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헬라어 로마어 아람어에 능통한 자요, 베냐민지파 사람으로서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유대교 정통 바리새파였으며, 랍비후보생으로서 가장 총망받던 바울은 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만을 전하겠다고 작정했을까?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놀라운 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적어도 7가지의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다. 이번에는 그걸 찾아 여행을 떠나보기로 하자.
일 시 | 제 목 | 성경말씀 |
2013.3.1.(금) 새벽5시, 6시 |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 고전2:1~5(신약 265면) |
2013.3.2.(토) 새벽5시, 6시 | 십자가는 죄를 없이하는 도구 | 히10:11~14(신약 363면) |
2013.3.3.(일) 새벽5시, 6시 | 감추어진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십자가 | 요21:1~17(신약 184면) |
2013.3.4.(월) 새벽5시, 6시 | 영원한 생명을 해방한 십자가 | 요12:24(신약 168면) |
2013.3.5.(화) 새벽5시, 6시 | 치유와 축사는 온전한 복음의 삼분지일 | 눅13:32~33(신약 119면) |
2013.3.6.(수) 새벽5시, 6시 |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무지와 가난의 저주 | 사53:7, 고후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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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 | [찬송] 찬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
| [말씀] 고린도전서 2:1~5(신약 265면) | 2013.3.1(금) |
1.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사건
기독교 복음을 집대성한 세계 최고의 학자가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왕이었던 사울의 후손으로서 베냐민지파 사람 사도 바울(paul)이라는 인물입니다(~A.D.67/68).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서 유대교에 정통한 바리새파 율법주의자였습니다(행26:5. 빌3:5~6). 다시 말해 그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성경에 능통한 율법 전문학자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져버렸습니다. 그는 그날부터 복음에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친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직전까지 그는 참으로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던 랍비후보생으로서, 남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원래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후손으로서 소아시아의 길리기아 성(城)의 다소 시(市)에서 태어난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행22:3). 그는 헬라어와 라틴어와 아람어에 능통한 자로서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행22:28). 그러므로 로마가 통치하고 있는 지역이라면 어디든 여행이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그가 어떠한 못된 짓을 하다가 체포된다 하더라도 법정이 열려 재판을 받기 전까지는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그의 몸에 손을 댈 수가 없는 권세있는 자였습니다. 심지어 천부장이나 로마의 총독까지도 그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는 가장 종교적인 도시이자 가장 석학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는 예루살렘에 일찌감치 유학을 와서 공부하고 있었기에 오늘날까지 알려진 유대인 랍비 가운데에서도 가장 존경을 받는 훌륭한 선생님 중의 한 분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행22:3).
그런데 그가 고린도교회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당시 십자가는 사형집행도구로서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십자가형은 로마에서 실시하는 사형방법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의 하나였습니다. 사람 전신의 옷을 벗긴채 그의 양팔을 벌려 산 채로 십자가에 못박아 놓고는 숨이 끊어지기까지 두는 사형법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A.D.315년에 가서 비로소 폐지되었는데 로마인들조차도 너무나 비인간적인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그의 평생의 소원을 밝히는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 작정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체 십자가상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십자가에서 못박힌 그리스도가 누구시기에 사도바울은 자신이 가진 모든 특권과 재능과 학벌과 신분을 다 배설물처럼 여기게 되었을까요?
그가 복음에 눈이 닫혀 있을 때까지 그도 역시 다른 유대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 취급했습니다. 사람이 어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또한 죽은 자가 어찌 영으로 사람 속에 들어와 자신을 믿는 자들을 인도하고 가르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염병처럼 나쁜 것이기에 초기에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잡아다가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그 일이 자신을 출세하게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는 여겼습니다. 그 일은 정말 당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을 매우 기쁘게 했습니다. 그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없애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스데반이라는 사람을 죽일 때에는 가편투표까지 했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없어진 줄 알았던 예수께서 그의 눈 앞에서 나타나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이시더니 그의 닫혔던 눈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행26:15-18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그는 비로소 몇 년 전에 예루살렘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던 예수님이 누군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이 얼마나 인류에게 엄청난 영향을 가져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사도바울은 율법에 예언된 메시야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을 듣고 정리한 다음, 성령께서 자신에게 깨닫게 해 준 사실들을 편지로 써서 소아시아와 유럽에 보냈습니다. 그 책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책(로마서~빌레몬서)이 되었습니다.
