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5(수) 수요기도회설교(대강절셋째주일)
[제  목] 요한서신강해(06)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놀랍고도 위대한 사랑
[찬  송] 찬 284장 오랫동안 모든, 찬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찬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말  씀] 요일4:7~5:3(신약 392면)
[키워드] 하나님은사랑이시다,독생자,화목제물,세상의구주,하나님의아들,성령,서로사랑하라,먼저사랑하신분

 

1. 서론

. 요한서신의 기본 이해

1)제 목 : 저자의 이름 및 서신의 집필 순서를 반영한 헬라어 시내 사본을 따라 한글 개역 성경 역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각각 명명됨.

2)저 자: 사도 요한, 비록 서신 자체는 저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으나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한결같이 사도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은 모두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시기(A. D. 70~100)A. D. 90-95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됨.

4)수 신 자 : 요한일서는 소아시아 지역의 일반 성도들, 요한이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의 성도들을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부녀와 그 자녀들, 요한삼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의 일꾼인 가이오를 각각 수신자로 함.

5)내 용 : 요한일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및 의와 사랑의 계명 실천, 요한이서는 분별하는 신앙, 요한삼서는 선한 종들의 교제와 관련한 권면을 주요 내용으로 함.

 

. 요한서신의 배경 이해

요한 서신들은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와 더불어 일반 서신(general letters)’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는 특정 지교회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서신들과 달리, 보다 일반적인 대상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는 특징에 기인한다. 그런데 요한이서와 삼서가 특정 교회 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보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서신들로 분류된 것은, 오랫동안 이 서신들이 요한일서에 부가된 서신들이라고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당시 소아시아(AsiaMinor) 지역의 불특정 다수의 교회들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일반서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한편 세 편의 요한 서신들은 분명 각각 독립된 편지들이다. 그러나 이 세 편은 모두 다 바른 신앙 지식의 확립 이단에 대한 경계의 두 방면을 포괄한 정통 신앙의 강조예수의 제자요 성도로서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두 개념을 기본 공통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 편지들은 이같은 기본 주제를 각각 다른 양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본서에서는 이 요한의 세 서신들을 한 단위로 함께 조망하기로 하였음을 먼저 밝혀 둔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서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사도 요한이 이 서신들을 보낼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당시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사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유대 전쟁(A.D. 66~70) 발발을 계기로 에베소로 이주하였으며 30년 동안을 에베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숭배를 강요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A.D. 81-96) 치하의 박해를 제외하면, 요한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활동이었다.

물론 이 영지주의(Gnosticism)가 체계화된 것은 A.D. 2세기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A.D.1세기 중엽의 초대 교회 시대부터 소위 전영지주의자들(pre-Gnosticism)’이 발흥하여 초대교회의 순수 신앙을 위협하였다. 신약 성경 중에서 4복음인 요한복음과 바울의 목회 서신들, 그리고 특히 요한1,2,3서와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은 이런 영지주의의 도전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 1세기 말엽에 이르자, 영지주의적 사상으로 무장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점점 더 활발해졌으며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세력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노시스는 물론 일반적 지식을 가리키기도 하였지만 영지주의에 있어서는 특별히 신적 비의에 해당하는 영적 지식 곧 허망한 세상일 뿐인 이 육적 세상이 아닌 참 세상인 영적 세계에 대하여 비의적 계몽에 의하여 얻게 된 지식을 가리켰다. 즉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 세계영원하고 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되어 있으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인 바 이제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적 세계로 복귀함으로 소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에 속한 신적 의지로부터 계시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곧 영지(靈知)이며 이런 영지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적 우주관과 구원관을 가진 사상이 곧 영지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영지주의헬라 사상동방 종교들의 신비 사상, 그리고 소위 중간기 시대를 무대로 하여 생겨난 유대교(Judaism)기독교의 사상혼합된 일종의 혼합 사상으로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심지어 각 인물에 따라 그 사상과 체계가 달랐다. 때문에 영지주의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스스로 영지주의자라고 칭하면서 이원론 사상에 근거하여 물질은 무조건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며 인간이 이 악한 물질 세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계시되는 지식, 곧 영지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공통된 사상에 근거를 두는 일련의 무리들을 총칭하여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의 특징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unbiblical du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 및 성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 파생시키게 된다.

