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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네 분파 ..... 신구약 중간사 이야기(김병국)

프로파일 땅꼬마 ・ 2023. 5. 28. 6:07

1. 유대교의 네 분파

 

유대교에 네 분파가 있다는 설명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주후 37년에 태어나 주후 100년경에 로마에서 죽은 유대 역사가 입니다. 그는 '유대고대사'(Jewish), '유대전쟁사'(Jewish War), '자서전', 그리고 '아피온 반박문'이라는 책들을 썼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유대교에 네 개의 분파가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것은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센파, 그리고 열혈당입니다. 그들 중 열혈당은 주후 6년에야 최초로 역사에 등장합니다.

<하시딤> 이 네 분파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시딤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레스 왕이 귀환 허락 칙령을 내린 후 이스라엘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는 성벽까지 완공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라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을 게을리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마카비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왜냐하면 마카비 전쟁이 종교적인 동기에서 시작된 전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시딤이라고 해서 모두 동질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권에 대해 좀 더 우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비우호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라는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하게 된 이 사건은 하시딤에 속한 여러 사람들의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나게 해 주었습니다. 우선 이 때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 세 분파와 열혈당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고, 그들의 신학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 네 분파에 대한 개략적 설명

(1) 엣센파

먼저 엣센파라는 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47년에 사해 북서쪽의 쿰란 지역 동굴들 속에서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그 문서들을 남긴 공동체가 엣센파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엣센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나 신약의 그 어떤 인물도 쿰란을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엣센파 혹은 쿰란 공동체는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한 때 세례 요한과 이들 사이의 유사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양자 사이의 관련성을 밝히는 연구가 유행이었습니다. 은둔적인 생활이라든가 세례 의식 같은 것에 유사점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과 쿰란 공동체 사이에는 유사점보다 차이점이 더 많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세례 요한을 필요 이상으로 쿰란 공동체와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하는 것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얼마나 반대를 심하게 했던지 왕은 이들 중 몇 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정통성이 없는 대제사장 밑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항을 했다가는 계속 죽임을 당할 것이 뻔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선택은 따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해 호수 북서쪽에 있는 쿰란(Qumran)으로 가서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만들고 살았습니다. 그곳에는 천연 동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몸을 숨기기 좋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장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양자를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생활모습이나 신학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살펴볼 것입니다. 그들은 수도원 공동체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주후 68년에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2) 사두개파

사두개파라는 이름은 대제사장 사독에서 왔다고 하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한마디로 말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왕의 정책에 찬동하는 사람들이었고 당연히 요나단의 대제사장 등극에도 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 제사를 둘러싼 모든 권리를 얻게 되었는데 이것은 어마어마한 특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3: 14-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이 말씀에 따라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일 년에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무교절,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냥 성전에 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15절은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즉 정성껏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두개인들은 그냥 가만히 성전에 있으면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일 년에 세 번씩 찾아와서 헌물을 잔뜩 바치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사두개인들을 보호하는 왕권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두개파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종교적, 정치적 힘까지 갖춘 종교 귀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분파였기 때문에 주후 70년에 로마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성전이 무너지자 흔적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A. 구약의 3대 절기

유대인들은 삼대 절기 때 반드시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구약의 삼대 절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는 삼대 절기를 아홉 개나 되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a. 유월절 = 무교절

유월절과 무교절은 원래 다른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이스라엘 자손들을 보호하시고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아빕월 14일 저녁부터 15일 아침까지를 말합니다. 무교절은 애굽에서의 포로생활을 기억하기 위해 쓴 나물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무교병)을 먹으며 사는 기간으로서 14일 저녁부터 21일 저녁까지를 말합니다. "정월에 그 달 십 사 일 저녁부터 이십 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출 12:18-20). 그런데 두 절기는 시기상 그렇게 겹쳐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 두 절기를 동의어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하루 시작> 참고로 유대인들의 하루는 해가 지면 시작됩니다. 즉 일몰 시간이 하루의 시작 시간인 것입니다. 중동지역은 날이 너무 더웠기 때문에 결혼식 등의 모든 행사는 해가 진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가 지는 시점을 새 날의 시작으로 본 것입니다.

그 흔적이 창세기 1장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에서 계속해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째 날이니라"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창 1:5, 8,13, 19, 23, 31). 보통 현대인들은 하루를 표현할 때 '아침과 저녁'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아침이 저녁보다 먼저 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일몰시를 하루의 시작이라고 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라는 표현이 나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루가 저녁에 시작되었다는 점은 예수님의 장례에서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빕월 15일 오후 세 시쯤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금요일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해가 지면 새 날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제 조금 있으면 토요일, 즉 안식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당시 부자들은 예루살렘 근교에 무덤을 가지고 있었고 가난한 자들의 무덤은 예루살렘에서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곧 해가 지면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먼 곳에 있는 무덤으로 옮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이 바로 그 근처에 있던 자신의 무덤에 예수님을 모셨던 것입니다.

참고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세계를 열 개의 동심원으로 나누었습니다. 안쪽에 있는 동심원일수록 거룩한 곳이고 외부에 있는 것일수록 불결한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죽은 후 가능하면 성전과 가까운 곳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성전 가까운 곳의 무덤들은 그 값이 아주 비쌌습니다. 어떤 가난한 사람들은 부모의 뼈를 추려서 가루로 빻은 후 밤에 몰래 성전 근처에 와서 땅에 구멍을 파고 그 가루를 묻기도 했습니다.

<아빕월과 니산월>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일년의 첫 달이 아빕월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아빕월과 니산월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그 둘은 같은 달을 지칭합니다. 모세오경에는 아빕월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는 니산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니산월이라는 단어는 아람어인데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의 문서입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 사람들은 아빕월에 해당되는 달을 니산월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세오경에는 니산월이라는 말이 없고,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에스라, 느헤미야서에는 니산월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달력은 음력입니다. 그들은 저녁에 해가 진 후에 모든 행사를 시작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상 달의 변화에 관심을 두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음력 달력을 사용했습니다. 아빕월은 양력으로는 3, 4월에 해당됩니다. 즉 유월절 축제는 봄을 맞이하는 시기의 축제였습니다.

< 유월절 전날인 아빕월 14일> 그런데 여기서 유월절 하루 전날인 14일의 일정을 소개할까 합니다. 왜냐하면 아 날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공휴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추석이나 설날의 경우 그 전날도 쉬는 날입니다.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4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유대인들은 부산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집안 대청소 : 아빕월 14일 아침에는 집안에서 유교병 즉 누룩을 넣은 빵을 제거하기 위해 집안 대청소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이십 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이레 동안은 누룩이 너희 집에서 발견되지 아니하도록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를 막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출 12:18-20).

이 말씀에 보면 유교병을 단지 먹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누룩이 집안에서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평상시에 먹었던 빵조각이 집안의 어떤 가구 밑에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14일 아침이 되면 가구를 전부 집밖으로 들어내고 집안 청소를 했습니다.

이날 아침에 청소를 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다른 두 가지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첫째는 봄맞이 대청소의 의미입니다. 유월절 기간은 양력으로 3월이나 4월, 즉 봄 청소를 하기에 딱 좋은 기간이었습니다. 둘째는 그날에는 가구를 옮길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른 때는 남자들이 일을 쉬는 날이 안식일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에 일을 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어떤 악처라도 안식일에 남편에게 일을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월절 전날이 안식일과 겹치는 경우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인들은 그날 남편과 아들에게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4일은 춘계대청소를 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날이었습니다.

