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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목사의

마태복음강해(1~48)

 

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 목 차 -

마태복음강해(01)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1(1:1) 3

마태복음강해(02)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2(1:1-25) 7

마태복음강해(03)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3(1:8-25) 12

마태복음강해(04)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애굽으로의 피난(2:1-23) 18

마태복음강해(05) 애굽으로의 피난과 나사렛사람이라 칭하리라(2:31-23) 24

마태복음강해(06)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세례(3:1~17) 31

마태복음강해(07) 예수님의 시험받으심과 첫 제자들(1)(4:1-25) 37

마태복음강해(08) 예수님의 시험받으심과 첫 제자들(2)(4:1-25) 44

마태복음강해(09) 산상수훈(1) 팔복(5:1-16) 50

마태복음강해(10) 산상수훈(2) 천국과 율법의 상관관계(1)(5:17-30) 56

마태복음강해(11) 산상수훈(3) 천국과 율법의 상관관계(2)(5:31-48) 62

마태복음강해(12) 산상수훈(4) 천국백성의 합당한 경건생활(6:1-18) 69

마태복음강해(13) 산상수훈(5) 천국백성의 재물관(6:19-34) 76

마태복음강해(14) 산상수훈(6) 천국백성의 판단과 분별력(7:1-29) 80

마태복음강해(15) 왕의 권능(1)-질병과 자연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님(8:1-9:8) 85

마태복음강해(16) 왕의 권능(2) 사망과 장애까지 다스리시는 예수님(9:9-38) 91

마태복음강해(17) 12제자의 임명 및 파송(10:1-11:1) 97

마태복음강해(18)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두 갈림길(11:2-30) 103

마태복음강해(19) 바리새인의 배척-안식일 및 바알세불논쟁(1)(12:1-50) 109

마태복음강해(20) 바리새인의 배척-안식일 및 바알세불논쟁(2)(12:21-50) 112

마태복음강해(21) 천국의 7가지 비유(1)(13:1-23) 116

마태복음강해(22) 천국의 7가지 비유(2)(13:24-43) 120

마태복음강해(23) 천국의 7가지 비유(3)(13:44-58) 125

마태복음강해(24) 요한의 순교 및 오병이어와 물 위의 기적(14:1-36) 130

마태복음강해(25) 참된 정결함과 절대 믿음(15:1-39) 134

마태복음강해(26) 하늘의 표적과 베드로의 신앙고백(16:1-20) 138

마태복음강해(27)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제자의 길(16:21~28) 145

마태복음강해(28) 그리스도의 변형되심과 게시 그리고 적용(17:1-27) 150

마태복음강해(29) 천국에서 큰 자와 용서의 범위(18:1-35) 155

마태복음강해(30) 이혼논쟁과 어린아이 그리고 영생의 길(19:1-29) 160

마태복음강해(31) 포도원품꾼의 비유와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20:1-28) 166

마태복음강해(32)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을 깨끗케 하심(21:1-22) 172

마태복음강해(33) 예수의 권위 출처 질문과 포도원 농부의 비유(21:23-46) 178

마태복음강해(34) 혼인잔치의 비유와 세금논쟁(22:1-22) 183

마태복음강해(35) 부활과 계명논쟁 및 메시야의 신분(22:23-46) 189

마태복음강해(36) 회개하지 않는 자가 받을 7가지 화(23:1-39) 196

마태복음강해(37)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1)(24:1-31) 201

마태복음강해(38)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2)(24:29-51) 209

마태복음강해(39)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의 징조(3)(24:36-51) 214

마태복음강해(40) 열 처녀의 비유(25:1-13) 218

마태복음강해(41) 달란트의 비유(25:14-30) 224

마태복음강해(42) 양과 염소의 비유(25:31-46) 230

마태복음강해(43) 마리아의 도유사건과 마지막 만찬(26:1-30) 236

마태복음강해(44) 겟세마네기도와 베드로의 부인(26:31-75) 242

마태복음강해(45) 공회재판과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행보(26:57-27:10) 246

마태복음강해(46) 빌라도의 심문과 십자가의 처형(27:11-56) 251

마태복음강해(47) 예수님의 부활과 파송대명령(1)(27:58-28:20) 257

마태복음강해(48) 예수님의 부활과 파송대명령(2)(27:58-28:20) 260

 

 

 

 

 

 

 

 

 

 

 

 

 

445-160 화성시 반송동 107-8번지 제일프라자 8

대한예수교장로회 동탄명성교회 (031)613-2001

http://DongtanMS.kr



2011629일 수요기도회설교안

[제 목]

마태복음강해(01)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1/2)

[찬 송]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80장 천지에 있는 이름 중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설교자]

정병진 목사

[말 씀]

1:1(신약1)

[키워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믿음, 왕통, 이삭, 솔로몬, 메시야, 약속, 족보, 신성, 인성, 다윗의 혈통,

 

1. 서론

우리에게는 4개의 복음서가 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그런데 이 중에서 족보가 나오는 것은 마태복음누가복음이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이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면, 누가복음은 사람의 아들(인자)로 오신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고, 요한복음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족보가 없다. 종이나 하나님은 족보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히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예수님을 아담의 자손(62대손)이라 말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자손(42대손)이자 다윗의 자손(28대손)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마태복음이 예수께서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이자 유대인들의 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위함이다. 마태복음이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지만 특히 1차적으로는 기록할 당시의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된 복음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은 신약성경 중에서 구약성경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다. 무려 129나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는데, 직접적으로는 53, 간접적으로는 76,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마태는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는 표현을 무려 13나 사용하고 있는데, 이 표현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표현이라고 하겠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으므로, 시간적 순서로는 마가복음이 맨 처음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이 사복음서의의 맨 첫 권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한편, 마태복음이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은 또한 메시야에 관한 유대주의적인 선민사항을 깨뜨리기 위험도 간간히 나온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왕으로 오시긴 오셨으나 정치적이나 경제적인 메시야가 아닌 인류의 구속을 목적으로 오신 메시야이심을 일부러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 8장의 백부장의 하인 중에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8:10-12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실제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를 기다리면서도 메시야를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인 메시야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이방(로마)에 대한 심판을 수행하고, 잃어버린 다윗의 왕권과 이스라엘의 옛 영화를 회복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는 그들의 잘못된 선민사상을 바로 잡고자 무척 애를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용어는 단지 4만 사용할 뿐, 천국이라는 용어를 무려 31회나 사용함으로써, 예수께서 지상의 정치적인 메시야의 왕국을 꿈꾸는 그들이 잘못된 것임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메시야가 꿈꾸는 나라는 지상낙원이 아니라 하늘나라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현세적으로 영토적인 개념의 나라가 아니라 내재적이고도 초월절인 성경을 지닌 나라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마태복음의 내용구조

마태복음을 읽을 때 우리가 주의해서 볼 것은 첫째, 마태복음은 시간상의 순서로 책이 쓰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은 일종의 주제별 묶음책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마태복음은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기록된 복음서가 아니라, 주제별로 묶어서 집중적으로 기록된 복음서인 것이다. 즉 엄격한 시간상으로 연대기적 순서를 탈피하여,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주제와 거기에 관련된 사건들을 한 곳에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5~7장은 산상수훈의 말씀으로 강화(설교말씀)을 한 데 모아놓고 있다. 이어서 사건들이 8~9장에 걸쳐 나온다. 그러므로 연대기적으로 볼 때, 8~-9장의 기적의 사건들 중에는 연대적으로 산상수훈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제10장은 12사도를 임명하고 파송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11~12장의 사건들은 10장보다 먼저 일어난 사건들이다.

둘째, 마태복음은 강화(설교말씀)와 기사(사건)부분이 비교적 뚜렷이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소위 5대강화라고 하는 긴 강화가 5개가 있다. 산상수훈(5~7), 제자도(10), 천국의 비유(13), 천국시민의 생활자세(18), 감람산강화(24~25)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기사(기적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3. 마태복음 1장의 구조

마태복음 1장은 크게 2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째부분은 1~17절까지로서, 예수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부분으로 18~25절까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첫째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1:1)을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면, 둘째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1:20,23)을 중점적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다(1:3~4).

1:3-4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오늘은 이 중에서 마태복음 1장의 첫 부분으로서, 1~17절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다.