2. 사도바울이 깨달은 복음의 요체
사도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의 가르침으로 깨달은 사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율법의 의로운 모든 요구를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이 말하고 있는 모든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심으로 인류를 모든 죄와 상처와 견고한 진과 온갖 저주로부터 구원하셨던 것입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것은 우연히 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명기 21:22~23에 기록되어 있듯, 인류의 온갖 저주를 없애기 위한 가장 완전한 율법의 성취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받게 될 온갖 저주들로부터 댓가를 치르기 위해 그분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요19:28-30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러므로 만약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저주의 댓가를 모두 지불하셨다면 우리는 더 이상 예수께서 지불하신 댓가를 담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댓가를 지불하셨기에 그 혜택을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이들은 그것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마귀는 오늘날까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어놓으신 업적들을 알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을 뿐더러 우리가 그것을 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유혹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만을 믿어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믿고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성령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갈3:2,5). 예수님께서 이미 누구든지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댓가를 다 지불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성령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유혹합니다. 예수님도 믿고 금식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니 적어도 하루에 몇 시간씩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아니 성경을 적어도 몇 번을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수 믿고 최소한 몇 년은 지나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분이 십자가상에서 목마름의 저주를 담당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목마름의 저주를 담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 깊숙한 곳에서 생수의 강물이 터져 나온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아마존의 강물처럼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적시어 흐르고 있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으며, 번성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3월특별새벽집회는 아주 특별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던 복음의 핵심진리들을 정확히 꿰뚫어 하나로 엮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것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찾아낼 것입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그것을 꺼내어 활용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미 우리의 것이 되어버린 것들을 매번 다시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잘못된 기도생활도 바뀌어지게 될 것입니다. 놀라운 자유와 해방이 이번 집회를 통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십자가는 죄를 없이하는 도구 | [찬송] 찬 252장 나의 죄를 씻기는 |
| [말씀] 히브리서 10:11~14(신약 363면) | 2013.3.2(토) |
1. 죄와 저주를 없이하는 도구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달려 돌아가신 두 개의 겹쳐진 나무입니다. 십자가는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가 죄와 온갖 저주들을 없이하는 도구라는 데에 그 의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는 그 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재료가 죄와 저주를 없이하는 나무라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가 만약 나무가 아니라 철이었다거나 오늘날에 흔히들 사용하는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이었다고 한다면 사실상 그것은 의미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무에 달려야 죄값을 대신할 수 있고, 나무에 달려야 저주를 담당할 수 있다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요3:14, 신21:22~23). 또한 만약 예수께서 나무에 달려 돌아가시지 않고, 유대인들의 처형방식에 따라 돌에 맞아 죽으셨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만들 것입니다.
