해시대의 교회(순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95~313).
셋째, 버가모교회는 핍박을 면하기 위해 잘못된 교리를 받아들인 교회, 곧 타협하는 교회로서 로마국교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313~590).
넷째, 두아디라교회는 영적지도자가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인정하고 사는 교회, 중세 로마카톨릭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590~1517).
다섯째,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그들과 똑같이 사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시대의 교회를 가리킨다(A.D.1517~1700).
여섯째, 작은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주의 말씀을 보존하는 교회로서, 종교개혁의 잘못된 것에서 다시 원래의 초기교회의 신앙으로 회복하는 교회를 가리킨다(A.D.1700~1900).
일곱째,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영적으로는 뜨뜻 미지근한 교회로서, 말세의 교회를 가리킨다(A.D.1900~주님 재림전).
2. 라오디게아교회의 사자에게 보내는 여섯번째 편지(계3:14~22)
1)본문내용(계 3:14~22)
첫째, 일곱 번째 편지의 수신자와 송신자(14절)
일곱 번째 편지의 수신자로서 라오디게아 교회가 거명된다. 송신자 그리스도는 아멘이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으로 소개된다.
둘째,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15~19절)
차지도 덥지도 않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위를 지적하며, 차든지 덥든지 하라고 분명한 태도를 가질 것을 촉구하신다. 만일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상태를 지속하면 입에서 통하여 내칠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스스로 부유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으나. 실상 영적으로 곤고하여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참담한 상태에 있음을 깨우치신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영적인 수치를 가지고, 안약을 사서 발라서 영적인 눈을 뜰 것을 권고하신다. 이러한 책망과 징계는 사랑에 나오는 것임을 일깨우며, 다시 열심을 내고 회개하도록 촉구하신다.
셋째, 모든 교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약속 및 성령의 말씀 청종 촉구(20~22절)
이기는 자에 대한 약속을 하신다. 당신이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밝히시며 누구든지 주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면, 주께서 그런 자와 더불어 영적인 교제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이기는 자에게는 주님 자신이 계신 보좌에 함께 앉을 수 있게 하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교회들을 향한 성령의 말씀 청종을 촉구하신다(22절)
2)본문이해
가. 라오디게아와 라오디게아교회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로부터 동남방향으로 70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도시로서 소위 자매도시로 불리는 골로새와 히에라볼리와 함께 라쿠스(Lycus)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의 이름은 라오디게아는 B.C.250년경에 안티오쿠스2세가 그의 아내 라오디케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붙힌 것이다. 이 도시는 한때 제우스를 신으로 수호신으로 섬긴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디오스폴리스’라고 명명한 적도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로아스(Rhoas)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지역은 다른 소아시아 지역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지진대에 속해 있었으므로, 잦은 지진에 시달렸다. 그러나 A.D.60년 유래없는 큰 지진에도 불구하고 로마황제의 도움을 거절하고 자력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할 정도로, 대단한 재력을 보유한 도시였다. 이들의 부는 에베소로부터 동방으로 통하는 무역로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이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특히 로마의 키케로의 재산을 예치하고 현금거래를 한 일이 있을 정도로 큰 은행이 설치되어 금융사업으로 메카로서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또한 이 도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주로 흑양모로 짠 화려하기 그지없는 의복들을 팔아 부를 축적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도시에는 B.C.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로부터 알려진 유명한 의과대학도 있었는데, 이 곳에서 생산된 ‘부르기아 안약’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던 의약품에 속한다. 다른 소아시아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곳에 거주해 살았으나, 특별히 그리스도인들과의 마찰은 심하지 않았다.
한편 라오디게아교회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전에 이미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골4: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에 어떤 경로로 복음이 들어왔고, 누구에 의해 교회가 설립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아만, 골1:7이나 4:12의 말씀을 감안해볼 때, 골로새 교회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바울에게 제공한 에바브라가 혹여 인접한 라오디게아교회를 세우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라오디게아의 첫 감독은 바울에 의해 임명된 ‘아킵보’였다(골4:17).
나. 라오디게아 교회(직역강해)
(14절)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단호히] 편지하라(쓰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라오디게아에 소개된 예수님도 환상으로 소개된 플래시백기법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창적으로 제시된다. ‘아멘’이신 예수님은 진실된, 확실한, 견고한 분이시다. 그리고 충성되고 참된 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 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말씀으로 비유되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요1:1~2).
사65:16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15) [나는 ]너의 행위들을 알아온 채 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는 것을. [나는] [네가] 차겁든지 뜨겁든지 하는 것을 원하노라.
라오디게아교회는 칭찬 하나 없이 오직 책망과 권면만 나온다. 왜 라오디게아교회는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았을까? 그것은 물질적인 풍부함 때문에 태만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유는 라오디게아에서 북쪽으로 약11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히에라볼리의 뜨거운 온천수와 라오디게아 동쪽으로 약 16Km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골로새의 차거운 우물을 그 배경으로 한다. 처음에는 뜨거운 온천수와 차가운 생수이지만 나중에는 뜨뜻미지근해지는 것이다.
(16) 이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입으로부터 막 너를 뱉어버리려고 한다.
신앙에는 회색지대나 중간지대는 없다. 하지만 계속해서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주님은 그들을 뱉어버리실 것이라고 했다. 역겨운 것이기 때문이다.
(17) [너는] [나는] 부자다. 그래서 부요하고 그리고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그러나 [너는] 네가 곤고하다는 것과 그리고 가난한다는 것과 그리고 눈멀었다는 것과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온 채 있지 않다.
