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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 369장 죄짐맡은 우리 구주

[말 씀] 에스라 1:1-4(구약711면)
2008.9.1(월)


< 서론>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스라서』는 이스라엘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3차 포로귀환이 끝난 직후(B.C.444년 이후)에 씌여진 역사서 가운데 하나입니다. 당시 역사서 중에서 특히 에스라서는 1~2차 포로귀환(B.C.538년, 458년)의 과정과 아울러 그 때 일어난 사건 즉 포로귀환과 성전의 재건(1-6장) 및 이스라엘백성들의 회개와 결단(7-10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책은 과연 누가 썼을까요? 『에스라서』는 책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2차포로 귀환을 주도한 당시 율법학자이자 제사장이었던 “에스라”가 썼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새벽시간에 6일간 에스라서를 통하여 여러 가지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약속의 하나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은 정말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인가? - 1장
70년동안이나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백성은 과연 어떻게 하여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사(페르시아)의 제1대 고레스왕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스1:1-4). 그런데 성경은 이를 예레미야의 예언(렘25:11, 29:10-14)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렘 25: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렘 29:10-14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귀환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역사일까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해답을 줄 수 있는 실마리를 우리는 바사왕 고레스의 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2절까지의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스1:1-2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고레스는 말합니다. 내가 지금 온 나라에 공포도 내리고 조서도 내리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사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해 줍니다. 당신의 성경의 모든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믿고 있습니까? 이러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는 우리의 죄용서, 기도응답에 관한 약속 뿐만 아니라 앞으로 있게 될 종말과 천국에 관한 미래예언까지도 필히 성취될 것을 확실히 보증해 주고 있습니다(사55:10-11).
사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B.C.586년 유대나라를 멸망시킨 제국 바벨론(신바빌로니아제국)은 사실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나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강력한 바벨론이라는 나라도 메대와 바사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으니까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다 일시적입니다. 지금 당신은 잠시 잠깐 없어질 것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 분인지 고레스왕의 칙령이 내린 연도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고레스가 포로귀환명령을 내린 해는 그가 왕이 되던 해 즉 B.C.538~547년경의 일입니다. 그런데 포로귀환은 그 다음해에 시작되었으니, 해로 따지자면 B.C.536년이 됩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처음으로 바벨론이란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때가 B.C.606년이니, 이스라엘 나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딱 70년만(606년-536년=70년)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하나님의 섭리인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권세와 능력을 믿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사람들은 종종 모든 일에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생각하다보니, 망각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에 있어서도 전능하심과 동시에 망각에 있어서 전능하신 분입니다. 즉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죄를 기억하실 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을 같이 읽어봅시다(요일1:9, 히8:10-12).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들)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들)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게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히8:10-12 또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또 예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기도해 놓고도 종종 그 응답을 기다리지 못해 금방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반드시 기도한 것에 대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와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중요하고도 신실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일부러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시기를, 기도한 다음에는 항상 낙망치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눅18:7-8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다름 아닌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하신 말씀이라면 그분의 전능성에 흠이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민23:19).
민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우리도 다같이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약속의 하나님, 나는 주님의 약속을 믿습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과연 어떻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사실 우리 주 예수님도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때가 차매 우리를 구하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갈4:4)
갈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이제 우리는 이 세상의 역사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움직여지고 있음을 배웠습니다. 포로귀환이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바사왕 고레스의 명령으로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먼저 있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민족과 나라의 흥망성쇠, 개인의 흥망성쇠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민족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데, 하물며 개인의 흥망성쇠는 또 어떡하겠습니까? 내가 잘 되고 못되는 것도, 내가 흥하고 망하는 것도, 내가 힘들고 평안하고 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끝까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주관하심을 믿고, 내게 닥쳐오는 모든 어려움이라도 이겨내십시오. 이 우주의 전 역사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개인적인 일들에서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렘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것은 결코 재앙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평안입니다. 장차 우리의 미래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만을 붙잡고 있다면 당신은 희망이 있습니다. 변함없는 약속의 말씀을 당신의 양식으로 삼으십시오. 그리고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당신도 언젠가는 하나님이 얼마나 변함없는 분이며, 약속을 지키시는 분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말 씀] 에스라 1:5-11(구약711면)
2008.9.2(화)


