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왜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오늘은 예수님께서 던진 그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볼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왜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아볼 것이다. 사람들은 왜 회개하지 아니하는가? 회개가 귀찮아서인가? 회개를 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회개하기가 힘들어서일까? 예수께서는 마땅히 회개했어야 할 갈릴리의 세 개의 고을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에 대해 책망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근거로 사람이 왜 회개하지 않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왜 회개하지 않는지도 함께 알아도보록 하자. 

 

2. 예수께서는 왜 갈릴리의 세 개의 고을들을 책망하셨는가?

  예수께서는 70명의 제자들을 둘씩 둘씩 전도하러 내보면서 2가지를 행하라고 하셨다. 하나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라고 했다(마10:7,막6:12). 또 하나는 그러면서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다(눅9:1~2,10:9). 그런데 예수께서도 일찌기 이 2가지 일을 먼저 행하셨다(눅13:32, 마8:14~17). 하지만 가장 많은 기적들을 보며 경험했던 갈릴리의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마11:20).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포하셨다(눅10:13). 왜냐하면 그 고을들에게 행한 일을 다른 이방인들의 도시들에게서 행했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마11:21,23).

  첫째, 예수께서는 먼저 두 도시 고라신과 벳새다를 책망하셨다(눅10:13). 이 도시들은 예수께서 기거하셨던 가버나움을 떠나 이동하실 때에 꼭 지나가야 했던 도시들이다. 그러므로 두 도시들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치유를 경험했고 귀신들이 떠나가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만일 주께서 그들에게 행했던 능력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다.

  둘째, 예수께서는 이제 본 도시 가버나움을 책망하셨다(눅10:15).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공생애 3년반을 사셨던 도시였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사셨는데 공생애 기간에는 가버나움에 와서 사셨다. 그러니 가버나움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하늘의 기적을 맛볼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만일 그들에게 행했던 능력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들은 그때에 멸망당하지 않고 오늘까지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했다(마11:23). 그러므로 가버나움은 심판의 날을 견디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수많은 능력과 이적들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았던 갈릴리의 마을들을 엄히 책망하셨다. 만약 다른 이방인 고을들에게서 그들에게 행했던 것만큼의 기적과 능력들을 행했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고, 그들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3. 갈릴리의 세 개의 고을들은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가?

  그렇다면, 갈릴리의 세 개의 고을들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들이 이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은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그분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요16:9). 그들은 기적과 치유만을 받아들였을 뿐,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언 것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치유와 기적은 어떤 이유로 베풀어진 것인가? 그것은 전부 다 그분이 메시야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들은 결코 예수께서 당신의 능력이 많으시고, 특출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먼저, 고라신과 벳새다의 고을에 사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였다(눅10:13).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그들에게 행한 일을 두로와 시돈지역에서 행했더라면 두로와 시돈사람들은 이미 회개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두로와 시돈은 대체 어떤 지역이었는가? 우선 이방인들이 사는 도시였다. 그리고 특별히 두 도시들은 바알신 숭배 곧 우상숭배가 가장 강했던 도시 가운데 속해 있었다. 그런데 두로와 시돈에 비하면, 우상숭배가 그렇게 강하지 못했던 고라신과 벳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으로부터 메시야적인 표적을 보았으면서도 왜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하셨다. 결국 이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라신과 벳새다는 메시야를 수용하지 못한 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받아들이지 못한 죄를 지었던 것이다. 