 

1)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비한 영적 지식에 의해 획득된다. 여기서 지식(gnosis)’이란 자신이 본래 신적 존재가 육체의 감옥을 이탈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하는 지식을 말한다.

2)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든지 (가현설), 아니면 예수라고 하는 한 뛰어난 인간에게 영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에 임하였다가 십자가 수난 전에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케린투스파).

3)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가혹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극단적 금욕주의).

4) 물질계는 원래 악한 것이므로 기존 세계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혀 잘못이 아니다(극단적 방종과 쾌락주의).

 

이상에서 보듯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도 있는 듯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전혀 상반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비록 요한 당시 이와 같은 영지주의 신화 체계가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2항과 4항의 내용을 요한일서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4:13: 3:4-9)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이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faith)과 윤리(ethics)의 양 측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것에 있었다.

요한서신의 첫번째 서신인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진직접적 목격자로서 성육신의 실재(實在)에 대해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단호히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정죄한다. 그리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하며 육체적 방종을 일삼고 죄를 짓는 것을 옹호하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것임과 죄를 범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임을 경고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빛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를 적극 행하며,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사도 요한은 일서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을 테스트할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신학적으로 (theologically) 참된 성도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둘째, 윤리적으로 (ethically) 참된 성도는 불의를 행치 않고 빛 가운데서 의를 행한다. 셋째, 사회적으로 (socially) 참된 성도는 형제에 대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독자는 자신이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무엇을 힘써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서신의 두번째 서신인 요한이서소아시아 지방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 성도들을 각각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한 익명의 부녀 및 그 자녀들을 수신 대상으로 보낸 서신으로서, 역시 거짓 교사들의 해악을 염두에 두고서 기록한 서신이다. 1세기와 2세기 동안에는 주로 순회(巡廻) 전도자들 및 교사들에 의해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다. 당시 성도들은 이러한 순회 전도자들을 집안에 맞아들여 여행에 필요한 비용과 물품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 역시 이러한 관행에 편승하여 성도들의 집에 침투하였으므로, 본 서신에서는 성도들이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여 집안에 들이지도,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성도들이 순회 전도자들을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은 분명 선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 분별없이 거짓 교사들을 환대하게 된다면 진리가 아닌 이단(異端)의 전파를 돕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요한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여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서신인 것이다.

 

요한서신의 세번째 서신인 요한삼서는 일서 및 이서와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먼저 수신자 문제에 있어서 삼서는 일반 교회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일서, 이서와는 달리 가이오(Gaius)라고 하는 한 특정 인물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는 일서나 이서와 달리 교회 내의 디오드레베(Diotrephes)라고 하는 한 악한 지도자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삼서는 앞의 두 서신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며, 그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요한이 파송한 순회 전도자들이 소아시아의 한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 교회의 독재적 지도자인 디오드레베는 그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치 않고 모욕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고자 하는 그 교회의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쫓기까지 하였다. 이에 요한은 그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인 가이오에게 보내는 본 서신을 통해 디오드레베의 문제를 언급하며 간접 경고할 뿐 아니라,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즉 요한삼서는 교만하고 독재적인 지도자를 경계하면서, 섬김의 지도력 (servant leadership)을 교훈하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요한서신의 내용 구조

 

1) 요한일서

요한일서는 전체를 한 덩어리로서 읽거나 특정 구절들을 통해서 은혜받기는 좋지만, 그 속에서 구조를 발견하고 분석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 서신이다. 우선 요한일서는 문안 인사와 본론 및 결론으로 구성되는 당시 그레코로만 서신들의 전형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주제 전개의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 바울 서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일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직선적(linear) 논리 순서가 아니라 순환적(circular)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치 한 소리가 들린 후 또 다른 소리가 뒤따르며 공명(共鳴)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요한일서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구조 분석이 가능한데, 이는 역으로 그만큼 명확한 구조 분석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구조 분석 역시 논리 전개상 전환을 이루는 뚜렷한 마디를 발견하고 그것에 기초했다기보다, 내용의 전체적 파악을 위해 불가피하기에 어느 정도 임의적으로 구분한 것임을 밝힌다.

