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9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열아홉째주일)
[제  목] 요한복음강해(16) 예수께서 제2표적과 3표적을 행하신 이유와 그 영적인 의미
[찬  송] 찬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찬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찬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말  씀] 요4:43~5:18(신약 149면)
[키워드] 왕의신하의아들,죽을병,말씀으로치료,갈릴리가나, 가버나움,베데스다,38년된중풍병자,안식일,안식일논쟁,유대인들,아버지와아들

 

1. 서론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마지막에 기록된 가장 심오한 복음서이다. 기적이 7가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기적에 대한 찬양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공관복음서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르다.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책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가복음이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복음이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때문이다. 공관복음서가 땅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인의 인성에 대해 중점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한다면, 요한복음서는 하늘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1) 제 목 : 헬라어 원전의 카타 요안넨(요한에 의한)’이라는 원래의 제목에 기쁜 소식을 뜻하는 단어가 덧붙여져서 요한복음으로 명명됨.

2) 저 자 : 예수님의 행적과 사역의 직접 목격자이며(1:14 ; 19:35 ; 21:24.25), ‘예수의 사랑하시는 자(13:23 ; 19:26; 20:2; 21:7,20,24)로 소개된 사도 요한,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모두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공관복음서 작성이 완료된 A.D.70년 이후로부터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된 A.D. 95년 사이, 예루살렘 함락(A. D. 70)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1세기 말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보다 앞서 기록되었다고 간주되는 점을 종합하면 기록 시기를 약 A.D. 80-90년 사이로 좁혀서 추정할 수 있음.

4)수 신 자 :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포함한 헬라 세계의 독자들

5)내 용 :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됨을 증거하는 복음서 (20:31).

6)요한복음의 구분

크게는 세 부분으로, 서론(1:1~18), 본론(1:19~20), 결론(21)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하지만 작게는 5가지 부분으로도 나눠볼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1:1~18). 둘째, 하나님의 아들의 나타나심(1:19-4). 셋째,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거부(5-12). 넷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교훈(13-17). 다섯째,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과 부활(18-21).

요한복음의 내용 구조는 전체적으로 다섯 부분으로 파악할 수 있다. 1:1-18까지요한복음의 신학적 서론(Prologue), 1:19-12:50까지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와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의 공적 사역, 13:1-17:26까지다락방 강화, 18:1-20:31까지예루살렘에서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 21결론(Epilogue) 부분이다. 그러니까 서론과 결론 부분을 제외하면, 예수님의 사역의 개시와 부활에 이르는 전과정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 셈이다. 그러면 이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본서의 신학적 서론 부분인 1:1-18성자 예수의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또한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肉身)이 되어,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나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않았다는 것을 먼저 서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다음 1:19-12:50 주로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유대와 예루살렘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공적 사역을 보도하고 있다. 이 부분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곱 가지의 표적들(Seven Signs)그와 연관된 선언들(Proclamations)이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성자 예수께서 자신 및 성부 하나님을 세상에 계시하시는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 부분을 좀 더 세분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1:19~2:12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증거, 예수님과 처음 제자들과의 만남제자들의 신앙 고백, 그리고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1표적인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을 보도하고 있다. 이는 서론 부분에서 나타난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증거(Witness)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사역이 시작됨으로써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는 부분이다. 이어 2:13~3:36까지는 공생애 사역 개시 후 첫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을 기점으로 일정 기간 동안의 사역을 보도하고 있는데, 곧 예루살렘 성전을 숙청하신 사건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유대 지방에서 머무신 내용예수께 대한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거에 관해 보도하고 있다. 이어 제4장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다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시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사마리아 지역을 경유하실 때 예수께서는 수가 성의 한 여인구원하시고 또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마리아인들을 회심하게 하신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돌아오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2의 표적으로서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신하의 아들을 치유하신다.

