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주의가 발전된 역사-이스라엘 회복과 제3성전 성경에 예언되었는가 3-3
성경을 교묘히 왜곡하는 세대주의는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되었는가?
1. 세대주의 교리들의 출발이 된 성경 변개의 역사
약 B.C. 250년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 역 70인역 성경(the Septuagint)이 번역되었다. 헬레니즘(이교) 영향 아래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헬레니스트 황제 프톨레미 2세(Ptolemy II)의 명령을 받았다. 원본 히브리어 맛소라 본문에서 그리스어 성경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변조들 중 어떤 것들은 세대주의 교리들의 출발을 위한 초석이 되었다.
2세기의 시리아,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행11:26). 그곳에 있는 주님의 진실한 교회는 두렵고 떨림으로, 신실하게 성경의 원래 사본들을 재생시켰다. 그들은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신 4:2)라는 말씀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계 22:18)의 경고를 알고 있었기에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도 감히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플라톤과 필로(Philo)의 신비주의 학파는 원본 신약 사본들의 부패한 역본들을 양산해내기 시작한 영지주의, 신비주의 종교의 세계 본부였다. 클레멘트와 오리겐 같은 이들의 지도 아래 그 신비주의 학파는 진정한 기독교 정신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영지주의 신앙을 반영하도록 성경을 고쳤다. 결국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로 알려진 교리를 도입하는데 그 구절들이 사용되었다. 사탄은 하나님이 각 시대마다 구원의 원칙을 바꾸었으며, 하나님의 법은 폐기되었다는 이론을 성립시키기 위해 이 이론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키길 원했다.
4세기 황제 콘스탄틴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공개적으로 공포했으나, 그는 여전히 태양신 솔(Sol)을 포함한 이교 신들을 공개적으로 숭배했다. 후에 자신을 최초의 교황(Summus Pontifex)이라고 선포했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오른팔 유세비우스 주교에게 50권의 새 성경을 만들도록 명령했다. 유세비우스는 이 작업을 위해 로마 카톨릭주의로 가면을 쓴 바벨론 신비주의 종교에 충실해야 했기에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사용했다. 이 성경은 후에 제롬이 라틴 벌게이트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고, 그것이 로마 카톨릭의 공식 성경이 되었으며, 다른 모든 성경은 금지되었다. 그렇게 부패한 사본들이 오늘날까지 바티칸의 품 안에서 보호받아 모든 근대 성경의 번역에 사용되었는데, 세대주의 교리들을 지지하기 위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2. 적그리스도를 감추기 위해 예수회 신부 리베라가 만들어낸 세대주의(미래주의) 교리
▲프린시스 리베라 ▲로버트 벨라민
예수회 신부 프란시스 리베라와 벨라민이 만든 미래주의(Futurism) 예언 해석에서, 적그리스도는 한 독재자가 역사의 끝, 7년 대환란 직전에 나타나 모든 종류의 대 황폐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개혁에 의해 교황권이 적그리스도임이 공개되자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미래의 어떤 것으로 해석해 프로테스탄트(개신교)의 공격을 교란할 목적이었다.
1590년 리베라는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프로테스탄트의 견해에 대항하여 계시록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리베라는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에게 영접받아 예루살렘을 건설할 한 명의 악인이라고 하였다. 예수회 미래주의는 그 악명 높은 공백기 이론으로 1500년 예언의 역사를 감추어 70주일의 예언이 로마가 멸망할 때 예언이 중지되고 미래에 휴거의 시대에 다시 재개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열 뿔, 작은 뿔, 짐승, 적그리스도는 오늘날의 기독교와 관련이 없게 만들어버렸다.
3. 예수회가 만들어낸 세대주의가 개신교에 침투한 역사
리베라의 미래주의는 1800년대 초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으로 전파되었다. 법률가요 성서학자인 사무엘 미틀란드는 1826년에 종교개혁에 대해 공격하며 미래에 출현할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라는 리베라의 사상을 옹호하는 책을 출판해 널리 보급했다.
미틀란드 박사에 이어 나타난 사람은 더블린 대학교 히브리어 교수였던 제임스 토드 박사였다. 토드는 미틀란드의 미래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자기 옹호적인 소책자와 책자를 출판했다.
이어서 영국교회 신자요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이 나타났다. 1850년 뉴먼은 '영국 국교의 고난에 관한 글'을 써서, 옥스퍼드 운동의 목적은 '여러 영국 종파'를 로마 카톨릭교회로 다시 흡수시키는 일이라고 밝혔다. 한 사람의 적그리스도에 관한 토드의 미래주의를 승인하는 소책자를 출판한 뒤, 뉴먼은 곧 완전히 로마 카톨릭교도가 되었고, 나중에는 추기경이 되었으며, 근래에 교황 베네딕트 6세로부터 복자로 시복 받았다. 미틀랜드, 토드, 뉴먼 등의 영향으로 '로마로 향한 운동이 이미 일어나 홍수와 같이 옛 프로테스탄트의 영역을 휩쓸고 있다'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
▲존 뉴먼 ▲에드워드 어빙
당시 성령운동의 지도자 마가렛 맥도날드(Miss Margaret MacDonald)는 휴거에 관하여 출처를 알 수 없는 곳으로부터 직통 계시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바벨론 신비주의와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심령술적 능력과 자동 수기(automatic writing)술이 있는 한 소녀와의 교류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가렛은 런던의 신비주의 예수회원인 장로교 설교자 에드워드 어빙에게 자기의 환상에 관하여 편지를 보냈다. 어빙은 후에 로마 카톨릭 사도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를 설립하였다. 편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거에 관한 이 계시가 어빙의 교회에서 발행된 정기간행물을 통해서 소개되었다.