먼저 1-2장은 하나님과의 교제 (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서신의 서두인 1:1-4에서 요한은 직접적인 목격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實在)를 증언하며, 그러한 자신의 증언은 수신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게 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토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어 1:5-2:11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 및 실천사항으로서, 성도는 빛 가운데에서 행하며, 혹 죄를 범하였을 경우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며, 또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어 2:12-29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를 멀리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3:1-4:6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요한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주를 대면할 장래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며 또한 그 소망을 간직하였기에 현재의 삶에서 성결하게 살아가야 함을 선언한다. 그리고 죄와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죄를 죄로 인정치 않는 마귀의 자녀들의 행태와 대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의를 행치 않으며 오히려 의를 적극 행하는 자들이어야 함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어 4:7-5:3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계명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온전한 사랑이 모든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더 나아가 보이는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입증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5:4-21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본 서신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으로서, 서두에서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에 대해 증언한 바 있는 요한은 이제 서신의 말미에 이르러 재차 이 문제를 반복 강조하며, 예수께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성도는 능히 세상을 이긴다는 것, 또한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본 서신의 주요 목적임을 밝힘으로써 (5:13) 성도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신의 마지막 종결 부분에서 요한은 신약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문안 인사나 축도를 생략한다. 대신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는 형제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것을 당부하고, 그리스도는 성도를 악에서 지키시는 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라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요한이서

13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요한이서의 내용 구조는 간략 선명하다.

먼저 1-4절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행함을 강조하는 문안 인사이다. 자신을 장로로 밝힌 저자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며, 수신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해 큰 기쁨을 표한다. 이어 5,6절에서는 사랑의 계명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을 격려하며 권하고 있다.

이어 7-11은 본 서신을 기록한 직접적 목적인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집으로 맞아들이지도 말고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이어 12, 13절에서는 조만간 수신자들을 직접 찾아가 면대할 계획임을 밝히며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상의 짧은 서신을 양분하자면 1-6절은 수신자들을 격려하며 사랑의 지속적인 실천을 권면하는 내용이고, 이하 7-13절은 사랑의 실천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고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3) 요한삼서

15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한삼서의 내용 구조 역시 요한이서와 마찬가지로 간략 선명하다.

우선 1,2절은 문안 인사로서, 수신자 가이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기를 축원한다. 이어 3-8절에서는 진리 안에서 행하며 특히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는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9,10절에서는 가이오가 속해 있는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요한이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지도 않고 그들을 환대하려는 성도들까지도 교회에서 내어쫓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책망하며 간접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11,12절에서는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당부하며, 참된 일꾼인 데메드리오를 추천한다. 마지막 13-15절은 마지막 문안 인사 부분이다. 여기서 요한은 서신의 내용이 간략한 것은 조만간 가이 오를 직접 방문할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밝히며 평강을 위한 축원 및 마지막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사랑의 실천의 근거로서의 하나님의 참 사랑(요일4:7~12)

1)본문내용(요일4:7~12)

첫째, 사랑이신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의 성도의 형제 사랑(7-8)

성도들을 향해 서로 사랑하자고 권면한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서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나서 하나님을 아는 자이다. 반면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는데 이는 곧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9-10)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사건을 통해 분명히 나타난 바 되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그 아들을 화목제로 보내신 바로 이것이 저자 요한이 말하는 사랑이다.

셋째,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경험되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11-12)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 역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직접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또한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해진다.