* 유월절 물품 구입하기 : 청소를 마친 다음에는 유월절 물품을 구입하기 위해 쇼핑을 했습니다. 그날 유대인들이 유월절 물품을 구입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유월절 물품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무교절 기간 동안 쓴나물과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고만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 쓴 나물을 제외하고 특별히 쇼핑을 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쇼핑 목록에 그릇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다음과 같은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인구가 일시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숙박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던 감람산에 천막을 치고 숙박을 해결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민박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방을 제공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애매한 문제가 생깁니다. 손님이 떠날 때 숙박비를 내야 하느냐 안 내도 좋으냐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아무 계산 없이 그냥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보내는 주인도 마음이 안 좋고 떠나는 손님도 마음이 안 좋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최소한 8일 동안이나 남의 집에서 신세를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 사이에서 관례가 된 것이 그릇을 선물하는 것입니다.

순례자들은 다른 사람의 집에 민박을 하러 들어가서 전에 시장에서 자신들이 팔 일 동안 사용할 그릇을 구입합니다. 주인집 사람들이 평소 사용하던 그릇을 사용하는 것은 미안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팔 일 동안 새로 산 그 그릇들을 잘 사용합니다. 그리고 절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때는 집주인에게 그 그릇들을 가져 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집 주인은 좋은 그릇들이니 그냥 가져가서 쓰시라고 거절했을 것이고, 손님들은 자신들이 이제 낙타를 타고 먼 길을 가야 하는데 토기로 된 그릇은 깨지기 쉽고 무거워서 큰 짐이 되니 부디 받아달라고 강권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집주인은 마지못해 그 그릇들을 받으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양쪽 다 만족하게 됩니다. 주인은 그 동안 외부사람을 집에 들이고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썼던 데 대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고, 손님들은 남의 집에 와서 폐를 끼쳤다는 데 대한 마음의 짐을 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통상적인 숙박비와 그릇 값이 얼추 비슷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침 청소를 마친 유대인들이 시장에 나가서 아마도 유월절용 그릇들을 구입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왜 하필 14일 낮에 그 그릇을 샀냐 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되는 거룩한 물품들과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일반 물품들을 엄격하게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물품은 14일이 되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 제사장의 어린 양 잡기 : 그리고 14일 낮 3시가 되면 성전 뜰에서 장관이 펼쳐집니다. 모든 제사장들이 칼을 들고 성전 뜰에 일렬횡대로 섭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1년 된 어린 양이나 염소를 가지고 그 앞에 줄을 서 있따가 제사장이 그 양이나 염소를 잡아 주는 겁니다.

출애굽기에는 유월절 양을 정확히 누가 잡아야 하는지에 대해 언급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처음으로 제사장에게 양을 끌고 가서 특별히 축복기도를 받고 제사장이 직접 잡아준 고기로 가족들을 위한 만찬을 마련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좋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유월절 만찬은 온 가족이 함께하는 가장 중요한 만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유월절 어린 양을 제사장에게 끌고 가서 제사장의 축복기도를 받고, 그 양을 제사장이 잡아주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은 그 고기를 집에 가지고 와서 요리해 두었다가 해가 지면, 즉 절기상 아빕월 15일이 시작되면 온 가족이 모여 유월절 만찬을 먹었습니다.

14일은 이렇게 매우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진짜 유월절이 시작되는 15일이 아니라 그 전날인 14일을 유월절 축제의 첫 날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가끔 15일이 아니라 14일을 유월절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스 6:19).

고난주간에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추적하다 보면 목요일에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보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바로 전날인 목요일에는 다른 활동을 하지 않으시고 성부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을 가지셨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목요일 즉 14일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위와 같이 대단히 분주한 날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베푸시기에는 적당한 날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공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유월절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은 대단히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에 잘 알아두면 신구약 성경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b. 오순절 = 칠칠절 =맥추절(맥추의 초실절, 출 34:22)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오십 일이 지난 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는 다섯이고 '순'은 열흘을 뜻합니다. 열흘이라는 뜻의 한자입니다. 열흘마다 나오는 신문을 '순보'라고 하는데 구한말에 나왔던 '한성순보'가 대표적입니다. 오십 일의 기점이 되는 것은 유월절 양을 잡는 날입니다.

오십 일은 일주일을 단위로 계산하면 일곱 주가 됩니다. 그래서 칠 곱하기 칠이라고 해서 칠칠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보리추수를 할 때이기 때문에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출애굽기 23:16 상반절은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절기를 '첫 열매를 감사하는 절기'라는 뜻으로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

c. 장막절 = 초막절 = 수장절

출애굽기 23:16 하번절은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수장절은 본격적인 가을 추수 축제입니다. 수장절이라는 명칭도 추수하여 저장하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수장절은 양력으로는 9, 10월경입니다.

이 절기는 애굽에서 탈출한 후 광야에서 초막을 치고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절기를 장막절 혹은 초막절이라고도 합니다. 주후 1세기 초에 활동했던 바리새파 유대인 중에 샴마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딸이 아기를 낳을 때가 되었는데 초막절이 닥쳤습니다. 몸이 무거워서 마당에 만들어 놓은 초막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딸의 침대 위에 초막을 만들었습니다. 샴마이는 그만큼 율법을 문자적으로 철저하게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사두개파에 대해 설명하다가 구약의 삼대 절기에 대해 조금 길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바리새파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2) 바리새파

'바리새'라는 말의 어원은 '분리하다'입니다. 아들은 정치적으로 친권력적 성격을 가졌던 사두개파와 반권력적 성격을 가졌던 엣센파의 중간의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적극적으로 요나단의 대제사장직 겸임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숨을 걸고 극렬하게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엣센파가 쿰란이라는 척박한 곳에 가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고, 사두개파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는 달리, 바리새파들은 각자의 고향에서 조용하게 활동했습니다. 낮에는 각자의 직업에 충실했고 저녁이면 토라를 연구하고 마을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살았습니다. 이들의 뿌리는 앞서 설명한 바 있는 하시딤(Hasidim=아시데어)입니다.

3) 열심당(젤롯인, 셀롯인, 식카리[단도])

열심당은 주전 140년대의 요나단 사건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주후 6년경에야 처음 역사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매우 활동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열정적인 사람'을 뜻하는 젤롯인 혹은 셀롯인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식카리라는 것은 아람어로 '단도'라는 뜻인데 이들이 단도를 소지하고 다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들이 단도를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매국노를 암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들은 주후 66년에 발발한 대로마항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가 주후 73년에 마사다(Masada)에서 로마군에 의해 멸절되었습니다.

2. 네 분파의 신학

 

위에서는 네 분파의 대략적인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네 분파의 신학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사두개파(Sadducees)

복음서에서 사두개파와 바리새인들은 거의 항상 예수님께 질책을 당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훼손하거나 거기에 마음대로 자신들의 말을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훼손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 중에서 모세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내 버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에서 마음대로 많은 책들을 발라내 버렸을까요?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1) 경제적 이유

그들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살아가던 종교귀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부유한 생활은 성전 제사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쳤기 때문에 그들의 유복한 삶이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성경 중에서도 제사를 강조하는 책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모세오경은 제사를 강조합니다. 아브라함 등의 족장들은 어디를 가건 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레위기는 그 전체가 제사와 성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세오경에는 제사에 대한 강조가 자주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책들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구약의 다른 책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역사서, 시가서, 그리고 선지서에 등장하는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구절들을 몇개씩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역사서> 사무엘상 15:22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만약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제사는 안 드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만 힘쓴다면 사두개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이런 구절들이 있는 역사서를 무시했습니다.