우리는 어제 왜 고레스가 속국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본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렸을 때에 왜 죽지 않고 살게 되었으며, 장성하여 왕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존재이유에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레스왕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2. 누가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될 수 있을까? - 1장
바사왕 고레스는 포로귀환명령과 아울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더하게 됩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냥 빈 손으로 돌려보내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였습니다. 먼저는,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제사에 사용할 짐승까지 주어서 보내라고 명령함과 동시에 예루살렘 성전에 사용할 예물까지 도와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스1:4). 뿐만 아니라,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왕이 빼앗아 자기 신전에 두었던 예루살렘 성전의 모든 기명까지 다 꺼내어, 유다총독이었던 세스바살에게 붙혀 가져가도록 명령하였습니다(스1:7-11).
스1: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스1:7-11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것이라 8 바사 왕 고레스가 창고지기 미드르닷에게 명령하여 그 그릇들을 꺼내어 세어서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주니 9 그 수는 금 접시가 서른 개요 은 접시가 천 개요 칼이 스물아홉 개요 10 금 대접이 서른 개요 그보다 못한 은 대접이 사백열 개요 그밖의 그릇이 천 개이니 11 금, 은 그릇이 모두 오천사백 개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갈 때에 세스바살이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갔더라
이 세상 어떤 사람치고 자기의 소유가 된 물건을 그냥 내주는 데 아깝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레스왕은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이 칙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는 왜, 자신의 재물이자 나라의 보화인 은과 금의 성전기명들을 그렇게 쉽게 내 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외삼촌이자 메대의 마지막왕이었던 다리오와 함께 바벨론을 정복할 무렵, 왜 바벨론이 멸망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또다른 공과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벨론의 마지막왕이었던 벨사살(B.C.552-539)이 술에 취한 나머지, 살아계신 신이시자, 전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전의 기명들을 함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단5:1-6).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연회석상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왕국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람어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러자 벨사살왕은 얼마나 두려워 떨었겠습니까? 얼굴은 창백해졌고, 넓적다리 마디는 녹는 듯하였고, 그 무릎이 서로 부딪혔습니다. 그러자 당시 왕궁자문위원이었던 다니엘은 그와같은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단5:22-24 벨사살이여 왕은 그(느부갓네살)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아직도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23 도리어 자신을 하늘의 주재보다 높이며 그의 성전 그릇을 왕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족들과 왕후들과 후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은, 구리, 쇠와 나무, 돌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24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
고레스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주관자가 진정 누구인지를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운명 또한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을 해서는 절대 세상만국의 주권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기꺼이 성전기명들을 꺼내어 주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내가 가진 모든 것 심지어 내 생명까지라도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떻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고레스가 장차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충분히 감당할 사람임을 일치감치 아셨습니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기 적어도 100여년 전(B.C.690년) 즉 히스기야가 왕이었던 시절에, 하나님은 그를 당신의 ‘기름부은 받은 종’이자 자신의 ‘목자’라고 지명해 놓으셨던 것입니다(사44:8-45:1).
사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사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고레스는 사실 이방 메대사람으로서 바사국의 왕이 된 인물이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포로된 생활로부터 귀환토록 쓰시기 위해 하나님이 일찌감치 예비해놓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죽지 않았고, 그를 죽이려드는 사람들마저 오히려 자기 협력자 내지는 부하로 부리는 왕이 되었으며, 그들과 함께 전 아시아대륙을 정복하는 대왕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고레스에 대해 계속해서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사45:2-7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3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4 내가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자 이스라엘 곧 너를 위하여 네 이름을 불러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5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6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7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우리의 주 예수님께서도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오셔야 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사람으로 태어나셨는지와 또한 그가 어떠한 죽음을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손에 쥐어졌지만, 주님은 결코 그것을 다 누리며 생활하지 않았습니다. 만세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그 뜻을 이루는 것이 자신의 기쁨이었습니다(요8:29).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요12:24).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어느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막14:3-8). 한 여인이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는 그 옥합을 깨드려 향유를 그분의 머리 위에 부었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분개하여 서로 말하였습니다. “왜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시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도 더 넘게 받고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가만 두십시오. 왜 여러분은 이 여인을 괴롭히는 것입니까? 이 여인은 나에게 아름다운 일을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장사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기름을 바른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여인이 주님께 드리는 사랑을 허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 이십세기동안 수많은 귀중한 생명과 마음의 보물과 높은 지위와 황금 같은 장래가 주 예수님께 허비되어 왔습니다. 과연 당신은 이들이 주님 위에 부은 것이 과연 허비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왜 그리 어리석은지, 왜 처음부터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결국 모든 것을 잃고서야 비로소 깨닫고 울며 회개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도 주님께 기름부음받은 고레스왕처럼 자신의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즉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말 씀] 에스라 2:1-2, 64-67
2008.9.3(수)


