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어원과 유래 남태우 칼럼

2017. 9. 17.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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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台祐(남태우) 교수의 특별기고

한가위의 어원과 유래

 

 

‘추석(秋夕)’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고대로부터 있어 왔던 달과 농경사회에 대한 신앙에서 그 뿌리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사회에 있어 날마다 세상을 밝혀 주는 태양은 당연한 존재로 여겼지만, 한 달에 한번 만월(滿月)을 이루는 달은 고마운 존재였다. 밤이 어두우면 맹수의 접근도 알 수 없고, 적의 습격도 눈으로 볼 수가 없기에 인간에게 있어 어두운 밤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또 이때쯤이면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해진다. 그래서 인심이 나고 포만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러한 가운데 만월은 인간에게 있어 고마운 존재였고, 그 결과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게 되었다. 그래서 밤중에서도 일 년 중 가장 큰 만월을 이루는 8월 15일인 ‘추석’이 큰 명절로 여겨진 것은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만월 아래에서 축제를 벌이고 먹고 마시고 놀면서 춤추었으며, 줄다리기, 씨름, 강강술래 등의 놀이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므로 고대에 만월을 갈망하고 숭상하던 시대에 이미 일 년 중에서 가장 달이 밝은 ‘한가위’는 우리 민족 최대의 축제로 여겨지게 되었고, 후에 와서 의식화되어 명절로 제정을 보게 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추석(秋夕)은 풍요의 계절이다. 이 말은 조선후기 문인 유만공(柳晩恭)의 <추석>이라는 시 ‘무가무감사가배(無加無減似嘉俳)’에서 유래한다. 추석은 그 만큼 풍족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맞을 수 있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추석을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 푼주의 송편이 주발 뚜껑 송편 맛보다 못하다” 등 추석의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추석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말이나 새들에게, 시궁창을 드나드는 쥐새끼들에게도 포식의 날인가 보다”라고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토지>에도 이같이 언급한 대목이 나오는데, 예나 지금이나 풍성한 명절임을 말해준다.

그런데 아낙네들의 비애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 태곳적부터 이미 죽음의 그림자요, 어둠의 강을 건너는 달에 연유된 축제가 과연 풍요의 상징이라 할 수 있을는지… 한산 세모시 같은 처량한 삶의 막바지 체념을 묵시(默示)하는 축제나 아닐는지.” 풍요로움 속에 들어난 여성들의 한을 묘사한 것이리라.

차치하고 ‘추석(秋夕)’은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이다.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으뜸 명절이다. 이 날을 ‘가배(嘉俳, 추석을 일컫는 고어(古語), ‘가위’라는 우리말을 이두식), 가배일(嘉俳日), 아름답게 노닐다의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등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한가위’는 신라의 ‘가배’ 행사에서 비롯된 말이고, 중추절은 8월을 가리키는 ‘중추’에서 온 말이다.

8월 보름을 오늘날에는 한자어로 ‘중추절’ 또는 ‘추석’이라고 한다. ‘중추절’의 ‘중(仲)’은 가운데를 뜻하는 ‘중(中)’과 같은 뜻으로 가을의 한가운데 명절이라는 의미이다. 가을이라 하면 삼추(三秋)라 하여 음력 7월과 8월 그리고 9월을 꼽는다. 이 중 가운데 달은 8월, 그리고 가운데 날은 보름이다. ‘가배’는 바로 가을의 가운데 달의 가운데 날로 만월 명절 가운데서도 으뜸의 날이 된다. 곧 ‘가배’는 가운데 날이라는 뜻이며 실제로 가윗날은 가을의 가운데 달 곧 8월, 그 중에서도 가운데 날인 보름인 것이다.