요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신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마구잡이 방식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율법이 말하는 죄와 저주를 담당하시기 위해 친히 나무에 달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2. 십자가가 주는 7가지 혜택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은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혜택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요? 성경은 적어도 7가지의 혜택을 가져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처리해 줍니다(벧전2:24, 히9:22, 롬6:23). 둘째, 마음의 상처를 제거해 줍니다(마27:39~46). 셋째,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저주를 단숨에 제거해 줍니다(신28:15, 갈3:13). 넷째, 인간의 영원한 갈증을 해결해 줍니다(신28:48, 요19:28, 요4:14, 7:37~38). 다섯째, 모든 질병에서 낫게 해 주시며 건강하게 해 주십니다(사53:4~5, 마8:16~17). 여섯째, 무지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해 줍니다(눅23:34, 엡1:8). 일곱째, 가난에서 벗어나 부요한 자가 되게 해 줍니다(신28:30~33, 고후8:9). 오늘은 그 첫 번째 항목인 죄를 처리해주는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죄를 없이하는 도구 십자가
죄(罪)란 무엇일까요? 죄란 하나님의 뜻을 어기거나 불순종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상태를 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맨 마지막에 아담을 지으셨고 그에게 한 가지 계명을 주셨습니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마음대로 따 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그것을 어기게 된다면 죽음이 그에게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죄값은 곧 사망이라고 말했습니다(롬6:23). 인간은 원래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몸 속에 죄가 들어오고 그 죄는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기에 이르렀고, 또한 죽어서는 영원히 하나님으로부터 분리가 되어, 그의 영혼이 불타는 유황못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받은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그 죄값을 다른 방법으로 처리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전가’와 ‘속죄’라는 방법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 대신에 흠없고 깨끗한 짐승에 죄를 전가시키어 그 짐승이 대신 피흘려 죽게 함으로 죄를 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중의 대표자가 흠없는 짐승을 잡고 대제사장이 그 짐승의 피를 받아서 속죄소 위에 뿌림으로서 죄용서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속죄제사법’이라고 부릅니다(레4장, 레16장).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흠없는 양과 염소 그리고 소같은 짐승이 대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짐승들의 피가 율법말씀을 담고 있는 속죄소 위에 뿌려질 때, 그 피가 율법말씀을 덮음으로 인하여 죄를 없이하는 방법이었습니다(레16:14~15). 하지만 이러한 속죄제사법은 하나의 모형에 불과한 것이었고, 진짜는 인류의 죄값을 대신하여 대신 죽을 사람제물이 필요했습니다(히10:4). 그렇지만 아담의 후손들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에 아무도 인류의 죄값을 대신할만한 제물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어 인류의 죄를 그에게 전가시키시고,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에 의해 죽임당하도록 허락하셨으니(요11:47~52),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흠없는 인간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한 여인의 태를 빌려 이 세상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제물로 죽으실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셨다가 그의 나이 30세가 되셨을 때, 요단강으로 나아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인류의 죄를 전가받으셨습니다(마3:13~15). 세례요한은 제사장이자 선지자이면서 여자가 낳은 인류의 대표자가 되어 인류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전가했던 것입니다(마11:11). 그러자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요1:29). 그래서 3년 반이 지난 그해 유월절 날, 제사장들과 백성들에 의해서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대제사장과 백성들이 아무런 죄가 없으신 그분을 십자가에서 처형할 수 있도록 로마의 총독에게 부탁하여 죽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죽으신 골고다언덕 바위 속에 법궤가 숨겨져 있었고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는 법궤의 속죄소를 덮어 영원한 속죄를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되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던 이유가 그 언덕 속에 숨겨져 있었던 것입니다(벧전2:24).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죄가 있어서 자신의 죄값을 담당하기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속죄소 위에 피뿌리기 위해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로 가시어 그곳에서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속죄소에 피를 뿌리기 위한 영원한 대속의 속죄제사요, 인류의 죄값을 지불하여 모든 인류를 사망으로부터 구출하는 대속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의 피가 자신의 죄를 덮어버리므로 자기의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피를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대신 죄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죄용서를 받은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피이기도 하지만 말씀이 육신을 입은 영원한 피이시기에 영원히 우리의 죄를 가리울 수 있습니다. “영원토록 내 할 말 예수의 피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밖에 없네.” 그렇습니다. 우리의 속죄의 근거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흘리신 예수님의 피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그분을 붙든다면 죄는 결단코 우리를 지옥으로 끌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영원히 가리워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는 날이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의 피를 가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영원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다음 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하나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의 세계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혹 이 세상에서 나사로처럼 못 먹고 못 살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영혼에 예수의 피가 있는 자는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얻은 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신분을 이제는 절대 잊지 마십시오. 예수님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근거는 결코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그분만을 찬양합시다.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피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시다. 영원히 영광을 받으소서.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여.