우리는 지난 이틀에 걸쳐,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알게 된 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보물을 아낌없이 드렸던 한 인물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제는 포로로 잡혀간 지 70년 즉 3대만에, 예루살렘에 다시 성전을 짓기 위해 귀환한 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누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길을 떠났을까? - 2장
에스라 2장은 B.C.538-437년에 반포하여 B.C.536년에 실시된 바벨론 포로 1차 귀환에 이어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B.C.516년까지의 역사(1∼6장) 가운데,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으로 실제로 귀환한 자들의 가계별과 귀환지별 귀환자들의 명단과 숫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장은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귀환자들의 가계의 명단과 숫자만 나열된 지루한 기록처럼 보일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의미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계신 그곳에 거주하는 자가 되듯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회복될 그곳에 거주할 자들이 장차 천국시민의 예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음을 말해 줍니다.
그럼, 과연 누가 70년간의 바벨론생활을 청산하고, 사막의 들짐승인 시랑과 타조의 거처가 되어버린, 폐허가 된 본국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을까요?
돌아온 사람들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먼저는 유다 왕의 직계혈통으로서 느부갓네살에 의해 포로가 된 여호야긴왕의 장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을 위시한 10명의 지도자급 사람들과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 제사장들, 레위인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의 후손들이 그들입니다.
첫째, 예루살렘 귀환자들의 대부분은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켰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이었습니다.(대상9:3,스2:3-35). 물론 다른 지파, 즉 에브라임과 므낫세지파 사람들 중에서도 귀환한 자들이 더러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남유다 특히 베냐민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23절의 아나돗, 24절의 아스마웻, 25절의 그비라와 브에롯, 26절의 라마와 게바, 27절의 믹마스, 33절의 로드와 하딧, 오노 등은 모두 베냐민 지파에 속한 지역들입니다. 한 때 베냐민 지파는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거의 멸절된 상태에 있기도 했지만(삿20-21장), 그로부터 약 600년이 지난 포로기 이후 시점에서는 오히려 귀환자들의 상당수가 바로 베냐민 지파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과거의 실수를 거울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의 죽음으로 인해, 왕족가문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끝까지 지조있는 신앙을 지켰음을 말해 줍니다.
둘째, 그래도 하나님을 섬기는 계열에 속한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중요한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스2:36-42). 이 레위인들 중에는 제사장을 보좌하는 일반적인 레위인들 뿐만 아니라 성가대 출신의 레위인과 문지기 자손들도 들어 있습니다. 특히 귀환한 제사장의 가문은 단지 4개 밖에 되지 않지만, 이 계보에 속한 사람의 수는 무려 4,289명이나 됩니다. 이는 귀환자들의 총수의 1/10 정도입니다. 이전 출애굽시대에 제사장 가계가 속한 레위지파의 가계가 이스라엘 전체의 1/30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민3:39, 1:46), 포로귀환 시대에 이들 제사장의 비율은 매우 높은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포로귀환자 중에는 이전에는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사람들 즉 느디님 사람들과 솔로몬의 종들의 자손이 언급되고 있습니다(스2:43-58). 특히 43절에서 54절까지는 느디님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드려진 사람들’이란 뜻으로, 이름 그대로 레위인들의 일을 돕기 위해 주어진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느디님 사람들이 누군지는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 학설을 들라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살려준 기브온 거민들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나무패며 물긷는 자들이라는 학설(수9:21-27)과 또 하나는 가나안정복전쟁 다시 포로로 잡은 이방인들로서 성전에서 레위인들을 도와 필요한 잡일이나 막노동을 담당하는 자들이라는 견해(민31:28-30)가 있습니다. 