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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후반에 생겨난 빈야드운동과 1990년경에 시작된 신사도운동은 과연 하나님께서 기빠하시는 성령운동일까? 우리나라에서 빈야드운동은 일반적으로는 G12의 엔카운터수양회나 알파코스의 성령수양회 등으로 쉽게 접해볼 수 있다. 그리고 신사도운동은 일반적으로 인터콥의 영적도해나 땅밟기, 예수전도단의 중보기도학교 등으로 접해볼 수 있다. 또한 대전한밭제일교회 이영환목사님의 장자권세미나에서는 명령과 선포 등으로 접해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예언자학교, 예언을 포함한 기적과 치유집회 등에서도 많이 접해볼 수 있다. 그렇다고 영적도해나 땅밟기, 중보기도학교, 명령과 선포, 기적과 치유, 방언통역과 예언 등을 행하는 곳이 전부가 다 잘못된 성령운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것은 매우 성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탄은 짝퉁의 일인자다. 먼저 치고 들어와서 진짜를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주요교단에서는 왜 이러한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을 하나같이 비성경적인 성령운동 내지는 이단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이들의 정체를 살펴보고 이들을 어떻게 경계해야 할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의 기원을 살펴보자.

  실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의 시초는 20세기에 회복된 방언운동에서 시작된다. 그러니까 1900년 찰스 파함이 운영하는 벧엘성경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파함목사는 학생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은 표적이 무엇인지 숙제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하나같이 '방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방언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 해 연말에 한 여학생이 정말 학생들의 안수를 통해서 방언을 받게 되었고 그 이듬해 초에는 파함목사도 방언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방언을 사모하고 전파하는 이들이 생겨났는데 이 무리의 흐름을 일컬어 '오순절운동'이라 부른다. 사실 방언이 교회의 역사 가운데 다시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A.D.300년 어간까지 교회사 가운데 방언은 성령의 은사로 잘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어거스틴이 등장하면서 사도시대 이후 방언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가 그쳤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방언은 점차적으로 교회사 가운데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종교개혁자 칼빈도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 이후 중지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종교개혁이후 약 250년간 개신교에서도 방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지도자가 아닌 성도들이나 집회에서 나타나기는 했었다. 심지어 가장 복음을 많이 전파하던 18세기후반과 19세기에 들어와서도 방언은 공개적인 성령의 은사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1900년 즉 20세기에 들어와서 방언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순절교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1976년 미국 에너하임에 존 윔버(1934~1997)라는 사람이 나타나 빈야드교회를 개척하면서 기존의 방언에다가 어떤 특이한 현상들을 가리켜 성령의 은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몸의 진동과 떨림, 쓰러짐, 입신, 술취한 듯한 행동과 춤, 몸부림을 치거나 경련을 일으킴, 깔깔깔대면서 웃거나 흐느껴움, 짐승소리를 내거나 기어다님 등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는 금이빨, 금가루 이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은 이러한 독특한 현상을 성령의 임재의 표적이라고 불렀다. 오늘날에 와서 이러한 일들은 알파코스의 성령수양회나 G12의 엔카운터수양회에서 자주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성령임재의 표적이 맞는 것일까?


  우리는 누가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런 줄 안다. 하지만 그것이 성경적인지 아니면 성경의 원리나 원칙에 맞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교회들의 산 기록인 사도행전의 기록나 서신서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현상이 단 한 번도 성경의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치자. 그렇다고 이것들을 전부 귀신의 장난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인가? 아니다. 혹 성경에는 없는 현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던 목적과 부합된다면 그것도 성령의 역사일 수가 있다. 그런 것들은 무엇일까? 이를 테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 교회 가운데 형제를 섬겨 교회를 온전케하고 복음 전하는 데에 사용되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이 성경이 없는 현상이라고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빈야드운동하는 곳에 가보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이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가운데 그것에 대한 증거로 이런 기적들이 나타는가? 혹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는 빈야드와 신사도를 따르는 자들은 아닐 것이다. 형태만 가져와서 쓰는 자들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역을 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쓰러트림과 깔깔깔 대고 웃는 현상 등을 수용하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런 곳은 100% 성령이 하는 역사가 아님을 알라. 보통 사람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사복음서나 사도행전이나 서신서에는 없지만 성령하나님의 독특한 사역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쳐놓은 함정이다. 성령님은 따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또 다른 자기자신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하늘 보좌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당신의 영을 보내신 것이 바로 성령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공생애를 사실 때에 행하지 않던 일을 성령이 오셔서 독특하게 행하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면 일단 검증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전에 없던 현상이 어디에서 나타났다고 하면 그것이 예수님과는 과연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예수님을 드러내는가를 주의깊에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데 어찌 금이빨과 금가루이적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은 현상들은 거의가 다 귀신의 장난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건전하다는 캐네스 해긴목사마저도 그의 사역의 말기에 귀신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깔깔깔 웃는 것을 성령의 거룩한 웃음이라고 하면서 귀신의 역사를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인 것이다. 또한 토마스주남여사나 인천의 김용두목사님의 사모님도 성령춤이라고 하는 것을 추었다. 그것도 목사가 제지하면 성령훼방죄로 몰고 가면서 말이다. 아니다. 그런 현상은 성경에도 없었을 뿐더러 그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 귀신의 장난인 것이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에 살~짝 귀신이 들어와 가라지를  뿌리고 간 것을 성령의 역사로 이해해 버린 것이다. 더 이상 속지 말라. 성령춤이라는 그것, 전부가 다 가짜다. 성령춤을 추었던 토마스주남여사를 보라. 그녀는 자기가 살아서 휴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베리칩이 666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더니 그만 자궁암으로 죽고 말았다.

