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견인교리, 과연 성경의 토대위에 세워진 것인가(요10:22~29)_2018-07-29

by 갈렙 posted Jul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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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ZOZSp3dCN_c
날짜 2018-07-29
본문말씀 요한복음 10:22~29(신약 164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성도의 견인교리, 칼빈의 예정론, 성경적인 예정론, 구원탈락가능성, 구원취소가능성, 구원은진행형,구원은명령형,완료형구원은없다

성도의 견인교리는 칼빈주의의 5대교리 가운데 하나로서 가장 중요한 핵심 교리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은 자는 어찌하든지 환난과 핍박과 고난을 받덜파도 다 이겨내도록 도와주시고 그 믿음을 보존하시어 반드시 그를 구원하신다는 교리다. 참으로 은혜스러운 교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믿고 따라가는 정통교리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면 큰 일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미신을 따라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은 칼빈의 5대교리 중에서 성도의 견인교리를 지지해주는 성경구절이 무엇인지를 직접 찾아보고, 그 구절들이 정말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씀하는지를 헬라어원문을 비교해가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무엇인가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정반대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의 문제에 있어서 우파니 좌파니 하면서 양대진영으로 나누인채 서로 아웅다웅한다. 이들은 똑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는 것을 볼 때면,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느냐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짐작케 해준다. "성도의 견인"이라는 이 교리도 그 중에 하나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한 번 한쪽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자는 좀처럼 다른 쪽의 시각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늘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성경은 절대 애매하지 않고 정확하게 어떤 뜻인지를 표현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로서 기록된 것 같다. 특히 헬라어는 더 그렇다. 우리말 한글성경이나 영어성경으로 볼 때면 애매한 표현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성경을 보면 애매한 표현이 하나도 없다. 영어성경에서조차 애매하게 표현된 것들을 바로잡아준다. 특히 어떤 교리를 정하는 본문으로 쓰는 성경구절에 있어서는 우리는 보다 더 정확히 원문성경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영 엉뚱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성도의 견인교리를 성경원문으로 통해서 제대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면 성도의 견인교리가 과연 성경의 토대위에 만들어진 교리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성도의 견인교리는 어떤 교리인가?

  성도의 견인교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세전에 선택받은 성도는 은혜의 상태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다(구원을 상실할 수 없다)는 칼빈주의의 5대교리 중에 하나를 일컫는다. 이 교리를 칼빈주의자들의 표현으로 그대로 옮겨보게 되면 이렇다. "한 번 선택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된 자들은 전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결코 타락할 수 없으며, 끝까지 확실히 견인되어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존하심을 받아 영원히 구원얻는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견인(堅忍, perseverance)"이라는 한자어는 이끌어간다는 표현이 아니다. '굳은 견'자에다가 '참을 인'자가 사용되어, 성도가 수많은 환난과 역경 그리고 미혹으로부터 굳게 참고 견디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 구원으로 선택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교리는 "성도의 견인"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견인"이라고 해야 더 옳은 표현인 것처럼 보인다. 어찌되었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은 자를 반드시 구원에서 미끄러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존하여 천국까지 데려간다고 하는 교리가 바로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의 핵심이다.

 

3.  성도의 견인교리는 어떤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성도의 견인교리를 무엇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것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4가지 것들을 주장하기 위함이다.

  첫째, 사람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계속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 번 구원을 받으면 이미 구원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이 교리의 근거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하심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신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를 빼앗아갈 수는 없다.

  넷째, 한 번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행하신 일이므로 영원히 안전하다. 그 어떤 존재도 그를 해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미 구원받은 자의 구원은 절대 다시 철회되거나 취소될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그는 무늬만 그리스도인 즉 가짜 그리스도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이 혹시 타락한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인 타락인 것일 뿐 그는 다시 회복되어 구원받을 것이다.