<시가서> 시가서는 어떻습니까? 시편 51:17절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회개하며 지은 시의 일부인데 거기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사두개인들이 듣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드리는 제사라는 말씀, 그중에서도 제물을 잔뜩 드리는 제사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가서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그런 것이 아니고 상한 심령, 즉 회개하는 심령이라고 말합니다. 백성들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자신들의 윤택한 삶에 큰 위기가 닥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시가서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선지서> 선지서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이사야서는 첫 부분부터 헛된 제사에 대해 맹공을 퍼붓습니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 1:12-13).

아모스 선지자 역시 끔찍한 발언을 합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들리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복제도 내가 돌보지 아니하리라"(암 5:21-22). 그리고 최후의 선지자인 말라기는 사두개파에게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의 일격을 가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 1:10).

이 말씀은 사두개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습니다. 정말로 성전 문을 닫는다면 그들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2) 사회적인 이유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구약성경 중 모세오경만을 남기고 나머지 책들을 모두 잘라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세오경만을 좋아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오경이 그들의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풍요를 정당화 시켜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오경에는 인과응보의 진리가 매우 강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모든 면에 있어서 형통하게 됩니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부자였고 요셉도 크게 출세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는 모든 면에서 벌을 받습니다. 그중에는 경제적 궁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성경을 읽을 때 사도개인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어떤 큰 부자가 있다고 해봅시다. 어떤 교회에 갔더니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가르치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다른 교회에 가보니까 하나님을 잘 믿으면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이 부자가 어느 교회를 선택하겠습니까? 당연히 후자입니다. 전자의 교회에서는 자신은 대단히 위험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교회에서는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의 모범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임이 확실한 사람입니다.

사두개인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오경을 읽을 때 그들은 자신에 대해 긍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자신들처럼 부자이고 걱정이 없는 자들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욥은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느냐고 반문하고 있고, 선지자들은 불의한 부자들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예고합니다. 사두개인들은 그런 책들이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2) 사두개파의 신학

그런데 이렇게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면서 살다보니 이상한 신학이 만들어졌습니다. 즉 그들은 죽은 자의 부활, 천사, 마귀, 영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것들을 인정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런 것들이 모세오경에 잘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세오경에 날개를 펄럭이는 천사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사자들(messengers)이 찾아오지만 사람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는 천사들을 보지만 그들이 날개가 달린 천사들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또 죽은 자의 부활이나 천국, 지옥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언급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자세히 살펴보면 모세오경에도 분명 그런 것들에 대한 암시가 있지만, 부활이나 영적 존재가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모세오경을 보면 그런 것들이 잘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들이 부활이나 천국을 인정하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워낙 유복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원 없이 낙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과 밑바닥 인생으로 갖은 고생을 다 겪으며 사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더 천국을 사모하겠습니까? 당연히 어렵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유복하게 누릴 것 다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천국은 있어도 좋지만 없어도 그리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선택사항일 뿐입니다. 사두개인들에게 천국이 그러했습니다. 더구나 그들은 매일 성전에서 일하며 제사를 받들었던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천국이 있다면 자신들이 반드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 천사, 마귀, 영적 세계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 신약의 예

구들의 이런 신학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가 사도행전에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왔다가 유대인들에게 매를 맞고 천부장에게 체포되었떤 때입니다. "바울이 그 중 일부는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마암아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행 23:6-8).

바울은 자신이 부활 때문에 곳곳에서 핍박을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인데 부활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두개인과 바리새파가 함께 바울을 심문하다 말고 둘로 나누어져 버립니다. 사두개파는 부활을 믿지 않은 반면 바리새파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 중 일부는 심지어 바울의 말에 동조하기까지 합니다.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행 23:9-10).

이 사건은 부활 등의 문제에 있어서 사두개인들이 바리새인들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 중요한 시점에 그 문제를 거론했다는 것은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 사두개파 사람들 중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모두의 보편적인 특징이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3)사두개파의 특징들

사두개파들의 특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제사장 귀족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성전 제사를 중심으로 한 종교 귀족들이었다.

* 모세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했으며, 구전율법(oral law)을 거부했다.

모세오경에 대한 부분은 이미 설명했습니다. 구전율법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바리새파에 대해 논하면서 설명할 것입니다.

* 바리새인들보다 모세의 율법을 보다 문자적으로 해석했다.

율법을 바리새인들보다 더 문자적으로 해석한 이유는 사두개파가 율법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율법을 문자족으로 해석해도 좋을 정도로 이들의 삶이 편했기 때문입니다. 육체노동이나 소규모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율법에 따라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늘 성전에 거주하며 제사를 업으로 삼았던 이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엄격하게 준수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 레위법적 정결성에 있어서 보다 더 철저했다.

레위법적 정결성이란 이를테면 안식일을 정확히 지켜야한다거나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 역시 앞의 것과 유사한 이유 때문에 사두개인들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성전에서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종교적 정결을 지키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 죽은 자의 부활, 천사, 마귀, 영적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앞에서 자세히 설명한 항목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세오경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사두개인들은 이런 것들을 간절하게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 과격히 헬라화되었다.

이들은 사회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래서 헬라 문화와의 접촉이 많았고 과격히 헬라화 되었습니다. 제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면 헬라문명에 대해 저항감을 가졌어야 할 것 같은데 사실은 유대인들 중 가장 친헬라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민족의 고유한 종교를 통해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의 우수한 문물을 사모하고 문화적으로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려고 하는 기회주의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운명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인간의 자유의지에 돌렸다.

이 부분은 약간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센파 모두와 관계된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한 인간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태생적인 요소와 개인의 노력입니다.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느냐, 얼마나 좋은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 등은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태생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가지고 태어난 여러 조건들을 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평가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흔히 개인의 노력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과거에 극히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서 현재의 자신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들은 운명론에 빠져서 피종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성공의 공을 가능하면 자신들 스스로에게 돌리려고 합니다.

반면에 사회 밑바닥층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운명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과 같이 비참한 상태에서 살게 된 것이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그렇게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해야 현실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견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운명과 노력, 이 두 가지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유대교의 분파들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두개파는 놀랍게도 운명이란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자기가 노력하기 나름이라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두개파야말로 운명론을 견지해야 할 사람들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두개파로서 유복하게 살고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이 사두개파의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남달리 좋은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좋은 직업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운명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자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특권은 자신들이 남달리 열심히 노력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놀라운 일입니다.

2. 바리새파(Pharisees)

이제 바리새파의 신학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사두개파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늘 예수님께 질책을 당했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기들 마음대로 무엇인가를 덧붙였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의 경우와는 정반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30:6절에서 "너는 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리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시딤부터 탈무드까지

