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1(수) 수요기도회설교(대강절첫째주일)
[제  목] 요한서신강해(04) 적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찬  송] 찬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찬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 같이, 찬 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말  씀] 요일2:18~3:12(신약 389면)
[키워드] 적그리스도, 거짓말하는자, 영지주의, 기름부음, 마지막 때, 성결한 삶, 의를 행하는 자,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랑실천하는 자

 

 

1. 서론

. 요한서신의 기본 이해

1)제 목 : 저자의 이름 및 서신의 집필 순서를 반영한 헬라어 시내 사본을 따라 한글 개역 성경 역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각각 명명됨.

2)저 자: 사도 요한, 비록 서신 자체는 저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으나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한결같이 사도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은 모두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시기(A. D. 70~100)A. D. 90-95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됨.

4)수 신 자 : 요한일서는 소아시아 지역의 일반 성도들, 요한이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의 성도들을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부녀와 그 자녀들, 요한삼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의 일꾼인 가이오를 각각 수신자로 함.

5)내 용 : 요한일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및 의와 사랑의 계명 실천, 요한이서는 분별하는 신앙, 요한삼서는 선한 종들의 교제와 관련한 권면을 주요 내용으로 함.

 

. 요한서신의 배경 이해

요한 서신들은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와 더불어 일반 서신(general letters)’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는 특정 지교회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서신들과 달리, 보다 일반적인 대상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는 특징에 기인한다. 그런데 요한이서와 삼서가 특정 교회 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보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서신들로 분류된 것은, 오랫동안 이 서신들이 요한일서에 부가된 서신들이라고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당시 소아시아(AsiaMinor) 지역의 불특정 다수의 교회들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일반서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한편 세 편의 요한 서신들은 분명 각각 독립된 편지들이다. 그러나 이 세 편은 모두 다 바른 신앙 지식의 확립 이단에 대한 경계의 두 방면을 포괄한 정통 신앙의 강조예수의 제자요 성도로서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두 개념을 기본 공통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 편지들은 이같은 기본 주제를 각각 다른 양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본서에서는 이 요한의 세 서신들을 한 단위로 함께 조망하기로 하였음을 먼저 밝혀 둔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서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사도 요한이 이 서신들을 보낼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당시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사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유대 전쟁(A.D. 66~70) 발발을 계기로 에베소로 이주하였으며 30년 동안을 에베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며 숭배를 강요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A.D. 81-96) 치하의 박해를 제외하면, 요한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활동이었다.

물론 이 영지주의(Gnosticism)가 체계화된 것은 A.D. 2세기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A.D.1세기 중엽의 초대 교회 시대부터 소위 전영지주의자들(pre-Gnosticism)’이 발흥하여 초대교회의 순수 신앙을 위협하였다. 신약 성경 중에서 4복음인 요한복음과 바울의 목회 서신들, 그리고 특히 요한1,2,3서와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은 이런 영지주의의 도전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 1세기 말엽에 이르자, 영지주의적 사상으로 무장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점점 더 활발해졌으며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세력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노시스는 물론 일반적 지식을 가리키기도 하였지만 영지주의에 있어서는 특별히 신적 비의에 해당하는 영적 지식 곧 허망한 세상일 뿐인 이 육적 세상이 아닌 참 세상인 영적 세계에 대하여 비의적 계몽에 의하여 얻게 된 지식을 가리켰다. 즉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 세계영원하고 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되어 있으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인 바 이제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적 세계로 복귀함으로 소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에 속한 신적 의지로부터 계시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곧 영지(靈知)이며 이런 영지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적 우주관과 구원관을 가진 사상이 곧 영지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영지주의헬라 사상동방 종교들의 신비 사상, 그리고 소위 중간기 시대를 무대로 하여 생겨난 유대교(Judaism)기독교의 사상혼합된 일종의 혼합 사상으로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심지어 각 인물에 따라 그 사상과 체계가 달랐다. 때문에 영지주의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스스로 영지주의자라고 칭하면서 이원론 사상에 근거하여 물질은 무조건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며 인간이 이 악한 물질 세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계시되는 지식, 곧 영지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공통된 사상에 근거를 두는 일련의 무리들을 총칭하여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의 특징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unbiblical du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 및 성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 파생시키게 된다.