어느 견해이든지 이들은 성전에서 수종드는 자들, 성전의 막일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사실 이 느디님 사람들은 포로이전까지는 한낱 성전노예들로서 그들에 대한 호칭조차 언급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넷째, 자신의 가문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전혀 찾아볼 수는 없지만, 기꺼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기 위해 바벨론을 떠나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스2:59-63). 안타까운 일이지만 예루살렘에 귀환한 사람들 중에는 그 종족과 계보가 불확실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 중에서 자신의 선조가 제사장이었지만 그들이 조상의 이름을 계보에서 찾을 수가 없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사실을 통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속사적 진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장차 영원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는 점입니다(눅12:31-32).
눅12:31-32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당시 성전을 짓기 위해 귀환한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200만명 가운데서 약 5만명 가량이었으니, 고작 1/40만 그 대열에 참여한 것입니다. 대부분은 귀환의 그 대열에 동참하지 않고, 바벨론에 남아 70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세속적인 삶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이들은 고난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드리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곧 장차 천국의 모형으로 그려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자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하나님은 오늘날 누구든지 자원하여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신실한 백성들을 기꺼이 사용하신다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사를 전개해 나가심에 있어서 전적으로 당신의 주권과 엄밀하신 계획에 따라 진행하시지만, 그 과정에서는 연단을 거쳐 자신을 정결케 한 다음 반드시 자원하여 일하려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포로귀환자들은 포로지에 그냥 안주하고 있던 다른 사람에 비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의 귀환과 구원 및 성전 재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남다르게 기다리며 소망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실로 성전 재건의 역사에 동참하기 위해 현실의 안락을 떨어버리고 황무한 예루살렘 땅에서 있을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겠다는 믿음의 결단이 서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또한 포로귀환자 명단에 성전노예인 느디님사람들과 솔로몬의 신하의 자손인 노비와 같은 비천한 신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장차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신분과 관계없이 믿음을 가지고 새 예루살렘 성을 짓는데 열망을 가진 거룩한 자들의 소유임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느디님 사람들은 에스라 2장 이전에는 전혀 언급되지도 않는 미천한 신분의 노예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포로귀환 이후에 그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본장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더불어 나란히 소개되고 있을만큼 귀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당시 비천한 존재였지만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서도 기꺼이 레위인을 돕는 일을 담당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얼마 안 가서 제사장과 레위인과 마찬가지로 세금도 면제되었으며(스7:24), 결국에는 이스라엘 회중의 일원이 되었습니다(느10:28-29). 성도들이여,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낮고 천한 신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저 천국에서 나무패며 물긷는 일을 하더라도 그곳에 참여하기를 사모한다면, 우리 모두도 분명 새 예루살렘성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84:1,3,10-1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이들은 바벨론에서 어디로 다시 돌아갔습니까? 그곳은 다름 아닌 ‘평화의 기초’라 불리워지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 성이었습니다(스1:3). 예루살렘은 장차 새 예루살렘성의 모형입니다. 우리도 장차 거주할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에 참여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 힘써 달려갑시다.
아멘.