‘가배’에 대한 기록은『삼국사기(三國史記)』권1 <신라본기(新羅本紀)>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이다. 신라 제3대 왕 유리왕 9년에 왕이 육부(六部)를 둘로 나누어 왕녀(王女)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부내(部內)의 여자를 거느리도록 하여 7월 16일부터 날마다 6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하고 오후 10시경에 파하게 하여 8월 보름에 이르러 한 달 동안에 걸친 성적을 심사하고 진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대접하며 노래와 춤으로 즐겼다. 이를 ‘가배’라 하였는데, 이것이 곧 오늘날의 한가위(秋夕)이다.

이 때 진편의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회소(會蘇), 회소’하고 탄식하는 음조가 매우 슬프고도 아름다웠으므로, 후세의 사람들이 그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것이 곧 ‘회소곡(會蘇曲)’이 되었다 한다. 이 놀이를 ‘가배’라고 했는데, 이 가배가 가위로 변해 8월 한가위 곧 추석이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려 있는 고려시대의 달거리[月令禮] 노래인 속요 <동동(動動)>의 8월 노랫말에 다시 등장한다. “팔월 보름날은 가배(嘉俳)날이지만, 임을 뫼시고 함께 지내면서 맞을 수 있다면야 오늘이 참 가배다울 텐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때의 가배는 ‘가운뎃날’이라는 뜻이며, 이 말이 변하여 ‘가위’가 되고, 여기에 ‘크다’라는 뜻의 ‘한’이 붙어 오늘날의 ‘한가위’가 되었다. 이로 보아 신라 초기에 이미 큰 명절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가배’의 어원은 ‘가운데’일 것으로 여겨지나 ‘갚는다’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즉 진 편이 이긴 편에 베푸는 잔치나 놀이로서 갚는다는 뜻에서 ‘갚다(보=報, 가=價)’의 전성명사(轉成名詞)인 ‘가뵈’가 ‘가위’로 된 것이라는 설이다. ‘가배’라는 말이 신라시대 이후 고려 속요에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 말은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중국의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에 보면 음력 8월 15일 임금이 풍악을 베풀고 활쏘기 대회를 열어 우승한 사람에게 삼베와 말을 상으로 내렸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밖에도 8월 보름날은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긴 날이기 때문에 그 날을 명절로 삼아 일반 백성들이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고 가무를 즐겨 추석이 되었다고 전한다.

‘추석’은 우리나라 4대 명절의 하나로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한가위의 한은 ‘하다(大·正)’의 관형사형이고, 가위란 ‘가배(嘉俳)’를 의미한다. 이때 가배란 ‘부·가뷔’ 음역(音譯)으로서 ‘가운데’란 뜻인데, 지금도 신라의 고토(故土)인 영남 지방에서는 ‘가운데’를 ‘가분데’라 하며, ‘가위’를 ‘가부’, ‘가윗날’을 ‘가붓날’이라고 한다. 또 8월 초하루에서 보름께까지 부는 바람을 ‘8월 가부새 바람 분다’라고 한다. 이로써 미루어 볼 때 ‘가뷔·가부’는 뒷날 가위로 속전(俗轉)된 것으로 알 수 있으니, ‘추워서’를 현재에도 ‘추버서’로 하는 것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가위’란 8월 중에서도 정(正)가운데란 뜻이니, 정중심(正中心)을 우리가 ‘한가분데’ 또는 ‘한가운데’라고 하듯이 ‘한’은 제일(第一), 큰(大)의 뜻 이외에도 한(正)의 뜻이 있음도 알 수 있다.

한가위를 추석, 중추절(仲秋節·中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 한 것은 훨씬 후대에 와서 생긴 것이다. 즉 한자가 전래되어 한자 사용이 성행했을 때 중국 사람들이 ‘중추(中秋)’니 ‘추중(秋中)’이니 하고, ‘칠석(七夕)’이니 ‘월석(月夕)’이니 하는 말들을 본받아 이 말들을 따서 합하여 중추(中秋)의 추(秋)와 월석(月夕)의 석(夕)을 따서 추석(秋夕)이라 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석은 정월 대보름, 6월 보름인 유두, 7월 보름인 백중과 함께 보름명절이다. 보름달을 상징으로 삼는 보름명절을 숭상하는 경향이 강했다. 정월 대보름이 신년맞이 명절인 반면 추석 대보름은 수확기에 행해지는 농공감사의 명절이다. 농경사회가 아닌 현대에도 설과 함께 2대 명절로 자리를 잡고 있는 민족의 대명절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명절보다 민속과 놀이가 다양하게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추석에는 반(反)보기(中路相逢)와 근친(覲親) 같은 풍속이 있었으며,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등 다양한 놀이가 행해졌다. 이러한 날에 마시는 가양주가 없을 수가 없다.

