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8월 19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한째주일)
[제 목] 갈라디아강해(03) 예루살렘 총회 참석과 베드로의 책망사건을 통해 인정받게 된 바울의 사도직
[찬 송] 찬 456장 거친 세상에서, 찬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말 씀] 갈2:1~21(신약 303면)
[키워드] 예루살렘총회,디도할례,베드로의책망사건,바울의사도직변호,이신칭의의원리
1. 서론
갈라디아서의 내용 구조를 일반적인 서신의 형식에 따라 구분하면, 1:1~5의 도입부, 1:6~6:10의 본론부, 6:11~18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도입부 1:1~5에서는 발신자, 수신자, 축도로 된 인사말과 속죄의 제물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송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종결부 6:11-18에서는 할례주의자들의 이중성과 십자가 절대 신앙에 대한 결론적 훈계와 마지막 당부 및 축도를 다루고 있다.
한편 본론부 1:6-6:10은 내용에 따라 다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주지하다시피 갈라디아서는 전체적으로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바울이 이미 전한 바 있는 이신득의 복음을 변증하기 위한 서신이다. 바울은 이러한 본 서신의 중심 목적에 따라, 1:6-2:21에서는 이신득의 복음 전파자로서의 자기 변호를, 제3,4장에서는 이신득의 원리에 대한 정당성 변증을, 그리고 5:1-6:10에서는 이신득의로 인한 자유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먼저 1:6-2:21은 바울 자신의 사도직의 진정성을 밝히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바울이 전한 이신득의 복음의 진정성을 더불어 옹호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 및 자신이 전한 복음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즉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것이며, 또한 자신이 전한 이신득의의 복음 역시 사람의 뜻에 따라 지어진 것도 사람에게 전수받은 것도 아님을 밝힌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의 경위 및 회심 이후의 행적을 제시한다. 즉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나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이 유대 교회 및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에게도 공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확립하며 더 나아가 자신이 전한 이신득의 복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3, 4장은 이신득의 복음의 정당성에 대한 신학적 변증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먼저 율법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갈라디아인들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의 전례를 통해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역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다는 것과,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수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율법의 차이에 대한 적절한 비교와 대조를 통해, 믿음의 약속에 비해 율법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더욱이 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롭게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저주 아래 처하게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하고 있다. 이러한 변증 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종이 아닌 아들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하고, 자유자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5:1-6:10은 이신득의로 인한 자유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속량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freedom in Christ)를 누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육체의 소욕을 추구하는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의 문제, 곧 자유 사용의 바른 방향 및 목적에 대해 교훈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자유를 첫째로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방향으로, 둘째로는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사는 방향으로 사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타인 본위의 삶을 살 것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들을 추가적으로 제시한다.
2. 예루살렘 총회 참석과 디도에 대한 할례요구거부 및 바울의 이방인 사도직에 대한 공식인정(갈2:1~10)
1)본문내용(갈2:1~10)
첫째,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함(1~2절)
14년후에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한다. 계시에 따라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총회석상에서 보고하되 예루살렘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사적으로 보도한다. 이렇게 바울이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설명한 것은 율법주의적 거짓 교사들로 인해 자신의 복음전파사역에 지장이 초래될깨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둘째, 복음의 진리를 위해 디도에게 할례를 시행하지 않음(3~5절)
예루살렘 교회 지조자들이 바울과 동행한 헬라인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안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은 것은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때문이다. 거짓 형제들이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종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바울일행은 디도에게 할례를 강요하는 거짓형제들의 요구에 복종하지 않았다. 이는 복음의 진리를 분명히 지키기 위함이었다.
셋째,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이 바울의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분을 인정하고 교제함(6~9절)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이 전하고 있던 복음 외에 추가적으로 어떤 것을 전하라고 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드로가 할례자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은 것처럼, 바울이 무할례자들인 이방인ㄷ르에게 복음전파의 사명을 받은 것을 그들이 알게 되었다. 이에 그들은 베드로를 유대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하나님께서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삼으신 사실을 공인한다.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 지도자들인 게바와 야고보와 요한이 바울이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와 그의 이방인들을 위한 복음전파의 사명을 인정하고 바울일행과 교제의 악수를 나눈다.
넷째, 구제에 힘쓰기를 요청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요청을 바울이 수락함(10절)
2)영적 교훈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계시를 따라 움직이는 자다(2절)
둘째, 내가 받은 계시라도 교회공동체의 공식적이고도 객관적인 인정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2절)
셋째, 사도라 할지라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필요하다(1~14절)
바울의 사도성은 유명한 자들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나 또한 그들을 책망했던 바울을 통해서 더 확실해졌다(1~14).
넷째, 구원은 할례와 같은 율법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3절).
다섯째, 구원을 위해 율법준수나 할례는 결코 필수적이 아니다(3절).
여섯째, 언제 어디서나 복음의 진리를 변개하려는 이단 세력이 존재한다(4절).
일곱째, 복음의 진리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야 한다(5절).
여덟째, 복음의 진리는 예수님의 수석제자나 예수님의 친동생이라도 결코 그들에 의해 변질되게금 놔두면 안 된다(6절).
