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성수와 회개의 원칙_2016-04-27

by 갈렙 posted Apr 2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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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은 어떤 날일까요?
주일은 2가지 개념이 합쳐진 날입니다. 하나는 안식일의 정신을 계승하는 날이요 또 하나는 영적으로 생명을 공급을 받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면 그날에 동물의 희생제사를 드려서 자신의 죄들을 용서함받았듯이 오늘날에 성도들도 주일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주일에 예수께서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전되고 공급받아, 새로운 생명으로 충만한 날이 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천지창조시에 하루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에 안식일이 다가고 안식후 첫날(주일)이 되었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제대로 된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 되는 하루의 사이클과 더불어, 안식일이 다가고 주일의 새벽이 밝아오는 일주일의 사이클을 잘 알고 그 이치에 따라 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매일 저녁이 되면 하루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아침이 되면 새로운 말씀을 받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할 줄로 앏니다. 그리고 주일에 나와서는 일주일에 잘못했던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회개하여 죄를 씻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일주일동안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일종의 획을 긋는 것입니다. 주일은 획을 긋는 날입니다. 과거의 것을 완전히 청산해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회개에 대한 오해부터 먼저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는 하나님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죄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하나님이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안 하실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음을 알려주시고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말해 죄인인 우리가 자신이 잘못 행했음을 성령께서 조명하고 깨닫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자들에게는 징계를 통해서라도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벧후3:9, 요16:7~8, 계2:21).

그렇다면, 주일에 있어서 회개함으로 죄용서를 받는 원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제1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개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시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용서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분명 죄를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에 칼빈주의자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칼빈주의자들은 회개도 하나님께서 하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어놓고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회개시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러다가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은 죄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걸들랑 즉시 하나님 앞에 그것을 내어놓고 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회개의 제2원칙은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달은 다음 그 죄를 고백했으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용서마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눅15:22~24). 그런데 개신교인들은 이것이 잘 안 됩니다. 천주교에서는 범죄하면 고해성사를 하고, 거기서 신부가 지은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립니다. 일주일동안 화장실 청소를 하게 한다든지, 일주일동안 금식하게 한다든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고했던 자들은 그 일을 실천함과 동시에 자신의 죄를 완전히 용서되었다고 확신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이외에 다른 것이 더해져야 죄용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신교인들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면 용서된다는 말씀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정말 자신의 죄가 용서되었는지 눈으로 확인할 길이 없기에 자백해놓고도 또 자백하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사실 자신이 지은 죄를 고백한다 해도 그것이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개신교인들은 자신이 죄를 고백해도 하나님께서 정말로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셨는지 인지하기가 쉽지 않아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까지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분명 용서해주신다는 사실을 말이죠.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라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뉘우쳤고 자책했지만 그 죄에 대한 처벌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처리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순전히 자신이 생각해서 결정하고 처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준 생각을 그대로 실행에 옮긴 결과일 뿐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요10:10)"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그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요8:44). 가룟유다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심판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죄는 사람이 짓는다고 해도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자신이 지은 죄를 자신이 처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가져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처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탄의 말을 듣고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므로 영원히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제2원칙이란 자신이 자백한 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엡4:32). 돌아온 탕자의 경우를 보십시오. 아버지는 다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때 돌아온 탕자는 과연 아버지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용서와 회복을 끝까지 뿌리쳤습니까? 아니면 받아들이고 감사했습니까? 그는 철저히 자신이 잘못했음을 시인했습니다.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그를 죄의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인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의 넉넉한 사랑에 안긴 것입니다. 물론 눅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는 아버지가 아들로 성육신하셔서 둘째아들 대신 죄값을 대신 받았음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를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지 않습니까?(롬6:23). 그리고 음부에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로 오신 하나님(사9:6)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음부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죽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위해 사람이 되어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대신 담당하신 것이죠.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자신의 지은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것까지 알고 하나님의 용서를 믿고 받아들여야 회개를 제대로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까지 그대로 받아야 합니다. 이것까지 포함해야 회개를 진짜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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