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의 아가서 강해]
2019.3.013
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교수
아가서 서론
1. 아가서 연구의 중요성
아가서는 성경 중에서 해석하기가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이다. 아가서를 해석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기는 이유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파악된다. 우선 아가서는 풍부한 상상들을 압축된 시적 언어로 표현한 서정시체의 책이다. 또한 아가서는 외견상 뚜렷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아가서는 배경이 되는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나 경험들이 모두 내용 뒤에 숨어있고 단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순수한 고백들이 대화형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아가서는 마치 단편적인 사랑 노래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아가서의 압축된 시적 표현이나 일관성 없어 보이는 내용 전개 등은 이 책을 해석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적으로 아가서를 해석하는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아가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여도 그 책이 정경 속에 들어 있는 책이기 때문에 아가서는 우리들의 신앙과 생활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주의 깊게 보지 못하였던 아가서 연구를 통하여 각자의 신앙 성숙은 물론 사랑이 넘치는 풍부한 삶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가서는 특별히 부부간의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결혼의 중요성과 함께 결혼생활에서 부부간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으며 그런 사랑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기대한다.
유대인들에게 아가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 그것은 아가서가 유대인들의 명절에 낭독되는 성경 다섯 권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특별히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명절인 유월절 기간 동안 회당에서 낭독되었다.
참고적으로, 명절과 관련된 다섯 권의 책들은 아가서를 비롯하여 룻기, 에스더서, 예레미야 애가, 전도서이다. 유월절에는 아가서가 낭독되고 오순절에는 룻기가 낭독되었다. 초막절에는 전도서가 낭독ㄷ었으며, 에스더서는 부림절에 낭독되었다. 그리고 애가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인 아브월 9일에 낭독된다. 이 다섯 권의 책을 유대교에서는 특별히 '하메쉬 메길롯트' 즉 '다섯 개의 두루마리'라고 부른다.
아가서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개역 성경의 순서에서 볼 때 전도서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아가서는 룻기와 전도서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전도서와 가깝게 배치되어 있다. 이가서와 전도서가 서로 가깝게 위치되어 있는 것은 이 두 권의 책이 우리들의 영적 생활에 균형을 이루기 때문일 것이다. 전도서는 우리들의 지성과 정신적 생활에 관심을 두고 있다면, 아가서는 우리들의 가장 중요한 감성 곧 사랑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 전도서의 중심 메시지는 인생이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점인 반면, 아가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삶의 핵심임을 전해준다. 그런 점에서 전도서와 아가서는 우리들이 머리와 가슴을 다함께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2. 아가서의 명칭
우리말 개역 성경에서 '아가서'라고 번역된 히브리어의 본래 명칭은 '시르 하시림'이다. 그 명칭이 지니고 있는 의미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왕 중의 왕'이나 '만주의 주'처럼 최상급을 나타내는 히브리식 어법이다. 성경에 따르면, 솔로몬이 1005개의 노래를 지었는데(왕상 4:32), 이 많은 노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노래가 곧 '아가서'이다.
아가서를 영어 성경에서는 'Canticles-캔티클스'라고 부른다. 이것은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의 'canticum canticorum'-칸티쿰 칸티코룸에서 파생된 명칭인데, 그 역시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3. 아가서 내용의 특징
아가서는 성경의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볼 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들을 지닌다.
(1) 첫째로, 에스더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단지 8:6에서 단 한 번 '여호와'가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아가서에서는 세속적 성격의 청춘 남녀의 사랑, 신랑 신부 사이의 대화들, 그리고 노골적인 육체적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와 노래 등으로 가득 차 있다.
(2) 아가서에는 계시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찬송, 기도, 회개와 같은 의례적인 종교적 언어도 찾아 볼 수 없다. 인간의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와의 신령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3) 아가서는 신약성경 어디에서도 인용된 적이 없다. 그러나 아가서의 내용은 교회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4) 아가서는 표현 속에서 강조된 세속적 성향 때문에 잘못 읽으면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3세 성년식이 있기 전에는 아가서 읽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4. 아가서의 문학적 특징
(1) 엄격한 의미에서 아가서는 지혜문학에 속하지 않는다. 아가서에서 가장 두드러진 양식은 교훈이나 논쟁이 아니라 사랑을 고백하는 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창조자의 선물로 생각하는 것이나 인간 생활의 중요한 규범으로 여기는 것은 지혜자들의 사상과 매우 유사하다.
(2) 아가서의 대부분은 사랑하는 자와 사랑 받는 자 사이의 대화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의 상당 부분은 상대방이 옆에 없을 때 상상으로 말하는 독백형식의 내용이다. 아가서 안에는 여러 종류의 사랑과 관련된 시들이 발견된다. 이들 대부분은 연인 각자가 상대방의 아름다움을 수사적인 언어로 묘사의 노래들이다.
(a) 남자가 여자에 대한 묘사(4:1-7; 6:4-7; 7:1-9)
(b) 여자가 남자에 대한 묘사(5:10-16)
(c) 여자 자신의 아름다움을 겸손하게 낮추는 자기 묘사들(1:5, 6; 2:1; 8:10)
(d) 사랑하는 사람의 옷이나 장신구 등을 예찬하는 찬탄의 노래(1:9-11; 4:9-11)
(e) 서로 떨어져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열망하는 갈망의 노래(1:2-4; 2:5,6; 8:1-4, 6, 7) 이런 노래들은 서로 떨어져 있음이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일으켜 줌을 강조한다.
(f) 두 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여자의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다니는 이야기(3:1-4; 5:2-7) 이런 내용들은 여자의 강렬한 열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3) 아가서에는 그림 같은 풍부한 표현을 통하여 사랑의 따뜻함과 강력함을 보여준다. 연인들의 육체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정렬적인 욕망을 너무도 솔직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색정적이지는 않다.
5. 아가서의 저자와 저작 연대
아가서는 1:1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로 솔로몬이 이 책의 저자라는 것이 교회의 전통적인 견해이다. 솔로몬의 저작설에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가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의 저작설을 부인할 수는 없다.
(1) 솔로몬의 이름이 1:1을 포함하여 여섯 군데에서 언급되고 있다(1:1,5; 3:7,9,11; 8:11-12).
(2) 아가서의 사랑하는 자는 또한 왕으로 언급되고 있다(1:4, 12; 3:9,11; 7:5). 그가 왕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값비싼 침상 가마(3:7-10)와 왕가의 수레(6:2) 등에 관한 언급에서 증명된다.
(3) 아가서에 등장하는 자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솔로몬의 많은 지혜와 조화된다(왕상 4:32-33). 아가서에는 21종의 식물 이름들과 15 종류의 동물 이름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동식물의 지식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는 솔로몬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없다.
21종류의 식물 이름들 중에 대표적인 것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고벨화(1:14; 4:13); 백향목(1:17); 잣나무(1:17); 수선화(2:1); 백합화(2:1); 사과나무(2:3); 포도나무(2:13); 무화과나무(2:13); 석류나무(4:13); 나도초(4:13); 번홍화(4:13); 창포(4:4); 계수(4:14); 합환채(7:13)
15종류의 동물 이름들 중 대표적인 것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노루(2:7); 사슴(2:7); 비둘기(2:14; 4:1; 5:2); 여우(2:15); 염소(4:1); 암양(4:2); 사자(4:8); 표범(4:8)
아가서의 저작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그 저작의 시기를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아가서는 아마도 솔로몬의 통치시대인 주전 971년에서 931년 사이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가서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열왕기상 11:3-4에 나오는 솔로몬의 배교가 있기 이전임이 분명하다. 솔로몬은 칠 백 명의 처와 삼 백 명의 첩을 거느린 인물이었는데(왕상 11:3), 어떻게 결혼의 충실성을 보여주는 아가서의 사랑 노래를 지을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아가서에 등장하는 '사랑 받는 자'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가서는 그가 많은 처와 첩들을 거느리기 전인 첫 번째 결혼 직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아가서 본문에는 의외로 상당히 많은 외래어들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또한 솔로몬이 주변 국가들과 광범위한 접촉을 가진 이후에 아가서를 집필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아가서의 저작 년대를 대략적으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른 후 5-6년이 지난 주전 965년경일 것으로 추정된다.
6. 아가서의 배경 이야기
아가서의 주인공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다. '술람미 여자'라는 표현은 6:13에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서 '술람미 여자'는 '수넴 여자'를 의미한다. 수넴은 이스르엘 계곡 근처에 있었던 시골마을이다. 아마도 솔로몬 왕은 북쪽 에브라임 산지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포도원을 소작인들에게 맡겼는데, 술람미 가족은 이 소작인 가족들 중의 하나였다. 술람미의 가족에는 어머니와 두 아들 그리고 술람미가 있었다(1:6; 6:13; 8:8). 술람미는 태어날 때부터 미모를 갖추었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시골 아가씨였다(1:5). 아마도 그의 오빠들은 이복형제들이었던 것 같다. 이 오빠들은 술람미를 포도원에서 너무 부려먹어서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가꿀 여유가 없었다(1:6). 그녀는 포도나무의 가지를 치고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하여 덫을 놓았다. 양떼를 치며 온종일 밖에서 일을 하느라 햇볕에 얼굴이 몹시 그슬렸다(2:15; 1:8, 5).
그런데 어느 날 솔로몬이 변장을 하고 그의 포도원에 나타나서 술람미 아가씨에게 관심을 보였다(1:6). 술람미는 솔로몬을 목자로 생각하고 그의 양떼들에 관하여 물었다(1:7). 솔로몬은 얼버무리면서 그녀에게 사랑에 찬 말 몇 마디를 던지고는 앞으로 값진 선물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1:8-11). 그날 밤 술람미 아가씨는 솔로몬에 대한 꿈을 꾸면서 한동안 그가 가까이 있는 듯이 생각하였다(3:1). 마침내 솔로몬은 찬란한 왕위를 갖추고 돌아와 그녀를 왕비로 맞아들였다(3:6-7).
7. 아가서의 구조
외관상 아가서는 단편적이고 일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아가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 가지가 그 중심 항목임을 알 수 있다. 즉 (1) 구혼과 (2) 결혼, 그리고 (3) 결혼 후 소원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서로간의 사랑을 체험하는 황홀한 애정의 경지 등이다. 아가서의 그러한 내용은 주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예루살렘 여자들이 등장하여 둘 사이의 대화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각 중심 항목들의 중심 주제와 그 내용을 대화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1:1-3:5은 솔로몬과 술람미 아가씨의 구혼시절을 다루고 있다. 본 항목의 중심 화자는 술람미 아가씨로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건들을 회상하고 있다.
제목(1:1)
술람미 여인의 독백(1:2-4상)
예루살렘 여자들이 왕에게(1:4 하)
술람미 여인(1:5-7)
예루살렘 여자들(1:8)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1:9-10)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 여인이게(1:11)
술람미 여인(1:12-14)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1:15)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1:16-2:1)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2:2)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2:3-6)
솔로몬이 예루살렘 여자들에게(2:7)
술람미 여인이 자신에게(2:8-13)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2:14)
합창 2:15)
술람미 여인의 독백(2:16-3:5)
(2) 3:6-5:1은 결혼식에 관한 노래이다. 신부의 행렬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행되고 결혼잔치가 벌어진다. 본 항목에서의 중심 화자는 신랑인 솔로몬이다. 당시의 관습대로 신랑은 신부를 찬양하는 말을 하게 된다.
결혼식 행렬(3:6-11)
신방으로 들어감(4:1-5:1)
솔로몬이 신부에게(4:1-15)
신부가 솔로몬에게(4:16)
솔로몬이 신부에게(5:1)
(3) 5:2-8:14은 결혼 이후 행복한 부부생활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내용은 다시 세 가지 소 항목으로 나누어진다.
a. 5:2-6:3은 갓 결혼한 술람미 여인이 꿈에서 솔로몬과 헤어지는 체험을 묘사하고 있다. 이 대목은 술람미 여인이 남편과 다시 만나게 될 때까지 겪어야 했던 고통과 번민을 기술하고 있다.
아내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5:2-8)
예루살렘 여자들이 아내에게(5:9)
예루살렘 여자들이 아내에게(6:1)
아내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6:2-3)
b. 6:4-8:4은 두 부부사이에 회생된 사랑의 관계가 시간과 경험을 통하여 더욱 깊어지는 결혼생활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중심 화자는 신랑이다.
