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5월 25일(수) 수요기도회설교(부활절후 여섯째주일)
[제  목] 요한복음강해(02) 요한복음, 대체 어떤 책인가?(02)
[찬  송] 찬 309장 목마른 내 영혼, 찬 353장 십자가 군병되어서,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말  씀] 요1:1~5(신약 142면)
[키워드] 요한복음, 사도요한, 공관복음, 하나님의 아들, 신성, 하늘, 하나님, 말씀, 창조주, 생명, 참 빛, 은혜와 진리, 모세, 독생하신 하나님

1. 서론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심오한 복음서이다. 기적이 7가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적에 대한 찬양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공관복음서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가복음이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가 땅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인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하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요한복음서의 배경 이해

사복음서 (Four Gospels)는 하나의 예수 사건, 즉 성육신과 생애와 수난과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아들의 구속 수난 사건을 네 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거듭 제시함으로써 이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실로 예수 사건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 계시의 책인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요 그 절정이다. 따라서 성경은 그 오묘하고 심오한 예수 사건의 실체를 우리 인간이 보다 더 포괄적으로, 그리고 보다 더 생생하게 체감하도록 하기 위해 이를 사중(四重)으로 거듭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복음서들은 모두 예수 사건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되지만, 저자의 관점의 차이에 따라 강조하는 바는 다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서들을 대할 때, 이들 복음서들이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하나의 예수 사건 자체를 포괄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동시에 네 복음서 각각의 독특한 관점과 강조점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요한복음을 제외한 세 복음서 즉 흔히 공관복음서 (Diatessaron)라 불리는 마태, 마가, 누가는 저자의 관점의 차이에 따라 다소 강조점은 다르지만 모두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요한복음 비록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여 인간으로 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절대 신성을 지니신 분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관복음과 구별된다. 또한 공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갈릴리 사역을 중심으로 하여 그 내용에 있어서 상당 부분 서로 중복되는 기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요한복음은 극히 일부의 내용을 제외하고는 공관복음이 다루지 않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독특하다고 하겠다.

하여튼 여기서 특별히 주목할 사실은 요한복음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특별히 강조하는 복음서라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성자(聖子) 예수의 성부(聖父) 하나님께 대한 기능적 종속 관계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본질적 차원에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은 곧 하나님과 동등됨을 의미한다고 하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5:18).