이어 제5장에서는 공생애 시작 후 두번째로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3표적으로서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보도하고 있으며, 6장에서는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4표적으로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5표적으로서 물 위를 걸으신 이적, 그리고 오병이어의 이적과 관련하여 추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주신 생명의 떡에 관한 주님의 교훈들을 보도하고 있다. 또 제5, 6장에서는 표적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게 됨과 동시에 예수께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배척과 무리들의 오해가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어 7:1-10:42까지는 다시 예루살렘에서의 초막절을 전후한 사역들을 보도하고 있다. 이 즈음에 이미 예수께서는 명절을 맞아 모여든 군중들의 이야깃거리의 중심이 될 정도로 커다란 관심 및 의혹의 대상이 되어 있었으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는 첨예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결국 성전에서의 논쟁을 기회로 예수에 대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체포령을 내리는계획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게 된다. 한편, 예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위축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공개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말씀을 선포하며,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6표적소경의 눈을 치유하는 이적을 행하시며, 특히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로서의 자기 선언 (Self-Proclamation)을 하신다.

이어 11,12은 유대인들의 배척을 피해 잠시 베레아로 피신하셨던 예수께서 다시 예루살렘 인근 베다니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사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 그리고 헬라인들의 예수 방문 사건 등을 보도하고 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기 위해 행하신 일곱 가지 표적 중 마지막 제7표적으로서 가장 큰 표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요한복음에서 진정한 표적 중의 표적인 예수의 부활 사건을 강력히 예표해 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또 마리아의 향유 도유 사건과 헬라인들의 방문은 모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임박하였음을 시사하는 기능을 한다. 이렇게 볼 때, 11,12장은 표적들의 장(the Chapters of the Signs)이라고 할 수 있는 1:19-12:50까지의 종결 부분이면서, 다음 제13장 이후의 내용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 13-17장은 소위 다락방 강화(the Upper Room Discourse) 부분으로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설교(13-16)대제사장적 기도(17)를 보도하고 있다. 유월절 전날 자기가 떠날 때가 된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신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다. 또한 당신의 승천 이후 세상에 남아 당신을 대신하여 복음 전파 사명을 감당할 제자들에게 새로운 보혜사이신 성령을 보내 주실 것약속하시며, 자신의 죽음과 부활 및 승천에 대해서도 예고하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이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자신이 세상을 이기었으므로 담대하라고 하는 권고를 주심으로 고별 설교를 마치신다. 이어 17장에서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는데, 기도의 내용은 곧 자신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 제자들을 및 미래의 성도들을 포함한 중보의 기도이다.

다음으로, 18~20장은 성자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보도하고 있다. 세분하면, 18, 19장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체포에서부터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연속적 심문 과정과 십자가형의 집행시신의 처리와 장례 과정을 사실적이고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으며, 20장에서는 빈 무덤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하신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 도마에게 차례로 현현(顯顯)하신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30,31에서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힘으로써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수난 및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보도 내용을 일단락짓고 있다.

마지막 제21장은 본서의 결론 부분으로서,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재회를 보도한다. ,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조반을 준비하여 섬겨 주시며, 세 번이나 거듭 당신을 부인함으로 사도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린 베드로를 온전히 회복시키시고 그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다. 이 부분은 이미 본서의 기록 목적을 밝힌 이후에 나와 부록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상 베드로의 온전한 회복과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묘사함으로써 교회의 사명을 상징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측면에서 볼 때 매끄럽게 끝맺음을 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인 21:24,25에서증언자들의 추신(Postscripts)을 기록함으로써 본서의 진정성을 재차 확증해 주고 있다.

