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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하남 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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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정씨(河南程氏) 하남(河南)은 중국(中國) 화북지구(華北地區) 남부에 위치하는 지명(地名)으로, 북쪽은 하북(河北), 북동쪽은 산동(山東), 동쪽은 안휘(安徽), 남서쪽은 호북(湖北), 서쪽은 섬서(陝西), 북쪽은 산서(山西)의 각 성(省)과 접한다. 황하 중류 이남을 차지하며 북·서·남부는 산지로 쌓이고, 동방 평야에는 북에 황하, 남에 회하(淮河)가 흘러 수륙 교통이 편리하고 옛부터 한(漢) 민족의 활동 중심지였기 때문에 중원(中原)이라고도 한다. 정씨(程氏)의 선계(先系)는 원래 중국(中國) 황제(皇帝)의 후손(後孫) 백부(伯符)에서 시작되며, 그의 45세손 원담(元潭)이 신안 정씨(新安程氏)로 분적(分籍)하였고, 원담의 31세손 우(羽)는 하남 정씨(河南程氏)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우(羽)의 18세손 사조(思祖)는 노국공주(魯國公主)가 입국(入國)할 때 공한림(孔翰林)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려 충정왕조(忠定王朝)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지냈고, 공민왕(恭愍王) 때 추성보리공신(推誠輔理功臣)·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졌으며, 식읍(食邑)을 하사(下賜) 받았으므로 후손들은 사조(思祖)를 동래조(東來祖)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繼承)하여 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人物)로는 조 헌(趙 憲)의 제자인 억강(億綱)이 당대에 뛰어났다. 그는 학문(學問)과 기절(氣節)이 뛰어난 선비로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하여 충주(忠州) 달천(達川)의 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하였고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되어 훌륭한 가문을 빛냈다. 춘한(春漢)은 선조(宣祖) 때 문과에 급제하여 풍천 현감(豊川縣監)을 거쳐 공조 참판(工曹參判)에 올랐으며, 이복(履福)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다. 또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역임한 연성(連城)과 공조 참판(工曹參判)을 지낸 진발(振發)과 진록(振錄)·부쾌(敷快) 등이 당대에 뛰어나 이름을 떨쳤으며, 대홍(大泓)·계홍(桂泓)·처근 (處根) 등은 다같이 이조 참판(吏曹參判)을 역임하여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을 지낸 병우(炳宇)와 함께 하남 정씨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하남 정씨(河南程氏)는 남한(南韓)에 총 1,906가구, 8,04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하남(河南) 정(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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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정석환외 六人 | 광주 | 1979 | 001-979-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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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정씨(河南程氏) 유래
인물 고려시대에 중군부사정(中軍副司正)을 지낸 정유덕(程有德)을 비롯하여 전중판(殿中判) 시사(侍史)를 지낸 정광(程廣), 판윤(判尹)을 지낸 정유연(程有連), 부사(府使)의 정유통(程有通), 소용장군(昭勇將軍)의 정급 등의 인물이 있다. 과거급제자(조선시대) 정문섭(程汶燮, 1848 戊申生) :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고종7년(1870) 식년시 삼등(三等)* 모두 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생원진사시 1명)
세거지 -전남 담양군 봉산면 대추리 본관 연혁 본관소재지 : 중국(中國) 하남성(河南省) 인구수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하남정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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