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08)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실례(1)(롬4:1~25)

by 갈렙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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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5()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 스물여섯번째주일)

[제 목] 로마서강해(08)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라함의 실례

[찬 송]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488장 이 몸에 소망 무언가

[말 씀] 4:1~25(신약 243)

[키워드]

아브라함의 칭의의 선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 아브라함의 순종과 칭의, 아브라함의 회개와 할례와 순종, 순종을 통한 칭의의 완성


1. 서론

로마서는 A.D.57년경 사도바울3차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 3개월간 머물 때에 쓴 편지다. 로마서는 편지구조상 3부분으로 되어 있다. 편지의 첫인사말에 해당하는 도입부(1:1~17)가 있고, 본론부(1:18~15:13)편지의 끝인사에 해당하는 종결부(15:14~16:17)가 있다.

본론은 다시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부분은 1:18~8:39부분으로, 기독교 구원론의 근간을 이룬다고 볼 수 있는 이신득의의 필요성과 원리와 그 결과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분은 9:1~11:36부분으로, 선민의 역사 가운데서 확인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섭리를 통해서 보여지는 이신득의의 진리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12:1~15:13부분으로서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 자의 바른 생활에 대한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특히 1:18~3:20까지는 인간의 보편적인 타락상과 이신득의의 은혜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그중에서 롬1:18~32에서 사도바울은 타락한 이방인들의 범죄의 실상과 더불어 그로 인한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에 대해 논증하였다. 이어지는 2:1~5의 말씀은 남을 판단하는 유대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경고하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2:6~16의 말씀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을 불문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인 보편성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17~29에서는 다시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구약율법을 소유한 유대인들의 교만과 위선 및 표면적 유대인의 무익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3:1~8에서는 유대인들에 대한 통렬한 지적에 따라 예상되는 유대인들의 의문과 궤변에 대해 설파한다.

오늘 3:9~20에서는 바울이 앞서 진술한 요약이자 결론으로서 모든 인간의 심각한 타락 및 심판 아래 처해진 인간 상황에 대해 선언하고 있다. 이는 이신득의 진리를 규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논리전개다. 즉 바울은 모든 인간이 타락하였으며 그로 인한 심판의 불가피함을 선언함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의에 이를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를 얻을 수 있다는 이신득의의 필요성을 논증한다. 그리고 3:21~26에서는 율법이외에 의를 얻는 새 길로 제시된 이신득의의 원리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3:27~31에서는 이신득의와 관련한 세가지 핵심사항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으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과 이신득의는 만인에게 차별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은혜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음은 율법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워준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로마서 4은 아브라함의 실례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행위와 무관하며 오직 믿음으로 되어지는 일임을 논증함으로써 이신득의 원리와 타당성을 입증한다.

 

 

2. 행위와 무관한 칭의(稱義) 및 아브라함의 사례(4:1~8)

1)본문내용(4:1~8)

첫째, 아브라함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음(1~3)

먼저 육신으로 유대민족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묻는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서 칭의(稱義)되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내세워 자랑할 만한 것이 없었음을 말한다. 이어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로 간주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밝힌다.

둘째, 하나님이 주시는 의는 행위의 공로가 아닌 은례로서 주어짐(4~5)

일한 자가 삯을 받으면 그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고 마땅히 받아야 할 품삯으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공로가 없을 자라 할지라도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그 믿음이 의로 간주될 것이라고 한다.

셋째, 행위의 공로가 없어도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된 자는 복됨(6~8)

행위로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사람의 행복을 다윗의 시편의 예로 들어서 제시한다. 곧 하나님께서 허물을 용서하시고 죄를 덮어주신 사람을 복되며, 주께서 죄가 없다고 인정해주시는 사람은 복된 자이다.

 