 

 

 

4.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1:1~17)

 

1)마태복음은 왜 족보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일까?(1)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왜 맨 처음 족보를 다루었을까? 그것은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분임을 말하기 위함이다.

 

딤후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그런데 마태에 의하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42(14*3) 후손이자, 다윗의 28대 후손(14*2)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아브라함의 혈통을 잇고, 다윗의 혈통을 이어서 온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원수를 멸하여 복을 받게 하고, 왕으로서 온 인류를 다스릴 분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2)왜 마태는 예수님을 특히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이라고 했을까?(1)

우리는 마태기자가 성령의 감동을 따라 예수님을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다윗의 후손이라고 기록한 이유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첫째로 이는 예수께서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것은 개종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그들에게 약속된 메시야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알려주고 확고한 믿음을 갖게 하려고 그렇게 쓰고 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이 말씀을 직역해보자. 아브라함의 아들이요 다윗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관한 책이라.” 그렇다. 왜 마태는 구약성경에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예수님은 아담이나 이삭이나 야곱의 자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록했을까? 그것은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구약에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야인 것을 독자로 하여금 확실히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어봄으로써, 예수님께서 구약에 약속된 바로 그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약속들은 크게 4가지다. 예언이 주어진 시간상으로 배열을 한다면, 첫째, 여자의 후손(3:15)으로 오실 것이다. 둘째, 아브라함의 후손(22:17~18)으로 오실 것이다. 셋째, 다윗의 후손(삼하7:12~16)으로 오실 것이다. 넷째,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7:14)이다. 이들 중에서 첫째와 넷째는 18절부터 25절까지 나오고, 둘째와 셋째는 1절부터 17절에 걸쳐 나오고 있다.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22:17-18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삼하7:12-16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특히 마태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처음부터 기록한 것은 유대인들을 상당히 염두해 둔 기록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자신의 믿음의 조상이자(8:37) 택함받은 백성인 이스라엘의 시조로 보면서도, 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 왕국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가장 안정되게 세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8: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 둘째로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같은 존재이며,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과 같은 존재인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의 실제 둘째 아들 이삭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자신을 번제물로 예루살렘 모리아산 제단에 바친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친척이었지만 이방지역에 살고 있던 리브가를 아내로 취한 사람이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는 사실과 그의 신부인 우리 인간들과 결혼하실 것임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한 다윗의 실제 10번째 아들 솔로몬도 예수님의 예표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산에 성전을 지었고, 지혜의 왕으로 온 천하를 다스렸듯이, 예수께서 바로 성전인 교회를 세우고, 지혜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통치할 통치자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 셋째는 예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따르긴 따랐으나 아브라함과 다윗의 아들처럼 그 혈통은 꼭 맏아들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믿음과 하나님의 선택과 약속의 노선을 따라 오신 분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긴 하지만, 그 혈통이 항상 맏아들로 이어져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첫째아들은 이스마엘이었으나 이삭이 이어받았으며, 이삭의 첫째아들은 쌍둥이 형 에서였으나 혈통은 야곱으로 이어졌고, 야곱의 첫째아들은 르우벤이었으나 혈통은 넷째아들 유대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다의 첫째아들은 엘이었으나 넷째아들 베레스를 통해 이어졌고, 이새도 그의 첫째아들은 엘리압이었으나 실제는 8번째아들은 다윗에게 이어졌으며, 다윗도 그의 첫째아들은 암논이었으나 실제로 왕통은 10번째 아들 솔로몬에게 이어졌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맏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가 예수의 혈통을 이을 만한 자가 아닐 경우에는 그 혈통이 차자에게로도 얼마든지 이관되어왔음을 통해, 메시야의 혈통이 믿음과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장자가 장자로서의 그 신분을 귀히 여기고 그것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장자의 축복이 주어졌으나, 그러한 믿음을 경홀히 여긴 자에게는 과감히 그 직책이 다른 차자에게로 넘어가게 했던 것이다(12:16-17).

12:16-17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약속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선택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7, 4:28).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5. 결론

성경책 중에서 마태복음 1장만큼 심오한 부분이 드물다고 말할만큼 엄청난 내용들이 들어 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알기 원한다면,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과 순종을 배워야 할 것이며, 다윗이 하나님께 가졌던 마음 자신이 비록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자기 중심에 하나님을 최고로 두고 살았던 다윗의 마음을 갖기를 소망해야 할 것이다. 다윗, 그는 왕이지만 또 다른 왕을 섬기고 살았다. 그분은 곧 하나님이셨다. 그렇게 살았기에 그는 백성들에게 어진 임금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 왕이란 칭호를 받을만한 사람이다. 단순한 도성이었던 예루살렘에 성막을 모셔와 그곳이 하나님의 도성이 되게 하지 않았던가! 또한 자기 왕궁보다는 하나님의 집을 더 잘 지어드리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던가!

우리는 뭐니뭐니해도 아브라함과 다윗을 많이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또한 그들의 아들들이었던 이삭과 솔로몬에게서 예수그리스도의 예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201176일 수요기도회설교안

[제 목]

마태복음강해(02)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2)

[찬 송]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98장 예수님 오소서

99장 주님 앞에 떨며 서서

[설교자]

정병진 목사

[말 씀]

1:1~25(신약1)

[키워드]

아브라함의 자손,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약속, 족보, 42, 신성, 인성, 다윗의 혈통, 다말, 라합, , 밧세바, 마리아, 성령, 임마누엘, 처녀,

 

1.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예수님께서 약속된 메시야로 태어나시기 위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살펴보았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족보상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아브라함다윗이라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성경을 읽을 때, 가장 눈여겨 읽을 부분은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사무엘상하에 나오는 다윗이라는 인물이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다윗 그리고 그들의 아들들이었던 이삭과 솔로몬을 통해 우리는, 장차 이 세상에 오실 메시야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그분이 왕이심을 강조하고 있음을 우리는 살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마태복음 1장부터 과 관련된 단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다윗을 제외한 그 어떤 예수님의 직계조상에게도 왕이라는 직책을 붙히지 않았지만 마태복음의 저자 마태는 다윗에게 이라는 직책을 붙히고 있다. 그리고 그의 후손으로 왕이었던 자들을 계속해서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을 예수님이 나셨다고 말한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것을 드러내기 위해 그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출하러 왔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이상의 말씀을 통해 보더라도 예수께서 우리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감추어진 비밀들과 아울러 그분의 탄생사건 가운데 감추어진 그분의 신성한 출생을 살펴보도록 하자.

 

 

 

2.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 속에 감추어진 비밀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42대손이며, 다윗의 28대손이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의 조상 중에 빠진 이름들이 몇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족보를 주의해서 좀 더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1)마태기자는 왜 예수님의 족보를 왜 14대씩 3기로 나누었을까?(17)

1: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를 통해 마태는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 것인지와 얼마나 활동하실 것인가를 말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역사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로 진행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굳이 14대씩 3기로 구분하여 기록하려 했을까? 그것은 ‘42’라는 숫자를 맞추고, ‘3’이라는 것을 맞추기 위함인 것으로 추정된다.

 

. 42라는 숫자의 비밀

42라는 숫자와 3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숫자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비밀을 풀려면 우선 민수기 33장과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아야 한다. 그곳에 가면 그 비밀과 힌트가 나오기 때문이다.

먼저, 민수기 33장을 읽어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진을 쳤는데, 42차례 진을 쳤다고 기록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진친 곳이 라암셋이었고 7번째가 신광야, 10번째가 르비딤이었으며, 32번째가 가데스바네아, 42번째가 여리고 맞은편 모압평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43번째 진을 친 곳이 가나안 땅이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탈출하여 약속의 땅까지 이르는데 42번의 정거장을 거쳤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42번의 정거장을 거쳐 오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 42라는 숫자가 왜 나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데, 42는 마흔 두 달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요, 1260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계산법대로 1달을 30일로 계산하면, 42달은 1260일이 되며, 그것을 연수로 환산하면 3년 반이라는 것이 나온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그의 공생애를 42달동안 사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에게서 이 세상의 완전수는 ‘7’이라는 숫자이므로, 이 세상의 끝날은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나 42달동안 이 세상을 통치하므로 끝날 것임도 우리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3이라는 숫자의 비밀

그리고 42대를 14대씩 3기로 나눈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14대씩 나누다 보니 3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는 14*3이요, 다윗부터 예수님까지는 14*2인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예수님의 탄생에도 3구분을 지은 것은 이것 자체도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아브라함부터 제1, 다윗부터 제2, 바벨론포로이후부터 제3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중 1는 아브라함에서 다윗출생까지의 시기로서, 이스라엘 역사의 태동 및 형성기의 족보를 말하고 있다(2~6a) 이것이 14대이다. 그리고 2는 다윗으로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이르는 전성기 및 쇠퇴기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6b~11). 이것도 14대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3는 바벨론 포로 이후로부터 예수의 탄생에 이르는 회복기의 족보이다(12~16). 이것 역시 14대이다. 이것이 바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역사방법이 아닌가 싶다.