  둘째, 가버나움은 교만이 하늘을 찔렀던 도시였다(눅10:15).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갸?" 그렇다. 그들은 다시 도시들에 비해 더 많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표적을 보았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을 낮추지 않았으며, 거만함이 하늘을 찔렀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당시 유대나라의 양대 세관이 있는 도시의 하나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가버나움은 갈릴리에 있는 도시들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세련되고 가장 부유한 도시였기 때문이리라. 가버나움에서는 매일 북쪽에서 들여오는 물품의 관세를 부과하는 도시였기에, 그 도시에서는 온갖 상업행위들과 숙박업으로 도시가 북적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도시는 남 부러워할 것이 없는 도시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만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리는 예수 따위는 믿지 않아도 상관없어, 굳이 우리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기에는 전혀 부족함이 없거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가버나움은 교만의 죄를 짓고 있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했던 것이다. 자부심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러한 사고방식은 메시야를 배척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4. 오늘날 사람들은 왜 회개하지 않는 것인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왜 회개하지 않는 것인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신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이유들로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신은 죄를 안 짓고 살고 있다고 여기 있으며,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큰 해를 가져다주지 않음으로 그것이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지 않은 죄는 죄로 보지도 않는다. 그리고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살아보니 그것이 자신에게 그리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장 급할 것이 없는데 왜 회개하겠는가? 만약 자신이 죄를 지었는데 곧 중한 질병에 걸려서 목숨이 얼마 안 남게 되었다면 좀 다를 것이다. 또한 죄를 짓고도 회개를 안 하고 있다가 그만 자식이 어떤 사건사고에 휘말려 도무지 거기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절박함이 찾아오면 좀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이 발생하여 거리에 나 앉게 되었다거나, 엄청난 물질에 손해를 보아 거지가 될 것 같으면 사람은 즉시 회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지도 않고 그리 해가 되는 것이 없었을 때에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큰 손해가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로 이러한 자들이 회개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고난"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 사람은 고난이 닥쳐왔을 때에,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고 판단되면 비로소 회개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두번째 이유는 사람은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당장 회개하지 않는다면 회개할 기회가 영영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세례요한의 경고(마3:10)과 히브리서 기자의 경고(히12:16~17)를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누구든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외침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는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심판을 받는다고 경고했다. 왜냐하면 나무를 베서 불 속에 쳐넣기 위해서,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를 향해 놓여있는 상태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나무를 베어버릴 일과 불 속에 쳐넣는 일을 현재진행형으로 말했기 때문이다(마3:10). 그렇다. 회개는 조금 미뤄 놓았다가 뒤에 해도 되는 그러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 들어와 특별히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이유는 정말 자신의 죄가 지옥 갈 죄라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자신을 회개시켜셔 천국에 데리고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해야할 회개까지 대신해주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에게 회개할 것을 명령하실 뿐, 우리에게 사정사정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이 회개하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인간의 무지 때문이다. 즉 사람이 회개하면 얻게 되는 엄청난 유익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을 때에 일어나게 될 엄청난 해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회개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만일 그가 예수믿는 사람으로서 회개한다면 그는 죽을 때 곧 육신을 벗는 순간, 꼭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마4:17). 하지만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은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회개하지 않을 때에는 그 사람은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결국 구원에서 타락하게 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온갖 저주까지 맛보게 될 것이다(계2:22~23). 특히 본인이 중한 질병에 걸려 침상에 던져잘 것이, 자신이 손을 대는 모든 현장이 망가짐으로 주변사람까지도 힘들게 할 뿐더러, 자녀들의 앞길을 가로막히거나 망하게 하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회개하게 된다면,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도 들어갈 뿐더러,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도 자기와 자기의 자손들이 온갖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회개에 관한 말씀을 평소에 듣지 못했던 사람은 회개의 커다란 유익과 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듣는 자가 얼마나 복된 자인지는 나중에 그리고 죽은 다음에 알게 될 것이다. 

 

5. 나오며

  회개가 관건이다. 사실 회개야말로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성공의 여부를 결정해주는 핵심요체가 되기 때문이요, 회개 없이는 지은 죄를 사함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례요한은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직접 자신이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어, 속죄제사의 제물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자는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하지만 처음 믿을 때에 회개했던 것을 가지고서, 평생 회개하지 않아도 자신의 모든 죄는 다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다. 그러나 아니다. 그럴 일은 결단코 없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는 자백함으로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요일1:9).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모든 시대는 이미 "마지막 때"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이 떠나고 난 뒤,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지가 벌써 2천년이 넘어버렸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아직까지 지연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바라는 우리 주 예수님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벧후3:9).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만 있으면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회개가 저주와 축복을 가르며,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최종열쇠이기 때문이다. 건투를 빈다. 

 

2020년 09월 25일(금)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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