 

1)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비한 영적 지식에 의해 획득된다. 여기서 지식(gnosis)’이란 자신이 본래 신적 존재가 육체의 감옥을 이탈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하는 지식을 말한다.

2)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든지 (가현설), 아니면 예수라고 하는 한 뛰어난 인간에게 영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에 임하였다가 십자가 수난 전에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케린투스파).

3)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가혹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극단적 금욕주의).

4) 물질계는 원래 악한 것이므로 기존 세계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혀 잘못이 아니다(극단적 방종과 쾌락주의).

 

이상에서 보듯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도 있는 듯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전혀 상반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비록 요한 당시 이와 같은 영지주의 신화 체계가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2항과 4항의 내용을 요한일서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4:13: 3:4-9)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이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faith)과 윤리(ethics)의 양 측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것에 있었다.

요한서신의 첫번째 서신인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진직접적 목격자로서 성육신의 실재(實在)에 대해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단호히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정죄한다. 그리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하며 육체적 방종을 일삼고 죄를 짓는 것을 옹호하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것임과 죄를 범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임을 경고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빛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를 적극 행하며,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사도 요한은 일서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을 테스트할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신학적으로 (theologically) 참된 성도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둘째, 윤리적으로 (ethically) 참된 성도는 불의를 행치 않고 빛 가운데서 의를 행한다. 셋째, 사회적으로 (socially) 참된 성도는 형제에 대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독자는 자신이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무엇을 힘써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서신의 두번째 서신인 요한이서소아시아 지방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 성도들을 각각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한 익명의 부녀 및 그 자녀들을 수신 대상으로 보낸 서신으로서, 역시 거짓 교사들의 해악을 염두에 두고서 기록한 서신이다. 1세기와 2세기 동안에는 주로 순회(巡廻) 전도자들 및 교사들에 의해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다. 당시 성도들은 이러한 순회 전도자들을 집안에 맞아들여 여행에 필요한 비용과 물품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 역시 이러한 관행에 편승하여 성도들의 집에 침투하였으므로, 본 서신에서는 성도들이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여 집안에 들이지도,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성도들이 순회 전도자들을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은 분명 선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 분별없이 거짓 교사들을 환대하게 된다면 진리가 아닌 이단(異端)의 전파를 돕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요한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여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서신인 것이다.

 

요한서신의 세번째 서신인 요한삼서는 일서 및 이서와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먼저 수신자 문제에 있어서 삼서는 일반 교회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일서, 이서와는 달리 가이오(Gaius)라고 하는 한 특정 인물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는 일서나 이서와 달리 교회 내의 디오드레베(Diotrephes)라고 하는 한 악한 지도자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삼서는 앞의 두 서신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며, 그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요한이 파송한 순회 전도자들이 소아시아의 한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 교회의 독재적 지도자인 디오드레베는 그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치 않고 모욕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고자 하는 그 교회의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쫓기까지 하였다. 이에 요한은 그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인 가이오에게 보내는 본 서신을 통해 디오드레베의 문제를 언급하며 간접 경고할 뿐 아니라,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즉 요한삼서는 교만하고 독재적인 지도자를 경계하면서, 섬김의 지도력 (servant leadership)을 교훈하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요한서신의 내용 구조

 

1) 요한일서

요한일서는 전체를 한 덩어리로서 읽거나 특정 구절들을 통해서 은혜받기는 좋지만, 그 속에서 구조를 발견하고 분석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 서신이다. 우선 요한일서는 문안 인사와 본론 및 결론으로 구성되는 당시 그레코로만 서신들의 전형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주제 전개의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 바울 서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일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직선적(linear) 논리 순서가 아니라 순환적(circular)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치 한 소리가 들린 후 또 다른 소리가 뒤따르며 공명(共鳴)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요한일서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구조 분석이 가능한데, 이는 역으로 그만큼 명확한 구조 분석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구조 분석 역시 논리 전개상 전환을 이루는 뚜렷한 마디를 발견하고 그것에 기초했다기보다, 내용의 전체적 파악을 위해 불가피하기에 어느 정도 임의적으로 구분한 것임을 밝힌다.