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273장 나 주를 멀리 떠났다

[말 씀] 에스라3:1-7(구약713면)
2008.9.4(목)


『에스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1~6장까지며, 후반부는 7~10장까지입니다. 전반부인 1~6장은 B.C.536년에 이루어진 바벨론 제1차 포로귀환부터 시작하여, B.C.516년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까지의 역사를 다룹니다. 그 가운데 1~2장은 고레스의 포로귀환 칙령과 성전재건허가에 따라 이루어진 제1차 포로귀환 및 귀환자들의 가계와 숫자 그리고 예물헌납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 3~6장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준비 및 그 기초를 닦는 모습과 아울러 성전공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공사를 완공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은 제3장을 보겠습니다.

4. 예루살렘에 돌아온 이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 3장

1)제일 먼저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고레스왕의 칙령에 따라 B.C.536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짓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드디어 예루살렘과 유다 도(都)로 귀환하게 됩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다시 살 성읍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어놓은 다음,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모이게 됩니다(스3:1). 성전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때가 7월이었습니다. 귀환자들에게 7월은 상당히 의미 있는 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7월은 중요한 절기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바벨론에서 생활할 때에는 새 마음으로 출발하는 새해 첫 달로 지켜왔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새 마음이 되어, 제일 먼저 할 일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제단을 수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흩어진 돌을 모아서 수축한 제단 위에 번제를 드렸습니다(스3:2). 이 일은 바벨론의 포로생활 70년 가운데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으로, 매우 뜻깊은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제 하나님께 돌아왔음을 알리는 보고이자, 그들이 맨 처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뭐든지 처음이 중요합니다.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귀환자들의 마음 속에 제일 처음은 역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맨 처음 성전기초를 놓지도 아니했으며, 성전을 건축할 재료들을 구입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일꾼들을 구하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맨 처음 한 것은 제단을 수축하는 일이었습니다. 뭐하려고 그랬을까요? 거기서 먼저 감사의 제사를 드리려했던 것입니다. 건물로서의 성전재건보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자신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제단을 수축한 것입니다.
오늘 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우리도 제단을 수축하기 위함입니다. 동탄에서의 2학기의 출발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모인 것입니다. 이번 특별새벽집회를 계기로, 이제 기도의 제단, 감사의 제단, 결단의 제단이 쌓아지므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주님과 하나될 것입니다. 다같이 한 번 고백해 봅시다.
“주여, 제가 여기 왔습니다. 이 새벽제단에 눈물로 다시 왔습니다. 주여, 나를 받아주시고, 주님과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의 관계만 회복되기만 하면, 다른 것은 자동적으로 풀리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2)그러자 그들이 해야 할 일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 귀환자들은 과연 어느 곳에 제단을 수축했을까요? 그곳은 바로 성전이 세워질 그 터 위였습니다(스3:3). 성전 터전 위에 주의 제단이 수축되는 순간, 주님의 눈이 과연 어디를 향하게 되셨을까요? 당시 주위는 70년동안이나 버려진 땅이 되는 바람에, 그곳에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록 귀환자들은 더더욱 수축한 제단에 아침과 저녁에 하나님께 상번제를 드리고 자원제를 드리며, 주님께서 그곳에 함께 해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
번제와 자원제를 드리다보니 어느덧 7월 10일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하나님께 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대속죄일 제사’라는 것입니다. ‘대속죄일 제사’란 어떤 것입니까? 1년동안 이스라엘 온 백성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대제사장이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뿌리는 속죄의 제사입니다. 그들이 지은 죄 아니 그들의 조상이 지은 죄를 용서받을 틈이 없었기에 그들은 더더욱 속죄일 제사 드리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이 대속죄일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성전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짓기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환하게 비추어 주실 것입니다. 앞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기도의 제단을 쌓으십시오. 말씀의 제단 앞에 엎드리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갈 길을 선명하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과 유다도에 안주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돌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전을 짓기 전에 먼저 제단을 수축하고 예배를 회복했을 때, 그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다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또한 이곳이 예배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하는 장소가 될 것입니다. 조금 있으면 우리 또한 무엇이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갈 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3)그런 다음 그들은 성전의 기초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제 귀환자들은 정확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먼저 성전을 건축할 전문 기술자를 고용하였고, 성전건축에 필요한 백향목과 같은 아름드리 나무들을 멀리 레바논에서 지중해를 통해 배로 들여왔습니다(스3:7). 일은 착착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성전을 건축하는 데 필요한 기술자와 재료를 마련하는 데에만 약 7개월이 걸렸습니다(스3:8).
철저한 준비는 사실 완벽한 공정을 가져옵니다. 기도해놓고 하나님의 응답이 늦는다고 너무 원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온전한 사명완수를 위해서 때로는 우리를 오랫동안 준비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언젠가 우리도 성전기초를 놓을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귀환한 지 2년이 되던 해의 둘째달에, 성전의 건축자들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와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아삽자손인 레위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했습니다.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스3:11)”
아름다운 찬송소리는 해발고도 853m나 되는 예루살렘의 언덕을 감돌고, 시온산과 감람산에 부딪혀 두 개 골짜기를 타고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그러자, 그 옛날 성전을 보고 살았던 흰 수염을 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금새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좋은 날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그들은 자기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짓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들은 아무 힘을 쓰지 않았지만, 고레스의 마음도 주장하여 주시고, 심지어 재물까지 얻어 나오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너무 기뻐서 소리치며 춤을 추며 즐거워했고, 좋으면서도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나이많은 어르신들과 더불어 그렇게 예루살렘성이 건축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신의 할 일을 찾게 되어 일을 하게 될 때에는, 하늘의 기쁨과 평강이 있는 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그 시절 성전 건축자들의 감격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 350장 우리들의 싸울 것은

