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가 일으키심을 받는다는 말인가?(고전15:42~44)_2020-04-16(목)

by 갈렙 posted Apr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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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묵상입니다.
제목: 부활이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가 일으키심을 받는다는 말인가?(고전15:42~44)_2020-04-16(목)

https://youtu.be/63XiaoVDj2I

 

1. "부활"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세 가지 헬라어 단어는 무엇인가요?

  신약성경에 보면 "부활"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3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아나자오(αναζαω)"라는 동사입니다. "아나자오"는 "아나(again)"에다가 "자오(live)"가 합쳐진 단어인데, 그 뜻은 "다시 살아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딱 2번 나옵니다(눅15:24,롬7:9). 그리고 두번째는 "아니스테미(ανιστημι)"입니다. 이 단어는 "아나(again)"에다가, "히스테미(stand)"가 합쳐진 단어로서, "다시 서다, 일어서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총107회 사용되었습니다(눅24:7,요20:9,향17:3,살전4:14). 물론 주님과 성도의 부활에 대해 사용한 단어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에게이로(εγειρω)"입니다. 이 단어는 "일어나다. 일으켜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총136회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부활과 관련지어 사용될 때에는 항상 수동태로만 쓰여서 "일으키심을 받다" 혹은 "일으켜지다"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마27:63, 롬6:9, 로전15:4,15,딤후2:8).

 

2.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이라는 용어에 어떤 단어를 사용했나요?

  신약성경에서 그리고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주님과 성도들의 부활에 대해 이 단어를 사용할 때에는 반드시 수동태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이 동사는 "완료수동태" 구문이나 "현재수동태" 구문 혹은 "과거분사수동태" 구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고전15장에서 무려 16번이나 사용된 이 단어는 "일으키심을 받은 채 있다" 혹은 "일으켜졌다. 일으켜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에는 전부다 "다시 살아나다"는 단어로 번역하고 있어서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에서는 그러한 뜻으로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살다(아나자오), 일어서다(아니스테미)"는 동사 말과, "일으키심을 받다(에게이로)"는 단어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한 마디로 "능동태(혹은 중간태)"와 "수동태"의 차이입니다. 특히 "에게이로"라는 동사는 "일으키심을 받다"라는 뜻으로서, 이미 그가 일으키심을 받을 수 있는 상태에 있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죽기 전에 자기 안에 이미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중에 누가 생명의 부활을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육신이] 살아있을 때에 이미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부활은 어떤 사람이 죽을 때에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아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살아있을 때에 이미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던 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3. 부활이란 성도가 어떤 상태에서 일으켜진다는 뜻인가요?

  고로, 성도가 부활할 때에는 그때에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가 죽을 때에 부활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 그는 어떤 사람이어야 합니까? 그는 이미 자기가 죄인인 줄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어쩌다가 죽을 때에 일어나는 신비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부활생명을 가진 자가 얻는 부활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이 땅에 살아 있을 때에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을 갖는 일은 일생일대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사망권세를 가진 사탄마귀라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렇다면, 성도들이 믿을 때에 얻게 되는 생명 즉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이요 아버지의 생명인 이 생명은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은 사망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탄마귀라도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생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사실 우리의 선조 아담은 자기의 범죄로 인해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에 이 세상에는 죄도 없었고 사망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탄마귀가 하늘에서 범죄할 때에 죄가 생겨났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그가 쫓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쫓겨나서 내려온 이 세상(우주, 특히 지구와 그 안에 있는 음부)은 죄를 지은 사탄마귀의 감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빛이시요, 사탄마귀는 그 반대이니까 그가 있는 이 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어두운 것입니다. 특히 지구 속에 있는 음부는 더욱 어두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마귀는 지금도 죄를 짓는 자들에게 사망으로 역사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히2:14) 히브리서 2:14에 보면. 사탄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고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자를 그가 죽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할 수 있는 일이겠지만 말이죠. 그러나 사탄마귀가 사용할 수 있는 사망권세는 사람의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사망권세일 뿐입니다. 그는 결코 스스로 사람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고로 사탄마귀가 가진 사망권세는 첫째사망(육신과 영혼의 분리)에 대한 권세인 것이지, 둘째사망(영혼과 하나님의 영원한 분리)에 대한 권세가 아닙니다. 둘째사망의 권세는 사망의 음부의 열쇠를 가진 예수님만이 가지고 있는 권세입니다(계1:17~18).

 

5. 성도가 둘째사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그럼, "둘째사망"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그것은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불과 유황이 타는 못(불못)에 떨어져 그곳에서 형벌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계20:14~15).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소유한 자는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합니다(계2:11). 사람이 죽으면 음부가 뒤따라와서 그를 잡아가두려 하겠지만, 자기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음부가 그를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계5:8). 사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사람에게 있어서 첫째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권세입니다(창2:17). 고로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는 죽을 때에 둘째사망의 해(불못에 들어가 형벌을 받음)를 입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에 예수님을 믿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는 일은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어 그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라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예수님의 속죄의 효능을 부정하지 않으며 죄를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 죽을 때에 그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자만이 죽은 즉시 생명의 부활을 입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0년 04월 16일(목)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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