먼저 1-2장은 하나님과의 교제 (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서신의 서두인 1:1-4에서 요한은 직접적인 목격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實在)를 증언하며, 그러한 자신의 증언은 수신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게 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토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어 1:5-2:11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 및 실천사항으로서, 성도는 빛 가운데에서 행하며, 혹 죄를 범하였을 경우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며, 또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어 2:12-29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를 멀리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3:1-4:6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요한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주를 대면할 장래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며 또한 그 소망을 간직하였기에 현재의 삶에서 성결하게 살아가야 함을 선언한다. 그리고 죄와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죄를 죄로 인정치 않는 마귀의 자녀들의 행태와 대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의를 행치 않으며 오히려 의를 적극 행하는 자들이어야 함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어 4:7-5:3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계명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온전한 사랑이 모든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더 나아가 보이는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입증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5:4-21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본 서신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으로서, 서두에서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에 대해 증언한 바 있는 요한은 이제 서신의 말미에 이르러 재차 이 문제를 반복 강조하며, 예수께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성도는 능히 세상을 이긴다는 것, 또한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본 서신의 주요 목적임을 밝힘으로써 (5:13) 성도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신의 마지막 종결 부분에서 요한은 신약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문안 인사나 축도를 생략한다. 대신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는 형제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것을 당부하고, 그리스도는 성도를 악에서 지키시는 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라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요한이서

13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요한이서의 내용 구조는 간략 선명하다.

먼저 1-4절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행함을 강조하는 문안 인사이다. 자신을 장로로 밝힌 저자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며, 수신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해 큰 기쁨을 표한다. 이어 5,6절에서는 사랑의 계명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을 격려하며 권하고 있다.

이어 7-11은 본 서신을 기록한 직접적 목적인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집으로 맞아들이지도 말고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이어 12, 13절에서는 조만간 수신자들을 직접 찾아가 면대할 계획임을 밝히며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상의 짧은 서신을 양분하자면 1-6절은 수신자들을 격려하며 사랑의 지속적인 실천을 권면하는 내용이고, 이하 7-13절은 사랑의 실천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고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3) 요한삼서

15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한삼서의 내용 구조 역시 요한이서와 마찬가지로 간략 선명하다.

우선 1,2절은 문안 인사로서, 수신자 가이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기를 축원한다. 이어 3-8절에서는 진리 안에서 행하며 특히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는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9,10절에서는 가이오가 속해 있는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요한이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지도 않고 그들을 환대하려는 성도들까지도 교회에서 내어쫓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책망하며 간접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11,12절에서는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당부하며, 참된 일꾼인 데메드리오를 추천한다. 마지막 13-15절은 마지막 문안 인사 부분이다. 여기서 요한은 서신의 내용이 간략한 것은 조만간 가이 오를 직접 방문할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밝히며 평강을 위한 축원 및 마지막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적그리스도들에 대한 경계와 정통 신앙 유지 및 주 안에서의 삶 권면(요일2:18~29)

1)본문내용(요일2:18~29)

첫째,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였음을 지적함(18)

지금이 종말의 때임을 밝힌다(18a).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의 출현에 대한 예언을 들은 것을 상기시키면서 이미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였음을 지적한다.

 

둘째, 참된 성도들과의 대조를 통한 적그리스도의 정체와 오류를 밝힘(19~23)

적그리스도들은 비록 성도의 무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자들이기는 하나 성도의 무리에 속하였던 것은 아니다(19a). 그들이 성도의 무리에서 이탈함으로써 그들이 본래 성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판명된다(19b).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진리를 모두 알고 있는 자들이다(20). 저자인 사도 요한이 이 서신을 기록하는 것은 성도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알고 있기 때문이며 다만 어떤 거짓도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확인해 주려는 이유에서다(21). 거짓말하는 자는 다름 아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로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이다(22).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부인하는 자는 아버지와 무관한 자이며 반대로 예수를 시인하는 자는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자이다(23).