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감추어진 내면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십자가 | [찬송] 찬 150장 갈보리산 위에 |
| [말씀] 요한복음 21:1~17(신약 184면) | 2013.3.3(일) |
1.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어떤 날에는 자신이 구원받은 것 같아 즐거워하다가도, 또 어떤 날에는 자신이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들이 생기면 이내 즐거워하다가도 금방 우울한 감정에 빠지며 그렇게 심난한 상태가 지속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행위들을 고치지 못한 것 때문에 남 모르게 자신을 학대하기도 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들을 때에는 괜찮은 것 같고 조금 안정을 되찾지만 교회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늘 무엇인가 나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누군가를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것 같고, 자신의 부끄러움이 낱낱이 공개될 것 같아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기가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기도 하지만 진득하게 해 본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주일을 빠지거나 기도를 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두려운 마음에 주일을 지키고 기도를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믿음을 가지고 확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남들은 다 성령님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언제나 성령님과 교제할 수 있을까 생각하지만 멀게만 느껴집니다. 혹시 위와 같은 마음이 들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은 남모르는 내면의 상처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꿈과 이상도 파괴시켜버립니다. 그리고 대인관계도 기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께는 왜 자신을 그렇게 못난 사람으로 만들어놓았느냐고 불평 불만을 표출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쓰신다고 초청을 해도 늘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항상 불안합니다. 그래서 자신감이 없이 무력감을 가지고 살아갈 뿐입니다.
왜 이러한 감정이 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마음의 상처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라기보다는 마음에 받은 과거의 깊은 상처가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가 혼자 있을 때에 스물스물 올라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처들이 마음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원치 않는 임신으로 말미암아 축하받아야 할 아이가 태중에서부터 외면받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참 사랑을 받아야 할 유년시절에, 가난함이나 부모의 이혼 그리고 회사의 부도로 인하여 부모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야 했거나, 술을 먹으면 자녀를 두들겨 패는 아버지로부터 육적으로 학대를 받았다거나, 사촌오빠에게 성적 유린을 당했다거나 하는 것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잠재의식 상태로 깔려 있다가 어느 순간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당신에게도 이러한 마음의 상처가 있습니까? 그래서 무엇엔가 집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감, 그것 때문에 술을 입에 대다보니 어느새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버린 알코올 중독, 이유없이 늘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데 한 번 화가 나면 통제가 되지 않음, 다른 사람에게 또 거절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다른 사람과 유대관계를 갖지 못하고 폐쇄적인 사람이 되어버림, 그러다보니 매사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오로지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 이런 것은 다 과거의 상처 때문에 발생하는 증상들입니다.
