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08(수) 수요기도회설교(대강절둘째주일)
[제 목] 요한서신강해(05) 형제사랑 실천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법
[찬 송] 찬 284장 오랫동안 모든, 찬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 찬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말 씀] 요일3:13~4:6(신약 391면)
[키워드] 형제사랑, 하나님의 영, 적그리스도의 영, 말과혀로사랑하지말라,예수님의성육신,진리의영과미혹의영,요한일서기록목적
1. 서론
가. 요한서신의 기본 이해
1)제 목 : 저자의 이름 및 서신의 집필 순서를 반영한 헬라어 시내 사본을 따라 한글 개역 성경 역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로 각각 명명됨.
2)저 자: 사도 요한, 비록 서신 자체는 저자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으나 초대 교회의 각종 전승들과 교부들의 서신들이 한결같이 사도 요한의 저작을 확증함.
3)기록연대 : 거의 같은 시기에 기록된 요한 서신들은 모두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기 전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시기(A. D. 70~100년)인 A. D. 90-95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됨.
4)수 신 자 : 요한일서는 소아시아 지역의 일반 성도들을, 요한이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의 성도들을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익명의 그리스도인 부녀와 그 자녀들을, 요한삼서는 소아시아의 한 지교회의 일꾼인 가이오를 각각 수신자로 함.
5)내 용 : 요한일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및 의와 사랑의 계명 실천, 요한이서는 분별하는 신앙, 요한삼서는 선한 종들의 교제와 관련한 권면을 주요 내용으로 함.
나. 요한서신의 배경 이해
요한 서신들은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와 더불어 ‘일반 서신(general letters)’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는 특정 지교회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바울의 서신들과 달리, 보다 일반적인 대상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는 특징에 기인한다. 그런데 요한이서와 삼서가 특정 교회 혹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보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서신들로 분류된 것은, 오랫동안 이 서신들이 요한일서에 부가된 서신들이라고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요한일서는 당시 소아시아(AsiaMinor) 지역의 불특정 다수의 교회들 및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서신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일반서신으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한편 세 편의 요한 서신들은 분명 각각 독립된 편지들이다. 그러나 이 세 편은 모두 다 바른 신앙 지식의 확립 및 이단에 대한 경계의 두 방면을 포괄한 정통 신앙의 강조와 예수의 제자요 성도로서의 사랑의 실천이라는 두 개념을 기본 공통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면서도 세 편지들은 이같은 기본 주제를 각각 다른 양상으로 표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본서에서는 이 요한의 세 서신들을 한 단위로 함께 조망하기로 하였음을 먼저 밝혀 둔다.
한편 신약 성경의 모든 서신서들은 일차적으로 각 서신서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각 서신이 누구에 의해, 어떤 수신자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그 서신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작업이다.
사도 요한이 이 서신들을 보낼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우선 당시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사역을 수행하고 있었다. 교회사 자료에 의하면 요한은 유대 전쟁(A.D. 66~70년) 발발을 계기로 에베소로 이주하였으며 약 30년 동안을 에베소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소아시아의 교회들을 돌보고 있었다. 스스로를 신(神)이라 칭하며 숭배를 강요하던 도미티아누스 황제(Domitianus,A.D. 81-96년) 치하의 박해를 제외하면, 요한이 마지막 남은 사도로서 대처해야 했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지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활동이었다.