하시딤이라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학개, 스가랴, 느헤미야, 에스라 시대에 성벽을 완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변화가 없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망하여 신앙적으로 나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율법을 실천하여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을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그 하시딤의 신학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바로 바리새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시딤의 신학에 대한 설명이 곧 바리새파의 신학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울타리를 치다> 그런데 하시딤이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이 상당히 독특합니다. 그들은 율법에 '울타리를 침'을 통해 율법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소중한 어떤 보물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만약 어딘가에서 돌이 날아와서 그 보물에 맞는다면 보물에 상처가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물의 주인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그 주위에 '울타리'를 칩니다. 그러면 돌이 날아와서 울타리를 친다 해도 보물은 상처를 입지 않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습니다. 안식일 규정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해가 지는 순간에 시작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미처 일 정리를 다 하지 못해서 해가 지는 순간에 일을 계속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 정리를 하는 시간만큼 안식을을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시딤들은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안식일만은 해가 질 때가 아니라 해가 지기 몇 분 전에 시작하도록 정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해가 뒷산 언덕 아래로 넘어갈 때가 아니라 뒷산 나무 꼭대기에 닿았을 때를 안식일의 시작으로 보기로 하는 것읍니다. 그러면 혹시 어떤 사람이 해가 나무 꼭대기 밑으로 내려왔을 때 일을 했다 해도, 그것은 인간들이 만든 법은 어긴 것이지만 하나님의 원래의 법은 아직 법한 것이 아닙니다. 울타리를 통해 율법이 보호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율법에서 자주 물로 무엇을 씻는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하시딤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자주 씻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떡 머기 전에도 손을 씻는 규례를 만들었습니다. 하시딤들은 구약 율법 전체에 대해 이와 같이 더 지키기 어려운 규정들을 꼼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후세에 장려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유대인들의 중요한 책들 중에 '미쉬나'(Mishnah)라는 것이 있습니다. 미쉬나는 여러 책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들 중 하나인 '아보트'(Abot)의 첫 장에는 "[모세와 조상들은] 세 가지를 당부했다: 재판에 있어서 신중하라. 많은 제자들을 양육하라. 토라를 위해 울타리를 만들라"(아보트 1:1)라는 언급이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많은 제자들을 양육하라'는 말의 뜻은 학생을 많이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라 모범적인 삶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라는 말입니다.

<구전율법의 탄생>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시딤들이 이 규정들을 만들면 사람들이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데, 일반 신자들은 '울타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평생 들어보지 못한 내용을 랍비들이 가르치니까 백성들은 그것을 신적 권위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왜 자신들은 그 낸요에 대해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지, 또 왜 그 내용이 그 어떤 책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지에 대해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당연한 의문입니다.

그래서 하시딤들은 끔찍스러운 일을 합니다. 사람들의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울타리'에 신적인 권위를 입히기 위해 엄청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성문율법(Written law)이라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책으로 기록하라고 하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세오경이 그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금하시고, 오직 그것을 암기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과 다음 세대의 종교적 얼리트들에게 전수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당신들에게가르치는 것으로 구전율법(oral law)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지금까지 이 율법에 대해 몰랐던 것은 오직 종교적 엘리트들에게만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이 기록되어 있는 책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것의 기록을 금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말세이고 사회가 너무나 흉악해졌기 때문에 우리 하시딤 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이 구전율법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당신들에게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하시딤들이 만들어낸 구전율법의 스토리였습니다. 일반 백성들은 종교 지도자들이 모두 같이 이런 주장을 하면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시딤들은 자신들이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이 율법을 더 잘 지키게 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미쉬나의 탄생> 그래서 구전율법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으로서 잘 자리를 잡아 갔습니다. 그런데 주후 70년에 디도(Titus)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전율법을 가르치는 학교는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그전에는 두 지역 혹은 두 랍비들 사이에 구전율법의 세부사항에 대해 이견이 발생하면 예루살렘이 그 기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늘 변함없는 구전율법의 전승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파과로 인해 그 기준점이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이 사람, 저 사람의 구전율법이 달라도 그들 사이에서 옳은 것을 판단해 줄 기준이 없어졌습니다.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랍비들 사이에서는 이제 구전율법을 모세오경처럼 책으로 기록하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의견을 따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왜 구전율법은 책에 기록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것이 책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그것을 주실 때 기록하지 말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고 설명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구전율법을 책으로 기록하면 자신들이 한 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율법을 책에 기록하지 않은 채 버텼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구전율법은 점점 훼손되어 갔습니다. 거리가 떨어져 있는 곳의 구전율법들은 서로 내용이 심하게 달라진 것입니다. 랍비들은 이제 그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구전율법을 책으로 쓰기로 결정합니다.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미쉬나'(Mishnah)입니다. 히브리어 단어 '미쉬나'의 의미는 '반복'입니다. 미쉬나는 랍비 아키바와 랍비 메이르가 수집한 구전율법을 랍비 예후다 하나시가 주후 200년경에 세포리스(Seffeoris)에서 최종 편집하여 만들었습니다.

이 미쉬나라는 것이 우리가 보기에는 좀 이상합니다. 하시딤이 기존 율법을 보호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울타리'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신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허구적인 가르침을 통해 그것을 구전율법이라는 것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 미쉬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미쉬나'는 그냥 인간들의 책, 좋게 말하면 유대교 경건서적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구전율법의 신적 권위를 믿었기 때문에 미쉬나를 유대교의 경전으로 취급했습니다.

<탈무드의 탄생> 미쉬나는 6권의 책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미쉬나를 경전으로 보기 때문에 미쉬나 각권에 대한 주석들을 썼습니다. 미쉬나에 대한 주석을 '게마라'라고 합니다. 아람어 동사 '게마르'는 '완성하다' 혹은 '배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게마라의 뜻은 '완성' 혹은 '배우는 것'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게마라의 양이 많아지자 미쉬나와 주석들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 불편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책들을 하나로 묶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우리가 잘 아는 탈무드입니다. 즉 탈무드는 미쉬니와 게마라의 합본입니다.

히브리어 단어 '탈무드'는 '배우다'라는 뜻의 동사 '라마드'에서 온 것인데, '교육' '연구'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탈무드는 그 만들어진 지역에 따라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벨론 탈무드가 더 나중에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앞서 나온 팔레스타인 탈무드를 발전시킨 것은 아닙니다.두 탈무드들은 별개의 발전과정을 거쳤습니다.

'팔레스타인 탈무드'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4세기 이후인 것은 확실하고, 대략 주후 600년에 완성된 바벨론 탈무드 이전에 만들어진 것도 확실한데 정확한 연도는 알 수가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탈무드가 만들어질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기 때문에 팔레스타인 탈무드는 바벨론 탈무드에 비해 양도 적고 내용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탈무드는 예루살렘의 지명을 따서 '탈무드 예루샬미'(Talmud Yerushalmi)라는 애칭으로 흔히 불립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편집된 것은 아니므로 팔레스타인 탈무드라는 명칭이 더 정확합니다.

'바벨론 탈무드'는 팔레스타인 탈무드에 비해 훨씬 안정된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 편집 작업은 라브 아쉬(Rav Ashi 주후 427년에 사망), 라비나 2세(Rabbina 2, 주후 500년에 사망) 등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 작업은 대략 주후 600년경에 완료되었습니다. 바벨론 탈무드는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탈무드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별도의 설명 없이 그냥 탈무드라고 하면 그것은 바벨론 탈무드를 말합니다.

바밸론 탈무드는 편집이 완료되자 마자 그것에 대해 어떤 정경성이 부여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랍비들은 탈무드에 거의 추가해 넣은 것이 없습니다. 대표적인 랍비들은 바벨론 탈무드를 조상들의 가르침의 정통성이 있는 버전으로 인정하고 이것을 모든 유대인 세계에 파급시켰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유대교의 경전 중 하나로 대접을 받게 된 것입니다. 탈무드 외의 다른 정경은 당연히 구약성경입니다.

하시딤의 울타리를 치는 작옵부터 탈무드에 이르는 과정을 단순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시딤이 율법에 울타리를 치는 작업을 함 -> 그것이 구전 율법으로 승격됨 -> 구전율법을 편집하여 미쉬나를 출간함 -> 미쉬나에 대한 주석서인 게마라가 등장함 -> 미쉬나와 게마라를 합하여 탈무드를 출간함 (먼저 팔레스타인 탈무드, 나중에 바벨론 탈무드 완성).

