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에서 복음 안으로(갈5:1~6)

by 갈렙 posted Sep 0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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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youtu.be/DUprB3BaeyQ
날짜 2015-09-06
본문말씀 갈라디아서 5:1~6(신약 307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율법주의자와 복음 안에 거하는 자의 차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함, 그리스도의 의에 감사하는 삶, 남을 정죄함,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음, 율법주의자와 복음안에거하는자의 결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중에도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미 복음 안에 들어왔는데, 다시 율법 안으로 되돌아가서 신앙생활하려는 자들이 있는 것이다. 대체 이들은 무엇 때문에 복음 안에서 거하지 않고 율법 안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신앙생활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의 최후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한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하는 자와 복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자의 차이는 대체 어떤 것일까? 오늘 이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집중적으로 생각해보도록 하자.


  먼저,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란 어떤 사람인지부터 살펴보자.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란 구약의 성문화된 율법을 지켜 행하려는 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유대인처럼 살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이미 복음을 듣고 구원 안으로 들어왔으나 계속해서 율법아래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사도바울도 이런 자들에 대해서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갈4:21)"라고 지적하고 있다. 갈라디아교회에도 이방인이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믿은 자이지만 여전히 어떤 율법적인 규례를 지켜야 직성이 풀리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주의자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이들의 특징은 자기자랑을 한다는 것과 남들을 잘 정죄한다는 것이다. 

  먼저 첫번째로 이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의 목적은 오직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기 일색이라는 점이다. 즉 들은 자기가 행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만족해한다는 점에서는 그리 나쁠 것 같아 보이지 않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꼭 떠벌러서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고 싶어한다는 것이 그들의 특징이다. 그렇다. 이들은 오직 사람의 시선을 살핀다. 그리고 오직 자기의 의로운 행위를 드러내려고 한다(마6:1~2,5). 그러므로 이들은 자기가 행한 일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서운해서 살 수가 없다. 만약 자기가 한 일이 주보에 안 나오거나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다시는 뭔가를 행하려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자들은 반드시 자기 행한 것을 남이 알아주어야 행복함을 느끼는 자다. 그렇다. 이들은 행위만족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물론 신앙의 행위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혹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상당히 경건한 자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자기가 만들어놓은 규례를 따라 그것을 지키고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자기가 한 일이 하나님 앞에 있으면 너무나 기뻐하고 좋아하지만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을 자랑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풀이 죽어서 산다. 이러한 자를 예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 들려준 말씀으로 비추어보면 꼭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들은 남들도 잘 정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자랑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이들은 자기자랑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의 행위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왜 그렇게 행하지 않느냐며 핀잔을 준다. 자기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남을 정죄하는 것이다. 사람은 믿음의 분량에 따라 어떤 행동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예를 들어보자. 자기는 십일조를 하는데 남들은 십일조를 안 하고 있으면, 그는 신앙도 뭣도 없는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아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가치기준의 잣대를 남에게 들이내밀어 남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규례를 자신이 지키지 아니하면 자신도 힘들어할 뿐만 아니라 남도 용납할 수가 없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기보다는 남의 허물을 들추어내기에 바쁘다. 자신의 들보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티끌을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율법아래에 있는 하는 자들은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로 삼으라고 주신 것이지 남을 정죄하라고 주신 것이 아닌 것이다.

  둘째, 이들은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않고 어떤 규례를 좇아 행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은 또다른 인격적인 통제장치가 주어진다. 그것은 곧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믿는 자들 안에 거하시어 어떻게 행할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하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으나 율법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은 성령의 통제를 거부하고 율법의 규례와 같은 것들을 정해놓고 그것을 행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성령을 좇아 행하지 아니한 댓가는 참혹하다. 그들의 삶에 대부분 육체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보다 남들이 더 잘 하면 시기심과 질투심이 불타오른다. 그리고 그 사람을 거기에 끌어내리고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으려고 한다. 또한 성령의 통제를 받지 아니하므로 10년 20년 신앙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성품이 달라지지 않는다. 금방 혈기를 부리고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혹 자기가 10년 20년이상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성품이 달라지지 않고 있다면 이 사람은 틀림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규례에 따라 행하는 율법주의자인 것을 알라.

 

  하지만 복음 안에서 거하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은 다르다.

  첫째, 이들은 자기의 행위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베푸신 은혜만을 생각하여 믿음으로 행동한다. 이들도 분명히 주 앞에 드리는 행위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율법의 행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를 행한다. 이들도 선한 행위를 하나님 앞에 드리지만 그것을 통해 결코 자신을 드러내려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이 항상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인 중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해하지 않는다. 자기의 믿음의 행위로 자기의 의를 쌓으려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자기자신을 구원해주신 예수님 때문에 오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의로 인해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그래서 주님이 어떤 큰 일을 해도 주께 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교회의 목사님이 알아주지 않아도 행복한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총에 비하면 백만분지 일 아니 천만분지 일도 감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주께서 주님의 의를 나에게 전가해주심으로 자신이 의롭다칭함을 받게 된 것에 대해 너무나 감사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는 결코 자기의 행위를 드러내려 하지도 않고 자랑하려 하지도 않는다. 할 수만 있으면 숨겨버린다. 꼭 산상수훈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감추어 리는 것이다(마6:3~4). 이들은 그래서 오직 예수님만 드러낸다. 다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을 기쁨으로 여긴다.

  둘째,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자기자신을 돌아보아 자기를 더 잘 다듬어간다는 것이다. 자기자신이 규례를 지켰느냐 안 지켰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이 아직까지도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육체를 따라가는 모습이 있다면 즉시 십자가로 가서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며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고 죽음에 넘기우려 한다(미16:24). 그리고 무슨 일이 발생하면 다 자신의 잘못이 크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요 자신이 더 조심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니 이렇게 복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령의 열매가 맺힌다. 성품도 달라지는 것이다. 온유와 겸손이 베어나온다. 오래참으며 절제의 열매가 동시에 같이 맺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율법주의 자들과 복음 안에서 사는 자들의 최후의 결과는 어떠하며 그 차이는 무엇일까?

  똑같이 예수믿고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이지만 율법주의자들과 복음 안에서 사는 자들이 차이는 현격하다. 그들의 최후가 판이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가 아무리 많은 업적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천국에서 상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이 땅에서 사람들로부터 상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자기를 드러내어 칭찬을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음 안에서 사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면 엄청난 상급을 받게 된다. 영광의 면류관도 쓰게 될 것이다. 그는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이요, 예수님만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그 중심을 아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그들에게 상급으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 갚아주시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만약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빨리 회개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라.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음에 넘기우라. 그래서 자기의 옛사람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하라.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추라.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 하나님께 했다면 그것을 만족하라. 나는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을 살라. 그러면 하늘에서 놀라운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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