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을 가리키는 기간이다. 이것은 다니엘에서 처음 나오는 표현이지만(단7:25, 12:7), 요한계시록에서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도 똑같이 쓰이고 있다(계12:14). 하지만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다른 말로 "42달"이라고도 말했고(계11:2,13:5), "1260일"이라고도 말했다(계11:3,12:6). 같은 기간에 대한 다른 표현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은 산술적으로 1260일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가?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들은 이 기간을 먼 미래에 있을 적그리스도에 의해 통치받는 기간의 한 부분(후3년반)으로 본다.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정말 세계정부를 이끌어갈 적그리스도가 이스라엘과 한 이레(7년) 평화협정을 맺고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한 다음, 자신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는 자들을 핍박하는 기간일까? 우리는 이 표현이 요한계시록에서 등장하는 것인 만큼 요한계시록의 문맥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물론 다니엘서를 참고하여 볼 것이다. 여러분도 이 비밀을 알면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 어느 정도 보일 것이다.
1. 들어가며
우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2가지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하나는 핍박과 환난에 직면해야 한다(마24:9~10,13,21~22,29). 그리고 또 하나는 사람들의 미혹에 주의해야 한다(마24:4~6,11,23~26).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오시는 날까지 이 두 가지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이 두 가지를 이겨내야 한다. 사실 누군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러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천국에까지 입성할 것인지 사뭇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해도 하나님으로서는 가능하다고 하셨으니 믿고 따라가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말씀과 예수께서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앞길에 대하여 바르게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려가다가 그만 좌우로 치우쳐 끝까지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어려움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종말론에 관한 여러가지 미혹들이다. 그중에서 오늘 우리는 세대주의자들(환난전휴거론자)이 말하는 후3년반의 핍박이 문자적으로 실제하는 기간인지 아니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따로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는 미래의 일들에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그리고 42달 내지는 1260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있게 될 것인지를 조목조목 살펴볼 것이다. 물론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다니엘서까지 살펴가면서 말이다.
2.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디에서 온 개념인가?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상징들이 나오는 구약의 예언서와 같은 책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천국의 환상을 본 자들의 기록도 알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구약성경의 기록들을 포함하고 있거나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더 확장되어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결론의 책인만큼 구약시대보다 더 완전한 계시가 들어있기도 하다(예를 들어, 구약시대 성도들이 보았던 천국환상 가운데, 단 한 건도 24장로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는 것은 요한계시록이 마지막 계시의 책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꿈꾸는 자라고 불렸던 창세기의 요셉과 욥 그리고 천국의 모습을 보고 기록한 미가야선지자 그리고 구약묵시서들인 다니엘서와 이사야서, 에스겔서와 스가랴서 등은 필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숫자가 한 가지 나온다. 그것은 "3년반"이라는 숫자다. 이것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표현인데 두 묵시서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나온다(단7:25, 12:7, 계12;14). 하지만 요한계시록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말 대신에 "42달(계11:2, 13:5)" 혹은 "1260일(계12:6, 11:3)"이라고도 나온다. 사실 한 때를 1년으로 게산하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반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을 달수로 환산하면 42달이 되는 것이고, 일일로 환산하면 1260일이 되는 것이니,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42달이자 1260일이며, 3년반의 기간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과연 산술적으로 3년반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우리는 들여다보아야 한다.
3.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산술적으로 딱 3년반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들어있는 것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쓰인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혹은 "42달"과 "1260"을 분석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일정한 기간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약하면 적어도 3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첫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성도들이 환난받고 핍박받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계11:2, 13:5~8). 특히 성도들이 이 기간에 고난받고 핍박을 받게 되는데,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는 다름 아닌 이방인들이자(계11:2),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계13:5~8)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이 기간은 3년반에 해당하는 여러 표현들 중에서 꼭 "42달"이라고 나온다.