라오디게아교회는 물질적으로 풍족했다. 부자였고 부유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적인 상태는 가련했다. 가난했다. 심각한 궁핍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영적인 가난함과 무감각했던 것이다. 교회의 영적인 상태는 비참했던 것이다.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었고, 영적으로 옷을 벗고 있었다.
(18) [나는] 너에게 [단번에] 부요하게 하도록, 나로부터 불로 [이미] 연단된 채 있는 금을 사는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너의 벌거벗음의 수치가 보여지지 않도록 흰 겉옷을 [자기자신을 위하여] [단번에] 사입는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너의 눈들에 볼 수 있도록 안약을 사서 [단번에] 바르라.
주님의 처방책은 3가지다. 하나는 불로 연단한 금으로 부요하게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으로 믿음에 있어서 매우 가난한 상태이기에 순수한 믿음으로 채우라는 것이다. 둘째는 흰 겉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음의 영적인 수치를 면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흑양모 옷을 걸치고 있었으나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어서 거룩해지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그리고 셋째는 안약을 사서 발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교회는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적인 새로운 시야가 필요했다. 마치 하나님의 보좌에 앉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알라고 하시는 것과 같다.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한다. 그리고 징계한다. 그러므로 [너는]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 그리고 [단번에] 회개하라.
그리고 주님은 적극적으로 회개를 촉구하신다. 첫째,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고 하셨고, 둘째, 단번에 회개하라고 하셨다.
(20) 보라!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채 있어왔다. 그리고 [나는] [현재]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단번에] 듣는다면 그리고 [단번에] 문을 연다면, [내가] 그를 향하여 [장차]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장차]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마음의 문밖에 오시고 서 있는지 오래 되었다. 그리고 그때도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음의 문을 말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문열어주기를 기다리고 계셔왔다. 만약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맞아들인다면 풍성한 삶의 자유와 진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함께 먹고 마심 즉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21) [현재]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그에게 내 보좌 안에 나와 함께 앉도록 [장차] 줄 것이다. [내가] 이겼고 그리고 그의 보좌 안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 하늘의 통치자로서 왕으로 다스릴 것을 말씀해주셨다. 주님과 더불어 함께 왕노릇하는 것이다(계20:1~10, 22:5)
(22)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를 [단호히] 들어라.
이제는 귀를 가진 자라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단호히 듣고 순종해야 한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22절 헬라어직역]
(14절) 그리고 라오디게아교회의 메시지 전달자에게 [단호히] 편지하라(쓰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시작이신 이가 이것들을 말씀하신다.
(15) [나는 ]너의 행위들을 알아온 채 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는 것을. [나는] [네가] 차겁든지 뜨겁든지 하는 것을 원하노라.
(16) 이같이 [네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내 입으로부터 막 너를 뱉어버리려고 한다.
(17) [너는] [나는] 부자다. 그래서 부요하고 그리고 부족한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음을. 그러나 [너는] 네가 곤고하다는 것과 그리고 가난한다는 것과 그리고 눈멀었다는 것과 그리고 벌거벗었다는 것을 [이미] 알아온 채 있지 않다.
(18) [나는] 너에게 [단번에] 부요하게 하도록, 나로부터 불로 [이미] 연단된 채 있는 금을 사는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너의 벌거벗음의 수치가 보여지지 않도록 흰 겉옷을 [자기자신을 위하여] [단번에] 사입는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너의 눈들에 볼 수 있도록 안약을 사서 [단번에] 바르라.
(19)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한다. 그리고 징계한다. 그러므로 [너는] [계속해서] 열심을 내라. 그리고 [단번에] 회개하라.
(20) 보라!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채 있어왔다. 그리고 [나는] [현재] 두드리고 있다. 만일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단번에] 듣는다면 그리고 [단번에] 문을 연다면, [내가] 그를 향하여 [장차]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장차] 먹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21) [현재] 이기고 있는 자는 [내가] 그에게 내 보좌 안에 나와 함께 앉도록 [장차] 줄 것이다. [내가] 이겼고 그리고 그의 보좌 안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앉았던 것처럼.
(22) [현재] 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를 [단호히] 들어라.
< 요한계시록 3:14~22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물질적인 부요로 인한 뜨뜻미지근한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신앙은 차든지 뜨겁든지 열정적으로 해야 함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물질적이고도 세상적인 부요는 주님의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물질적인 부요로 인하여 자신의 영적인 가난을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상태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그리스도인은 믿음에 부요하고, 회개와 예수님의 피를 통해 자신의 옷을 깨끗이 희게 하며, 영적인 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신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물질적인 부요한 자일수록 더욱 영적인 것에 열심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헤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물질적인 부요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은 사람의 마음밖에서 두드릴 뿐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신자들의 가장 궁극적인 신앙목표는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뜨뜻미지근한 신앙을 버리나이다.
주여, 이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물질을 추구한 것에 회개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영적인 것을 사모하나이다.
주여, 이제는 천국을 사모하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영적인 것을 귀하게 보지 못하게 가로막았던 악한 영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질적인 부자가 되는 것에 우리의 온 정신을 빼앗아가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물질적으로 지나친 욕심은 버리고 영적인 것을 사모할지어다. 천국에서의 왕노릇을 사모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소아시아의 일곱 번째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 세상 마지막 시기의 교회의 모습이로구나.
2. 물질적으로 부요한 시기의 성도들은 뜨뜻미지근한 신앙생활에 빠져들 수 있구나.
3. 영적인 것을 사모하고, 하늘에서 우리가 받을 것을 사모하고 달려가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로구나.
4. 전능한 주님이라도 우리의 마음을 강제하지 않으시나, 우리가 주님께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열어드리면 전능하신 그분께서 비로소 역사하시는구나.
5. 우리가 천국에서 왕권을 행사하고 사는 것이 참된 복이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