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6월 03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첫주일)
[제 목] 사도행전강해(33)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의 바울의 바울의 변론적인 전도
[찬 송] 찬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찬 365장 마음 속에 금심있는 사람, 찬 524장 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말 씀] 행17:16~34(신약 216면)
[키워드] 우상숭배의 도시 아덴, 아레오바고 설교, 창조주하나님과 구속의 하나님, 철학과 학문의 도시, 죽은 자의 부활설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
1. 서론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후편이다. 이는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시면서 남기신 지상대명령이 주의 사도들에 의해 건립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실행되어 갔던 역사의 기록이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최초 30년간의 기독교회의 역사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을 다룬 4복음서들과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연작으로서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사도행전을 복음을 전파한 인물중심으로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베드로행전과 바울행전으로 나눌 수 있다. 1~12장까지는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13~28장까지는 사도바울을 중심으로 한 복음전파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행1:8에 의한 지역적 지리적인 구분에 의해 그 내용을 구분한다면, 1~7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설립과정과 성장과정을, 8~12장까지는 사마리아와 온 유대에서의 복음전파, 13장~21장 상반부(16절)까지는 수리의 안디옥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복음 전파(여기에 1~3차 바울의 전도여행이 들어 있다), 21장하반절부터 28장까지는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제 4차 바울의 로마전도여행)를 다루고 있다.
이 중에서 사도행전 3장에서 7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의 폭발적이 성장과 팽창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8장부터 12장까지는 유대와 사마리아와 안디옥까지의 교회 확장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바울의 전도사역을 통해, 로마에까지 교회가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도행전은 크게는 2부분으로, 적게는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행1~12장까지는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베드로를 통한 유대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면, 행13~28장까지는 안디옥교회를 중심으로 사도 바울을 통한 이방인을 향한 복음전파가 기록되어 있다. 앞부분인 행1~12장은 다시 1~7장까지와 8~12장까지로 나눠볼 수도 있는데, 1~7장에서는 예루살렘교회의 탄생과 성장을 보도하고 있으며, 8~12장까지는 과도기로서 유대와 사마리아지역으로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행13~28장까지는 본격적인 이방인 중심으로 복음증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지역적으로 본다면 안디옥에서 로마까지의 복음전파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중에서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2차전도여행 중 더베와 루스드라, 그리고 마케도냐인의 환상과 빌립보전도사역(행16장)의 뒤를 이어,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그리고 아덴에서의 복음전파사역을 주로 다룬다. 특히 행17:16~34까지는 고대그리스도의 수도이며 헬라문화의 중심지였던 아덴에서의 사역에 대해 보도하고 있으며, 18:1~17은 당시 아가야지방의 수도였던 고린도에서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아덴에서의 사역이 기록된 17장 16~34절은 다시 3부분으로 나뉘어지는데, 16~21절에서는 회당과 중앙광장에서의 전도활동 내용이고, 22~31절은 그 유명한 아레오바도 광장설교내용이며, 32~34절은 아덴전도의 결과 소수의 회심만 얻은 사실의 기록이다.
2. 아덴의 아레오바고 광장에서의 바울의 변론적 설교(행17:16~34)
1)본문내용(행 17:16~34)
첫째, 바울이 아덴의 회당 및 중앙광장 등지에서 열성적으로 전도하며 변론함(16~18절)
바울이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며 머물던 중에 아덴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의분이 생긴다. 그리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 및 경건한 이방인들과 그리고 시내 광장에서는 일상적 아테네 시민들과 열심히 변론한다. 그때 에피큐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역시 바울과 쟁론하였는데, 여러 이방신들주으이 하나를 전하는 것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둘째,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려감(19~21절)
아덴 시민들이 바울을 강권하여 일종의 시민공개법정인 아레오바고로 데려가며 바울이 전파하는 이상한 새 종교에 대해서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변론해 주기를 요청한다. 이는 아덴 사람들이나 거기 체류하는 외국인 등은 최신철학이나 종교이론 등을 청취하며 토론하는 것을 주요 일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바울이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증언함(22~31절)
바울은 사람이 지은 전에 거하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한다. 즉 아덴 사람들의 강한 종교심을 언급한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해서도 제단을 쌓아 섬기는 그들의 종교성을 언급하며 이제 그들이 알지 못하고도 섬겼던 그러나 진정한 신에 대하여 설명하겠다고 서두를 뗀다. 우주와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가 계시는데 그분은 천지의 초월적 주재자이므로 인간의 손으로 지은 전에 거하지도 인간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는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밝힌다. 즉 오히려 창조주는 인간에게 필요한 생명과 호흡과 그외 모든 것을 친히 공급해주시는 분이심을 선포한다. 온 인류가 한 사람의 후예로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에 의하여 연대와 경계 즉 인생의 운명이 결정됨을 선포한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과 멀리 떨어진 분이 아니시며 또 인류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심을 밝힌다. 헬라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시인들의 시구를 인용하며 오직 인간은 하나님을 힙입어서만 살아갈 수 있음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신의 자녀들임을 증거한다.