2. 구전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

성경에도 구전율법이 등장합니다. 복음서에 가끔 등장하는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태복음 15:1-3을 예로 들겠습니다.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구전율법을 지킨다는 사실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을 자신들은 매일 실천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키는 것이 무척 힘들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경건한 자들이라는 긍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도 예수님에게 자신 있게 제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대단히 충격적입니다. 첫째, 장로들의 전통을 '너희의 전통'이라고 폄하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구전율법, 즉 장로들의 전통이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거룩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단지 '너희들의 전통'이라고 깍아내리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하시딤들이 처음에 그것을 만들 때는 좋은 의도로 만들었다는 것을 예수님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 어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인간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엄청난 범죄행위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한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에게는 결정적인 치명타입니다. 그들이 애지중지하는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깊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들이 깊은 상처를 받은 이유는 장로들의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긍지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꾸준히 지켜왔습니다. 한두해가 아니라 평생 동안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도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에 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제거하기 전에는 자신들의 종교적 삶이 무의미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장로들의 전통을 비난하신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토록 강도 높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겠습니까?

첫째,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들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의 위치로까지 높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 그들이 만들어낸 구전율법은 가난한 자들은 지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실 때는 모든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하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을 더 엄격하게 만들어 놓음으로써 생업에 쫓기는 일반 백성들은 도저히 지킬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더구나 구전율법은 책에 기록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백성들은 구전율법을 알려고 해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신 것입니다.

셋째, 이것은 성경 외부의 자료에 근거한 설명인데, 바리새인은 구전율법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경건싸움을 했습니다. 바리새파의 각 계파들은 서로 더 지키기 어려운 규정들을 만들어내고 자신들은 다른 계파보다 더 어려운 것을 지키므로 자신들이 저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위선적인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4) 바리새파의 특징

앞에서 사두개파의 특징을 설명했듯이 이제 바리새파의 특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들은 중산층이었다.

사두개파가 종교귀족이었고 엣센파가 최하층의 삶을 살았던 반면 바리새파는 중산층의 삶을 살았습니다.

* 성문율법과 함께 구전율법을 인정했다.

그들은 성문율법과 구전율법 모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는 엄청난 과오를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이런 입장이 오늘날 유대교 전체의 입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네 개의 분파들 중 주후 70년 이후에 살아남은 분파가 바리새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두개파는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역사에서 영영 사라졌습니다. 엣센파도 주후 68년에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설명할 열심당은 로마에 댜한 항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후 완전히 맥이 끊겨 버렸습니다. 결국 성전 없이 율법을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리새파만이 전쟁 후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구전율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지금의 유대교도 구전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 천사를 인정하고, 천사들과 마귀들의 서열에 관하여 상당히 발달된 견해를 취했다.

이것은 바리새파가 성문율법과 구전율법 모두를 인정한 거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구전 율법 속에는 천사들과 마귀들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습니다.

*영혼과 부활을 인정하고 죽은 이후의 상급과 형벌을 믿었다.

이것 역시 그들이 성문율법과 구전율법 모두를 인정한 것의 결과입니다. 모세오경 외의 구약 다른 본문들 속에는 그런 주제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욥기에는 사탄이 등장합니다. 욥기 19:26은 영혼의 존재를 말합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다니엘 12:2은 부활에 대해 말합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그리고 다니엘 12:3은 천국에서의 상급에 대해 말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 인간 평등을 강력히 옹호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중산층이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일반 백성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 바리새인들을 접하는 우리는 그들을 위선자로 만 알고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에 대해 그리 나쁜 평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 그들의 가르침의 강조점은 신학보다는 윤리적인 것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낮에는 각자 자신의 직업에 종사했고 저녁에는 율법을 연구하거나 마을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두개파와는 달리 항상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의 일상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그들이 다루는 문제는 윤리적인 것이 많았습니다.

3. 엣센파(Essenes)

엣센파라는 사람들은 주후 37년에 태어나 100년경에 로마에서 죽은 요세푸스의 책들 속에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요세푸스의 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그들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47년에 베두인 목동들에 의해 쿰란(Qumran) 동굴들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쿰란 공동체와 요세푸스가 말한 엣센파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해서 엣센파에 대해 설명하려고 합니다.

 

1) 엣센파의 특징

a. 근본적으로 제사장 공동체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요나단 왕이 대제사장의 자리에 오르자 거기에 반대하여 쿰란으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잘못된 대제사장에게 가장 크게 반기를 들었겠습니까? 아마도 요나단이 대제사장이 되지 않았더라면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던 사람과 그의 측근들이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과 이해관계가 있을 때에야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법입니다. 그래서 엣센파는 제사장적인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b.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는 다른 달력(양력)을 사용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유대인들의 달력은 음력입니다. 그런데 음력에는 윤달이 있어야 하고 양력보다 계산하기가 복잡합니다. 그래서 매년 초가 되면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이 그 해의 달력을 반포했습니다. 그러면 전세계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 달력을 기준으로 삼아 한 해 동안 생활을 했습니다.

이 말은 매년 달력의 구체적인 날 수 등을 예루살렘에서 계산해서 결정했어야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달력은 매우 규칙적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매년 따로 계산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대 달력 컴푸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그 당시의 달력까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달력 자체가 가변적이어서 매년 예루살렘에서 달력의 내용을 결정해야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상징적 행위로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이 매년 초에 유대인들의 달력을 공포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쿰란에 모여 살던 엣센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이 공포하는 그 달력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대제사장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음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달의 모양은 어디를 가나 똑같기 때문에 예루살렘 달력과 전혀 다른 음력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양력을 채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엣센파는 유대인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양력을 사용했습니다.

c. 자신들의 지도자를 '의의 교사'(the teacher of righteousness)라고 불렀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자신들의 지도자를 '의의 교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마도 예루살렘에 있는 '가짜' 대제사장에 의해 자리에서 쫓겨난 '진짜' 대제사장이었을 것입니다.

d. 원칙적으로 결혼을 정죄하지는 않았으나 결혼을 피했다.

그들은 대단히 금욕적인 사람을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매일 매순간이 위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있는 왕이 자신들을 위해 군대를 보내면 자신들은 꿈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금욕적인 삶을 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금욕의 대표적 상징은 결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결혼을 피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공동체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양자를 들였기 때문입니다.

e. 극심한 이분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들이 환난 공동체였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입니다. 평화시에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은 같은 편 아니면 적이됩니다. 쿰란 공동체는 언제 왕이 보낸 군대에 의해 멸망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자신들은 빛의 자녀들,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추종세력들은 어둠의 자녀들, 지금은 사탄이 득세하고 있는 악의 세상, 앞으로 올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선의 세상, 이런 식입니다.

f. 빛과 태양을 중시했다.

이들은 이분법을 사용하여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빛과 어두움 중에서 빛을 중시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나 빛을 숭배한 것은 아닙니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아침에 동굴 입구에서 동쪽을 바라보며 명상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또 이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중시하여 그들의 무덤을 보면 머리가 항상 동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 반대쪽을 좋아한 것 같기도 합니다.

g. 극단적 운명론자들로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운명의 탓으로 돌렸다.

운명과 개인의 노력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 그리고 엣센파의 특징이 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고위층이었던 사두개파는 운명을 부정했고, 중산층이었던 바리새파는 양쪽 모두를 인정했습니다. 반면에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어려운 생활을 했던 엣센파는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리는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 분파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가장 정확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그들이 취한 인생관은 그들의 사회적 계급의 보편적인 인생관과 일치합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지 최고위층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것의 원인을 자신들의 노력으로 돌리려 하고, 최하위층들은 자신들의 고난의 원인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서건 중산층들은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이 있다고 해도 얼마나 쉽게 우리가 속한 사회적 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입니다. 완전히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인생관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오만하거나 무식한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열린 마음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에 반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인정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h.구전율법(oral law)을 인정했다.