이 일을 위해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 중에 누락시킨 자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부분에 가서는 3대를 생략하고 기록하기도 하였고, 어떤 부분에는 삼촌에서 조카로 후손이 계승되었다고 기록하고 한다. 즉 요람 이후에 웃시야 사이에 3대 왕(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가 생락되어 있다. 이는 요람의 처가 이세벨의 딸인데, 이로 인해 남유다가 바알이라는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께서 3대를 버리셨음을 말해준다. 또한 여고냐에서 스알디엘로 기록됨은 중간에 시드기야가 빠진 것인데, 이는 시드기야가 바벨론왕에 의해 세워진 왕이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된 것이 아닌가 싶다.

 

 

2)왜 예수님의 족보에서는 유독 다윗을 이라고 기록하고 그의 자손인 수많은 왕들의 이름을 기록했을까?(6)

1:6 이새는 다윗 (바로 그)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를 통해 마태는 예수님께서 왕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6).

이것은 바로 다윗이 왕이 된 것이 예수님의 계보의 역사 중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살아 생전에도는 다윗의 아들이라 불리웠을 뿐만 아니라(9:27), 부활승천후에는 다윗의 자손이자 뿌리라고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다(22:16). 다시 말해, 예수님은 다윗의 아들과 왕이시라는 말이다.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그런데 이러한 왕의 축복선언은 사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실 때, 이렇게 약속하셨다.

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또한 야곱은 그의 12아들들 가운데 유다에게 이렇게 유언했다(49:10)

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러한 약속이 언제 성취되었을까? 그 최초의 사람이 바로 다윗왕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아브라함과 야곱과 유다의 후손으로서 왕으로 책정된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은 어떠한 사람이었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성의 예표인 예루살렘을 가나안 민족인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빼앗아 그곳을 하나님의 도성이라 이름지었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울 것을 아들 솔로몬에게 부탁하지 않았던가? 또한 다윗의 시대처럼 평안하고 행복한 시대가 없었기에, 마태는 예수님의 조상 중에서 최초의 왕이었던 다윗에게만 이라는 칭호를 붙혀준 것이다.

 

 

. 예수님의 족보에는 왜 기록되지 말았어야 할 여인들의 이름들을 기록되어 있을까?(3,5,6)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의 조상들 중에는 유대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들어있으며,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부정한 여인 같지만, 전부 자기의 태를 통해 후손을 이으려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메시야의 조상의 반열에 동참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1: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1: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그런데 이 4명의 이름을 가진 여인들은 다 똑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모두가 다 이방여인이라는 것이며, 둘째로, 모두가 다 재혼한 여인이라는 것이며, 셋째, 모두가 다 부정한 여인,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 라합은 가나안땅의 여리고성의 여인, 룻은 모압여인, 우리의 아내 밧세바는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였던 이방여인이었던 것이다.

또한 다말은 자신을 창녀로 변신하여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결국 시아버지로부터 아들을 낳은 재혼여인이었고, 라합은 기생의 신분으로서 여리고성의 정탐꾼으로 파견된 살몬과 재혼하였고, 룻은 여호와의 총회에 절대 못 들어오도록 규정된 경멸받던 모압여인이었지만(23:3, 1:4) 자신의 기업을 무를 자인 베들레헴사람 보아스와 재혼하였고, 밧세바는 헷사람의 아내로서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다음, 다윗왕의 마음에 들어 그와 재혼하였던 여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왜 이 족보에는 사라나 리브가 같은 믿음의 여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고, 부정한 여인들을 기록하고 있을까?

예수님의 족보에도 이방 죄인으로서 절대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보기보다는 그들의 가진 믿음과 열망과 헌신을 받아주셔서, 어떤 이방인도 유대인들을 도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했음을 알리면서, 이방죄인이라도 얼마든지 주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들 모두가 재혼한 여인인 것은 원래 남편이었던 마귀를 버리고 새 남편인 예수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7:4).

그리하여, 마태복음이 오직 유대인만을 위해 쓰여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하겠다.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하러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10:16, 3:6)

10:16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3. 예수님의 탄생에 감추인 또 다른 비밀들(1:18~25)

우리는 이상의 예수님의 족보이야기를 통해, 예수님께서 구약의 약속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왕의 후손임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한 편만을 말한 것이다.

 

사실 예수님의 탄생에는 다른 한 면이 더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분이 우리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죄없는 분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요셉의 아들로 태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렇게 적고 있다.

1: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왜 예수님은 요셉에게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야 했을까?(16)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할 죄없는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타락한 인간의 후손으로 태어나실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통해 자식이 태어난다면 그도 또한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유난히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직후부터 앞으로 메시야를 보낼 때에는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의 자식으로 보낼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주셨다(3:15, 7:14)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성경은 예수님을 요셉이 낳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처녀인 마리아가 낳았다고 말한다(16). 단지 요셉은 마리아의 법적 남편이었다. 그러므로 요셉의 아들이라 칭할 수는 있어도 요셉의 부성이 적용되지 않는 아들이었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죄없는 인간이어야 우리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할 메시야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해야 했던 것이다. 단지 여자의 태만 빌려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여인이나 쓰임받을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가 동침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을 낳은 것이라고 말이다.

 

 

2)왜 예수님을 남여의 사랑으로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셔야 했을까?(18,20)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이를 위해서 성령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중에 예수님을 기적적으로 잉태되도록 해야 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마리아와 약혼한 다음에 얼마 후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셨다.

1:30-35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그리고 한 10달쯤 흘렀다. 이제는 약혼한 마리아를 데려 올 무렵이 되자, 천사 가브리엘은 요셉에게 꿈 속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너와 약혼한 마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도 놀랐을 것이다. 하지만 네 약혼녀는 부정한 여인이 아니다. 그녀의 태중에 잉태된 이는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려고 보낸 이로서,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지 않았느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음 임마누엘이라’”

 

 

4. 결론

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에는 그분이 약속된 메시야시며,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제 정리해보자.

첫째, 예수님께서는 부계의 혈통상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왕이시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죄없는 분으로 태어나시기 위해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의 몸에 잉태되었고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2011713일 수요기도회설교안

[제 목]

마태복음강해(03)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3)

[찬 송]

89장 샤론의 꽃 예수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94장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설교자]

정병진 목사

[말 씀]

1:1~25(신약1)

[키워드]

요셉, 마리아, 탄생, 순종, 예수, 임마누엘, 구원, 여호와, 하나님, , 속죄제물, 하나님의 아들, 성육신, 요한복음

 

1. 서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신비롭기만 하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인간적인 출생만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온 과정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성 안에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와 하나가 된 놀라운 일,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잉태와 탄생이다.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가운데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의 조화에 대해 다루게 될 것이다. 그분은 인간 예수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감추어진 또다른 비밀들(2)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탄생하는 데에는 요셉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도 필요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한 줄기처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실 분이라는 두 줄기가 만나 하나를 이룸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로서 요셉의 가문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3;15)과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리라는 것 이사야의 예언(7:14)이 하나되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은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나타난 숨겨진 다른 비밀들을 더 살펴보기로 하자.

 

 

1)예수그리스도의 계보 속에도 또다른 숨은 비밀이 있으니, 예수님은 솔로몬 계열의 자손인 요셉이 나단 계열의 자손인 마리아와 약혼한 상태에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솔로몬이라고만 생각한다. 하지만 다윗의 자손에는 다른 계보가 하나 더 있다. 다윗의 자손으로서 그 혈통을 이어받는 사람은 누가복음에 따르면 솔로몬이 아니다. 그는 나단이라는 다윗의 아들이다(3:31). 다윗이 헤브론에서 76개월동안 왕위에 있을 때까지는 그는 6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통일왕이 되었을 때, 그는 11명의 아들을 낳는데, 그 중에 3번째 아들이 바로 나단이다. 그러므로 나단은 다윗의 9번째 아들이자,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3번째 아들이다. 참고로, 솔로몬은 나단의 바로 밑의 동생이다(삼하5:14).

