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신사도와 빈야드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쓰러짐,계속해서 웃는 것,금이빨...)은 과연 성령의 은사인가? 그리고 성령의 은사는 성도의 신앙생활에 어느정도 유익하다고 보는가? 성령의 은사를 구할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사용할 때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오늘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요청과 활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한 번 들여다보도록 하자.



1. 들어가며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들이 진정 주의해야 할 사항은 대체 무엇이며,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그것을 사용할 때에는 무엇에 주의를 해야 할까? 또한 성령의 은사를 무작정 사모하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행동이며, 성령의 은사를 최고로 여긴 자들에게 닥쳐올 위험은 또 얼마나 클까? 한편 성령의 은사의 잘못된 사용으로 인하여 교회는 또 얼마나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일까?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의 은사와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2가지 사항에 대해서 다루고자한다.


2.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추구하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2가지(1)

  먼저,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그것을 구하는 자들은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부터 살펴보자. 그것에 대하여 사도바울은 고전12:1~3에서 2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의 첫째는, 우상이 끄는 대로 끌려가는 것처럼 성령의 은사나 은사를 받은 자들에게 무작정 끌려가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고전12:2). 자, 우상이란 무엇인가? 우상이란 장인이 돌이나 나무로 깎아 만든 수공품이거나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철를 녹여 만든 가공품들에 불과하다(시115:4~7). 하지만 거기에 사람들이 가서 빌거나 절하든지 향을 피우게 되면 그 우상에 귀신이 달라붙게된다. 왜냐하면 귀신은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귀신은 타락한 천사들로서 원래는 종으로 지어졌지만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기도 섬김을 받으려 하다가 하늘에서 쫓겨난 존재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귀신들이 하늘에서 쫓겨남을 받을 때에 그들이 동시에 저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때 저주받은 그들은 흉측하게 변해버렸다(눅10:18~19). 그후 그들의 모습은 사람에다가 동물둘의 형상을 섞어놓은 험상궂은 모습을 취하게 된다. 물론 영물이기에 자신의 모습을 얼마든지 가별할 수는 있지만. 그런데 이들은 보이지 않는 영물이면서 능력을 가진 존재로 창조된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속성을 이용하여 그들은 이제 하나님 행세를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잘 속는다. 그것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속지 말라. 그들은 저주받은 영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며, 듣지를 못한다((막9:25). 그러므로 우상에게 매인 사람들은 대체로 아무 말도 못한 채 끄는 그대로 끌려가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만약 성령의 은사를 구하는 자가 누군가 성령의 은사라고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주는 대로 받으려고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자가 하자는 대로 무조건 따라 행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성령의 은사라고 말은 한다 하지만 사실은 귀신이 주는 은사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들은 그것이 귀신이 주는 은사인지 성령이 주는 은사인지 구별할 줄 아는 상태에서, 성령이 주는 은사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성령의 은사받으러 가자고 해서 무작정 따라나섰다가는 귀신이 주는 은사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는 자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은사를 함부로 무작정 구하지 말아야 한다. 분별해서 구해야 한다.


3.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추구하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2가지(2)

  둘째로, 성령의 은사를 구하거나 사모하는 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은사보다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에 충실하고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고전12:3). 성령이 하시는 역사 중 은사를 주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지 본질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이 행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은 죄를 책망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하게금 도와주는 것(요16:7~8)이요,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요14:26, 15:26). 결국 성령은 이러한 사역을 통해서 믿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게 하고, 예수님이야말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주 하나님이신 것을 믿게 하신다. 이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회심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위와 같은 사실을 자신의 입술로 신앙고백하게 하시는 것이 성령이 하시는 주된 사역이다. 그것의 핵심이 바로 예수님을 자신의 모든 인생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는 것이다((고전12:3, 행2:36). 그리고 성령께서는 부차적으로 믿는 자들에게 선물을 주시는 일을 하신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일컬어 '은사'라고 부른다(행8:30, 11:17). 그러므로 은사는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사람이 구원얻는 데에는 하등의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고 성령의 은사를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4. 성령의 은사들의 종류

  그렇다면, 이제는 성령의 은사들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으며, 이것은 무엇 때문에 주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자(고전12:4~27). 사도바울은 믿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은사 외에도 2가지가 더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각각 다른 것이다. 그렇다. 성령께서는 각종 은사들을 주신다. 하지만 주 예수님은 직분(직임,직책)을 주시며,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역(행동, 일감)을 주신다(고전12:4~6). 이런 것들을 고전12:28절에 나와 있는 것들을 가지고 구분해보면, 성령의 은사들에게는 능력과 병고침과 각종방언 등이 있고, 주 예수께서 주시는 직책으로는 사도와 선지자와 교사가 있다. 그리고 더불어 에베소서에 보면 목사와 복음전하는 자(엡4:11)도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사역에는 서로 돕는 사역과 다스림의 사역 등이 있다. 그렇다면,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들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오늘날에 신사도와 빈야드에서 나타나는 쓰러짐과 머리를 마구 흔드는 것과 깔깔깔 대며 웃는 것 혹은 계속해서 주체하지 못하고 게속해서 웃는 것(일명, 희락의 웃음), 동물 울음소리를 내는 것, 금이빨로 변하는 것, 손에 금가루가 생기는 것 등은 과연 성령의 은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성령이 주는 은사들이 아니다. 귀신이 주는 은사들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고전12장에 의하면, 딱 9가지 뿐이다(고전12:8~10). 그것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고침, 능력행함, 예언함, 영들분별함, 각종 방언말함, 방언들 통역함이다. 이것 외에 나타나는 현상들은 성령의 은사를 가장 귀신의 은사들이다. 절대 속지 말라.