 

 

2.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제2표적으로서의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4:43~54)

1)본문내용(4:43~54)

첫째, 에수께서 사마리아에서 갈릴리로 가심(43~45)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제자들에게 격언을 인용하여 자신이 고향에서는 영접받지 못할 것임을 시사하신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일시적으로 영접한 까닭은 명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 왕의 신하가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주시길 예수께 간구함(46~49)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행하셨던 갈릴리 가나에 이르신다. 그때 헤롯 안디바의 한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가버나움에서 병든 상태에 있었다. 그가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신 소문을 듣고 가서 병들어 죽게 된 자기 아들을 고쳐 달라고 간청한다. 예수께서 왕의 신하를 포함한 갈릴리인들이 표적과 기사만을 보고 믿는 저급한 믿음만을 가졌음을 지적하신다. 왕의 신하가 다급하고 애절한 심정으로 아이가 죽기 전에 함께 가 주시기를 예수께 재차 간구한다.

셋째, 예수께서 아이를 고쳐주시고 왕의 신하의 집은 예수를 믿게 됨(50~5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으로만 아들이 나았다고 선언하시며 돌아가 명하신다. 왕의 신하가 그 말씀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간다. 신하가 돌아가는 길에 아들의 치유소식을 듣는다. 그가 예수의 치유선포시기와 아들이 치유된 시간이 일치함을 알고 자기를 비롯하여 온 가족이 예수를 믿는다.

넷째,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사건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표적임(54)

 

2)영적 교훈

2표적 곧 왕의 신하의 아들의 치유기적은 요한복음의 본론 전반부(1:19~12:50)의 연속부분이다. 그리고 좁게는 성자 예수님의 초기사역과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제1~2표적에 대해 보도하는 1:19~4:54의 종결부분이다. 2표적은 예수의 사마리아 사역에 대해 보도한 1~42절에 이어,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두 번째 표적으로 갈릴리에서 있었던 왕의 신하의 아들의 치유 이적 사건을 보도하고 있다. 이 이적 사건은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사건으로서, 공관복음서에 등장하는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신 사건(8:5~13, 7:10)과는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그것은 환자를 직접 보지 않고 고쳐주신 것이나 환자의 집이 가버나움에 있었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의 사건은 이방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요한복음의 사건은 예수님이야말로 인류를 육체의 질병과 영혼의 질병인 죄악으로부터 온전히 구원해 내어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누리게 하실 신적 권세를 지니신 유일한 구세주이신 것을 증거한다.

 

첫째, 격언처럼 선지자는 보통 자기 고향에서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44).

이러한 사례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랬다. 그는 자신의 고향 아나돗에서 그를 죽이겠다는 고향사람들의 위협을 받았다(1:21). 마태는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 나사렛에 가셨을 때에도 그분의 가르침에 놀라면서도 그를 배척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13:54~57).

둘째,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표적은 보고 대대적인 환영을 할 뿐이다(45).

유대인들은 언제나 철저히 표적을 근러로 예수님을 믿고 환영했다. 이것은 가변적이고 위험한 신앙이다. 표적을 행하지 않으면 믿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예수는 인간의 육체적 질병을 다스리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다(46).

갈릴리 가버나움에 있던 왕의 신하가 자기아들을 고쳐보려고 거기에서 무려 34km 떨어진 갈릴리 가나까지 예수님을 찾아간다. 그 아들의 병은 왕(헤롯 안디바)가 고쳐주지 못했고, 의사들도 고쳐주지 못했다. 귀신들려 병든 것인지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넷째, 죽어가는 자식을 살리려는 마음은 모두가 똑 같다(47).

신하는 예수께서 직접 오셔서 고쳐주시도록 간청했다.

다섯째, 사람은 의사가 직접 와서 만져야 고침을 받는다고 생각한다(47).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 고쳐주신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요, 말씀으로서 모든 만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고로 말씀을 그대로 믿는 신앙이 참 신앙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섯째, 유대인들의 표적주의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 아니다(48).