남편이 아내에게(6:4-10)
아내의 독백(6:11-12)
예루살렘 여자들이 아내에게(6:13)
왕이 예루살렘 여자들에게(6:14)
남편이 아내에게(7:1-9상)
아내가 남편에게(7:9하-8:3)
아내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8:4)
c. 8:5-14은 짧은 결귀(에피로그)로서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는 대화이다. 이 대목의 주제는 두 부부 상호간에 성숙된 사랑이다.
질문(8:5 상)
솔로몬의 회상(8:5 하)
아내가 남편에게(8:6-7)
술람미 여인의 남자 형제들(8:8-9)
아내가 모든 이에게(8:10-12)
남편이 아내에게(8:13)
아내가 남편에게(8:14)
8. 아가서의 해석 이론들
아가서를 해석하는 이론들은 여러 가지가 주장되어 왔으나 그 중에서 네 가지 해석 이론이 대표적이다. 곧 문자적 해석, 풍유적 해석, 결합된 해석, 모형론 해석이 그것이다.
(1) 문자적 해석(literal interpretation): 아가서는 인간 사람의 찬가로서, 일반적인 결혼 혹은 사랑의 노래들을 수집한 것으로 해석한다. 아가서에는 어떠한 영적인 교훈이 없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아가서의 의도는 육체적인 아름다움과 성혼의 사랑은 그 자체가 좋고 온전하므로 천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사랑은 결혼에서만 그 모든 애정의 측면들이 올바로 성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방법을 가르쳐주고, 인간의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우리 부부들의 사랑에 흠이 많이 있음을 지적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견해에는 약점이 있다. 그것은 아가서를 단지 인간의 육적인 결혼이나 사랑만을 찬양하고 노래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보는 점이다. 아가서는 인간의 깊고 순순한 사람을 통하여 도덕적이고 영적인 교훈을 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풍유적 해석(allegorical interpretation): 아가서를 순전히 상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즉 아가서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단지 그 내용을 풍유적으로 비유하여 영적인 교훈을 얻으려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유대인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해석이다. 유대인들의 풍유적 해석에 따르면, 아가서에 나오는 신랑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신부는 이스라엘의 회중이다. 그러므로 아가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선민 이스라엘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의 관계를 표현하는 노래이다.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8:6에 단 한번 나오는 아가서를 정경 속에 포함시킬 수 있었던 것도 유대인들의 이러한 풍유적 해석 때문이었다. 이런 해석에 근거하여 아가서는 유대인의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 명절에 각 회당에서 낭송되었다. 이스라엘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유월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곧 남녀의 사랑으로 표현되었다고 여긴 것이다. 풍유적 해석은 오리겐(AD 186-254년) 이후 기독교 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독교의 풍유적 해석에 따르면, 아가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교회와의 관계를 표현한 노래이다.
풍유적 해석에는 여러 가지 약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가서에서 보여주는 역사성은 그 내용을 풍유적 해석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생생하다는 점이다. 솔로몬 왕의 이름과 함께 왕의 침상에 대한 설명이나 이스라엘의 여러 지명들은 모두가 아가서의 내용이 솔로몬 왕의 생애와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무려 15번 이상이나 언급되고 있는 지명들은 실제 장소라는 점을 이 해석은 간과하고 있다. 또한 아가서의 내용 모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는 전제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건전한 해석의 원리를 따르기보다는 기발하거나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과연 아가서에 나오는 식물이나 향초에 독특하고 중요한 영적인 교훈이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는가?
(3) 결합된 해석(combined interpretation): 앞에서 언급한 문자적 해석과 풍유적 해석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해석이다. 아가서가 보여주는 인간의 순수하고 고귀한 사랑은 유혹이 많고 바른 결혼생활에서 멀리 떨어진 오늘의 세대에 큰 교훈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경에 포함된 아가서의 의도는 인간의 순수한 사랑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더 차원 높은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아가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인간의 어떠한 사랑보다 더 높은 그리스도의 구속적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솔로몬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가서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본문이 전해주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교훈을 충분히 고려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균형 있는 해석으로 여겨진다.
(4) 모형론 해석(typical interpretation): 이 해석은 아가서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이 어떠한 영적 진리에 대한 암시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풍유적 해석에서처럼 그런 암시들을 특정된 영적 진리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은 여호와와 그의 백성과의 사랑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며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관계를 예표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형론 해석은 아가서의 역사성과 영적인 교훈을 동시에 강조한다는 점에서 결합된 해석과 유사하다. 그러나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이 단지 예표로 해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9. 아가서의 목적
(1) 아가서가 보여주는 표면적이고 일차적인 내용은 인간 사이의 고귀한 사랑에 관한 것이다. 아가서는 인간의 사랑이 하나님의 위대하고 놀라운 선물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아가서는 확장된 잠언이라고 볼 수 있다. 때로는 금욕주의가 성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하나님에 의하여 설정된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육체적인 사랑의 본질적 선함과 정당성이 거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아가서는 극단적인 성적 추구나 남용과, 금욕주의라는 또 다른 극단 사이의 건전한 균형을 대담한 언어 표현으로 제시하고 있다.
아가서에 등장하는 한 쌍의 연인의 사랑은 시작 부분에서부터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강력하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의 힘은 절정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주제를 독창적이고 섬세하게 반복하여 묘사하는 데에 있다. 사랑하는 자는 떨어져 있을 때에도 상대방을 갈망하고(3:1-5), 함께 있을 때에도 완전한 즐거움을 누린다(7장). 왕궁의 찬란함 속에서도(1:2-4) 전원의 고요함 속에서도(7:11 이하) 사랑의 풍요로움을 경험한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물도 그 뜨거움을 끄지 못하고 홍수도 엄몰하지 못한다. 그 사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도저히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다(8:6, 7).
(2) 아가서는 결혼한 두 부부의 육체적 관계를 포함한 인간의 깊은 사랑을 표현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영(E. J. Young)에 의하면, "아가서는 단지 인간의 사랑의 순결성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경의 한 부분으로서 이 책은 우리 인간의 사랑보다 더 순결한 한 사랑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이상적 관계,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이상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부부간의 사랑을 설명하면서(5:22-33) 부부의 사랑은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임을 밝힌 것도 이런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의 관계와 그리스도-교회의 관계를 큰 비밀이라고 천명하였다.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 5:32-33)
아가서 제1장
서론에서 언급한 것처럼 아가서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 아가서 1:1-3:5 회상 형식의 솔로몬과 술람미의 구혼시절
2. 3:6-5:1 두 사람의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다.
3. 5:2-8:14 결혼 이후의 행복한 결혼생활
I. "솔로몬의 아가라"(1:1)
아가서의 첫 서두는 솔로몬의 아가서 저작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 서두는 아가서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소개는 솔로몬이 지은 잠언이나 전도서에 비하면 그 소개가 매우 간략하다. 잠언이나 전도서에는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예루살렘 왕' '전도자' 등과 같이 솔로몬의 지위나 가문 배경 등이 제시되어 있지만, 아가서는 그런 설명을 생략하고 있다. 일체의 배경이나 지위를 배제한 것은 오르지 순수한 사랑만을 강조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가'는 히브리어 '쉬르 핫쉬림'의 우리말 번역이다. 그 의미는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인데, 최상급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구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가'는 '최고의 노래' 혹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뜻한다.
II.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의 매력 넘치는 모습을 회상하면서 볼품 없었던 자신의 지난 시절을 추억한다(1:2-7).
1. 사랑하는 임의 매력 넘치는 모습(1:2-4)
술람미 여인은 아가서 내용의 첫 시작인 2절에서 사랑하는 임이 자기에로 와서 입 맞추어 주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러한 갈망은 1:4절에서 그녀 자신이 신랑에게 이끌려가고 싶음을 고백하는 내용과 대조를 보여준다. 곧 사랑하는 임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게 하고픈 마음과 자신이 스스로 그에게로 가고 싶은 마음이 서로 평형을 이루고 있는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게 모든 것을 싶은 마음과 상대방의 것을 다 갖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1:2과 1:4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 내용은, 사랑하는 임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워 다른 처녀들도 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고백이다. 이것은 두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가를 보여준다. 그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워 다른 여자들에게 그런 사랑을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이다. 그만큼 사랑하는 임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가서 전체는 사랑하는 상대방에 대한 끝없는 찬사로 가득 차 있다.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술람미의 사랑하는 임에 대한 애절한 마음은 다음 세 가지로 표현한다.
(1) 포도주보다 진한 사랑: 성경에서 포도주는 인생의 기쁨이나 즐거움과 연관하여 자주 언급된다(삿 9:13; 시 104:15; 잠 31:6; 전 10:19). 당시에 가장 큰 즐거움은 포도주로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포도주보다 진한 사랑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지고의 행복을 뜻한다.
(2) 향기롭고 아름다운 기름: 여기에서의 기름은 올리브기름을 의미하는데, 당시 올리브기름은 모든 향료의 기초가 되었다. 포도주가 내부에서 솟아나는 행복감이라고 한다면, 올리브기름의 향기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향기로움이라고 할 수 있다.
(3) 이름의 향기로움: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자의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 술람미는 솔로몬의 명성과 놀라운 성품이 가는 곳마다 널리 퍼져 있음을 노래한다. 이것은 사랑하는 임의 인격과 품성의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2.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1:5-6)
여기에서 '검다'는 말은 검은 피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햇볕에 그을려서 생긴 암갈색 피부를 의미한다. 비록 피부는 검게 그을렸어도 여인의 본래적 아름다움은 여전하다는 주장이다. 마치 흙속에 묻힌 진주처럼 고유한 미를 지니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술람미는 자신의 피부가 검게 그을린 원인이 자신의 오빠들(내 어미의 아들들)의 강요로 밖에서 포도원을 가꾸는 일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본래 가지고 있는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은 비록 피부는 게달의 장막같이 검지만 솔로몬의 휘장과 같은 아름다움이 간직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달은 다메섹의 남동쪽에 위치한 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살고 있었던 유목민족을 지칭하는 명칭이기도 하였다. 이들은 검은 염소 털로 유목민들의 천막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3. 임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1:7-8)
술람미는 처음으로 임을 만났을 때에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였는가를 추억한다. 당시 솔로몬은 목자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사랑하는 임이 양 돌보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오정 휴식시간에 그를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눈을 가린 자처럼 사랑하는 임이 있는 곳을 알 수가 없었다.
술람미의 임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은 예루살렘 여자들의 합창으로 응답을 받는다(8절). 우선 예루살렘 여인들은 자신을 피부가 검은 여자라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술람미에게 여자 중에 가장 어여쁜 자라고 칭찬을 한다. 자기 겸손은 곧 남으로부터 높임을 받는 지름길이다. 그러면서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에게 양떼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목자를 만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양들은 목자가 이끄는 선도 양을 따라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양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반드시 목자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성도들이 이전 믿음의 선배들의 경험을 따라 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보여준다(히 6:10-12; 13:7).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새끼를 먹일지니라"에서 '염소새끼를 먹이는 일'은 술람미가 하였던 일로 이해된다. 즉 목자를 만나기 위하여 너무 기다리는 것에만 몰두만 하지 말고 오히려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자신의 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사랑하는 임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III. 솔로몬의 응답 (1:9-11)
1:9절부터 분위기는 목자들이 일하는 자연 세계로부터 말을 자랑하는 이집트 바로의 장엄한 문명세계로 바뀐다. 분위기만 바뀐 것이 아니라 사랑의 행위에도 변화가 있다. 앞부분에서 보여주는 사랑은 상대방을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사랑이라면, 여기에서의 사랑은 상대방의 모습을 높여 예찬하는 사랑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운 모습과 순수한 성품을 높이 칭찬한다.
