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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브 주소 https://youtu.be/qX5BhrlimAk
날짜 2022-10-26
본문말씀 요한복음 5:19~47(신약 151면)
설교자 정병진목사
주제어 아버지와아들, 아들의사역의원칙,아들의권한,아들의증거,세례요한,아버지의말씀,예수의사역,구약성경의기록,모세의글,심판주,고소자

2022-10-26(수) 수요기도회

제목: 요한복음강해(17) 아버지와 아들이 하는 일과 그분의 증언 및 유대인들의 반응(요5:19~47)_동탄명성교회 정병진목사

https://youtu.be/qX5BhrlimAk  [혹은 https://tv.naver.com/v/30435192 ]

1. 들어가며

  요한복음은 참으로 읽기가 쉬운 책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운 책이기도 하다. 요한복음은 다른 공관복음서에 비해 쉽게 쓰여졌지만 그 내용을 곰곰이 읽다보면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수께서 하신 말씀들이 그렇다. 그 말씀들은 그냥 단순히 예수님의 생각에 떠오른 것을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들은 것을 그대로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물을 초월해 계시고, 한 분으로 계신 하나님의 생각으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도 나오는 것이다. 특히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게 될 말씀들도 이러한 말씀 가운데 첫 번째 말씀에 해당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님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셨다. 물론 군중이 알아듣기 쉽도록 바꾸고 바꾸어서 말씀하신 것이지만, 듣는 이들은 그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는 보혜사 곧 돕는 자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은 성령님에 의지하여 주님께서 직접 들려주신 말씀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가운데 아들의 사역의 원칙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2가지 권한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것이다(요5:19~29). 그리고 왜 예수님의 말씀들은 믿을 만한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4가지 증거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요5:30~40).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들을 배척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탄식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요5:41~47).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실체에 대해 보다 더 주님 가까이 가 보자. 

 

2.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가운데 아들의 사역의 원칙은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이 하는 일은 당신 스스로 하는 일이 아니라고 늘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이 들려주시는 말씀조차도 당신 스스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하셨다. 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여 주신 것을 말씀하시고 행할 뿐 아니라 또한 아들에게 들려주시고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요5:19). 다시 말해,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과 말씀의 원칙과 기준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것은 오직 아버지의 사역과 말씀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셨다.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말씀하셨으며(요8:28),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씀하고 행했으며, 들은 대로 말씀하고 행하셨던 것이다(요8:38).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 가서 말씀을 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아버지는 하나이시기 때문이다(요10:30). 아들 안에 아버지가 계셨고, 아버지 안에 아들이 계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여 주셨거나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실행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던 예수께서도 안식일이었지만 일을 하셨던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시려고 안식일에도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3.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2가지 권한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들에게 보이지 않고 행하시지 않으셨다. 그런데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정죄하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지켜보았던 것들보다 더 큰 것들을 장차 보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요5:20). 그럼 장차 보게 될 큰 것들은 무엇인가? 그것은 첫째,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으로 인하여,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셨던 것처럼 아들도 역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생명을 주신다는 것이다(요5:21). 그리고 둘째,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 되심으로 인하여 심판하는 권한을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아 심판을 집행하는 것이라고 하셨다(요5:22,27). 

  그렇다면 먼저, 예수께서 어떻게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살리셨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홀로 계셨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아들을 낳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아버지가 되셨다. 그리고 아들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명을 주셨다(요5:26). 그리하여 아들에게도 생명이 있게 하셨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구약 시대에 죽은 자들을 일으키고 살려내었듯이 예수께서도 그렇게 행하실 수 있었다. 우리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나 엘리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죽은 자를 일으켜 살려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아버지를 따라 죽은 자를 일으키고 살려내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 및 죽은 지 4일된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 나사로도 살려내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사람을 일으키시고 살려내신 일은 일종의 예표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진짜는 성도들이 죽을 때에 그들에게 부활생명으로 살아나게 하시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부활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몰라 악한 일을 자행했던 자들은 그때에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죽은 자를 부활시킬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자를 부활시킨다고 하셨는데 이는 무슨 말일까?(요5:28). '무덤'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파묻어 두는 실제 무덤을 가리키는 것일까?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육체가 곧 속사람의 무덤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의 겉사람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육체는 흙에 장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이 무덤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즉시 사람의 영혼은 자신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음부와 낙원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은 헛된 일일 뿐이다. 

  이제는 예수께서 어떻게 심판을 집행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예수께서는 심판을 행하실 때에는 당신 스스로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아버지가 계셔서 그분의 판단대로 판단을 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요8:16). 그러므로 예수님의 심판은 항상 의로울 수밖에 없다(요5:30). 그렇다면, 왜 아버지께서는 심판을 아들에게 다 맡기시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 곧 종의 형상인 사람의 육체를 입고 사람이 되셨기 때문이다. 즉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되심으로 인하여 아들에게 심판의 권한을 위임하신 것이다(요5:27). 그리고 심판의 권한을 아들에게 위임하시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요5:23). 왜냐하면 우리가 나중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재판장으로서 예수님을 지켜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예수님의 증언 곧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참이요 진리라는 4가지 증거는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은 항상 진리이며 당신의 심판은 항상 의롭다고 하셨다(요8:45~46, 5:30, 8:14).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항상 진리이고 참이 되실 수밖에 없는 증거는 무엇인가? 이때 예수께서는 그런 증거로서 4가지를 언급하셨다. 