유대인이나 갈릴리인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서 믿는 신앙을 가졌다(16:1). 그런데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는다(고전1:22). 성숙한 신앙은 표적을 봄에서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서 믿는 것이다(10:17).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일곱째, 예수께서는 자식을 위하는 아비의 마음을 아시고 그의 아들을 고쳐주신다(49~50)

아버지는 좀 더 긍휼을 얻고자 자신의 아들을 자신의 어린 아이(파이디온)이라고 말한다(49).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의 아들을 살아있다고 말씀하신다(50). 이는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휘오스)인 것이지 하나님의 유약하고 병약한 어린 아이(파이디온)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덟째,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도 믿는 신앙이 참된 신앙이다(50)

처음에 왕의 신하는 예수께서 자기 집에 내려오셔서 자기의 아이를 치료해 주시기를 바랬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그리고 자기 집으로 떠났다. 그런데 중간에 그의 종들을 만났다. 종들은 주인의 아이(파이스: 객관적이고도 사무적인 용어)가 살아났다고 했다. 그런데 시각을 맞춰보니 예수께서 살았다는 하는 바로 그 시간이었다. 그러므로 자기의 아들이 낫게 된 것은 우연도 아니고, 인술에 의한 치료도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초자연적인 능력, 전지전능한 능력)인 것을 믿게 된다.

아홉째, 믿음을 갖는 방편은 사람다 각각 다르다(53).

왕의 신하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듣고도 믿는 신앙이었다. 그런데 그의 온 집안 사람들은 아들이 초자연적으로 치료함을 받는 것을 보고 믿었다.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분이 행하신 기적을 체험하고서야 믿음을 가진 것이다. 말씀보다 표적을 더 중요시하는 유대인의 신앙의 단면이 그대로 보인다.

열째,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은 표적이다(54).

예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이유는 첫째, 예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 되고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시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죽어가는 아들 예수를 살려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셋째,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모든 사람들의 왕이 되신다는 것이다. 왕의 신하는 왕이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을 고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자신의 아들의 병을 고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열한째, 교회는 복음이 한 곳에서만 머물게 해서는 아니 된다(43).

예수께서는 수가성을 떠나 다른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하려고 다른 장소로 늘 이동하셨다. 한 곳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으신 것이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파하셨다.

열두째,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잘못을 범치 말아야 한다(44).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모로 취하여 그분을 거절하였다. 그분은 자기들도 잘 알고 있는 목수의 아들이며(13:54~58), 학문적인 배경이 없는 사람(7:15)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 안에 들어있는 신성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 사람을 외모로 평가한다. 혈통이나 가문, 학벌, 사회적인 지위, 사람들에 대한 인지도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13:54-57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열셋째, 예수는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서만 우리에게 오실 수 있다(45)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자세가 있다. 하나는 배척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환영하는 것이다. 환영하는 것도 자신과 상관없이 그냥 손님이나 스타로 환영하는 것이 있고,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환영하는 것이 있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으로 주님을 환영해야 한다.

열넷째, 인간적인 절망은 하나님을 찾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46~47).

왕의 신하는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최고의 명의들을 청하여 자신의 아들을 고쳐보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왕도, 명의들도 그 아들은 못고쳤다. 그런데 일개 목수의 아들 출신인 예수님을 찾아갔다. 고난과 시련은 주님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열다섯째, 참된 믿음은 표적을 볼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생겨야 한다(48).

표적만을 보고 믿는 믿음은 뿌리가 깊지 못하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다.

열여섯째,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문제를 책임지신다는 하나님의 보증서와 같다(51~52).

예수께서 살았다고 하면 산 것이다.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사람이 되어오신 분이기 땝문이다.

열일곱째, 주의 말씀 안에는 생명이 들어 있다(51~53).

주님의 말씀은 생명이다. 왜냐하면 말씀은 하나님이시며, 이 말씀 안에 생명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은 죽음을 이기는 능력이 들어있다.

