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29일(수) 수요기도회설교(성령강림후여덟째주일)
[제 목] 갈라디아강해(01) 참된 복음과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1)(갈1:1~24)
[찬 송] 찬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찬 309장 목마른 내 영혼,
찬 330장 어둔 밤 쉬 되리니
[말 씀] 갈1:1~24(신약 302면)
[키워드] 갈라디아교회, 수신자, 발신자, 그리스도소영, 다른복음,사도직의신적기원,그리스도의계시,제1차예루살렘방문,베드로와야고보
1. 서론
1) 갈라디아서의 기본 이해
율법주의에 대항한 이신득의 교리의 강력한 변증 및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강조한 서신서다.
흔히들 갈라디아서를 '작은 로마서' 또는 '로마서 개요서'라고 말한다. 이는 갈라디아서가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이신득의(justification by faith)의 원리를 그 기본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이신득의의 원리를 진술하는 관점과 시각은 서로 다르다. 로마서는 비교적 이신득의의 원리 자체를 설명하고 있다. 반면에 갈라디아서는 율법을 지킴으로써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소위 율법주의와 대조하면서 이신득의 원리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신득의 즉 오직 믿음으로 의인의 지위를 얻고 동시에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율법에 대한 자유를 진술하고 있다.
이같은 차이는 그 기록 동기의 차이에서 자연스럽게 야기된 것이었다. 로마서는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제1차 독자로 상정하며, 즉 아무런 선이해나 기본 전제가 없다는 가정하에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인 이신득의의 원리 자체를 진술한 것이었다. 반면 갈라디아서의 경우는 일단 복음을 받아들여 이신득의 원리를 알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로 회귀한 데 대하여 이신득의 원리의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록된 일종의 변증서 (辯證書)인 것이다. 당시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에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는 부족하거나 아니면 기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아예 필요 없고, 구약 율법을 온전히 준수하여 스스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의 획책이 있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은 그러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혼란은 신구약 시대가 교체하던 때의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즉 당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구속 수난을 기점으로 하여 이제 갓 신약 시대가 도래한 상태였다. 그리하여 구약 계시의 정점인 율법과 신약 계시의 기록인 복음의 상호 관계에 대한 통시적인 이해가 전반적으로 정착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애초부터 이신득의의 원리에 대한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이를 확고히 변증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기록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갈라디아서는 바울 서신서 중에서도 가장 단호한 어조의 논리적 변증서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이러한 맥락하에서 먼저 수신자 문제와 관련하여, 본 서신은 남부 갈라디아(South Galatia) 지방 교회들의 성도들을 일차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는 본서의 수신지가 갈리아족들이 세운 옛 갈라디아 왕국의 지방 곧 앙키라(Ancyra), 페시누스(Pessinus), 타위움(Tavium) 등의 도시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북부 지방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행 16:6과 18:23이 이 지방에 대한 전도 활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러나 위두 구절이 북부 갈라디아 지방을 가리킨다고 확증할 수 없으며, 더욱이 이 지방에서의 바울의 전도 사역에 대해서 성경은 아무런 기록도 제공하지 않는다. 따라서 본서는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 이고니온(Iconium), 루스드라(Lystra), 더베(Derbe) 등을 중심한 남부 갈라디아 지방의 교회들을 수신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남부 갈라디아의 교회들은 사도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 때 바나바와 함께 고난을 무릅쓰고 세운 교회들이다. 비록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돌에 맞기까지 하였으나 (행 14:19), 이 지역의 다수의 이방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었으며 큰 기쁨과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였다(행 13:48, 51).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며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는 바(행 14:3), 많은 제자들이 생겨났던 곳이었다(행 14:21). 실로 갈라디아 교회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고난 중에 얻은 수고의 첫 열매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갈라디아 교회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가? 갈라디아 성도들이 바울이 전도한 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바른 복음의 진리에서 떠나 '다른 복음에 미혹되어 있었다. 이른 바 '다른 복음' 이란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할례 의식을 비롯하여 구약 율법을 준수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유대 율법주의적 가르침이었다.
그러면 '다른 복음' 을 전한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그들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을 그렇게도 급속히 변질시킬 만큼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는가? 행 21:20에는 믿는 유대인 중 율법에 열심 있는 자들 의 수가 수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자기만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과격분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즉 열성적인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은 멀리 이방인 지역에까지 나아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행 15:1)는 주장을 퍼뜨리며 돌아다녔던 것이다. 이처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물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유대 그리스도교적 진영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외에 할례 의식을 비롯하여 구약 율법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이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들에게 전도하였던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열등하다거나 사도적 권위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던 듯하다. 그런데 메신저 (messenger)의 권위가 흔들리면 메시지(message)의 권위 또한 흔들리게 마련인 법, 이신득의 원리를 핵심으로 하는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율법주의자들의 새로운 가르침에 의해 대체되었고, 그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마치 '다른 복음'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의해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은 뿌리째 흔들리는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처하였던 것이다.