[말 씀] 에스라 4:1-5, 24(구약714면)
2008.9.5(금)


드디어 우리는 에스라서 4장에 왔습니다. 에스라 4장은 대부분 유다와 베냐민사람들로 구성된 포로귀환자들이 성전의 기초공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없이 그들 앞에 나타난 대적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인해, B.C.536년부터 B.C.520년, 정확히 바사국 다리오왕 제2년까지(스4:24), 16년동안이나 성전공사가 중단하게 된 비극적인 사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위해 7개월이나 철저히 준비하여 시작한 공사였지만, 제단을 수축하고 성전 터 위에 기초공사를 한 후 얼마 되지도 않아, 성전공사는 대적자들로 인해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신약시대에 우리들에게는 곧 교회이니만큼(고전3:16), 교회가 세워지는 데에는 사탄의 방해공작이 있을 것임을 알고 우리도 이러한 일에 잘 대처해야 할 줄로 압니다.
행20:28-30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5. 누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가? - 4장
우리도 잘 알다시피, 어디에서든 언제든 사탄이 불못에 들어가 있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일에는 늘 방해공작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당시 제1차 포로귀환후 있었던 성전공사는 과연 누가 방해했는지를 살펴볼까요? 오늘 본문 말씀 1절과 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스4:1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4: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라 불리우는 자들이었고, 상당기간동안 유다와 베냐민의 땅에 살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대체 누구였는지 보다 더 정확히 살펴봅시다. 학사 겸 제사장인 에스라는 그들이 어떻게 그 땅에 이주해 와서 살게 된 백성이 되었는지를 아주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말씀 에스라 4장 2절에 의하면, 그들은 ‘앗수르 제4대왕 에살핫돈이 이주케 했던 사마리아인들’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유다 총독으로 임명된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와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4:2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그런데 이들의 말은 교묘한 거짓말이었습니다. 어떻게 그와같은 사실을 알 수 있을까요?
첫째, 함께 제사드리자고 제안한 사람들은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의 10지파의 순수한 후손들이 아닙니다. 이들은 앗수르왕 에살핫돈(B.C.681-669)의 원주민 이주 정책에 따라, 멀리 이방지역인 바벨론, 구다, 아와, 하맛, 스발와임으로부터 이주하여 들어온 사람들과 통혼함으로써 생겨난 후손이었기 때문에(왕하17:24), 그들은 혈통적 순수성도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와 함께 이방인의 신들인 숙곳브놋, 네르갈, 아시마, 아드람멜렉. 아남멜렉 등의 우상들을 받아들여, 여러 신들을 동시에 섬김으로써 신앙의 순수성도 완전히 잃어버린, 종교혼합주의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왕하17:30-32).
둘째, 그들이 유다와 베냐민과 함께 성전을 건축하자고 제안한 것은 순수한 신앙적 열심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시 고대 근동의 정치군사적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바사왕 고레스의 칙령으로 세워지는 예루살렘 성전의 주도권을 쥘 자가, 앞으로 팔레스틴 지역의 주도권을 쥘 것으로 내다보고, 자신들도 성전 재건에 동참하여 이스라엘 포로귀환자들의 신앙을 희석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을 자신들처럼 민족적으로도 혼합시켜 팔레스틴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누려왔던 기득권과 주도권을 계속 유지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은 단호히 그들의 제안을 거절하였던 것입니다(스4:3). 그러자 그 때부터 그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심지어 바사의 관리들을 매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 공사를 방해함에 따라(스4:4-5), 결국 16년동안이나 성전건축이 중단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어찌 보면, 그들의 성전건축동참의 제안이 참 좋게 보일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성전건축의 동참 요구가 진정한 사마리아들의 순수한 신앙에서 비롯되지 아니했음을 알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거절당함 이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스4:4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그들이 성전건축의 제안을 거절당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성전건축에 다시 동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심히 고민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유다백성에게 찾아가서 해법은 진정 없는 것인지 또다시 물어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다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유다백성의 성전건축의지를 상실시키고, 겁을 주어 심리적인 공포심을 조장하였고, 결국에는 성전건축공사를 중단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전재건공사를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일을 무산시킬 정도의 강력한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이와같은 사실을 통해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일수록 그 일을 방해하는 사탄의 공작이 더 극심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일이라 할지라도 꼭 성공과 영광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좌절과 고난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의 방해공작은 때와 장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으며, 때로는 회유책을 통하여, 때로는 직접적인 공격으로 갈수록 증가되고 있습니다. 그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그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고 성령의 음성을 따라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엡6:12-17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결국 누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일까요? 첫째, 얼핏 보기에는 신앙이 있는 자 같이 보이나, 사실은 혼합주의 신앙을 가진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은 방해를 받고 있으며, 둘째, 이미 기득권을 쥔 자이거나,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자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은 지금도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는 자는 결국 교회와 하나님의 대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제2성전공사는 이렇게 하여 16년동안이나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합주의적 신앙을 경계해야 합니다. 순수한 신앙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도권 싸움이나 기득권 싸움같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고, 하나님의 일에 장애를 초래할 뿐입니다. 우리 동탄명성교회 성도들은 언제까지나 하나님에 대한 순수한 신앙만을 붙잡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랑이나 욕심같은 것이 우리 신앙에 들어오지 않도록 늘 자신을 경계하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회개하고 용납해 주어,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2008년 9월 특별 새벽 집회

