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5일 발의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형사 사법 체계에 대혼란이 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민주당이 이날 발의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현재 검찰에 남아있는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 사업·대형 참사) 수사권을 뺏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법안들에서 검찰 직접 수사의 근거가 되는 조항 일체를 삭제했다. 아울러 경찰이 담당한 일반 형사사건도 고소·고발인이 이의 제기를 하더라도 검사는 경찰에 보완만 요구할 수 있고 직접 수사를 못 하게 막아놨다.
경찰이 구속한 사람에 대해 검사는 기록 검토만 하고 직접 조사를 못 하게 만들어 검사를 구속영장 신청 주체로 규정한 헌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기능을 넘겨주겠다는 중대범죄수사청 신설 법안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찰 수사권부터 뺏은 것에 대해선 “여권 수사를 틀어막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법조인들은 “위헌(違憲) 소지가 클 뿐만 아니라 인권 보장, 약자 보호, 부패 척결 등 모든 면에서 실행돼선 안 될 법안”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경찰과 검찰, 공수처가 서로 협력·견제할 수 있는 구조의 법안”이라는 입장이다.
1. 국민 피해 가중
민주당이 15일 공개한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시행되면 곧바로 일반 국민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반 형사 사건의 경우, 현재는 경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리고 불송치를 하면 고발인이 경찰에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 그러면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겨야 하고 검찰이 사건 내용을 검토한 뒤 직접 보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날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이 절차의 근거가 되는 법 조항이 삭제됐다. 고소·고발인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불복하면 검찰에 이의 제기 할 수 있는데, 이때 검찰은 경찰에 ‘보완 수사 요구’만 할 수 있고 직접 수사는 못 한다. 경찰이 다시 ‘무혐의’로 결론을 내리면 사건은 사실상 종결된다.
이 때문에 경찰이 수사했지만 피해자가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그냥 묻히는 사건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에 사회적 이목을 끈 ‘남편 사망 보험금을 노린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이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피해자인 윤모씨가 경기도 가평 용소계곡에서 다이빙을 한 뒤 사망하자 처음에 경찰은 단순 사고사 사건으로 처리했다. 이후 다른 경찰서에서 다시 수사해 윤씨의 아내 이은해씨와 내연남을 살인 혐의로 송치했지만, 전담 수사팀을 꾸려 직접 수사에 착수한 검찰이 살인 미수 혐의 두 건을 추가로 찾아냈다.
2. 공룡 경찰 우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경찰권이 비대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경찰이 국내 수사기관 중 유일하게 국내 정보 수집 기능과 사실상의 수사 종결권을 동시에 갖게 됐기 때문이다.
법안은 또 구속·압수영장 등 각종 영장 청구 역시 검찰의 직접 청구가 아니라 경찰의 신청이 있어야 검찰이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그동안은 직접 수사를 진행한 검찰이 영장을 청구했는데 근거가 되는 관련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검찰은 경찰의 긴급체포를 승인할 권한 정도만 갖는다. 이 때문에 ‘견제받지 않는 경찰권’이 탄생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웅석 한국형사소송법학회 회장은 “경찰이 중국의 공안(公安)과 같은 수퍼 파워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월 실시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나타난 경찰의 ‘수사 지연’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변협이 전국 변호사 51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중 86%(439명)가 “고소 사건 진행 중 경찰 수사 단계에서 조사가 지연되거나 연기된 사례를 경험하거나 들은 바가 있다”고 했다. 처리하기 어렵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일반 형사사건뿐 아니라 6대 범죄 수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3. 권력형 비리 수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 대상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중대 범죄로 축소됐다. 민주당이 15일 상정한 ‘검수완박’ 법안은 이 또한 제거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히, 민주당이 이날 내놓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부칙에는 개정 법안 시행 시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을 모두 경찰로 넘겨주도록 규정돼 있다. 법안은 공포 3개월 후 시행 예정이다. 법조인들은 “대장동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월성 원전 사건 등 여권을 겨냥한 수사도 몽땅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조인들은 “사정(司正) 기능의 추가 약화가 예상된다”고도 했다. 대검에 따르면 뇌물과 배임 등 부패 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는 2018년 553건이었다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이후인 2021년에는 208건으로 감소했다. 대검은 “국가 범죄 대응 역량이 위축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15일 “검찰의 6대 범죄 수사 건수는 작년 4000~5000건 정도였다”며 “4000건이 이관된다는 것은 전국 경찰서 수사 단위를 기준으로 보면 한 곳당 10여 건 정도 증가하는 것, 인력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대장동 사건’을 일반 사건 1건으로 치는 해괴한 논리”라고 했다.
4. 위헌 논란도 커져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의 완전한 박탈)’ 법안에 대해 15일 법조계에서는 “위헌(違憲)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는 헌법 12조 3항과 16조를 근거로 한 지적이다. 이 조문은 강제수사 시 체포·구속·압수수색 영장의 신청 주체를 ‘검사’로 규정하고 있다. 검찰도 “영장 청구 권한자를 검사로 정한 것은 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는 걸 전제로 했다”며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에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해당 헌법 조항은 4·19혁명 이후 경찰의 무분별한 영장 신청에 의한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날 민주당이 상정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경찰 단계의 구속 수사 기간을 현행 10일에서 최대 20일까지 늘리고, 검찰 단계의 구속 기간은 최대 20일에서 10일로 줄이는 내용도 있다. 이 과정에서 검사는 경찰 기록만 갖고 영장 청구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기록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도 피의자를 직접 불러 조사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이 부분 또한 헌법과 충돌한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인은 “경찰에 독자적 구속 기간을 허용하는 해외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해당 헌법 조항은 검사의 영장청구권 또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5. 예산·수사력도 낭비
민주당은 15일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 시기를 3개월 유예하고 그 기간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신설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중수청에는 검찰이 현재 가진 6대 범죄 수사 권한을 넘긴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신설되는 중수청 청사의 건축비와 인력 비용,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 등 시스템 구축에 수천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검찰에 따르면, 2019년 전주지검 신축에 770억원이 들었다. 만약, 서울에 중수청 본청과 전국 6개 권역별로 지방청이 설치되고 청사를 새로 만들 경우, 전주지검 사례를 적용하면 건축비만 약 5400억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공수처의 경우, 킥스 구축 예산으로 100억원이 배정돼 있다.
검찰 인력의 낭비도 문제로 지적된다. 현재 전국의 검찰 공무원은 2100여 명 검사를 포함해 약 1만400명에 이른다. 법안이 시행되면 이들이 피의자 등 수사 관련자를 직접 조사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검찰 관계자는 “하루아침에 하는 일이 없어지는 수사 부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중수청이 제구실을 하기까지 6대 범죄 수사는 ‘증발’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경찰로 공백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22년 04월 16일(토)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