 

4. 성도의 견인교리에 사용되는 성경구절은 과연 합당한 구절들인가?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은 어떤 성경구절을 근거로 이와같은 4가지 주장을 펼치는 것인가? 이제는 칼빈주의자들이 말하는 성경구절을 살펴보고, 그 성경구절이 의미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헬라어성경원문을 통해서 살펴봄으로서, 성도의 견인교리가 과연 성경의 토대 위에 만들어진 교리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요 계속된 구원인가? 칼빈주의자들은 한 번 구원을 얻은 것은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이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하고 계속된 구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요5:24의 말씀과 엡2:8~9을 인용한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칼빈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보내셨던 분(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성경이 말한다는 것이다(요5:24). 뿐만 아니라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인데, 이미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은 상태에 있다 즉 구원은 이미 얻은 것으로 완료형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럴 때에는 헬라어원문성경으로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요5:24의 말씀과 엡2:8~9의 말씀을 헬라어원문에서 직역해보겠다.

요5:24[직역]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있는 자 그리고 나를 보내셨던 이를 믿고 있는 자는 영생(시대의 생명)을 가진다(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심판 으로 가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사망으로부터 [밖으로] 생명 안으로 옮겨진 채 있다는 것을.

엡2:8-9[직역] 왜냐하면 너희는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채로 [현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들로부터 [밖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부터다]. 행위들로부터가 아니다. 누구든지 [단번에] 자랑하지 못하도록.

  먼저, 요5;24의 말씀을 보자. 어떤 자가 영생(정확히는 '시대의 생명')을 가진 자인가? 주님께서 들려주시고 있는 말을 듣고 있는 자이면서 동시에 주님을 보내셨던 분 곧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말씀을 듣고 있으며, 주님을 믿고 있는 상태에 있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만약 말씀을 듣고 있다가도 듣지 않게 되거나 믿다가도 믿지 않는 자가 된다면 그는 영생을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요5:24의 말씀은 그렇게 말씀을 듣고 있고 주님을 믿고 있는 자가 이미 영생을 가진다는 표현인 것이지 이미 가져버렸다는 표현이 아니다. 한 마디로 듣고 있고 믿는 있는 자가 영생을 가지고 있다는 진술 혹은 선언인 것이다. 그렇다. 이 표현은 영생을 이미 가져버렸다는 완료형 구문이 아니라, 현재 그렇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진술이나 선언인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본문 어디에도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가 영생을 가진다는 표현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빈주의자들은 이 본문을 하나님께서 이미 만세전에 영생을 주시고 작정한 자가 영생을 가졌다고 하는 놀라운 표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은 이 본문에 나오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이 칼빈의 교리를 이 본문에 끼워 맞춰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엡2:8~9의 말씀에서도 비슷하다. 이 본문에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로 구원을 받으며, 반드시 우리 인간의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본문은 이미 구원을 받아버렸다는 완료형 구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성경도 이 본문을 현재완료(have been saved) 구문으로 잘못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본문은 현재완료구문이 아니라, 현재구문에 해당한다. 동사 직설법 현재 능동태 구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엡2:8~9의 앞부분의 동사는 직설법 현재 능동태 구문인 것이다. 하지만 이 본문에는 동사가 하나 더 들어 있다. 보조동사가 하나 더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보조동사가 분사 완료 수동태 구문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에 동사가 2개가 있는 것이다. 본동사(에이미)는 직설법 현재 능동태 구문이고, 보조동사(소조)가 분사 완료 수동태 구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을 헬라어에 나와있는대로 번역한다면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은혜로 믿음을 통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채로 [현재]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따라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채로 있다고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태가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중간에 혹시 믿음에서 파선해 버린다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사례가 디모데전서와 히브리서에 나온다). 믿음을 통하여 이미 구원을 받은 채로 있는 사람이라도, 중간에 믿음을 포기하거나 잃어버린다면 그는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는 것이다(물론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에 구원을 상실했다가 얻었다가 한느 것이 아니라 이미 얻은 구원을 죽을 때에 상실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받기를 거부하고 믿음을 계속해서 붙잡지 않는다면 구원을 받은 채로 있는 자라도 결국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표현인 것이다. 이 본문은 완료형을 말해주고 있지 않으며, 현재 상태를 진술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상태가 어떻게 될른지는 알 수 없다는 표현이다.