  첫째, 아들이 누구시며 아들의 말이 진실인지 증언해 주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라고 했다(요5:31,37). 사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예수께서 누군지를 맨 처음 말씀하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마3:17). 그런데 예수님을 책 잡으러 왔던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아버지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또한 아버지를 본 사람도 없었다. 사실 구약 시대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음성으로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두 명의 천사와 함께 아브라함을 찾아오셨다(창18:1).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모양을 취하신 채 나타나셨다. 이것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목격한 사례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보았던 그분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보지도 못하였고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보여지지도 아니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딤전6:16). 그렇지만 아들은 보셨다.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분이시기 때문이다(요6:46). 

  둘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해 주었기 때문이다(요5:33). 세례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이자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하였다(요1:23).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성령이 내려오셔서 위에 머물러 계신 분으로서, 사람들에게 장차 성령으로 세례주는 이이신 예수님이라고 했다(요1:33~34).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가리켰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 만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그가 잠깐 비추다가 사라질 등불과 같은 존재였지만 세례 요한을 보고 즐거워하였다(요5:35). 그러나 예수께서는 굳이 사람의 증언을 받으실 필요가 없으시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의 증언을 취하셨을 뿐이다(요5:34).

  셋째,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채 있는 사역들(행위들)이 곧 예수님이 누구시며 그분의 말씀이 참된 것인지를 증언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요5:36). 사실 예수께서는 결코 스스로 어떤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다 아버지께서 보여 주시거나 명령하신 것을 준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낫게 하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며, 못 듣는 사람의 귀를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신 것은 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신 일이었다(사35:5~6, 마11:5).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 이 땅에 오신 것이기 때문이다(요5:30, 6:38~40).

  넷째, 구약 성경의 기록들이 예수께서 누구시며 그분이 바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요5:39).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영생을 얻기 위해 부지런히 성경(구약 성경)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요5:39). 그런데 그 성경 기록은 다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고 있는 책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영생을 얻게 될 것인데, 그것은 구약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바로서 아들을 믿을 때에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아들을 향하여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분을 정죄하고 죽이려 하였다. 그러므로 아들을 미워하는 것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들은 구약 성경의 말씀들을 읽고 암송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구약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바 그리스도를 믿으려 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정죄하며 심판하고 판단하는 일에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장차 어떤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께서는 이제 안식일에 행하신 병자 치유를 빌미로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고 정죄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과 모세의 차이를 말씀해 주셨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이유는 그들을 정죄하고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하여 그들에게 안식을 주려고 오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그토록 믿고 추앙하고 따르고 있는 모세는 장차 심판 때에 그들을 정죄하고 고발할 것이라고 하셨다(요5:45). 그리고 그들이 진정 모세의 글들 곧 모세 오경을 믿었다고 한다면 모세 오경이 증거하고 있는 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이 모세 오경을 믿지 않는 증거라고 하셨다. 비록 그들이 모세 오경을 귀하게 여기고 있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붙잡기 위해 모세 오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남을 정죄하고 재판하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6.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 중에 예수 자신이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왔다고 말씀하셨다(요5:43). 예수께서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셔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한사코 아버지를 "나를 보내셨던 분"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는 대체 어떻게 아버지로부터 오셨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오신 것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왔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인가? 그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아버지의 이름 속에 담겨 있다는 뜻이며, 예수께서는 그 일을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 속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가? 구약 시대에 아버지의 이름은 대체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1인칭으로 보면, '에흐예'이시고, 3인칭으로 보면 '여호와(야훼)'이시다(출3:14~15). 그런데 아버지께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아들을 보내셨다. 아니 실제로는 아들로 오신 것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 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와로서 인류를 구원하고자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새 이름이 바로 '예수'이신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이 '에흐예'이든지 '여호와(야훼)'였듯이, 신약의 한 분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 혹은 '여호와께서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 죄많은 인간을 죄 가운데서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임마누엘 하신 것이다(마1:21~23).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셨다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으로(창3:15) 그리고 '아들'로 오실 것이라고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창18:10,14), 이사야 선지자에게 예언적으로 선포하도록 하셨다(사9:6). 그러나 오직 세상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취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들은 구약 성경을 그토록 많이 보았지만 거기에 기록된 채 있는 아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7. 나오며

  예수께서 누구신지는 정말 신비 중에 신비이다. 그분은 아들이면서 동시에 아버지와 하나이시기 때문이다(요10:30).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와 구분은 되지만 분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려면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하고, 주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때에 비로소 예수께서 누군지가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고 계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명예와 인기와 영광에 눈이 팔려 있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결코 보여질 수가 없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에게 직접 말씀을 들려주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오해하였고 잘못 판단하였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은 한 마디로 예수님의 적대 세력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질문 때문에 예수께서 누군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을 불신하고 미워하였던 그들은 결국 화를 면키 어려웠다. 그렇다. 하나님은 홀로 한 분 곧 유일하신 분이시다. 하지만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로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아들은 누구인가? 피조물의 눈에 결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려고 사실 만세 전에 아들을 낳으신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한 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만물은 그분의 발아래 있으며 모든 피조물들은 그분의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아들이 육신을 입고 어느 날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때부터 우리는 그분을 예수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분은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아들로 계셨던 분이다. 그리고 그분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피흘릴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러한 은혜를 받은 자가 바로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어찌 다 갚을 수 있겠는가? 오직 날마다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릴 뿐이다. 

 

2022년 10월 26일(수)

정병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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