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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에도 여전히 선지자가 존재하는가? 선지자가 존재한다면 그 선지자는 여전히 구약시대처럼 예언을 하는 자인가? 아니면 예언과는 상관없는 자인가?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이들은 신약시대에는 더이상 선지자직이 남아있지 않다고 알고 있거나, 신약시대의 선지자직에도 여전히 예언이 들어있다는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신약시대에도 여전히 선지자의 직분이 있기 때문이요, 오순절이후 선지자 직분을 수행하는 자라도 그는 더이상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신약시대 이후의 선지자직이란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며, 그는 교회를 세우는 자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엡2:20). 그리고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자로서 선지자는 2가지 직무를 수행하는 자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시대이후의 선지자 곧 교회를 세우는 선지자는 대체 교회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오늘날 선지자란 대체 어떤 직분을 가진 자인가? 오늘은 이것에 대해 집중해서 살펴보자.

 

1. 들어가며

  오늘날에도 예언사역을 하는 곳들이 더러 있다. 예언사역을 하는 곳에는 꼭 환상과 꿈도 같이 나온다. 그리고 축사와 치유사역도 병행하는 곳이 많다. 그런데 한 번 예언사역을 성령사역으로 알고 그것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좀처럼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도들은 예언사역을 무시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성경은 예언사역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언제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는가? 또한 초대교회를 세웠던 장본인들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들은 사도들이었는가 아니면 선지자들이었는가? 성경은 교회를 세우는 직분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지자인 것을 증거하고 있다(엡2:20). 그리고 실제로 이방인 교회들을 집중적으로 세웠던 사도바울도 안디옥교회의 선지자 중의 하나였다(행13:1). 그런데 성경은 동시에 거짓선지자의 미혹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마24:11). 그들을 분별해야 한다고 말한다(요일4:1). 그렇다면 우리 믿는 이들은 오늘날 예언사역과 선지자들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내 영혼과 교회를 세우는데 더 유익이 되는 것일까?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교회가운데 현재도 있는 예언사역과 선지자의 직분과 거짓선지자와 참선지자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도 우리에게 성령의 혜안을 주시기를 기도한다.

 

2. 예언의 은사는 종결되었는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예언은 존재하는가? 고전12장에 보면, 예언의 은사는 성령의 은사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성경이 완성됨과 동시에 성령의 은사도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어디에 그러한 근거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고전13장을 언급한다.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행하던 것들 곧 예언과 방언과 지식도 함께 폐해진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고전13:8~10).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온전한 것이 오는 때는 그성경이 완성된 때라고 나와있지 않다. 그때는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보는 때라고 나와 있기 때문이다(고전13:12). 그러므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성령의 은사의 하나로서 예언의 은사는 계속 있을 것임을 알라.

 

3. 지금의 시대에도 우리는 예언하려고 하거나 예언을 받으려 다녀야 하는가?

  그렇다면 성도들은 그때까지 늘 예언을 사모하고 예언받으려 다녀야 하는가? 그런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선지자의 직분이 존재하며(엡2:20), 예언의 은사가 있으니(고전12:10), 방언보다는 예언의 은사를 받아야 한다(고전14:1)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대부분 신사도와 빈야드운동 하는 곳이거나 그곳과 관련을 맺고 있는 쪽이다. 그런데 방금 주장하는 것에는 성경에 어긋난 주장이 전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자, 물어보자. 첫째, 성경은 예언하려고 하라고 했는가 예언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가?(고전14:1). 안타깝게도 성령의 은사를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언하는 자보다는 예언을 받으려는 자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둘째, 예언받은 은사자가 말하고 있는 예언은 정말 100% 성령의 음성인가 아니면 자신의 생각도 들어가는가? 여기에 "예"라고 대답할 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가 그것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양수리 수원지에 있는 물을 깨끗하다. 하지만 서울의 달동네의 수도꼭지에 나오는 물은 녹물이다. 물은 원래 깨끗한 물이었다. 하지만 물을 실어나르는 수도관이 오래 되면 녹물이 나오기 마련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의 은사로 주어지는 예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그 예언을 받아 말하는 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셋째,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가 예언을 말할 때, 그것은 100% 성령의 음성뿐인가 아니면 귀신이 주는 것도 있는가? 이 질문에 100% 성령의 음성 뿐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가장 큰 문제가 되는 항목이 바로 이 항목이다. 사람이 예언을 말할 때나 받을 때에 거의 대부분은 100% 무방비상태에서 예언을 말하거나 받는다. 도둑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신을 내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는가? 사탄이 알곡 가운데 순간적으로 몰래와서 가라지가 뿌리고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탄이 사람을 속이는 가장 큰 수단이 바로 예언과 꿈과 환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이 100% 전부다 성령으로부터 왔다고 보증하기는 어렵다. 왠만하면 구별을 못한다. 그것이 귀신이 가르쳐 준 것인지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는 것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을 사탄도 잘 안다. 그러므로 사탄은 예언을 통해서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아버린다. 그러므로 예언을 받는 자는 예언하는 자의 말에 100% 묶여버린다. 예언을 받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예언중독에 걸리고 그러면 거기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언에 대해 무엇을 경고했는가? 어린아이 때에는 예언도 필요하고 방언도 필요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그것을 버렸다고 했다(고전13:11). 그리고 예언하는 자는 반드시 차서를 따라 예언하되 반드시 분별하라고 했다(고전14:29~31). 하지만 이 세상 어떤 사람이 예언을 분별해낼 만큼 영적이며 성령충만한 자인가? 성경 전체를 다 알고 있는 자라도 그것을 분별해내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예언은 분명 성령의 은사이기는 하지만 가장 조심해야 할 영역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사탄이 우리를 속이고 묶어두는 데에 가장  잘 이용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 하신 일이 없다. 성령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도 그것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영이라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4. 은사로서의 예언과 선지자의 직무수행은 같은 종류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그런데 예언의 은사와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다시 말해 예언의 은사를 받은 자를 선지자라고 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령받은 자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일뿐 그것은 선지자의 직분을 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선지자의 직분은 교회를 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엡2:20-22 너희(에베소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바울은 교회를 세워가는 5가지 직분이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한 직분에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다(엡4:11). 이러한 직분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한다. 그래야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성령의 은사로서 예언이 들어가지 않는다. 예언은 예언일 뿐이다.