 

  둘째, 이 교리의 근거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하심이라는데 그것이 정말 바른 진술인가?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가 중간에 실족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를 끝까지 오래 참아주시며 그를 이끌어주신다는 것이 옳은 것이다. 한 영혼을 아끼고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크고도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한 사람의 구원을 영원히 보증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은 무슨 성경구절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인가?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다.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로 크고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어떤 자를 그리스도의 사랑(35절) 혹은 하나님의 사랑(39절)에서 끊을 수 없다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는가? 그 대상은 바로 "우리"다. 그럼,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인가?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면, 우리는 28절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자"라고 나오며, 17절에서는 "고난도 달게 받게 받으려 하는 자"다. 그리고 더 앞으로 나아가면, 육신대로 살지 않고 그의 마음이 육신 안에 있지 않는 자이며, 육신을 따라가지도 않는 자이자, 생각을 육신에 두지도 않는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더 앞으로 나아가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런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가? 그런 자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아야 한다면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실제적으로 구원받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앞의 있는 조건들을 다 만족시키고 사는 자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과 더불어 회개하는 자가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하나님으로부터 그를 빼앗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맞는 진술인가? 먼저 이 진술의 가정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성도들"이라는 말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그러한 개인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예정한 성도들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성령의 은혜를 받아 믿고 회개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켜내는 자들인 것이지 다른 누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도, 그것도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어떤 개인을 구원하기로 예정해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의 지식에 이르시기를 원하신다(딤전2:4).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를 구원안으로 초청하신다. 그러나 구원으로 초대받아 구원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영원토록 그가 그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구원은 믿음과 회개로 얻게 되는 것인데, 믿다가도 믿기를 거부하는 자가 있을 수 있고,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자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칼빈주의자들은 무슨 성경구절을 근거로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인가? 그것은 요10:28~29의 말씀을 가지고 그렇게 주장한다.

요10: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데, 한 번 하나님으로부터 그 영생을 받은 자는 영원히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도 그러한 자를 예수님의 손과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생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하나님으로부터 건드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진술도 전제가 잘못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하셨지, 만세전에 영생을 얻기로 예정된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생 얻는 "그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문맥을 봐야 한다. "그들"은 앞에 나와 있는 사람에 대한 인칭대명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앞구절에 나와 있다.

요10:27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신다고 하는 그들은 사실은 "양들"이다. 그런데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으며, 그분을 계속해서 따르는 자는 주님의 양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주님의 양이 된 자들에게 주님께서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을 얻는 자들은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하나님께서 예정한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듣고 있고 주님을 계속해서 따르고 있는 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칼빈주의자들은 만세전에 예정된 자라고 언급하는 것인가? 그것은 29절에 그러한 말씀이 나와있다는 것이다. 먼저, 요10:29의 말씀을 보자.

요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확히 누구냐 하면,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자(요6:37)라는 것이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 요10:29의 말씀과 요6:37의 말씀은 헬라어성경을 직역한 것이 아니라 왜곡한 번역들이기 때문이다. 그렇아면, 요10:29과 요6:37의 헬라어원문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 그것은 "남성 복수(그들)" 혹은 "남성 단수(~는 자)"가 아니라, '"중성 단수(~는 것)"다.

요10:29[직역] 내 아버지께서 [이미] 내게 주신 채 있는 것(중성,단수)은 모든 것들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아무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탈취할 수 없다.

요6:37[직역]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중성,단수)은 나를 향하여 다다를(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향하여 [계속해서] 오고 있는 자는 내가 결코 [밖으로] 내쫓지 않을 것이다.

  먼저, 요10:29의 말씀을 보자.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주고 있는 사람이 별도 있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칼빈주의자는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 없다. 그런데 헬라어원문은 그 대상이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말개역성경은 "그들(남성,복스)"로 번역해놓았다. 완전히 오역한 것이다. 아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이미 주신 채 있는 것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세상에 있는 어떤 것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으려고 나아오고 있고 주님을 따라옴으로 구원얻기를 원하는 자를 주님께서도 붙잡아주기 때문에 아무런 존재도 아버지의 손으로부터 빼앗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미 아버지로부터 예수님에게 주어진 채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한 것들로서는 "권세, 능력, 지혜, 성령, 영광, 이름..." 등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요6:37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도 우리말 개역성경은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자라고 번역해놓았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중성 단수로서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고 있는 모든 것은 사람이 아니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권세, 능력, 지혜, 성령, 영광, 이름..." 등인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에게 계속해서 도착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받아서 구원얻기 위해 예수님에게 나아오고 있는 자들을 결코 내쫓지 아니하고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요10:29이나 요6:37은 아버지께서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된 자를 예수님에게 보내주신다는 본문이 아니다. 그러한 말씀은 성경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한 번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지로 행하신 일이므로 영원히 안전하며, 그 어떤 존재도 해칠 수는 없다는데 그것은 성경적인 진술인가? 이것에 합당한 성경구절이 성경에 있는가?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구절이 있다는 것이다.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요10:28~29의 말씀, 롬8:35,38~39절의 말씀 그리고 딤후4:18의 말씀 등이 있다는 것이다. 앞의 두 본문은 이미 살펴보았으므로, 딤후4;18의 말씀을 살펴보자.