물론 이 영지주의(Gnosticism)가 체계화된 것은 A.D. 2세기경이었다. 그러나 이미 A.D.1세기 중엽의 초대 교회 시대부터 소위 ‘전영지주의자들(pre-Gnosticism)’이 발흥하여 초대교회의 순수 신앙을 위협하였다. 신약 성경 중에서 제4복음인 요한복음과 바울의 목회 서신들, 그리고 특히 요한1,2,3서와 베드로후서, 유다서 등은 이런 영지주의의 도전을 직·간접적인 배경으로 하여 쓰여졌다. 즉 1세기 말엽에 이르자, 영지주의적 사상으로 무장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점점 더 활발해졌으며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협하는 중대한 세력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영지주의는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 ‘그노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노시스는 물론 일반적 지식을 가리키기도 하였지만 영지주의에 있어서는 특별히 신적 비의에 해당하는 영적 지식 곧 허망한 세상일 뿐인 이 육적 세상이 아닌 참 세상인 영적 세계에 대하여 비의적 계몽에 의하여 얻게 된 지식을 가리켰다. 즉 세상은 저급하고 무가치한 물질 세계와 영원하고 완전한 영의 세계로 이분되어 있으며 인생은 그 영혼이 육체에 갇힌 불완전한 존재인 바 이제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영적 세계로 복귀함으로 소위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 세계에 속한 신적 의지로부터 계시된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이 곧 영지(靈知)이며 이런 영지를 중심으로 한 이원론적 우주관과 구원관을 가진 사상이 곧 영지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영지주의’는 헬라 사상과 동방 종교들의 신비 사상, 그리고 소위 중간기 시대를 무대로 하여 생겨난 유대교(Judaism)와 기독교의 사상이 혼합된 일종의 혼합 사상으로 각 시대와 지방에 따라, 심지어 각 인물에 따라 그 사상과 체계가 달랐다. 때문에 영지주의가 어떤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스스로 ‘영지주의자’ 라고 칭하면서 이원론 사상에 근거하여 물질은 무조건 악하고 영혼만이 선하며 인간이 이 악한 물질 세계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이 세상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초월자로부터 계시되는 지식, 곧 영지를 소유해야만 한다는 공통된 사상에 근거를 두는 일련의 무리들을 총칭하여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성경의 계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신화 체계를 가지고 있는 영지주의의 특징을 아주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unbiblical dualism)’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은 기독교 교리 및 성도의 윤리적 생활에 있어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파생시키게 된다.
1) 구원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수의 특별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신비한 ‘영적 지식’에 의해 획득된다. 여기서 ‘지식(gnosis)’이란 자신이 본래 신적 존재가 육체의 감옥을 이탈함으로써 얻어진다고 하는 지식을 말한다.
2)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든지 (가현설), 아니면 예수라고 하는 한 뛰어난 인간에게 영적인 그리스도가 세례시에 임하였다가 십자가 수난 전에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케린투스파).
3) 인간의 육체는 악한 것이므로 가혹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극단적 금욕주의).
4) 물질계는 원래 악한 것이므로 기존 세계의 도덕 체계를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전혀 잘못이 아니다(극단적 방종과 쾌락주의).
이상에서 보듯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유사한 점도 있는 듯하면서, 근본적으로는 전혀 상반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요한 당시 이와 같은 영지주의 신화 체계가 완성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2항과 4항의 내용을 요한일서에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4:13: 3:4-9) 거짓 교사들의 주장이 이미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상당한 정도로 파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사도 요한 당시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의 활동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faith)과 윤리(ethics)의 양 측면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요한서신들을 기록한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활동을 경계하는 것에 있었다.
요한서신의 첫번째 서신인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만진’ 직접적 목격자로서 성육신의 실재(實在)에 대해 증언하며,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을 단호히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정죄한다. 그리고 물질은 본래 악하다고 하며 육체적 방종을 일삼고 죄를 짓는 것을 옹호하던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파괴하는 것임과 죄를 범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임을 경고한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빛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의를 적극 행하며,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참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자면, 사도 요한은 일서에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과 달리 하나님의 참된 자녀임을 테스트할 수 있는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신학적으로 (theologically) 참된 성도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둘째, 윤리적으로 (ethically) 참된 성도는 불의를 행치 않고 빛 가운데서 의를 행한다. 셋째, 사회적으로 (socially) 참된 성도는 형제에 대해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다. 이 기준에 비추어 독자는 자신이 진정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는지를 확인하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무엇을 힘써야 할 것인지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서신의 두번째 서신인 요한이서는 소아시아 지방의 한 지교회 및 그 교회 성도들을 각각 상징한 것으로 보이는 한 익명의 부녀 및 그 자녀들을 수신 대상으로 보낸 서신으로서, 역시 거짓 교사들의 해악을 염두에 두고서 기록한 서신이다. 1세기와 2세기 동안에는 주로 순회(巡廻) 전도자들 및 교사들에 의해 복음 전파가 이루어졌다. 당시 성도들은 이러한 순회 전도자들을 집안에 맞아들여 여행에 필요한 비용과 물품을 제공하였다. 그런데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 역시 이러한 관행에 편승하여 성도들의 집에 침투하였으므로, 본 서신에서는 성도들이 이러한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여 집안에 들이지도, 심지어 인사도 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성도들이 순회 전도자들을 따뜻이 맞아들이는 일은 분명 선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 분별없이 거짓 교사들을 환대하게 된다면 진리가 아닌 이단(異端)의 전파를 돕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요한이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여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서신인 것이다.