 

 

3.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제3표적으로서의 예루살렘 베데스다(베드자다) 연못의 38년된 병자의 치유(5:1~9)

1)본문내용(5:1~9)

첫째, 공생애 사역 기간 중에 두 번째로 유월절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심(1)

둘째, 베데스다(베드자다)의 연못을 방문하심(2~5)

예루살렘의 한 성문인 양문 곁에 정자 다섯이 설치된 베데스다(베드자다)라고 하는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가 정자에는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며 누워있었다. 많은 병자들이 정자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물이 동한 후 처음 들어가는 자는 낫게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데스다(베드자다) 연못가에는 38년된 병자가 있었다.

셋째, 예수께서 38년동안이나 앓고 있는 병자를 만나심(6~7).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보시고 그의 병이 오래됨을 아셨다. 예수께서 그에게 낫고자 하는 소원이 있는지를 물으셨다. 병자가 자기를 돕는 자가 없으므로 물이 동하여도 자신은 재빨리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넷째, 예수께서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심(8~9).

예수께서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신다. 이에 병자가 곧 나아서 누웠던 자리를 들고 걸어간다. 그런데 38년된 병자가 치유받은 날은 안식일이었다.

 

2)영적 교훈

예수님의 세 번째 표적을 기점으로 유대 당국자들의 본격적인 배척이 대두된다. 배척이 촉발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셨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5:1~9의 말씀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연못을 방문하셔서 38년된 병자를 치유하는 사건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이라는 용어가 약 70번정도 나오는데, 그중에 한 번은 긍정적인 의미로(4:22), 한 번은 중립적인 의미로(2:6) 쓰였지만, 나머지 68번은 부정적으로 쓰였다. 고로 이때 유대인이란 예수님께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첫째, 예수님의 방문에는 항상 어떤 뜻이 들어 있다(1)

예수께서는 명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가신 것 뿐만 아니라 어떤 계획이 있어서 그곳에 가신 것이다. 이제 공생애 2년차에 접어든 예수께서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셔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둘째, 사람들의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민간신앙이라도 의존한다(2~4).

셋째, 예수께서 38년된 병자 곧 중증환자를 고치신 것은 그분의 신적 권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5).

왜냐하면 38년된 병자는 가장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 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38년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하여 광야 38년이라는 고통의 세월을 견뎌왔기에 이제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해 일부러 오신 것이다. 이는 오직 아들로 오신 예수님만이 진정한 이스라엘백성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넷째, 병자가 고침받으려면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시도해보아야 한다(8).

예수께서는 이때 병자에게 현재명령형(일어나라. 걸어가라)와 과거명령형(침상을 들라)을 다 사용하셨다. 일어나지지 않는 상황이라도 주님이 말씀하면 일어나면 일어나지는 것이요, 38년을 못 걸어봤어도 주님의 말씀에 걸으라고 했으니 걸으면 걷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예수께서는 죄와 질병에 시달린 자들에게 안식을 주려 오신 분이다(9)

여섯째, 이 세상에는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2~3).

가난의 짐, 질병의 짐, 죄의 짐, 절망의 짐을 지고 신음하는 이들이 세상에 많다.

일곱째, 길을 모르면 어리석게 행할 수밖에 없다(4).

길을 모르니, 온갖 병자들은 실날같은 희망을 품고 민간신앙이라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여덟째, 예수께서는 절망에 빠진 자를 건지려고 오신다(5).

38년된 병자는 중증이었다. 그리고 회생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였다. 몰골이 흉측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절망에 빠진 자를 건져주시기 위해 오신다.

아홉째, 고난을 극복하려면 강한 소원과 확고한 의지가 필요사다(6).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고자 하는 강한 소원과 확고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환경도 극복할 수 있다.

열째, 예수께서 계신 곳에는 참된 자유가 있다(8~9).

예수께서 가셔서 38년된 병자에게 말씀하시니 그가 지긋지긋한 질병의 고통의 짐에서 놓임을 받게 되었다.

