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영으로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성령을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구원받는 모든 영역에 성령께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이는 그 어떤 영적인 것들도 깨달을 수 없고, 심지어 자신이 죄인인지도 잘 모르며, 왜 구원을 받아야하는지도 잘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령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므로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역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을 잘못 해석하도록 귀신이 성령을 가장하여 잘못 인도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의 전반에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있게 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알아야 한다. 특히 성령이 누구신지 그 인격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성령이 누구신지에 대해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이 누구신지 알아보는 7번째 시간으로서 경륜의 영으로서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심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2.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하여 우리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분의 사역에 따라 정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나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인격성에 따른 정의라고 말할 수 있, 성령을 "양자의 영", "성경의 영", "인치시는 영"이라고 할 때에는 그분의 사역에 따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분의 인격성에 따라서 성령을 정의하면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한 6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첫째, 그분은 "하나님의 영"이요, 둘째는 "여호와의 영"이시다. 그리고 셋째 그분은 "아버지의 영"이요, 넷째, 그분은 "아들의 영"이며, 다섯째, 그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자, 여섯째, "예수의 영"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이 누군지를 인격적으로 정의할 때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령은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는 만세전부터 하나님의 영이기는 하셨으나, 그의 인격적인 명칭이 시대에 따라 약간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륜에 따라 성령을 다른 명칭으로 구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구약시대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들어오자 성령은 구약시대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렸지만,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전혀사사용되지 않은 명칭이 사용되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영",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륜에 따라 불성령의 명칭이 달라졌음을 알고 뒤에 나오는 성령을 앞의 시대에 소급적용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구약시대에 나오는 성령을 "아버지의 영"이라든지 "아들의 영,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이라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아직 아들이 세상에 출현하지도 않았고 대속사역을 완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은 성령의 명칭을 모든 명칭으로 다 불러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미 성령께서는 여러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성령이 되셨기 때문이다. 

 

3.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고 있는 성령은 누구신가?

  그럼, 성령이 누구신지에 관한 가장 확실하고 최종적인 정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성경의 결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에 대한 정의일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어떤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는가? 요한계시록에 보면, 성령을 5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명칭들이다. 다른 곳에도 나오는 성령의 명칭 한 가지는 "그 영'이라는 것이며, 나머지 네 개는 다 요한계시록에만 나오는 고유한 명칭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칭으로는 "보좌앞의 일곱 영들(계1:4)", "보좌 앞에 켜져 있는 일곱 등불들(계4:5)",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4:5)",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계5:6)", "어린양의 일곱눈들(계5:6)"이 있다. 참고로, 구약시대에 스가랴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는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을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예언한 바가 있기도 하다(슥4:10).

 

4.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이 알려주는 놀라운 비밀은 무엇인가?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말씀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명칭은 정말 많은 영적인 비밀을 알려주는데, 그중에서도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성령의  비밀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그럼, 이제부터 한 분 하나님이자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성령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가 붙어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곱 영들", "일곱 등불들"이 그것이다. 왜 하나님의 영에게 "일곱"이라는 숫자가 붙어있을까?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묵시문학으로서 여기에 사용되는 모든 숫자들은 산술적인 의미를 뛰어넘어 영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곱"과 "열둘"은 매우 중요한 숫자인데, "일곱"은 이 땅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키고, "열둘"은 하늘에서의 완전함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뿔들이 일곱이고, 어린양의 눈들이 일곱이며, 성령을 일곱 영들이자 일곱 등불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는 순전히 이 땅에 있는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가늠해볼 수 있다.  사도요한이 성령더러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일곱 등불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령께서 얼마나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관심갖고 있는지를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하는 것은 성령께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 곧 창조와 보존과 섭리에 관하여 계속해서 관여하시고 일하고 계심을 알려준다. 

  둘째, 성령이 꼭 "어린양"이나 "여호와"와 관련지어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도요한이 성령을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고 말하며, 또한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신데, 편지의 맨 마지막에 가서는 꼭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다는 것이다. 이는 성령께서 예수님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며(계5:6), 여호와와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음을 말해준다(슥4:10). 왜냐하면 성령은 독립적인 또 하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요, 예수의 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서술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준다. 특별히 성령을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어린양의 일곱눈들"이라고 했다는 것은 성령께서는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보내심을 받아 이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고 지켜보고 감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양으로 형상화된 예수께서는 이 땅에 보내어진 성령을 통해서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을 지금도 다 감찰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5. 성령은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인가, 하나님 자신의 영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성령이 누군지에 관하여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아버지의 영이신 성령께서 아들의 영도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성령께서 "아버지의 영"이라면 그 영은 결코 "아들의 영"이 될 수 없으며, 혹 성령이 "아들의 영"이라고 한다면 그 영은 결코 "아버지의 영"이 될 수 없는 것이 상식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동시에 "아들의 영"이라고 성경이 명확히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영들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자신의 영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볼 때, 성령은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의 다른 표현으로서 한 분의 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성령이 경륜의 영이시라는 사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경륜적으로 볼 때 성령은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이라고 불려졌지만, 신약시대에 들어와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면서 아들의 영이라고 불려졌기 때문이이다. 그러다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에는 성경은 단독적으로 말씀하시며, 명령하시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행8:29,10:19,11:12,13:2,딤전4:1,계14:13,22:17). 그러므로 성령은 첫째, 하나님과 분리된 독립적인 영으로서 "하나님의 보좌 앞의 일곱 영들(일곱 등불들)"이시다. 더불어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으로서는 하나님 자신의 또 다른 영이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면서 여호와의 영이자, 예수의 영이신 것이다. 

