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예레미야강해(31) 남유다의 구원 경륜과 이 시대의 구원 경륜의 공통점과 차이점(렘30:1~31:40)_2023-03-16(목)
https://youtu.be/8TJZJvikiuc [또는 https://tv.naver.com/v/34145979]
1. 남유다는 어떻게 멸망했는가?
북이스라엘이 B.C.722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에게 멸망당하고, 그때로부터 136년 뒤인 B.C.586년 남유다마저 멸망당한다. 이때 남유다 왕은 제20대 시드기야왕이었고, 남유다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당한다. 그렇다면 왜 남유다는 멸망당했는가?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주신 십계명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에게 주신 사명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랬다. 남유다는 그 나라가 후대로 갈수록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고 우상들을 섬겼다. 그리고 악행을 자행했다. 그리고 그 행위와 잘못을 고치도록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들의 음성을 외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유다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2. 남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이란 어떤 개념인가?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에게 멸망이란 어떤 개념인가? 그것은 2가지 개념이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영영히 기업으로 주신다고 했던 약속의 땅에서 뽑혀지는 것이다. 즉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진노 중이라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살 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결국 그 말씀듣기를 거부함으로 진멸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유다 백성의 일부는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남겨진 백성들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다 죽었다.
3.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에게 어떤 약속을 해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남유다 백성들에게 회복을 약속해 주셨다. 즉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70년이라는 포로 생활을 마치면,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바벨론으로부터 그들의 조상들이 살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여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렘30:3). 그리하여 바벨론에서 70년이라는 포로 생활을 마친 유다인들 중의 일부가 B.C.537년 다시 고국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유다인들은 두 차례 더 고국으로 귀환하게 된다.
4. 남유다의 구원 경륜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남유다는 후대로 내려갈수록 많은 악행과 죄를 저질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유다에게 쏟아 부으실 진노의 잔이 가득 차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내려진 선고는 곧 '진멸'이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왜냐하면 전부다 죽이지 않고 일부를 바벨론으로 옮겨 주셨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들을 전멸시키지 않고, 일부는 살려두시어 바벨론으로 옮기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다윗과 맺은 언약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윗 집과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삼하7:16). 그리고 조금 더 앞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13:14~15). 그리고 그보다 더 앞으로 가서 아담의 시대로 가면,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창3:1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씨)을 보내어 그로 하여금 영원히 왕이 되게 하고 가나안 땅을 영원히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유다의 범죄로 인하여 그들은 모두가 진멸당할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진멸 중에서 남유다 백성들의 일부를 살려 두신 것이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남유다 백성이 진멸을 당하려 할 때에, 가나안 땅에서 뽑혀 나가지 않도록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고 있는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고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라고 선포케 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의 음성듣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바벨론의 군대에 의해 무참히 죽어나갔고, 일부만 바벨론 땅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대항하다가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나쁜 무화과'라고 하였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좋은 무화과'로 표현하셨다. 그리고 포로로 잡혀간 유다인들이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의 수가 적어지지 않는다면, 좋은 무화과인 그들을 다시 본토로 되돌아가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리하여 70년이 지난 후 남유다인들은 3차례에 걸쳐 고국 땅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래서 남유다 땅에 성읍을 건축하고, 제2성전을 건축하게 된다. 이것이 남유다인들의 구원 경륜이자 회복의 역사인 것이다.
5.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구원 경륜은 어떠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으면 천국에서 쫓겨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주신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구원받았다면 자신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자기가 잘못하여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혹시 징계의 채찍은 댈지언정 구원에서 제외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교회에서 전하는 기존 교리들이 그렇게 쓰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웬만히 큰 죄를 짓지 않는 한, 자신의 구원은 변함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과 회복의 과정을 잘 살펴보라. 그러면 오늘날에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의 구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곧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성도들의 개인 구원의 역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늘 예레미야 30~31장의 말씀을 통하여 남유다의 구원 경륜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것은 죄를 지어 진노의 잔이 가득 차게 된 남유다의 운명은 철저한 파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극히 일부는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옮겨진다. 그렇다. 믿는 성도들이라도 대부분은 이처럼 가나안 땅으로 표현된 천국의 기업을 차지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진멸당하여 죽거나 뽑혀졌던 남유다의 백성들처럼 오늘날의 성도들도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히 일부가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와 원래의 기업을 차지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극히 소수만이 회개하여 천국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최종 관문은 '회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령받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지키며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은 죄값을 본인 스스로가 물지 않고, 예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것으로 인하여 상쇄시킬 수 있는 '회개'는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라고 아니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러한 비밀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면, 그는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 비밀을 전해 주어야 한다. 남유다 백성들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에 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세우기는 했지만, 예루살렘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함으로 없어지고 말았던 전철을 우리는 밟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소식을 전파해 준 안디옥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예루살렘교회에서 안디옥교회로 배턴이 옮겨졌던 것이다. 고로 우리가 회개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세상에 계속해서 살아남아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2023년 03월 16일(목)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