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창세기강해(115) 에서와 야곱, 과연 유기와 선택 예정의 예표인가?(창25:22~26)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gwyBcEd1I7c

 

1.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을 한 후에 왜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했나요?(창25:22)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한 후, 걱정할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태중에 있는 아기가 요동을 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혹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리브가는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이런 경우에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말이죠.

 

2. 리브가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셨나요?(창25:23)

  그때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중에는 지금 쌍둥이가 잉태되어 있으며, 그들은 나중에 두 민족(나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복중에서부터 서로 싸우는 것은 장차 서로가 나누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되면 한 족속(이스라엘족속)은 다른 족속(에돔족속)보다 강하게 될 것이고, 큰 자(에돔)는 어린 자(야곱)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서보니, 진짜 쌍둥이였습니다. 그중에 먼저 나온 자는 전신이 붉고 털이 많은 아이였으며, 후에 나온 자는 자기의 손으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올 정도로 욕심많은 아이였습니다. 따라서 이름을 짓기를 전신이 붉은 장자는 "에서("붉다")"라고 칭하였고, 차자는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는 뜻으로 "야곱"이라고 칭하였습니다. 

 

3. 오늘날 개신교 중 일부에서는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의 정하심을 두고서 "선택과 유기(버림받음)"라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바른 해석이라고 할 수 있나요?

  오늘날 개신교 중 특히 장로교쪽에서는 에서와 야곱이 서로 태중에서부터 나누인 것을 두고서, 구원에 있어서 야곱은 선택받은 자이며, 에서는 버림받은 자이 라는 것을 예표하고 있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한 결정이이 그들이 태어난 후에 그들이 선택해서 된 것이 아니라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그렇게도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크게 잘못된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에서와 야곱를 태중에서 구원론적 관점에서 미리 결정한 것이 결단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이 태중에서부터 서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안배하신 것은 맞지만, 구원과 멸망을 이미 태중에서부터 하나님이 결정하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방향을 잘못 설정한 해석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원을 미리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갈 삶에 대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안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4. 사람의 쓰임과 구원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가 하는 것과 그리고 그 사람이 정말로 구원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버림을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앞의 것은 쓰임(용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고, 뒤의 것은 구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임을 받든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제대로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누구는 멸망으로, 누구는 구원으로 결정된 채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거부한 채 제 길로 가서 결국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딤전2:4, 요37). 그러므로 에서와 야곱의 안배는 그들이 장차 어떻게 살아갈(쓰임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이지, 그들 중에서 에서는 영원한 멸망으로 그리고 야곱은 영원한 구원으로 예정하셨다는 말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에서와 야곱의 경우를 비교하면서, 이들이 서로 다른 용도의 그릇으로 빚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에서와 야곱을 서로 다른 용도로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권한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어리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를 이 땅에 내보내시기 전에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를 미리 정하실 권한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자기가 어떤 용도로 쓰임받을 것인지 사명을 부여받은 채 이 땅에 보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에서와 야곱의 경우처럼 미리 정해진 채 태어나는 사람도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은 영원한 멸망으로 예정하시고, 한 사람은 영원한 구원으로 예정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매우 왜곡한 해석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비정하고 난폭한 폭꾼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구원과 멸망의 운명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그대로 되게 만들어버리는 그러한 폭꾼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께서 정하신 안배(어떤 용도의 예정) 없이 태어난 사람일지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으며, 천국에 들어가서 큰 자가 될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사람이 잉태될 때 영안으로 보면, 보통 사람이 태중에서 잉태된 지 2~3개월쯤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태중에 아이 속으로 보내주신다는 것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하늘로부 터 보내어지는 영혼은 사람에 따라 0살에서부터 청소년의 시기까지 다양합니다. 대부분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의 나이에 하늘로부터 보내어지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0살에 보내어진 아이는 특별한 사명을 받지 않은 채 태어납니다. 그런 자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가꾸어야 할 지를 배우며 결정하며 살아가야 됩니다. 그런데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이미 정해진 소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 중에는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그것을 잘 감당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을 망각한 채,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특별한 사명을 받지 않은 채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말씀을 듣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여 천국에서 면류관도 쓰고,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서 예배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는 종과 같이 남을 섬기는 자가 오히려 천국에서 섬김을 받는 자가 되고 더 큰 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0:26~27). 참고로, 큰 자(에서)가 어린 자(야곱)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했으니, 에서가 천국에서 더 큰 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상급은 이미 정해진 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어떤 용도로 쓰임받을 것인지 하나님의 정하심을 따라 태어나는 사람이 있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구원은 이 땅에서 자기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얻게 되는 것이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천국상급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고로 사람에게 미리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보고 듣고 깨달은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가 결국 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말라기에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라고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내일 더 소상하게 다루겠습니다. 

 

2021년 06월 08일(화)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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