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다(고전9:19~27)

by 갈렙 posted Oct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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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vuGV--r2l0w
날짜 2015-10-25
본문말씀 고린도전서 9:19~27(신약 27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구원과 사명의 상관관계, 사명은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에 필요한 것, 사명을 받은 자의 받을 더 큰 축복, 사명자와 충성, 구원과 상급의 상관관계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은 구원과 상급을 따로 각각 따로 분리한다. 이를 테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다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진술이 맞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것과 구원을 받는 것은 정말로 상관이 없는 일일까? 오늘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과 구원의 상관관계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하자.

  오늘날 그리스인들에 있어서 '사명'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그것을 잘 감당하면 좋은 것이고 감당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 일 없는 것인가? 사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개인적인 명령으로서 우리 자신이 꼭 해야 할 임무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러한 사명을 깨닫는 자도 많지 않으며 사명대로 사는 사람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사명을 잃어버린 시대라고나 할까?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었다는 말을 듣기가 매우 어렵다.

  사람이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든 깨닫지 못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는 누구나 개인적인 사명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도바울도 그러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이었다(고전9:15).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과연 그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당시 바울은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고백한 적이 있다.

고전9:19~23[표준새번역]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0 유대 사람들에게는 내가 유대 사람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21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율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22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내가 약한 사람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23 나는 복음을 전하려고 이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복음이 주는 복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그랬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얻도록 애를 썼던 것이다. 그는 이미 유대교에서  벗어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구원하고자 유대인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이방인처럼 살아야 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자.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천국에서 상급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곧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만약 사도바울이 그것을 상급이라고 여겼다고 한다면, 그는 아마도 그것을 중간에 포기하든지 도망치든지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수고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는 그 사명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사명완수를 상급으로만 여기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목숨처럼 여기고 그 일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사명을 알고서 그 사명대로 사는 사람은 과연 어떤 복을 받게 되는 것일까? 적어도 2가지 이상의 복을 받게 된다. 하나는 적어도 그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보다 더 먼저 알고 그 일에 뛰어들었기에 다른 사람보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더 많아지는 복을 받게 된다. 죽기 일보 직전에 주님을 알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무수한 죄들 때문에 그만 회개하지도 못한 채 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더 일찍이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이뤄가는 사명자로 사는 것은 구원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자들이여, 자신이 그러한 사명자인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왜냐하면 그 일을 감당하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더 구원받을 가능성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괜히 나만 사명을 받았나하면서 사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들보다 먼저 구원경륜을 알고 그러한 사역에 일찍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는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경륜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상죄를 짓고 살다가 그만 죽을 무렵이 되었는데도 회개하지 못하게 되면 그의 영혼은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남들보다 먼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가? 그러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사명대로 살아가는 자가 받는 또 하나의 복은 만약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완수한다고 가정할 경우 그가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사명없이 턱걸이로 구원받는 사람이 사명을 잘 감당한 후에 구원받은 사람과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똑같겠는가?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천국에 이른 자가 훨씬 더 상급이 큼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주님께 바쳤으며, 주님의 수고를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있는가? 그렇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만큼 하늘에서 받을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어여삐 여기시고 나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사명자들이여, 자고하지 말라. 하나님으로부터사명받은 자가 그만 자고하다가 넘어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맡았지만 그것을 감당하다가 그만 스스로 교만해져 넘어진 자가 수두룩하다. 차라리 하나님의 경륜도 모르고 죽는 경우가 더 나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약의 사울왕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되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백성으로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가 왕이 된 초반에는 얼마나 겸손했고 충성스러웠는지 아는가? 하지만 그가 왕이 된 후에는 그는 쉽게 타락해버렸다. 그는 나중에는 자신의 왕적 권리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종인 다윗을 죽이는 데에 모든 힘을 썼다는 사실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울은 그가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서 사명을 받았지만, 종국에는 자살이라는 비참한 결말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사명자들이여, 사명을 많이 맡을수록 더욱 더 겸손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욱 더 큰 사명을 맡은 자일수록 주님의 뜻에 순복하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알았던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만 멸망에 떨어지는 수욕을 당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큰 사명을 받은 자일수록 하나님의 뜻에 어긋날 경우 엄한 심판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명을 받은 상태에서 사명자는 그 순간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인만큼,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경우에 그를 향한 하나님의 문책은 엄해질 수밖에 없다.

  당신도 혹시 사명자인가? 그럼, 당신은 진정 복된 자임을 알라.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지금 당신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쓰시려고 그 임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명을 받아 그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자신이 받을 구원과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곧바로 자신의 구원을 이뤄가는 하나의 과정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주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한 믿음이 없이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라. 그럼에도 우리는 사도바울처럼 적어도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여기며 그것을 완주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명감당하다가 조금이나마 잘못되면 교만해지기 쉬워지며 그러다가 구원으로부터 떨어져나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사명을 받은 자인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겸손하라. 그리고 주님 말씀에 순복하라. 그러면 당신은 결국에 구원도 이룰 것이고, 또한 하늘에서 받을 상급도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2015-10-25 사명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다(고전9;19~27).ts_00022544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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