요한서신의 세번째 서신인 요한삼서는 일서 및 이서와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먼저 수신자 문제에 있어서 삼서는 일반 교회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일서, 이서와는 달리 가이오(Gaius)라고 하는 한 특정 인물에게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용에 있어서도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는 일서나 이서와 달리 교회 내의 디오드레베(Diotrephes)라고 하는 한 악한 지도자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삼서는 앞의 두 서신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이며, 그 상황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요한이 파송한 순회 전도자들이 소아시아의 한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 교회의 독재적 지도자인 디오드레베는 그 순회 전도자들을 접대치 않고 모욕을 주었다. 게다가 그는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고자 하는 그 교회의 성도들을 교회에서 내어쫓기까지 하였다. 이에 요한은 그 교회의 충성스러운 일꾼인 가이오에게 보내는 본 서신을 통해 디오드레베의 문제를 언급하며 간접 경고할 뿐 아니라,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즉 요한삼서는 교만하고 독재적인 지도자를 경계하면서, 섬김의 지도력 (servant leadership)을 교훈하는 서신이라고 할 수 있다.
다. 요한서신의 내용 구조
1) 요한일서
요한일서는 전체를 한 덩어리로서 읽거나 특정 구절들을 통해서 은혜받기는 좋지만, 그 속에서 구조를 발견하고 분석하기란 여간 힘들지 않은 서신이다. 우선 요한일서는 문안 인사와 본론 및 결론으로 구성되는 당시 그레코로만 서신들의 전형적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또한 내용에 있어서도 주제 전개의 과정이 뚜렷하지 않다. 바울 서신들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일서에서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직선적(linear) 논리 순서가 아니라 순환적(circular)으로 전개되고 있다. 마치 한 소리가 들린 후 또 다른 소리가 뒤따르며 공명(共鳴)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요한일서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구조 분석이 가능한데, 이는 역으로 그만큼 명확한 구조 분석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구조 분석 역시 논리 전개상 전환을 이루는 뚜렷한 마디를 발견하고 그것에 기초했다기보다, 내용의 전체적 파악을 위해 불가피하기에 어느 정도 임의적으로 구분한 것임을 밝힌다.
먼저 1-2장은 하나님과의 교제 (fellowship)의 관점에서 성도의 신앙과 생활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서신의 서두인 1:1-4에서 요한은 직접적인 목격자의 입장에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實在)를 증언하며, 그러한 자신의 증언은 수신자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갖게 하기 위함임을 밝힌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믿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토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어 1:5-2:11에서 요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 및 실천사항으로서, 성도는 빛 가운데에서 행하며, 혹 죄를 범하였을 경우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며, 또한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이어 2:12-29에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성도들이 경계해야 할 두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곧 세상을 사랑하지 말 것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를 멀리하라고 하는 내용이다.
다음으로 3:1-4:6은 하나님의 자녀(children of God)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요한은,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로서 주를 대면할 장래의 소망을 가진 자들이며 또한 그 소망을 간직하였기에 현재의 삶에서 성결하게 살아가야 함을 선언한다. 그리고 죄와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죄를 죄로 인정치 않는 마귀의 자녀들의 행태와 대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불의를 행치 않으며 오히려 의를 적극 행하는 자들이어야 함을 깨우치고 있는 것이다.