 

2)영적 교훈

요한일서 1,2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었으며, 그리고3:1-4:6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분의 관점에서 합당한 신앙생활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앞의 문맥에 이어 4:7-5:3하나님의 참 사랑에 근거한 계명 실천의 문제를 특별히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4:7-12에서 사도 요한은 성도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자고 호소한 후 곧바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인식하도록 일깨우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시며, 또한 그의 사랑은 성도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근거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신 사건을 통해 나타났다(9). 그리고 성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다시 살게 되었으며, 그러기에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사도 요한은 성도가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바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어 4:13-18에서 요한은 하나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내적(內的) 증거로써 자신이 하나님 안에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의 구주로 예수를 보내신 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역사적(歷史的) 증거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연합을 온전히 이루어가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히 이룬 성숙한 성도는 모든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쫓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참 사랑을 인식시키고 또한 그 사랑을 확신하도록 권면한 요한은, 이제 4:19-5:3에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누구든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보이는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며, 또한 함께 하나님에게서 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 계명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다름 아닌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며, 또한 그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님을 요한은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상에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확인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형제를 향해서는 입으로 궤사를 말하며 그 마음에 시기와 미움을 품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너무나 두렵게도, 요한 사도의 가르침에 따르면 이런 자들은 곧 거짓말쟁이라는 것이다(20). 스스로 빛 가운데 있다고 여기면서도 실제로는 어둠 가운데 거하는 어리석은 기만자라는 것이다(2:9, 11).

그러나 이러한 요한의 경고에서 우리는 두려움이 아닌 회개의 필요성을 발견해야 한다. 여전히 내가 형제를 사랑치 못한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현재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형제를 온전히 사랑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 그 원인을 형제에게서 찾으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치 못하고 그 사랑 안에 거하지 못하는 자신의 완고함과 불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요한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사랑인지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성도들이 피차 사랑해야 할 이유와 근거가 무엇인지도 충분히 깨우쳐 주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순종 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16)고 외치는 요한의 음성이 사랑의 실천이 힘든 성도들의 마음에 메아리치기를 기원한다. 그리하여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요일5:3)’ 저 사랑의 사도의 고백이 또한 우리 자신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첫째, 사랑은 하나님께서부터 나온 것이다(7).

둘째, 하나님을 사랑을 받는 자가 이타적인 사랑도 할 수 있다(7)

셋째, 사랑을 실천하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이다(8)

넷째, 하나님은 사랑이시다(8)

다섯째,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심으로 구체화된 것이다(9).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인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이다. 하나님은 그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셨으니 이는 대속의 죽음을 계획하시고 보낸 것이다. 우리 인간을 위해 화목제물로 독생자를 보내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입증되었다.

여섯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 곧 유일한 아들이시다(9). 하나님의 부성으로부터 탄생한(모노게네스) 분이 예수님이시다(9).

일곱째,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은 우리 죄인을 살리기 위함이다(9).

여덟째, 사랑의 출처와 기원은 하나님께 있다(10).

아홉째,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이다(10).

열째,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속죄제물 뿐만 아니라 화해제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10).

열한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11). 이것은 당연한 책임감이요 의무감이다.

열두째,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12).(딤전6:16)

딤전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열셋째, 사랑은 하나님으로 나온 것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밖으로 드러났고,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을 통해 그 사랑의 실체 접근할 수 있다(12).

열넷째,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다(12).

열다섯째, 사랑하지 않는 자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 없다(7).

열여섯째,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사랑에 대한 응답일 뿐이다(9).

열일곱째, 성도의 이웃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완성이다(12)

 

 

3.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에 대한 확신과 심판에 대한 담대함(요일4:13~18)

1)본문내용(요일4:13~18)

첫째, 성령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 안에, 하나님은 성도 안에 거함(13-15)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에 대해서는 요한 사도가 목격하고 증거하는 것으로서,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심판에 대한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음(16~18)

성도는 성도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을 알고 믿는 자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그 사랑 안 거하는 자는 곧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이며 또한 나도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히 이루게 된 자최후 심판의 날에도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데 그것은 곧 그가 세상에서 주님처럼 살기 때문이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따라서 온전히 이룬 사랑은 모든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쫓는다. 반면 두려워하는 자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한 자이다.