본 갈라디아서는 이러한 상황하에, 이신득의(以信得義)의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게 된다는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된 서신이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이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에, 본 서신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을 위협하는 율법주의(legalism)에 대한 강력하고도 전투적인 변증(辨證)의 성격을 띠고 있다. 심지어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자신에게 보여준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들을 향한 애정 가득한 심정과 안타까움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그러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조차도 단호하고도 준열한 책망의 어조를 유지하고 있다.
거짓 교사들의 모함과는 달리, 바울의 사도직과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은 신적 기원 (divine origin)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모세 율법에 따라 할례를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율법의 속박과 저주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바울은 본 서신을 통해 일찍이 갈라디아인들에게 전한 바 은혜의 복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이 복음을 붙들어 율법에서 자유하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 자유를 누리라!”
어느 시대,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의로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간 사고의 보편적 경향이다. 그래서 단지 '믿음으로 의로워진다' 고하는 성경의 선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심지어 복음을 듣고 믿음을 지니게 된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월이 흐르면서 몇 가지 '종교적 행위들을 '신앙의 본질과 대체시키는 오류를 많이 범하고 있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 행위와 은혜의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혼동스러워하는 '갈라디아인들' 이 오늘날 교회에 얼마나 많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 본질과 가치를 바로 이해시키기 위해, 갈라디아서는 오늘도 말하고 있다.
2)갈라디아서의 내용 구조
갈라디아서의 내용 구조를 일반적인 서신의 형식에 따라 구분하면, 1:1~5의 도입부, 1:6~6:10의 본론부, 6:11~18의 종결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도입부 1:1~5에서는 발신자, 수신자, 축도로 된 인사말과 속죄의 제물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송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종결부 6:11-18에서는 할례주의자들의 이중성과 십자가 절대 신앙에 대한 결론적 훈계와 마지막 당부 및 축도를 다루고 있다.
한편 본론부 1:6-6:10은 내용에 따라 다시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주지하다시피 갈라디아서는 전체적으로 갈라디아 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바울이 이미 전한 바 있는 이신득의 복음을 변증하기 위한 서신이다. 바울은 이러한 본 서신의 중심 목적에 따라, 1:6-2:21에서는 이신득의 복음 전파자로서의 자기 변호를, 제3,4장에서는 이신득의 원리에 대한 정당성 변증을, 그리고 5:1-6:10에서는 이신득의로 인한 자유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먼저 1:6-2:21은 바울 자신의 사도직의 진정성을 밝히고 있으며, 이를 통해 바울이 전한 이신득의 복음의 진정성을 더불어 옹호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 및 자신이 전한 복음이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즉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것이며, 또한 자신이 전한 이신득의의 복음 역시 사람의 뜻에 따라 지어진 것도 사람에게 전수받은 것도 아님을 밝힌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기까지의 경위 및 회심 이후의 행적을 제시한다. 즉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이나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복음의 내용이 유대 교회 및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지도자들에게도 공적으로 인정받은 바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사도권을 확립하며 더 나아가 자신이 전한 이신득의 복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제3, 4장은 이신득의 복음의 정당성에 대한 신학적 변증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바울은 먼저 율법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갈라디아인들의 경험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의 전례를 통해 유대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 역시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되었다는 것과,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전수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 언약과 모세 율법의 차이에 대한 적절한 비교와 대조를 통해, 믿음의 약속에 비해 율법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더욱이 율법으로는 누구도 의롭게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저주 아래 처하게 된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변증하고 있다. 이러한 변증 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종이 아닌 아들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고 하고, 자유자로서의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5:1-6:10은 이신득의로 인한 자유의 바른 사용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먼저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에서 속량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freedom in Christ)를 누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가 육체의 소욕을 추구하는 방종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의 문제, 곧 자유 사용의 바른 방향 및 목적에 대해 교훈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자유를 첫째로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방향으로, 둘째로는 육체의 소욕이 아닌 성령을 따라 사는 방향으로 사용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타인 본위의 삶을 살 것에 대한 일반적인 권면들을 추가적으로 제시한다.
3) 갈라디아서 메시지 요약
가. 복음 사역자의 직무의 기원
바울은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이신득의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본 서신에서,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divine origin of apostleship)을 강조하고 있다. 메신저 (messenger)와 메시지(message)의 관계는 긴밀히 결속되어 있다. 메신저의 정통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메시지의 신빙성 역시 확보할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오늘날 목회자의 직무는 사도적 전통에 서 있으며, 따라서 목회자의 직무 역시 근본적으로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직무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역자만이 자신의 직무에 진정한 충성을 다할 수 있다.