9절에서 솔로몬은 술람미를 '나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한글성경에서는 '나의 사랑'이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동료, 친구'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의 어원이 되는 동사의 기본적인 의미는 '지키다' '돌보다' '기쁨으로 보살피다'이다. 동료나 친구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의 행복이나 평안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호칭은 아가서 전체를 통하여 자주 등장한다. 아가서 전체에서 9번이나 반복하여 등장하는 이 표현(1:15; 2:2, 10, 13; 4:1, 7; 5:2; 6:4)은 항상 솔로몬에 의해 사용되고 있으며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말'에 비유하고 있다. 여자를 말에 비유하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별로 적합하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이 비유는 다양한 번역과 해석을 낳기도 하였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이집트산 말은 가장 뛰어난 품종으로 여겨졌다. 더구나 궁중의 말은 다른 모든 말보다 가장 뛰어난 품종이었다. 그래서 '바로의 준마'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솔로몬은 이집트의 말과 병거를 이스라엘 군대에 도입한 최초의 이스라엘 왕이었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말의 아름다움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여인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역시 말과 관련하여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10-11절에서 솔로몬은 사랑하는 여인의 장식품들이 그녀의 빰과 목의 아름다움을 드높여 준다고 칭찬한다. 이것은 준마의 목에 달린 장식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임이 분명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끄는 말들에게 여러 가지 장식을 달았다. 특별히 이집트 궁중의 말들은 바로의 권위와 부에 걸맞게 다양한 장식품들을 달았다. 말의 장식품으로서는 보석들, 값진 금속들, 깃털들, 다양한 색상의 가죽과 천 등이 있었다. 솔로몬은 말의 장식품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자신의 연인에게 돌리고 있다.
술람미의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아름답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땋은 머리털'로 번역된 히브리어 '토림'은 번역하기가 어려운 단어이다. 이 단어는 그 다음 절인 11절에서 '(금)사슬'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의 어원적 의미는 '회전, 전환'이라는 뜻이다. 에스더 2:12, 15에서 이 단어는 왕 앞에 나가기를 기다리는 처녀의 '차례'라고 번역되기도 하었다. 아름답게 꼰 자연의 머리털이 술람미 여인의 두 뺨을 덮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구슬로 만든 끈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더 좋은 장식품인 은을 박아 만든 금 사슬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은을 박아 만든 금 사슬은 당시 가장 값진 보석 중 하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솔로몬이 술람미를 만났을 때 그녀가 지니고 있었던 장식품들은 시골 아가씨의 수수한 것이었다. 솔로몬은 그녀에게 더 값진 보석들을 장식품으로 만들어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여기에서의 강조점은 값비싼 장식품이 주는 매력이 아니다. 더 잘 어울리는 장식품을 만들어 줌으로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하겠다는 것이다.
외적으로 매력 없어 보이는 자를 왕이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왕이 직접 더 좋은 장식품을 선물로 주어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겠다는 약속은 더욱 더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하나님께 더 한층 아름답게 보이도록 더욱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시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IV. 술람미는 임에 대한 만족감을 독백 형식으로 노래한다(1:12-14)
술람미는 솔로몬의 자신에 대한 찬사를 기쁨에 겨운 독백으로 반응한다. 이 독백 형식의 고백 속에는 향유를 나타내는 세 가지 직유 곧 나도향, 몰약, 고벨화가 사용된다. 세 가지는 모두 술람미의 솔로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향료들이다.
(1) 나도향: 왕이 상에 앉았을 때에 술람미는 향기를 토해내는 나도향이 된다. 여기에서 나도향은 히말라야 지역의 식물에서 축출하여 만든 값진 향유다. 나도향은 먼 지역에서 수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구하기가 힘든 것이어서 가장 값진 향유로 취급되었다. 어려운 형편에 있었던 술람미에게는 그런 값진 향유가 분명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임을 향한 마음속에서는 그런 값진 향유라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싶은 사랑과 헌신의 감정이 넘쳤을 것이다. 술람미의 마음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심정과 같은 것이다.
(2) 몰약: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이 자신의 가슴속에 안겨있는 몰약이라고 표현하였다. 자신이 값진 나도향인 것처럼 사랑하는 임인 솔로몬은 그녀에게 향기로운 몰약이었다. 몰약은 남부 아라비아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축출하는 수지 성분의 나무진이다. 이것은 고대로부터 가나안에서 향유로 사용되었다. 몰약은 성막에서 사용되는 거룩한 기름에 들어가는 중요한 품목이었다(출 30-23-33). 그리고 몰약은 전통적으로 죽음과 관련된 향료었으며 특별히 미라를 만드는 데에 귀중하게 사용되었다. 액체 형태의 몰약은 나도향처럼 작은 병에 보관이 되기도 하였지만, 고체 형태의 몰약은 헝겁이나 향주머니에 넣어 옷에 붙여 두기도 하였다. 몸의 열기에 의하여 고체 몰약은 조금씩 녹아내리게 되는데, 이 때에 몰약에서 나오는 향기는 온 방안을 향기롭게 만들었다.
(3) 술람미는 사랑하는 자가 자기에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라고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고벨'은 히브리어를 음역한 것인데, 영어에서는 'henna'라고 번역하였다. '헤너'는 향기로운 흰 꽃이 피는 이집트 산 식물이다. 이 식물의 잎은 갈아서 오랜지 색의 물감을 만들어 머리를 염색하거나 손톱에 물을 들이는 것 등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고벨은 또한 향기로운 흰 꽃으로 유명하였기 때문에 고벨화는 꽃향기에 비유되고 있다. 특히 고벨화가 피는 장소는 엔게디이다. 이곳은 사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오아시스로서 수천 년 동안 이곳을 지나가는 나그네들에게 즐거운 휴식공간을 제공하였다. 엔게디에서는 각종 열대성 혹은 준열대성 식물들이 자란다. 그러므로 엔게디의 포도원은 포도만 자라는 과수원이 아니라 각종 과일나무들이 자라는 동산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엔게디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식물로는 화장품과 향유를 만드는 여러 향 재료 식물들이었다. 1:9에서 언급된 이집트의 말처럼, 엔게디의 고벨화도 극상품 향수 원료임을 보여준다.
V. 솔로몬의 술람미 칭송(1:15)
솔로몬은 다시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앞에서와 같이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술람미를 부르고 있으며, 앞에서와 같이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비둘기에 비유하고 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눈에 매혹되었다. 여자의 눈은 곧 그 여자의 온전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신체기관이다. 창세기 29:17에서 라헬의 아름다움은 레아의 안력이 약함에 대조되고 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아름다운 눈은 곧 아름다운 인격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마태복음 6:22에서도 "눈은 온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비둘기는 성경에서 죄를 모르는 것으로 상징된다. 술람미 여인의 눈이 비둘기의 눈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곧 술람미 여인이 지니고 있는 순결함과 온유함의 깊은 신앙인격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하고 맑게 빛나는 술람미의 눈동자에 솔로몬은 매료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네 눈이 비둘기 같다"고 노래하였다.
VI. 술람미는 멋진 야외에서 임과 함께 있는 즐거움을 노래한다(1:16-17)
술람미는 솔로몬이 자신에게 사용하였던 방식과 비슷한 어투로 그에게 화답한다. 그녀는 솔로몬과 함께 있는 한 상상적인 장소를 묘사하고 있다. 그곳은 풀과 나무들이 자라는 시원한 '푸른 초장'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푸른 초장에서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를 본문에서는 침상과 집으로 설명한다.
여기에서의 '침상'은 차양으로 두른 멋진 침대를 의미한다. 주변에는 장식들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다. 이 침상은 푸른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푸르다'는 의미는 색갈이 푸른 것이 아니라 생명을 상징하는 빛깔로서 살아 있는 나무에 잎이 무성한 모습을 보여준다. 즉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침대는 정원의 아름다운 나뭇잎으로 둘러쳐져 있어 마치 살아있는 생명의 푸른 나뭇잎이 침대 위로 둥근 지붕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침상이란 안식의 처소요 두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환희의 장소이다. 푸른 침상은 살아있는 생명의 침상이며 따라서 깨끗한 침상이다.
이러한 침상의 모습은 잠언 7:16-17에 나오는 음녀의 침상과 대조적이다. "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음녀의 침상은 값진 재료로 꾸미고 향료를 뿌렸지만 그것은 사람을 악으로 유인하는 함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가서의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침상은 푸르른 생명의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의 집은 백향목 들보와 잣나무 서까래로 만들어 졌다. 백향목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의미한다. 이 백향목은 구약에 언급된 나무들 중에서 가장 강한 나무이다. 잣나무는 베니게 지방에서 자라는 일종의 향나무이다. 여기에서의 '집'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벽과 문 뒤의 한정된 방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정원 전체를 돌아다니며 나무그늘 어디나 마음대로 사랑을 나누는 장소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초의 남녀가 살았던 에덴동산도 나무들이 많이 자라는 동산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동산 안에서 마음 놓고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았다.
아가서 제2장
아가서 2장은 술람미 여인의 자기 모습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2:1), 곧 바로 두 남녀가 돌아가면서 서로를 칭찬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2:2-3). 앞부분과 같이 2장의 첫 부분에서도 야외 들판이 등장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정원 나무 아래에서 서로가 나누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서로의 사랑을 들의 꽃이나 열매 맺는 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꽃이 가장 많이 피는 계절은 겨울이 끝나는 봄이다. 그러므로 꽃은 봄과 더불어 소생하는 생명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I. 술람미의 자기 고백: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2:1)
(1) 샤론의 수선화: 샤론은 지중해 해안지역으로 갈멜산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욥바 근처의 야르콘강에 이르는 평야지역이다. 고대시대 이곳은 해안으로 따라 형성된 사암층(쿠르카르)으로 인하여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늪지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샤론평야에는 여러 종류의 풀과 꽃들이 자랐다. '샤론의 수선화'가 정확하게 어떤 꽃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짙은 붉은 색의 아네모네나 향기가 뛰어난 수선화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선화'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바첼레트'는 이사야 35:1에서 '백합화'로 번역되기도 하였다. 영어성경은 이를 'rose' 혹은 'crocus'로 번역하고 있다.
(2) 골짜기의 백합화: '백합화'로 번역된 히브리어 '쇼샤나'는 어원적으로 '즐거움' 이나 '밝음' 등을 의미한다. 페르시아에서도 백합화를 '수산'이라고 불렀고, 페르시아의 중요도시인 '수산'도 그 꽃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술람미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기름진 야외 들판에서 자라는 꽃에 비유하고 있다. 이런 꽃들은 궁전과 같은 화려한 곳에서 가꾸어진 화초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겠지만, 자연 속에서 자라는 청순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술람미는 여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수없이 많이 핀 들판의 꽃들 중 하나와 같다고 고백한다. 이런 고백 속에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자신이 별로 두드러진 인물이 아니라는 자기 낮춤의 표현도 함께 들어있다.
II. 솔로몬의 응답: "여자들 중에서 나의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 (2:2)
솔로몬의 응답 속에는 앞 절에서 술람미가 고백한 자기표현을 사랑의 칭찬으로 한층 더 상승시켜준다. 백합화가 가시나무보다 월등하듯이 그녀의 아름다움은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솔로몬은 노래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시덤불 가운데 피는 백합화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솔로몬의 눈에는 술람미의 아름다움이 어느 다른 여자의 아름다움보다 더욱 돋보이고 있다.
가시나무는 잎도, 꽃도, 그리고 열매마저도 모두 보잘 것 없음을 의미한다. 때로 가시나무는 백합화의 꽃잎을 찌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아픔 속에서 백합화는 오히려 더 짙은 향기를 토하여 낸다. 그와 같이 교회는 삭막한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으나,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처럼 오히려 더 짙은 신앙의 향기를 발하게 된다.
III.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과 함께 즐기는 교제의 환희를 이야기 한다(2:3-6).
(1) 2:3
술람미는 솔로몬의 칭찬에 또 다른 칭찬으로 응답한다. 여기에서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을 사과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사과나무는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맛있는 과일과 더불어 편안한 휴식공간인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은 다른 남자들 보다 훨씬 뛰어난 임이다. 그래서 "남자들 중에 나의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 같구나"라고 노래하였다. 그 나무의 열매는 입에 달았고 나무 그늘은 쉼을 얻는 장소가 되었다. 그늘은 보호와 쉼을 상징한다.
(2) 2:4
술람미는 야외의 시골풍경을 '잔치집'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잔치집'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벧 하야인'은 'the house of wine'이라는 뜻이다. 구약시대 '술의 집'은 관용적 표현으로 포도가 자라는 포도원 자체를 의미하였다. 이곳에서 다 익은 포도를 따서 포도즙을 만들고 이것을 항아리에 담아 보관해 둠으로 포도주를 제조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제조한 술을 포도원에서 직접 마시기도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잔치집'은 잔치가 벌어지는 집이기보다는 포도원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포도원이 있는 정원은 두 남녀가 만나는 사랑의 장소이기도 하었다.