5. 성령께서 은사들을 주시는 이유

  이어서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은사들은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일까? 그것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라고 사도바울은 가르쳐준다(고전12:7). 그런데,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은사에는 자기를 위한 유익의 은사가 있고 남(교회공동체)을 위한 유익의 은사가 있다. 그것들 중에서 자기의 유익을 위한 은사는 한 가지로 방언의 은사뿐이며(고전14:4), 남(교회공동체)를 위한 은사는 나머지 8가지 은사들이 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은사의 종류를 언급하면서, 성령께서 왜 은사를 나눠주시는지 알아야 한다고 아주 길게 언급한다(고전12:12~27). 성령께서 은사를 나눠주시는 이유는 교회의 약한 지체를 돕고 섬기라고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사자는 자신의 은사를 통해서 약한 지체가 힘을 얻게 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은사를 말할 때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은 동일한 은사를 똑같이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성령께서 각 사람의 분량에 따라 각각 나눠주시기 때문이다(고전12:11). 그러므로 다 사도가 될 수 없고, 다 방언말하는 자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어떤 교단에서는 방언을 말하지 못하면 구원을 못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모든 믿는 자가 다 방언을 말하게 된다면, 사도바울이 어찌 고전12:30에서 "다 방언 말하는 자겠느냐"고 했겠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 방언을 말하지 못해도 회개하고 예수믿고 천국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다만 선물로 은사를 받았다면 교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6.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는 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

  이제 크게 두번째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려 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사도바울은 은사를 구하거나 추구하는 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을 먼저 언급했다. 그리고 은사들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은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말는데, 사도바울은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말한다. 다시 말해, 예언과 방언의 은사로 대표되는 은사들을 사용할 때에 반드시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으로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원칙에 따라 성령의 은사들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주의해야 할 사랑의 원칙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요약해보면, 긍휼의 관점과 생명의 관점에서 사용하라는 것이다. 원래 사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헷세드'이다. '헷세드'는 구약성경에서 '긍휼, 자비, 인자, 인애, 사랑'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예수께서 어느날 헷세드의 집이라 불리는 연못에 가셔서 38년된 중풍병자를 치료하신 일이 있었다(요5장). 그 연못의 이름은 "베데스다"로 기록되어 있는데 원문을 보면, "벧(집)+헷세드(긍휼,사랑)" 곧 긍휼(사랑)의 집이란 뜻이다. 그랬다. 주님께서는 그 연못가에 있는 병자들 중에 질병이 가장 오래되고 중해서 스스로는 절대 고칠 수 없는 자를 찾아가 그를 치료해주신 것이다. 그렇다. 은사를 사용할 때에는 약한 지체를 돕고 세워주는 데에 써야 함을 주님께서는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를 살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원래 그 여인은 돌에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율법에는 간음하는 여자를 돌로 쳐죽여야 한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사랑과 긍휼의 관점, 용서의 관점, 약한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셨다. 그리고 그녀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래서 무리들에게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돌로 그녀를 치라:"고 했다. 그러자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다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인에게 "가시 다시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의 관점으로 대하지 않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재기의 관점으로 바라보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이 가진 은사를 쓰는 사랑의 원칙이다. 약한 자를 돕기 위해, 약한 자를 세워주기 위해, 힘없는 자를 살려주기 위해, 피할 곳 없는 자에게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일에 은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은사들을 교회공동체를 위해 사용할 때에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은사들을 자기자신의 자랑거리로 삼거나 돈벌이의 수단으로 절대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7. 성령의 은사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성령의 은사를 언급할 때 주의할 것이 한 가지 더 있다면, 성령의 은사를 아예 거부하는 자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는 초대교회 이후 없어져 버렸다고 주장한다.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다만 그것을 잘못 사용하여 교회를 혼란케 하고 시끄럽게하는 것이 문제요, 귀신의 은사와 성령의 은사를 혼돈해서 받아들임으로 오히려 귀신에게 사로잡히는 것이 문제다. 성령님께서 살아계시며 또한 믿는 자들이 지금도 생겨나고 있는데, 어찌 성령께서 선물을 주시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성령의 은사는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고전13:8~12).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더이상 가까이 하지 말라. 그런 자들과 함께 하다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되기 쉽고 성령을 거역하는 자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8. 나오며

  그렇다. 성령의 은사는 좋은 것이다. 성령께서 주시는 것인데 좋지 않은 은사가 어디 있으랴! 그래서 크고 낮음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거나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적으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가 아닌 것을 사모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는 것이다. 우상이 끄는 그대로 끌려가는 이방인들처럼 성령의 은사이니 무조건 받으라고 한다고 해서 덜컥 가서 받는 우를 범치 말아야 하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귀신이 주는 은사들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사도와 빈야드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들은 대부분 귀신이 주는 것임을 알라. 성경에 그러한 은사가 없을 뿐더러, 교회사 가운데에서도 그런 은사가 나타난 일이 없다. 신사도나 빈야드 운동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중에서 방언의 은사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귀신이 주는 것들이라고 알면 된다. 그들을 조심해야 한다. 더불어 은사를 받은 자들이 그것을 사용할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사랑과 긍휼의 관점에서, 사랑을 살리고 일으켜세우는 관점에서 성령의 은사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이 행하는 예언이나 방언은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키고, 시끄럽게 할 수 있다. 사랑의 관점으로 사용할 때 은사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참고로, 예언과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는 저의 다른 설교를 참고해 주십시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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