나. 이신득의 복음의 기원
바울은 율법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의 사도직 뿐 아니라 자신이 전한 복음의 신적 기원을 밝히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고 하는 구원의 복음은 사람의 가르침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전수된 것도 아니며,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메시지의 기원이 하늘에 있다는 것만큼 메신저로 하여금 확신 있게 하며 또한 그 메시지의 진정성을 호소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복음의 기원이 하늘에 있다면, 결코 복음의 내용을 '다른 복음' 으로 대체하거나 변질시킬 수 없는 것이다.
다. 다른 복음은 없다!
바울은 본 서신에서 다른 복음이란 없으며,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른 복음’처럼 받아들여진 율법주의가 실상은 복음의 진리를 변질시키는 것에 불과함을 강변한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란 시대마다 옷을 바꾸어 입는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종교 다원주의 (religious pluralism)의 시대에, 기독교 복음은 여러 '다른 복음들 중 하나로 평가 절하되고 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로워진다고 하는 기독교 복음의 진리가 완고하며,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종교적 가르침으로 치부되며 공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각 종교 진영에서 말하는 모든 소리를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성경은 '다른 복음은 없다'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갈라디아서는 모든 시대에 성경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한 좋은 전투적 서신이다.
라. ‘이신득의(以信得義)
영원한 구원의 진리. 바울은 이신득의 복음의 정당성 변증을 위해 아브라함의 경우를 믿음에 의한 구원의 한 전형(典型)으로 제시한다. 즉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 사건은, 비단 아브라함 뿐 아니라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 역시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일에 대한 전형적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이건 사람은 구원을 얻기 위해 행위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구원의 문제에 관한 인간의 보편적인 사고(思考) 성향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신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생애에서나 지금 우리의 생애에서나, 하나님은 언제나 믿음을 보시고 인간을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마. 진리 수호를 위한 바울의 열정
본 서신의 집필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율법주의의 해악(害惡)에 의해 성도들의 신앙은 위기에 처했으며, 복음 진리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었다. 본 서신의 어조(語調)와 논리는 다른 어느 서신서 보다도 강렬하고 전투적이다. 본 서신의 행간(行間)마다. 복음 진리를 수호하려는 바울의 가쁜 숨결과 열정이 느껴진다. 독자들은 내용 뿐 아니라 행간을 통해 진리 수호를 위한 바울의 숨결과 열정을 느껴야 할 것이다.
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the law)
율법은 아브라함의 약속이 주어진 이후 그리스도께서 오시기까지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또한 그 기능과 목적 또한 제한적이어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자각하게 하여 그리스도께 나아가 믿음의 의를 얻도록 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의의 안내자일 뿐 의에 이르도록 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율법 아래 있는 동안은 인간은 자유자가 아닌 종이며, 저주 아래 있을 뿐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을 완전히 성취하셨다. 그리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처럼 의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본 서신이 강조하는 바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에 대하여 자유하게 되었으므로, 다시 종 노릇하지 말고 그 자유를 누리라는 것이다.
사. 성령과의 동행과 사랑의 섬김 - 자유의 방향과 목적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자유를 누리며 동시에 그 자유를 올바른 방향과 목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자유가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인가(freedom from what)?’와,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freedom for what)?’를 규정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이며, 그것은 곧 성령 안에서의 새 출발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유이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성령 안에서의 새 삶을 위한 자유(freedom for the new life in the Spirit)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가치와 목적을 아는 자는 결코 방종을 향해 치닫지 않는다. 자유를 자유되게 하는 성령과 동행하며, 기꺼이 사랑으로 '종 노릇하기 위해 그 자유를 포기하는 역설을 감행하기도 한다.
3. 발신자와 수신자 표기 및 송영으로 구성된 도입부(갈1:1~5)
1)본문내용(갈1:1~5)
첫째, 발신자, 수신자, 축도로 된 인사말(1~3절)
발신자로서 성부와 성자에 의하여 사도된 바울 자신과 동역자를 밝힌다. 수신자로서 갈라디아 지방의 여려 교회를 밝힌다. 성부와 성자께서 갈리디아 교회에게 은혜와 평강을 베푸시기를 축도한다.
둘째, 속죄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 대한 소영(4~5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해 자기의 몸을 희생하셨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영광받으시기를 기원한다.
2)영적 교훈
첫째, 사도의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적 직분이다(1절).
둘째, 사도를 도와 함께 동역하는 자들도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2절).
셋째, 구원은 이 악한 세상에서 탈출하는 것이다(4절).
넷째, 구원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으로 얻어지는 것이다(4절)
다섯째,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찬양받기에 합당한 존재다(5절).