 

 

한가위 차례상에 햅쌀술

민족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전통 ‘차례주(酒)’다. 이 ‘차례주’는 조상께 ‘음복(飮福)’을 빌기 위해 사용될 뿐만 아니라, 오랜 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함께 ‘음복례(飮福禮)’를 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음복’이란 복을 마신다는 뜻으로, 조상의 음덕을 입어 자손들이 잘 살게 해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천?지?인 삼위일체를 이루게 하려는 소망이 담긴 것이다. 추석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수를 앞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심이 넉넉해져서 추석 때에는 서로 술대접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옛사람들은 농사지은 첫 과일이나 곡식을 먼저 사직과 조상에게 올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데, 이를 ‘천신(薦新)’이라 한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는 국가에서 각 월마다 종묘에 천신하는 물품 목록이 있고, 일반 가정에서도 한식, 단오, 추석, 동지에 사당에 천신한다. 조선 순조 연간의 시인 유만공(柳晩恭, 1793~1869)이 1년 전체의 명절. 풍속을 집대성한 <세시풍요(歲時風謠)>(1843)에도 처음 붉어진 대추와 벌어진 밤송이 같은 가을의 첫 열매를 상신(嘗新)한다고 하였는데, 상신은 그해에 새로 수확한 곡식을 먼저 종묘나 사당에 제사 지낸 후에 맛보는 것을 말한다. 과거 농경사회부터 그해 처음 거둬들인 햇물을 반드시 천신(薦新)하는 풍속이 전해오는데, 이때 오려 송편과 함께 햅쌀로 빚은 술을 차례상에 올렸다. 따라서 ‘신도주(新稻酒)’는 추석 때 마시는 절기주(節氣酒)로서 접빈객(接賓客)은 물론, 추석의 놀이행사에도 사용된다. 그의 <추석>이라는 시에서 “…웃음이 넘치는 마을마다 술과 음식이 지천이다…”라고 읊고 있는데, 물론 여기에서 술은 ‘신도주’임은 물론이다.

秋夕/ 柳晩恭

場市繁華樂歲秋(장시번화낙세추)/ 시장은 들썩들썩 풍년 정취 즐겁고

凞凞行旅故遲留(희희행려고지류)/ 희희낙락 길손들은 머뭇머뭇 걸음 못 떼네.

欣看野店侈肴饌(흔간야점치효찬)/ 주막집에는 음식이 풍성해 눈이 번쩍 뜨여도

到處何多蹇脚牛(도처하다건각우)/ 어디 가나 다리 부러진 소가 어째 저리 많을까?

農家秋夕最良辰(농가추석최양신)/ 농촌에서는 추석이 제일 좋은 명절

歡笑村村醉飽人(환소촌촌취포인)/ 웃음이 넘치는 마을마다 술과 음식이 지천이다.

海市山場來去路(해시산장래거로)/ 사람들 오가는 바닷가 시장 산촌 장터 길에는

優婆鼓舞唱回神(우파고무창회신)/ 사당패가 북치고 노래하며 신령을 부르네.