 

 

4. 치유받은 자에 대한 새 삶의 방향제시 및 유대인들의 본격적인 배척을 촉발한 안식일 논쟁(5:10~18)

1)본문내용(5:10~18)

첫째, 유대인들이 안식일 규례를 범한다면 38년 만에 병나은 자를 비난함(10~13)

유대인들이 38년된 병자로서 예수께 고침받은 자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정죄한다. 고침받은 자가 자신은 자기를 고친 이의 말에 순종한 것 뿐이라고 대답한다. 유대인들이 그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도록 명한 자가 누군지를 물어본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미 자리를 피하셨음으로 병 나은 자조차도 자기를 낫게 한 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둘째, 예수께서 병 나은 자를 다시 만나 새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심(14).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병 나은 자를 다시 만나신다. 그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시면서 새 삶의 방향을 정해주신다.

셋째,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치유를 행하신 예수를 핍박함(15~16).

고침받은 자가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신을 고친 이는 예수라고 밝힌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치료행위를 한다고 하여 예수를 핍박한다.

넷째, 예수께서 자신의 치유사역을 변호하시자, 유대인들이 더욱 분노함(17~18).

예수께서 아버지 즉 하나님께서 아직까지도 일하시므로 자신도 일하는 것이라면서,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행한 자신의 치유사역의 정당성을 선언하신다. 이에 유대인들이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혈안이 된다. 이는 예수께서 안식일만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고 말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2)영적 교훈

요한복음 제5장은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제3~5표적 및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배척과 오해에 대해 보도하는 제5~6장 기사의 전반부. 여기서는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 세 번째 표적으로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베데스다(베드자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신 이적 사건과 그와 관련해서 발생한 안식일 논쟁 그리고 그러한 논쟁에 즈음하여 주신 교훈들을 보도하고 있다. 본문은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신 보도(1~9)에 이어, 38년된 병자치유로 인해 촉발된 안식일 논쟁에 대해 보도한다.

 

첫째, 자의적인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뜻과 빗나갈 수 있다(10).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한다든지, 짐을 운반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 조항(미쉬나)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안식일에 물건을 옮길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의 제정자는 하나님이시므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일체의 조항들은 율법을도 인정될 수 없으므로 마땅히 폐해져야 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둘째, 사람이 병들게 되는 이유는 죄 때문이다(14).

예수께서는 과거의 죄는 용서받았으니 앞으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다. 만일 계속해서 죄를 짓는 일을 반복한다면 더 심한 것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또한 회복의 기회를 영영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셋째, 사람의 말은 언제든지 곡해될 수 있다(15).

병자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한 이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분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그것이 예수님을 박해하려는 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자신이 만난 위대한 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알려주려고 했을 뿐인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물건을 옮기라고 했다면서 예수님을 안식일을 어긴 분이라고 매도하고 있었다. 그는 좋은 소식에 대한 정보제공자의 역할만을 한 것 뿐인데, 나쁘게 받아들이고 나쁘게 이용하려는 자들에게 그것은 문제의 소지가 되고 말았다.

넷째, 사람은 실체를 모르면 오해한다(16).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어겼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또다른 표현으로 오신 분이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였기 때문에 보지 않고 행하는 것이 없으며 듣지 않고 행하는 것이 없는 분이셨다. 유대인들에 의하면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다. 왜냐하면 웅덩이에 빠진 가축은 안식일이라도 건녀내기 때문이다(12:11)

12:5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12:11-12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12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2:27-28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13:14-15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4: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다섯째, 예수님의 아버지는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17).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사역과 자신의 사역의 일체성을 밝히셨다. 즉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아들로서 영광을 누리던 이가 바로 자신이며, 하나님과 동등되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이기시 때문이다. 하나님은 원 창조사역을 마치셨지만 그후 만물을 운행케 하시고(안식일이 되어도 해가 떠오르게 하시며), 보존케 하고 계신다. 그리고 안식일에도 하나님은 영혼구원의 일을 쉬지 않고 행하신다. 그리고 악인들을 심판하신다.