2.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는 근거
하지만 이 모든 내면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감정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귀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세상의 부모는 혹시 나를 버린다해도 하나님은 결단코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모는 혹시 나의 탄생을 환영하지 아니했어도 하나님은 나의 탄생을 미리 아시고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시27:10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렘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태중에 있을 때에 그리고 유년시절에 그러한 아픔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내면의 상처들을 다 이해하시고 동정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마리아의 태중에 임신이 되던 그 순간부터 자신의 잉태사실을 그의 어머니가 숨기며 살아야 했습니다. 축복 속에 태어나야할 출산의 시간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태어나지 못했고 이름 모르는 어느 여관집의 허름한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2살 이하를 죽이려하는 헤롯왕의 음모 때문에, 예수님은 자기 나라를 떠나 먼 외국으로 도피하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우리들보다 더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들을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연약함을 다 이해하시고 동정해주시는 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4:15-16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셋째, 무엇보다도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의 상처를 대신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파해야 할 상처들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3시간동안 종교지도자들과 군중들로부터 침뱉음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마27:11~12, 39~44). 수 년 동안 오직 자신을 통해 병고침을 받고 천국의 실제를 경험했던 그들이 오히려 이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데 앞장서고 또한 조롱하고 있습니다. 군중들의 배신과 거절은 사실 육체적인 고통보다도 더 아픔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었습니까? 우리 죄를 대신 처리하고 우리가 받을 마음의 상처를 대신 받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당해야 했습니다(마27:45~46). 그때 외친 외마디가 바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도 광야에 버려진 아사셀양처럼 버림을 받았던 것입니다(레16:20~22). 한 번도 떨어져 있어본 적이 없던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버림당하는 아픔을 겪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거절의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분이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마음의 상처가 있는 자들을 찾아가시어 그들을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자신의 사람들은 단 한 사람이도 결단코 버리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을 지금도 이루고 계십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저와 여러분은 오늘 그 십자가 아래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우리의 내면의 상처를 내려놓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것을 이해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 그분의 피가 저와 여러분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습니다.
3. 수제자 베드로의 상처가 치유되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상처가 죄보다도 자신의 인생을 더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맹세하면서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거듭 말했지만 그날밤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으며 저주하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이후 베드로는 얼마나 자신을 학대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그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자 따스한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고백을 그가 일부러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을 계기로 베드로에게서 훼손되었던 수제자로서의 명예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도 못난 자신을 용서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를 위해 예비하신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기 자신부터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예수님께서 그랬듯이 자기에게 상처를 준 자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눅22:34). 우리가 용서해야 할 대상은 부모나 이웃사촌 심지어 목사님이나 사모님, 하나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처는 썩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면 나의 인생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뒤틀어버린 그 사람을 용서한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선포하십시오. “사랑합니다. 하나님.” “사랑해요. 아빠.” “용서합니다. 오빠.” “사랑합니다. 목사님.”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영원한 생명을 해방한 십자가 | [찬송] 찬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
| [말씀] 요12:24(신약 168면) | 2013.3.4(월) |
1. 하나님의 구속의 2단계
하나님께서는 만세전에 우리 인간을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약속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통한 속죄(贖罪)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분배해 주려 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속죄(贖罪)는 인간이 죄를 지었기에 생명의 분배에 앞서서 먼저 해결해야 할 임시적인 과제였을 뿐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주시려 했던 것은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생명이었습니다.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가 어떻게 얻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분배해 주시기 위해,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 인간을 아주 특별하게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그 영원한 생명, 죽음도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부활의 생명을 우리 인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그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서 사람을 지었으니, 곧 인간만이 영적인 피조물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영(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태초에 지으신 사람을 위해 준비하신 에덴동산을 한 번 살펴 보십시오(창2:8~14). 그곳은 인간이 살기에 가장 완벽한 환경을 갖추고 있는 천혜의 장소였습니다. 또한 그 모습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그대로 본 딴 것으로서 동산의 한 중앙에서 강이 발원하여 동산의 동서남북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의 한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는 아담에게 무어라 말씀하셨습니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따먹을 수 있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창2:16~17)”고 하셨습니다. 왜냐구요? 인간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따먹어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다음에야 선악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선악을 분별하며 사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사람 아담은 자기의 영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담기 전에 그만 죄부터 짓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피흘려 대신 죽어가는 어린양의 속죄라는 또다른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죄문제를 먼저 해결하시고자 당신의 흠없는 아들을 피흘릴 수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보내시었고, 결국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 피흘려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주제보다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분배할 생명의 문제에 가장 관심을 두었던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와 서신서에 하나님의 아들이 가지고 있던 생명에 대해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아들 예수님에게만 그 생명을 주어 있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바로 예수님이 인간에게 생명을 나눠줄 생명나무였다는 사실입니다(요1:1~4, 요5:26).
