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9 01:03
http://blog.naver.com/lljwhkingll/199628380
우리가 지금 할 말이 있는가?
지금의 한국 교회가 세상에게...
세상이 개독교니 먹사니 라고 돌을 던진다고 할 말이 있는가?
그것이 사단의 짓거리라고, 그래서 핍박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그냥 돌을 맞아야 한다.
가서 채찍이라도 때려 달라 할 용기가 없다면 던지는 돌을 피해선 안된다.
사단의 핍박이 아니라 세상을 통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이 시대, 타락하여 악취가 풍기는 한국교회를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설교할 자격이 있는가?
복음을 전할 낮짝이 있는가?
세상을 향해 바로 살라고 말할 수준이라도 되는가?
믿음을 자랑할, 간증이라고 꺼내어 놓을 자격이라도 있는가?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는가?
주일날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내 뒷모습이 왜 이렇게 화끈거리는가?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고 말씀하셨다.
지금, 이 시대, 이 교회! 그 말씀이 바로 이 말씀이었구나.
아! 우리 속엔 예수가 없다.
교회에 예수가 없다.
우리에게서 더이상 세상을 향해 꺼내어 놓을 것이 없다.
더 이상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는 그 무엇도 없다.
세상이 교회의 건물이나 엄청난 숫자에 감동하겠는가?
쇼 같은 예배에 감동하겠는가?
역동적인 찬양에 감동하겠는가?
내가 가진 보잘 것 없는 지식에 감동하겠는가?
넘어지고 쓰러지고, 동물소리 내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아니면...
기도해서 잘사는 모습에 감동하겠는가?
내용이 없다.
우리 속에 아무 것도 없다.
이는...
우리 속에 예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감동시키는 방법 조차도 모르지 않는가?
세상을 감동시키지도 못하는 복음은 죽은 복음이다.
왜? 왜! 이렇게 망가졌을까? 아니 망가진 것조차도 모를까?
오호라!
이사야의 통탄은 그 시대뿐 아니라 이 시대 이 교회를 향함이었구나!
(사1:2-21/ 표준새번역)
“하늘아, 들어라! 땅아,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자식이라고 기르고 키웠는데,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소도 제 임자를 알고, 나귀도 주인이 저를 어떻게 먹여 키우는지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구나.
슬프다! 죄 지은 민족, 허물이 많은 백성, 흉악한 종자, 타락한 자식들! 너희가 주를 버렸구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업신여겨서, 등을 돌리고 말았구나.
어찌하여 너희는 더 맞을 일만 하느냐? 어찌하여 여전히 배반을 일삼느냐?
머리는 온통 상처투성이고,
속은 온통 골병이 들었으며,
발 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성한 데가 없이,
상처난 곳과 매맞은 곳과 또 새로 맞아 생긴 상처뿐인데도,
그것을 짜내지도 못하고, 싸매지도 못하고, 상처가 가라앉게 기름을 바르지도 못하였구나...
너희 소돔의 통치자들아! 주의 말씀을 들어라.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나에게 이 많은 제물을 바치느냐?
나는 이제 숫양의 번제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기가 지겹고,
나는 이제 수송아지와 어린 양과 숫염소의 피도 싫다.
너희가 나의 앞에 보이러 오지만, 누가 너희에게 그것을 요구하였느냐?
나의 뜰만 밟을 뿐이다! 다시는 헛된 제물을 가져 오지 말아라. 다 쓸모 없는 것들이다.
분향하는 것도 나에게는 역겹고, 초하루와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참을 수 없으며,
거룩한 집회를 열어 놓고 못된 짓도 함께 하는 것을, 내가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나는 정말로 너희의 초하루 행사와 정한 절기들이 싫다.
그것들은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될 뿐이다.
그것들을 짊어지기에는 내가 너무 지쳤다.
너희가 팔을 벌리고 기도한다 하더라도,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겠다.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한다 하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다...
그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녀가 되었습니까?
그 안에 정의가 충만하고, 공의가 가득하더니, 이제는 살인자들이 판을 칩니다“
이 시대, 이 교회가 이 지경이 된 이유는... ?
가장 큰 이유는...
구원을 잃어버림일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두렵고 떨리는 그 구원을...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며 내 삶을 전율케 만드는 그 구원을...
잃어버린 구원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방종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의 피로 물든 복음의 옷을 벗고 사치스런 옷을 입었다.