  결국 빈야드운동은 귀신이 하는 것을 성령이 하는 것으로 알고 넘어간 잘못된 성령운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물론 빈야드쪽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다 귀신이 하는 역사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보여지는 이적들 가운데 대부분이 귀신이 가져다 주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속이는 단체가 바로 빈야드인 것이다.


  둘째, 이제 신사도 운동에 대해 살펴보자. 

  신사도운동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는 예언자가 지금도 존재한다고 하더니, 1990년대에 들어오니 이제는 사도의 직분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 캔자스시티의 예언자그룹에서 시작되었다. 이 신사도운동의 대부는 밥 존스라는 사람인데 이 사람은 올해 2월에 사망했다. 그러다나 2001년이 되자, 약해진 빈야드운동에다가 예언과 계시를 강조하는 예언자그룹이 모이더니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이러한 운동을 신사도운동이라고 한다. 이것의 실제는 미국 풀러신학교의 피너 와그너박사가 주도했다. 그는 이제 사도시대가 도래했다고 선포하면서, 12명의 예언자들을 사도로 독단적으로 임명해 버렸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G12의 핵심멤버인 로렌스 콩 목사다. 그러니 G12의 엔카운터수양회 속에 보면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의 핵심교리와 원리들이 거기에 들어있으며, 기름부음 사역과 쓰러뜨림의 사역이 거기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캔자스시티의 예언자그룹과 빈야드운동은 다른 사역들이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둘이 하나로 연합하여 사역을 하고 있다. 신사도운동에게 있어서 예언과 계시는 그들의 주된 사역이다. 그리고 치유와 기적을 동반하는 자에게는 사도라는 직책이 수여된다. 그리고 그들은 임파테이션이라는 것을 행한다. 그들은 성령의 전이라고 부르는 이 사역을 통해 자신의 기름부음을 다른 사람에게도 흘려보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초대교회 가운데서도 분명 사도들이 안수를 하여 성령을 받게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도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안수한 것일 뿐 그들이 성령세례와 성령의 선물을 준 것이 아니다. 그것을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 사도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사도쪽에서는 사역자를 통해 기름부음의 전이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틀렸다. 잘못된 것이다. 이들에게서 일어나는 기름부음은 단지 귀신의 전이일 뿐이다.


  성경을 보라. 오늘날에도 과연 사도직과 선지자직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도'라는 말은 원래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전도하러 나갔다. 그래서 12명의 제자들을 사도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부류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바울이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았던 자이다. 그러므로 12제자들과 사도바울은 사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뒤에 사도라고 불리웠던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혹 예언하는 은사를 받은 자가 있어 그를 예언자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구약의 예언자와는 다른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예언이 완성되었으니 더 이상 예언이 필요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들어와 예언자는 구약시대만큼 교회사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적이 없다. 잠깐 보조적으로 그 일을 감당했을 뿐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신사도운동을 하는 이들이 예언을 하면서 치유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을 사도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성경을 보라.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셨다. 그리고 자기 대신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지금도 교회사역을 돕고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최소 60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교회를 향하여 예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혹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어디 그런 것이 있느냐로 할 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육체로 계실 때에 주신 말씀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사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분이 부활승천하시고 난 후에 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것도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이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3장에 어디를 뒤져보더라도 주님의 말씀은 신사도쪽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에게 주신 말씀은 단 4가지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첫째, 어떤 환난과 핍박이 오더라도 끝까지 인내하여 신앙에 승리기는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둘째, 자칭 사도와 자칭 선지자를 분별하여 그들의 거짓됨을  드러낸 다음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라는 것이다. 셋째, 지도자들이나 선생들 가운데 거짓된 가르침이 있으니 그것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람의 교훈이나 영지주의자 니골라당의 교훈이 그것이다. 이들의 가르침의 핵심내용은 이렇다. 예수님을 한 번 믿었으면 영으로서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으니 육체는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으며 결국에는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구원파 교리와 비슷하고 칼빈교리와 유사하다. 그래서 믿는 자는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고, 우상을 숭배해도 되며, 간음해도 된다는 것 등이 이들 교리의 핵심사항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이들의 교훈을 미워하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 네번째는 어느 누구도 온전한 사람이 없으니 자신의 잘못과 죄들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자신의 죄악과 잘못됨을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면 구원에서 제외시켜버리겠다는 것이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의 핵심이다.