"그 사랑이 내 위의 기로다" 여기에서 '기'로 번역된 히브리어 '데겔'은 민수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다. 거기에서 '기'는 이스라엘 진영을 구별하기 위하여 꽂아둔 것이었다. 여러 지파들이 모여 있는 한 가운데 꽂혀있는 기를 봄으로서 그들이 어느 지파인가를 구별할 수 있었다. 솔로몬의 기가 술람미 위에 있다는 것은 곧 그녀가 솔로몬에게 속한 여자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다. 또한 기는 바라보는 목표물을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의 기가 그녀에게 있음은 솔로몬의 관심이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사랑하는 술람미를 포도원으로 데려가면서 그녀에게 온갖 마음을 두고 지극한 사랑의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3) 2:5-6: 사랑의 병과 회복
술람미는 솔로몬을 사랑함으로 인하여 병이 생겼음을 고백한다. 여기에서의 '병'은 신체적으로 약해짐을 의미한다. 술람미는 임의 사랑에 너무 깊이 젖어들어 몸이 탈진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심리적 긴장을 동반하다. 술람미가 사랑으로 인하여 기력이 소진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으로 인한 심리적 긴장감이 컸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녀는 건포도와 사과로 자신의 기력을 회복시켜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고 있다.
술람미 여인의 원기를 회복시켜 달라는 요청은 사랑하는 임이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받쳐주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를 안아주는 것에서 그 응답이 이루어진다. 사랑의 따듯한 손길은 어느 것보다 더 크게 기력의 회복을 가져다준다.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의 품안에서 평안한 잠을 이루고 있다.
IV. 솔로몬의 부탁-사랑하는 자를 깨우지 말아다오(2:7)
솔로몬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사랑하는 자가 깨고 싶을 때까지 자도록 내버려 둘 것을 부탁한다. 이러한 부탁은 3:5과 8:4에서도 거듭 나오고 있다. 그러나 8:4에서는 '노루와 들 사슴'이 빠져있다. 노루와 들 사슴은 모두가 쉽게 놀라고 무서워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이 두 짐승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사랑의 여신들과 관련이 있었다. 사랑은 쉽게 깨어지고 손상 받기 쉽기 때문에 노루와 사슴을 다루듯이 조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충분히 잠으로 잃었던 기력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솔로몬의 요청이다.
V. 술람미의 임을 기다리는 벅찬 가슴(2:8-9)
술람미가 중심 화자인 새로운 시가 시작되고 있다. 아마도 이 시의 내용들은 술람미가 구혼시절 낭만과 연정을 회상하며 부른 노래인 것 같다. 술람미는 아마도 겨울 한철 동안 솔로몬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봄이 되면서 사랑하는 임은 그녀 앞에 들 사슴처럼 늠름하게 달려오고 있다. 임은 봄꽃 냄새를 안고 그녀에게로 달려오고 있다. 집 가까이 도착한 임의 모습이 창틈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임의 모습이 완전하게 다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임이 오심을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벅찬 가슴을 안고 숨 막히는 희열 속에서 온 몸이 달아오르고 있다.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의 목소리와 산을 넘어 오고 있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으며, 창 틈으로 들여다보는 임의 눈길을 느끼고 있다.
VI. 술람미가 소개하는 솔로몬의 초청(2:10-15)
솔로몬은 술람미에게 함께 밖으로 나가자고 초청한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계절은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이다. 이러한 계절의 이미지는 두 남녀의 사랑이 이제는 무르익어 성숙의 열매를 맺을 때가 다가왔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내용은 지쳐있고 잠에서 깰 것을 걱정하는 2:7의 내용과는 대조적이다.
밖에는 겨울이 지나 더 이상 비가 오지 않는 봄이 되었다.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며 어린 반구의 소리가 들리는 계절이 찾아왔다.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가고 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고 있다. 계절과 더불어 두 사람의 사랑도 점차 알차게 익어가고 있다.
(2:14)
솔로몬은 술람미를 '나의 비둘기'라고 부른다. 여기에서의 비둘기는 산비둘기로서 높은 절벽의 바위틈이나 깊은 계곡의 틈새에서 숨어 지내는 습성이 있다. 솔로몬은 이처럼 자신을 감추고 사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목소리를 듣고 싶어 밖으로 나와 줄 것을 간청하고 있다.
(2:15)
그들의 사랑이 무르익어 가는 절정에 이르기 직전에 와 있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이 열매 맺는 일을 방해하거나 사랑의 감정을 깨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꽃이 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간청한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무화과, 석류와 함께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다. 이스라엘에서 포도는 한 여름철에 익고 수확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없는 여름 동안 여우들은 포도원을 자주 침범한다.
VII. 술람미 여인의 솔로몬에 대한 사랑의 고백 (2:16-17)
술람미의 임에 대한 같은 사랑의 고백이 6:3과 7:10에서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서 술람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한 몸을 이루고 있음을 고백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이것은 창세기 2:23에 나오는 최초의 사랑 고백인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와 창세기 2:24에 소개되어 있는 불변의 결혼관인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와 같은 내용이다.
여기에서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을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목자는 단순히 양을 치는 목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백성을 다스리는 왕도 목자로 이해하였다. 시편 23편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는 목자이시다. 이것은 구약시대 이상적인 지도자상이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목자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2:16
후반부는 낮 동안 양들을 돌보기 위하여 집을 떠나있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양들을 돌보는 곳은 단순한 들이 아니라 백합화가 피어있는 아름다운 들판이다. 여기에서 목자의 목양지역을 백합화로 이해한 것은 사랑하는 임의 모습이 아름답고 품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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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2:17은 저녁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목자를 그리고 있다. 술람미 여인은 낮 동안 헤어졌던 임이 이별의 언덕을 넘어 자기에게로 돌아오고 있음을 노래한다. 여기에서도 2:7에서와 같이 노루와 사슴이 등장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임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베데르 산'은 이스라엘에 존재하는 어떤 특정한 산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히브리어 '베데르'는 울퉁불퉁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목자와 그녀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거친 산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베데르 산'은 낮 동안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았던 분리의 산을 의미한다. 술람미는 거친 분리의 산을 한가운데 두고 하루 종일 헤어져 있던 임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아가서 제3장 술람미의 꿈과 결혼식
아가서 3장의 구조
3:1-4 술람미 여인의 꿈
3:5 =2:7 사랑하는 자를 깨우지 말아달라는 술람미의 부탁
3:6-11 구경꾼들에 의하여 묘사되는 결혼식
I. 술람미 여인의 꿈(3:1-4)
결혼이 있기 직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 대한 꿈을 꾸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임에 대한 연모는 꿈으로 나타났다. 꿈의 내용은 임을 잃어버린 술람미 여인이 애타는 마음으로 임을 찾아 헤매다 드디어 임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1절에서는 임을 찾아 헤매는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밤에 침상에서 사랑하는 자를 찾아 헤맨다.
2절은 침상에서 일어나 성중의 골목마다 거리마다 헤매며 임을 찾는 애절한 모습이 나온다.
3절에서는 성안을 순찰하는 야경꾼들에게 다가가 임의 행방을 물어본다. 당시에는 거리에 가로등이 없고 단지 밤거리를 순찰하는 야경꾼들이 거동 수상한 사람을 통제하였다. 술람미 여인은 그들이 자신에게 누구냐고 묻기 전에 먼저 임의 행방을 물어본다.
4절에서는 드디어 사랑하는 임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야경꾼들이 지나가고 나서 애타게 찾던 임을 드디어 만나게 된다. 술람미 여인은 꿈은 사랑하는 임을 모친의 집으로 데려가는 장면에서 끝나게 된다.
이러한 술람미의 꿈은 임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임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술람미의 연정은 오히려 임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심리적 걱정으로 표현된다. 이미 앞부분에서 술람미는 그러한 심리적 상태를 보여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1:3-4에서는 처녀들이 솔로몬을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하였으며, 1:5에서는 자신이 햇빛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시골 아가씨에 불과하다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2:1에서도 자신은 들에 핀 한 송이 백합화에 불과함을 고백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임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술람미 여인이 얻게 된 사랑은 은혜의 차원이 담겨져 있다.
술람미 자신의 표현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솔로몬과의 사랑은 전적으로 은혜의 차원이다. 그러한 내용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관계에서도 상관성을 찾을 수 있다. 언약의 근본적 개념은 이스라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내려놓으실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이스라엘에 결속시킴으로 자신을 속박하신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이스라엘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을 만나주신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축복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에 그럴만한 가치나 자격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근거하고 있다(신 7:6-7).
술람미 여인의 꿈은 임과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의 아픔인가를 경험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슬픔과 아픔은 오직 임을 다시 만나는 것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다시 찾을 임을 더 이상 놓치지 않으려고 그를 어머니의 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3:1-4에서는 매 절마다 "마음에 사랑하는 자"가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히브리어 원문은 '마음에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사랑하는 자'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여기에서 '마음'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네페쉬'인데, 그것은 전인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우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으로 하여금 생령이 되게 하셨다(창 2:7). 여기에서 '생령'은 살아 있는 생명 곧 살아 있는 '네페쉬'이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전 존재 곧 자신의 '네페쉬'로서 솔로몬을 사랑하고 있다. 이것은 오직 솔로몬만을 사랑하는 술람미의 일편단심을 보여주며 그녀의 모든 정성과 모든 힘을 다하여 그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한 진실된 마음의 충성심이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 때에는 진노하시는 분이시다.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자신의 '네페쉬'로 사랑하였듯이, 우리들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신 6:4-5).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5장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부부간의 사랑은 곧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사랑을 의미하는데, 여기에서의 사랑은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얻고자하는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향하여 자신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다.
II. 3:5 사랑하는 임을 깨우지 말아달라는 부탁
아가 3:5의 내용은 2:7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다만 2:7은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부탁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하여 부탁하고 있다. 그가 원하기 전까지는 곤히 잠든 그를 깨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곧 잃어버렸던 사랑하는 임을 다시 찾아 가장 편안한 자신의 어머니의 집을 데려와 편히 쉬게 하고 있는데, 다른 일로 인하여 깊은 잠으로 편안히 쉬고 있는 임을 깨우고 싶지 않다는 한 여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사랑 안에서 얻는 안식의 편안함이다.
III. 3:6-11 결혼행렬
아가 3:6-11은 구경꾼들에 의하여 묘사되는 결혼식 장면이다. 앞부분에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연애시절에 있었던 장면들이 소개되었다고 한다면, 여기에서는 두 남녀가 결혼식을 거행하고 결혼잔치를 치르는 장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결혼식 장면들은 4장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결혼식을 치르면서부터 말하는 자는 술람미에서 솔로몬에게로 넘어가고 있다. 결혼으로 인하여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에서의 대변인은 남자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의 내용은 혼인식이 벌어질(3:11) 예루살렘을 향하여 광야 길을 통과하는 결혼행렬에 대한 묘사이다. 이 결혼행렬은 구경꾼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는데, 후에는 예루살렘의 모든 여자들이 이 결혼행렬을 보라고 촉구하고 있다(3:11).
<거친 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오고 있는 결혼행렬은 거친 들 곧 광야 길을 지나오고 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유다광야가 위치하고 있다. 예루살렘 동쪽 편에 위치하고 있는 감람산은 유다광야와 예루살렘 사이의 경계선 역할을 한다. 이런 광야지역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은 더욱 돋보이게 된다. 그래서 결혼행렬이 광야 길을 지나오고 있다는 것은 결혼행렬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지역은 다름 아닌 광야 사막지역이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던 시내산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돌산이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위치하였던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을 뿐만이 아니라 가나안에 입국하기 전에 그런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냈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의 결혼행렬은 마치 가나안을 향하여 입국하는 이스라엘의 행군하는 모습과 유사하다.
<연기기둥>
결혼행렬의 전방에는 '연기기둥'이 치솟고 있다. 여기에서의 연기기둥은 행렬 앞에 피우는 향불에서 솟아나는 연기이다.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향불은 결혼식의 달콤함과 즐거움을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여기에서의 연기기둥은 향불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이기 때문에 출애굽 때 이스라엘을 앞서 인도하였던 구름기둥과 불기둥과는 기능적인 면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결혼행렬을 앞서 인도하는 향불의 연기기둥은 이미지 면에서 충분히 출애굽 때의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역할과 비슷한 점을 지닌다.
<이스라엘 용사 60인으로 구성된 호위병>
결혼식 행렬에는 일반적으로 신랑의 친구들이 함께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식 행렬에는 이스라엘의 정예부대로 편성된 60명의 호위병들이 따라오고 있다. 이들은 솔로몬의 정병으로서 신부인 술람미를 잘 보호하기 위하여 파견된 자들이다. 특히 어두운 밤에 발생할 수도 있는 불의의 사고를 대비하여 특수 훈련을 받은 뛰어난 군인들이다. 이들은 또한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무장 정병들이다.
