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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位)이심을 말해 준다.

1. 신앙의 신비로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하느님 자신에 관한 신비이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이며, 아울러 영원으로부터 같은 신성(神性)을 가지시면서 구별되는 세 위(位)가 계심을 믿는 것이다. 유일한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은 하느님이 여럿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이신 하느님께 세 위가 계시다는 것을 '삼위일체'라 부른다. 그 세 위의 이름은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 은총을 통해 우리는 삼위와 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삼위일체는 신앙의 신비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서만 파악된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려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삼위일체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가 드러났다(루가 3,22).

삼위일체의 신조는 가톨릭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신조이다. 이 교리를 믿어야만, 그밖의 주요한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파악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신비는 하느님의 아들이 육체를 취하셨다는 것, 그분이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되셨다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한 분 하느님께 여러 위가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자 참 하느님이시며, 성부께 보냄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

2. 구약 안에서의 삼위일체

구약성서는 유일하신 하느님이 계심을 분명하게 선포했다는 점에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일부 선포하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하느님께 여러 위가 계시다는 말은 없으며, 하느님의 내적 생명에 관해서도 계시하는 바가 없다. 하느님은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당신께 관한 진리를 사람들에게 알려 주셨다(계시헌장 2-4).

구약성서에도 하느님께는 구별되는 위격들이 계시다는 것을 희미하게 암시하거나, 그 계시를 준비하는 듯한 귀절이 몇 개 있다. 교부(敎父)들은 하느님을 지칭하는 복수명사(엘로힘)가 자주 쓰였다는 점과, 하느님의 이름과 속성을 세 번 거듭 부르는 일(신명 6,4) 등이 그것을 암시하는 것이라 풀이하였다.

3. 신약 안에서의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위일체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를 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최후만찬 자리의 설교에서 예수님은 극진한 애정을 나타내시며 삼위일체의 위격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성자이신 당신은 성부께 보냄을 받으신 분이며, 당신이 올라가시는 대신 성부께 청을 드려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17. 29-35; 2고린 13,13; 1고린 12,4-6)라고 하시며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다.

4. 삼위일체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는 구분되나, 성부와 성자와 똑같이 참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는 무한한 지혜와 무한한 사랑이 있다. 그 지혜의 표현이신 이 말씀이 곧 성자이시다(요한 1,1-14). 성부와 성자는 가이없이 서로 사랑하신다.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는 사랑이 곧 성령이시다. 성령은 창조받지 않으신 분으로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으시고 영원하신 하느님으로, 완전한 성삼위의 사랑을 나누신다.

성삼위께서는 드러나는 활동을 공동으로 하시나 특정한 영역에서는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일을 나누기도 하신다. 영원하신 성부께서는 영원한 계획으로써 성자를 지상에 보내시어 인류를 구원하도록 하시고, 또한 교회를 세우시어 성령이 보호하고 인도하여 사람들을 성화시켜 구원으로 이끄신다. 현세에 있는 한, 우리 인간의 머리로 삼위일체의 신비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언어는 하느님께 관한 이 숭고한 진리를 표현하는 데는 너무나 미비하다.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은 공동체이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을 드러내고 나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존재임을 체험해 가는 과정이다(요한 3,21).

 

 

 

The Adoration of the Trinity - DURER, Albrecht

1511.Oil on lindenwood, 135 x 123,4 cm.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삼위일체 대축일

 

Santissima Trinità

(celebrazione mobile) - Solennità

 

삼위일체 三位一體

라틴어 Trinitas 영어 Trinity

 

삼위일체는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서 존재하는 하느님적 신비를 지칭한다.

 

하느님의 육화(肉化)와 은총(恩寵)과 함께 그리스도의 3대 신비를 형성하는

이 삼위일체 신비는 내재적 삼위일체(內在的 三位一體, Trinitas immanens)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救世徑輪的 三位一體, Trinitas oeconomica)로 구별되어 파악된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구체적 인간 역사와의 관계를 고려치 않고 영원으로부터 내재하는 하느님의 실재를 지칭하고,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인간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는 하느님의 실재를 지칭한다.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이 삼위일체임을 제시하기 위해서 성경으로부터 출발한다.

 

성경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계시사(啓示史) 안에서 증언되는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러한 구세경륜적 삼위일체는 내재적 삼위일체와 별개의 실재가 아니라,

바로 이 내재적 삼위일체의 계시이다.