삼하5: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우리는 마태복음에서 요셉은 왕의 계열 즉 솔로몬의 계열의 자손이었지만(1:6~7), 누가복음에서 마리아는 일반인의 계열 즉 나단의 계열의 자손(3:31)임을 알 수 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약혼했지만 예수는 요셉에게서가 아니라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 겉으로 볼 때 그분은 요셉에게서 나신 것 같지만, 실상은 마리에게서 태어나셨다(1:16).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였다.

요셉이 왕의 계열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예수님은 왕의 자손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한 편으로 평민의 계보를 잇는 마리아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그분은 또한 평민의 자손이기도 한 것이다.

 

 

2)예수님의 탄생은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 그리고 성령의 역사하심의 합작품이었다

(1:1820,24~25, 1:26~38)

약속된 자손인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위해서는 요셉과 마리아의 절대적인 순종이 필요했다.

요셉으로부터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아들로 맞이할 결단이 필요했고, 마리아로부터는 아직 결혼하지도 않았는데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 때문에 부정한 여인이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예수니님은 왕의 자손이어야 하기 때문에 요셉이 필요했고, 또한 처녀의 몸이 있어야 했기에 또한 마리아가 필요했다. 이 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안배로 약혼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 가브리엘 천사는 두 사람에게 찾아가서 앞으로 진행되려 하는 일을 설명하게 된다.

 

첫째, 요셉의 순종이 필요했다.

먼저, 가브리엘 천사는 꿈 속에 요셉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때 요셉은 고민하고 있었다(1:19). 약혼녀를 데려와야 할 시점에 보니, 그녀가 곧 아이를 임신해 출산할 때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잉태하였으니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율법에 의하면 그녀는 돌에 맞아 죽도록 내어주는 것이다(22:23-24). 그러면 요셉은 이혼한 사람이라는 전력(불명예)를 쌓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혼한 사람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려 했던 것이다(24:1). 요셉은 그때 마리아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리아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그녀와 파혼하는 것이었다.

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그녀를) 가만히(비밀히) 끊고자 하여(파혼하고자 하여)

22:23-24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동침하면 24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 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안에 있으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그런데 파혼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요셉에게는 신중함이 있었다. 모든 일에 너무 빨리 행동하지 말라. 조금 천천히 하고 주님께서 들어오실 기회를 드리라. 적어도 하룻밤을 더 주님께 드리도록 하라.

그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요셉에게 말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20)” 결국 어떻게 했는가? 요셉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좀 나쁜 사람이 되기로 결정했다. 약혼만 한 상태에서 결혼하기 전에 약혼녀로 하여금 임신케 만든 장본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는 천사의 고지대로 그는 그녀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다.

 

둘째, 마리아의 순종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자손인 요셉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인 마리아도 필요했다. 특별히 그는 다윗의 자손인 처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녀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사실 예수님을 낳을 처녀는 3;15에서는 여자의 후손으로 약속되었었다. 그 약속은 예수님이 오시기 4천년전의 약속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오실 때가 가까이 오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그 여자의 자손이 처녀여야 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려주셨다(7:14).

그런데 이러한 조건을 갖춘 처녀가 당시 갈릴리 나사렛동내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고향을 떠나서 요셉과 한 동네(나사렛)에서 살고 있었고 요셉과 약혼한 상태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직접 가브리엘 천사를 마리아에게 파송한다.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될 터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을 것까지 가르쳐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며, 다윗의 왕위를 받을 아이로서 그의 나라가 영원무궁할 것이라고 했다(1:30-33).

1:30-33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그러자 이번에는 마리아가 또한 고민에 빠졌다. 어찌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가 임신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자 천사가 말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다(1:35)” 그리고 이어서 처녀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6개월전에 이미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에게 일어난 일도 이야기해 주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불가능한 것이 없느니라(1:36~37).”

그러자 마리아도 그녀에게 성령께서 자신의 태를 빌어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시키실 것을 받아들였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

 

셋째, 이제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이때 성령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에 하나님의 아들을 착상시켰다.

사실 요셉이나 마리아의 순종은 예수를 잉태함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오직 성령께서 직접적으로 역사하사 그렇게 잉태시켰기 때문이다(1:18,20, 1:35). 령님이 없이는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순종하든지간에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우리의 순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의 순종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라. 우리의 순종은 의미가 별로 없으며, 단지 성령의 능력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무언가를 성취하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3)메시야의 이름이 예수임마누엘임을 통해 예수님의 잉태는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은 것임을 알 수 있다(21,23)

 

. 메시야의 이름이 예수라는 말 속에 감추어진 비밀(21)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사실 가장 처음에 아들을 낳게 되면 그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지시를 받은 이는 마리아였다. 그녀는 잉태되던 그 날 천사로부터 직접적으로 그러한 지시를 받았다. 그 뒤 천사는 꿈속에 요셉에게도 찾아가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는 요셉에게만 알려주었다. 이는 그가 자기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였다. 예수님에게는 자기 소유의 백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은 예수라고 불리워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 세상에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름의 핵심은 구출구원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시어 오시는 이유는 로마의 압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정치적인 구원도 아니요, 배고픔에서 건져주는 경제적인 구원도 아니다. 다만,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오시는 것이다. 죄가 없어야 하나님께서 예비한 천국에 당신의 자녀들이 들어가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이름은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4:8, 13;16), 예수아라는 이름으로서 당시에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이 이름을 지녔던 모세의 후계자는 여호수아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안식의 땅으로 인도하실 분임을 알게 된다. 그 내용이 바로 히브리서 4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여호와는 구원자이시다.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에 구원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예수님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를 믿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여호와로만 아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에 무엇인가를 더해진 것이다. 이는 곧 여호와가 구원자로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 하나님이 따로 있고 예수님도 따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한 편으로는 틀린 말이다. 사실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인 것이다(1:14). 하지만 그분은 무소부재하신 분이기에 우리에게는 하늘에는 아버지가 계시고, 이 세상에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있다고 여긴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메시야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말 속에 감추어진 비밀(23)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처럼 우리는 태어나실 아기의 이름이 예수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여호와께서 구원자로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예수님임을 알 수 있지만,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도 그것이 확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7:14).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다시 말해, 우리는 그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이 되실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요, 아버지이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개역성경처럼 번역하여 서술식으로 이해해 왔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증거정도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아는가? ‘임마누엘의 원뜻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 바로 그분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분이 동정녀 마리아의 태를 빌려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단지 육신을 입은 시기인 것을 알려줄 뿐이지, 그분이 육신을 입기 전에는 영원전부터 홀로 계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간과할 때가 많다. 그분은 시간이 있기 전에 시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신 것이다. 우리가 혹시 그분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더라도 그분을 그 정도로만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실 세례요한도 그러한 사실을 처음부터 몰랐다. 사실 예수님은 세례요한보다 6개월 뒤에 태어나신 사촌이시다. 하지만 세례요한도 나중에야 비로소 알게 되엇다.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할 존재인 것을 말이다. 세례요한은 말했다. 그분은 자기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말이다(1:15).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그분은 한 편으로는 마리아의 아들로서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에 사람으로 태어나신 분이지만, 그분은 원래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일 뿐, 그분은 만물이 있기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공생애 기간에 자신이 하나님으로서만 하실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심으로 당신이 곧 우리와 함께 하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로는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포하셨고, 바다 위를 걸어오시기도 하셨고, 죽은 자의 영혼을 다시 불러올리어 살려주시기도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더 알고 싶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요한을 통해 한 권의 책을 더 쓰도록 하셨다. 그것이 바로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사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한 편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으며(8:58), 그분이 한 편으로는 다윗의 후손이시지만 또한 다윗의 뿌리라는 사실을 또한 알게 된다(5:5).

그러므로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2천년전의 일일 뿐, 그분은 만세전부터 하나님께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그분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으로서,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정확히 그분의 본질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1:1-3,14). 그분은 세상만물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또한 B.C.8세기경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셔야 했을까?