남편은 아내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는 내용 속에는 어떠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기의 아내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포함된다. 그러한 책임은 방어적 자세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용사들이 칼을 차고 있듯이 적극적인 공격자세도 포함된다. 결혼식 행렬은 그러한 완벽한 보호를 받을 때에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두 부부의 아름다움은 외부의 방해세력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며 지켜야할 아름다움이다.
<솔로몬의 가마>
결혼식 행렬의 중심에는 신부를 태우고 있는 '솔로몬의 가마'이다. 이 가마는 기둥과 바닥, 그리고 바닥 위에 놓은 깔개로 이루어진다. 솔로몬의 결혼식 가마는 가장 아름다운 재목인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가마의 기둥은 은을 입혔고, 바닥은 금을 입혔다. 그리고 바닥 위에 놓은 깔개는 자주 빛 천으로 장식이 되었다. 솔로몬은 신부에게 최고의 것을 제공하고 있다. 참 사랑은 최고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사랑은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출애굽기 19:5에 의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서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다. 여기에서 '소유'로 번역된 '세굴라'는 '가장 값진 보물'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가장 귀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보물이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하나님의 최고의 것으로 삼으셨다. 그래서 우리들도 하나님께 최고의 사랑을 고백하며 섬겨야 한다.
아가서 제4장 결혼의 즐거움
아가서 4장은 결혼식장에서 솔로몬이 신부에게 전해준 사랑의 고백이다. 아가서 4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4:1-8까지는 신부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노래하고 있으며, (2) 4:9-15에서는 솔로몬의 마음을 빼앗아간 신부의 매력과 미덕, 그리고 즐거움의 근원으로서의 신부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3) 4:16-5:1에서는 결혼의 완성을 노래하고 있다.
I. 4:1-8 신랑이 신부의 아름다움을 노래함
아가서 4장은 결혼식장에서 신랑이 신부를 찬양하는 노래이다. 신부인 술람미는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아름답게 단장을 하고 너울을 쓰고 결혼식장에 입장한다. 이때에 솔로몬은 일어나서 신부의 아름다움을 공중 앞에서 극찬하게 된다. 여기에서의 신부를 칭찬하는 내용은 형식적인 칭찬이 아니라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사랑의 칭찬이다. 이미 앞부분에서 두 남녀는 서로의 사랑을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의 칭찬은 결혼식을 거행하면서 최고조에 달하는 사랑의 고백으로서의 칭찬이다.
신랑 앞에서 나오고 있는 신부는 너울을 쓰고 있었다. 고대 근동의 여인들은 자신의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너울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풍습이 리브가가 자신의 남편이 될 이삭을 확인하자 곧바로 스스로 너울을 썼었던 이유이다(창 24:65). 라반이 결혼 첫날밤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 레아를 신방에 들여보낼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너울을 신부가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창 39-19-25).
신랑의 신부에 대한 칭찬 노래는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4:1)라는 칭찬으로 시작하여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4:7)라는 칭찬으로 끝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칭찬의 노래 사이에는 신부의 일곱 신체의 부분에 관한 구체적인 묘사가 신부의 어여쁨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체의 일곱 부분은 눈, 머리털, 이, 입술, 뺨, 목 및 두 유방이다.
<비둘기 같은 눈>
솔로몬은 너울 뒤에 숨겨진 술람미의 눈을 바라보면서 그 눈이 비둘기 같다고 하였다. 이미 1:15에서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운 눈을 비둘기에 비유하였었다. 비둘기는 온유하고 순결하고 정절이 있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새이다. 노아의 홍수 때에 비둘기는 까마귀와 달라서 인류를 위하여 봉사하기도 하였다(창 8:8-11). 눈은 마음의 창으로서 눈의 용모는 곧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그래서 눈은 온 몸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은 머리털>
여자의 긴 머리털은 영광의 상징이고(고전 11:15), 긴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는 것은 남편에게 순종함을 의미한다(고전 11:6-15). 술람미의 머리털이 길르앗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와 같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염소의 털과 같이 검다는 것을 나타내며 또한 무리 염소들이 연하여 누워있는 것처럼 윤택한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길르앗산지는 요단강 동편에 위치한 산지로서 얍복강에서 야르묵강까지의 비옥한 산지이다. 이 지방은 목축업에 좋은 곳으로서(민 32:1; 대상 5:9-10) 그곳에서 자란 염소의 털은 길고 윤택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목욕장에서 나온 털 깍인 암양/쌍태를 낳은 양 같은 이>
이러한 표현은 술람미 여인의 치아가 깨끗하고 윤택함을 칭찬한 것이다. 아무리 이목구비가 잘 생겼다고 하여도 이가 깨끗하지 못하거나 똑바르지 못하면 완전한 미인이 될 수 없다. 술람미의 이는 털깎은 암양과 같이 장단 없이 가지런하고 양이 욕장에서 전신을 씻고 올라온 것같이 깨끗하다. 또한 새끼가 둘씩 있는 것같이 상하의 이가 하나의 틈이 없이 가지런한 상태이다. 이것은 이가 외관상 아름다울 뿐 아니라 깨끗하고 건강한 상태에 있음을 보여준다.
<홍색실 같은 입술과 어여뿐 입>
입술이 홍색인 것은 그녀의 입술이 환자처럼 핏기 없는 입술이 아니라 건강한 모습의 입술임을 보여준다. 또한 홍색실과 같다는 것은 입술이 마치 실처럼 가늘고 붉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입과 입술은 마음속에 들어있는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기관이다. 입과 입술이 건강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마음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자신이 있음을 한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의 입술을 제단 숯불로 정결케 하여주었다. 마음에 할례를 받고 입술이 깨끗한 자라야만 예수를 구주로 고백할 수 있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는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다(약 3:2).
<석류 한쪽 같은 뺨>
석류와 같이 붉은 뺨은 붉은 색 입술처럼 신부의 건강한 모습이다. 여기에서의 건강한 뺨은 너울 속에 숨겨져 있는 뺨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뺨이기 보다는 오로지 신랑만을 위한 신부의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신앙적으로도 성도들에게는 남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주님만이 아시는 내적인 아름다움이다.
<다윗 망대 같은 목>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는 예루살렘의 성벽 위에 견고한 망대를 세워 적들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였다. 특히 각 망대에는 일천 개의 방패를 두어 누구도 넘보지 못하게 하였다. 술람미 여인은 목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자는 목이 아름다워야 미인이다. 그런데 그런 목을 다윗의 망대에 비유한 것은 그의 의지의 견고함을 보여준다. 어떤 대적 앞에서도 물러설 줄 모르는 강하고 견고한 신앙적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신앙의 절개가 그의 목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천개의 방패로 무장된 망대는 곧 술람미 여인의 목에 걸린 보석 목걸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그런 목걸이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기 만들고 있다.
<백합화 가운데에서 꼴을 먹고 있는 쌍태 노루 같은 두 유방>
여인의 젖가슴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고상한 사랑의 시에서 너무 대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순수한 사랑의 고백에서 언급된 것이기에 천박하게 느껴지지 않고 솔직한 심정의 토로로 받아들여진다.
술람미의 젖가슴은 백합화 가운데 꼴을 뜯고 있는 쌍태 노루 같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백합화는 경건과 영광의 표상으로서 세속의 표상인 가시덤불과 대조적이다. 솔로몬이 여기에서 백합화를 언급한 것은 술람미 여인의 흰색 세마포 옷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녀의 유방 주변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흰빛을 발하는 모양은 가히 한 쌍의 노루새끼가 흰 백합화 밭에서 꼴을 먹는 풍경같이 아름답게 보였을 것이다. 젖가슴을 쌍태노루에 비유한 것은 새끼 노루처럼 탄력 있고 부드러움을 보여준다.
여자의 유방은 고대 사회에서 생산성의 표상으로 여겨졌다. 여자가 자녀를 생산하여 그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은 여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오히려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수치요 악으로 여겼다. 이제 결혼하게 된 술람미 여인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 중의 하나인 쌍태 노루 같은 유방은 어머니로서 자녀들을 위하여 몸과 마음의 모든 진액을 다 소비하는 희생적인 사랑을 내다보게 한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신체 부분을 들어 노래하면서 4:7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이 '흠'이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극찬한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과연 그 여인처럼 우리들도 그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어 본다. 무엇이 술람미 여인을 '흠'이 없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노래하게 만든 것인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술람미 여인은 절대적 의미에서 미인은 아니었다. 그는 궁중에 있는 다른 아름다운 여인들처럼 좋은 피부를 갖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서 흠이 없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가 있겠다.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에 비친 아름다움이다. 신부에 대한 칭찬의 노래는 사랑하는 자의 눈에 비친 모습이다.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각기 다른 미적 기준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객관적 기준을 넘어서 사랑한다는 이유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또 다른 미의 기준도 있다. 여기에서 솔로몬이 칭찬하고 있는 술람미의 아름다움은 사랑받는 여인이기에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결국 술람미는 사랑받는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사랑받는 아내, 사랑받는 남편이 되면 서로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건강함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솔로몬이 신부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노래 내용은 모두가 건강미를 포함하고 있다. 외모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육체와 삶이 아름다운 것이다. 건강은 외적인 것도 있지만 내면의 건강도 포함된다. 건전한 삶은 언제나 내면의 건전함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은 건강한 내면세계를 소유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될 수 있다. 우리들 모두는 건강함과 건전함의 아름다움을 가꿀 수 있다.
II. 4:9-15 신부의 매력과 미덕, 그리고 즐거움의 근원으로서의 신부
1. 신랑의 마음을 정복한 신부의 네 가지 매력 (4:9-10)
솔로몬은 자신의 마음이 신부에게 빼앗겼던 신부의 매력 네 가지를 고백하고 있다.
(1) 첫 번째 매력은 신부의 눈이었다. 이미 앞에서 신부의 눈을 비둘기 같은 눈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녀의 눈은 신랑의 마음을 온통 빼앗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2) 두 번째는 목의 구슬꿰미이다. 술람미의 목은 유달리 곧고 아름다웠다. 그런데 그런 목에 패물로 단장되어 더욱 돋보였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인간의 노력으로 더욱 돋보이게 꾸미는 것 자체도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3) 세 번째는 포도주보다 더 진한 사랑이다. 신부는 그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진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여기에서 포도주는 즐거움을 의미한다. 신부의 사랑은 세속적인 즐거움을 능가하여 신랑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고 힘이 있었다.
(4) 네 번째는 각양 향품보다 승한 기름의 향기이다. 신부가 훌륭한 향품으로 화장한 것이 솔로몬에게 매력적이었다는 것이다. 은은하게 풍겨나는 신부의 향품 냄새는 신랑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삶과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야 한다.
2. 신부의 세 가지 미덕 (4:11)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이 지니고 있는 미덕을 세 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1) 첫째는 술람미 여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꿀방울 같이 달고 아름다웠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성도의 기도를 의미한다.
(2) 두 번째는 혀 밑에 꿀과 젖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서 꿀과 젖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혀 밑에 꿀과 젖이 있다는 것은 곧 혀로 말씀을 전파하고 말씀을 증거함을 의미한다.
(3) 세 번째는 의복의 향기가 레바논의 향기 같다는 것이다. 레바논에서는 각종 향목과 향초가 자라기 때문에 레바논 향료는 당시 세계에서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 향기가 곧 그녀의 의복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복은 곧 행실을 의미한다. 향료가 주위 환경을 신선하게 하고 악취를 제거하듯이 의로운 행실은 곧 세상의 악함을 막고 신선하고 신령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3. 즐거움의 근원으로서의 신부 (4:12-16)
이 부분에서 신부 술람미 여인은 우물 혹은 흐르는 시냇물로 표현되고 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요소이다. 더구나 물이 늘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그 물은 어는 것보다 소중한 것이다. 이스라엘에서의 물로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 그것이다. 그런데 비는 겨울철에만 내리는 제한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땅 속의 지하수가 솟아나는 샘물은 시간에 제한 없이 항상 얻을 수 있다. 최초의 인간에게 주어졌던 낙원인 에덴동산은 큰 샘물이 솟아나 네 개의 강을 이룰 만큼 물이 풍부한 동산이었다. 물이 풍부하게 되면 자연히 풍성한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성경에서 물은 곧 축복을 의미하였다.
