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삼위일체론 삼위일체 논쟁
2009.06.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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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각각 자기 교파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정통주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보통 1559년부터 1622년까지를 ‘정통의 시대’라고 부른다. 삼위일체론은 정통주의 시대에 이르러 전반적으로 무관심과 퇴조의 기미를 보였다. 개신교회이든 로마 카톨릭교회이든, 정통주의 신학자들은 삼위일체를 이미 정리된 교리로 생각하고 분파와 회의론자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수준에 만족했다. 여기서는 루터교회 정통주의 교의학과 개혁교회 정통주의 교의학을 검토하려 한다.
Ⅰ. 루터교회의 삼위일체론
1. 삼위일체론의 위치
하인리히 슈미트는 루터교회 교의학에서 프롤레고메나, 하나님, 인간, 구원의 근원, 은총의 수단과 교회, 종말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자료를 편집했다. 슈미트는 전통적인 서방 신학의 틀을 따라, 제1부에서 신론을 다루면서 제1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지식, 존재, 본성, 속성을 다룬 후, 제2장에서 삼위일체를 다루었다.
2. 삼위일체
1)삼위일체의 신비
“성서는 하나님이 한 분 이지만 신성을 셋,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게 돌리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로부터 한 분 하나님이 있으나 이 한 분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성서는 우리를 위해 이 신비의 베일을 벗기지 않고 오히려 삼위일체 교리를 하나의 신비로 계시하고 있다”
2)통일성
삼위일체의 통일성은 신적 본질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신적 본질의 통일성은 숫자적 통일성이다. 인간의 본성의 통일성은 종(kind)의 통일성이지만, 하나님의 본성의 통일성은 숫자적 통일성이다. 하나의 분리되지 않은 본질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게 다 있다.
3)복수성
삼위일체의 복수성은 위격의 복수성을 의미한다. 인간에게서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는 하나의 본질을 갖고 있으나, 삼위일체에서는 하나의 분리되지 않는 본질이 있고 여기에 세 위격이 참여한다. 그리고 하나의 신적 본질 사이의 구분은 진정으로 실재하는 구분이다. 위격의 사역은 두 가지로 구분하는바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으로 나눈다. 내적 사역은 두 가지인데 즉, (아버지의)낳으심과 숨을 내쉼이다. 외적 사역은 3가지인데 즉 아버지의 창조, 아들의 속량, 성령의 성화이다. 내적 사역은 다른 위격을 배제하고 한 특별한 위격으로부터 나오는 사역으로 간주되고, 외적 사역은 항상 하나님의 본질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외적 사역에는 모든 위격이 최소한 어떤 방식으로든지 하나님의 본질로서 참여해야 한다. 내적 사역은 분리되고, 외적 사역은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는 통일성과 구분은 둘 다 ‘호모우시아’라는 용어로 나타내었다. 교회는 세 위격에 대해 ‘호모우시아’라고 말했다. 이 통일성으로부터 ‘페리코레시스’(상호내주)가 정당하게 파생된다. 페리코레시스에 의해 한 위격은 본질의 통일성 덕분에 또 다른 위격 안에 간주하는 오류가 제거된다. 이 통일성으로부터 또한 동등성이 파생된다. 어느 한 위격도 또 다른 위격보다 더 크거나 작지 않고, 아버지는 탁월의 방식으로 하나님이라고 적절하게 부를 수 없고, 존재 양식 때문에 아들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없다.
Ⅱ. 개혁교회의 삼위일체
1. 삼위일체론의 위치
하인리히 헤페도 개혁교회 교의학에서 서방신학의 전통을 따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해 먼저 논의하고, 그 다음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루었다. 즉, 하나님의 존재와 개념과 속성을 다룬 후 삼위일체론을 다루었다.