그것은 오로지 우리 인간들을 위해서다. 우리 인간들이 범죄해서 죽음의 형벌을 받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 대신 죽어주실 희생제물을 필요로 하셨는데, 사람이 범죄했으니 사람제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대신 죽어줄 희생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겠기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영은 피가 없다(24:39). 사람이어야 피흘릴 수 있고, 피를 흘리고 죽어야 우리가 죄가 사함받을 수 있기 때문,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17:11, 10:45)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3. 결론

마태복음에 나오는 부계혈통의 예수님의 족보는 그분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서 약속의 자손이자 왕의 자손임을 우리에게 증거해준다. 한편 누가복음 3장에 나와 있는 모계혈통의 족보를 통해, 우리는 마리아도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요셉과 마리아의 순종 뿐만 아니라 성령님께서 마리아의 태중에 아들을 잉태케 함으로서,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처녀의 태중에 임신케 하셨다는 사실을 공부했다. 그러므로 태어나실 바 그분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요,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의 몸에서 탄생한 죄없는 속죄제물이 되신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분의 이름이 예수임마누엘이라는 사실을 통해 그분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그분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출할 유일한 구원자가 되신다. 둘째, 그분이야말로 4천년동안 이어온 약속의 자손이 되시며, 여자와 처녀의 후손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그분을 믿고 신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분의 성육신으로 인하여 우리 죄인들이 구출되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자. 그것이야말로 복음중의 복음이요, 이것이 하늘과 땅 사이에 일어난 가장 거룩한 사건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2011720일 수요기도회설교안

[제 목]

마태복음강해(04) 동방박사들의 경배와 애굽으로의 피난

[찬 송]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91장 슬픈 마음 있는 사람

105장 오랫동안 기다리던

[설교자]

정병진 목사

[말 씀]

2:1~23(신약 2)

[키워드]

동방박사, 유대인의 왕, 나사렛, 유대땅 베들레헴, 미가, 떡집, 생명의 떡, 황금, 유향, 몰약

 

1. 서론

우리는 지난 3주에 걸쳐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와 그의 잉태에 관한 사실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음을 확인했고, 이어 다윗의 자손인 마리아의 태를 통해 여인(처녀)의 자손으로 잉태되셨음을 살펴보았다. 즉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솔로몬 계열 즉 왕의 계열인 요셉나단의 계열 즉 평민의 계열인 마리아가 약혼을 하게 됨으로서, 예수그리스도는 약속의 자손으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관한 부분을 마태복음 2장을 통해 살펴봄으로서, 그분은 한 편으로는 모든 사람 즉 유대인과 이방인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함과 동시에 누가복음의 기록을 통해 평범한 서민으로 오시어 합당한 사람으로 자라나셨음을 같이 살펴보게 될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비밀

 

1)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의 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시다(B.C.6514).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그분이 태어나신 직후 마굿간에서 벌어진 사건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2가지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본문은 아기 예수님이 있던 곳이 어느 여관집의 구유였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요셉이 베들레헴에 어느 집에 일정한 거처를 마련한 곳 즉 어느 집에 머물러 있었을 때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2:11), 둘째, 동방박사들이 태어난 그 아기께 경배했다고 말하고 하는데, 아기라는 단어가 갓난아기를 의미하는 네피오스(infant)’가 쓰인 것이 아니라 파이디온즉 어린아이(child)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2:11).

2:11 () 집에 들어가 ()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러므로 마태복음 2장의 동방박사들의 경배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 8일이 지난 후 할례를 받으시고 난 뒤, 몇 달을 지난 다음인데 적어도 2년은 되지 않은 어느 시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2장의 예수 탄생에 관한 기록을 통해, 마태복음은 역시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누가복음의 탄생의 기록(2)을 통해서는 예수께서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셔서 자라나셨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예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록한 마가복음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그리스도를 기록한 요한복음은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언제(시기) 어디에서(장소) 탄생하셨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예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가 황제를 치리하고 있던 어느 때(B.C.27~A.D.14)였는데,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B.C.8~6) 첫번째 한 호적령이 반포되는 시기였다. 그때 당시 유다땅은 헤롯대왕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B.C.37~4). 그리고 그 때는 봄이었다. 밤에 목자들이 양떼를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봄철 우기 때에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하늘의 이상한 별을 따라왔다는 동방박사들의 증언을 빌리자면, 그때 하늘에서는 별들의 이상한 행보가 있었던 시기다. 결국 천문학자들을 포함한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근거들을 종합하여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시기가 B.C.6514일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살고 있던 갈릴리 나사렛에서 태어나지 아니했다. 또한 왕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에서도 태어나지 아니하고,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고을의 어느 여관집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어느날 한 동네 나사렛에서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가 만나 결혼을 약속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10달 정도가 지난 어느날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천사의 고지로 인해 요셉은 그녀에게 잉태된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자기가 못된 사람으로 취급받을 것을 각오하고s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나 요셉은 아기를 낳기까지 그녀의 정절을 지켜주었다.

드디어 아기가 출산할 시기가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그들은 이방 갈릴리의 나사렛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하지만 성경의 예언에 따라, 그 아이가 다윗가문의 아이로서 태어나기 위해서는, 그 두 사람이 갈릴리 나사렛에서 144Km나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그때였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 B.C.27~A.D41)가 갑자기 세금징수를 위하여 인구조사 명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본적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호적신고를 해야 했다. 그러므로 요셉은 그 호적신고를 하기 위해 아내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2:1-5).

2:1-5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런데 베들레헴에 도착한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적하러 고향에 오다보니 있을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여관집의 마굿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때에 그 아기가 태어났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주는 이가 없었다. 누가 태어났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지 않았는가? 그러자 하나님은 그때 밤에 깨어있는 사람들 즉 그 밤에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를 보내어 그 아기의 탄생을 알려주었고 가서 경배하게 하였다. 당시 목자들은 최하류층에 속한 신분의 사람으로서,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도 없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죄인과 천하고 약한 자들의 친구가 되시기 위해, 왕이 초라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그리고 할례할 8일이 되자, 그의 부모는 그 아기에게 할례를 행한 다음, 그 아기의 이름을 천사가 가르쳐준 대로 예수라고 지었다(2:21).

 

이처럼 하나님은 아기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도록, 당시 천하에서 가장 권력있는 자를 움직이신 것이다. 로마황제 아구스도의 욕심을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황제는 천하에 호적령을 내렸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약 700년경에 미가라는 선지자(B.C.740-695)는 이렇게 예언했었다.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마태는 구약성경을 당시의 세계적으로 공용어로 번역한 70인헬라어 성경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했다.

2:6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장소가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는 사실이 또한 그 원어적인 의미로도 매우 중요한 장소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분은 베들레헴이라는 말이 바로 떡집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어느 공생애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벳세다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수많은 군중들을 먹이신 다음에,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임을 말씀으로 전파하셨던 사실을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6:47-51).

6:47-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그렇다. 그분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통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생명을 예수님은 떡이라고 표현했는데, 우리가 어디 가서 그 떡을 얻을 수 있겠는가? 떡을 얻으려면 떡집에 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떡집에서 태어나신 것이다.

 

 

2)태어나신 아기 예수께서 목자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었던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으시다(2:1~12)

앞에서 살펴보았지만 이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지가 얼마의 시간이 흘라가고 있었다. 요셉은 호적만 하고 그냥 자신의 고향으로 가지 아니했다. 산모를 이끌고 자신의 고향으로 간다는 것이 무리가 될 것임을 알았던 것인지는 모르나, 그는 베들레헴에 어떤 거처 즉 집을 마련해놓고 거기에서 일정기간 머물렀다. 그리고 난지 팔일만에 베들레헴에서 아기 이름을 예수라 지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정결예식에 따라 마리아는 40일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가 정결예식까지 거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2:1을 보자.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이미 태어)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마태기자는 말한다.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속국으로서 분봉왕이라는 사람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으니, 당시 유다나라의 분봉왕 헤롯(B.C.37~A.D.4)은 로마황제 아구스도(아우구스투스)와 아주 친한 사이였다. 온갖 뇌물을 주고 그 황제의 환심을 사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유대사람도 아닌 이두메출신의 에돔족속이었지만 유대분봉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다.