또한 바울은 회개를 촉구하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심판의 주이심을 증거한다. 즉 바울은 신의 형상을 본받은 우리 인간이 잡다한 거짓 신을 금과 은과 돌 따위에 새겨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허탄함을 지적한다. 무지로 인한 우상숭배를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심판주로서 정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믿음의 결단을 촉구한다.
넷째, 바울이 아레오바고 설교의 결과 소수의 회심자만 얻음(32~34절)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한 바울의 설교를 들은 자들 중에 일부는 조롱하였으며, 일부는 바울의 말을 다시 듣고자 한다. 변론적인 설교를 마친 바울은 아레오바고를 떠난다. 바울의 이 아레오바고 설교로 아덴 사람들 중에는 소수가 복음을 영접하고 바울과 가까이 교제하였는데,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인이 포함되어 있었다.
2)영적 교훈
첫째, 우상숭배와 철학 그리고 학문 등의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찬 지역에서는 복음전파는 열매맺기가 쉽지 않다(16~34).
바울의 전도 가운데 열매가 그리 많지 않은 지역은 아덴에서였다. 왜 그랬을까? 아덴은 아가야지방에 있는 헬라문화의 중심지 도시였다. 거기는 당시 최고의 학문과 철학 예술로 유명한 도시였다. 특별히 철학적으로는 인간의 쾌락을 최고의 덕으로 삼는 에피큐로스학파와 정해진 운명에 따라 냉철한 이성에 바탕을 둔 도덕적 삶을 살 것을 강조하는 스토아학파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학문과 철학 등에 대해서는 유명했던 그곳이 종교적으로는 매우 미신적이고 불경건하였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그 도시에는 무려 300개의 공식화된 우상과 3만여 개의 신상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헬레니즘의 최고봉에 달한 만큼 문화적으로 번창했던 도시가 영적으로 최고로 부패해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바울은 여기에서 딱 2사람 즉 소수의 결신자만 얻었을 뿐이다. 바울의 전도를 받았어도 지적교만으로 인해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헬라인들의 배타적인 태도와 우월의식 등은 결국 소수의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을 뿐이다. 결국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지적인 교만과 마음의 강퍅함에 한계를 통감하고 아덴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한 뒤에 곧바로 고린도로 행선지를 바꾸게 된다.
둘째, 하나님과 율법을 모르는 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설교는 창조주하나님에서 시작하여 구속의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다(22~31절).
바울의 소위 아레오바고(화성의 언덕)에서의 설교의 내용을 보면 대체로 3가지다. 첫째,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밝힌 것이다(22~25절). 바울은 아덴 사람들의 종교성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믿고 있고 알고 있는 신은 전부가 다 귀신들이며, 범신들인 것을 지적하면서, 참되고 유일한 신은 하나님뿐인 것을 증거했다. 둘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밝혔다(26~28절).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혈통을 아담으로부터 하나로 만드셨기에 어느 민족이 특별히 우월한 것은 없으며, 그분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생명과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고 있는데, 이는 혹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를 힘입어 살고 기도하고 존재하고 있으니 그분의 소생이라는 말이 맞다고 하였다. 셋째, 아덴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부활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믿을 것을 촉구했다(29~31절). 즉 우상숭배를 허탄한 것으로 지적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심판을 선포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셋째, 하나님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에 대해 의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16절)
바울이 아덴에 가서 처음으로 접한 것은 그 도시가 우상숭배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신들과 제단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러자 그는 그 도시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는 그의 영이 분노를 느꼈다.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사람들의 하나님을 버리고 어리석은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분을 느껴야 한다. 귀신들이 사로잡아 사람을 썩어 없어질 것이나 귀신들을 섬기고 있는 것에 통분히 여겨야 하는 것이다.