 

2)영적 교훈

본문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람의 계명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는 4:7~5:3 기사의 연속 부분이다. 여기서는 성도의 사랑의 실천의 근거로서 하니님의 참사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4:7-12에 이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 심판날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사랑의 공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를 상술하면 먼저 13-15에서는 성령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은 성도 안에 거하시는 진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어 16-18에서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안에 내주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온전히 이루게 된 자는 최후의 심판날에도 두려움 없이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수 있게 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할 수 있게 하셨다(13)

둘째,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이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주셨다(14)(2:11, 4:42, 5:31, 13:23, 3:20, 딤후1:10, 1:4, 2:13, 3:6, 벧후1:1, 11, 2:20, 3;2, 3:18, . 그런데 사실은 구원자는 하나님이신 것이다(딤전1:1, 2:3, 4:10, 1:3, 3:4, 1:25)

딤전1: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전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1:25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셋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15).

넷째, 사랑을 완성한 채 있는 자는 심판날에도 담대함을 가진다(17)

다섯째, 사랑 안에 있으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온전한 사람은 두려움을 밖으로 내어쫓는다(18).

여섯째,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그에게 형벌이 기다리고 있으며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18).

일곱째, 예수께서 두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온전한 사랑을 하면 두려움을 없앨 수 있다(18)

여덟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심판을 두려워하는 죄인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18)

아홉째, 성도는 성령으로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자다(13)

열째,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해주고 진리로 인도하신다(13).

열한째, 주님을 본 자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14).

열두째,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자신의 구주로 시인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큰 일은 없다(15).

열셋째,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에서 담대하게 살아가야 한다(17).

열넷째, 담대함은 세상을 이기신 주님의 품성이다(16:33)

열다섯째, 사랑은 두려움을 이긴다(18).

 

 

4. 하나님께서 대한 사랑 및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로서의 성도의 형제사랑(요일4:19~5:3)

1)본문내용(요일4:19~5:3)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서의 성도의 형제 사랑(19~20)

성도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 성도 모두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둘째,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으로서의 성도의 형제 사랑(4:21~5:1)

우리 성도는 형제사랑의 계명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땅히 그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다. 내신 이 곧 성도를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당연히 그에게서 난 자 곧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들을 사랑하게 된다.

셋째,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형제 사랑과 하나님 사랑 및 순종(2~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난미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으로 확인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또한 그의 계명들을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2)영적 교훈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계명 실천을 권면하는 요일4:7~5:3의 기사 가운데, 앞선 요일4:3~18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심판에 대한 모든 두려움조차 내어쫓는다는 사실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요일4:19~5:3은 요일4:7~5:3의 기사 전체의 결론적인 성격을 지닌 교훈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계명에 대한 순종의 증거가 형제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실현되어야 함을 촉구한다. 이중에서 전반부인 요일3:19~20의 말씀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로서 성도의 형제사랑의 당위성을 밝히고 실천을 촉구하는 것이라면, 요일3:21~5:3의 말씀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성도간의 형제 사랑의 필연성과 실천을 촉구한다.

 

첫째, 성도의 사랑은 인간의 감정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신적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19).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보다 선재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가능하게 한다(19).

셋째,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다(20).

넷째,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20).

다섯째,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 하는 것의 여부는 형제사랑의 실천 여부로 확인이 된다(20).

여섯째, 형제사랑에 대한 기원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에 기인한다(21). 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말씀을 주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하였고 그것을 또한 다른 믿는 자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일곱째, 예수님을 그리스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5:1)

여덟째, 하나님으로 태어난 자는 자신에게 생명을 부여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고,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다른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하게 된다(1).

아홉째, 주님의 계명들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한 마디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2).