물론 예수님의 신성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은 마태, 마가, 누가 등 공관복음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명백히 하나님과 동일시되고 있다(1:1:10:30:20:28). 또한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후기에야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신앙 고백하는 사건이 보도될 정도로 예수님의 정체(Identity)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가 점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이미 1장에서부터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제시하고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께서 행하시는 각종 사역과 교훈을 통하여 예수님의 신성이 귀납적(歸納的)으로 제시되고 있다고 하면, 요한복음에서는 연역적(演釋的)으로 먼저 예수님의 신성을 명백히 선언하고, 그 이후의 표적과 교훈을 통해 이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요한복음이 예수의 신성, 곧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본서가 쓰여진 배경 및 목적을 이해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본서의 저자 요한은 20:31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도록 하는 것본서를 기록한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오늘 우리가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보면 요한이 본서를 기록할 당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이 의심되고 흔들리고 있었다는 의미를 함의(含意)하고 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당분간은 유대교(Judaism)와 기독교(Christianity)는 큰 충돌이나 갈등 없이 병존하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수 있었으며, 각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예배 모임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점차 기독교와 유대교의 차이점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면서부터 양측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A.D. 70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전통적 유대인과 기독교 유대인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로마의 무장 군인들이 예루살렘을 에워싸기 시작할 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으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하였다. 결국 로마 군인들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유대인들 사이에는 기독교인들이 비겁하게 도망쳤다고 하는 비난과 증오의 감정이 증폭되어 갔다. 그러다가 로마의 허락을 받아 재건된 산헤드린 공회는 A.D. 90, 나사렛파와 이단들은 순간에 망할지어다. 그들을 생명책에서 지워 의인과 함께 섞이지 말게 하소서라고 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저주를 담은 내용을 회당 기도문에 삽입하여 암송하도록 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조치로 가장 큰 위기에 처할 대상은 누구였겠는가? 일차적으로는 회당 공동체에서 배척을 당하게 된 디아스포라(Diaspora) 곧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던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이었을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유대인 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A.D. 80~90년 사이에 에베소에서 기록된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독교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미움과 배척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 가중되는 박해의 상황 속에서, 저자 요한은 일차적으로는 신앙의 위기에 처한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계속하여 믿도록 하기 위해(may continue to believe)’,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헬라 세계의 이방인들이 예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믿도록 하기 위해(may believe) 본서를 기록한 것이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지상 생애를 그의 영원한 선재(Eternal Preexistence)의 맥락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 성자 예수께서는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계셨으며(Was with the Father), 성육신 사건으로 이 지상에 오셨다가(Came to this World), 죄 범한 온 인류를 위한 십자가 구속 사역을 완수하신 후 승천하여 다시 성부께로 돌아가셨다 (Returned tothe Father)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제시하는 이러한 전체적 맥락과 내용은 당시 예수님에 대해 유포되던 잘못된 소문과 가르침들, 예수를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은 한 선지자 정도로만 여기는 에비온파(Ebionites), 예수라고 하는 한 훌륭하고 지혜로운 인간에게 신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 임하였다가 수난 전날 밤 떠났다고 가르친 케린투스(Cerinthus, 50-100 AD, Egyptian theologian)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신적 존재이며, 동시에 성육신하신 이후로 한 번도 그의 인성을 벗으신 적이 없으신 분이셨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성육신하심으로 인간이 되신 예수의 인성(人性)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이 주로 영지주의(Gnostism)를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되었다거나, 혹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주장은 분명한 시대 착오(時代錯誤)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는 2세기에 가서야 비로소 체계화된 형태를 띄게 되며,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영지주의 문서들이 요한복음을 자기들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한 근거로 오용(誤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케린투스나 초기 에비온파의 가르침은 영지주의 사상이 이미 요한 당시에 초기적 발아(發芽)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본서의 저자 사도 요한은 에베소의 한 목욕탕에 들어갔다가 케린투스를 발견하고는 목욕도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진리의 원수 케린투스가 안에 있으니 목욕탕이 무너지기 전에 빨리 도망치자고 하며 그 목욕탕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 요한은 케린투스를 비롯한 거짓 교사들을 통해, 2세기에 교회에 침투하여 교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거대한 세력을 떨치게 될 영지주의 이단의 위험을 미리 예견하였던 것일까?

교회사를 통해 볼 때, 예수는 누구인가(Who Jesus Is)?’ 하는 질문을 둘러싸고 수많은 이단들이 출현과 소멸을 거듭하며 교회에 심대한 상처를 입혀 왔으며, 이를 둘러싼 논쟁과 분열은 오늘날까지도 결코 그치지 않고 있다. 예수는 한 인간일 뿐인가?’ ‘역사적 예수는 신적인 그리스도와 별개의 존재인가, 동일한 존재인가?’ 예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 주요 현대 신학의 화두(話頭)이기도 한 이 문제들에 대해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마치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로 요한복음의 내용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요한복음의 진술은 명백하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는 성육하신 로고스 하나님이시며, 역사 속에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와 그리스도는 동일한 존재이다. 성육신 사건예수께서 행하신 표적들(Signs)자기 선언(Selfdeclaration),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에 이은 승천 등은 한결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확증해 주고 있다. 이 예수 안에 생명이 있으며(1:4), 이 예수를 믿을 때 사람들은 생명을 얻게 되는 것(20:31)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이 본서의 저자 요한의 명백하고도 간절한 목적이었던 것이다.

 

 

2. 요한복음 개괄

1) 제 목 : 헬라어 원전의 카타 요안넨(요한에 의한)’이라는 원래의 제목에 기쁜 소식을 뜻하는 단어가 덧붙여져서 요한복음으로 명명됨.

2) 저 자 :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의 직접 목격자이며(1:14 ; 19:35 ; 21:24.25),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13:23 ; 19:26; 20:2; 21:7, 20,24)로 소개된 사도 요한,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모두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공관복음서 작성이 완료된 A.D.70년 이후로부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95년 사이, 예루살렘 함락(A. D. 70)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간주되는 점을 종합하면 기록 시기를 약 A.D. 80-90년 사이로 좁혀서 추정할 수 있음.

