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서(Ezra )
본문
귀환과 재헌신을 주제로 기록된 역사서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다. 두 책은 모두 바벨론 포로 생활 후 유다로 돌아온 유대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스라서의 배경 :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메소포타미아의 두 강대국들 즉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였다. 앗수르와 바벨론은 피정복민들을 그들의 고향 땅에서 이주시켜 제국의 땅에 재정착시키는 정책을 썼다(왕하 17:6). 성경은 이러한 이주정책을 우상숭배와 하나님과의 언약 파기 때문에 내려진 하나님의 징벌로 보고 있다(왕하 17:7-23). 하지만 성경은 포로 생활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렘 29:14).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 동안 영적으로 정화되었고 해방 후 그들은 다시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스 10:10-12). 예배와 성경 연구에 대한 강조를 하는 회당 운동도 포로 기간 동안에 시작되고 그 이후 더 중요한 삶의 부분이 되었다(행 18:4).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와해시키고 BC 539년에 그의 강력한 바사 제국을 병합시켰을 때, 그는 이주 정책을 바꾸었고 또 포로로 잡혀 있는 백성들을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였다. 또한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그들의 성전들을 짓고 제사를 지내도록 격려했다(스 1:2-4). 유대인들은 이 기회에 대해서 처음으로 반응을 보인 민족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방 제국의 도시들 가운데 정착하였던 200만 정도로 추정되는 유대인들 중에 오직 약 5만 명 정도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기로 선택하였다. 돌아갔던 사람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스 1:5). 돌아가고자 한 동기는 종교적인 이유였기 때문이고 그 목적은 예루살렘에 세워지게 될 새 성전에서 예배를 부활시키고자 함이었다.
에스라서의 내용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옴(스 1-6장) 에스라의 인도로 돌아옴(스 7-10장)
- 고레스의 선언(스 1:1-4) - 아닥사스다의 선언(스 7:1, 11-26)
- 남은 자의 이름과 수(스 1:8; 2:3-67) - 인도자 에스라(스 7:1-10)
- 기명과 예물(스 1:6-11; 2:68-70) - 돌아온 자들의 이름과 수(스 8:1-20)
- 예루살렘에 옴(스 3:1) - 기명과 예물(스 7:15-22; 8:25-35)
- 학개와 스가랴의 선지사역(스 5:1-6:14) - 에스라의 중보사역(스 9:1-15)
- 성전 재건(스 6:15-22) - 백성의 분리(스 10:1-44)
저자와 연대 :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의 저자는 에스라이다. 에스라의 가계는 아론의 아들 엘리아살에까지 이르는 제사장 집안이다(대상 6:3-15; 스 7:1-5).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던 서기관으로 묘사되고 있다(스 7:10). 에스라는 1차 포로 귀환 후 80년이 지난 BC 445년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장관의 위임을 받고 유다로 보냄을 받았다(스 7:25-26). 또한 그는 BC 445년과 BC 433년에 다시 유다의 총독으로 위임을 받았던 느헤미야에 의해 시작된 부흥 기간 동안에 율법을 계속 가르쳤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아마도 BC 430년 이후에 완성되었을 것인데, 어떤 학자들은 에스라가 역대상·하서도 썼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역사적인 중요성 : 에스라서는 고향으로 재정착하려고 돌아온 유대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또 종교적인 상황에 대하여 통찰력을 준다. 또한 선지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고레스 왕의 공문의 형태(스 1:2-4)는 고고학자들이 발견하였던 비슷한 공문들의 형태와 일치하고 있다. 고레스의 하나님에 대한 인정은 개인적인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그의 제국의 모든 백성들의 신들에 대해 존경을 표시하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이란 구문은 신들과 여신들이 특정한 지역에 제한되었거나 또는 모여 있다는 이방인들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에스라의 성격과 믿음
에스라서에는 이 책의 저자인 에스라의 성격과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먼저 에스라는 귀환하기 전에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했으며 헌물을 준비했다(스 8:21-23). 그는 큰 일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이때 에스라는 많은 헌물로 인한 강도의 위험에 대해 군사적인 호위를 받지 않았는데, 이는 하나님의 보호를 믿는다고 하면서 군사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믿음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스 8:22).
또한 에스라는 죄에 대해 민감했다. 이는 백성들이 이방 여인과의 혼합 결혼을 통해 지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재헌신하도록 촉구했던 모습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스 9:5-10:16). 에스라는 70여 년 간의 포로 생활로 인해 잊혀진 율법을 다시 가르치고, 희미해진 여호와 신앙을 재고취하며 백성들 안에 퍼져 있는 이교적인 요소들을 제거하여 회개를 촉구하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일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스 7:10).
세 차례의 포로 귀환
포로 생활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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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포로 귀환 - 인도자: 스룹바벨 / 성전 재건
(57년의 간격) ↓
2차 포로 귀환 - 인도자: 에스라 / 백성들의 개혁
(12년의 간격) ↓
3차 포로 귀환 - 인도자: 느헤미야 / 성벽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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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의 침묵기
[출처] 에스라서(Ezra ) |작성자 Ja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