C. 정통 신앙의 유지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권면함(24-29)

성도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애초에 들었던 복음을 간직해야 하며 그리할 때 그리스도와 하나님 안에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영원히 거하는 것이다. 이 서신의 기록 목적 중의 하나는 성도를 미혹게 하는 자들을 경계하기 위함이다(26). 성도들은 진리의 성령이 내주하여 가르치고 계시므로 진리에 관해 누구로부터도 다른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는 자들이다(27a). 따라서 성도들은 성령의 가르침을 따라 주 안에 계속 거해야 한다(27b-28b). 성도들이 주 안에 거하면 주께서 강림하실 때에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수 있음(28b).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시기에 누구든지 진정으로 의를 행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 자임을 알 수 있다(29)

 

2)영적 교훈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로서의 신앙과 생활에 대하여 권면하는 1:5-2:29 단락 가운데 마지막 단락인 본절부터 29절까지에서 사도 요한은 교회 안에 출현하여 성도들을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하며, 어떤 때에라도 정통 신앙을 견지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갈 것을 권면한다. 이러한 진술을 통하여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자가 빛에 거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임을 강조한다.

본문은 하나님과의 교제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고 있는 제1,2장 기사의 연속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각 연령층의 성도들을 향한 요한의 사도적 격려세상 사랑 경계 권면을 보도하고 있는 2:12-17에 이어 적그리스도에 대한 경계와 정통 신앙 유지 권면을 보도하고 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해 보면 18절에서는 이미 예언된 바 있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서 적그리스도(anti-Christ)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라는 뜻으로 세상 종말의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날 한 특별한 존재(살후 2:3)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부터 재림 사이의 역사 가운데 나타나 거짓 사설을 퍼뜨리는 이단들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여기서는 특별히 초대 교회 당시의 대표적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를 가리킨다. 이어 19-23절에서는 참된 성도들과의 대조를 통한 적그리스도의 정체와 오류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언급된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두 가지다. 첫째는 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들이라는 것이(19). 즉 적그리스도는 다른 일반 성도들과 동일하게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다가 복음을 잘못 해석하여 교회를 떠난 자들이거나 애초부터 교회를 붕괴시키기 위하여 사단이 심어 놓은 가라지 같은 존재들로 거짓이 드러나 교회에서 쫓겨난 자들을 말한다. 둘째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22), 당시 대표적인 이단이었던 영지주의는 소위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하여 예수의 신성 또는 인성을 부인하여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인하였다. 끝으로 24-29절에서는 정통 신앙을 유지하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특별히 요한은 이를 위하여 성도들에게 그들이 처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믿은 바 구원의 진리에 굳게 머물 것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여 그의 인도하심을 받고 인간적인 지혜나 지식으로 가르치는 자들의 교훈을 경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첫째, ‘마지막 때(호라)’라 함은 역사적인 종말의 시점이라는 뜻도 있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모든 기간을 가리키기도 한다(18).

둘째, 종말의 때가 되면 나타나는 것은 많은 적그리스도들이다(18). 적그리스도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3가지 특징은 첫째로는 그리스도인과의 정상적인 교제를 거부한다는 것이다(18~19). 둘째로는 참된 성경적인 교리들을 거부한다는 것이다(20~25). 셋째로는 성도들을 미혹한다는 것이다(26).

셋째, 요한서신에 나타나는 적그리스도는 당시 영지주의자들이다(22~23, 4:1~2). 영지주의자들은 당시 교회를 가장 어지럽히고 있던 자들로서, 육체의 악함과 영의 선함에 대한 이원론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아니라고 하였다.

넷째, 성도는 거룩하신 예수님으로부터 기름부음 곧 성령을 받은 자들이며(40:15, 14:26) 그리하여 적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다(20).

40:15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다섯째, 영지주의자들은 거짓말하는 자들인데, 여기서 거짓(프슈도스)이라는 말은 위조품, 모조품, 가짜라는 뜻으로, 비슷해보이지만 상이한 가르침을 뜻한다(21)

여섯째, 거짓말하는 자 곧 영지주의자들인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다(23). 이들은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부인하는가? 그들은 영인 선하고 육은 악한 것인데, 그리스도가 육체를 가진 예수님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한다. 그리스도가 잠깐 예수의 육체 속에 들어왔다가 죽기 전에 떠났다고 한다(케린투스). 그리고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곧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가 된다(10:30, 14:9~10). 왜냐하면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믿으나 예수님을 부인한다. 그러므로 이들도 적그리스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동등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고로 어느 한 쪽을 부인하면 다른 한 쪽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일곱째, 성도는 처음부터 들었던 정통복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24). 처음부터 들었던 것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요한 사도에 의해 직접 전달된 정통복음을 가리킨다. 고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붙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붙들고 있다면 이들은 아들 안에 그리고 아버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덟째,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약속한 것은 영생이다(25). 그런데 이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3:6 6 바울이 그 중 일부는 사두개인이요 다른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아홉째, 미혹케 하는 자들이란 바른 진리를 걷고 있는 자를 이탈시켜 탈선시키는 자들로서 영지주의자들이다(26).

