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9.24 21:40

전도서 이해

조회 수 7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전도서(Ecclesiastes )


본문

본서의 명칭은 코헬렛’(qoheleth)이며, 그것은 부른다는 히브리어 동사 콰할’(qahal)의 분사형 여성 단수형으로 모임을 부르는자’, 또는 모임에서 말하는 자를 뜻한다(1:1-2, 12, 12:8, 9-10). 이 명사가 여성형인 것은 이것이 직무를 가리키기 때문으로 보인다. 70인역(LXX)에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나 라틴역(Vulgate)‘Ecclesiastes’등도 같은 뜻이다.

저자와 연대 :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1:1, 12)라 밝히고, 그가 큰 지혜를 많이 얻었으므로”(1:16)라는 기록으로 자신이 솔로몬인 것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유대인 학자들의 오랜 전승은 솔로몬이 젊은 시절에 아가서를 기록하고, 장년기에 잠언서를, 그리고 그가 우상 숭배의 죄(왕상 11:4-8)를 회개한 노년기에 전도서를 기록하였다는 것이며, 이런 유대 교회의 전승이 그대로 초기 교회에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Luther) 이후 본서의 솔로몬 저작권은 강한 도전을 받게 되었는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탈무드(Talmud, Baba Bathra, 15a)에는 히스기야와 그의 동료들이 전도서를 기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저자는 자신이 가난하고, 압제를 받다가 왕이 되었다고 말한다(4:3, 13). (3)본서의 문체가 후기의 것이고, 또 아람어풍이다. (4)본서의 사상은 허무적이고, 회의적인데 그것은 다윗 솔로몬 시대의 사상적 경향이 아니다. (5)솔로몬이 회개하였다는 기록이 없다. (6)본서의 통일성은 초대의 학자들(Jerome, Thomas Aquinas)이 견지한 바였으나 19세기의 비판학자들(Winckler, Haupt )은 이를 부정하고 본서가 여러 문서들의 종합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이 논의는 20세기에 다시 통일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저자 문제에 있어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솔로몬의 저작이 이스라엘의 귀환기에 수집되고, 편집되었으며, 그때 보충도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본다.

전도서의 사상: 전도서의 저자가 어릴 때부터 받아들였던 정통적인 신앙이 그의 사상적 근거였다. 그는 정통적인 신 개념을 견지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의 전제로 삼는다(3:17; 11:9). 그는 하나님을 표현함에 있어 이스라엘인들이 주로 사용한 하나님과의 보다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는 여호와’(야훼)를 쓰지 않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의식적인 명칭인 하나님’(엘로힘)을 쓰고 있다.

저자의 목적은 신학의 탐구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추구였고, 인생과 사회를 관찰하는 가운데 인생 제반에 대한 그의 결론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1:2)였다. 그가 보기에 자연도, 인생의 제반 사물도 끝없이 순환하며 허무하다는 것이었다(1:9; 3:1-8, 15).

본서는 잠언서와 더불어 지혜 문학에 속하고, 지혜는 저자의 최대 관심사였으나 그 지혜로 그가 느낀 헛됨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였다(1:13). 저자는 부귀를 누리며 영화를 만끽하였으나 그것 역시 그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고(5:11; 19-20), 또 세상의 향락에 빠져 보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그를 허무감에서 구원하지 못했다. 그래서 전도자는 회의적, 비관적이 된 것이며, 이런 사상적 경향이 본서가 정경으로 인정되는 과정에서 최대의 난관이었다. 이런 저자를 회의의 늪에서 구원시킨 것은 역시 그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었다(3:11; 12:1).

 

전도서가 뭐지?

전도서는 지혜로웠고(1:16) 많은 재물과 명성(2:8)과 향락을 누렸던(2:10) 솔로몬 왕이 노년에 쓴 책이다(1:1).

솔로몬은 가지고 싶은 것들을 소유하며 누릴 만한 것들에 탐닉하느라 하나님을 떠났었다.

그런 그가 얻은 인생의 결론은 허무’, ‘헛됨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생에 대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와는 달랐다.

그가 깨달은 바는 사람들이 최고의 부귀, 영화, 권세, 지혜 등 그 어떤 것을 가질지라도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삶이 참된 복이라는 것이었다(12:13-14).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 에스라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827
15 느혜미야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603
14 나훔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564
13 스바냐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608
12 요나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1127
11 오바댜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752
10 나훔서 이해 갈렙 2015.09.24 669
9 아모스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785
8 요엘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967
7 호세아서의 이해 갈렙 2015.09.24 1094
6 다니엘서 이해 갈렙 2015.09.24 853
5 에스겔서 이해 갈렙 2015.09.24 1094
4 예레미야애가 이해 갈렙 2015.09.24 1201
3 예레미야서 이해 갈렙 2015.09.24 892
» 전도서 이해 갈렙 2015.09.24 728
1 이사야서 이해 갈렙 2015.09.24 1286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방문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