이어 4:7-5:3은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사랑의 계명 실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은 온전한 사랑이 모든 심판의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성도들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더 나아가 보이는 형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입증해야 함을 권면하고 있다.
마지막 5:4-21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실 본 서신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된 것으로서, 서두에서도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실재에 대해 증언한 바 있는 요한은 이제 서신의 말미에 이르러 재차 이 문제를 반복 강조하며, 예수께 대한 성도들의 믿음을 견고히 세우려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성도는 능히 세상을 이긴다는 것과, 또한 성육하신 그리스도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친히 증거하신 바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 본 서신의 주요 목적임을 밝힘으로써 (5:13) 성도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서신의 마지막 종결 부분에서 요한은 신약 서신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문안 인사나 축도를 생략한다. 대신 연약함 때문에 죄를 범하는 형제들을 위해 중보기도할 것을 당부하고, 그리스도는 성도를 악에서 지키시는 분이시며 참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라는 것을 선언함으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요한이서
총 13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이루어지는 요한이서의 내용 구조는 간략 선명하다.
먼저 1-4절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행함을 강조하는 문안 인사이다. 자신을 장로로 밝힌 저자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빌며, 수신자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에 대해 큰 기쁨을 표한다. 이어 5,6절에서는 사랑의 계명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것을 격려하며 권하고 있다.
이어 7-11절은 본 서신을 기록한 직접적 목적인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요한은 예수께서 육체로 임하신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은 집으로 맞아들이지도 말고 심지어 인사조차 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다.
이어 12, 13절에서는 조만간 수신자들을 직접 찾아가 면대할 계획임을 밝히며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상의 짧은 서신을 양분하자면 1-6절은 수신자들을 격려하며 사랑의 지속적인 실천을 권면하는 내용이고, 이하 7-13절은 사랑의 실천 중에서도 비진리에 대해서는 분별하고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3) 요한삼서
총 15구절의 짧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요한삼서의 내용 구조 역시 요한이서와 마찬가지로 간략 선명하다.
우선 1,2절은 문안 인사로서, 수신자 가이오에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기를 축원한다. 이어 3-8절에서는 진리 안에서 행하며 특히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는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어 9,10절에서는 가이오가 속해 있는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요한이 보낸 순회 전도자들을 환대하지도 않고 그들을 환대하려는 성도들까지도 교회에서 내어쫓는 디오드레베의 악행을 책망하며 간접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11,12절에서는 가이오에게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당부하며, 참된 일꾼인 데메드리오를 추천한다. 마지막 13-15절은 마지막 문안 인사 부분이다. 여기서 요한은 서신의 내용이 간략한 것은 조만간 가이 오를 직접 방문할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임을 밝히며 평강을 위한 축원 및 마지막 문안 인사로써 서신을 마무리하고 있다.
2. 형제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요일3:13~24)
1)본문내용(요일3:13~24)
첫째, 영생을 얻은 증거로서의 형제 사랑의 실천(13~15절)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성도들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서 영생에 들어간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랑을 행치 않는 자는 여전히 사망에 거하고 있는 자인 것이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며 살인하는 자는 영생에 그 속에 없다.