아홉째, 사도는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진짜 주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드면 인정받게 되어있다(6~7절).
열째, 사람마다 부르심의 사역이 다르다(7~8절).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나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열한째, 복음사역자는 먼저 걸어간 사역자의 포용과 동의가 있을 때 더 강력해진다(9절).
열두째, 교회는 항상 가난한 자들에게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10절).
열섯째, 성도는 마땅히 교회의 권위 아래 순복해야 한다(1~2절).
열넷째, 주관적인 확실과 체험만을 고집하는 신앙은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니다(2절).
열다섯째, 주관적인 체험과 확신들을 절대화해서는 아니 된다(2절).
열여섯째, 비진리와 타협하는 일은 진리를 포기하는 일이 된다(3절).
열일곱째, 죄와 율법에 대해서 자유하지 못하는 자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다(4절).
열아홉째, 부르심을 하나님 앞에서 어떤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6절).
스무째, 교회는 다양한 은사와 다양한 성도들에 의해 온전해진다(6절).
스물한째, 하나님의 일꾼에게는 경쟁자가 없고 교제하고 협력하고 동역할 자만 있다(9절).
스물두째, 성도는 단순한 구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이 구비되어야 한다(10절)
3. 베드로의 책망사건 회상을 통한 율법주의적 잔재의 지적(갈2:11~14)
1)본문내용(갈2:11~14)
첫째, 전날 바울 자신이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책망하였던 일을 지적함(11절)
둘째, 자신이 베드로를 책망하게 된 사유를 설명함(12~13절)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한 식탁에서 먹다가 도중에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내려오자, 그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그 자리에서 물러간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동 때문에 이방인들과 함께 식탁교제를 하던 다른 유대인들, 심지어 바나바까지도 휩쓸려 부득이 이중적이고 외식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셋째,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책망한 내용을 진술함(14절)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에 따라 일관된 행동을 보이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이중적 행동을 하였음을 책망ㅊ한다. 즉 이제 복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데, 굳이 일부 유대 율법의 잔재에 얽매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어정쩡하게 구분하는 모순을 지적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아무리 교회의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이중적이고 외식적인 잘못은 책망받을 수밖에 없다(11절).
둘째, 율법을 통한 구원을 의식하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다(11절).
셋째, 주의 종은 사람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12절).
넷째, 지도자의 잘못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약한 지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13절).
다섯째, 영적 지도자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 언제나 조언과 권면이 필요하다(11절).
여섯째, 지도자는 비굴하게 행동해서는 아니 된다(11절).
일곱째. 지도자의 삶은 자기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12~13절).
여덟째, 권징 없는 교회는 바로 서기 어렵다(14절).
아홉째, 진리를 따라 행하지 않고 율법을 따라 외식해서는 아니 된다(14절).
열째, 책망하는 용기보다 더 큰 용기는 책망을 겸허히 수용하는 용기다(14절).
4. 이신득의 원리의 절대성과 확실성 및 율법 회귀의 부당성(갈2:15~21)
1)본문내용(갈2:15~21)
첫째,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선언함(15~16절)
바울자신도 본래 ‘이방 죄인’이 아니라 유대인이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사람의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부터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자 한다.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고 인정받을 육체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이신득의 원리의 확실성 및 율법 회귀의 부당성을 재강조함(17~18절)
그럼에도 율법은 지켜야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을 제기한다. 혹시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가 결과적으로 율법에 의하여 죄인으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조장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결코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한 번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운다면, 그것이 바로 스스로를 깨뜨린 범법자로 만드는 것이라며 율법으로 회귀하려는 시도의 부당성을 지적한다.
셋째, 믿음 안에서만 사는 바울 자신의 굳은 확신을 피력함(19~21절)
바울자신은 율법에 의하여 율법에 대해 죽었던 바,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기 위함이라는 입장을 밝힌다.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서 현재는 옛 자아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여 비록 육체 가운데 살지만 믿음 안에서만 산다고 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고 함으로 믿음을 통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은혜를 거듭 강조한다. 율법의 행위로 의로워진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헛된 것임을 지적함으로서 율법주의적인 부당성을 재차 강조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이신득의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진리다(15~16절)
둘째,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결코 율법의 행위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16절).
셋째, 율법에서 복음으로 넘어온 경륜을 뒤집을 수는 없다(18절).
넷째, 예수믿는 자들은 율법 안에서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이다(20절).
다섯째, 믿는 성도가 율법으로 되돌아가 다시 율법을 지키려는 행동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 뿐이다(21절).
여섯째, 하나님의 구원방식은 여전히 믿음과 회개 뿐이다(15~16절).
일곱째, 행위로 구원 얻으려는 자는 주님의 속죄를 필요로 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17절).
여덟째,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불신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18절).
아홉째, 고정관념에 대해 죽지 않는 않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 다시 살 수가 없다(19절).
열째, 낡은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이 진리의 실체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한다(19절).
열한째 철저한 자기부인만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경험한다(20절).
열두째, 하나님의 은혜는 거저주어지는 은혜인 것이지 나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다(21절).