[주 제]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찬송] 359장 천성을 향하 가는 성도들아

[말 씀] 에스라 5:1-5, 6:13-15
2008.9.6(토)


드디어 우리는 이번 9월 특별새벽집회의 결론부분인 에스라 5-6장에 왔습니다. B.C.538 고레스칙령에 따라, 유다와 베냐민 백성은 바벨론에서 제1차 포로귀환에 이어(B.C.537년), 7개월의 준비 끝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B.C.536년). 하지만 종교혼합주의자인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말미암아 성전재건공사는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본 장은 그 후 약 16년이 지난 B.C.520년 여러 선지자들의 독려로 말미암아 다시 공사가 재개되어, 그로부터 만 4년후인 B.C.516년에 성전이 완공되어, 기쁨으로 행한 성전봉헌식과 관련된 일련의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자, 그럼, 과연 중단된 성전공사가 어떻게 재개될 수 있었고, 완공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록 합시다.

5. 누가 성전공사를 다시 시작케 했으며 완성케 하였는가? - 5~6장
우리는 어제 4장에서, 사마리아인들이 어떻게 유대백성의 힘을 빠지게 하고, 심지어 바사의 관리들에게 이용하여 성전공사를 중단시켰는지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하나님의 일에는 사탄도 꼭 함께 역사하려 한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또한 오늘날 사탄이 역사하는 가운데서도 어떻게 해서 난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일을 완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또한 배워봅시다.