추석 때 빚는 술은 특히 많은 양이 필요한데, 술을 빚어두고 소놀이 패나 거북놀이패가 마을에 왔을 때 후하게 대접하며 잔치를 벌이는 우리 고유의 습속으로 미루어 ‘신도주’는 제주(祭酒)이자 잔치 술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가위 차례상에는 토실하게 살이 오른 햇닭도 쪄내고 햇과일도 올리고 햇곡식으로 술과 송편으로 빚어 올렸다. 이때 햅쌀로 빚은 술을 옛사람들은 ‘신도주(新稻酒)’라 불렀는데, 이는 우리말로 ‘햅쌀술’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쓰인 것으로 전하는 전라도 지방의 문헌인 1837년경에 쓰인 작자 미상의 <양주방(釀酒方)>에 보면 ‘햅쌀술’이 등장한다. 햅쌀로 빚는 술이라는 뜻이므로, 햅쌀로 빚는 술은 햅쌀로 빚는 송편(松餠)과 같은 추석명절 절식(節食)의 한 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햅쌀술’을 한자어로 표기하면 ‘신도주(新稻酒)’가 되는데, 이 ‘신도주’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36년경 문헌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다.

이로써 ‘신도주’는 조선시대 중기 이후에 빚어진 술임을 알 수 있는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술 빚는 법은 기록되어 있지 않고, 다만 “공주 땅에서 햇벼가 나면 담그는 술로, 4~5일 만에 뜬다. 마시면 배가 아픈데 오래 두면 어떨지 모르겠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햅쌀술’이나 ‘신도주’가 다 같이 그 해 처음 거둬들인 햅쌀로 빚는 술로써, 추석 때 마시는 절기주(節氣酒)이자 제주(祭酒)였음을 알 수 있다.

농경사회에서의 식량조달은 그 해 처음 수확하는 곡식에서 가져오는 것이므로, 처음 수확한 곡식은 신성시하여 제물로 이용되었던 경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햅쌀술’은 ‘보졸레누보’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신께 바치고 제사 후에는 함께 나눠 마시는 ‘공신공음(貢神共飮)’의 성격을 갖는다 할 것이니, 우리나라의 연중 술 빚기는 그해 첫 수확물인 햅쌀을 이용하여 빚는 ‘햅쌀술’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햅쌀술’ 빚는 법은 조선 초기 1540년경에 탁청공 김유에 의해 저술된 요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의 ‘향고방’이나 ‘백화주(百花酒)’, <규곤시의방(閨?是議方)>의 ‘삼해주(三亥酒)’, ‘순향주(醇香酒)’ 빚는 법과 같은 것으로서, 고급 청주류의 하나임을 알 수 있으며, ‘햅쌀술’이나 ‘신도주’의 의미는 처음으로 거둬들인 농삿물을 이용해 빚는 술이라는 사실에서, 신성함과 정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맛이 예삿술보다 매우 깨끗하고 맑으며, 깊은 맛과 약간의 방향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밀가루의 사용에 있다.

정학유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 ‘8월’에는 추석 무렵의 풍성 한 수확과 분주한 장터, 차례상에 올릴 제물(祭物) 준비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그중 음식과 관련된 부분만 살펴보면, “포를 뜬 조기와 말린 북어, 추석 가절(秋夕佳節)에 사용할 제물(祭物)일세. 오려 송편과 햇수수로 빚은 술, 박나물 볶아 내고 토란으로 국 끓여, 정갈하게 차린 물품 선산(先壟)에 제사하고 이웃에 나눠주며 기쁜 정을 함께 하네” 하였다. 마른 명태 젓조기로 추석 명절 쇠어보세. 햅쌀술 오려 송편 박나물 토란국을 조상 무덤 제사 쓰고 이웃집과 나누어 먹는다. 며느리 말미 얻어 본가 부모 뵈러 갈 때 개잡아 삶아 얹고 떡고리며 술병이다.