열째, 사도요한이 말한 기름부음은 성령을 가리키는데,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받아서 성도에게 부어주시는 것이다(2:33).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열한째,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은 그분이 의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의를 행한다는 것이다(28~29).

열두째, 성도는 언제나 그때가 마지막 때다(18).

열셋째, 성도는 말씀 위에 서서 이단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19).

열넷째, 성령님은 우리로 진리를 알게 하는 진리의 영이시다(20).

열다섯째, 성도는 날마다 진리되신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21).

열여섯째, 가장 큰 거짓말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것이다(22).

열일곱째, 성도는 이미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고 있는 존재다(25).

열여덟째, 성도를 미혹하게 하는 자는 가까이 있다(26).

열아홉째, 성도는 성령의 가르침 안에 거해야 한다(27).

 

 

3.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도의 신분과 장래의 소망 및 현재의 성겷나 삶(요일3:1~3)

1)본문내용(요일3:1~3)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 자녀가 된 성도의 신분(1)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일컬음을 받는 자들이 되게 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지 못한느 것은 곧 그들이 하난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성도의 장래 소망 및 현재의 성결한 삶(2~3)

우리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면 우리도 그와같이 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그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뵐 것이기 때문이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주를 대면할 소망을 가진 자마다 현재의 삶에서 주님을 본받아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2)영적 교훈

앞서 요한일서 1-2장의 마디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었다면, 3:1-4:6의 마디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앙과 그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3:1-3에서 요한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주를 대면할 장래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며 또한 그 소망을 간직하였기에 현재의 삶에서 성결하게 살아가야 함을 먼저 밝히고 있다. 이어 3:4-24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고도 죄를 인정치 않는 마귀의 자녀들과 달리 불법을 행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진실한 마음으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들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어 4:1-6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과 교훈을 분별하여 배척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이상의 문단별 내용은 각각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전영지주의자들(pre-Ginostics)인 거짓 교사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unbiblical dualism)'이다.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성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 몇 가지 치명적인 오류들을 파생시킨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선 교리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부인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가 육체로 올 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들을 분별하는데, 영 분별의 기준은 바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그 리스도이심을 시인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밝힌다(4:2, 3).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교사들은 거짓 선지자이며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영지주의 이원론은 윤리적으로 두 가지 상반된 결과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곧 극단적 금욕주의 및 극단적 방종과 쾌락주의이다.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라는 관점에서 육체는 가혹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극단적 금욕주의가 파생된 것이며, 또한 물질계는 원래 악한 것이므로 기존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도덕적 방종과 쾌락주의가 파생된 것이다.

이에 대해 요한은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들은 거룩하신 주님을 만날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삶에서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함을 선언한다. 그리고 죄와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죄를 죄로 인정치 않는 마귀의 자녀들의 행태와 대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불의를 행치 않으며 오히려 의를 적극 행하는 자들이어야 함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마귀의 자녀들이 행하는 가장 대표적인 불의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시기와 미움이다. 시기와 미움은 곧 살인과 같은 맥락의 죄이다. 사도 요한이 마귀의 자녀들의 불의를 경계하며 형제를 죽인 가인의 살인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간이 자행하는 가장 심각한 죄는 곧 하나님의 계명 중 으뜸인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임을 깨우치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계로써 사도 요한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속한 자녀들은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 속한 자녀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신학적 혹은 교리적 차원에서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인가의 여부이다. 둘째, 불의를 합리화하지 않고 오히려 의를 행하기에 힘쓰는 자인가의 여부이다. 셋째, 하나님의 계명 중의 으뜸인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인가의 여부이다.