여섯째, 인간의 자유는 종교의 교리보다 제도바도 우선한다(10).

일곱째, 예수님은 율법의 수여자요 완성자이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능가하는 신학이나 교리나 사상은 없다(10).

여덟째, 인위적인 제도로 하나님의 일을 제한해서는 아니 된다(17).

아홉째, 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이유는 첫째, 죄를 짓고 고통받는 유대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예수께서 죄와 질병으로 신음하고 있는 그들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다. 즉 유대인들이 38년동안 죄 때문에 광야에서 유리방황했으니 이제는 그들에게 자유를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둘째,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구약의 여호와로서,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심을 드러내고, 장로들의 유전에 매여 있는 자들을 놓아주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려 하신 것이다. 셋째, 예수께서는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근본정신을 헤아리지 못해 결국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일 존재들이 될 것임을 예고하시려 하신 것이다.

 

< 요한복음 4:43~5:18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예수께서 왜 표적들을 행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살려주신 것은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으로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모든 의원과 어떤 왕도 행할 수 없는 치유의 기적을 베푸신 것은 그분만이 모든 인생의 왕이시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사는 어떤 아버지의 아들을 살려주신 것은 장차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살려주신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온전하고 바람직한 신앙은 표적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의지하여 믿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38년된 중증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지어 광야에서 38년간 징계를 받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와 질병으로부터 안식을 주려 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신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의 제정자이자 안식일의 주인인 것을 그들로 알게 하려 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아버지와 아들은 한 분 하나님의 다른 표현들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은 누구든지 믿고 순종할 때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생명의 주인인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왕이신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아들이신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제정자이신 구주인 것을 믿습니다.

주여, 이제는 예수님이 아버지와 하나라는 것을 믿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예수님이 누군지를 보지 못하게 가로막아온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께서 참된 회복과 안식의 주인이시자, 죄와 질병과 사망에서 건져주실 참된 구주인 것을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예수께서 생명이요 왕이요 아들이시며, 죄와 죽음의 해방자이시자 안식의 주인인 것을 믿을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예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요 만왕의 왕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시로구나.

2. 예수님은 죄와 죽음과 질병으로부터 건져주시려 오신 참 구주시로구나.

3. 예수님은 안식일의 제정자요 주인이시로구나.

4. 사람이 받는 고통과 질병과 죽음은 죄의 댓가로 주어진 슬픈 열매들이로구나.

5. 예수님과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이시로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복음 4장 헬라어 직역

(43) 그런데 두 날들(이틀) 후에 그분이 거기에서부터(에크) 갈릴리 안으로 나가셨다.

(44) 왜냐하면 예수 바로 그분께서 증언하셨기 때문이다. 선지자가 자기 자신의 고향 안에서는 존경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45) 그러므로 그분이 갈릴리 안으로 가셨을 때에 갈릴리인들이 그분을 영접하였다. 그분이 절기 안에서 예루살렘들 안에서 행하셨던 것만큼 많이 그들도 모든 것들을 본 채 있을 때에. 왜냐하면 바로 그들도 역시 절기 안으로 왔기 때문이다.

(46) 그러므로 그분께서 다시 갈릴리의 가나 안으로 가셨다. 그런 그곳에서 그분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셨다. 그리고 어떤 이가 가버나움 안에서 아들이 병들어 있어온 바, 왕에게 속한 이로 있어왔다.

(47) 이이는 예수께서 유대에서부터(에크) 갈릴리 안으로 다다르고(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들은 후에, 떠나갔다. 그리고 그는 요청하고 있었다. 그분이 내려오시도록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고쳐주시도록. 왜냐하면 그가 막 죽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8)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만일 여러분이 표적들과 기사들을 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

(49) 왕에게 속한 이가 그분을 향하여 말한다. 주여, 내 어린 아이(파이디온) 죽기 전에 내려오십시오.”