 

5. 구약시대의 선지자직과 교회시대의 선지자직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그렇다면, 구약시대에 나타난 선지자직과 오순절성령강림 이후 교회시대의 선지자직은 같은가 다른가? 그것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은 세례요한까지라고 분명하게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마11:13). 그러므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에 대한 예표로서 율법과 선지자의 직접적인 예언은 예수께서 오심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예언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메시야에 대한 예언은 이제 종결된 것이다. 그렇다면 구약의 선지자가 행하는 직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하나는 메시야를 예언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다. 그런데 메시야를 예언하는 직무는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다.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있는 선지자의 직무 하나는 무엇인가? 그것은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선지자들은 성도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직무를 여전히 수행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6. 오순절 이후 교회를 세웠던 선지자는 어떤 직무를 수행하는 자인가?

  사도바울은 에베소서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기본적인 2가지 직책과 더 나아가 5가지 직책이 있음을 말했다. 여기서 2가지 직책은 사도과 선지자직을 가리킨다(엡2:20). 그리고 거기에 덧붙혀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라는 직분이 더 있다(엡4:11).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자신을 어떤 직책을 가진 자라고 소개했을까? 그는 딤전과 딤후에서 자신을 사도요 복음전하는 자요 교사라고 소개했다(딤전2:8, 딤후1:11). 그런데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교회에는 교회지도자들을 소개할 때에 2가지 직분이 나온다. 그것은 선지자와 교사직이다(행13:1). 그런데 안디옥교회의 5명의 지도자들 가운데 사도바울이 그 명단에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선지자의 직무도 받은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도직, 선지자직, 복음전하는 직, 교사직을 가지고 있는 자였고 그것을 수행하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사도행전에 있는, 교회가 출현했던 역사를 통해서, 맨 처음 유대인으로 구성된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행2:36~37). 그런데 이방인으로 구성된 안디옥교회는 선지자들과 교사들에 의해 세워졌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행13:1).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 편지를 쓸 때에, 에베소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언급했던 것이다(엡2:20). 그렇다. 사도직과 선지자직은 교회를 세우는 직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때 이후로 선지자직은 구약처럼 미래의 일을 예언하는 자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 직무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사도베드로와 사도요한은 교회 가운데에 있는 거짓선지자와 거짓교사들에 대해 매우 조심해야 함을 경고했다(벧후2:1, 요일4:1~3). 거짓선지자와 거짓교사들은 교회를 세우는 자가 아니라 교회를 허무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요일4:1~3에서, 거짓선지자들을 분별해야 한다면서, 어떤 자가 거짓선지자인가를 가르쳐주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잘못 가르치는 자라고 하였다(요일4:1~3). 고로 교회시대의 선지자직은 교회를 세우는 자로서, 이미 오신 메시야 곧 예수님이 누구시며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잘 가르치는 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교회시대의 선지자직이란 여전히 구약시대의 직무였던 회개촉구의 직무를 이어받은 자도 해당되므로, 교회시대의 선지자직은 교회를 세우는 자로서, 이미 오신 메시야를 잘 가르치는 자이자, 회개를 촉구하는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 나오며

  오늘날에 과연 누가 선지자인가? 예언의 은사가 나타나고,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하는 자인가? 아니면 사도바울처럼 성도를 온전케 함으로 교회를 세우는 자인가? 그렇다. 오늘날의 선지자는 구약적인 선지자의 직무를 그대로 수행하는 자가 더이상 아니다. 구약적인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였고 회개를 촉구하는 자였다. 하지만 신약의 선지자는 더이상 오실 메시야를 예언하는 자가 아니다. 이제는 오신 예수님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자다. 더불어 구약시대의 예언자처럼 회개를 촉구하는 자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사도요한에게 A.D.96년경 마지막 시대에 활동한 두 증인을 소개했는데(계11:3), 그들을 "두 선지자"라고 말했다(계11:10). 그리고 설명에 그들은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자인 엘리야와 같은 일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계11:5~6). 율법이 예표로 말했던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전파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자가 바로 마지막 시대의 선지자라는 것이다. 물론 이 시대의 선지자는 구약의 율법 가운데 도덕법인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며, 의식법만이 예수께서 오셔서 완성하심으로 폐지되었음을 가르치는 자이다. 건투를 빈다.

 

2019년 01월 20일(주일)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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