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7(주일) 주일낮예배
제목: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눅17:26~35)_동탄명성교회 정보배목사
https://youtu.be/p1gjBfRXPFA [또는 https://tv.naver.com/v/40877115]
1. 들어가며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이 시대에 사탄 마귀가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것을 지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을 살아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정확한 답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징조를 통해서 그리고 하늘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상황을 점검해 보았을 때 그 시기가 매우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재림하시는 그날을 두고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그것은 바로 그날이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 말씀에 이어서 한 가지 말씀을 덧붙이셨으니 그것은 그날을 준비하는 자들은 꼭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롯의 때를 언급하신 이후에 굳이 롯의 처를 더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인가? 여기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지금 우리가 재림의 어느 시점에 와 있는가를 살펴보고,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다시 한번 새기고자 한다.
2.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주님의 재림의 어느 시점에 와 있을까?
사실 최근 요즘 들어와서 부쩍 자연 재앙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사실 2년 6개월 전만 해도 온 세상은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온 세상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서 중국과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에 '지진'과 '홍수'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9일(토)에는 아프리카의 북부에 위치한 '모로코'에서 강도 6.8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 나라의 인구는 약 3,700만 정도 되는데,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나라다. 그런데 이 지진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2,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건물 더미에 묻혀 죽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9월 10일(일)에는 바로 그 옆의 옆의 나라인 리비아(인구 700만 명)에 강력한 열대성 폭풍이 몰아친 후 곧바로 대홍수가 일어났다. 그래서 '데르나'라는 도시 위쪽에 위치한 2개의 댐이 갑자기 무너지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2년치의 폭우가 한꺼번에 내렸던 것이다. 그러자 멀리 있던 상류댐이 수압을 견디지 못해 터져 버렸고, 이어서 연쇄적으로 아래의 하류 댐도 터졌는데, 어찌나 물살이 셌든지 7m 높이의 물살이 도시를 휩쓸고 지나가고 말았다. 그러자 실종자 1만 명을 포함하여 2만 3천 명이 한꺼번에 죽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지금도 바닷가에 시체가 둥둥 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 나라도 역시 이슬람을 믿는 인구가 97%나 된다. 그렇다면 이때 죽은 영혼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런데 이것 뿐만 아니다. 지금도 전쟁 중인 나라가 있다. 작년 2월 24일에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벌써 570일을 넘어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두 나라만의 전쟁이 아니라 이제는 국제전으로 확대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전쟁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나라도 있으니, 중국이 대만을 2027년에 침공한다고 이미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안전한가? 100년마다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해 왔다고 하는데, 2025년이 100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마그마의 활동으로 인해 백두산 천지의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형편이다. 이 화산이 폭발하면 폼페이 화산의 50배의 폭발력으로 인해, 화산재가 하늘을 뒤덮으면, 항공대란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지구의 온도까지 내려갈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요한계시록 6장에서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자연의 대재앙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24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재앙에는 이렇듯 '자연 재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재앙'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짐승인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의하여 성도들이 핍박당하고 죽는 일이다(마24:9~13).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의 때에 사탄 마귀는 무저갱에 갇혀 있는 상태다. 하지만 마지막 환난이 시작되면 사탄 마귀가 무저갱에서 올라온다. 그러면 순교자의 숫자가 채워질 것이다. 그러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다. 누구는 마지막 대환난이 7년 정도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3년 반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지만, 실제는 그것보다는 짧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재앙은 견딜 수 없는 재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24:22). 고로 자연 재앙이 끝나면 아주 짧은 사람 재앙이 일어나면서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다.