두려움을 상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구원받았다"는
과거형 속에 축복과 세상을 즐기는 향락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지옥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불쌍하다.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구원은 과거형이 없다. 오직 현재형과 미래형 뿐이다.
누가 구원을 받았는가?
누가 천국을 약속이라도 받았는가?
도데체 성경에도 없는 이 확신은 어디서 온 것인가!
어쩌면 이 말에 반발심도 생길지 모른다.
“구원이라니! 우리가 받은 구원 말입니까?”
그렇다. 구원이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우린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이 아닌 교리가 순화시킨 가짜 구원을 들었을지 모른다.
오랫 동안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것이 사실인줄 알고 있다.
교리가 순화시키고, 강단이 순화시키고, 여러 가지 현상들이 희석시킨 가짜 복음을..,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 구원.
불행하게도 교회는 하나님의 언어, 구원을 잃어 버렸다.
우리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회복해야 한다.
(계3:14-18)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다시 성경 앞에 서자
다시 구원의 도를 깨닫자!
다시 옷을 찢고 회개하자!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 앞에 내 몸을 던지자.
그가 일으키실 것이다.
내 속에 소망이 시작될 것이다.
PS) 구원 원전강해는 1주일에 한 편씩 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읽는 모든 분들께와 한국교회에게 있기를...
[출처] 원전강해, 구원(1) "교회가 잃어버린 언어, 구원"|작성자 구열복
원전강해, 구원(2)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1)” 구원 원전강해 / 성경적 구원
2013/11/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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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부터 오해가 시작되었으며...
어디서부터 곡해되기 시작했을까?
어떤 이들은
“구원은 창세 전에 예정(택정)되었다. 그래서 택정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상실하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한다.
“구원은 상실될 수 있으며 개인의 삶의 여부에 따라 버림 당할 수 있다”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한 견해 차이가 아니다.
그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중간지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말도 일리는 있어”라고 그냥 지나가기에는 너무 큰 결과가 기다린다.
마치 진화론과 창조론이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이 둘은 결코 공존불가하다.
한 쪽은 구원에 있어 인간이 할 것이 없다.
하나님이 다 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목숨 걸고 구원을 이뤄야 한다.
전자는 후자에게 행위구원이라고 몰아붙이고 후자는 전자를 사변적이라고 한다.
결코 양립할 수 없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잘못하면 믿고도 지옥으로 갈 수 있다.
성경이다.
성경을 근거로 해서 둘 다 나온 주장이다.
다른 한 쪽이 성경이 아니라 그냥 사변이라면 문제가 될 것이 있겠는가?
둘 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해놓으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있다.
(행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엡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엡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정론은 있다.
성경에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성경의 다른 쪽에서는 예정이 아니라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이라 한다.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딛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3:14-16)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마22:1-10)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벧후3:9)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분명한 것은 구원에 관해서 성경이 양면성을 갖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믿어도 되도록
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진리는 명백하며 하나다. 오직 하나 뿐이다.
그렇다면.....
둘 중에 하나가 심하게 곡해한 것이다.
곡해에서 끝날 수 있는 문제라면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문제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닌 사람이 만든 교훈이다.
마치 예수님 당시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말씀하셨던 그것처럼....
(마15:1-9)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둘 중 하나는 이 두려운 책망을 피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시대,
둘 중 하나에 속한 교회와 신학교, 신학자, 그리고 성도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구원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교리를 믿고 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도를 모르는 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곡해된 것이다.
불행한 것은 그 교리가 성경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며,
또 그것이 성경을 잘 요약한 것이라고 속고 있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조사해보지도 않고…
이 불행은 결국 지옥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어느 한 편의 사람들은 이 시대가 만든 잘못된 교리라는 괴물에 치명적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결론적인 말로 시작한다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을 꺼내 놓고 증명해나가려 한다.
만약 반발심이 일어난다면 그냥 잠시 접어두고 끝까지 읽어 보시길 바란다.
누구나 주의(主義 , ism)에 빠져있다.
그래서 발전이 없다.
결론은 이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 있는 예정론은 공동체 예정론이다.
그러므로 창세 전에 각 한 사람을 예정(택정)했다는 것은 심각한, 그리고 아주 불행한 성경곡해의 결과다.
성경에서 개인에 대한 예정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다.
(행3:20)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다른 예정에 관한 것은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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