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이 없어서 구원얻지 못할 그리스도인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회개에 있다. 회개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인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회개를 놓쳐버린 것일까? 그것은 개혁신앙의 뿌리라고 일컬어지는 예정론에 그 뿌리가 있다. 구원은 만사전의 불변적인 예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오늘은 누가 과연 구원을 얻게 되는지 예정론과 비교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1. 들어가며
왜 우리는 회개와 천국복음을 알아야 하는가? 그것은 회개를 모르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마4:17). 이 세상에 믿는 사람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 메시야실 뿐만 아니라 그분이 바로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다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마16:16). 하지만 천국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도 많다. 그냥 예수님만 믿으면 지은 죄도 다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줄로 안다. 더욱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가까지도 다 용서받는 줄로 안다. 하지만 아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이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 뿐이다. 그러니 실제로 숟가락질을 해야 밥이 입안에 들어오듯이 우리는 지은 죄를 자백해야 한다. 그리고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을 일컬어 "회개"라고 부른다.
또한 왜 사람이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인간치고 어느 누구라도 죄된 본성을 100% 이기고 살 자는 아무도 없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인간의 육신 속에 이미 죄된 본성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부패한 본성을 다 이기고 살 자는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회개해야 한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이다. 물론 이미 거듭난 자는 큰 죄들은 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죄 특히 생각의 죄는 범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성도라면 누구든지 죽는 그날까지 회개해야 한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 회개는 필수적인 요소다.
2. 과연 만세전에 예정된 자만이 천국에 들어가는가?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자가 들어가게 될 천국은 과연 누가 들어가게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아마도 오늘날의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만세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성도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믿음이 성경에 기초한 것일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과연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오늘은 진정 누가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받은 개신교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다음과 같은 구원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구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기 때문에 효과적인 부르심으로 오늘 나를 부르신 것이기 때문이요, 그 부름 안에서 내가 예수님을 알고 믿게 되었으니, 이제 나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 사실일까? 정말 예정된 자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인가? 정말 회개없이도 믿음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다. 당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로마카톨릭에서 얼마나 힘들게 신앙생활을 했던지 구원에 있어서 행함의 보조적인 역할마저 모조리 빼버렸다. 나가도 너무나 나가버린 것이다. 특히 구원에 있어서 예정을 집어놓고 회개를 빼버린 것은 큰 잘못 중에 잘못이었다. 사실 행함으로 구원얻을 자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성경적인 진리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행한다고 하더라도 지은 죄에 대해서는 처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은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세상에는 없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우리 주 예수님이 오신 것이다. 그분의 속죄의 죽음만이 인류를 죄값으로부터 구원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로마카톨릭의 구원관은 틀린 것이다. 하지만 개혁교회의 신앙에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첫째, 오직 믿음으로 구원얻는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요, 둘째, 구원에서 회개를 빼버렸기 때문이요, 셋째, 구원은 만세전에 하나님의 예정과 절대적인 작정에 의해서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성경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장의 위험성을 분명히 알고 조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잘못된 교리로 인하여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관에 대해서 우리는 정확히 알아야 한다. 개혁교회의 교리나 교단의 신학을 전적으로 따라가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구원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성경적인 구원관은 어떤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구원은 인간 스스로에 의한 선행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지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기위해 직접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의 속죄의 복된 소식을 듣고 이 예수님을 자기 마음 속에 영접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죄된 본성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끝까지 회개생활을 잘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과연 누가 구원얻게 되는가다. 우리 주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한 마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하지만 조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작정한 자만이 구원얻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만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잘못 생각하였다. 할례를 행하고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의롭게 될 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은 죄를 해결받는 데에는 할례와 율법이 큰 역할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구원의 복된 소식 곧 예수님에 의한 대속의 죽음의 복된 소식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세전에 구원얻기로 예정된 사람은 개인적으로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오신 다음부터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모든 경계선을 다 허물어버리셨다. 결국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구원을 주시겠다고 작정한 어떤 개인은 없다. 다만 구원은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그것을 수용하는 자가 얻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계시가 완전하지 않았던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는 그것이 다 폐지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막상 주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잔치에 초대했으나 선민인 유대인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유가 바로 눅14장과 마22장에 나온다. 이름하여 "천국혼인잔치"의 비유다.