엣센파 역시 바리새파와 마찬가지로 구전율법을 인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불멸과 천국, 지옥, 천사, 사탄의 존재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i. 입교시에 경건과 순종의 엄숙한 맹세를 해야 했다.

이들은 아주 단단한 결속력을 가잔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따라서 입교시에는 엄숙한 맹세를 해야 했고 일정 기간의 견습 생활을 마친 후에야 심사를 통해 정식 회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j. 토라의 정결법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이들은 핍박의 위협을 항상 받고 있었고 곧 다가올 세상과 마지막 때를 고대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항상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k. 재산의 공동소유를 실천했으며 강한 상호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이제 곧 세상의 끝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세상은 한시적이라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l. 매일의 예배와 성경 연구를 강조했다.

아들은 기도와 더불어 성경 연구를 중시했습니다. 이들이 쓴 성경 주석을 '페셔'라고 합니다. 필자가 네덜란드 유학시절에 랍비 아람어를 배울 때, 독해용 교재로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이 '페셔하박국' 즉 엣센파가 쓴 하박국 주석서였습니다. '페셔'의 특징은 세상의 모든 것을 엄격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본다는 것과 구약성경 전체를 자신들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많은 구절들이 자신들의 때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자신들이야 말로 예언자들이 오래 전부터 예언하던 바로 그 남은 자들이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한 의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해석할 때 늘 아전인수격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거기에 투영해 넣으며 해석했습니다.

m. 묵시적 종말론을 신봉하여 많은 묵시문헌들을 남겼다.

엣센파는 묵시문헌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 중에서 요한계시록이 장르상 묵시문헌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항목을 달리해서 따로 자세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2) 예언서와 묵시문헌의 차이

묵시문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반적인 예언서와 묵시문헌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예언서 혹은 선지서의 범위를 아주 넓게 잡을 경우에 묵시문헌도 예언서에 포함되게 됩니다. 즉 묵시문헌이 예언서의 진부분집합이 됩니다. 둘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 주는 형식의 문헌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언서의 범위를 아주 좁게 잡을 경우가 있습니다. 묵시문헌과 일반 예언서를 구별하고 싶은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일반적인 예언서와 묵시문헌의 차이를 설명해야 합니다.

<묵시문헌과 하나님의 계시> 보통 요한계시록의 문학 장르를 묵시문헌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요한계시록이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의 결과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묵시문헌은 문학 장르의 명칭입니다. 시편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지만 시편의 문학 장르는 '시'입니다. 시편의 문학적 장르가 시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듯이, 성경의 어떤 책들의 문학적 장르가 묵시문헌이라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계시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기록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를 주실 때 사람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문학 장르의 형식을 빌어서 주셨습니다. 그것들이 때로는 시이기도 했고, 잠언집이기도 했고, 묵시문헌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구약성경 중에서 어떤 것을 묵시문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지만 보통 이사야서 55-66장, 스가랴 12, 14장, 다니엘 7-12장 등을 묵시문헌으로 봅니다. 묵시문헌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반 예언서와 묵시문헌의 특징을 아주 짧게 설명하라고 하면, 아직 나라가 망하지 않아서 주의 백성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 때 주시는 예언서는 일반 예언서이고, 이미 나라가 완전히 망해서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졌을 때 주시는 것이 묵시문헌이라고 보면 됩니다.

바벨론에게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너희들 그러다가 나에게 혼난다. 이렇게 저렇게 행동을 고쳐라'라는 메시지를 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반 예언서입니다. 하지만 나라가 망해서 주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저렇게 착하게 살아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낙심하지 말고 인내해라. 하나님께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너희를 구해내실 것이다.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며 참고 기다리라'라는 메시지가 주어집니다. 그것이 묵시문헌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묵시문헌의 특징으로 지적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묵시문헌에는 윤리적 결단에 대한 요구가 없다는 점입니다. 나라가 망하기 전에는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이미 나라가 다 망해서 쇠사슬에 묶인채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런 메시지가 의미없습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에서도 4장 이후부터는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윤리적 측면을 강조하는 성경학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문학적 장르를 묵시문헌으로 국한하는 것을 무척 싫어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흔히 요한계시록의 문학 장르로서 서신서와 예언서를 끼워 넣는 것을 좋아합니다.

4) 묵시문헌의 특징

자, 지금부터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는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묵시문헌들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스가랴서나 요한계시록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들의 머리로 쓴 순수한 문학작품으로서의 묵시문헌이라는 장르에 대한 설명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묵시문헌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계시를 전해 주시자 사람들은 그것에 의해 큰 은혜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말라기 선자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선지자들을 보내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스스로 묵시문헌의 형식을 빌려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위로와 힘을 얻게 되자, 묵시작가들은 더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중간기에는 묵시문헌이라는 문학 장르가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묵시록이 아니라 신구약 중간기 때 인기를 얻었던 묵시문헌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것을 설명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을 주실 때 묵시문헌이라는 장르를 사용하여 계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묵시문헌이라는 장르를 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a. 현재의 세상에 대한 비관론

앞에서 일반적인 예언서와 묵시문헌의 차이는 그 계시가 주어진 것이 나라가 완전히 망하기 전이냐 아니면 그 후냐의 차이라고 말했습니다. 묵시문헌은 대개의 경우 나라가 망한 후에 쓰였기 때문에 현실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지금의 세상은 마귀들이 세력을 휘두르는 세상이고 앞으로 올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이 될 곳입니다.

b. 시대들에 대한 결정론

묵시문헌에서는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의 의해 창세전에 철저히 그 기간들이 예정되어 있다는 견해를 취합니다. 어떤 유대인 마을의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사람들 중 일부는 순교를 당했고 일부는 감옥에 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 때 어떤 젊은이가 묵시작가에게 묻습니다. (여기서 랍비라고 하지 않고 묵시작가라는 표현을 쓴 것은 토라를 중시하던 바리새파 정통 랍비들이나 현체제를 옹호하던 사두개파 사람들은 묵시문헌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묵시문헌은 대중적인 인기는 있었지만 랍비들로 대표되는 정통 유대교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물어보게나" "하나님께서 저희를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럼, 정말로 사랑하시고 말고, 세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우리 유대민족만을 택하셨다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정말로 전지전능하시나요?" "당연하지, 우리 하나님꼐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네.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이 창조하시고 항상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계시다네" "스승님, 그럼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전능하시기도 하시다면, 우리가 지금 왜 이 모양이죠?"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질문입니다. 사실 지금 우리들이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현실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중에도 두 가지를 믿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둘 중 하나는 아닐 것이라고 우리에게 소리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거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능력이 없으실 것이라고 소리칩니다. 당시의 묵시 작가들에게도 이것은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낸 답변이 바로 '결정론'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대화에서 묵시작가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네가 몇 년 동안 먼 곳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겠는가? 며칠부터 며칠까지는 어디로 가고, 그 다음에 며칠까지는 어디에서 머물고 하는 계획을 상세히 세우고 나서야 길을 떠나겠지? 그래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테니까 말일세.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라네. 세상을 만드실 때의 역사의 모든 기간들에 대해 계획을 세우셨다네. 그런데 그 계획에 따르자면 어떤 때는 다윗 왕이 다스릴 때처럼 의인들이 흥왕하는 시대가 있는 반면, 어떤 때는,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흥왕하는 시대가 있다네. 그런데 그만 우리가 태어난 이 시대가 악한 자들이 흥왕하도록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그 시대라네. 유감이자만 어쩔 수가 없다네"

이렇게 설명을 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전능하심에 타격을 입히지 않으면서도 지금 그들이 왜 그토록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지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구약중간기의 묵시문헌에는 하나님이 시대들을 미리 예정하셨다는 설명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것을 결정론이라고 합니다.