열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3가지 현상이 나타나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둘째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게 되며,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열한째, 예수께서 주신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다(3). 왜냐하면 저주받을까 봐 무서워하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계명을 실천함으로 자신이 사망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넘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며, 천국에 들어가면 그것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3).

 

 

< 요한일서 4:7~5:3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형제 사랑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자신의 독생자를 인류를 위해 이 세상에 화목제물로 보내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마땅히 자신의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도 그분 안에 거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구원자로서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바로 아들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을 완성하는 자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그분 앞에 담대함도 갖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는 자기를 낳으신 일을 사랑하고 같이 태어난 형제들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계명을 자발적으로 지키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계명 순종이 무거운 것일 줄 알았나이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낳으신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낳아진 형제를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계명들을 잘 지키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계명들을 기쁘게 순종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잘못 알아 그분을 오로지 심판의 하나님으로만 알게 한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계명에 대한 순종이 힘들다는 것을 뇌리에 심어서, 기쁨으로 형제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방해한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사랑은 모든 것이 다 사랑 그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구나.

2.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 죄인을 살리시려고 자신의 독생자를 화목제물이자 구원자로 보내신 것이었구나.

3. 온전한 사랑을 행하게 되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는구나.

4.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5.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기쁨으로 주의 계명을 순종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일서 4

(0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모든 영을 믿고 말고 있어라. 오히려 너희는 영들이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 안으로 나온 채 있기 때문이다.

(02) 이것 안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알고 있어라(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채 있는 것을 [현재] 시인하는 마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 것이다.

(03) 그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마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그가 온다는 것, 그것을 너희가 들은 채 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벌써 세상 안에 있다.

(0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을 이겨온 채 있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 안에 있는 이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

(05) 그들은 세상에서부터(에크) 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부터(에크) 발설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는다.

(06) 우리는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는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지 않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이것에서부터(에크) 우리는 진리의 영미혹의 영을 안다.

 

(0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자.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에크) 태어난 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08) 사랑하고 있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09)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바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 안으로 보낸 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도록(생명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10) 이것 안에서 사랑이 있다. 우리 자신들이 하나님을 사랑한 채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분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화목제물로 그의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우리도 역시 서로를 [계속] 사랑하는 것을 빚지고 있는 것이다(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아무도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본 채 있지 않다. 만일 우리가 서로 [계속]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채 있는 것으로 있다.

(13) 이것 안에서 우리는 안다. 그분이 그분의 영에서부터(에크) 우리에게 주신 채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14) 그리고 우리 자신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채 있다는 것을 목도한(목격한) 채 있다. 그리고 증거한다(증거하고 있다).

(15) 만일 누구든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한다면, 하나님이 그이(그사람) 안에 머물러 계신다. 그리고 그이(그사람) 자신도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다]

(16) 그리고 우리 자신들은 [이미] 안 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가지고 있는 바, 그 사랑을 [이미] 믿은 채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사랑 안에 머물러서 있는 자는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다. 역시 하나님도 그이(그사람) 안에 머물러 있다.

(17) 이것 안에서 사랑이 우리와 함께 완성된 채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심판의 날 안에 담대함을 가지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저분이 계신 것처럼 우리 자신들도 이 세상 안에서 있기 때문이다.

(18)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있지 않다. 오히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바깥으로 던진다(던져버린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형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려워하고 있는 자는 사랑 안에서 완성된 채 있지 않다.

(19) 우리 자신들은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친히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20) 만일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러나 자신의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다. 왜냐하면 그가 본 채 있는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한 채 있는 하나님을 [계속] 사랑하는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21) 그리고 우리가 이 계명을 그분으로부터(아포) 가지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는 역시 그의 형제를 [계속] 사랑한 채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5

(0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을 믿고 있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에크) 태어나게 된 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낳아주신 이를 사랑하고 있는 자마다 [역시] 그분께로부터(에크) 태어나게 된 채 있는 자를 사랑한다.

(02) 우리가 [계속] 하나님을 사랑할 때에 그리고 그분의 계명들을 [계속] 행할(지킬) 때에 이것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03)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들로 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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