샘물은 또한 비유적으로 행복한 부부생활을 의미하였다. 잠언 5:15-19에 보면 샘물은 곧 결혼한 아내를 의미하며 그 샘의 물을 마시는 것은 그 아내와 더불어 즐겁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의미한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솔로몬은 자기의 신부 술람미 여인을 "잠근 동산" "덮은 우물" "봉한 샘"이라고 하였다. '잠근 동산'이란 일반에게 공개된 공원이 아니라 주인만이 출입할 수 있는 일종의 '비원'을 의미한다. 술람미 여인은 오직 솔로몬에게만 속한 여인이다. 그래서 마치 입구가 막혀있고 벽으로 둘러친 동산과 같이 아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스라엘의 동산은 침입자를 막기 위하여 담이 둘려져 있었다.
그녀는 또한 봉한 우물과 같아서 주인만이 그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결혼한 두 부부는 다른 누구에게 속할 수가 없다. 술람미 여인에게서 솟아나는 샘물은 남편을 위하여 고이 간직된 순결로서 오직 솔로몬만이 마실 수 있는 물이었다. 4:12에서 그 물은 솔로몬에게 갈증을 풀어주고 그를 완전하게 만족시켜주는 '생수'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행복의 원천이다. 솔로몬은 신부를 생각할 때마다 마치 생수를 마시듯 넘치는 새 힘을 얻는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서술할 때에 이 부분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된다. 아내가
물이 풍부한 동산에서 아름다운 각종 과일이 열리듯, 술람미 여인의 사랑 샘물에서는 여러 종류의 향기로운 꽃들과 과일들이 맺혀진다. 석류나무, 각종 아름다운 과수, 고벨화, 나도초, 나도, 번홍화, 창포, 계수, 각종 유향목, 몰약, 침향, 모든 귀한 향품 등등.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모두 12가지인데, 이를 크게 나누면 분류하면, (1) 아름다운 실과, (2) 각종 화초, 그리고 (3) 각종 향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사랑의 풍성함을 보여준다. 사랑 안에서 누리는 행복한 삶이 얼마나 풍성한 삶인가를 보여준다. 신앙 안에서 우리들에게도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23).
III. 결혼의 완성 (4:16-5:1)
결혼식은 신부의 신랑을 향한 초청(4:16)과 신랑의 초청 수락(5:1)으로 완성된다.
4:16은 결혼식과 관련된 부분에서 술람미 여인이 유일하게 말하는 대목이다. 그녀는 이제 솔로몬의 사랑 노래에 응답하고 있다. 그녀의 응답 속에는 솔로몬의 모든 사랑 요구에 기꺼이 응하겠다는 고백이 들어 있다. 술람미는 앞에서 이야기된 동산의 이미지를 그대로 연결시켜 서늘한 북풍과 따뜻한 남풍이 일어나 불어오라고 노래한다. 바람이 불면 자기의 신랑이 그녀에게서 풍겨올 것으로 찬양하였던 그 황홀한 각종 향기들이 사면으로 흩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을 위하여 고이 간진된 잠긴 동산이고 봉한 샘이었다. 이제는 자신의 가려진 순결이 남편에게 활짝 열리는 순간이다. 님을 자신의 동산으로 초대하여 탐스러운 열매들을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고 있다.
5:1은 신랑이 신부의 초청을 따라 그의 동산에 들어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내용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자신의 동산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기의 동산에 들어가 그녀의 것을 완전하게 소유하였다. 아내와의 결합은 동산에 몰약을 모아 두는 것보다 즐거웠고, 꿀을 먹는 것만큼이나 달콤하였고, 가장 좋은 포도주와 젖을 마시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신랑은 마지막 부분에서 결혼식에 참여한 하객들에게 결혼식 잔치에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할 것을 권하고 있다. 부부간의 사랑은 두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은밀하고 가려진 행복이지만 그 사랑의 행복감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와 나누는 깊은 사랑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이지만, 그런 신앙의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사랑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아가서 제5장 무관심으로 인한 사랑의 시련
아가서 전체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1:1-3:5까지가 구혼시절 즉 연애시절을 회상하며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면, 3:6-5:1까지는 결혼식을 배경으로 부르는 노래이다. 아가서의 마지막 부분인 5장-8장은 두 남녀가 결혼한 이후 더욱 성숙해진 부부생활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결혼 이후에도 연애 시절과 다름없이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더욱더 이 깊어진다. 결혼이 사랑의 절정이 아니라 오히려 성숙함이 더해지는 시작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무관심이 끼어들었고, 그런 이유로 인해 사랑이 단절되는 고통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 안에서 그러한 문제는 다시 해결되어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되어 간다. 이런 교제의 단절과 그 문제의 해결을 보여주는 내용이 아가서 5장과 6장이다.
I. 신부의 무관심과 남편의 부재 (5:2-8)
새 가정에 문제가 생긴 것은 신부의 방심과 무관심이었다. 이런 방심과 무관심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는 소원해진다. 술람미의 이러한 상태는 그녀가 꾼 꿈으로 표현되고 있다. 꿈속에서 남편은 문밖에 서 있었다. 남편은 밤새껏 긴 여행을 하느라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흠뻑 젖어 있었다. 남편은 문을 두드리면서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라고 사랑하는 아내를 부르고 있다. 남편이 사용하고 있는 아내에 대한 명칭은 모두가 결혼식장에서 불렀던 사랑 노래 속에 등장하는 명칭들이다. 이것은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변함없이 여전히 뜨거움을 보여주면서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문제는 아내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해준다.
술람미는 사랑하는 임의 간청을 냉담하게 대응된다. 술람미 여인은 예기치 않은 시간에 남편이 도착했다는 불평으로 문을 열어줄 수 없다고 냉대한다. 그녀는 이미 잠옷을 입고 있는데, 다시 겉옷을 일이 귀찮다고 대답한다. 낮에 묻은 발의 먼지를 깨끗이 닦았는데, 다시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하찮은 핑계인가. 사랑이 식어버려 상대방에게 무관심하게 되면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냉담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문을 열려고 애를 쓴다.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면서 잠긴 문을 열려고 노력한다. 결국은 굳게 닫힌 문을 열지 못한 채 사랑하는 임은 떠나버리고 만다. 그때에서야 술람미 여인의 마음에 남편을 향한 동정심이 생겼다. 그래서 마음을 고쳐먹고 문을 열어주었는데, 기대하였던 임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린 뒤였다. 남편은 문을 열면서 문빗장에 몰약을 칠해 두었다. 성경에서 몰약은 때로 사랑을 증진 시키는 것에 사용이 되었다. 그래서 부부의 침대에 몰약을 뿌리기도 하였다(잠 7:17). 아마도 사랑하는 남편은 자신의 애정 표시로서 문빗장에 몰약 칠을 했을 것이다. 그 몰약이 술람미의 손에 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술람미의 응답은 너무 늦었다. 그녀는 밖으로 뛰어나가 남편을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아무리 찾아도 그는 대답이 없고 어디에서도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밤거리를 순행하는 순찰병들은 술람미를 범죄자로 오인하여 그녀를 때렸다. 꿈속의 순행자들이 그녀에게 보여준 그런 포악한 행동은 곧 남편을 무시하고 그를 떠나보낸 부끄러운 죄에 대한 벌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결혼 전 꾸었던 꿈속에서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던 순행자들과는 대조적이다.
마침내 그녀는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임을 만나고 싶어 병이 들게 되었음을 전하라고 부탁한다. 이제는 병이 들 정도로 사랑하는 임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게 된 것이다. 전에 갖고 있었던 무관심은 사라졌고, 임의 가슴에 안기고 싶은 열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II. 술람미가 고백하는 사랑하는 자의 매력(5:9-16)
술람미의 부탁을 받은 예루살렘 여인들은 그녀가 찾는 사랑하는 임의 특징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술람미에게 남편에 대한 매력을 칭찬 형식으로 표현하는 기회를 주게 된다. 그런 기회를 통하여 그녀는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임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되찾을 수가 있었다.
술람미 여인이 자기 남편을 칭찬하는 노래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술람미는 자기의 남편이 외모가 준수하고 성품이 뛰어남을 자랑하고 있다. 남편은 "희고 붉어 만민 앞에 뛰어나다"는 것이다.
(1) 여기에서 '희다'는 것은 흰색의 피부를 의미한다. 이것은 궁궐에 사는 왕으로서의 고귀함을 보여준다. 또한 무죄성, 거룩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2) '붉다'는 것은 혈색이 건강하고 젊음을 보여준다.
(3) '많은 사람 앞에 뛰어나다'라는 것은 특출한 인격, 탁월한 성품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술람미는 자기 남편의 외모를 10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머리는 정금같고> 이것은 머리에 씌운 왕관을 연상하게 만든다. 정금은 왕권과 신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남편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같이 검다> 곡선미 있는 검정색 머리털은 기력이 건강한 젊음의 특징이며 생명의 충만한 기상을 보여준다.
<시냇가의 비둘기를 닮은 눈> 비둘기같이 온유하고 맑은 눈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꽃밭 같고 향기로운 풀 언덕 같은 빰> 솔로몬의 양 빰이 꽃밭과 풀 언덕처럼 장중하고 미려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안식과 평화와 조화를 이룬 멋이 있음을 보여준다.
<입술은 백합화 같고 몰약의 즙이 떨어진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아름답고 향기로움을 보여준다.
<손은 황옥을 물린 황금노리개 같고> 솔로몬의 손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 쥐어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손에는 온 천하의 지배권과 축복권, 그리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권한이 쥐어져 있다.
<아로새긴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한 몸> 아로새긴 상아는 왕궁에서 사용하는 귀중품이었다. 솔로몬의 몸을 아로새긴 상아에 비유한 것은 그의 균형 잡힌 체격을 보여준다. 특히 단단하게 다듬어진 근육을 연상시키는 묘사이다. 그의 몸이 청옥에 비유되는 것도 몸 전체를 흐르는 젊음의 기상을 보여준다.
<정금 받침에 세운 화강석 기둥 같은 다리> 인체를 건축물에 비유하여 다리를 화반석(=대리석) 기둥이라고 하였고 발을 정금 받침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솔로몬의 굳건한 지위와 왕적인 권위를 보여준다.
<레바논 같고 백향목처럼 보기 좋은 형상> 솔로몬의 체형은 레바논산처럼 장엄하고 높으며 수려하다. 그의 인품 역시 백향목처럼 뛰어나다.
<심히 단 입> 여기에서 입이란 말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즉 솔로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지혜롭고 고상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듣는 사람에게 달콤함을 느끼게 한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몸 전체를 10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결혼하여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두 사람은 잠시동안 방심하는 사이에 사랑에 문제가 생겼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곧 회복되었다. 그것은 그들의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잠시 동안 있었던 갈등을 통하여 두 사람은 더욱 성숙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아가서 제6장 사랑의 완전한 회복
I. 6:1-3 동산 안에 있는 사랑하는 자
1. (6:1) 아가서 6장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를 도와 사랑하는 임을 함께 찾아 나서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된다. 술람미 여인의 자기 남편에 대한 예찬은 그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확신은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확신 역시 불신자들에게도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
앞부분에서 술람미가 고백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해소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두 사람은 서로 헤어져 있는 상태이다. 감정의 골이 해소되었다 하더라도 완전하게 치유될 때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2. (6:2-3) 솔로몬은 향기로운 꽃들이 자라고 있는 자기의 동산으로 내려가 양떼들을 먹이고 있다고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임의 동산'은 다름 아닌 술람미 여인 자신이었다. 4:12-15과 5:1에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을 임의 동산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의미는 임이 이미 자신에게로 돌아왔음을 뜻한다. 이것은 그들의 헤어짐은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술람미 여인은 다시금 자신이 임과 하나가 되어 있는 사랑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네게 속하였구나" 사랑 안에서 상호 소유의 고백은 이미 2:16에서 술람미 여인의 열정적인 사랑 고백 속에서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순서가 바뀌어 있다. 앞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속하였다'이었지만, 여기에서는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다'로 되어있다. 이러한 순서적 차이는 감정의 괴리가 술람미 편에서 먼저 해소되었음을 보여주면서 또한 남자 쪽에서도 감정의 괴리가 극복되었다는 확신을 드러낸다.