4)수 신 자 :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한 헬라 세계의 독자들

5)내 용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됨을 증거하는 복음서 (20:31).

 

 

3)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첫째, 요한복음의 기록 의도는 요20:31에 나와 있다.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은 2가지 목적을 위해 쓰였다. 하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며, 또 한 가지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려는 데에 있다.

둘째, 더불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를 보충하고 재해석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다시 말해, 공관복음서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첨가하기 위해 기록된 것이다.

셋째, 당시의 이단세력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고,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당시 에비온파는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은 한 선지자정도로 여기고 있었으며, 케린투스는 한 훌륭하고 지혜로운 예수에게 신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식과 함께 하였다가 수난 전날 밤에 떠났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자 요한은 예수님이야말로 영원부터 성부와 함께 선재하신 하나님 자신이지만 성육신하신 분이심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한 것이다.

 

4)요한복음의 저자와 기록연대

요한복음의 저자는 내증에 의해, 그가 예수의 사랑하시는 제자인 사도요한이다. 그는 에베소에서 이 복음서를 썼는데, 예루살렘의 멸망 이후 밧모섬 귀양가기 이전인 A.D.70-A.D.96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다.

 

 

5)요한복음서의 특징

첫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29개의 사역 중에서 오래된 2개의 사역(4표적 오병이어, 5표적 물위를 걸으심)만 중복으로 기재되어 있을 뿐 거의 대부분이 요한복음서에만 나오는 사역들로 가득하다(고유사역이 92%). 특히 요한복음에는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기적도 5가지나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유월절을 최소한 3번 이상 언급하고 있음으로 인하여(2:13, 12:1, 18:28), 예수님의 공생애기간이 3년 내지는 3년반 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요한복음에는 초막절(7:2)과 수전절(10:22)도 나온다. 그리고 죄패도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나온다(19:20).

둘째,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요한복음은 십자가 처형의 과정과 부활 이후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본서의 거의 절반 정도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예수님의 많은 이적들을 표적이라고 하여, 그 기적들이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셋째, 요한복음은 숭고하고 단순한 문체로 쓰여 있으며, 대조법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속성을 잘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나는 ~이다라는 선언적인 표현을 7이나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빛과 어둠, 생명과 사망, 하늘과 땅, 영과 육, 사랑과 미움, 눈뜸과 눈멂등이 대조되어 나오고 있으며, 예수님이 곧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드러내기 위한 자기선언이 7번이나 나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6:35,48,51)”,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나는 문이니(10:7,9)”, “나는 선한 목자라(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나는 참 포도나무요(15:1,5)

 

6)요한복음의 핵심내용

첫째,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말한다(1:1,4,29,10:36,19:7,20:31).

둘째,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7가지로 분명하게 말하는데, 그것을 일컬어 예수님의 자기선언이라고 부른다. 또한 요1장과 17장을 보면, 예수께서 만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으로서, 또한 만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영화를 회복시켜 달라는 대제사장적 기도를 통해 그분의 선재성과 영원성을 단번에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요한복음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성부는 예수님의 아버지이시며(100회정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님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보내주실 하나님의 영인 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특히 성령님을 거듭나게 하는 영(3:5)”, “생수의 강(7:39)”, “보혜사(14:16,16:7)”, “진리의 영(15:26, 16:13)”으로 표현하고 있어, 공관복음서가 성령의 외적인 사역과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은 성령의 내적인 사역 즉 성령의 인격적인 특성이 강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성령은 믿는 이들과 함께(with), 믿은 이들 안에(in) 거주하고 있다고 말한다.

넷째, 요한복음은 믿음의 핵심과 믿음의 대상과 믿음의 결과에 대해 분명하고 말한다. 즉 믿음의 핵심과 유일한 대상이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믿음의 결과는 영생과 풍성한 삶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1)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예수를 누구로 보느냐 하는가는 모든 이단 논쟁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이단들이 출현하여 예수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든지, 혹은 인성(人性)을 부인하든지 하였다. 예수의 신성 혹은 인성을 부인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역사적 예수와 신적 그리스도(Divine Christ)와의 일치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지 않는다. 예수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서 살았던 그분이 곧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며 (1:1,14),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시라고 하는 것(20:31)이 요한복음이 전하고 있는 명백한 메시지인 것이다.