여러분은 분봉왕 헤롯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가 바로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을 짓고 있던 바로 그 헤롯대왕이다. 헤롯대왕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에게 성전을 새로 짓고 있었다. 그 성전은 무려 46년만(B.C.20~A.D.26)에 완공을 보게 되는데(2:20),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는 헤롯이 성전공사를 시작한지 14년째 되는 해였다(B.C.6).

그런데 보라. 그때 동방으로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을 찾아왔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인 동방에서 그의 별 즉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다가, 다 와서는 그만 그 별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태어나신 아기 예수가 당연히 유대의 수도인 예루살렘에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그 아이는 헤롯대왕의 아이나 자손일 것을 짐작하고 그리고 갔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커다란 잘못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왕궁에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의 왕으로 (이미) (태어)나신 이가 어디 계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동방에서부터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헤롯대왕과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소동하게 되었다. 헤롯대왕은 자기 집에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고, 예루살렘 사람들자기를 구원해줄 약속된 그리스도가 혹시 진짜 태어나신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아기 예수가 탄생한 사실을 이방인은 진즉 알고 찾아왔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방박사들의 말을 들은 다음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동방의 박사들(, 마고스) 점섬술가들 내지는 천문학자들은 저 동방의 땅 페르시아라는 나라에서부터 무려 805Km나 떨어진 유대 땅까지 온갖 위험을 무릎쓰고 아기예수께 경배하러 온 이유는 무엇일까?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으면 태어난 것이지, 왜 동방박사들은 자신이 이방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그 먼 곳을 여러 위험을 무릎쓴채 찾아왔을까? 그들은 낮에는 쉬었을 것이고 밤에만 별을 보고 따라왔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가지고 온 예물을 통해 그들이 왜 그 먼 거리를 위험을 무릎쓰고 왔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탄생한 아기 예수께 경배하면서 무엇을 드렸는가? 그것은 3가지 예물이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그것이다. 이 예물은 훗날 헤롯대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자, 베들레헴을 떠나 애굽에서 피난을 가서 살게 되었을 때에 무려 36개월동안 애굽에 체류하면서 세 식구가 써야 할 경비로 충당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그 예물이 상당히 고가였음을 짐작케 한다.

 

우선 예수님의 탄생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소식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분의 탄생은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베들레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밤에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한 말을 유심히 생각해보라.

2:10-12 ()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백성을 위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그분의 탄생은 하늘의 왕이 그들의 백성을 위하여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그러므로 아기 예수는 유대인들에게만 경배를 받고 환영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서도 경배받으시고 환영을 받아야 마땅하다.

동방박사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짐작했을까?

그들은 천문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늘에 심어놓은 해와 달과 별들의 특별한 운행을 보고 찾아왔던 것이다(1:14).

1:14 하나님이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이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고 그것들로 징조들(와 계절들과 날들과 해들를 이루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들 즉 해와 달과 별들을 두어서, 하루가 낮과 밤으로 나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운행을 통해서 징조들(signs=표적들)과 계절들(seasons)과 날들(days=일자)과 해들(years=연한)을 나타내는 표가 되게 하셨다. 여기서 날과 계절과 해는 지구와 태양과 움직임을 통해 나타나는 것임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밤과 낮이 바뀌면서 하루가 가고, 그것이 30일을 채우면 1달이 가고, 3달을 채우면 계절이 바뀌고, 그것이 또 4(12)을 채우면 1년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의 운행 속에 한 가지를 더 두셨던 것이다. 그것은 그것이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이 어떤 표적과 징조가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우리를 구원하러 그렇게 약속한 바로 그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탄생을 유대인들만 알아서도 안 되며, 베들레헴 사람만 알아서는 안 된다. 모든 인류에게 기쁨의 소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던 때에도 하늘의 별들의 징조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그분이 죽던 날에는 개기일식이 3시간동안 있었다는 것(27:45)다시 오실 그 때에는 해와 달과 별들에 어떤 이상한 징조가 또 있을 것(24:29-30)을 기록하고 있다.

2:9-10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27:45 제육시(정오)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오후3)까지 계속되더니

24:29-30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탄생과 그분의 죽음에 일월성신에 이상한 징조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우리 시대에 한 번 더 아주 강한 징조가 우리에게 있을 터인데, 그것은 그분이 다시 오실 그때쯤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행성의 움직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주의해야 한다. 미항공우주국의 발표를 무시하지 말라.

 

동방의 박사들은 사실 천문학의 대가들이었다. 그들은 일월성신의 움직임을 통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일들에 관한 점을 쳤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갑자기 나타난 하늘의 이상한 별들의 움직임은 그들을 완전히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온 인류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임과 동시에 그분의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안타까운 소식이 될 것임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의미있는 3가지 예물을 준비했던 것이다.

첫째, 그들은 맨 처음 황금을 준비했다. 불순물이 하나도 첨가지 아니한 정제된 순수한 황금을 준비했던 것이다. 이는 죄로 오염되지 아니한 순결한 그분, 신성한 본성만을 가지신 분의 탄생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들은 최고의 학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경배하길 원했고, 그분에게 황금을 드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둘째, 그들은 유향을 준비했다. 우유빛 나는 향기로운 액체를 준비했다. 이것은 그분이 생애가 깨끗하고 향기로운 삶이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된 본성이 없이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동안 죄를 짓지 아니하고(즉 마귀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자기 고집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대로 행했던 것이다.

셋째, 마지막으로 그들은 몰약을 준비했다. 이는 죽은 자의 시체의 몸에 바르는 고가의 향수였다. 그들은 그 왕이 모든 인류를 위하 죽어야 할 사실도 알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몰약을 선물로 드렸다.

이러한 동방박사들의 예물처럼, 우리는 신성한 본성을 가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으며, 순결한 삶을 살다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을 믿는다.

 

그런데 보라. 이 유대인의 왕이자 그리스도이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소식을 듣고도 어떤 사람도 그 아기 예수께 경배하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1:9-11)

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복음을 읽을 때에 가장 가슴 아픈 구절이 바로 이 구절이다. 세상을 지은 조물주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구원하러 친히 사람이 되어 오셨는데, 그분의 땅에 와도 그분의 백성들인 우리 인간들이 그분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환영하지 아니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몰라주어도 우리는 그분의 오심을 잊지 말고 감사하자. 그분이 오시지 않았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었을 것이다. 절망이었다. 하지만 그분이 오시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

온 예루살렘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의 방문소식을 보았고 또한 그들이 왜 왔는지도 들었다. 특히 당시 종교지자들인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은 그분이 예루살렘에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명도 그분에게 경배하러 가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밤에 양떼를 치면 목자들을 그리로 보냈을까?

 

 

 

4. 결론

놀랍지 않은가? 과연 누가 그분을 경배하였는가?

태어난 직후에는 유대인들 중에는 천한 사람들로 여겨졌던 목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늘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자신을 여기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다. 바로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목자들의 경배를 받으셨다.

한편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왕도 되실 분이었기에, 하늘의 일월성신의 징조를 보고 달려온 이방인의 고위관리의 경배도 받으셨다. 그들이 바로 동방박사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잘못된 관념 때문에 아기예수님은 죽음에 처할 뻔 했으며, 2살 아래의 어린 아기들만 죽어나갔다. 그래서인지 천국에 가면 어린 아기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키우신다고 말하는 간증을 많이 듣게 된다. 예수님 때문에 어린 갓난아기가 죽었기 때문이다.

 

2011727일 수요기도회설교안

[제 목]

마태복음강해(05) 애굽으로의 피난과 나사렛사람이라 칭하리라

[찬 송]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87장 내 주님 입으신 그 옷은

[설교자]

정병진 목사

[말 씀]

2:13~23(신약 2)

[키워드]

법궤, 론 와이어트, 고고학, 예수님의 피, 동방박사, , 율법, 헤롯, 베들레헴, 나사렛, 호테르, 네쩨르, 가지, , 줄기, 이새,

 

1. 서론

우리는 지난 3주간에 걸쳐 예수님의 왕의 족보와 예수님의 동정녀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어 오늘은 예수님의 애굽으로의 피난과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우게 된 이유에 대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잠깐 영상 하나를 보겠는데,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처녀의 몸에서 잉태되신 분이라는 고고학적 간증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이 간증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생활했던 광야와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다고 최초로 발견한 고고학자 론 와이어트의 간증입니다.