특히 지금 천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날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는 마지막 때가 되다 보니, 영안이 활짝 열려 천국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안이 활짝 열린 분들의 간증을 들어 보면, 지금 천국의 상황은 매우 긴박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갈 성도의 숫자가 얼마나 될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기는 자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는데, 채워져야 할 144,000명의 좌석이 거의 다 찼기 때문이다. 이 좌석이 차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주의 재림의 바로 앞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상황을 어떻게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제자들이 인자의 날 하루 곧 주님의 재림의 날을 묻는 질문에 대답하셨는데, 그날은 '노아의 때'와 같고,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눅17:26~27,28~30). 그럼 이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인가? 이 말씀은 정리해 보면,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다음과 같은 3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그날은 모든 것이 끝나는 심판의 날이라는 것이다. 노아의 때는 물로 심판하여 주님께서 세상을 끝냈으며, 롯의 때는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여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4개의 성들을 다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다 죽는 날이 그날들이었던 것이다. 고로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 되면 모든 인류는 다 죽게 될 것이다. 살아서 부활체를 입고 지구를 떠나 주님께 불려 올라가지 않는 한 모든 인류는 다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그날에 사람들이 두 개의 갈림길로 갈라지게 되는데, 그날에 갑자기 멸망당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날에 구원받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날 갑자기 멸망에 처할 사람은 주님의 심판의 날을 전혀 예상치 않았고 그날을 대비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날이 올 줄을 알고 잘 대비하는 사람들은 그날이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다. 전자는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노아와 롯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인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날이 될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으니, 노아의 때처럼 그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갈 것이라고 하셨고, 롯의 때처럼 그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이 올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다가 그날을 맞이한다는 말씀이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때가 되면 전도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날이 될수록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노아의 시대에 과연 새로 구원받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는가? 없었다. 노아의 시대에 노아의 가족 외에 구원받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아는 전도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아니다. 베드로후서 2:5의 말씀에 따르면 그때 노아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벧후2:5). 하지만 노아는 당시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노아는 얼마 동안 회개를 외쳤던 것인가? 그것은 적어도 70~80년 정도는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짓고 숨쉬는 동물들을 그곳에 불러들이고, 노아의 식구들 모두로 하여금 그 방주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을 때, 노아에게는 아내와 더불어 아들 셋과 자부들 셋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아가 500세 된 이후에 아들들을 낳았다고 했으니, 아들들이 장성하여 장가갔을 것을 계산하면, 노아의 방주는 70~80년 정도 지은 것이다. 그런데도 단 한 명의 열매도 맺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마지막 때에는 전도가 안 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것은 롯의 시대도 마찬가지였다. 롯도 그 성을 멸망시키러 온 천사들로부터 그 성을 불과 유황으로 멸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서둘러 그 성을 빠져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자신의 처와 미혼의 두 딸들을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이미 시집보낸 두 명의 딸들과 사위들이 걸렸다. 남아 있으면 그 성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롯은 그 밤에 당장 딸네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위들에게 말했다. 곧 있으면 이 성이 멸망당할 것이니, 지금 당장 함께 성밖으로 피신하자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두 사위들은 장인의 말을 들었을 때 그말을 농담으로 여겼다(창19:14). 이는 마지막날이 되면 그날이 왔다는 말을 사람들이 곧이듣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밤새도록 이야기했지만 헛수고였다. 그러자 이제 동이 터오려는 시각이 되자 천사들은 롯을 재촉하였고, 그는 아내와 두 딸들의 손을 붙잡아 성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자 불과 유황이 하늘로부터 비 오듯 쏟아져 온 성이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그럼 왜 롯은 그 성의 멸망 중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 롯을 위해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이었다(창19:29). 그렇다. 누군가를 위한 중보기도는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다. 그것은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기 전에 역사하는 것이다.
4. 왜 주님께서는 종말의 때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롯의 처를 계속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는가?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한 가지 더 중요한 당부를 하셨다. 그것은 '롯의 처를 기억하고 있어라'로 하신 것이다(눅17:32). 이 명령은 현재 명령법으로서 한 번만 기억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것을 기억해서, 그것을 상고해 보고 회상해 보고 깊이 묵상하라는 뜻이다. 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인가? 그것은 이 말씀이 마지막 때에 구원에 관한 매우 중대한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이렇다. 롯의 처는 그날 분명히 천사의 손에 이끌려 멸망성으로부터 빠져나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날 멸망성은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려와서 불태워 없어졌다. 그러니까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때 노아의 처는 비록 불과 유황이 타는 심판은 면했지만, 주님의 심판을 완전히 면한 것이 아니라 맨 마지막에 가서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랬다. 그녀는 천사가 그녀에게 자비를 베풀었을 때에 그녀에게 들려준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그곳에 왔던 천사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여호와의 천사들로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었다(창19:13). 그러므로 천사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때 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들에게 과연 무엇에 주의하라고 했는가? 그것은 도망하면서 성밖의 광야를 지나갈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그 광야에 머물러 있지도 말라고 했다. 하나님이 준비해 두신 도피성 곧 안전한 피난처인 소알성까지 곧장 가라고 했다(창19:17). 그래야만이 그들의 생명이 보존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롯의 처는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는가? 그녀에게서 즉시 생명이 취해지고 말았다. 그대로 소금기둥으로 변하면서 그녀가 멸망당했기 때문이다(창19:26). 왜냐하면 그녀는 그 순간까지도 소돔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을 당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을 롯의 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은 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들이라도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눅17:31).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있는 세간의 물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의 처는 남겨두고 떠난 자기의 집에 대한 미련을 마저 접지를 못했다. 그것이 어찌되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려고 했다. 그래서 뒤를 돌아다보았는데, 그러자 그녀의 생명이 그녀에게서 떠나고 만 것이다. 그녀가 비록 멸망성인 소돔성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성밖의 광야에서 그만 죽임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신 말씀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첫째,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메시지를 듣고 구원받을 사람은 매우 적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소돔성에 살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날 불에 타 죽었으며, 롯의 8명의 가족들 중에서 두 명의 딸들과 두 명의 사위들이 다 불에 타 죽었기 때문이다. 그날 구원받은 자는 오직 롯의 집 안에 살고 있던 그의 가족들 뿐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전적으로 주님의 자비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구원받지 못한 채 구원에서 탈락되는 자가 중도에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로 '롯의 처'인 것이다. 롯의 아내는 그날 분명 멸망성에서 빠져나왔었다. 하지만 영원한 피난처를 향해 가다가 그만 중도에 죽고 말았다. 왜냐하면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만 뒤를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이 사 둔 여러 채의 집들이 아까웠을 것이다. 그리고 은금보석과 재물들과 온갖 옷들과 가재도구들도 아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대한 욕심과 미련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것들을 마음에서 온전히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가 비록 일차적으로 구원을 받았을지 몰라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5. 오늘날 롯의 처가 가르쳐 주는 구원에 관한 중대한 교훈은 무엇인가?