(2) 예수의 영원한 선재(先在).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그의 영원한 선재(Eternal Preexistence)의 맥락 속에서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세례 요한이나 아브라함보다 앞서 존재하였으며 (1:15, 30 ; 8:58), 심지어 만물이 지어지기 전 태초(太初)부터 존재하셨다. (1:1).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선재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입증하는 것으로서, 예수를 단지 한 뛰어난 피조물로 간주하는 모든 거짓 사상들을 강력히 반박한다.

(3) 성자(聖子)에 의한 성부(聖父)의 계시.

요한복음에는 아버지라고 하는 단어가 137나 등장할 정도로 성자 예수의 정체와 사역이 성부와의 밀접한 관계에서 제시되고 있다. 성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자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지식이며 (17:3), 성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성자 예수를 믿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믿음이다 (12:44,45; 14:1). 그러나 그 순서에 있어서는 성자 하나님을 아는 것이 성부 하나님을 아는 것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성부의 품속에 있던 독생자 예수만이 성부 하나님의 영광의 현시(顯示)로서, 그를 세상에 계시하신 분이기 때문이다(1:18). 따라서 그 누구도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는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

(4) 성자 예수의 자기 계시적 선언(Self-Manifestation).

요한복음에는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자기 계시적 선언7차례 등장한다 (6:35 ; 8:12 ; 10:9, 11 ; 11:25 ; 14:6 ;15:5), 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과 생명, 길과 진리와 생명, 포도나무 등 각각의 독특한 진술은 예수님의 정체성과 사역의 성격을 여러 각도에서 제시해 주는 진술들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예수께서 이러한 진술을 하심에 있어 사용하는 동사 에고 에이미’, ‘I Am~’구약 출 3:14에서의 여호와의 자기 계시적 선언을 상기시키는 표현들이다. , 예수님의 자기 선언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自存者)시며 영원한 현재로서 살아 계시는 영존자(永存者)로서의 자기를 계시하고 계신 것으로서 예수 자신의 신성(神性)을 명백히 선언하시는 표현들이라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5) 성부의 뜻에 정확히 일치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요한복음에서는 유난히 예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 성부 하나님의 뜻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이 강조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으시며 (5:19, 30 ; 8:28 ; 14:10), 오직 자기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4:34 ; 6:39 ; 8:29).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신적 기원과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거기에 충실하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복음 사역자들의 사역 역시 신적 기원과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자신의 사역의 내용과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부끄러움 없이 고백할 수 있는 사역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6) 표적과 신앙.

표적(sign)은 하나의 놀라운 일(marvel)로서의 사건 자체보다도, 그 표적을 행하는 주체와 그 표적을 통해 나타내는 의미가 중요하다. 표적을 보고도 그 표적을 행하시는 분이 누구이시며, 그 표적이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표적의 체험이 신앙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인 것이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의 표적을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표적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주목하라! 그리고 그 표적들을 행하신 분은 과연 누구이신지 주목하라!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도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믿지 않은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라!

(7) 표적 중의 표적 - 예수의 부활.

요한복음에는 모두 일곱 가지의 표적이 기록되어 있다. 각각의 표적들은 모두 예수의 신적 권위와 능력을 나타내며 그의 신성(神性)을 증거하고 있다. 그런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마지막 일곱번째의 표적은 예수의 신적 권위와 능력을 나타낸다고 하는 점에서는 다른 표적들과 동일하지만, 요한복음의 진정한 표적이자 최대의 표적예수님 자신의 부활을 예표한다는 점에서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표적의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믿도록 하는 것에 있다면 (11:42), 예수의 부활만큼 확실하고도 위대한 표적이 어디에 있겠는가?

(8) 교회 공동체를 향한 새 계명 (New Commandment)

체포되시기 전날 밤, 주와 스승이신 분으로서 제자들의 발 씻기시기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새 계명을 주셨다. 여기서 새로움이란 구약 율법을 대체한다든지, 혹은 시간적으로 새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고 하는 말씀에 달려 있다. , 예수께서는 완전하고도 신적인 사랑의 모델(Model)을 제자들에게 몸소 보여 주셨다. 제자들과, 더 나아가 신약의 교회 공동체는 예수께서 나타내 보이신 그 사랑을 모델로 삼아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새로운 계명에 대한 준수는 각 개인이 예수의 제자인지, 그리고 신앙 공동체가 제자의 공동체인지를 입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9) 성령의 인격적인 사역.