< 갈라디아서 2:1~21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바울의 사도직과 복음은 계시를 따라 주어졌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도직이라도 먼저 있던 교회공동체의 객관적인 인정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복음의 진리를 사수할 때에는 전통이나 권위나 자신의 목숨의 위험 따위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일꾼들은 서로 미워하고 시기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고 동역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무리 훌륭한 교회지도자라 할지라도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날 때에는 책망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지도자의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며, 지도자의 실수는 파급력이 크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이신득의 진리야말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복음의 핵심 진리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한 칭의가 주어질 때 구원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고정관념이나 기존의 사고방식을 내려놓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나도 계시를 따라 움직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내게 주어진 직분과 말씀이라도 교회공동체로부터 승인받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복음진리라면 목숨걸고 사수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이중적이며 위선적인 행동은 결코 행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이신득의의 진리를 결코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복음진리를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거나 빼서 복음진리를 혼합시키려는 악한 영들을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복음진리만을 굳게 붙잡을지어다. 이중적 위선적으로 행동하지 말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바울의 사도직은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온전히 인정받았구나.
2. 복음의 진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훼손되어서는 아니 되는구나.
3. 복음진리에서 벗어나는 자는 그 누구라도 책망받아야 마땅하구나.
4. 지도자의 실수와 잘못은 교회의 약한 지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다주는구나.
5. 이신칭의의 말씀이야말로 타협할 수 있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갈라디이서 2장 헬라어 직역
(01) 그리고 나서 14년을 통하여 내가 다시 바나바와 함께 디도 역시 함께 옆에 취한 후에, 다시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갔다.
(02) 그런데 나는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 그리고 내가 이방인들 안에서 선포하고 있는 바 복음을 그들에게 고하였다. 그런데 유명한 자들에게는 따로 하였다. 내가 [계속] 달려가는 것이나 혹은 달려갔던 것이 공허한 것이 되지 않게 하려고.
(0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바 헬라인으로 있는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도록 하였다.
(04) 그런데 이는 슬며시(몰래) 들어온 거짓형제들 때문이다. 그들은 슬그머니 들어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바 자유를 [단번에] 염탐하려고 그리고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고.
(05) 그들에게 우리가 잠시라도 복종으로 굴복하지 않았다. 복음의 진리가 쭉 너희들을 향하여 머물게 하려고.
(06) 그런데 유명한 이들로부터 어떤 것들이 있기 위하여. 그때 그들은 어떤 사람이든지 내게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얼굴을 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명한 자들로 있는 이들은 내게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07) 오히려 그들은 내가 무할례의 복음을 맡은 채 있다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할례자의 복음을 맡게 된 채 있는 것 같이.
(08)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할례자의 사도직을 위하여 역사하셨던 이가 역시 이방인들을 위하여 내게도 역사하셨기 때문이다.
(09) 또한 유명한 이들인 기둥들로 있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어졌던 은혜를 알고 난 후에,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오른손을 주었다. 우리는 이방인들 안으로, 그들은 할례자 안으로 가도록 하기 위하여.
(10) 오직 우리가 가난한 자들을 [계속] 기억하도록 하기 위하여, 내가 이것 자체를 행하려고 이것을 나 역시도 열심히 행하였다.
(11) 그런데 게바가 안디옥 안으로 왔던 때에, 책망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에게 얼굴을 따라 대적하였다(반대편에 섰다).
(12) 왜냐하면 야고보로부터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그가 이방인들과 [아직도] 함께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왔을 때에, 그가 할례로부터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면서 자기자신을 [아직도] 분리하고 있었고, 그리고 [아직도] 물러가고 있었다.
(13) 그러자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함께 위선에 빠졌다. 그 결과 바나바 역시도 그들의 위선에 함께 미혹을 받았다.
(14) 그러나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향하여 올바르게 걷지 않는 것을 보았을 때에, 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게바에게 말했다. 네가 유대인으로 존재하고 있으면서 이방인들처럼 살고, 유대인처럼 살지 않으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들을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하느냐?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들이요 아빙인들로부터 있는 죄인들이 아니다.
(16) 우리는 사람은 율법의 행위들로부터 의롭게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하여서가 아니라면. 우리도 역시 그리스도 예수를 믿었다.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들로부터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믿음(신실성)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기 위한 것이다. 율법의 행위들로부터는 모든 육체가 [장차] 의롭다함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17) 그런데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는 것을 찾을 때에 우리자신이 죄인들로 발견된다면, 그리스도께서 죄의 봉사자냐? 결코 그렇지 않기를 바란다.
(18) 왜냐하면 만일 내가 허물어뜨렸던 바 이것들을 내가 세운다면, 내가 나자신을 위반자로 굳게 세우는 것이 때문이다.
(19) 왜냐하면 내가 율법을 통하여 율법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살려고 하기 때문이다.
(20) 나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채 있다. 그런데 내가 더이상 사는 것이 아니요 그런데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셨고 그리고 나를 위하여(대신하여) 자기자신을 넘겨주셨던 하나님의 아들에게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일 의가 율법을 통하여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