II. 6:4-13. 솔로몬의 아내를 향한 칭찬: 화해의 표시
1. (6:4) 솔로몬은 다시 술람미를 극찬하는 말로 자신이 감정의 괴리가 해결되었음을 전하고 있다. 6:4에서 솔로몬은 자기의 아내를 디르사와 예루살렘, 그리고 기치를 높이 든 군대에 비유하고 있다. (1) 디르사는 세겜에서 북쪽으로 약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산위의 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요단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파라강의 물 근원이 있으며, 주변 경관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였다. 오므리 왕이 사마리아 성을 새로 지울 때까지 이곳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다.
(2) 예루살렘은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뛰어난 곳이었다. 이곳은 다윗 이후 통일 왕국의 수도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이 예루살렘처럼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3) 또한 솔로몬이 보기에 술람미는 기치를 높이 든 군대처럼 위엄이 있고, 또한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강한 매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2. (6:5-9) 이 부분에서 솔로몬은 자기 아내의 아름다움을 4:1-3에서 불렀던 칭찬으로 반복하여 다시 묘사하고 있다. 그때의 노래는 결혼식이 있었던 날 솔로몬이 신부를 위하여 불렀던 사랑 노래이다. 4장에서는 신부의 일곱 부위에 대한 칭찬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네 부분 곧 눈과 머리털과 이와 빰에 대한 칭찬으로 요약하여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다시 그때의 노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그 이후 지금까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지 않고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자기 주변에 60명의 왕비와 80명의 비빈들,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있는 수없이 많은 시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술람미 여인만이 그에게 유일한 여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술람미 여인은 어느 누구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매력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오직 술람미 여인만이 그에게 유일무이한 임이었다. 6:9에서는 주변의 다른 여인들도 술람미의 이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녀가 복된 여자임을 칭찬하고 있다. 비록 술람미가 솔로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지만, 그런 사랑을 주변의 누구도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축복을 빌어줄 만큼 순수하다는 것이다. 부부간의 사랑은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집중하는 사랑이다.
3. (6:10) 솔로몬의 술람미 칭찬에 맞추어 예루살렘 여인들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나선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네 가지 비유를 통하여 술람미의 청순하고 순결한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1) 아침빛 같이 뚜렷한 모습. 이것은 아침 여명이 밝아오는 동녘의 뚜렷한 모습을 연상시킨다.
(2) 달 같은 아름다움. 이것은 어두운 밤에 환하게 비취는 달빛을 연상시킨다.
(3) 해같이 맑은 모습. 이것은 하루 중에 가장 밝은 정오의 태양빛을 연상시킨다.
(4) 기를 높이 든 군대 같은 위엄.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를 높이 든 군대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위엄 있는 모습이다.
III. 6:11-13. 술람미가 솔로몬을 처음 만났던 때의 회고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솔로몬의 아내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결혼 전에 그녀는 단지 시골처녀에 불과하였다. 그녀는 어느 날 호도나무가 잘 자라고 있는지를 보려고 골짜기 들판으로 내려갔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포도나무에 순이 돋았는지 석류나무에 꽃이 피었는지를 알아보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그때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왕궁의 한 병거에 실려 왕궁의 왕비가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공로로 왕비가 된 것이 아니고 왕이 자기를 발견하고 자기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그런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술람미 여인이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고백하며 밝히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은 본래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이 자기를 선택하여 준 결과라는 것이다.
6:13절은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는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을 가까이 오라고 부르는 초청으로 끝나고 있다.
아가서 제7장 솔로몬의 마지막 사랑 노래
아가서 7장은 3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 째 부분(7:1-5)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10가지를 들어 노래하고 있다. 두 번 째 부분(7:6-9)은 솔로몬이 마지막으로 자기 아내를 예찬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세 번 째 부분(7:10-13)은 술람미 여인이 적극적으로 자기 남편 솔로몬을 사랑으로 초청하는 내용이다. 이 마지막 부분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가장 성숙하였음을 보여준다.
I.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 예찬(7:1-5)
1. 아가서 6:13에서 예루살렘 여인들은 술람미 여인을 보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를 갈망하였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이 자기들에게 돌아올 것을 네 번씩이나 반복하여 요청하였다. 7:1-5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가깝게 술람미 여인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내용이다. 그들은 술람미의 신체 중 열 곳을 예찬하고 있다: (1) 발; (2) 넓적다리; (3) 배꼽; (4) 허리; (5) 두 유방; (6) 목; (7) 눈; (8) 코; (9) 머리; (10) 머리털.
2.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의 아름다운 신체를 예찬하는 순서가 아가서의 다른 곳에서 소개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아가서 4:1-5에서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 중 일곱 부분을 들어 예찬하였는데, 거기에서는 머리에서 두 유방으로 내려오는 순서를 취하고 있다. 아가서 5:9-16에서는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늠름한 모습을 열 가지 신체 부위를 들어 노래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머리에서 시작하여 다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아가서 7:1-5에서는 예루살렘 여인들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발에서 시작하여 머리에 이르고 있다. 예찬하는 내용의 순서가 어떠하든지 간에 '다리에서 머리까지'라는 표현은 사람의 몸 전체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압살롬의 아름다움이 뛰어났었는데, 성경은 이를 가리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흠이 없다"(삼하 14:25)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완전히 병든 상태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사 1:6)라고 표현하였다.
3. 그런 점에서, 아가서 5장에서 보는 것처럼, 머리와 다리도 정금 같다고 하는 것은 곧 온 몸이 정금과 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가서 7장에서도 술람미 여인의 발을 '귀한 자의 딸'의 발로 표현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는 자주색 머리털은 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대 사회에서 자주색은 왕적인 권위를 상징하였다. 그렇다면 예루살렘 여인들이 노래하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은 곧 높은 신분에 속하는 여인임을 보여준다.
7:1의 서두에 언급되고 있는 '귀한 자의 딸'에서 '귀한 자'는 히브리어로 '나디브'이다. 이 용어는 '자원하여 기꺼이 예물을 드리다'라는 뜻의 동사 '나다브'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런 점에서 여기에서의 '귀한 자'는 이스라엘의 사회 제도권 안에 형성된 귀족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 즉 신앙적으로 성숙한 인물들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술람미는 왕족 출신이라기보다는 인격과 성품이 성숙한 여인임을 보여준다. 술람미의 그러한 고상하고 당당한 모습은 '목이 상아 망대 같다'는 표현과 '코가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같다는 표현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그런 술람미가 왕의 마음에 들게 됨으로 제도적으로도 왕궁에 속하는 지체 높은 여인이 된 것이다.
4. 예루살렘 여인들이 노래하고 있는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몸매 중에서 '넓적다리, 배꼽, 허리, 두 유방'에 대한 언급은 다분히 성적 묘사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결혼 초야에 사랑하는 자가 사용하였던 표현들(4:1-11)보다 훨씬 대담하다. 이러한 대담한 표현들은 결국 두 부부의 결혼생활이 더욱 성숙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적 묘사가 자유롭게 표현되는 것은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그만큼 건강하고 성숙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과 같은 내용이라 할 수 있다(창 2:25). 우리들은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놀라운 걸작으로 예찬할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육체적 아름다움이나 육체적 욕망도 다 같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들은 오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선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II. 솔로몬의 술람미를 향한 마지막 네 가지 예찬(7:6-9)
1.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를 향한 긴 예찬이 끝나면서 솔로몬은 자기 아내의 아름다움을 추가시키고 있다. 솔로몬은 여기에서 술람미의 큰 키와 유방, 콧김과 입을 칭찬하고 있다.
2. 솔로몬은 술람미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노래하기 전에 먼저 7:6에서 술람미와의 사랑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어찌 그리 쾌락하게 하는지'라고 표현하였다.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야페'이다. 이 표현은 여인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밝게 빛나다, 환하다'라는 뜻이다. 우리말에 '얼굴이 달덩이처럼 예쁘다'는 표현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화창하다'는 히브리어로 '나임'인데, 이 단어는 '즐겁다, 기쁘다, 기분 좋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상쾌함과 행복함을 표현하는 용어이다. 사랑은 또한 쾌락을 안겨준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로는 '아나그'인데,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부드러움, 섬세함, 달콤함'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안겨주는 아늑하고 달콤한 행복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들 주변에서는 쾌락과 행복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쾌락과 행복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행복은 영속적이고 삶의 보람에서 얻어지는 결과이며 그래서 삶의 원동력이 되는 감정이라고 한다면, 쾌락은 일시적이고 감각적이고 인간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결과적으로 인간을 쾌락의 노예로 만들게 한다. 두 부부 사이에 나누는 결혼생활의 행복은 결코 쾌락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다. 비록 육체적인 관계를 나누지만, 그것은 보다 큰 삶의 원동력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행복이다.
3. 솔로몬은 술람미의 키를 종려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종려나무는 곧게 자라는 나무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종려나무는 즐거움과 찬양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주변의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였다. 술람미 여인을 종려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은 늘씬하고 우아한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녀가 안겨주는 즐거움과 포용력을 보여준다.
솔로몬은 술람미의 유방을 종려나무와 포도 열매 송이에 비유하고 있다(7:7b-8a). 앞에서 솔로몬은 여인의 가슴을 '쌍태 노루 새끼'에 비유하였다(4:5). 비슷한 표현이 예루살렘 여인들의 술람미 예찬에서도 등장하고 있다(7:3). 종려나무의 열매 송이나 포도의 송이는 많은 작은 열매들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인의 가슴은 마치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처럼 여러 개의 가슴을 갖고 있다는 것인가? 여기에서 가슴을 종려나무와 포도 열매 송이에 비유한 것은 오히려 종려나무와 포도나무 열매가 지니고 있는 달콤함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많은 열매들 중에서 종려나무와 포도나무 열매는 다른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달다. 우리나라에서 포도는 신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지만, 일사량이 많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가 단 맛이 높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려나무 열매나 포도의 즙을 '꿀'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술람미 여인의 가슴은 마치 꿀처럼 달콤함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솔로몬은 또한 술람미의 숨결을 사과처럼 달콤한 냄새에 비유하고 있다(7:8b). 과실 중에서 사과는 그 향기가 가장 뛰어나다. 아가서 2:5에서 사과는 술람미 여인을 시원케 하는 솔로몬의 사랑에 비유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술람미의 숨결이 솔로몬에게 향기로움을 안겨주는 향기로운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술람미의 입은 최상급 포도주에 비유되었다(7:9).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포도주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시 104:15). 포도주가 사람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의 기분이 상쾌하게 만드는 것처럼, 사랑은 사람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요 쾌락이라는 것이다.
아가서에서 포도주는 두 남녀의 사랑에 비유되고 있다(1:4; 5:1; 7:2). 1:2과 4:10에서는 두 남녀의 사랑이 포도주보다 진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런데 7:9의 후반부에서는 화자가 바뀌어 술람미가 솔로몬에게 응답하는 것으로 나온다. 솔로몬이 좋은 포도주 같은 입이라고 노래하자 여자는 이 포도주가 미끄럽게 흘러내려 사랑하는 자의 입을 움직인다고 노래한다. 서로가 같은 주제를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고백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주고받는 응답의 형식은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성숙하여 생각마저도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보여준다.
III. 술람미의 사랑으로의 초청(7:10-13)
1. 7장의 마지막 부분인 세 번째 부분은 술람미가 적극적으로 자기 남편인 솔로몬을 사랑으로 초청하는 내용이다. 아가서 전체에서 볼 때, 이 부분에서는 처음으로 술람미가 직접적이고도 분명하게 성적 요구를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그러한 열정이 간접적으로 표현되었지만(예를 들면, 1:2, 2:6 등에서). 이제는 남편의 사랑에 이끌려 먼저 그런 구애를 요청할 수가 있었다.
2. 술람미의 사랑으로의 초청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에게 속하였음을 고백하는 노래로 시작된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이런 고백은 2:6과 6:3에 이어 세 번째 나오고 있다. 앞의 두 경우에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다"고 하였지만 여기에서는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술람미이 솔로몬의 사랑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모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명사 '테 슈카'는 이곳과 창세기 3:16 두 곳에서만 사용되었다. 창세기 3:16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사모하게 되는데, 그것은 범죄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가서 7:11에서는 오히려 남자가 여자를 사모하고 있다. 이것은 두 남녀의 사랑이 편중된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두 사람이 인격적으로 동등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범죄의 결과로 주어진 형벌도 두 사람의 사랑 안에서 해소되었음을 드러내준다.