요한복음의 독특한 특징 중의 하나는 성령(the Holy Spirit)에 대한 강조이다. 그러나 누가의 저술인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에서 보여지는 역동적이고도 능력 있는 성령의 사역과는 다른 차원에서 성령의 존재와 사역을 조명하고 있다. 요한복음에서 성령은 거듭나게 하는 영’(3:5), 생수의 강 (7:39), 보혜사’(14:16; 16:7), 진리의 영’(14:17;15:26 ; 16:13) 등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는 곧 성령께서 사람의 내면(內面)에 역사하여 그 본성을 변화시키며, 영혼 깊이에서 만족과 위안을 주며, 상담자가 되며, 진리의 안내자가 된다는 것으로서, 성령의 인격적(人格的)인 특성이 강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성령은 오늘날 우리와 함께 (with), 그리고 우리 안에(in) 거하고 계신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받으며 (14:26),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며 (14:27), 세상을 책망하(16:8),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을 것이며 (16:13),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10) 대제사장적 기도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비전(Vision)

17장의 대제사장적 기도에서 예수님은 심오하고도 원대한 구속사의 비전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질 미래의 일들을 보셨다. 곧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와 회복될 자신의 영광, 제자들의 공동체, 더 나아가 오고오는 세대의 모든 구속받은 백성들이 이루게 될 거대한 우주적 교회(the Universal Church)의 비전이 십자가를 목전(目前)에 둔 우리 주님의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십자가 너머의 영광을 볼 수 없기에 십자가를 부담스러워하고, 아버지와 함께 누릴 장래의 영광을 볼 수 없기에 이 땅에서의 거짓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기고, 구속받은 교회의 게룩한 일치됨(Oneness)의 비전을 결핍하고 있기에 작은 일에 분열하고 마는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를 묵상함으로써 왜곡되고 편협한 신앙의 비전을 바로잡고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11) 성도와 세상과의 관계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에 대한 적대 세력으로 나타나기도 하는(1:9; 7:7; 14:30 ; 15:18,19; 16:33) 동시에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일하도록 보냄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9:4; 17:18; 20:21). 예수의 진정한 제자들은 결코 세상과 짝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여 일하도록 하신 사명의 장소이다. 세상 속에 거하면서도 세상에 동화(同化)되지 않으며, 세상의 악한 행실을 책망하면서도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 등 적절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요청되는 자세이다.

(12) 예수 안에 있는 생명

저자는 20:31에서 본서의 기록 목적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의도는 요한복음 전체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가? 영생(永生)’이다(3:16)! 그리고 그 영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17:3)! 모든 시대의 인간이 예외없이 갈망하던 영원한 생명이 바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1:4). 열린 마음으로 이 복음서를 읽는 자는 예수 안에 생명이 있으며, 그 생명이 믿는 자들에게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13) 진정한 목양(牧羊)의 출발점

21장은 독특하고도 아름다운 결말을 보여 주고 있는 요한만의 특이한 에필로그(Epilogue)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통해, 실패했던 베드로의 신앙을 회복시키시고 자신의 양 무리를 먹이라고 하는 사명을 맡기신다. 목양의 사명을 감당하는 출발점은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것이며, 그토록 연약한 자신을 용납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양 무리를 사랑하는 것이다. 벧전 5:1-4을 읽어 보라. 다시 출발하게 된 베드로가 이후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양 무리를 먹이는 사명을 감당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7)요한복음에 나오는 기독론

요한복음에는 여러 가지 그리스도에 대한 별칭들이 등장한다.

첫째, 메시야(1:41, 4:25,26). 둘째, 하나님의 아들(1:49, 3:36, 20:31). 셋째, 세상의 구세주(구원자)(3:16, 5:26). 넷째, 인자(3:13,14). 인자됨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셨다. 다섯째, 말씀(로고스)(1:1-3,14). 여섯째, 세상 죄를 지고 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1:29).