4. 예수회 비밀 휴거론을 개신교에 확산시킨 존 넬슨 다비와 스코필드
마가렛 맥도날드의 환상과 같은 시기에, 플리머스 형제단 지도자 존 넬슨 다비(John Darby)가 역사를 시대들(ages) 또는 세대들(dispensations)로 나누어 세대주의를 구성했다. 그 교리가 에드워드 어빙과 그의 교회로부터 힘을 얻어 신속하게 성장했다.
▲스코필드 ▲스코필드 주석성경
다비는 미국에서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를 만났고 스코필드는 그 유명한 스코필드 주석성경을 편찬하여 세대주의 가르침을 기독교에 확산시켰다.
1900년도 초 오스왈드 J. 스미스(Oswald Jeffrey Smith 1889~1986)는, 세대주의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새로운 환란 전 휴거 가르침이 예수회 제자인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교회에서 한 여인에 의한 직통 계시를 통해 처음으로 선포되었으며, 그 후 1800년 동안의 교회의 가르침과 정반대되게 역시 예수회 제자인 다비(John Nelson Darby)와 스코필드 주석성경에 의해서 채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어빙계의 여인으로 시작해서 1830년에 다비에 의해 전파된 이 새로운 ‘영감을 받은’ 가르침은 우리에게 전달되어서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죠지 뮬러(George Muller)는 이를 반대하였으며, 뉴턴(Benjamin Wills Newton)도 그러하고, 트레겔레스 (S. P. Tregelles) 박사와 다른 교회 성원들도 반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5. 부패한 성경 사본 확산과 세대주의의 발전
존 다비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근거한 자신의 성경 번역본을 만들었다. 바로 이때 영국교회의 호트(Fenton John Anthony Hort)와 웨스트콧(Brooke Foss Westcott) 두 사람 모두 헤르메스 클럽(Hermes Club), 고스틀리 길드(Ghostly Guild), 심령 연구회(the Society for Psychical Research) 등을 포함한 몇몇 신비주의 클럽의 회원이자 설립자들이었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자동 수기(automatic writing), 수정 점(crystal gazing), 영매, 다중 인격, 마술, 공중 부양 등이었으며, 그들은 신지학 단체들의 설립자인 H.P. 블라바츠키와 같은 이들과 함께 어울렸다. 이 두 사람은 표면적으로 영국교회 사제였다. 웨스트콧과 호트가 기독교와 신비주의 사이에서 매우 상반된 이중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다중 인격에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것은 실제로 정신을 분열시키고 신비주의 의식을 계승한 부류이다.
▲70인역 ▲시나이 사본
대부분 근대 역본들은 웨스트콧-호트 헬라어 본문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시나이 사본, 바티칸 사본, 구약의 헬라어 70인 역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신비주의 종교 사본들이다. 1881년 이후로 이 역본에서 개정본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성경들이 나왔지만 이것은 신비주의 환상가들에 의해 바티칸으로부터 보내진 거짓 선물이었다.
6. 근대 성경 예언 연구가들의 베스트셀러
할 린드세이는 근대 성경 예언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미래주의를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각인시킨 1970년에 등장한 “지구의 마지막 때(The Late Great Planet Earth)”라는 그의 책은 3천5백만 권 이상이 팔려 나갔고 54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종말론 사업을 낳았다.
▲팀 라헤이 목사와 제리 젠킨스인데 그들은 휴거 시리즈(Left Behind)
미래주의가 부와 명성을 얻는 길임이 분명해질 즈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 예언의 흐름에 편승했다. 그 수혜자들 중 가장 유명한 두 명은 팀 라헤이 목사와 제리 젠킨스인데 그들은 휴거 시리즈(Left Behind)의 엄청난 성공으로 대부분 미국 도서관에 그들의 책들이 꽂혔으며, 휴거 시리즈는 8권 장편 책과 2편의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다. 만일 이것이 사소한 오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무언가 훨씬 더 사악한 것이 휴거 시리즈 뒤에 있다.
이처럼 성경 예언을 미래주의 해석으로 가르치는 방법은 로마 카톨릭에서 왔으며 특히 그 교회의 예수회 신학자들에 의해 이룩됐다. 현시대 미래주의 해석법을 옹호한 사람들은 카톨릭이 아니라 대부분 개신교인들로서 이와 같이 로마교회의 술수에 빠져 교황권이 적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못 보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