넷째,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무지한 우상숭배자가 된다(16절)
아덴은 학문과 철학으로 최고로 손꼽히는 도시였다. 하지만 그들은 끝없는 신화와 학문에 착념하다보니 하나님을 모르고 살고 있었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신 내지는 모든 신들 중의 하나의 신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우상숭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덴은 당대 최고의 학문의 도시이자 서양철학의 발상지이다. 수사학과 문학과 과학이 발달한 도시였다. 모든 지혜의 본고장이 불리웠다. 하지만 그 도시에는 우상이 가득했다. 거리마다 그리스도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신전과 조각상이 즐비했다. 한 마디로 우상에게 바쳐진 도시였다. 생명없는 헛된 우상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의지하고 살았던 것이다.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뛰어나다 할지라도 우상숭배에 빠지는 무지함을 드러내고 만다.
다섯째,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믿는 것이 최고의 지식이요 최고의 복이다(16절)
설령 우리가 쾌락주이나 금욕주의 철학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의 구원계획에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면 우리도 또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받게 된다. 그것은 복이요 그 끝은 영생이요 구원이다. 그러므로 세상지식 은 조금 몰라도 하나님과 복음과 예수님을 알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하늘의 비밀을 아는 천재인 것이다. 세상 지식은 아무리 많아도 높아도 인간을 구원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서 죽은 다음에 천국갈 수 있게 된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최고의 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성도는 불신자들에게 걱정거리의 대상이 되지 말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를 힘써야 한다(17~18절).
당시 바울이 아덴에서 복음을 전할 때, 아무 것도 제대로 삶으로 실천하지 않은 채 말만 하는 전도자가 살았다면 사람들은 그에게 설교도 맡기지 않았고 그의 말을 따르는 자도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언제든지 말과 행실에 본이 되어 우리 주님의 복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곱째, 오직 새로운 것에만 관심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가 쉽지 않다(21절)
아덴 사람들의 지적호기심은 대단하다. 그들은 새로운 것이 있다면 누구든 환영하여 그로부터 듣고자 하였다. 그래서 아덴은 항상 새로운 철학과 신화가 등장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렇지만 늘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장점과 단점이 있다. 맹목적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복음은 새로운 것이 없어도 힘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지적인 측면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전인적인 모든 부분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적 호기심만 유발하는 설교나 연설을 하려고 시도해서는 아니 된다.
여덟째, 하나님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우상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분이시다(24~25절)
하나님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어떤 신들 중의 한 분이 아니다. 그러나 우상들은 거의가 다사탄의 부하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귀신들을 포함한 천사들의 주인이시오, 만왕의 왕이자 만주의 주이시다. 그분은 피조물인 천사들과 레벨이 다르다. 하지만 아덴 사람들은 신에 관해 그릇된 생각들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아덴이라는 도시에 섬기는 신만해도 300여종이나 되었고, 이 신들을 섬기는 제단이나 신정이 무려 3만개나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들 즉 귀신들 위에 뛰어난 오직 유일한 주권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만물을 지으셨다. 먼저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인 천사를 지었고, 그후에 보이는 만물을 지었다. 그리고 그 맨 나중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나 육체를 지닌 인간들을 지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귀신들이 신인 줄 알고 믿고 있으며 그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분이 오직 인류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신 것을 모르는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 주 하나님은 첫째, 모든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둘째, 하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우상이나 신전 안에 갇혀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모든 것 위에 초월하여 계신다. 또한 인간들에게 뭔가를 받아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시다.