요1:1,4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일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또한 둘째, 그 생명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그 하나님의 생명을 인간에게 분배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피만 흘린 것이 아니라 물도 같이 흘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9:34, 요일5:5~6). 다시 말해 예수께서 흘리신 피는 인간의 죄를 사해주기 위한 속죄의 피였지만, 물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인간에게 공급하시는 생명의 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요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일5:5-6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속죄의 피만을 공급받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물도 동시에 공급받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그 물은 한 사람의 목만 축일 수 있는 한 바가지의 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로서 시간이 지날수록 강을 이루어 모든 믿는 자들의 영혼을 전부 적시고도 남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물은 언제까지라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수로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에게 나눠주시고자 했던 바로 그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모든 신자에게는 전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요일5:11~12).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 생명의 분배
그렇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해방하신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요16:7, 요일4:13).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일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성령께서는 누구십니까? 그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믿는 모든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분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시라 시인할 수 없으며, 그분이 아니고서는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고전12:3). 그러니 지금 내가 예수님을 믿고 시인하는 자라면 우리 속에는 이미 성령님께서 와 계십니다.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시고자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시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해 주시므로 우리가 거듭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했다면 한 알의 그대로 있었을 것입니다(요12:24).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시고자 기꺼이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욱이 그 생명은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물과도 그리고 강물과도 같아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그의 영으로 돌이키기만 하면 지금도 아마존과 같은 생명을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오늘날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와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 안에 들어온 생명을 한 바가지의 물로 생각하고 오늘도 물 물 물 하면서 그 물을 찾아 헤매고 돌아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영으로 돌이키십시오. 그리고 지금도 솟아나오고 있는 샘물과 같은 성령을 흡족히 마시십시오(고전12:13). 그러면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인생의 목마름은 금방 해결이 됩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찾아가 안수받지 않아도 성령의 기름부음은 우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흘러넘치게 됩니다(요일2:27).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로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영혼이 메말라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러면 주의 이름으로 부르십시오. “오 주 예수여!” 그러면 그분의 생명이 우리에게 차고 넘치도록 공급되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목마른 자가 아닙니다. 목마름의 저주는 십자가에서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요19:28~29).
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치유와 축사는 온전한 복음의 삼분지일 | [찬송] 찬 473장 괴로움과 고통을 |
| [말씀] 눅13:32~33(신약 119면) | 2013.3.5(화) |
1. 치유와 축사사역은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시작
예수께서 3년반의 공생애의 기간 동안에 과연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구약성경의 성취를 매우 중시하였던 마태라는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4:23-24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회당에서의 교육, 천국복음의 전파, 질병의 치유. 성서학자들은 이 3가지 사역을 <예수님의 3대사역>이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기간에 교육과 전도와 치유사역을 병행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 약한 자,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시는데 그의 공생애의 1/3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그의 공생애의 많은 시간을 병자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데에 사용하셨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과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치유사역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가져오는데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6:10 (당신의) 나라(왕국)가 임하시오며(오게하시며)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사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자 하늘의 왕이시며 통치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이 세상은 사탄마귀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마귀가 왕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죄를 지은 인간에게 온갖 질병들과 귀신들을 시켜서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온갖 질병에 시달리며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통받는 인간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건져주심으로서 앞으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본격적으로 임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의 실제를 이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치유사역과 귀신축사사역을 병행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이 세상의 임금이 바뀌었음을 만방에 알리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권리와 근거로 병자치유사역과 귀신축사사역을 행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그 사탄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것 때문입니다(마4:1~11). 사탄마귀는 그때 예수님께 3대0으로 판정패 함으로써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리들을 예수님께 양도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 자신의 12제자에게도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똑같은 일을 행하게 위임하심으로써 앞으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을 통해서 그 일이 진행될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곁에 있을 때에는 제자들도 어디든지 가서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칠 수 있었고, 더러운 귀신들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병고침과 축사의 근거
그렇다면 오늘날 모든 믿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 온갖 질병에서 자유롭게 되며, 귀신들에게 시달리지 않고 그들을 쫓아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사해주셨고 사탄이 가진 사망권세를 이기셨기에 사탄마귀는 이제 우리들을 억압할 어떠한 법적 권리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마9:2, 요5:14).