첫째,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의 신분을 가진 자는 장래에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을 소망해야 하며, 현재는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1).

둘째, 성도들의 영화로운 상태에 들어가는 시점은 그리스도의 재림이후 그리스도를 온전히 보게 될 때다(2). 영지주의자들은 단번에 즉각적으로 완전한 자로 변모된다고 속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에 완전해지는 것은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 이후에 완전한 상태로 변모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셋째, 성도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죄를 떠나서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3).

넷째, 정결함의 목표와 모델은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다(3).

다섯째, 미래의 소망을 가진 자는 현재에 삶 속에서 주님을 본받아 책임있는 윤리적 삶을 살아야 한다. 영지주의적인 이단은 자신들의 영은 이미 신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 완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아 경시하면서 윤리적인 삶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방종한 삶을 일삼고 있었다.

다섯째, 성도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1).

여섯째, 성도들은 그날에 이르러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2).

일곱째, 정결은 이 땅에 성도들이 마땅히 힘써야 할 덕목이다(3).

여덟째, 성도들은 오직 말씀과 기도로 깨끗해질 수 있다(3).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4. 불법을 행치 않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요일3:4~12)

1)본문내용(요일3:4~12)

첫째, 죄를 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임(4).

둘째,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는 죄에 탐닉하지 않음(5~7).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이며 그리스도 자신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5).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않으며 반대로 범죄하는 자마다 그리스도를 만나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이다(6). 성도들은 죄에 빠지도록 미혹당해서는 안되며 의로우신 주님처럼 의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7).

셋째, 마귀에게 속한 자는 범죄하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범죄하지 않음(8~10).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게 되는데 그것은 죄는 처음부터 마귀의 일이기 때문이다(8a).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이유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함이다(8b). 대조적으로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데,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고, 그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9). 바로 이러한 기준으로써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를 분별할 수 있다(10a). 의와 형제 사랑을 행치 않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다(10b)

넷째,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와 사랑을 행해야 함(11~12)

성도는 애초부터 들은 교훈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11). 성도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형제를 죽인 가인처럼 행해서는 안 된다(12a).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인 것은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벨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이다(126)

 

2)영적 교훈

본문은 하나님의 자녀 (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3:1-4:6 기사의 연속부분이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도의 신분과 장래의 소망 및 현재의 성결한 삶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 3:1-3이어, 4~12절은 법을 행치 않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다.

첫째,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을 크게 개의하지 않는 자는 이단들이다(4).

둘째, 불법이란 곧 법이 없는 상태 혹은 법을 깨뜨리는 상태를 가리킨다(4).

셋째, 예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를 들어올리어 없애셨다(5).

넷째, 예수께서 무죄하심으로 인하여, 첫째로 마귀를 파멸시킬 수 있는 근거를 가지셨으며, 둘째로 인간을 위한 완벽한 화목제물이 되셨으며, 셋째로는 죄를 극복할 수 있는 궁극적인 승리가 보장된다(5).

다섯째,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면 범죄하지 않는다(6). 여기서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습적이고 습관적인 범죄를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여섯째, 죄를 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이 진짜 신앙이며, 이것을 거부하는 자는 미혹하는 자다(7).

일곱째, 죄를 짓고 있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8).

여덟째, 마귀는 그의 시작부터(하늘에서부터) 죄를 짓지 시작했다(8). 그는 이미 인간이 창조되기도 전에 영계에서 타락했으며, 범죄했다.

아홉째,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들을 무효화시키기 위함이다(8).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오신 것이요, 이미 범죄한 것들을 자기의 피로 용서해주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열째,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는 첫째로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 있으며(벧전1:23, 1:18, 요일1:10), 둘째는 성령일 수 있다(3:5~8, 8:14, 5:16~23).

열한째,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들의 구분기준은 첫째로는 의를 행하는가, 둘째는 형제를 사랑하는가이다(10). 사랑과 의가 기준이 된다.

열두째, 가인은 의를 행하지 않은 자요 형제를 사랑하는 않은 자였다(12).

열셋째, 가인의 불의한 삶과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지속적인 것이었다(12).

열넷째, 믿을 때에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5).

열다섯째, 무죄한 자만이 인류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5).

열여섯째, 성도는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어서는 아니 된다(6).