아홉째, 하나님 안에서 민족적 혈통적인 우월성은 없다(26절)
하지만 아덴사람들을 달랐다. 자신들은 아티카의 흙으로 지어진 아주 특별한 존재로서, 다른 민족과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이들도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유대인들)처럼 자기민족이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다 마귀가 붙잡아 쓰는 것이다. 1차세계대전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려고 시도했던 독일의 수상 히틀러를 보자. 그는 게르만족의 피가 가장 깨끗하고 거룩한 피라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인류가 당해야 했던 전쟁의 아픔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아담의 후예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적으로나 혈통적으로 어떤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다른 인종이나 혈통이나 민족에 따라 차별하는 테도를 지닌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
열째, 하나님은 인간의 구체적인 삶에 개입하여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다(26절)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 다 아담의 후예인 것이다. 하지만 노의 홍수 때에 거의 다 타락하여 하나님께서는 또 노아를 통해 새로운 씨를 퍼뜨렸다. 그리고 바벨탑 사건을 통해 인간을 지면에 흩으셔서 각기 떨어져 살게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연대를 정해주시고, 그들의 거주지의 경계를 정해주셨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영통의 경계는 하나님께서 인류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인 것이다. 한 나라의 생성과 소멸, 흥함과 멸망, 개인의 출생과 죽음까지도 이끌어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열한째, 인간의 성찰로서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26~27절)
인간은 아담이후 타락한 본성을 소유했기에 인간 스스로 성찰을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알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연만물과 인간의 이성만으로는 하나님을 똑바로 다 알 수가 없고, 구속의 은혜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경을 주셨다. 이 성경은 모든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을 알려준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 장차 들어가서 거할 새로운 집에 대해서도 잘 알려준다. 인간의 이성은 완전하지 않음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자로 설 수 있도록 자신을 가꾸어나가자.
열두째, 하나님은 우리 인간과도 친근한 분이시다(27절)
주의 종들은 일치감치부터 하나님의 말씀없이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열셋째, 하나님께서는 죽고 부활하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를 인류의 심판자로 삼으셨다(30~31절)
이 우주의 심판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이 인간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렇다면, 장차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우상숭배하는 습관과 불신앙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우리 주 예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고 죽과 부활하시자, 이방인들에게 허락한 일시적인 묵허를 거둬들이셨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상숭배의 죄와 불신앙의 죄에 대해 애통해야 한다.
열넷째, 지적 교만은 진리를 수용차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애다(32절)
지적 교만으로 가득차 있던 그 도시에 바울이 왔다. 그래서 바울은 잘 됐다 싶어 멍석 깔아준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했다. 하지만 지적교만으로 가득차 있던 사람들은 거의가 다 흘려보내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는 자는 반드시 영생을 보게 될 것이다.
바울의 2차전도여행 지도
<사도행전 17:16~34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철학과 학문의 도시가 곧 우상숭배하는 도시가 되기 쉽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상숭배의 도시였던 아덴사람들의 지적교만과 우월주의가 결국 구원의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주여 아직도 남아있는 우리들의 지적 교만과 민족적 혈통적 우월주의를 회개하나이다. 용서해주소서.
주여, 하나님을 모르고 율법을 모르는 자는 자신이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왜 저주를 받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자연만물과 인간의 양심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 수는 있지만,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해 구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주여, 지금도 저 하늘에서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지만 우리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해 창조주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지금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고 인간 구원을 위해 나타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지식 중의 지식이요 복중의 복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우상숭배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교만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새로운 것만 추구하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저주를 떨쳐버리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학문과 철학보다는 신앙을 취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민족적 혈통적 우월의식을 도려내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지식의 교만함에 갇혀 있게 숨어서 활동해오던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학문과 철학에만 관심 갖게 하는 귀신아, 너희들의 정체가 이제 탄로 났으니 우리 주변에서 더 이상 배회하지 말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겸손해질지어다. 우월주의를 내려놓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철학과 학문이 발달할수록 우상숭배도 덩달아 만연해지는구나.
2. 이방인들에게 전도할 때에는 창조주 하나님으로 시작하여 구속의 하나님으로 마치는 것이 좋구나.
3. 성도들의 지적인 교만과 모태신앙관과 우월의식이 결국 자신의 구원을 잃게도 만드는구나.
4. 자연만물과 인간의 양심같은 자연계시보다는 성경이나 예수그리스도와 같은 특별계시로 하나님을 알아야 구원을 받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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