‘신도주’를 마셨다는 얘기는 남용익(南龍翼, 1628~1692)의 <호곡집(壺谷集)>, 오도일(吳道一, 1645~1703)의 <서파집(西坡集)>, 조태억(趙泰億, 1675~1728)의 <겸재집(謙齋集)>에도 등장한다. 1837년쯤에 집필된 <양주방>에는 햅쌀술 담그는 법을 소개하고 있다. 재료는 햅쌀 3말, 햇누룩가루 3되, 밀가루 3홉, 끓인 물 3말이다. 현대 과학이 적절하다고 규명한 분량만큼의 누룩이 들어가고, 영양제로 밀가루가 들어가는 게 특색이다. 누룩도 햇누룩을 쓰라고 한 것도 인상적이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술 빚는 관습으로, 술 빚을 쌀은 식량으로 쓰기 위한 벼보다 먼저 파종하고 모내기를 했다가, 벼가 다 자란 논의 벼 가운데 가장 실하고 잘 여문 것을 먼저 수확하여 따로 보관하여 두고, 거기에서 얻은 쌀로 술을 빚을 정도로 술 빚는데 따른 원료조달에 정성을 다했다. 연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술인 만큼, 맛은 물론이고 향기가 좋아야 했고, 무엇보다 맑고 깨끗한 술을 얻기 위해 ‘중양주(重讓酒)’를 빚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과일에는 각각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먼저 ‘대추(棗, 木蜜)’는 씨가 하나뿐이라서 ‘왕’을 의미했다. 그래서 왕이나 성현이 될 후손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의미로 대추를 놓았다. 대추는 암수가 한 몸이라 한 나무에 열매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열리고 꽃 하나가 피면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리고 나서야 꽃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자식을 낳고서 죽어야 한다는 뜻으로 제상에 대추가 첫 번째 자리에 놓인다.

‘밤(栗)’은 한 송이에 세 알이 들어가 있어서 ‘삼정승’을 상징한다. 또한 다른 식물의 경우 나무를 길러낸 첫 씨앗은 땅속에서 썩어 없어지는데 밤은 땅 속의 씨밤이 생밤인 채로 뿌리에 달려 있다가 나무가 자라서 씨앗을 맺어야만 씨밤이 썩는다. 그래서 자손이 수십 수백 대를 내려가도 조상은 언제나 자기와 연결되어 함께 이어간다는 뜻에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징한다. 또한 밤나무 꽃밭에 가서 냄새를 맡으면 유아를 기르는 어머님 품에서 나는 냄새와 비슷하다고 한다. 유아가 성장할수록 부모는 밤 가시처럼 차츰 억세었다가 “이제는 품 안에서 떠나 살아라”하며 쩍 벌려 주어 독립생활을 시킨다. 그래서 밤은 자기와 조상의 영원한 연결을 상지하는 의미가 있다. 자손이 수십, 수백 대를 내려가도 조상은 언제나 한결같이 이어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조상을 모시는 위패나 신주는 반드시 밤나무로 깎아서 만들어야 한다.

‘배(梨子)’는 씨가 6개, 바로 ‘6판서’를 의미한다. 또한 ‘배’는 껍질이 누렇기 때문에 황색을 뜻한다. 오행에서 황색은 우주의 중심, 중용을 나타내는데 흙의 성분(土)이기도 하다. 신의 음식이라 불린 과일 ‘감(?, persimmon)’은 씨가 여덟 개여서 ‘8도 관찰사’를 의미한다. 감나무는 아무리 커도 열매가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나무를 꺾어 보면 속에 검은 선이 없고 열린 나무를 꺾어 보면 검은 선이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천지의 이치인데, 감은 씨앗을 심은 데에서 감나무가 나지 않고 대신 고욤나무가 나며, 3~5년쯤 지났을 때 기존의 감나무 가지를 잘라 이 고욤나무에 접을 붙여야 그 다음 해부터 감이 열린다. 이 감나무에는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고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떫은 감을 재배하여 홍시나 곶감으로 이용하여 왔지만, 일본은 생과로 이용하는 단감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감은 봄에는 꽃을 보고, 여름에는 그늘을 즐기며, 가을에는 열매를 따서 먹는 등 사시사철 우리 곁의 친근한 존재로, 세시풍속에서 중요한 제물로, 또한 약용으로도 중요하게 이용되어 왔다. 우리민족이 예로부터 이용해오던 감나무의 종류는 감과 고욤나무의 2 종류이다. 떫은맛의 유무에 따라 떫은 감과 단감으로 나눌 수 있는데 떫은 맛 성분의 변화에 따라 다시 완전, 불완전으로 세분된다. 감은 모양도 다양하지만, 육질의 단단함, 과피색, 성숙 시기 등도 모두 달라 이름도 제각각으로 불리며, 농업에서는 크게 생과로 유통되는 단감과 떫은맛을 없애는 과정이 필요한 떫은 감으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은 피로에 지친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의 보고(寶庫)이며, 특히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물질과 눈에 좋은 성분이 많다. ‘사과(沙果)’는 옛날에는 없던 과일이나 근대와 와서 배가 없을 때 대신 쓰는 과일이 되었는데 사과의 씨도 8개이다.