그렇다. 한 번 주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세상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자는 결국 구원에서 탈락하고 마는 것이다(고전9:27, 빌2:12, 계3:5).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자라 할지라도 그날에 버림받을 자가 있다는 것을 롯의 처의 예표를 통해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 있을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눅17:34~35). 그것은 두 명의 남자들과 두 명의 여자들에 관한 비유다. 두 명의 남자들이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밤에 한 침대에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한 남자는 데려감을 받지만, 딴('헤테로스') 남자는 버려둠을 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에 두 명의 여자들이 낮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둘이 같이 하나의 맷돌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겠는가 싶다. 그런데 한 여자는 데려감을 받지만, 딴('헤테라'='헤테로스'의 여성형) 여자는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비유는 밤과 낮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이자, 그날까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쉬는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하지만 그날 어떤 이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휴거되겠지만 그날에 그만 버림을 받는 자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는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들을 가리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 사람 안에 딴 생각으로 가득 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천국, 영혼 구원, 회개, 말씀에 순종이 들어 있지 않고, 오직 세상 것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는 마음만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마치 롯의 아내처럼 말이다. 몸은 지금 성밖으로 나와서 소알성으로 피신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성 안의 자기의 재산과 재물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의 3가지 비유(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열 처녀 뿐만 아니라 달란트 받은 종들도 다 믿는 이들로서 그들은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들이었고, 또한 주님의 것을 맡은 주님의 종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의 시간에 둘은 크게 서로 갈라지고 만다. 열 처녀 중에서, 이미 등은 가지고 있었으나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오는 바로 그날에 버림을 받았고, 깨어서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성안으로 신랑과 함께 들어갔기 때문이다(마25:1~13). 그리고 달란트를 받은 주의 종들 가운데서도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악하고 게을렀기에, 주인이 되돌아와 결산하던 바로 그날에 쓸모없는 종이 되어 바깥 어둔 데로 던져져서 거기서 슬피 우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마25:14~30). 고로 미련한 다섯 처녀와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다 이미 주님의 은혜로 일차적인 구원은 받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시는 바로 그날에 구원에서 탈락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더불어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에 나오는 '염소'는 주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의 외식 때문에 결국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멸망의 사람을 예표한다. 이는 마치 롯의 말을 듣고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두 사위들과 딸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가 있다.
6. 나오며
지금은 대체 어느 시대인가? 우리는 대체 어느 경점에 와 있는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것은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전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그때가 되면 가족을 구원하기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롯의 경우를 보라. 그의 8명의 식구들 가운데 단 4명 만이 멸망을 피했다. 그렇다. 그때가 되면 전도가 안 되어 구원받을 자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해야 한다. 대환난의 날이 닥치기 전에 말이다. 그때가 되면 사탄이 직접 무저갱에서 올라와서 활동하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핍박과 환난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자기의 믿음 지키기도 어려운 시기가 바로 그때가 된다. 그러므로 전도해야 한다면 지금 전도해야 한다. 가족을 구원해야 한다면 지금 귀신으로부터 가족을 건져내야 한다. 가족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 지금 조상 죄를 회개하고 중보기도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가서 아무리 외치고 설득하고 하소연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울려면 지금 울어야 한다(눅23:28). 지금 우는 자는 그때에 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시기야말로 폭풍전야와 같은 시기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내 이웃과 친척과 내 가족을 구원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인 것이다. 전도가 가능한 날이 많이 남아 있다고 판단하지 말라.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 중보기도 해 줘야 한다면 지금 중보하라. 그리고 누군가를 전도해야 한다면 지금 전도하라. 그리고 가족의 영혼을 위해 울어야 한다면 지금 울라.
2023년 09월 17일(주일)
정보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