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구원얻는 자는 대체 누구일까?
자,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는지 예수님을 말씀을 들어보자.
요7:37-38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계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을 것(요3:16)"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자는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절대 멸망치도 않는다고 했고, 그러한 자는 구원을 빼앗기지도 않는다고 말했는데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 그러한 성경구절은 없다. 자, 이 구절을 보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그렇다. 예수께서는 작정된 자가 아니라 바로 "그들"에게 영생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그들은 만세전에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앞 구절에 나와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그렇다. 그들은 바로 주님의 양떼들이다. 그런데 양떼가 되는 데에는 3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첫째로, 주님의 음성을 계속해서 들어야 한다(현재분사형). 그리고 둘째로, 주님께서 아시는 자라야 한다. 자기가 주님을 안다고, 자기가 주님을 믿는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셋째로,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가야 한다(현재분사형). 힘들다고 어렵다고 고난과 핍박받는다고 포기해서는 아니 된다. 설령 칼이 목에 들어와도 우리는 주님을 계속 따라가야 한다. 그렇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을 따라가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누구의 말처럼 만세전에 선택받은 어떤 개인이 구원얻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5. 개혁교회의 교리들이지만 비성경적인 교리들
그렇다면, 우리가 성경이라고 알고 있지만, 성경이 아니라 개혁교회의 잘못된 교리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자? 이런 것들이다. "한 번 구원은 영원히 상실되지 않는다."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천국 간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순간 구원은 완성된다."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를 영원히 붙드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작정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부 진리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너무나 쉽게 구원을 얻게 해주고, 구원받았다고 안도감을 주려하는 잘못된 주장들인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여기에 2가지가 있다.
첫째로, 믿음과 회개로 구원의 노정에 발을 들여놓은 자라도 얼마든지 구원이 상실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신앙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계3:5). 그러면 지는 자가 어떻게 되겠는가? 생명책에 이미 녹명되었다고 하더라도 지워진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모세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이미 모세에게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출32:3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서 기자도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히6:4~6)"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예수믿고도 타락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자들은 회개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그런 자는 결국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절대 완료형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구원은 우리가 죽는 그순간까지 계속해서 이뤄가나는 진행형일 뿐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라도 회개를 통해서 계속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나가야 하는 것이다(빌2:12).
둘째로, 믿음의 고백만으로 지은 죄가 자동적으로 용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믿음 말고도 반드시 회개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한사도는 이렇게 분명하게 말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렇다. 회개하지도 않는 죄는 없어지지 아니한다. 그런데도 어떤 자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용서받는다고 가르친다. 아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이 말은 공공연하게 교회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와같은 진리는 이미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다. "(계속해서) 회개하라. 왜냐하면 천국이 가까이왔기 때문이다(마4:17)"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한 세례요한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심판을 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마3:8). 믿음에 따른 행위가 뒤따를 때에라야 자기도 구원을 향하여 바르게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다(약2:26). 또한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런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약2:14)"이라고 말했다.
6. 나오며
그러므로 속지 말라.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개인을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버리기로 작정한 적이 없으시다. 만약 그러한 것처럼 보이는 성경구절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에 관한 작정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작정일 뿐이다. 곧 그것은 개인에 대한 구원작정예정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사역작정예정일 뿐이다. 하나님은 만세전에 개인에 대한 어떤 구원도 미리 작정하지 않으셨다. 다만, 구원의 복된 소식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신 것 뿐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해도 회개하지 않으면 죄사함을 받을 수가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닫지 못하고 시인하지 않는 자는 구원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해도 회개한 죄만 사함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회개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회개도 소극적인 회개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적극적인 회개를 해 나가야 한다. 하나님께 바라시는 것을 행하지 못한 것까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도하지 못한 것, 중보기도하지 못한 것, 맡은 일에 충성하지 못한 것까지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회개를 이루어 구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까.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