2. 삼위일체
1)삼위일체의 신비
개혁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인간 이성에게 영원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 보았다. 삼위일체가 자연적 이성에 의해 탐구될 수도 없고 견고하게 입증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개혁교회는 다만 비유와 후험적 이성으로 삼위일체론을 입증할 가능성이 있을 뿐이라고 보았다. “신비에 감추인 삼위일체 교리는 단지 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신약 뿐만 아니라 구약도 성서는 한 분 하나님이 영원부터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서 삼위일체라고 가르친다”
2)통일성
“하나님의 통일성은 또 다른 신적 존재의 실존을 배제한다”
온전하신 하나님은 분리되지 않는 한 분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3)삼위성
베자에 위하면 “삼위일체는 하나님 안의 관계로서, 이 관계에 의해 하나님의 단일한 신적 본질 안에서 참으로 실제로 각각 그 고유한 속성과 독특한 존재 양태에 의해 구별될 수 있는 세 위격, 즉 성부, 성자, 성령이 현존한다. 각 위격은 진정한 하나님이다” 위격들에게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이 있다는 것은 루터교회와 비슷하다.
성부는 신성의 제1위격으로서 누구 덕분에 존재하지 않고 영원부터 자기의 본질적 형상인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의 이름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고려될 때는 신성 일반을 서술하는데 사용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제1위격은 그가 자기로부터 낳은 아들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아버지라고 불린다. 성부의 내적 사역은 아들을 낳고 성령을 숨을 내쉬는 것인데, 전자는 단독으로 후자는 성자와 함께 수행한다.
아들은 신성의 제 2위격으로서, 본질적 존재가 아니라 위격적 존재를 따라, 항상 아버지에 위해 출산되고 성부와 함께 성령을 숨으로 내쉰다. 아들은 성부에 의해 창조되거나 만들어지지 않았고 은혜나 공로로 양자가 된 것도 아니다. 아들은 그의 본성을 따라 성자 하나님이고 따라서 성부와 성령과 같이 진정한 하나님이다. 성자가 말씀이라고 불리고 이유는 (1)그 의 직분에서 성부가 그를 통하여 모든 일을 하고 그가 성부의 계시이기 때문이다. 아들의 경세는 속량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자기를 계시한다고 설명하는 성서의 모든 말씀은 성자와 연결되어야 한다. 성령은 신성의 제3위격으로서,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하고 단일한 호흡에 의해 나온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동일한 방식으로 존재하지만, (1)제3의 위격이라는 점과 (2)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발출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온전한 본질을 자신의 본질로 소유함으로써 존재하는 그의 존재 양식 면에서 구별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하나의 동일한 호흡에 의해’ ‘양자로부터 동일한 양으로’ 나왔다. 발출은 동일하고 영원한 행위를 말하고 결코 성부와 성자가 이 세상에서 활동하기 위한 성령의 파송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결 론
정통주의 교의학은, 첫째 교부신학의 전통을 따라 삼위 일체를 하나님의 신비로 고백했으나, 이성을 사용하여 삼위일체에 대해 체계적으로 논의 하였다. 둘째, 정통주의는 서방 신학의 틀을 따라 한 분 하나님에서 시작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논의하였다. 셋째, 정통주의는 위격내부의 사역에서 세 위격을 구분하고 세상을 향한 외부의 사역에서 세 위격을 구분함으로 써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세적 삼위일체에서 모두 세 위격을 구분하였다. 종교개혁자는 대개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한 사변을 거부하고 경제적 삼위일체의 구원 사역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정통주의 교의학자는 종교개혁자와 달리 경제적 삼위일체뿐만 아니라 내재적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논의했다. 넷째, 정통주의는 세 위격이 본질에서 동등하나 위격에서 구분된다고 말하면서 세 위격의 고유한 특성을 자세하게 설명한 점에서 종교개혁자의 관심을 이어갔다. 정통주의 신학은 삼위일체론에 대해 새롭게 기여한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당시 여러 분파와 회의론자에 대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잘 옹호한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정통주의 신학은 확실히 중세 스콜라 신학의 사변적 삼위일체론을 재도입한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것에 대해 정통적인 삼위일체론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출처]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삼위일체론|작성자 kaist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