  그런데 오늘날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은 요한계시록 2~3장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거짓선지자와 거짓지도자들을 주의하고 그들을 분별해내라고 하셨다. 그런 자들이 나타날 것을 주님께서 미리 아시고 경고해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칭 사도, 자칭 선지자라 하는 자들을 삼가야 한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하나님 자신인 것을 말하지 않는 신사도는 다 가짜인 줄 알라. 예수께서 환난이후에 오시니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신사도도 가짜인 줄 알라. 회개가 마지막에 해야 할 천국열쇠인 것을 전하지 아니하는 신사도는 가짜인 줄 알라.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되도 우상을 숭배해도 되며 음란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말하는 신사도는 다 가짜인 줄 알라. 한 번 받은 구원이라도 얼마든지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아니하는 신사도는 다 가짜인 것이다.


  빈야드나 신사도쪽을 가보라. 예언과 치유사역이 그들의 사역의 주류를 이룬다. 그곳에서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일과 회개가 빠져있다. 또한 예수님의 중요한 핵심 가르침들이 빠져있다. 그렇다고 신사도나 빈야드쪽에서 말하는 전부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에는 예수님을 높이지 아니한다. 예수님을 드러내지 아니한다. 능력과 기적과 치유과 예언만을 더 높이 드러낸다. 그것은 결코 부활하신 주님의 뜻이 아니다. 가짜 사역자를 더 이상 높이지 말라. 자칭 사도라 하지만 그들만을 높이는 곳을 경계하라. 귀신이 하는 일인지 성령이 하는 일인지 분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곳을 따라가지 말라. 그들에게 함께 참여하면 같이 징계받다가 같이 망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이 바로 두아디라교회에게 주신 교훈이다(계2:20~23). 그곳에서 빠져나오라. 그곳에 참여하지 말라(계18:4).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말라. 사탄의 가르침이 꽉 차 있다. 그리고 이들이 보았다 혹은 들었고 주장하는 천국과 천사의 이야기도 가짜다. 그런 것에는 검증할 수 없는 것들과 성경에 없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다 가짜인 것이다. 속지 말라. 사탄도 광명의 천사로 자신을 가장한다고 했다(고후11:14~15). 이제 마지막 때가 되다보니 천국과 지옥도 가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속지 말라.


  사도바울은 고후11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사도인 것은 어떤 능력이 나타나고 예언을 할 수 있서가 아니라, 주의 복음을 위해 갖은 핍박과 고난을 견뎌낸 것이라고 말이다(고후11:23~28).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보았고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았다(행9:15~16).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도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후11:5,12:11~12, 딤전1:7, 딤후1:11). 하지만 그가 자랑한 사도로서의 자격은 고난을 이겨내면서 복음을 전파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 사람이 진정 사도인 것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자신의 최대의 관심에 대해 정확히 밝힌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함이라고 했다(고후11:2). 그의 사역의 목표와 중심은 항상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뱀이 그의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게 하면 그것은 가짜 사도라고 했다(고후11:3). 그러므로 자신이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나 다른 영이나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그것은 가짜라고 말했다. 그는 오직 그리스도만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이것이 진짜 성령의 사역이요, 이것이 진짜 사도직분을 수행하는 것이다. 사도요한도 성령이 오시면 성령은 오직 예수님만을 드러내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요14:26,15:26).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다 틀어지기 마련이다. 빗나가는 것이다. 바로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은 빗나간 성령운동의 하나인 것이다. 더 이상 속지 말라.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 건투를 빈다.

2015-8-02 주일오후찬양예배_00044.MTS_00050053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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