 

 

 

삼위일체론의 신학적 기점

 

삼위일체는 있을 수 있고 생각될 수 있는 지복(至福)의 신비임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신심생활과 교의신학에서도 삼위일체론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리스도인들이 삼위일체의 신비성을 깨닫지 못한 채

단지 그리스도 교화한 유일신론자들처럼 생활하는 것같이 보인다.

 

삼위일체 교리를 대할 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며,

사람들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으며 이 신비가 왜 계시되었는지 질문하게 된다.

 

사변적 삼위일체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이 신비에 대한 신심을 촉진하기보다는

소원감을 느끼게 하는데 한 몫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삼위일체 신비에 대해 사변적 고찰을 시도하는 전통적 입장과

대조적으로 역사(歷史)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하느님의 행업(行業)을 삼위일체의 본질로 파악하여

이 신비를 구원의 신비로 제시하려는 현대 신학자들의 취지와 입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통적 삼위일체론과 현대 신학의 삼위일체론의 기본입장이 요약 소개될 필요가 있다.

 

① 아우구스티노에 의해 계발되고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심화된

이른바 ’심리학적 삼위일체론’(心理學的 三位一體論, De Trinitate psychologica)은

사계에서 고전적이고 전통적 삼위일체론으로 간주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이다"라는 성경적 진리를

자신의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의 기반으로 삼았다.

 

그는 모상이 원형을 반영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모상의 본질을 구명해서 원형이신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일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하느님 본질의 단일성과 세 위격들의 구별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유비(類比)를

인간영혼(anima)속에서 찾고자 하였다.

 

그래서 기억(mens), 인식(notitia), 사랑(amor)이 영혼의 세 가지 속성으로 파악되고,

이들이 삼위일체의 내재성을 특정하게 이해토록 하는 유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억하고 인식하고 사랑하는 영혼의 유비속에서

본질적으로 하나인 실재의 세 현실적 요소들로서의 위격들을 본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기억이 성부에, 인식이 성자에, 사랑이 성령에 해당된다고 설명된 것이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이 실제로 구별되면서

하나의 하느님 본질과 하나가 되는 자립적 관계(自立的 關係)라고 규정되고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아우구스티노를 따라 인간 정신생활의 성취 속에서

하나의 하느님 안에서의 세 위격의 현존을 파악하는 유비를 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발출(發出, processus)의 성격을 순수정신의 내재적 행위로 규정한다.

 

이 발출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정신의 두 기능,

인식(認識, cognitio)과 의지(意志, voluntas)가 하느님의 발출에 상응하는 유비로 등장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 안에서 말씀[知性]과 사랑[愛志]의 두 발출 이외에

다른 발출은 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그는 하느님의 발출의 성격을 지성과 의지의 성취양식을 분석하는 가운데 파악하려고 하였다.

 

그는 지성의 발출이 유사성(類似性, similitudo)의 근거에 입각하여 발생하기에

출생(出生, generatio)이라고 규정한다.

 

출산자는 자신과 유사한 것을 출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지의 발출은 유사성의 이유 때문에서가 아니라

원하는 상대자에로 이끌리는 성향(inclinatio in rem volitam)에 입각해서 발생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에게 있어서 말씀을 산출하는 지성작용은

유사성의 산출과 같아서 ’출생’이라고 지칭할 수 있고,

하느님에게서의 의지작용은 유사성의 출산행위가 아니라

성향적 발출행위이기에 ’기출’로 표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 심리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구명하는데 기여하였다.

 

이 신학의 기본 통찰들은 학설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공적 가르침을 부연해서 해설한다고 볼 수 있다.

 

 

 

 

② 현대 신학적 삼위일체론은

하느님의 내적 본질 구명에 역점을 두는 전통적 삼위일체론과는 달리

역사 안에서 구체적으로 계시되는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실상을 파악하려는 데 중점 을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는 전통적 삼위일체론의 일방성이 지양되고,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이 강조되면서

인간과 조물 일반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행업이 바로 내재적 삼위일체의 본질로 파악되고 있다.

 

그래서 삼위일체론이 인간 역사로부터 분리된 신적 실재에 대한 사변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안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는 하느님의 역사에 관한 실천적이고 생동적 사유가 된다.

 

전통적 삼위일체론에 이의를 제기하고 양자택일적 입장을 정립하고자 시도하는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와 위르겐 몰트만 J rgen Moltmann, 1926-)의

삼위일체론적 기점은 범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라너는 삼위일체를 구원신비로 이해하려는 취지로써 삼위일체론을 전개한다.