계11:1-2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나오스)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나오스)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도시)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계13:5-8 또 짐승(처음 짐승, 바다에서 올라오는 열 뿔 가진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그렇다. 요한계시록에는 '성전(나오스)'가 13번 나오는데, 3~4번째가 계11:1~2에 나온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성전"이라는 표현은 전부다 물질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히에론"이 아니라, 영적인 성전 혹은 인격적인 성전을 의미하는 "나오스"라는 단어(고전3:16~17)가 사용되고 있다(계3:12, 7:15, 11:1, 2, 19, 14:15, 17, 15:5, 6, 8, 16:1, 17, 21:22). 그러므로 계6~20장까지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표현들은 상징적인 의미와 숫자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계11:1~2에 나오는 "하나님의 성전"은 자기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성도들 곧 교회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대표자인 이방인들이 접수하는 지역은 성전바깥마당이요, 짓밟는 공간은 거룩한 성 곧 예루살렘 성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기왕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지, 바깥마당에서 세상과 교회에 양쪽 발을 딛고서 이쪽에다 아니면 저쪽에다 대었다 떼었다 하는 성도는 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거룩한 성이라는 표현처럼, 온전히 거룩한 성도들이 아니라 이러한 성도들과 관련된 주변사람들로서 있을 때에는 결국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혀질 수 있음도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42달동안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경우에만) 하는 존재가 나오는데, 그는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는 넷째짐승이라고 나온다. 이 넷째짐승은 첫째짐승(사자)과 둘째짐승(곰)과 셋째짐승(표범)의 장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달린 짐승으로 나온다. 그런데 다니엘서 7장~8장을 읽어보면, 이 첫째짐승부터 넷째짐승이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지 그 해설이 나온다(단7:1~8, 8:15~27). 결론적으로 이들은 전부 세상 대제국의 왕들(황제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첫째짐승은 사자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바벨론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을 의미하고, 둘째짐승은 곰으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메대와 바사제국의 왕 고레스를 의미하며, 셋째짐승은 표범으로 표현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볼 때 헬라제국의 왕 알렉산더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뿔이 열이요 머리가 7개 달린 넷째짐승은 로마제국을 의미하는 것임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 세상제국은 로마제국이었기 때문이요, 넷째짐승인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악랄하게 핍박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처음짐승(넷째짐승)은 머리 하나가 상하게 죽게 된다고 되어있다. 결국 로마제국도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멸망당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로마제국은 멸망당했고, 이어서 로마황제가 그 바톤을 이어받아서 성도들을 천년간 핍박했으니, 무려 6천만명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창세이후로 그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아니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이 그 짐승을 경배할 것이라고 했다(계13:8). 그러므로 42달이라는 기간은 상징적인 기간으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제국의 왕들에 의해 성도들이 핍박받는 전 기간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둘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반대로 성도들이 양육받고 보호받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이 기간은 "1260일(계12:6)"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계12:14)"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1260일"은 산술적으로 3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승천이후 재림전까지 성도들이 양육하고 보호받는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계12:6,14). 이것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한 여자(여인)로부터 시작된다. 이 여자는 해를 옷입고 있었고 달을 밟고 있었으며 열두별의 면류관을 쓰고 있었다(계12:1). 꼭 요셉이 꿈에 본 것으로 자기의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와 형들의 모습과 같아 보인다. 그리고 어느날 때가 찼을 때에 이 여인의 첫번째 존재목적인 사내아이(아들)을 출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출산한 사내아이는 대체 누구를 가리키고 있는가? 그것은 장차 철장(쇠지팡이)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계12:5). 그리고 이 아이는 요한계시록 19장에 보니,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존재로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님으로 나온다(계19:11~16, 17:14). 그런데 이 여인이 아이를 낳으려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막 낳은 그 아기를 잡아먹으려고 큰 붉은 용인 사탄마귀가 대기하고 있었다(계12:3). 하지만 이 사내아이는 보호함을 받은 후 속죄사역을 마치고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버린다. 그러자 이 큰 붉은 용은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여인에게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지고, 광야에 자기를 위해 예비된 장소 곧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장소로 날아가서 보호를 받는다(계12:6,14). 그리고 이 여인은 그곳에서 1260일동안 양육을 받게 된다. 그리고 광야에서 이 여인은 계속해서 자식을 낳게되는데, 그 자식들은 계명을 지키고 예수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했다(계12:17). 그러자 용이 분노하여 돌아가서 이 여자가 낳은 자식들을 핍박하고 죽이기 위해 대제국이 일어나려고 하는 바다 위에 서 있게 된다(계12:17~13:1). 그리하여 무저갱으로부터 자기를 대신하는 처음짐승(열뿔달린 짐승)을 올려보내어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다. 결국 사내아이를 출산한 여인이 누군고 하면, 하나님의 백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들을 산출하는 모체인 것을 알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믿는 구약백성들을 낳았던 존재요, 신약에 들어와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교회를 낳은 존재가 바로 이 여인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인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죽지 않고 보호받고 양육받는 가운데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이자 자녀를 산출할 것이다.