3. 술람미는 조용한 시골로 함께 내려가자고 남편을 조른다. 술람미가 그렇게 시골로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것으로도 방해받지 않은 채 마음껏 자신의 사랑을 임에게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7:12). 한적한 시골은 복잡한 왕궁과는 달리 여러 사람의 눈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또한 자연의 경치를 낭만적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둘만의 사랑을 은밀하게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실제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 모두는 한적한 자연 속으로 함께 가 둘 만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 것이 삶의 활력을 위해서나 두 사람의 사랑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신앙적으로도 주님과의 조용한 만남의 시간을 정규적으로 가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주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과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마음 놓고 함께 유숙하자고 요청한다(7:11). 그리고 그곳에서 포도의 움이 돋고 꽃술이 피었는지, 그리고 석류꽃이 피었는지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사랑을 임에게 드리겠다고 다짐한다(7:12).
꽃이 피는 봄은 보편적으로 사랑을 상징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사랑을 나누었던 연애시절도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치고 지면에는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었다. 성숙한 두 부부로서 이들은 다시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던 봄 들판으로 나가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들이 유숙하는 문에는 합환채 향기가 가득차고, 임에게 드린 과일이 준비되어 있다(7:13).
합환채는 고구마과에 속하는 식물인데, 5월경이면 향내가 짙은 꽃이 피고 자두 모양의 열매가 맺힌다. 이 열매는 성욕을 자극시키는 최음제 역할을 하였고 또한 불임을 치료하는 약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 30:14 이하에 의하면, 맥추 때에 레아의 아들 르우벤이 들에서 합환채를 구해왔다. 그리고 라헬은 그 합환채를 얻는 대가로 야곱이 하룻밤 레아의 방에 들어가 동침하도록 조처한 적이 있었다.
합환채 향기가 가득하고 열매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은 술람미가 솔로몬의 품에 안겨 깊은 사랑을 경험하고픈 마음과 몸이 준비되어 있음을 열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서로의 사랑을 격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아가서 제8장 사랑의 본질과 위력
아가서의 마지막 장인 제 8장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부분은 7장과 계속 이어지는 내용으로 임과 항상 가깝게 있으면서 사랑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싶은 술람미의 열정을 보여준다(8:1-4). 두 번째 부분은 아가서의 결론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사랑의 본질과 위력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8:5-7). 세 번째 부분은 아가서의 끝맺음(에필로그)으로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설명한다(8:8-14).
I. 술람미의 열정적 사랑(8:1-4)
1. (8:1) 술람미의 임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길거리에서도 입을 맞추고 싶은 마음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솔로몬이 차라리 오라버니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당시 사회에서 공공연한 애정 표현은 가족 간을 제외하고는 지탄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베두윈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같은 어머니를 가지고 있는 남자 형제들이나 남자 사촌들만이 공중 앞에서 여자 형제에게 입을 맞출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래서 술람미는 솔로몬이 오라버니가 되어 어디에서나 입을 맞출 수 있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열정이 술람미에게 있었다.
2. 술람미 여인의 열정적 사랑은 임을 자기 어머니의 집으로 이끌어 들여 그에게 석류 즙으로 제조한 향기로운 술을 주어 마시게 하겠다는 것에서 잘 표현된다. 석류나 즙 등은 사랑의 중요한 상징들이다. 고대 이집트의 사랑 시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의 가슴을 석류 열매로 표현하였다. 술람미는 임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매혹적이고 낭만적인 무드로 그려내고 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욕구는 3절에서 임의 팔에 안겨 함께 동침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난다.
3.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사랑하는 자가 원하기 전에는 흔들어 깨우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한다. 이 내용은 2:7과 3:5에서 이미 두 번이나 반복하여 언급되었다. 다만 여기에서는 '노루와 들 사슴'이 생략되어 있다. 이 부탁 속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있다. 하나는 사랑의 자연성이다. 사랑은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서둘러서는 안 되고 있는 그대로 마치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그 자체가 사랑의 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가장 완전하고 가장 좋은 길이다. 또한 이 부탁 속에는 술람미의 임만이 자기의 사랑을 흔들어 깨울 수 있다는 확신이 숨어 있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녀의 사랑을 다룰 수가 없고 오직 솔로몬만이 자기의 사랑을 주관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II. 사랑의 본질과 위력(8:5-7)
지금까지 아가서 내용은 쉽게 구별되는 등장인물들의 사랑 노래와 예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결론 부분에 해당되는 본문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구분이 무너지고 등장인물들의 대화도 그 템포가 빨라져 그 내용이 즉시 바뀌고 있다. 대화의 내용 역시 길지 않고 짤막하다. 이러한 인물들의 빠른 전환과 간략한 대화 내용들은 서로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1. 8:5a 은 예루살렘 여인들의 질문이다.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오는 여자가 누구인가?" 이 질문은 3:6에서 결혼행렬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던진 질문과 비슷하다. 그 때에는 시골마을에서 예루살렘 수도를 향하여 올라가던 신부의 행렬을 보고 던진 질문이라고 한다면, 여기에서는 왕궁을 떠나 시골 고향집으로 돌아오는 신부를 보고 던지는 질문이다. 결혼식을 위한 행렬에서도 그러했듯이 지금 역시 술람미는 사랑하는 솔로몬의 품에 안겨있다. 결혼식 때와 유사한 상황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결혼식 때나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보여준다.
2. 8:5b은 솔로몬이 자기 아내에게 한 말이다. 여기에서 솔로몬은 자기 집 근처에 있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잠들어 있는 술람미를 깨워주었던 일을 상기시키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솔로몬이 술람미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하는 내용일 것이다. 첫 사랑이 잉태된 곳은 그들의 사랑이 신실하게 지속되는 한 언제나 친근하게 기억되는 곳이다. 신앙적으로도 영적인 고향이 있다. 그리스도와 만났던 장소, 그곳이 항상 우리들의 신앙을 새롭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영적 고향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 복음의 사도가 되었다. 사도행전에는 세 번이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 반복하여 소개되고 있다. 이것은 그 만큼 그리스도를 만난 사건과 그 장소가 바울에게 소중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3. 8:6-7은 술람미가 결론적으로 고백하는 사랑의 본질과 위력에 관한 것이다. 이 내용은 아가서 전체의 요약이자 절정이다.
(1) 솔로몬을 향한 술람미의 요구(8:6a):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술람미는 솔로몬이 자신이 최대의 보물이 되기를 소원하고 있다. 구약시대 인장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귀중한 소유물에 대한 소유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솔로몬의 인장과 같이 마음에 품고 팔에 두어달라는 요청은 곧 솔로몬의 생각(마음)과 행동(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유물이 되기를 바란다는 요구이다.
(2) 사랑의 위력 (8:6b-7a): 사랑은 죽음같이 우주적이고 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배타적이고 소유욕이 강하다. 마치 무덤이 모든 것을 쓸어가듯이 사랑하는 이의 질투는 대적할 상대가 없다. 그래서 사랑의 투기는 무덤 같다고 하였다. 질투는 임의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절대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사랑은 타오르는 불처럼 격정적이다. 사랑은 많은 물과 강처럼 정복할 수 없고 끈질기다.
(3)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다(8:7b). 그러므로 사랑은 온 가산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다. 오히려 돈으로 사랑을 사려는 어떤 행위도 비난을 받게 된다. 사랑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면, 사랑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 사랑은 주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술람미 여인에게 솔로몬의 사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어진 은혜요 축복이었다.
III. 에필로그(끝맺음):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8:8-14)
아가서 8장의 마지막 내용인 세 번째 부분은 술람미 여인에게 그렇게 소중한 사랑이 어떻게 주어졌는가를 설명하는 에필로그(끝맺음)이다. 그 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1. 술람미가 어렸을 적에 오라버니로부터 보호를 받았다(8:8-10).
2. 솔로몬과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을 회상한다(8:11-12).
3. 사랑은 결코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유지된다(8:13-14).
1. 술람미가 어렸을 때의 회상(8:8-9)
화자는 술람미의 오라버니들이다. 화두는 누이동생인 술람미가 청혼받는 날에 오라버니로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이다(8절). 고대시대 근동지역에서는 누이동생의 결혼에 오라버니들이 개입하는 것이 잘 알려진 사회관습이었다. 그런 예는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라반이 리브가의 결혼문제에 깊이 관여한 점이나 야곱의 아들들이 누이동생 디나의 결혼문제에 개입한 것이 대표적이다(창 24:29-60; 34:6-17).
본문에서 오라버니들은 술람미가 유방이 없는 작은 누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유방이 없다는 것은 성적으로 미성숙하여 아직은 결혼적령기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작은 누이에게 결혼문제가 생길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내놓은 방책은 성벽에 은 망대를 세우고 문에 백향목 판자를 두르겠다는 것이다(9절).
여기에서 술람미는 성벽과 문에 비유되고 있다. 성벽은 도시를 외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이라고 한다면, 문은 성안으로의 통행을 의미한다. 전자가 방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후자는 수용을 의미한다. 술람미는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견고성을 지니고 있었다. 오라버니들은 그런 그녀의 성벽에 은 망대를 세워주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견고한 인격과 도덕성 위에 고귀함을 더해주겠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망대는 은으로 되어 있어서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술람미에게는 견고한 성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출입을 가능하게 하는 문이 있다. 견고함 속에 담긴 부드러움이다. 그런 유연함이 혹시라도 나약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오라버니들은 그 문에 백향목 판자를 둘러주겠다는 것이다. 당시 백향목은 가장 강하면서 가장 비싼 재목이었다. 그렇듯 술람미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견고함을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부드러운 수용성을 지니고 있었다.
오라버니들의 자상한 배려에 대하여 술람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면서 배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10절). 그 내용은 "나는 성벽이요 내 유방은 망대 같다"이다. 오라버니들은 술람미가 유방이 없는 작은 누이라고 생각하였지만, 자신은 오히려 성벽같은 당당함과 망대 같은 유방의 성숙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곧 결혼하기에 적합도록 성숙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은 "그가 보기에 화평을 얻은 자같다"고 고백한다. 곧 신랑인 솔로몬의 마음을 그가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2. 솔로몬을 처음 만났을 때의 회상(8:11-12)
솔로몬이 술람미를 만났던 곳은 포도원이었다(1:6; 2:15). 아가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솔로몬은 바알하몬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 곧 소작인들에게 맡겨두었다. 포도원을 지키는 소작인들은 주인인 솔로몬에게 은 천을 바쳤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소득으로 이백을 얻었다. '다수의 주인'이라는 뜻의 '바알하몬'이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다만 술람미의 고향인 수넴 근처 어느 곳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솔로몬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들은 다름 아닌 술람미의 오라버니들일 수도 있다.
본문에서 강조하는 점은 술람미 개인에게 속한 포도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포도원은 솔롬몬이나 솔로몬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들의 범위를 벗어나 있다. 곧 그들이 지켜줄 필요가 없는 포도원이다. 이것은 술람미의 인격이나 재능이나 미모가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사랑 안에서 사랑하는 자와 하나가 되었지만, 그런 사랑 안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아 4:12)이며, 그녀만이 그곳을 돌보며 가꾸는 주체이다.
3. 결코 퇴색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력하게 유지되는 사랑(8:13-14)
앞부분에서 강조되었던 포도원은 이제 동산으로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면서 술람미는 '동산에 거주하는 자'로 명명된다. 동산은 다양한 종류의 과수들이 자라는 과수원이면서 노루와 어린 사슴들이 뛰노는 풀밭 언덕이기도 하다. 술람미가 그런 동산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살뿐 아니라 그런 자연의 한 부분으로 참여하고 있다.
솔로몬은 그의 동료들도 술람미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다고 말한다. 곧 자신의 동료들마저도 술람미의 목소리에 매료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만큼 술람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열망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소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콜'은 '목소리'로서 그 속에 담긴 의미가 아니라 소리 그 자체를 의미한다. 무슨 소리라도 그것은 술람미의 존재 자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사랑의 고백이다.
아가서의 마지막 절은 솔로몬의 사랑 고백에 대한 술람미의 응답이다. 술람미는 솔로몬을 '내 사랑하는 자'라고 지칭하면서 그에게 빨리 달려오라고 요청한다. 그 모습은 향기로운 산 위 풀밭을 달리는 노루나 어린 사슴과도 같다. 그것은 나이가 든 뒤에도 여전히 사랑의 열정이 시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긴장감은 사라지고 사랑의 즐거움을 맘껏 즐기는 두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