 

그는 구원이 하느님의 자기전달(Selbst-mitteilung Gottes)인 은총 안에서 성취되는데,

이 은총이 삼위일체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하느님은 사랑 자체로서 당신을 자신 안에 폐쇄시키지 않고 외부로 건네준다.

 

그런데 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외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그 가능성의 조건으로 수취자(受取者)가 요청된다.

 

이 수취자가 바로 정신과 육신의 합일체인 인간이다.

 

라너에 따르면,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참으로 인간에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론적 구조에 상응해서 초월적(정신)이고 역사적(육신) 양식으로 발생한다.

 

인간의 역사성에서 비롯하는 전 인류사는

하느님의 계시사(啓示史)와 구세사와 공존한다고 그는 보고 있다.

 

하느님이 자기전달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의 근원으로 작용하면,

구체적 인간 역사가 바로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현현이자 인간에 의한 수용의 역사라는 것이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제공이 인간에 의해 전적으로 수용될 경우에

신인(神人)그리스도의 출현이 발생한다고 라너는 본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의 절정인 그리스도의 육화를 ’행해진 진리’라고도 라너는 부른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초월적으로 작용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다가온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수용하도록 하는 힘이

바로 성령이라고 규정된다.

 

여기서 성령의 고유성이 사랑(Liebe)이라는 통찰이 생겨난다.

 

또한 라너는 하느님의 자기전달이 진리로 발생하는 한,

역사를 지니며 역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자기전달이 사랑으로 발생하는 한,

이는 절대 미래를 지향하는 초월 안에서의 역사의 재현이라고 본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역전시킬 수 없이 나타나는 구체적 역사로서의 역사와

완성된 최후 미래를 지향하는 초월은 구별되면서

나름대로 하느님의 자기전달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한 분 하느님이 자기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운데 파악할 수 없는 신비로 머무르는 한,

그 분을 성부라고 부른다.

 

그리고 당신 자신을 인간의 초월성을 주도하는 원리로 전달하는 한,

그 하느님을 성령이라고 부른다.

 

하느님의 이 자기전달은 역사 안에서 현현되는데

이 분이 곧 성부의 육화된 말씀, 성자라고 불린다."

 

한 분 하느님의 자기 전달의 세 측면이 동일시되거나

온전히 분리되지 않으면서 온전히 주어진다고 라너는 보고 있다.

 

그리고 말씀(진리)과 성령(사랑)의 두 파견은

인간과 세계를 향한 하느님의 자기전달 속에서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 두 소인(素因, Moment)들로 파악된다.

 

하느님의 자기전달은 초월적으로 성령 안에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성자 안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라너는 이 이중 파견이 바로 하느님 자체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느님 성부가 자기전달을 통해서 당신을 전달하고,

다른 편으로는 ’진술된 것’과 ’수용된 것’과의 실질적인 구별을 이룩한다.

 

그리고 전달된 것이 ’전달자’로서의 하느님과

’전달된 것’으로서의 하느님 사이에 실제적 구별을 지양하지 않는 한에서,

바로 하느님의 ’본질’로 표시될 수 있다고 라너는 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내재적 삼위일체가

인간의 충만으로서 전달됨으로써 구원이 성취된다고 보고 있다.

 

라너는 성자와 성령의 파견과 발출을

하느님의 (내재적이고 구세경륜적) 자기 전달의 발생으로 규정함으로써

삼위일체 신학을 구원의 신비로 이해한 것이다.

 

 

 

 

몰트만 역시 라너처럼 내재적 삼위일체와 구세경륜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을 강조하면서

삼위일체를 정관적으로 사유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부터 이해하려고 한다.

 

그는 삼위일체를 궁지에 처한 조물들의 자유를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역사의 압축으로 보면서

십자가의 신학이 삼위일체론이며,

삼위일체론은 십자가의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것을 삼위일체적으로 이해한다.

 

아들 예수는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죽음에로 건네지면서 죽음의 고통을 당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서 그의 아버지되심의 죽음을 고통 당한다는 것이다.

 

몰트만에 의하면, 아들의 버림받은 상태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가장 깊이 분리되어 있으며,

동시에 아들의 양도 속에서 가장 깊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진술된다.

 

이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희생의 성령으로서 버림받은 인간들에게 와서

새 생명의 가능성과 힘을 선사하는 절대적이고 무제한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몰트만은 십자가 사건을 종말론적 삼위일체 사건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사랑의 현재적 성령 가운데서 사랑하는 아버지와

사랑받는 아들 사이에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몰트만은 하느님의 역사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서 절정에 이르렀으며,

인간의 모든 역사를 그 속에 내포하고 있어서 역사의 역사라고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죄와 죽음의 성격을 지니는 인간의 모든 역사가

하느님의 역사인 삼위일체안에 통합된다는 통찰이 파생된다.