엡5:25 남편들아
4. 다른 복음을 좇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책망(1:6~10)
1)본문내용(갈1:6~10)
첫째,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하나님을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좇는 것에 놀람(6절)
둘째, 다른 복음은 없으며, 다만 거짓교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려고 하고 있음을 따름임(7절)
셋째,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하여 저주를 선언함(8~9절)
비록 천사라도 바울 자신이 전했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을 선언한다. 이같은 선언은 전에 한 것으로 지금 다시 거듭하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누구라도 갈라디아 성도들이 이미 받은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을 재차 선언한다.
넷째,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단호한 자세를 밝힘(10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자신이 우선적으로 누구를 기쁘게 하여야겠느냐고 반문한다. 자신은 결단코 그리스도의 기쁨만을 일함을 천명함으로써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존엄한 책망의 의지를 시사한다.
2)영적 교훈
첫째, 구원의 길은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7절)
둘째, 하나님을 가장 진노케하는 범죄는 구원의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이다(8~9절).
셋째, 하나님의 종은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10절).
5. 바울복음의 신적 기원과 이방인의 사도가 된 과정의 신적 섭리(갈1:11~17)
1)본문내용(갈1:11~17)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바울복음의 기원(11~12절)
자신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지어낸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을 사람에게 전수받거나 배운 것도 아니다. 자신이 전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다.
둘째, 이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된 과정의 신적 섭리(13~16a절)
자신이 회심 전 유대교 신자였을 때에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한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신은 유대교의 골수신자로서 동료들보다 앞장 선 자였으며, 전승규례들을 지키는 일에도 열심히 있었던 자였다. 그러나 모태로부터 은혜로 자신을 택정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다록 하기 위해 자신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셨다.
셋째, 회심 직후의 아라비아 여행의 회상(16b~17절)
회심후 자신은 혈육과 상의하지도,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지도 않았다. 회심 직후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2)영적 교훈
첫째, 전도란 자신이 받은 복음을 가감없이 전달하는 것이다(11절).
둘째,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예수께서 직접 계시로 알려주신 것이다(12절).
셋째,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는 이미 모태에 잉태되는 순간부터 따로 구별하시며, 때가 되면 은혜로 부르시어 사용하신다(15절).
넷째,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보낸 그릇이다(16절).
다섯째, 주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택정함과 부르심이 있어야 한다(15~16절).
6. 제1차 예루살렘방문 당시의 게바 및 야고보와의 짧은 교제와 유대 교회들의 바울 인정(갈1:18~24)
1)본문내용(갈1:18~24)
첫째, 회심 후 제1차 예루살렘 방문 당시 게바 및 야고보와의 짧은 교제(18~20절)
회심후 3년반에 게바를 심방하기 위하여 비로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게바와 함께 보름을 유하였다. 그때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은 만나보지 못하였다. 자신의 진술이 하나님 앞에서 참임을 강조한다.
둘째, 예루살렘 제1차 방문후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음(21절).
셋째, 복음 전도자가 된 자신으로 인하여 유대교회들의 감사(22~24절).
유대교회들이 자신을 직접 대변할 기회는 없었다. 다만 전날 교회를 핍박하던 자가 이제는 복음을 전판하는 소식을 들었다. 유대교회들이 자신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2)영적 교훈
첫째, 바울의 복음은 게바나 야고보나 다른 사도들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계시로 깨달은 것이다(18~19절).
둘째, 하나님 앞에서라는 의식을 갖고 살아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20절).
셋째, 사람의 놀라운 변화는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23~24절).
< 갈라디아서 1:1~24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기독교의 강력하고 전투적인 변증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것 외에 할례나 율법준수와 같은 행위를 더하는 복음은 변질된 복음이요, 다른 복음이요, 가짜 복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바울의 사도직과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적으로 기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마땅히 주의 종은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하여 보내시며, 때가 되면 부르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과 동역하는 것은 사역의 커다란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도의 은사는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직분을 수행하는 은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람이 변화되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것만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다른 복음에 있는지 흔들릴 때가 있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오직 예수님만 구원자로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믿음과 회개만이 구원의 요소인 것을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다른 복음은 결코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주의 종과 협력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변질된 복음으로 미혹하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예수를 믿고 회개하는 외에 다른 구원의 요소가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자인 것을 인정하고 고백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갈라디아서는 율법주의에 대항하여 외치는 강력한 기독교 변증서로구나.
2. 할례와 율법준수는 결코 구원의 요소가 될 수가 없구나.
3. 바울의 사도직과 바울이 전한 복음은 신적 기원을 갖고 있었구나.
4. 하나님의 종은 만세전에 예정된 자로서 이 땅에 보내어지고 부르심을 받아 사역하는구나.
5. 한 사람이 변화되어 주님께서 귀하게 쓰임받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