마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요5: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38년된 중풍병자)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다른 사람은 몰랐어도 하늘의 통치자이셨던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질병과 귀신에게 시달리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범한 범죄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범하는 자마다 사탄마귀의 종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느날 예수님께서는 어느 중풍병자를 치유하실 때에 그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사죄를 선포하셨습니다(마9:1~8). 그 중풍병자의 질병이 그 사람의 죄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질병이 발병한다면 즉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2,000년전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덮어버림으로 사탄마귀는 우리를 지배할 그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게 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교회의 머리로서 그의 몸된 교회에게 예수 이름의 권세 다시 말해 하늘의 왕으로서의 권세를 위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막16:17~18).
막16:17-18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질병이나 귀신에 시달린 사람이 먼저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면 그때부터는 예수 이름의 권세를 적용해야 합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은 불법을 저질러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인 사탄마귀가 더 이상 사망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그와 그의 부하들과 그들이 하는 일을 향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망권세마저 주 예수님께 있으므로, 사탄마귀는 더 이상 믿는 자들을 주장할 수 없다고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너희들은 더 이상 나를 주장할 수 없다. 질병아, 이제는 내게서 떠나갈찌어다.”
셋째,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받아야 할 질병의 저주까지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대신 다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마8:16-17).
마8:16-17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가 가진 사죄의 은총과 예수이름만 가지고도 우리는 질병에서 나을 수 있고 귀신의 세력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들이 질병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음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당신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한 가지 일을 더 행하셨습니다. 그것은 사53:4-5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가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가 받을 질병의 댓가를 대신 지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질병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그 댓가를 다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벧전2:24).
넷째,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의 하나가 우리 안에 들어있는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고 치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겔47:8~9,12).
겔47:8-9,12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9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선물로 주신 성령님께서 하시는 사역이 우리의 영을 거듭나게 하는 중생사역과 더불어 치유사역을 시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생수같은 성령께서 강물처럼 우리 안에서 흘러넘쳐서 병든 우리의 신체조직들을 살리고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처럼 사죄의 은총과 예수이름의 권세 그리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인한 질병의 댓가의 지불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이 바로 우리의 몸을 지금도 건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건강한 자입니다. 이것을 날마다 선포하시고 주장하십시오. 우리는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으로 인하여 평생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2013년 3월 특별새벽집회 주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 | ||
| [제목]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무지와 가난의 저주 | [찬송] 찬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
| [말씀] 사53:7, 고후8:9 | 2013.3.6(수) |
1. 십자가의 온전한 7가지 복음
우리는 이번 특별새벽집회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7가지 측면에서 돌아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첫째, 우리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받을 상처를 대신 담당하심으로 내적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셨습니다. 셋째, 죄악이 습관이 되어 자리잡은 견고한 진마저 파쇄하셨습니다. 넷째, 생명없는 우리에게 생수와 같은 성령을 주심으로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었습니다. 다섯째, 채찍에 대신 맞으심으로 육체의 질병마저 치유하셨고 귀신들의 억압에서부터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성령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 안에서 들어오셔서 행하시는 사역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제 남은 6번째와 7번째 측면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무지한 자에서 지혜로운 자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은 크게 보면 2가지입니다. 하나는 죄를 해결하시는 일이요 또 하나는 죄로 말미암은 붙어다니는 저주를 해결하시는 일입니다. 신28장에 보면, 죄로 말미암은 저주의 항목들이 나타나 있는데, 우리 주 예수께서는 거기에 기록된 수많은 저주들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6번째로 살펴볼 것은 먼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들이 받아야 할 무지의 저주까지도 대신 담당하셨다는 사실입니다(사53:7).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찬송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셨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신성모독죄로 당국자들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남으로 새로운 살아있는 인격의 성전을 만드신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고소 때문에 억울하게 정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것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무지의 댓가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 입을 열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어리석음과 무지의 저주는 더 이상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후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죽어있던 인간의 지혜까지 되살려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사11:2).