 

*요한복음에 나오는 주요 인물

세례요한(1:68,19~34), 니고데모(3:1~15), 사마리아여인(4:1~30), 베데스다의 38년된 병자(5:1~9), 간음한 여인(7:53~8:11), 날 때부터 소경된 자(9:1~12), 나사로(11:38~44), 옥합 깨뜨린 마리아(12:1~8), 베드로(18:16~27, 21:15~23), 요한(19:26, 21:20,24), 가룟 유다(13:18), 안나스(18:12~25), 빌라도(18:28~19:16), 막달라 마리아(20:11~28), 도마(20:24~29).

 

6)요한복음의 구분

크게는 세 부분으로, 서론(1:1~18), 본론(1:19~20), 결론(21)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지만 작게는 5가지 부분으로도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1:1~18). 둘째,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1:19-4). 셋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거부(5-12). 넷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교훈(13-17).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부활(18-21).

 

요한복음의 내용 구조는 전체적으로 다섯 부분으로 파악할 수 있다. 1:1-18까지요한복음의 신학적 서론(Prologue), 1:19-12:50까지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적 사역, 13:1-17:26까지다락방 강화, 18:1-20:31까지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 21결론(Epilogue) 부분이다. 그러니까 서론과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개시와 부활에 이르는 전과정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본서의 신학적 서론 부분인 1:1-18성자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 1:19-12:50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의 표적들(Seven Signs)그와 연관된 선언들(Proclamations)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자 예수께서 자신 및 성부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하시는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9~2:12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예수님과 처음 제자들과의 만남제자들의 신앙 고백, 그리고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1표적인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을 보도하고 있다. 이는 서론 부분에서 나타난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증거(Witness)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이 시작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어 2:13~3:36까지는 공생애 사역 개시 후 첫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을 기점으로 일정 기간 동안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데, 곧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사건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유대 지방에서 머무신 내용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에 관해 보도하고 있다. 이어 제4장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다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시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마리아 지역을 경유하실 때 예수께서는 수가 성의 한 여인구원하시고 또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회심하게 하신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2의 표적으로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신다.

이어 제5장에서는 공생애 시작 후 두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3표적으로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으며, 6장에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4표적으로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5표적으로서 물 위를 걸으신 이적,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과 관련하여 추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신 생명의 떡에 관한 주님의 교훈들을 보도하고 있다. 또 제5, 6장에서는 표적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예수께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무리들의 오해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어 7:1-10:42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에서의 초막절을 전후한 사역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 즈음에 이미 예수께서는 명절을 맞아 모여든 군중들의 이야깃거리의 중심이 될 정도로 커다란 관심 및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는 첨예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국 성전에서의 논쟁을 기회로 예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체포령을 내리는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게 된다. 한편,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위축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며,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6표적소경의 눈을 치유하는 이적을 행하시며, 특히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로서의 자기 선언 (Self-Proclamation)을 하신다.

이어 11,12은 유대인들의 배척을 피해 잠시 베레아로 피신하셨던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 그리고 헬라인들의 예수 방문 사건 등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기 위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 중 마지막 제7표적으로서 가장 큰 표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진정한 표적 중의 표적인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력히 예표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과 헬라인들의 방문은 모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11,12장은 표적들의 장(the Chapters of the Signs)이라고 할 수 있는 1:19-12:50까지의 종결 부분이면서, 다음 제13장 이후의 내용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13-17장은 소위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 부분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설교(13-16)대제사장적 기도(17)를 보도하고 있다. 유월절 전날 자기가 떠날 때가 된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또한 당신의 승천 이후 세상에 남아 당신을 대신하여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새로운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주실 것약속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서도 예고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으므로 담대하라고 하는 권고를 주심으로 고별 설교를 마치신다. 이어 17장에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데, 기도의 내용은 곧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제자들을 및 미래의 성도들을 포함한 중보의 기도이다.

다음으로, 18~20장은 성자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보도하고 있다. 세분하면, 18, 19장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체포에서부터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연속적 심문 과정과 십자가형의 집행시신의 처리와 장례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으며, 20장에서는 빈 무덤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 도마에게 차례로 현현(顯顯)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30,31에서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보도 내용을 일단락짓고 있다.