딤후4: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딤후4;18[직역]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부터 [장차] 구해내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그분의 하늘에 속한 왕국 안으로 [장차] 구원하실 것이다. 그분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아멘.

  칼빈주의자들은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지 만세전에 구원하기로 예정한 자들이라면 그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실 것이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한 번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의지로 행하인 일은 번복되거나 취소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선언이 아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에 대한 의지를 바울 자신이이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바울의 소망을 표현한 것이지, 그것이 그대로 되어지는 완료형의 표현도 결코 아니다. 혹시 아무리 그렇게 소망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면, 그는 구원에서 얼마든지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구원탈락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 성경말씀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말씀하고 있는 것인가? 얼마든지 있다. 아니 많이 있다. 특히 히브리서, 디모데전후서, 베드로후서, 유다서, 야고보서에 많이 들어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마태복음과 요한계시록에도 그것이 들어 있다.

  우리는 사실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믿어야 하며, 성경이 말씀하는 곳까지만 가야 한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은 것까지 일부러 말할 필요는 없다고 보며, 그것을 뛰어넘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성경이 말씀하는 곳에 가서 멈추어야하고, 거기에 나온 말씀대로 믿으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탈락에 관한 성경말씀이 있는가를 주의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이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하면 구원에서 탈락되지 않도록 할까를 알아보고 자신이 믿음과 회개로 받은 구원을 천국에까지 가져갈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는 구원탈락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성경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히브리서를 보자. 히브리서에는 구원탈락의 가능성을 무려 5번이나 경고하고 있다.

[첫번째경고] 히2:1-3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율법)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두번째경고] 히3:7-14, 4:1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히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세번째경고] 히6:4-6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네번째경고] 히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다섯번째경고] 히12:15-17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이제는 둘째로, 디모데전후서에 나오는 믿음에 파선한 자 혹은 믿음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었다는 증거를 살펴보자.

딤전1:19-20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딤전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6:21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딤후2:11-12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딤후3:7-8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이제는 셋째로, 다른 서신서의 말씀들 곧 베드로후서, 유다서, 야고보서을 살펴보자.

벧후2:4-10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벧후2:20-21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유1:5-7 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약2:12-13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이제는 넷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마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2:21-23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2: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6. 나오며

  우리는 성경말씀에 더해도 안 되고 빼도 안 된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더하면 재앙을 받는다고 하셨고, 빼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린다고 하셨다(계22:18~19). 우리는 교리에 따라 각색된 복음을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우리에게는 성경 66권이라는 영감으로 기록된 성령의 기록물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66권의 말씀을 통해서 성경이 말씀하신대로 믿고 말씀하신대로 믿고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성경은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 번 얻은 구원이 안전하다거나 취소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다. 아니 거꾸로 말한다. 진 자는 생명책에서 이름이 기록된 자라도 그 이름이 지워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핍박을 못이겨 주님을 부인하는 자는 주님께서 그날 그의 이름을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님을 믿는 것과 회개하는 삶을 철저히 살아가야 한다. 구원은 믿음과 회개로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로 예정해놓지 않아서가 아니다. 주님이 이미 준비해두었다가 우리에게 거저 은혜로 주신 복음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만 거절하기 때문이다. 복음을 믿고도 죄를 여전히 짓고 있지만 그 죄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가 우리의 영혼의 발못을 붙잡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셨다가  가신 전능자 예수님만 의지하고 그분의 피로 날마다 우리 죄를 씻어내야 한다. 그런 자가 용서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다.

 

2018년 7월 29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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