사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성령님께서 믿는 자들 안에 들어오셔서 행하시는 첫 번째 사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공급하심으로 죽었던 우리의 영을 살리시는 일이십니다. 이때 우리 안에 들어온 성령님은 솟아나는 샘물과 같아서 계속해서 우리 속에서 생명을 살리는 강물을 만들어 내는데, 그 강물은 또한 우리 내부에 있는 질병들을 치유하고 약한 것을 강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자들은 온갖 질병을 다 치유 받게 되며, 귀신들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입니다.
이어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까요? 그것은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놀라운 지혜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40만종이나 되는 동물들의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줄 만큼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하지만 뱀의 꼬임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지혜도 그때 함께 저주를 받았고 그후로부터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허락하신 두뇌의 능력을 10%도 사용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심으로 인간 속에 숨어있는 지혜의 능력을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놀라운 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셋째,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신데, 그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붓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엡1:8)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예수님은 사실 최고의 지혜자인 솔로몬보다도 더 지혜로운 분이십니다(마12:42). 그래서 당시 석학으로 구성된 종교지도자들마저 예수님에게서 어떤 흠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의 지혜는 율법을 꿰뚫고 있는 것이었기에 그분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분의 지혜에 감탄을 마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우리 안에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믿는 이들은 놀라운 지혜를 소유한 자입니다. 아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미 천재인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기억력, 집중력, 이해력, 창의력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3. 지혜가 가져다주는 또 하나의 축복
이제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해주신 7번째의 축복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가난의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다는 사실이며,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지금도 당신의 지혜를 통해 재정적인 축복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붓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가난의 저주마저 담당하셨음을 살펴보시겠습니다(고후8:9).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어떤 옷도 입지 아니하셨고 먹지도 못하셨으며 마시지도 아니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가난의 저주를 대신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아야할 가난의 저주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가 믿을 때에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지혜를 부어주시는데, 그 지혜는 믿는 이들로 하여금 재정적인 축복을 받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겔28:4-5, 잠8:17~18).
겔28:4-5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잠8:17-18 나(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지혜)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십자가의 구속의 예수님을 믿는다면 가난의 저주는 이미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부요의 축복이 넘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초자연적으로 부어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여러 곳간에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우리가 받은 물질의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십일조의 곳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일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시작하였으며(창14:20) 그의 손자 야곱에게까지 이어진 아름다운 미덕입니다(창28:22). 뿐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억만장자였던 요셉처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곳간을 만들어서 자신의 수입의 1/5을 저장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창41:34~36). 그러면 언젠가는 그것을 내다 팔 때가 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물질은 더 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창41:56~57).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면, 재물의 축복은 앞의 6가지 축복과는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영역의 축복들은 받을수록 좋은 것이며 우리에게 해가 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재물만큼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재물을 신처럼 받들 공산이 크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재물에 축복을 많이 받았다 하더라도 재물 자체에 결코 소망을 두어서는 아니 된다는 사실입니다(마6:24, 딤전6:17~18).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하나님과 재물)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딤전6:17-18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재물은 원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사탄의 종이 됨에 따라 물질은 그만 사탄의 손에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에는 상당한 위험성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물질의 주권이 항상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그것을 쓰시겠다고 한다면 다윗처럼 얼마든지 주님께 돌려드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대상29: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미 지혜로운 자이며 물질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지혜를 가진 자는 재물의 곳간이 채워지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7년에서 10년, 20년동안 재물을 관리하다 보면 우리도 반드시 억만장자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성도들은 이와같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7가지 축복을 다 누리며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