둘째,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1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며 우리는 이로써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역시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셋째, 형제 사랑의 구체적인 방법(17~18절)
만일 누가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울 마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도들은 말과 혀로 피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나는 실제적이고도 진실한 사랑으로써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넷째,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한 결과(19~24절)
성도는 진실한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주 앞에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일이 있는데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더욱 그러하실 것이다. 만일 자신에게서 책망할 것이 없다면 그러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무엇이든 기도한 대로 은총을 누리게 된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의 은총을 누리는 것은 바로 주의 계명을 지키고 주 앞에서 주의 기뻐하는 일을 행하는 자에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또한 그가 우리에게 주신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주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며, 또한 주께서 그 안에 거하는 온전한 연합의 상태를 누리게 된다. 성도는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주께서 자신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2)영적 교훈
요일3:13~24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것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요일3:1~4:6기사의 연속부분이다. 4~12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가진 성도들의 삶의 소극적인 특징으로서 마귀에게 속한 불진자들과는 달리 성도는 불법을 행치 말아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면, 이제 요일3:13~24에서는 앞의 논리를 보다 심화시켜 마귀의 자녀와 대별되는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삶의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특징으로서 형제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삶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먼저, 13~15절에서는 영생을 얻은 증거로서의 형제사랑의 실천을 권면하고 있고, 이어 16절에서는 형제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할 이유로서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대속제물로 내어놓으시기까지 하는 희생적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17~18절에서는 형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으로 나타나는 실제적이고도 진실한 사랑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끝으로 19~24절에서는 형제사랑의 계명을 실천한 결과로서 주 앞에서의 담대한 믿음, 기도의 응답, 주와의 온전한 연합 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고로 세상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는다(13절)
요15:18-20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마10:24-25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둘째, 형제사랑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것에 대한 증거다(14절). 즉 사망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이동한 증거다.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마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셋째, 형제를 사랑하고 있는 자는 거듭난 새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다(14절)
넷째,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자요, 영생에 그 속에 없다는 증거다(15절)
다섯째, 우리 믿는 이들이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16절).
여섯째, 주님이 베풀어주셨던 사랑은 이타적인 사랑으로 희생적인 사랑 곧 아가페였다(16절).
일곱째, 형제사랑은 말과 혀가 아니라 실제적이로 구체적인 것이라야 한다(17~18절).
약2:15-17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덟째, 형제사랑을 실천하는 자에게는 자기 마음을 책망할 것이 없다(19~20절).
아홉째, 자기의 마음을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3가지 은혜가 주어진다. 첫째로는, 하나님께 갖는 담대함이 있다. 둘째로는, 기도응답의 축복이 주어진다. 셋째는 주님이 우리 안에 거주하신다(21~24절).
요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열째,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신다(24절).
열한째, 성도들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으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13절).
열두째, 사랑은 구원받은 자의 표식이다(14절).
열셋째, 성도는 형제를 미워함이 곧 살인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15절).
열넷째, 하나님은 행위의 결과 뿐만 아니라 행동의 동기도 함께 중요하게 여기신다(15절).
열다섯째, 성도는 사랑이라는 경주에서 십자가라는 바통을 이어받은 자들이다(16절).
열여섯째, 형제사랑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17절).
열일곱째, 말뿐인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19절).
열여덟째, 성도는 자신의 한계 안에서 하나님을 가둬놓아서는 아니 된다(20절).
열아홉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구하는 것마다 받는다(22절).
스무째, 성도가 지켜야할 계명의 본질은 그분을 믿는 것이다(23절).
스물한째, 성령충만이 전적인 순종을 이룰 수 있다(24절).
3.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분별과 경계권면(요일4:1~6)
1)본문내용(요일4:1~6)
첫째, 성도들을 향한 영 분별의 당부(1절)
성도는 모든 영을 다 믿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먼저 시험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2~3절)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시인하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다. 반대로 예수의 성육신을 시인하지 않는 영은 하나님께 속한 영이 아니라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예언대로 적그리스도는 이미 세상에 활동하는 중이다.
셋째,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과 마귀의 영에 속한 사람을 분별하는 기준(4~6절)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적그리스도를 이긴 자들이다. 이는 성도 안에 거하시는 분이 세상에 있는 자 곧 마귀보다 강하시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인 거짓 선지자들은 이 세상에 속하였기에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에 속한 자들 역시 그들의 말을 듣는다. 한편 하나님께 속한 성도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도들의 교훈을 들으며,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자는 사도들의 교훈을 듣지 않는다. 이처럼 거짓 선지자들의 교훈을 듣는지 사도들의 교훈을 듣는지의 여부에 의해 진리의 영에 속하였는지 미혹의 영에 속하였는지를 분별할 수 있다.
2)영적 교훈
요일4:1~6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도의 신분 및 그것에 합당한 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3:1~4:6 기사의 종결부분이다. 여기서는 형제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삶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잇는 3:13~24에 이어,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분별과 경계권면을 보도하고 있다.