(5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은 가고 있으십시오. 당신의 아들이 살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던 바 그 말씀을 믿었다. 그리고 그는 가고 있었다.

(51) 그런데 그이가 이미 내려가고 있을 때에, 그의 종들이 그를 만났다. 말하고 있으면서. 그의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을.

(52) 그러므로 그가 그들에게 그 시각을 캐물었다. 이런 그것(시각) 안에서 그(아이)는 호전된 것을 가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어제 일곱 시열병이 그(아이)를 떠나갔다는 것을.

(53) 그러므로 그의 아버지가 저 시각 안에서, 이런 그것(시각) 안에서 예수께서 그에게 당신의 아들이 살아있습니다.”라는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바로 그이와 그리고 그의 온 집이 믿었다.

(54) 그런데 예수께서 유대에서부터(에크) 갈릴리 안으로 오신 후에, 이것을 다시 두 번째 표적으로 행하셨다.

요한복음 5장 헬라어 직역

(01) 이것들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왔다. 그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안으로 올라가셨다.

(02) 그런데 예루살렘들 안에 양에게 속한 것() 가까이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라고 불려지고 있는 연못다섯 행각들(주랑들)을 갖고 있으면서 [있었다]

(03) 이것들(행각들) 안에, 병들어 있는 이들의 무리가 누워있었다. 맹인들의 [무리가], 다리 저는 이들의 [무리가], 혈기 마른 이들의 [무리가]. [그들은 물이 요동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04) 왜냐하면 주님의 천사가 가끔 연못 안에 내려오고 있었고 그리고 물을 요동치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물이 요동친 후에 먼저 안에 들어갔던 이는 건강하게 있게 되고 있었다. 어느 때든지 병으로 점유당하고 있던 이런 이들이라도 ]

(05) 그런데 거기에 자기의 연약함(병약함) 안에서 38들을 갖고 있으면서, 앓고 있는 어떤 한 사람이 있어왔다.

(06) 예수께서 누워있는 이이를 보신 후에 그리고 이미 그가 많은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아신 후에, 그분이 말씀하신다. 당신은 건강함으로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07) 병들어 있는 이가 그분에게 대답하였다. 주여, 나는 물이 요동치는 그런 때에 나를 연못 안으로 넣도록 하기 위한 사람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가고 있는 이런 그것 안에서 [같은 종류의] 다른 이가 나보다 앞서(먼저) 내려갑니다.”

(0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당신은 일어나고 있으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침상을 들어올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걸어가고 있으십시오.”

(09) 그러자 그 사람이 즉시 건강한 이로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침상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는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안식일이 저 날 안에 있어왔다.

(10)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병고침을 받은 채 있는 이에게 말하고 있었다. 안식일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침상을 들어올리는 것이 당신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11) 그런데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를 건강한 이로 만드셨던 저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침상을 들어올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걸어가고 있으십시오’”

(12) 그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당신은 들어올리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걸어가고 있으십시오라고 말했던 이인 그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13) 그런데 고침을 받았던 이는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있었다. 왜냐하면 군중이 그 장소 안에 있을 때에 예수께서 옆으로 피하셨기 때문이다.

(14) 이 일들 후에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그를 발견하신다. 그리고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보십시오. 당신은 이미 건강하게 된 채 있습니다. 당신에게 어떤 것도 더 심한 것으로 있게 되지 않도록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있으십시오.”

(15) 그 사람이 떠나갔다. 그리고 그가 유대인들에게 알렸다. 자기를 건강한 이로 만들었던 분이 예수라는 것을.

(16) 그리하여 이것 때문에, 안식일 안에서 그가 이 일들을 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고 있었다.

(17)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고 계시니, 역시 나도 일합니다.”

(18)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것 때문에 더욱 그분을 죽이려고 찾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오직 안식일만 허무시고 있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자기 자신의 아버지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이로 만들고 있으면서.

 

 

2022-10-19 설교방송수요[크기변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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