  

6.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렇다면 영은 영이나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령을 이해하려고 할 때, 여기서 "하나님"은 대체 누구신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명칭들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명칭들이 있지만, 성령의 최종계시인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최종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이 대한 고유한 명칭들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분은 "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계1:8,4:11). 둘째로 그분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마침이다"이신 분이시다(계1:4,8,2:8,21:6, 22:13). 셋째로 그분은 "전능자"이시며(계1:8,4:8, 11:17), 넷째로, 그분은 "보좌[위]에 앉아계신 이"이시다(계4:7,5:1,7,13,6:16,7:15,21:5). 그리고 다섯째로,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이시다(계1:4,5,4:8).

  이러한 표현들 중에서 우리가 성령과 관련지어 살펴볼 명칭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이"라는 명칭이다. 엇필보기에 이 명칭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유한 명칭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요한이 소아시아교회의 일곱 사자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서 문안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성부는 "전에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고, 성령에게는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으며, 성자에게는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이"라고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고 해서 그것이 전적으로 틀린 해석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해석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라는 표현은 성부만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1:4,8)"가 예수께서 심판주로 재림하신 이후(일곱번째 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는 다르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곱째나팔이 울려퍼진 이후에 주 하나님은 이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던 이"라고만 나오기 때문이다(계11:17, 16:5).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심판주로 오셨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을 성부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표현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칭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장차 오실 이"가 예수님에 대한 호칭이라고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방식으로 "전에도 계셨고(이미 계셔왔고 아직도 계시는 이)"라는 표현은 성부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하고, "이제도 계시는 이"는 성령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할 수 있음을 산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인 성령께서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다른 표현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동일한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동시에 세 가지 위격을 가지신 분이신 것이다.

 

7. 성령께서는 한 분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신가?

  우리는 이상의 말씀들을 통하여,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독립적인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동시에 한 분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령께서는 경륜적인 안배가 있다는 것을 꼭 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령께서 독립적으로 자신의 위격을 사용학디 시작한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이후부터라는 것이다. 이는 구약시대에나 예수님의 공생애시대에 성령께서는 한 번도 독립적으로 자신을 1인칭시점으로서 말씀하거나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신 적이 없었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전부 다 3인칭시점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의 성령강림 사건이후 성령께서는 이제 스스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다. 자신을 1인칭 시점으로 말씀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사도행전13:2의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씀을 헬라어원문에 따라 직역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그들이 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금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이미 부른 채 있는 바의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 '나에게'(나를 위하여) 구별하라"(행13:2). 그렇다. 여기서 성령께서는 "내가" 혹은 "나를 위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이것은 그분에게 독립적인 위격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고로 우리는 성령강림사건 이후부터는 성령에 대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분 스스로가 독립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께서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계5:6)"이자 "여호와의 일곱 눈들(슥4:10)"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명칭상으로 볼 때에도 성령께서는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이자 "여호와의 영, 아버지의 영"이라는 표현하고 있기에, 성령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

 

8. 나오며

  사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한 분 하나님을 말할 때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4세의 이단이었던 아리우스(A.D.250~336)는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강조하다가 그만 예수님을 피조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니케아종교회(A.D.325)와 콘스탄티노플종교회의(A.D.381)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식으로 표현하려다가 그만 하나님을 세 분처럼 표현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종교회의의 신앙고백 어디에도 "셋이 하나다"라는 조항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하나님에 대해서 표현할 때에는 세번째 위격만을 강조하다가 성령을 세번째 하나님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이야기하려다가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과 활동으로만 제한하려고 해도 아니될 것이다. 우리의 성령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다만 홀로 한 분이셨던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경륜적으로 당신을 나타내시고 일하셨던 것을 지켜보면서,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오, 전능하신 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찬양과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2020년 05월 22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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