먼저, 1절에서는 수신자들을 향하여 영을 다 믿을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여부를 시험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어 2~3절에서는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 기준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시인하느냐의 여부다. 이 기준은 당시의 대표적인 이단인 영지주의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을 염두해둔 것이다. 끝으로 4~6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에 속한 사람과 마귀의 영에 속한 사람을 분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속한 사도들의 교훈을 듣느냐의 여부다.
첫째, 모든 영들은 그 영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를 시험해 보아야 한다(1절).
둘째, 모든 영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지 않는 것들은 악한 영들이다(1절)
셋째, 하나님의 영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요, 적그리스도의 영은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않는 영이다(2절).
넷째, 적그리스도의 영은 그리스도를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로서,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자다(3절).
다섯째, 이 세상은 사탄이 활동하고 있는 공간이다(3절).
여섯째, 믿는 이들 속에 내주하시는 예수께서 이 세상의 임금인 사탄보다 더 크시다(4절).
일곱째,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한 말을 하고, 그런 자들의 말을 듣는다(5절).
여덟째, 하나님을 아는 자는 사도들의 말을 듣는다(6절).
아홉째,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을 듣지만,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것으로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을 구분할 수 있다(6절).
열째, 무분별한 확신은 때로는 신앙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1절).
열한째, 건전한 신학과 신앙의 범주 안에서 신앙스타일의 차이가 있는 것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2절).
열두째,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시인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요소다(3절).
열셋째, 성도는 거짓 영들을 넉넉히 이기도록 구원받은 것이다(4절).
열넷째, 하나님께 속한 영과 세상에 속한 영의 구별은 그들이 하는 말을 통해서도 구분이 된다(5~6절).
< 요한일서 3:13~4:6에 나오는 명령과 선포 >
1)감사와 회개
주여, 형제 사랑은 어떻게 실천하며, 적그리스도는 어떻게 분별하는지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사망에서 생명 안으로 옮겨진 채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요 그 사람 속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주 예수께서 자기의 목숨을 버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사랑은 말과 혀로서가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의 마음이 책망받을 것이 없을 때에 우리의 믿음에 담대함을 얻게 되고, 구하는 바를 얻게 되며,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모든 영들은 어떤 영이라도 분별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을 부인하는 영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있는 사탄보다 크시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장자권 누림의 결단
주여, 이제는 형제를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형제를 미워하지 않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주께 책망받지 않도록 힘쓰겠습니다.
주여, 이제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3)장자권의 누림, 명령과 선포
1. 이제까지 나로 하여금 주님께서 핏값을 주고 산 형제를 미워한다고 하여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결박을 받으라.
2. 이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속이는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3. 내 영혼아, 깰지어다! 내 영혼아, 깰지어다!
4. 형제를 사랑하고 악한 영들은 분별할지어다.
4)오늘의 말씀의 핵심
1. 하나님은 빛이시자 사랑이로구나.
2. 성도는 생명과 진리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 사랑을 실천하는구나.
3. 자기 속에 영생을 가진 자라야 형제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구나.
4. 예수님의 성육신과 죽음을 부인하는 것이 적그리스도였구나.
5. 주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진리의 영에 속하고 그것을 거부하는 자는 미혹의 영에 속하는구나.
5)훈련의 기본원칙 열 번 복창
‘단순, 반복, 지속, 강행’
6)장자권의 발동, 명령과 선포 일곱 번 복창
‘있을지어다. 그대로 되니라, 좋았더라’ ‘복이 있을지어다.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요한일서 3장
(01) 보아라. 너희들은 아버지께서 어떠한 종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한다. 이는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0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장차] 무엇으로 있을른지, 그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만일 그분이 나타나진다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될 줄을 우리는 알아온 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이 계셨던 것처럼 [장차] 볼 것이기 때문이다.
(03) 그리하여 그분에 대하여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마다 그분이 깨끗하게 있는 것처럼 자기자신을 깨끗하게 한다.
(04) 죄를 짓고 있는 자마다 역시 불법을 행하고 있다(일삼는다). 그리하여 죄를 불법이다.