 

그래서 인간고난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고통이 아닌 고통이 없고,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과 기쁨에로 통합되지 않는 삶이나 기쁨도 없다는 것이다.

 

몰트만에게서 삼위일체가 고통에 찬 조물의 역사와 관련된 실재임이 적나라하게 기술되고 있다.

 

몰트만이 삼위일체론을 하느님과 조물 일반,

특히 자유로운 조물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의 원리’로 제시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의 하느님 이해뿐만 아니라

신앙의 쇄신 자체를 위해서도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창조 이래의 역사과정은 성령 안에서 부활한 성자를 통하여 조물,

특히 인간을 향하는 하느님 성부로부터의 구원역사이자,

성령에 의해 이끌린 인간과 세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로 인도되는 귀환역사로 이해될 수 있다.

 

구체적 경위는 신비로 머무르지만,

인간과 세계의 완성된 구원이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될

삼위일체적 하느님의 완성된 역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삼위일체 신비는 내포하고 있다.

(沈相泰)

 

-가톨릭 대사전에서-

 

 

 

 

 

첨부파일 Caritas dei.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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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리]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삼위일체론 삼위일체 논쟁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의 삼위일체론 삼위일체 논쟁 2009.06.26. 12:28 복사 http://blog.naver.com/kaistq/150051794835 서 론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각각 자기 교파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정통주의 신학을 발전시켰다. 보통 1559년부터 1622년까지...
    Date2017.06.22 By갈렙 Views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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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교리] 타종교에서의 삼위일체

    「크리스천 센추리」지 1998년 5월 20-27일자에는 한 교역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런데 그 교역자는 삼위일체가 “예수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교회의 가르침” 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날 대다수의 그리스도교의 중심교...
    Date2017.06.18 By갈렙 Views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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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교리] 천주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느님은 한 분이시나, 성부, 성자, 성령 세 위(位)이심을 말해 준다. 1. 신앙의 신비로서의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신비는 곧 하느님 자신에 관한 신비이다. 삼위일체를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한 분이심을 ...
    Date2017.06.18 By갈렙 Views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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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화]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그림 중에서 성모까지 포함된 삼위일체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에티엔 슈발리에 기도서 : 성인들의 대도 (代禱), 삼위일체 장 푸케 [Le Livre d'Heures d'Etienne Chevalier : Les Suffrages des Saints, la Trinité ] 이미지 크게보기 에티엔 슈발리에 기도서 : 성인들의 대도 (代禱), 삼위일체...
    Date2017.06.18 By갈렙 Views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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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사] 제롬은 누구인가?

    제롬(Jerome, Eusebius Hieronymus, 347?-420)은 서방교회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자로, 초대교회에서 가장 유명한 성경 주석자로, 그리고 학문을 겸비한 자로 잘 알려져 있는 자이다. 그는 서방교회의 교부들 중 가장 탁월한 자로서 347년 아드리아해 상...
    Date2017.06.16 By갈렙 Views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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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삼위일체이단 사상 '양자론'과 '양태론'에 대하여

    삼위일체이단 사상 '양자론'과 '양태론'에 대하여 교회사에서 중요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논쟁되어온 두 가지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다 삼위일체론에서의 이단설입니다. 첫째는, 삼위일체론에서 그리스도와 관련한 '양자론' 이고 둘째는, 삼위일체론에서...
    Date2017.06.16 By갈렙 Views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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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 신학사상과 성경해석에 있어서 '오리겐'과 '제롬'의 관계

    신학사상과 성경해석에 있어서 '오리겐'과 '제롬'의 관계 강대훈 / 총신대 신대원 1-1 Ⅰ. 시작하는 말 오리겐(185-254)과 제롬(347-379년)은 백 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살았다. 그러나 제롬에게 있어서 오리겐은 결코 멀리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제롬은 ...
    Date2017.06.15 By갈렙 Views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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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그림]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그림들입니다.

    삼위일체를 설명하기 위해 그린 그림들입니다.
    Date2017.06.15 By갈렙 Views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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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도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교회 비교

    Date2017.06.13 By갈렙 Views2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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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히브리어성경_맛소라 사본

    히브리어 표준 구약성경 사본 - 맛소라 사본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 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되었다....
    Date2017.06.11 By갈렙 Views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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