론 와이어트는 모세가 만든 법궤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료들을 수집한 결과 그 법궤가 골고다 언덕의 예레미야동굴에 있을 것이라는 확증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정식으로 허가를 받아 예레미야동굴을 답사했습니다. 2500년이 세월이 흘렀기에 지진으로 무너진 바위를 깨뜨리고 그 동굴의 깊숙한 곳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법궤가 있었고 천정에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당시 지진으로 인해 갈라졌던 바위틈이 있었고, 그 틈새로 피가 새어들어와서 법궤위에 떨어졌고, 그 떨어진 피가 굳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긁어다가 이스라엘의 저명한 혈액연구소에 보내 사람의 체온상태에서 48시간동안 배양액에 담가두었는데, 그 피가 살아있는 피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모든 말라버린 피는 죽은 피로서 거기에서는 어떠한 염색체도 얻을 수 없지만, 예수님의 피는 살아있어서 그 피 속에서 염색체를 얻을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염색체의 수가 23개였던 것입니다. 사람의 염색체의 수는 총 46개인데, 22개의 상염색체로 총44개에다가, 성염색체(XY) 두 개를 합하여 46개가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 법궤 위에 떨어져 있던 피의 염색체는 총 23개였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의 몸을 통해 이 세상에 오실 것이라는 예언이 정확히 이루어졌음을 고고학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죄없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태 속에 잉태된 여자의 후손이자 처녀의 몸에 잉태되어 탄생한 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애굽으로의 피난과 돌아옴

 

1)동방박사의 잘못된 판단착오로 인한 어린 아기들의 비극적인 죽음

여러분은 아기예수께 경배하러 왔던 동방박사들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것으로 인하여 아기 예수님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렇지만 그 일로 인해 죄없는 2살박이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다.

초림의 예수님의 탄생을 이방인들이 더 사모하고 더 먼저 알았듯이 재림하시는 예수님도 이방인들이 더 사모하고 더 먼저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의 조그마한 실수 때문에 아기 예수님께서 죽임당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으며, 2살 아래의 그 지경의 모든 아기들이 모두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별의 징조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유대땅 어느 동네에서 나실 것인지까지는 잘 몰랐다. 그들에게는 성경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베들레헴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이 없었기에 분별력이 없었다. 그래서 곧장 예루살렘으로 갔다. 유대인의 왕은 왕궁에서 태어나실 것이라는 생각을 무심코 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인하여 어떻게 되었는가? 자기나 자기의 자손이 아닌 다른 왕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헤롯왕은 극도로 분노했으며 결국 태어난 아기 예수를 죽일 계책을 마련했다. 그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동방박사들에게 아이를 찾거든 자기가 경배할 수 있도록 알려달라고 거짓말을 했다(2:7-8).

2:7-8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를 보냈다. 꿈 속에서 헤롯에게로 가지 말라는 지시하심을 받은 동방박사들은 다른 길을 통해 자신의 지방으로 가버렸다.

그러자 헤롯대왕은 동방박사들에게 속은(기만당한) 줄 알고, 심히 분노하여 사람들을 보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기(남자 아기)들을 그때를 기준으로 하여 2살 아래까지 싹 다 죽여버렸다. 이로 인하여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되었다(31:15, 2:18).

31:1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라마는 베들레헴지경의 마을이며, 라헬이 죽어 묻힌 장소가 베들레헴이다.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는데 그때 그녀가 묻힌 장소가 베들레헴이었다.

 

2)바른 인도 - 초자연적인 하늘의 이상과 기록된 성경말씀 간의 조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초자연적인 하늘의 이상과 기록된 성경말씀 둘 다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이방인들조차 뭔가 알아차리게 했던 하늘의 징조도 필요하고, 또한 이미 기록된 성경말씀도 필요하다. 이 둘의 조화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성경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2장을 보라. 성경을 달달달 외우고 있던 종교지도자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과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베들레헴에 갔었는가? 이처럼 지식은 자기를 높이며 교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대부분이 지식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성경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하여 자기를 높히려 한다.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이용해 자기를 높이는 데 이용하지 말고, 성경말씀을 보고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는 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나도 확실히 성경이 나의 인생의 표준지침서임과 성경이 불변의 진리임을 믿는다.

둘째, 더불어 우리에게는 하늘의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나치게 하늘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것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에도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고 아는지 모른다. 그들은 꿈과 환상과 기적적인 치유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고 계시는 신이라는 사실을 믿고 있다. 이방인들에게도 나타나는 기적같은 사건의 체험, 환상, 꿈들을 결코 무시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기록된 성경말씀 외에도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깨닫게 하는 요소들이 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을 기꺼이 참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주님의 어떠하심을 드러내고 높이는 것일 때 말이다.

하지만 하늘의 이상만을 추구하지 말라. 그것은 동방박사들의 실수처럼 인간의 잘못된 지식으로 인하여 자신마저 삼천포로 빠져 나오지 못할 수도 있으며, 죄없는 다른 사람들을 죽일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죄없는 자들까지 지옥으로 끌고 갈 수 있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한다. 성경을 통해서 과연 그 징조가 성경에 근거한 것인지, 성경을 지지해주는 것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3. 나세렛 사람이라 칭함받으리라.

 

1)애굽으로의 피난은 왜 필요했었나?

첫째, 헤롯이 아기예수를 죽이려 하니, 헤롯의 통치영역을 피해 달아나서 안전한 곳으로 가기에는 애굽에 가장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하나님께서 즉시 주의 천사인 가브리엘을 요셉에게 보냈다.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의 꿈속에서 말하기를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2:13)”

요셉은 즉시 순종했다. 꿈을 깨자마자 밤중이지만 일어나서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갔다.

둘째, 이것을 통해서 구약시대의 선지자(호세아)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었다(11:1).

그리하여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11:1)”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셋째, 이와같은 사실은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겪게 되는 신앙의 과정과도 흡사하다.

애굽에는 바로가 있었다. 애굽은 마귀가 통치하는 영역을 상징하고, 바로는 사탄마귀를 상징한다. 아기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한 다음 다시 그곳에서 나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과 흡사하다.

우리 모든 인간은 이처럼 마귀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탈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시하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2)왜 요셉의 가족은 베들레헴으로 귀한하지 않고, 나사렛에서 가서 살게 되었나?

그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B.C.), 하나님은 죄없는 어린 아기를 죽인 헤롯대왕을 치셨다. 그는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주의 천사 가브리엘을 시켜, 요셉에게 이스라엘 땅 안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2: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요셉은 항상 즉시 순종했다. 그는 즉시 밤에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 안으로 들어갔다. 성경학자들은 그가 애굽으로 피신한지 36개월만이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요셉의 가족은 왜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되었을까?

첫째, 헤롯대왕을 이은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도 폭군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22).

요셉은 헤롯대왕이 죽었으나 헤롯 아켈라오가 유대 땅의 임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매우 악한 자였고 폭군이었기 때문에 그는 유대땅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꿈에 그를 갈릴리지방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때 당시 이스라엘 땅은 헤롯대왕의 3아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다.

헤롯안디바는 갈릴리지역과 베뢰아지역의 분봉왕으로, 헤롯아켈라오는 유다땅과 사마리아의 분봉왕으로, 헤롯빌립은 이두메지역과 요단동편지역의 분봉왕으로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요셉은 보다 더 부드러운 통치자였언 헤롯 안디바가 통치하던 그의 동네로 다시 가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이로 인해 선지자들이 말한 바, 그가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될 수 있었다(23)

이에 요셉의 가족은 원래 자기가 살던 마을 즉 갈릴리의 나사렛, 자신과 마리아가 원래 살던 동네인 나사렛으로 가서 거기에서 살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왜냐하면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았기에, 나사렛출신의 예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 예수님 당시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은 그리 좋은 말이 아니었다. 천한 지방 출신의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예수님의 제자가 된 나다나엘도 그의 친구 빌립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1:45-46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은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는 곧 그가 천한 신분의 사람이, 천한 지방 출신의 사람이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영적으로 이 말은 엄청난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는 곧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지만 실제는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근본이라는 것을 말해줌과 동시에 엄청난 핍박과 고난이 닥쳐온다해도 그분은 절대 제거될 수 없는 불사조와 같은 존재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을 많이 읽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가 나사렛사람이라고 칭함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확실히 마태복음의 기자는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우게 되는 것이, 그분이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예언들이 성취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1: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4: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먼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린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곳이 신약성경에 19군데 등장한다. 그리고 동네로서 나사렛이라는 말이 쓰인 것은 총 12회다. 나사렛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신약성경에서는 의외로 빈번히 등장하는 단어.