마지막 제21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재회를 보도한다. ,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여 섬겨 주시며, 세 번이나 거듭 당신을 부인함으로 사도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베드로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힌 이후에 나와 부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베드로의 온전한 회복과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묘사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끄럽게 끝맺음을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인 21:24,25에서증언자들의 추신(Postscripts)을 기록함으로써 본서의 진정성을 재차 확증해 주고 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요한복음 1:1~5절까지 해당되는 본문, 곧 본서 전체의 서론부분으로서,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말씀이라는 이미지로, 그리스도의 본질(1:1~5)

1)본문내용(1:1~5)

첫째, 예수를 말씀으로 제시하여 진행되는 예수의 신성과 선재성의 강조(1~2)

사도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는 선언으로 예수를 말씀 곧 로고스로 제시하는 동시에 주의 선재성과 영원성을 선언한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또한 그 말씀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한다. 또한 그가라는 주어를 통해 이제 말씀이 곧 예수임을 밝히며, 예수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음을 재강조한다.

둘째, 예수의 천지창조사역 동참 사실 강조(3)

사도요한은 천하 만물이 곧 예수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피조된 것은 그 어떤 것도 예수 없이는 된 것이 없음을 다시 강조한다.

셋째, 예수를 은유한 말씀안에 있는 생명의 빛 및 이에 대한 세상의 기본자세 지적(4~5)

사도 요한은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는데, 이는 사람들의 빛이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빛이 어두움에 비취었으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한다.

 

2)영적 교훈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장엄한 스케일로 시작되고 있다. ,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들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나, 탄생 기사, 혹은 공생애 사역의 개시를 필두로 하여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아득한 이전의 시간 곧 세상이 있기 전 영원(永遠)의 세계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처럼 요한이 독자들을 아득한 이전의 시간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그의 복음서의 서두에서부터 그리스도의 본질과 존재에 관한 분명한 입장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또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도록' 하는 데 있다(20:30,31). 즉 예수께서 제2위 성자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내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이 증거를 사람들이 받 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본서의 기록 목적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 제2위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삼위일체(the Trinity)의 교리에 익숙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겠지만, 이 문제는 실상 오랜 세월 동안 교회 역사를 논쟁과 분열로 몰아넣었던 민감하고도 중대한 문제였으며, 오늘날도 많은 이단들과 현대 신학의 크고 작은 유파(流派)들은 여전히 삼위일체 교리를 배격하고 있다. 삼위일체 교리 논쟁의 핵심에는 기독론(Christology)이 자리잡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인정하느냐 않느냐가 언제나 삼위일체 논쟁의 핵심 이슈인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요한이 본서를 기록할 당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한은 본서를 헬라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던 디아스포라(Diaspora)유대인들과 이방인 출신 성도들을 주 대상으로 하여 기록하였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시면서도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계시가 아직 불충분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록 그리스도를 대망하면서도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과 신성을 공유하신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생각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도, 바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One)’ 이시라는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정신은 고귀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에 젖어 있던 헬라 출신의 성도들고귀한 신적 존재인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은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이미 케린투스(Cerinthus)와 같은 초기 영지주의자들,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에게 수세()시 잠시 내려왔다가 십자가 수난 직전에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는 해괴한 이론으로 기독교인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목회적 형편을 고려하고 있던 에베소의 노()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되심을 변증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한 것이며, 이제 본서의 서두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강조함과 동시에, 또한 그의 인성(人性) 또한 간과하지 않고 제시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맥락에서 본서의 신학적 서론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과 그에 대한 세상의 반응을보여주는 본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세분할 수 있다. 먼저 1:1-5로고스(Logos), 즉 말씀(the Word)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말씀의 영원한 선재(Eternal Preexistence)를 말하고 있으며,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God Himself)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말씀의 창조 사역을 언급함으로써 그가 이단자들의 주장처럼 창조된 존재(created being)가 아니라, 창조주(Creator)라는 것을 밝힌다. 말씀 안에 하나님의 풍요로운 신적 생명 (Divine Life)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는 빛으로 나타남을 밝힌다.