2)영적 교훈

첫째,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에 기인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데, 그 이유는 만약 사람이 행위로서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이라면 그는 자랑할 것이 있게 되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은 일한 것에 대한 일종의 품삯이 되기 때문이다(1~4)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는 처음의 과정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해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이 의롭지도 아니한데도 그를 의롭다고 여기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자신의 행위나 공로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둘째, 행위가 없음에도 의롭다고 간주되는 사람은 죄가 있음에도 그 죄를 용서받고 그 죄가 덮어진 사람이다. 이는 장차 속죄제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다(6~8). 그런데 여기서 인간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죄인임에도 의롭다하고 해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곧 칭의(稱義)는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칭의(稱義)의 완성은 회개와 순종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稱義)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모든 사람은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사람이다. 그는 간음을 저질렀고 살인교사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가 회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범죄한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래서 그가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게 되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용서의 은혜와 죄를 덮어주시는 은혜를 받고는 감격해서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시편 32편이다. 그는 거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여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나이다(삼하12:13)” 그는 즉시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변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권력으로 선지자를 해하지도 아니했다.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겸손히 엎드렸다.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짓지 아니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해 사람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에는 사실 죄인을 의롭다 칭하실 하나님은 이 일을 하시고자 자신이 친히 속죄제물이 되셨다)을 믿음과 그리고 하나님 앞에 잘못했음을 시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자를 복을 주고 모든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가지 못하고 성급하게 육체를 따라 행동함으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13년 동안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했고, 13년 후에 다시 그에게 나타나사 이름을 바꾸며 할례를 받으라는 말에 순종하여, 다시는 육체를 따라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할례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믿음에 결코 흔들리지 아니했다. 결국 1년 뒤에 아내 사래로부터 아들을 얻었고, 그후 25~37년 후에는 기꺼이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다시 말해, 칭의(稱義)의 시작은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칭의(稱義)의 끝은 회개와 순종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3. 할례와 무관한 칭의(稱義) 및 아브라함의 사례(4:9~12)

1)본문내용(4:9~12)

첫째, 아브라함도 이미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음(9~11a)

이와같이 바울은 허물과 죄를 사함받고 죄없다고 인정되는 축복이 할례자에게만 해당되는지 무할례자에게도인지 물음을 제기한다. 이에 대하여 앞서 밝힌 바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았음을 상기시킨다.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된 시점이 언제인지 즉 할례를 받은 후인지 무할례시인지 질문을 제기한 후에 무할례시에라고 강조하여 자답한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의인으로 인정된 후에 할례를 받은 것은 이미 무할례시에 인정받은 의를 확인하기 위한 표식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둘째, 아브라함은 할례와 무관하게 믿음으로 칭의(稱義)되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음(11b~12)

이처럼 아브라함은 무할례시에 의인으로 인정됨으로써 먼저 할례받지 않고도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된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은 후에 할례를 받음으로 할례자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육적으로 할례만 받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보였던 믿음의 발자취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2)영적 교훈

첫째, 할례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고자 했던 것과 이것을 인간이 믿음으로 받겠다는 표시를 하는 것으로, 중간에 잠깐 흔들리는 믿음을 견고케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조치이다.(9~10).

그렇다. 인간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출발하지만 그 믿음이 잠깐 흔들릴 수가 있다. 아브라함은 시간이 흘러도 아들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한 생각에 처음에는 조카 롯을 양자로 삼으려했고, 그 다음에는 집에서 길리운 자 다메섹사람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으려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상속자)가 될 것이다(15:4)”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래도 아브라함은 흔들렸다. 결국 그는 그의 아내의 말을 듣고 서자를 낳았다. 그가 바로 이스마엘이다. 그러자 그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떠나셨다. 무려 13년동안이나. 하지만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따라오는 아브라함,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의 자식을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줄 것이라고 하니까 그것을 기뻐하며 받아들인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오셨다. 그리고 그에게 맨 처음의 언약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몸에 안에 회개의 흔적을 가지라고 명령하였다. 그것이 곧 할례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할례란 그리스도의 할례로서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2:11-12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둘째, 할례라는 의식자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보증해주지 않으며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의 할례인 세례를 통해 우리가 죄된 삶을 살지 않을 것을 다시 다짐하고 그리스도와 맺은 언약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한다(9~12).

사람이 의롭다하고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시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인, 갈대아 우르에서 출발하던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해(85)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의롭다함을 얻었다(B.C.2080). 그리고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난 86세 때에 이스마엘을 낳았고, 또한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99세 때에 하나님의 방문을 받고 할례를 시행했으니, 아브라함이 칭의(稱義)를 받은 것은 할례를 받은 것보다 14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14년 전에 아브라함의 믿음을 다시 인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믿음을 따르는 이방인의 조상도 되며, 할례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조상도 된다.

 

 

4. 믿음의 의에 근거한 아브라함 언약과 아브라함의 믿음의 내용 및 칭의(稱義)의 대상(4:13~25)

1)본문내용(4:13~25)

첫째, 믿음의 의를 통해 수여된 세상의 후사에 관한 아브라함의 언약(13~16)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세상을 물려받을 후사가 되게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율법이 아닌 믿음의 의를 통해 곧 믿음에 의하여 획득된 의를 근거로 주어진 것이다. 만일 율법을 따라 사는 자들이 후사들이라고 한다면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약속은 무효화 될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진노를 초래할 뿐인데 그 이유는 율법은 오직 범범 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이 은혜에 의한 것이 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로써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을 포함하여 믿음에 속한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에게는 그 언약이 확고하게 보증되는 것이다.