구약성경의 예언 가운데 그분이 나사렛사람이라고 칭함을 받게 된다는 것이 어디인지 성경학자들도 좀처럼 쉽게 찾아내지 못했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 구약의 나실인이라는 제도에서 연유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실인의 규정(6:1~8)을 보면, 예수님은 나실인처럼 사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실인은 제사장의 아들처럼 출생에 의하지 않은 자라할지라도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자신을 하나님을 드려서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였는데, 그들은 최소한 3가지 규정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첫째, 포도주나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즙이나 포도씨나 껍질까지라도 즉 포도자체를 먹지 말 것. 둘째,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 셋째, 대제사장의 규정처럼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 하지만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3가지 규정을 잘 지켰다는 성경구절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세리가 베푼 잔치 자리에 참석하여 포도주를 즐긴 분이라고 나온다. 또한 그의 첫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것이었는데 그 장소가 바로 혼인잔치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과 친구 나사로를 살리셨는데, 그때에 예수님은 시체에 가까이 하시고 만지기도 하셨다.

11: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그분이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울 것이라는 말씀은 예언서(선지자)에서 찾아봐야 한다. 나도 한 때는 그 비밀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가, 지난 2006년 성지순례를 갔을 때, 비로소 히브리대학에 다니고 있던 한국인 가이드에게서 그 비밀을 듣게 되었다. 히브리대학의 교수들은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으리라는 것은 나실인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언서들에게서 나오는 것으로서, 그것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B.C.733년경,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인 11:1의 말씀이라는 것이었다.

11:1-5 이새의 줄기(밑둥, 그루터기)에서 한 싹(호테르)이 나며(나오며, 나타나며) 그 뿌리들에서 한 가지(네쩨르)가 나서 결실할(열매를 맺을)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우리도 알다시피 봄이 되면 여러 새로운 줄기들이 나무에서 새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나무에서 올라오는 줄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2가지로 부른다. 나무 줄기에서 올라오는 것을 (호테르)’라고 부르지만,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것은 줄기(네쩨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라는 말은 그분이 네쩨르(뿌리에서 나온 줄기==가지)’라는 분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다. 그 나무(감람나무)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와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의 예언에 따르면, 감람나무 뿌리에서 나온 가지 그가 바로 나사렛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가 바로 네쩨르’, 즉 그분이 바로 나사렛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사렛이란 뜻은 바로 예수께서 곧 감람나무의 뿌리에서 바로 올라운 가지임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인가 다윗의 근본이신가? 1:1에 보면,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을 알고 있다면 우리는 그분을 절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분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자손을 만드신 근본인 하나님으로 직접 나오신 분이시다. 즉 그분은 다윗의 자손임과 동시에 다윗을 있게 만든 감람나무의 뿌리에서 곧장 나오신 분이신 것이다.

 

감리교목회자 평강교회의 이동휘 목사는 네쩨르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11:1의 말씀을 현대역으로 번역하면, “다윗 왕족의 혈통은 잘라진 나무처럼 끊어질 것이지만 줄기에서 새 순이 돋고 뿌리에서 새 가지가 나오듯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 새로운 왕이 일어날 것이다. 여호와의 성령께서 그에게 자기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과 재능을 주실 것이며 그는 여호와의 뜻을 알고 그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길 것이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나무는 감람나무(올리브)를 말합니다. 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줄기에서 새 순이 돋고, 뿌리에서 새 가지가 나온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감람나무에는 줄기에서 나온 가지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있습니다. 줄기에서 나온 가지는 히브리어로 호테르라고 합니다. 보통 줄기와의 접촉 부위가 두툼한데, 이는 목자의 막대기로 사용됩니다. 목자는 양 떼를 인도할 때 호테르를 던져서 방향을 알려줍니다. 또한 호테르양 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강력한 무기입니다. 목자는 호테르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사자나 곰 같은 맹수가 양떼를 공격하려고 달려들면 호테르로 맹수를 때려잡습니다. 목자가 호테르의 두툼한 쪽으로 맹수의 머리를 가격하면 맹수는 한방에 곧 나가떨어집니다.

한편, 뿌리에서 나온 가지네쩨르라고 합니다. ‘네쩨르는 감람나무의 뿌리에서 원을 그리며 자라는데,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잘라 줍니다. 남은 한 두 개의 네쩨르어린 묘목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어린 감람나무라고 부릅니다.(128:3) ‘네쩨르는 어린 묘목을 위해 한 두 개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잘라서 목자의 지팡이로 사용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풍습이었습니다. ‘네째르지팡이로서 허리에 차는 막대기’(호테르)보다 길었습니다. 줄기에서 나온 호테르양들을 인도하고 보호하는 목자인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뿌리에서 나온 네쩨르어린 묘목’, ‘어린 감람나무로서 죽지 않고 다음 세대를 위해서 다시 살아남은 유다지파 출신의 다윗 왕조, 곧 메시아 왕조를 상징합니다. 특히 이새의 뿌리에서 나온 싹인 메시야는 밑동이 잘릴지라도 불사조와 같이 다시 살아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다윗의 왕가에서 나실 예수님은 감람나무의 네쩨르와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을 돌감람나무의 네쩨르에 비유했으며, 다윗을 참감람나무의 네쩨르에 비유했습니다. 사울은 밑둥이 잘리면 죽고 마는 돌감람나무의 네쩨르처럼 하나님이 한 번 치자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밑둥이 잘리면 더 왕성히 자라나는 감람나무의 네쩨르처럼 어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므로 감람나무의 네쩨르는 어려움을 당해도 심판을 당해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메시야의 왕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역에서 다윗 왕족의 혈통은 잘라진 나무처럼 끊어질 것이지만, 줄기에서 새 순이 돋고 뿌리에서 새 가지가 나오듯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한 새로운 왕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여호수아 당시, 기브온 거민들이 여리고성을 단숨에 정복한 이스라엘이 두려워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 죽이지만 말아 달라 부탁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의 생명을 보장하는 대신에 이스라엘의 영원한 종이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기브온 족속들은 이스라엘에 편입되어 성전에서 나무패며 물을 긷는 사람들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들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습니다(9). 그런데 사울 왕이 날로 추락하는 지지도를 만회하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하지 않는 기브온 거민들을 학살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 죄를 사울의 때에 심판하지 않고 다윗의 때에 심판했습니다. 다윗 왕 시대에 연거푸 내리 3년 동안 기근이 발생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하자 그 원인이 사울 왕의 기브온 사람 학살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삼하 21:1) 다윗의 시대에 년부년 삼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문제 해결을 위해 소원을 묻자 사울 왕가의 남은 자손 일곱을 처형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삼하21:1-14). 다윗 왕이 그들 소원대로 시행하자 비로소 기근이 물러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울 왕가는 비록 왕가일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는 돌감람나무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에 대해서 사울은 돌감람나무의 네쩨르로 심판을 받으면 감당할 수 없지만, 다윗은 참감람나무의 네쩨르로 심판을 받아도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에 다윗의 때에 이 죄를 심판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새의 뿌리에서 자라나신 감람나무의 네쩨르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을 받아도, 시련을 받아도 더 왕성하게 자라는 참감람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새 가지’, ‘네쩨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감람나무는 밑둥이부터 잘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더 왕성한 생명력으로 살아나셔서 감람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새 가지’, ‘네쩨르가 되셨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의 역사는 감람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새 가지’, ‘네쩨르의 역사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감람나무의 네쩨르로서 불사조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다윗 왕의 계보에 든 이새의 뿌리에 나오는 네쩨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기록한 마태복음 1:1-17에서 이새가 다윗 왕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왕을 낳았다는 계보는 오직 이새뿐입니다. 오직 이새가 낳은 다윗 왕의 계보에 드는 사람만이 영원한 왕이 계보를 잇기 때문입니다. 이 계보에 드는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 죽어도 부활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이새의 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죽어도 부활 생명으로 다시 사는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네쩨르입니다. 네쩨르는 세상에서 비록 무명한 자 같으나 하나님 앞에 유명한 자요, 죽은 자가 같으나 영원히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고후6:9-10)들입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성도 여러분, 다윗 왕과 같이 하나님 말씀이 그 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