‘생선’에도 염원이 담겨 있다. ‘명태포’는 우리나라 동해바다의 대표적인 물고기가 명태이고 머리가 크고 알이 많아 훌륭한 아들을 많이 두며 알과 같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는 뜻이 담겼다. ‘조기’는 서해안에서 나는 대표적인 고기이며 예전부터 생선의 으뜸으로 생각되어 왔기 때문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제수 품목으로 여겨져 왔다.

우리 옛말에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예로부터 제사에 대한 논란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다. 우리나라는 조선이 건국하면서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받아들이고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자가례(朱子家禮)>의 실천을 권장했다. 그러나 <주자가례>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주자가례>가 중국이라는 외국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당시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유학자는 <주자가례>를 우리 생활에서 실천하게 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수많은 ‘가례서(家禮書)’가 간행됐다. 그 모두가 자신의 철학과 학문을 바탕으로 하는 수준 높은 연구서로서 어느 누구도 자신이 저술한 가례서에 첨삭(添削)이 이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제례는 가례의 한 부분으로 ‘남의 제사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말은 바로 이러한 조선시대 제례 시행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에는 나름대로의 사상과 철학을 바탕으로 한 여러 유형의 제례가 시행되었고 제각기 다른 제례의 양식은 오히려 그 집안의 예로 인정되어 주변의 간섭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옛날 어느 선비가 농촌마을을 지나다 발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제사상 밑에 농부가 열심히 여러 번 절을 하고 있었다. 선비는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여보시오! 어째서 제사상 밑에다 절을 하시오?”라고 묻자 “네, 생시에 선친께서 개고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상 위에는 놓을 수 없고 해서 아래에 놓고 절을 올리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선비는 “예출어정(禮出於情)이로군”이라 했다. 바로 예(禮)는 바로 정(情)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제례에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것은 조상에 대한 공경하는 마음이다. 형식에 얽매인 일률적인 제사상 차림보다는 생시의 모습을 생각하고 평소 좋아하시던 것, 그 계절의 산물 등을 고려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아무런 원칙도 없이 마음만을 앞세워서는 안 된다. 제례는 너무 넘치지도 않고 너무 모자라지도 않도록 기준을 세워 예의 바르고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로서 가꾸고 지켜나가야 한다.

‘성인군자(聖人君子)도 종시속(從時俗, 세상의 풍속에 따름) 하라’는 말과 같이 가풍(家風)에 따라서 지방에 따라서 정립된 예절 기본을 따라 정성을 다함이 도리요 효라고 생각한다. 기제(忌祭, 해마다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를 사대봉사(四代奉祀) 하는 집도 있으나 가정의례 준칙법에는 삼대봉사(三代奉祀)로 정해졌다. 뒷동산에 만월이 부끄럽다고 구름사이로 살짝 비추이는 때에 ‘신도주’ 한 잔으로 한가위 정취에 흠뻑 빠져 미움도 벗어나고 근심도 벗어나소서.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전남대 교수

중앙대학교 도서관장

중앙대학교 교무처장

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

한국정보관리학회장

한국도서관협회장

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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