셋째, 요한계시록에서 이 기간은 회개와 천국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두 증인이 그 일을 감당하게 된다(계11:3~13). 이때 그 기간을 "1260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계11:3). 그렇다면, 이 두 증인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두 증인은 증인들로서, 꼭 두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처음짐승)이 나와서 이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한 두 사람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명을 완수하는 날 전쟁에서 죽게 되는데, 짐승의 세력이 이들의 시체를 바벨론 성에 전시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시체는 시체들이 아니라 "시체(단수)"라고 나와 있다(계12:8). 고로 이들은 단체적인 복수의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구약시대에 송사하려 할 때에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하지 말하고 했던 것처럼(신19:15) 또한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파송할 때 2명을 정탐꾼을 파송한 것처럼(수2:1), 그리고
예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실 때 둘을 함께 보내셨던 것처럼(막6:7, 눅10:1), 2명은 증인의 수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이 활동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을 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니, 이들은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에 해당하며(계11:3), 증언을 한다고 하였으니 예수님의 증인들인 것을 알 수 있다(계11:7). 또한 이들이 예언하는 날 동안인 3년반(1260일)동안 비가오지 못하게 한다 했으니, 구약시대 선지자의 대표였던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여 감당하는 것 같고(계11:6), 능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친다고 했으니 구약시대 율법을 대표했던 모세의 사역을 계승한 자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계11:6). 그러니까 이들은 구약시대에는 모세와 엘리야로 이미 예표되었던 자들로서, 예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에 회개와 십계명준수를 외치는 주의 종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증언사역을 마치고 죽게 될 때에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 의해 아마겟돈전쟁에서 죽는 것을 보니(계11:7), 이들이 활동하는 1260일이라는 기간도 우리 주님의 부활승천이후부터 주님의 재림전까지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260이라는 기간은 산술적으로 1260일을 가리킨다고 보기보다는 두 증인으로 불리는 주의 종들이 회개를 외치고 십계명준수를 외치며 참된 복음을 증거하는 기간으로서, 예수님의 부활승천이후 주님의 재림시까지의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
4.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이레(전3년반과 후3년반)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렇다면, 다니엘서에 나오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어떻게 성취되었을까? 구약의 다니엘서에는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즉 한 이레의 절반의 기간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하나는 단9:27의 예언에 따라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활동하는 기간으로 나온다. 이때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한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그친다고 했는데, 예수께서 오셔서 3년반의 공생애 사역을 마치시고 속죄제사를 드림으로 제사와 예물을 그치게 하셨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열뿔가진 넷째짐승에 의해 성도들이 괴롭힘을 받는 기간으로도 나온다(단7:25, 12:7). 이것은 아마도 후3년반을 지칭하는 것 같다. 또한 이것이 실제로 그대로 성취되었으니, 한 이레의 앞절반(전3년반)은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로 활동하신 기간으로 성취되었고, 뒤절반(후3년반)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들(사도들과 일곱집사들과 성도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는 것으로 성취되었다. 그래서 한 이레가 끝날 무렵인 A.D.31년에 스데반이 순교당함으로(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하여 더이상 성전제사가 필요없게 되었고 끝났다고 설교함으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예루살렘 성도들이 온 세계로 흩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죽고 스데반집사가 죽기까지의 기간은 짐승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핍박을 받는 후3년반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5. 나오며
요한계시록에서는 왜 3년반의 기간을 3가지 의미로 쓰고 있을까? 즉 성도들이 핍박받고 고난받는 기간이자, 양육받는 기간이요, 복음이 전파되는 기간으로서 폭넓은 의미의 기간으로 쓰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구약시대에 다니엘서에 보면, 그리스도가 활동하는 전3년반의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성도들이 핍박받는 후3년반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요한이 받은 계시에서도 성도들이 핍박받는 기간으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는 개념이 그대로 차용되어 쓰인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가장 먼저 자신이 속한 문맥 안에서 풀어가는 것이 원칙이므로, 우리는 세대주의자들의 해석처럼, 다니엘의 한 이레를 먼 미래의 일 곧 세계정부의 통치자가 나타나 이스라엘과 맺을 7년의 기간이라고만 보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니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부터 벌써 핍박은 이미 시작되었고 동시에 양육과 보호도 시작되었으며, 복음전파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로 상징되는 그 기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고난받고 핍박받는 기간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성도들이 양육받고 보호받는 기간일 뿐만 아니라, 교회가 회개와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놀라운 기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먼 미래의 어느날에 와서 통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만 예상하고, 그날까지 베리칩과 같은 짐승의 우상만 받지 않고 있으면 자신은 베리칩이 융통되기 전에 휴거될 것이라고 하는 얄팍한 환상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다. 모든 성도들은 다 환난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마24:29). 그렇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아니하신다면 참새 두 마리도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듯이,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사탄마귀라도 우리들을 손도 못댄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한다(요일5:18). 그분은 언제라도 우리들이 거하는 그 장소(광야같은 곳이지만)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회개복음과 천국복음의 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기까지는 절대 우리가 죽임당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임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살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아무쪼록 주님이 오시기 그날까지 우리는 적그리스도가 언제 등장할 것인지만을 엿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두 증인의 경우처럼 회개를 촉구하고 십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도 지옥간다는 것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순교하든지 그러다가 먼저 천국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그러다가 하늘로부터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투를 빈다.
2018년 7월 8일(주일)
정병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