 

c. 종말의 임박성

묵시작가의 설명에 만족한 젊은이는 궁금한 생각이 들어서 또 그에게 묻습니다.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거나 능력이 약하신 것이 아니었군요. 참 다행입니다. 그러면 스승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은 언제가 돼야 끝나는 겁니까?" 그런데 만약 이 질문에 대해 묵시작가가 "아, 앞으로 남아 있는 기간 말인가? 내가 이미 하나님께 여쭤봤는데 앞으로 250년 동안은 계속 될 것이라고 하시더군"이라고 답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젊은이와 사람들은 낙심하고 말 거입니다. 평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지내느니 차라리 배교를 하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문헌에서는 종말까지의 시간이 항상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환난 중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종말의 임박성이라고 부릅니다.

 

d. 상정적인 언어의 사용

묵시문헌은 핍박 받은 자들의 용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핍박자들이 멸망하기를 원해서 그것을 책에 써 넣는데, 만약 그것을 핍박자들 자신이 쉽게 해독할 수 있다면 그 책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묵시문헌에는 항상 상징적인 언어들이 차고 넘칩니다. 그것들은 핍박을 받는 독자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핍박자들은 알아차리기 힘든 것들입니다.

 

e. 계시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유명한 인물이나 천사

만약 어느 날 묵시작가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여러분, 제가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우리 마을의 미래의 모습을 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다 이루어주셔서 원수들이 다 물러가고 마을이 평화롭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우선 기뻐하겠지만 "우리 스승님이 혹시 헛 꿈을 꾼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묵시작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 봅시다. "여러분, 제가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천사장 미가엘이 내 옆에 있었습니다. 미가엘이 나에게 말하기를 '나와 같이 하늘로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가엘과 함께 하늘에 올라갔는데, 그가 나를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놀라운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묵시작가의 말을 좀 더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장 미가엘이 직접 나타나 계시를 주었다면 그것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묵시문헌에는 계시를 보는 자가 스스로 그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유명한 이물이나 천사가 나타나고 그를 안내하고 계시를 보여주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f. 악인들에 대한 엄중한 심판과 의인들에 대한 초자연적 구원

묵시문헌이 그리고 있는 시대는 대개 선인들, 하나님을 잘 믿는 자들이 약하여져서 고난을 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들은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고 의인들을 구원하고 싶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묵시문헌들 속에서는 항상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초자연적 능력을 통해 사악한 자들을 엄중하게 심판하시고 의인들에게 상을 베푸십니다.

 

g. 구약의 저명한 인물들을 저자로 내세움

어느 날 묵시작가가 책을 다 쓴 후에 그것을 사람들에게 읽어줍니다. 사람들은 그 내용을 듣고 감격에 겨워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나서 묵시작가에게 묻습니다. "스승님, 그 책 정말 좋습니다.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누가 쓴 것입니까?" 그 때 만약 묵시작가가 "아, 이 책이요? 제가 어제 쓴 책입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다시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렇게 큰 계시를 보여줄 만한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묵시문헌의 저자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구약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을 저자로 내세웠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저자들은 책을 썼을 것 같은데 의외로 안 쓴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를테면 에녹이 있습니다. 애녹은 삼백 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입니다(창 5:22).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에녹은 책을 꼭 썼을 것 같은데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묵시문헌을 쓰고는 저자를 에녹이라고 붙여 놓았습니다.

지금은 이런 일을 하면 저작권법에도 걸리고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지만 당시에는 별로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책을 쓴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들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이 사용한 구약의 인물로는 열두 족장들, 에스라, 그리고 예레미야 제자였던 바룩등이 있습니다.

h. 시대에 대한 엄격한 이분법과 대재앙을 통한 새 세계의 도래

엣센파와 마찬가지로 묵시문헌이 나타날 당시의 유대인들은 큰 환난을 당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시대에 대해 엄격한 이분법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선한 시대와 마귀가 득세하고 있는 악한 시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마귀가 득세하고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세상이 바뀔 수 없고 하나님의 초자연적 대재앙을 통해서만 이 세상이 망하고 새로운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만 위에 설명한 것은 정경으로서의 묵시문헌에 대한 설명이 아니고 신구약 중간기에 유행했던 인간의 책들로서의 묵시문헌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장르를 사용하셔서 요한계시록 등의 계시를 주셨기 때문에 이 장르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합니다.

4. 열심당(= 열혈당, 셀롯인, 젤롯인, 식카리[Sicarii])

요세푸스는 주후 1세기에 유대교에 네 개의 분파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센파, 그리고 열심당입니다. 앞의 세 분파는 주전 140년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지만 열심당은 주후 6년에야 처음으로 역사책에 이름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바리새파와의 차이

이들은 신학적으로는 거의 모든 면에 있어서 바리새파와 그 노선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크게 볼 때는 바리새파의 일부라고 해도 별 뮈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딱 한가지 면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바리새파와 생각을 달리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빨리 세상에 보내주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일반적인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회개를 하여 깨끗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주실 거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그들이 지금 로마의 압제 밑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들의 죄악이 아직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회개하는 일에 열심을 냈습니다.

하지만 열심당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칼을 들고 로마에 대항하여 싸우면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시간 이전에 메시야를 보내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에 저항하여 싸우면 유대인들이 패배할 것이 뻔합니다. 많은 이들이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예정하셨던 시간보다 일찍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때는 이상한 생각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2) 로마에 대한 항쟁

이들은 위와 같은 메시야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후66년에 정말로 대로마 항쟁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 책 뒷부분에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이 항쟁에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까지 탈환했지만 결국 로마에서 파견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Flavius) 장군과 그의 아들 티투스(Titus) 즉 디도 장군에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노예로 팔려 버리게 됩니다.

 

3) 식카리(Sicarii)라는 이름의 의미

이들이 지칭하는 이름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중에 셀롯인 혹은 젤롯인이라는 이름은 '열정적인'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젤로스'에서 온 것입니다. 열심당 혹은 열혈당이라는 단어는 그것의 번역입니다. 그런데 좀 유별난 이름이 있습니다. '식카리'라는 이름입니다. 아람어로 '단도' 즉 짧은 칼이라는 뜻인데 열심당원들이 흔히 이 칼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세 명의 롤모델들> 단도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우선 열심당원들이 자신들의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그들은 엘리야와 맛다디아, 그리고 비느하스였습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5명, 그리고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싸워 이긴 인물입니다. 맛다디야도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헬라왕조인 셀류키드 왕조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킨 지도자였습니다. 엘리야와 맛다디야의 공통점은 형편없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승리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열혈당원들은 자신들이 로마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이지만 엘리야와 맛다디야를 본받아 용감히 싸우면 충분히 로마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느하스> 그런데 세 사람의 롤모델들 중 비느하스는 약간 다릅니다. 그는 아론의 손자로서 민수기 25장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지경에 이르렀을 때 모압 왕 발락은 여인들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죄악에 빠지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성적인 범죄에 빠졌을 뿐 아니라 모압 여인들과 함께 제사에 참여함을 통해 우상숭배까지 범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크게 분노하셔서 그들에게 염병을 보내십니다. 그래서 무려 2만 4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는 일이 발생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진노 때문에 회막 문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정말 무엄하게도 시므리라는 유대인의 지도자가 고스비라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행음하기 위하여 자기 막사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그저 보고만 있을 때, 비느하스는 창을 들고 그 막사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한 창에 찔러 죽여 버립니다.