둘째,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받게 만든 아브라함의 믿음의 실상(17~22)

창세기에 기록된 바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상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곧 부활과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셨다. 아브라함은 소망을 가질 수 없을 때에도 여전히 소망 중에 믿음을 가져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나이 100세가 되어 자신이나 아내 사라의 생식기관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지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믿음은 더욱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그의 미음을 의로 여기신 것이다.

셋째,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예수 믿는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칭의(稱義)(23~25)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하셨다는 구약의 기록은 그만이 아니라 장차 칭의(稱義)될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즉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신약의 성도들까지도 위한 기록이다. 그래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은 우리의 속죄와 칭의(稱義)를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2)영적 교훈

첫째,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약속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의 상속자(후사)가 되게 해주신다는 것이며, 이러한 근거는 율법이 아니라 믿음에 따르는 의이다(13~16)

이것은 일방적인 약속(에팡겔리아)이다. 우리의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께 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끝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답게 살지 아니한다면 그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구약에서는 사울왕이나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경우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하나님의 약속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죄를 깨닫게해주는 순간 그 자리에 엎드려 자신이 잘못된 상태에 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약속만을 굳건히 믿으며, 거기에 따른 행동까지 수반된다면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땅과 자손의 상속자가 될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상속자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을 오직 아브라함이 받은 할례를 자신이 행하는 것이라고 여기고서는 의식적인 부분에만 치우치고 말았다. 형식에만 치우치고 내용을 버린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할례를 받은 민족이었으나 결국은 버림을 받고 말았다.

둘째, 칭의(稱義)로 시작한 인간이 마침내 그 칭의(稱義)를 얻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많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한 대로 이루실 수 있는 전능자이시니, 우리의 부족한 상태를 바꾸어주실 하나님이심을 견고히 붙드는 것이다. 곧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려내시며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실 분이라는 것을 끝까지 굳게 믿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다(17~22).

만약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육체를 따라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다면 그도 역시 사울왕이나 홉니와 비느하스처럼 버림당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무리 중요하고 그에게 주어졌다 할지라도 그 약속을 깨뜨리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회개시켜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할례의 명령은 한 번으로 족해야 한다. 자꾸 하나님의 뜻을 떠나 인간적인 생각으로 나아가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기 십상이다. 다윗처럼 한 번 딱 이야기하면 깨닫고 고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칭의(稱義)의 시작과 성취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러한 칭의(稱義)의 획득은 결국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오늘날의 신약의 성도들도 해당되는 것이다(23~25)

칭의(稱義)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첫,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칭의(稱義)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은 아브라함처럼 특별한 자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이 칭의(稱義)의 복음을 듣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자기자신에 대한 회개가 병행된다면 그도 틀림없이 칭의(稱義)의 축복을 받아서 구원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둘째, 칭의(稱義)는 우리가 행위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포와 은혜로 주어지는 것인 만큼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은 우리의 수고와 책임이라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베푸신 이러한 칭의(稱義)의 놀라운 축복을 가볍게 여기고, 계속해서 육체를 따르는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버림받고 말 것이다. 칭의(稱義)가 하나님에 의해 일방적으로 은혜 가운데 주어진 것이지만 , 이것을 완성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곧 회개와 순종의 삶이다.


<로마서 4:1~25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1)감사와 회개

주여, 칭의(稱義)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칭의의 시작은 하나님이 하셨어도 칭의의 완성은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칭의를 받은 자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칭의를 회복하는 길은 오직 회개와 순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칭의를 받은 자라도 칭의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거역한다면 마침내 버림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칭의는 외적인 의식의 수행에 의해 시작되거나 보전되지 않고 오직 내면의 변화와 순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할례나 세례는 칭의를 받은 자가 마음을 새롭게 하는 도구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인간에게 칭의를 선물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희생되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흔들리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끝까지 순종하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징계가 임한 즉시 무릎을 꿇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외적인 의식으로 경건생활의 중심을 삼지 않겠나이다.

주여, 이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나이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한 번 받은 칭의를 구원의 완성인량 착각하게 만드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회개와 순종없는 칭의도 효력이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주님이 주신 칭의에 합당하게 행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칭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축복이자 선언이었구나.

2. 칭의의 시작은 하나님이 하셨지만 칭의의 완성은 우리가 해야할 몫이로구나.

3. 칭의를 받은 자라도 넘어질 수가 있구나.

4. 회개와 순종만이 칭의를 완성하는 도구로구나.

5. 외적인 의식이 결코 칭의를 주지도 못할 뿐더러 칭의를 유지시켜주지도 못하는구나.

6. 칭의의 값은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다운로드하기]  2015-11-25 로마서강해(08)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리함의 실례(롬41~2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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