혹자는 요한복음이 서두에 로고스를 언급한 것을 통해, 요한복음의 사상적 배경을 유대교와 헬라 철학을 융합한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종교 철학자 필로(Philo)’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필로의 사상 체계와 분명히 다른 것은 필로는 로고스를 순수 개념으로서 비인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도 요한은 로고스를 태초 이전부터 존재하였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으며, 창조 사역을 수행하였으며, 하나님 자신이신 존재 즉 분명한 인격적(人格的) 개념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점이 있다. 즉 사도 요한은 예수께서 성육신 이전의 단계에서 여러 가지 사역을 하시던 중 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서, 특히 계시의 전달자로서 활약하셨음과 결정적으로는 이제 성육신하여 세상에 오사 하나님의 구속의 복음을 전하는 동시에 그 복음의 실체가 되심을 나타내는 상징적 용어로 로고스, 즉 말씀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첫째, 예수님은 누구로 믿느냐가 신앙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그 사람의 구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의 서론은 요한복음 1:1~18절에서는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요, 하나님 자신이시며,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분이시다. 그분은 세상의 어둠을 정복하는 참 빛이시고, 은혜와 진리를 이 세상에 가져오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분이시다.

둘째, 예수님은 말씀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지금도 말씀하신다(1~2).

지금 예수님은 기록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셋째, 예수님은 만물이 창조되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으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으니, 그분이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시다(3). 그분이 없이는 그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넷째, 예수 안에만 영원한 생명이 들어 있고, 예수님만이 어둠을 이기신다(4~5).

이 세상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 다만 그 생명을 흉내내고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생명은 일시적이고 유한한 생명으로 피조된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만이 어둠 즉 사망과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이길 수 있다.

<요한복음 1:1~5 헬라어 직역>

(01) 시작 안에 그 말씀이 있어왔다. 그 말씀은 그 하나님에게서 있어왔다. 그 말씀은 하나님(정관사없음)으로 있어왔다

(02) 이이(이 말씀)가 시작 안에서 그 하나님에게서 있어왔다

(03) 모든 것들(만물)이 그(말씀)를 통하여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말씀) 없이는 하나도 있게 되지 않았다

(04) (말씀) 안에 생명(정관사없음)이 있어왔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그 빛으로 있어왔다

(05) 그리고 그 빛이 그 어둠 안에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그것() 이해하지(따라잡지, 단단히 붙들지) 못했다.  

< 요한복음 1:1~5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요한복음이 어떤 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는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이심을 증거함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유대교인들의 갈등과 그리고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미혹에 흔들리는 이방지역에 사는 유대 혹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예수께서 누구며 영생은 어떻게 얻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지침서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태초부터 말씀으로서 선재하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그의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크게 1~12장까지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른 부분과 13~21장까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다룬 2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1~12장에 나오는 일곱 가지 표적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군지를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 13장에서 17장은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의 말씀으로서, 13~16장에서는 고별설교가 나오며, 17장에서는 대제사장적 기도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6~15장에 나오는 나는 ~이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절대적 자기선언와 7개의 은유적인 자기선언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신성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보내신 인격적인 성령 곧 거듭나게 하고 진리를 가르치며, 말씀을 생각나게 하는 보혜사 성령까지 강조하는 아주 특별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요한복음을 잘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누군지를 잘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잘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잘 배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 자신인 것을 잘 배우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못하게 함으로 영생을 얻지 못하게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까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수께서 누군지를 정확히 알고 믿어 영생을 소유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책이로구나.

2. 요한복음은 유대교의 박해와 영지주의 이단의 미혹에서 건지기 위해 쓰여진 책이로구나.

3. 예수님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주 하나님 자신이로구나.

4.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으로서 그분 안에 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세상에는 빛으로 들어오셨구나.

5.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복음 1:1~5 헬라어 직역>

(01) 시작 안에 그 말씀이 있어왔다. 그 말씀은 그 하나님에게서 있어왔다. 그 말씀은 하나님(정관사없음)으로 있어왔다

(02) 이이(이 말씀)가 시작 안에서 그 하나님에게서 있어왔다

(03) 모든 것들(만물)이 그(말씀)를 통하여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말씀)가 없이는 하나도 있게 되지 않았다

(04) (말씀) 안에 생명(정관사없음)이 있어왔다. 그리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그 빛으로 있어왔다

(05) 그리고 그 빛이 그 어둠 안에 비추고 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그것() 이해하지(따라잡지, 단단히 붙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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