이 사건의 결과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우선 비느하스 개인이 하나님께 칭찬을 듣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실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도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라"(민 25:11-13). 비느하스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살인자로 비난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로 그들을 죽였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느하스는 그와 그의 후손들이 영원히 제사장 직분을 수행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그들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들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이 그치게 된 것입니다. " ...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쳤더라"(민 25:8). 시편 말씀 역시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이 일이 그의 공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시 106:28-31).

열심당원들은 이 사실에 주목하였습니다. 그 당시 로마인들에 의해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범죄했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들 중에서 신앙을 배반하고 로마에 빌붙어 사는 자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신자들을 처단하면 즉 비느하스가 시므리를 처단했던 것처럼 그들을 죽여 버리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대인들이 로마인들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고 이스라엘에는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도를 지니고 다니면서 로마의 앞잡이가 된 반역자들을 암살하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비느하스는 창으로 시므리와 고스비를 죽였지만 로마의 앞잡이를 죽이기 위해 창을 들고 다니면 금방 정체가 탄로나기 때문에 무기를 단도로 바꾼 것입니다. 그들은 암살이 여의치 않거나 도망가는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그 단도를 사용하여 자살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4) 열심당원들의 민족주의적 성향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이 열심당원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이 대단히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후 66년에 대로마 항쟁을 일으킨 이유도 이교도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오직 하나님께만 모든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유대교 신앙과 충돌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거룩한 땅 안에서 이방인의 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하는 것도 매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ius, 주후 37-100?)

지금까지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에 나타난 유대교의 세 분파들, 그리고 주후 6년에 처음으로 역사에 나타나는 열심당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요세푸스라는 유대 역사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세푸스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쓴 역사책들 덕분에 우리가 예수님과 그 이전 시대의 유대 역사에 대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세푸스는 주후 37년에 태어났습니다. 소년 시절에 요세푸스는 유대교의 네 분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네 분파 모두를 설렵해 보았다고 합니다. 그는 대단히 똑똑한 인물이었습니다. 주후 66년에 열심당원들이 대로마 항쟁을 일으키자 그는 그 전쟁에 참가했습니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갈릴리 지역의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은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쟁의 불길이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곳은 항상 엘리트들이 있는 수도권 지역이 아니라 민중들이 살고 있는 변두리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지역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은 대로마 항쟁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런데 요세푸스가 만 29세의 나이에 그 중요한 곳의 사령관이 된 것입니다. 그가 대단히 능력 있는 인물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요세푸스는 그 전쟁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열심당원들이 그 전쟁을 일으켰는데 그들의 생각은 너무나 허황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앞서 설명한 대로 전쟁을 통해 자신들이 피를 흘리면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빨리 이 땅에 보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황당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전쟁을 하다 보니 요세푸스는 그 전쟁의 정당성에 대해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로마에서 파송된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장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갈릴리의 요타파 요새라는 곳에서 전투를 하다가 그는 항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를 마났을 때 요세푸스는 그가 장차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베스파시아누스의 호의를 얻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유대인들은 예언자들의 나라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자들의 나라의 젊은 엘리트가 자신이 장차 황제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 주자 베스파시아누스는 무척 기뻤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이 한창이던 주후 68년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정말로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로마에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황제로 옹립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급히 팔레스타인으로 사람을 보내어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로마로 불러 들입니다. 그 때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요세푸스를 로마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황제가 되자 요세푸스에게 크게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가 요세푸스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하는 것은 그에게 플라비우스(Flavius)라는 성을 하사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플라비우스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방인인 요세푸스에게 사용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원래 성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성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굳이 자신의 가문을 나타내려 할 때는 아들이라는 뜻의 '벤'이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여 '아무개 벤 아무개'라는 식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하난 벤 자카이'라고 하면 '자카이의 아들 요하난'이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은 나름대로 통치를 잘 하여 3대에 걸친 플라비우스 왕가를 이루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us) 자신이 황제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그의 아들 티투스(Titus)가, 그리고 그 다음에는 티투스의 형제인 도미티아누스(Domitianus)가 차례로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로마인들로부터의 미움> 로마에서 생활하던 요세푸스는 자신을 미워하는 두 세력들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하나는 로마인들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대단히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남달리 큰 특권을 베풀어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로마인들에 대항하여 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준 특권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유대인들의 군대 징집을 면제해 준 것입니다. 사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훈련도 거부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로마군의 방식대로 훈련시켜서 전투에 활용해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안식일이 되면 칼을 들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싸움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에게 군대 복무를 면제해주는 큰 혜택을 준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특권은 예루살렘 성안에 황제의 신상을 세우지 않아도 되도록 허락해 준 것이었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자신들을 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도시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우고 그것을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로마 황제의 신상을 세우려 했을 때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하자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에는 로마 황제의 시낭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로마인들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큰 혜택을 베풀어 준 것입니다. 그런데 혜택을 입은 유대인들이 오히려 로마에 대해 반기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라고 하며 아주 싫어했습니다. 로마에서 로마인들과 함께 살았던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증오 때문에 무척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의 미움> 요세푸스는 또한 유대인 동족들로부터 큰 미움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요세푸스는 배신자였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에게 체포되었을 때 그에게 목숨을 걸고 대항하는 대신 오히려 그가 장차 로마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구역질나는 아부였습니다. 그리고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정말로 로마의 황제가 되자 요세푸스는 그에게 빌붙어서 로마에서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요세푸스 수하에서 함께 싸웠던 수많은 부하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보면 요세푸스는 정말로 배신자라고 불리기 딱 좋은 인물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로마인들에게는 유대인들을 변호하고 유대인들에게는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네 가지 책을 저술했습니다.

* 유대고대사(Jewish Antiquities)

먼저 '유대고대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민족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읽어보면 구약성경의 내용을 쉬운 이야기체로 풀어쓴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는 당시 최고의 역사와 문화를 가졌다고 주장하던 로마와 그리스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역사가 그들의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으며 유대인들이 그들에게 뒤지지 않는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주장하고 있습니다.

* 유대전쟁사(Jewish War)

'유대전쟁사'는 유대인들이 과거에 겪었던 전쟁들을 기술한 책입니다. 그 중에서도 대로마 전쟁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요세푸스는 비록 유대인들이 로마와의 전쟁에서는 어이 없이 패하고 말았지만 유대인들이 원래 그렇게 약하고 어리석은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자서전

이 책은 유대인들에게 요세푸스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하여 쓰여진 책입니다. 이 책에서 요세푸스는 자신이 전쟁을 통해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요세푸스는 자신이 유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이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것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 아피온 반박문(Against Apion)

그리고 '아피온 반박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피온은 이집트 출신의 로마인입니다. 다른 로마인들이 비논리적이고 감정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을 미워한 반면 아피온은 나름대로 논리적인 극거를 제시해 가며 유대인들의 열등성을 주장했습니다. 그의 글은 로마인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고 있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요세푸스는 아피온의 주장 하나하나에 대해 논리적인 반박을 제시하는 글을 썼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피온 반박문'입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배반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책들이 별로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초기부터 요세푸스의 책들을 환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책을 통해 예수님 당시의 유대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학식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경과 더불러 요세푸스의 책들을 필독서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유대인들도 자신들의 역사를 책으로 기록해 준 고마운 역사가로 그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주후 100년경에 로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스모니안 왕조는 주전 63년에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함으로 끝이 납니다. 이제 로마 식민지 기간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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