1)사탄의 역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으로 인한 성도들의 낙심과 열의 상실이 문제이다.
왜 성전공사가 중단되었지요? 그것은 사마리아인의 집요한 방해공작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에만 그랬습니다. 문제는 곧이어 뒤따른 이스라엘 백성의 낙심이 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성전공사가 중단됨에 따라, 낙심된 나머지 영적으로 나태해져서 성전을 재건할 열의까지 완전히 상실하였으며(학1:1-4), 심지어는 범죄까지 서슴지 않아(슥1:1-6) 성전공사는 무려 16년동안이나 중단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지나자, 사마리아인의 방해공작이 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와 베냐민 백성은 성전건축공사는 아예 포기한 채 자기 집에 잘 꾸미기에 바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1:4-6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잘 꾸민)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5 그러므로 이제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니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학1:9-11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10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11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사명을 까맣게 잊은 채, 자기 집을 돌보는 데에 빨랐지 결코 하나님의 성전이 그냥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돌이키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치고, 땅은 소출을 그쳤습니다. 또한 땅 위에 가뭄도 들었습니다. 산 위에도,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 위에도, 밭에서 나는 모든 것 위에도, 사람과 짐승 위에도, 그들이 애써서 기르는 온갖 것들 위에도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뿌렸지만 거두는 것은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았으며, 마셔도 흡족하지 않았고, 옷은 입어도 따뜻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도 전대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일은 뒤로 한 채, 자기들의 일을 하기에만 분주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가 그러한 사람들은 아닙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함에는 일차적으로 사탄의 방해공작이 문제가 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일이 난관에 부딪혔을 때, 그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려는 사명까지 망각하며 영적 침체에 빠져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입니다(히10:38).

2)하나님은 깨어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사용하시어 다시 새롭게 하신다.
한 번 세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한 번 두 번 주일에 빠지다 보면 몇 주일 빠져도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우리의 모습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였습니다.
이처럼 사탄의 방해와 대적자들의 책동과 인간의 나태 및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려는 계획을 폐기처분하지 않으시고, 또한 그것을 다시 이루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마음을 그대로 전달할 사자들 곧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들을 불러내십니다. 그러자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분연히 일어나 그들에게 외칩니다.
학1:7-8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학2:7-9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여 이 말씀을 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가 또한 분연히 일어나 성전공사를 다시 재개했습니다(스5:2). 그러자 새로 부임한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이었던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스5:3)” 하지만 유다백성은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바사의 관리들이 재개한 성전공사를 중단시키지 않은 것만 해도 그들에게는 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왜 바사의 관리들은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았을까요? 그것을 에스라 5장 4∼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5:4-5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아뢰었으나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이 능히 공사를 막지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아뢰고 그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더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다시 시작하니,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유다의 장로들을 어여삐 보도록, 바사의 관리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상소를 받은 바사국 제4대 다리오왕(B.C.522 - 486)은 최초 고레스 왕의 성전 건축허가 조서를 찾아보았고, 그 조서의 내용을 확인함과 동시에, 성전공사를 막지 말라는 조서를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스6:1-7). 뿐만 아니라 그것에 그치지 않고 성전재건공사에 필요한 제반 경비와 그들이 필요한 것 즉,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제물들과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의 제사장이 요구하는 대로 날마다 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스6:8-12). 또한 그 명령을 신속히 준행하되, 만약 그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길 때에는 가차없이 죽음으로 보답하겠다고 엄포까지 해놓았습니다. 이전에 꼭 고레스왕의 칙령을 다시 듣는 것과 같습니다. 역시, 하나님은 멋쟁이입니다. 우리가 작은 것이나마 주님의 뜻을 좇아 일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휠씬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다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 다시 팔을 걷어부치고 나온 유다와 베냐민 백성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있도록 바사국 관리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으며, 힘과 권세를 가진 다리오왕을 움직여, 성전공사에 필요한 모든 물질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게 하여, 결국 성전재건공사는 4년만에 성공적으로 건축되기에 이르렀습니다(스6:13-1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단의 방해공작과 인간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렇게 완성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각성하여 이같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모든 성도들에 하나님은 기필코 최후의 승리를 얻고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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