열일곱째, 회개란 죄를 뉘우치는 것이자 죄에게서 떠나는 것이다(6).

열여덟째, 범죄에 대한 무감각은 마귀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올무다(8).

열아홉째, 성도는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난 자들을 가리킨다(9).

스무째, 성도 안에는 하나님의 씨가 들어있다(9).

스물한째, 의를 행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10).

스물두째, 형제사랑은 성도에게 생명과 같은 것으로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의 구분기준이다(10).

스물셋째, 교회는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느 사랑의 공동체다(11).

 

< 요한일서 1:1~4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누가 적그리스도이며 누가 거짓말하는 자요 불법을 행하는 자인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적그리스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는 거룩하신 예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고 진리를 아는 자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성도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도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와 같게 되기 위해서 반드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죄를 짓어 불법을 행하도록 꼬드기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예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자기 속에 하나님의 씨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의를 행하지 않고 형제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결국 마귀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성결한 삶과 의를 행하는 삶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제대도 실천하지 못했나이다. 용서해주소서.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거짓을 따라가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성결한 삶을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의로운 삶을 살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형제를 사랑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성결한 삶과 의로움 그리고 형제사랑을 실천하지 않아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죄를 짓고 있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성령을 따라가며, 의를 행하고, 형제 사랑을 실천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적그리스도가 되어 거짓말하고 불법을 행하고 있는 이단들은 지금도 존재하구나.

2.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로구나.

3. 성도는 그리스도의 재림 전까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

4.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가 하는 일 곧 죄짓는 일을 무효화시키기 위함이었구나.

5. 죄를 짓지 아니하며 의를 실천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구나.

6.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죄였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일서 2장 헬라어 직역

(0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들을 너희들에게 쓰고(기록하고) 있다. 이는 너희들이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만일 누가 죄를 짓는다면(범한다면), 우리는 아버지를 향하여(함께) 보혜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02) 그리고 그분은 친히 우리의 죄들에 관하여 화해제물(화목제물)이시다. 그런데 오직 우리에게 속한 것들에 관하여만이 아니라 오히려 역시 온 세상의 [죄에] 관하여도[니라].

(03) 그리고 우리는 이것 안에서, 우리가 [계속]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아온 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04) 내가 그를 안 채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그리고 진리가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한다.

(05) 그런데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계속]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사람 안에서 온전하게 된 채 있다. 이것 안에서 우리가 그분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06) 그분 안에 [계속] 머문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자는, 저분이 걸어다니셨던 것과 같이 역시 그 사람 자신도 그분과 같이 [계속] 걸어다니도록 [마땅히] 해야 한다.

(0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질적으로] 새로운 계명을 너희에게 쓰고 있지 않다. 오히려 너희가 처음부터(시작부터) [지금도] 가지고 있었던 바 옛 계명을 [쓰고 있다]. 옛 계명은 너희가 들었던 바 그 말씀이다.

(0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질적으로] 새로운 계명을 쓴다. 그분 안에서와 그리고 너희 안에서도 참된 것이다. 왜냐하면 어둠은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 빛이 이미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09) 그 빛 안에 [계속] 있다고 말하고 있는 이이지만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는 이제 어둠 안에 있는 것이다.

(10)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 자는 그 빛 안에 머문다. 그리고 그 사람 안에서 걸림돌(거리낌,실족함,)이 있지 않다.

(11) 그런데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는 어둠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둠 안에 걸어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가는 장소를 알지 못한 채 있다. 이는 그 어둠이 자기의 눈들을 멀게 하였기 때문이다.

(12) 아이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의 죄들이 그분의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용서된 채 있기 때문이다.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가 태초부터 있는 분을 알아온 채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긴 채 있기 때문이다.

(14) 어린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가 아버지를 알아온 채 있기 때문이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가 태초부터(시작부터) 있는 이를 알아온 채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다. 왜냐하면 너희가 [영적으로] 강하고(힘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물고 있으며 그리고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긴 채 있기 때문이다.

(15) 너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있어라.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고 있어라]. 만일 누구든지 세상을 [계속]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있지 않다.