(05) 그리고 저분이 죄들을 [단번에] 없애기(들어올리기, 제거하기) 위하여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을 너희는 알아온 채 있다. 그리고 그분 안에는 죄(정관사없음)이 있지 않다.
(06)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고 있는 자마다 그를 본 채 있지 아니하며 그를 알지도 못한 채 있다.
(0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고 하고 있어라. 의를 행하고 있는 자는 저분이 의롭게 있는 것처럼 의로운 것이다.
(08) 죄를 짓고 있는 자는 마귀에서부터 있다. 왜냐하면 마귀는 처음부터(시작부터) 죄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단번에] 나타나게 되었다. 이는 마귀의 일들을 무효화시키기(없애버리기, 폐지하기) 위함이다.
(09) 하나님에게서부터 태어난 채 있는 자마다 [계속] 죄를 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하나님)의 씨가 그분 안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역시 그도 [계속] 죄를 짓는 것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에게서부터 태어난 채 있기 때문이다.
(10)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과 그리고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난다.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그리고 그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 자마다 역시 하나님에게서부터 있지 아니한다.
(11) 이는 우리가 서로들을 [계속] 사랑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너희가 처음부터(시작부터) 들었던 바, 그 소식이기 때문이다.
(12) 악한 자에서부터 있어왔던 가인과 같이 되지 말라. 역시 그는 자기의 형제를 살해했다. 그가 무엇 때문에 그를 살해했느냐? 그의 행위들은 악한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형제의 행위들은 의로운 것들로 있어왔기 때문이다.
(13) 형제들아, 만일 세상이 너희를 [계속] 미워한다 할지라도 기이히 여기지 말고 있어라.
(14) 우리는 형제들을 [계속] 사랑하기 때문에, 사망에서부터(에크) 생명 안으로 옮겨간 채 있다는 것을 알아온 채 있다. 사랑하지 않고 있는 이는 사망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15) 그의 형제를 미워하고 있는 자마다 살인자이다. 그리고 모든 살인자는 그분 안에 머물고 있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너희가 알아온 채 있다.
(16) 저분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것 안에서 사랑을 안 채 있다. 그리하여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그 목숨들을 두는(버리는) 것이 마땅하다.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재화)을 [계속]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궁핍함을 가지고 있는 자기의 형제를 지켜보고 있는데도, 그로부터(아포) 자신의 동정심들을 닫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그이(그사람)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로 혀로만 [계속] 사랑하지 말자. 오히려 행위와 진리 안에서 [계속 사랑하자]
(19) 그리고 이것 안에서 우리가 진리에서부터(에크) 있다는 것을 [장차] 알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그분 앞에서 [장차] 확신시킬 수 있을 것이다.
(20)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계속] 우리를 정죄(책망)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요 그리고 모든 것들을 아시기 때문이다.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의 마음이 [계속] 우리를 정죄(책망)하지 않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2) 그리고 만약 우리가 [무엇을] 구하는 바가 있다면 우리는 그분으로부터(아포)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우리가 그분 앞에서 기뻐하는 것들을 행하기 때문이다.
(23) 그리고 이것은 그의 계명이다. 곧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계명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계속] 사랑하는 것이다.
(24) 그리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있는 자는 그분 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안에서 우리에게 보내주셨던 바 그의 영으로부터(에크) 그분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요한일서 4장
(01)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모든 영을 믿고 말고 있어라. 오히려 너희는 영들이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지를 시험하고 있어라.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 안으로 나온 채 있기 때문이다.
(02) 이것 안에서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알고 있어라(아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채 있는 것을 [현재]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 것이다.
(03) 그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그가 온다는 것, 그것을 너희가 들은 채 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벌써 세상 안에 있다.
(0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다. 그리고 너희는 그들을 이겨온 채 있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 안에 있는 이보다 더 크시기 때문이다.
(05) 그들은 세상에서부터(에크) 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부터(에크) 발설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는다.
(06) 우리는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는다. 하나님에서부터(에크) 있지 않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한다. 이것에서부터(에크)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