(16) 이는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육체의 욕망과 눈들의 욕망과 이생(생애,생계,살림,재산)의 허풍떪(자랑)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부터 나온 것이 아니요 오히려 세상에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17) 그리고 세상도 지나가게 되고 그리고 그것의 욕망도 지나가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는 자는 영원히(그 시대까지) 머문다.

 

(18) 어린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시각이다. 그리고 적그리스도가 온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던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리스도들이 일어난 채 있다.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시각이라는 것을 안다.

(19) 그들이 우리에게서부터 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서부터 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에게서부터 있어왔다면 우리와 함께 [아직도] 머물러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그들 모두가 우리로부터 있지 아니한 것을 나타나게 되기 위함이다.

(20) 그러나 너희 자신은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기름부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너희는 모든 것을 알아온 채 있다.

(21) 너희가 진리를 알아온 채 있지 않다는 것을 내가 너희에게 쓰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알아온 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거짓말은 진리에서부터 있지 않기 때문이다.

(22) 만일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것을 부인하고 있는 자가 아니라면, 거짓말하는 자가 [대체] 누구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고 있는 이이가 적그리스도다.

(23) 아들을 부인하고 있는 모든 자마다 또한 아버지를 모시지(가지지) 못한다. 아들을 시인하고 있는 자는 역시 아버지를 모신다(가진다).

(24) 너희는 처음부터(시작부터) 들었던 것을 너희 안에 [계속] 머무르게 하라. 만일 너희가 처음부터(시작부터) 들었던 것이 너희 안에 머문다면, 너희도 역시 아들 안에 그리고 아버지 안에 [장차] 머물 것이다.

(25) 그리고 그가 친히 우리에게 약속했던 바 그 약속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다.

(26) 너희를 미혹하고 있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썼다.

(27) 그리고 너희는 그분으로부터 받았던 그 기름부음이 너희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너희를 가르치기 위한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분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들을 너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것은 진실하고(참된 것이며) 거짓이 있지 않는 것처럼. 그가 너희를 가르쳤던 것과 같이 그대로 너희는 그분 안에 [계속] 머물러 있어라.

(28) 그리고 자녀들아, 너희는 이제 그분 안에 머물러 있어라. 이는 만일 그분이 그분의 임재(오심) 안에서 나타나지게 되면, 우리가 담대함을 갖고 있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부끄럽게 되지 않기 위함이다.

(29) 만일 너희가 그분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면, 의를 행하고 있는 이마다 그에게서부터 태어나게 된 채 있다는 것을, 너희는 알고 있어라.

 

3

(01) 보아라. 너희들은 아버지께서 어떠한 종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 이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0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무엇으로 있을른지, 그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그분이 나타나진다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될 줄을 우리는 알아온 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이 계셨던 것처럼 [장차] 볼 것이기 때문이다.

(03) 그리하여 그분에 대하여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마다 그분이 깨끗하게 있는 것처럼 자기자신을 깨끗하게 한다.

(04) 죄를 짓고 있는 자마다 역시 불법을 행하고 있다(일삼는다). 그리하여 죄를 불법이다.

(05) 그리고 저분이 죄들을 [단번에] 없애기(들어올리기, 제거하기) 위하여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온 채 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죄(정관사없음)이 있지 않다.

(06)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고 있는 자마다 그를 본 채 있지 아니하며 그를 알지도 못한 채 있다.

(0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고 하고 있어라. 의를 행하고 있는 자는 저분이 의롭게 있는 것처럼 의로운 것이다.

(08) 죄를 짓고 있는 자는 마귀에서부터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처음부터(시작부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단번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마귀의 일들을 무효화시키기(없애버리기, 폐지하기) 위함이다.

(09) 하나님에게서부터 태어난 채 있는 자마다 [계속] 죄를 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하나님)의 씨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도 [계속] 죄를 짓는 것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에게서부터 태어난 채 있기 때문이다.

(10)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리고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그리고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마다 역시 하나님에게서부터 있지 아니한다.

(11) 이는 우리가 서로들을 [계속] 사랑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너희가 처음부터(시작부터)들었던 바, 그 소식이기 때문이다.

(12) 악한 자에서부터 있어왔던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역시 그는 자기의 형제를 살해했다. 그가 무엇 때문에 그를 살해했느냐? 그의 행위들은 악한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형제의 행위들은 의로운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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