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묵상입니다.
제목: [요한계시록강해보완(39)]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성령의 특별한 명칭 3가지는 무엇인가?(계4:5, 5:6)_2023-11-30(목)
https://youtu.be/ctRzUtIl1kQ
1.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에는 성령에 대한 명칭이 크게 2가지로 나온다. 하나는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 이전에 사용되고 있던 명칭이고, 또 하나는 요한계시록에서만 말씀하고 있는 명칭이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지기 전부터 사용되던 명칭으로는 '그 영(The Spirit)'이 있다(계2:7,11,29, 3:6,13,22, 14:13, 22:17).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특별 명칭으로는 3가지 것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을 통해서 성령께서 누구신지를 살펴보기를 원한다. 요한계시록이 모든 계시의 완성이니만큼 우리는 다른 성경에서는 말해 주지 않는 놀라운 영적 비밀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살펴볼 수가 있을 것이다.
2. 요한계시록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명칭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에 대한 놀라운 명칭들이 등장한다. 그것은 3가지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다(계4:5, 5:6). 이 일곱 영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계1:14). 둘째는 일곱 등들이다. 이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불켜진 채 있는 불의 일곱 등들을 가리킨다(계4:5). 이러한 일곱 등들은 일곱 금 촛대 위에 있다. 셋째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다(계5:6). 그런데 이것은 여호와의 눈들로서 그 예표가 스가랴 4:10에 나온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자, 보좌 앞에 일곱 금촛대 안에 있는 일곱 등들이며 그리고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일곱 눈들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계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들]과
계4: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불의 일곱 등들)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라
계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들]과 일곱 눈[들]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더라
3.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이 알려 주는 놀라운 3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특별 명칭이 알려 주는 놀라운 3가지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3가지다.
첫째, 성령의 특별 명칭에는 전부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성령께서 완전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이 땅에서의 완전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참고로 하늘에서 완전수는 '12'이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은 어떻게 나오는가? 그것은 '일곱 영들'이요, '일곱 등들'이자, '일곱 눈들'로 나온다. 그러므로 성령의 관심은 항상 이 땅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록 성령께서 천국에서 일곱 등들로 형상화되어 있고, 일곱 금촛대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지만, 성령의 관심은 항상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직접 역사하여 활동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12'라는 숫자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것들 중에서도 '7'이라는 숫자가 가끔씩 나오는데, 그것으로서 예수님의 일곱 눈들과 일곱 뿔들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일곱 금촛대들이 있고, 그 안에는 일곱 등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일곱 등들 안에는 일곱 개의 불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양이신 우리 주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은 늘 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 세상 사람들을 구출하여 천국에 데려가는 일을 직접적으로 행하셨던 분이시며, 지금도 그 일을 돕고 계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둘째, '등불'과 '눈들'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감찰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환히 밝혀주는 '등불들'과 지켜보는 '눈들'이라는 명칭에 일곱이라는 숫자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성령을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계5:6). 이는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서 지금은 천국에 올라가 계신 상태이지만, 거기에서 이 땅에 보낸 성령을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가운데, 두아디라 교회에게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을 '그의 눈이 불꽃 같은 이'라고 소개하시는데(계2:18), 그분은 사람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다고 하셨다(계2:23).
계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의] 눈[들]이 불꽃 같고 그[의] 발[들]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지금도 이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지켜보시고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늘에서 파견된 천사들은 우리들 곁에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하늘에 보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사들은 우리의 마음까지도 다 알고 천국에 보고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천사들은 인간의 말과 행동만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인간의 마음까지 헤아리지는 못하는 존재들이다. 그럼, 누가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을까? 그것은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신 성령이시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인간의 마음까지 다 헤아리는 것이 가능하다.
셋째, 성령의 특별 명칭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라는 수식어와 '어린양의'이라는 수식어가 있다는 것을 통해서, 성령께서는 경륜적인 영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시고, 자신을 더 확장시켜 나가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서는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들' 그리고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성령의 특별 명칭인 '어린양의 일곱 눈들'에 대한 구약의 예표가 있는가?
성령의 특별 명칭인 '어린양의 일곱 눈들'에 대한 구약의 예표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스가랴서에 나온다. B.C.520년 구약시대 스가랴 선지자는 성령을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성령께서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무엇을 뜻하는가? 사실 구약시대에 한 분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계시하셨다. 그러다가 신약시대에 들어와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 그러므로 아들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며, 아들의 말을 들은 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솄다(요10:30). 그러므로 어린양의 일곱눈들은 곧 여호와의 일곱 눈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우리가 살았더라면 성령은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어린양께서 한 분 하나님의 또 다른 표현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이 구약시대에는 '여호와의 일곱 눈들'이었다면, 신약시대에는 '어린양의 일곱 눈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시기 때문이다.
슥4: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들]이라 하니라
5. 성령의 명칭이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들이나 일곱 등불이며 어린양의 일곱 눈들이라는 표현이 들려주는 영적 비밀은 무엇인가?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는 보혜사 성령의 시대에 태어났고 또한 그러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경륜적으로 성령께서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는 시대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쓰시는 몇몇의 특별한 사람들 위에 머물러 계셨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생애를 사셨던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부터 성령께서는 사람들 속에 들어오시기 시작했다(요14:16~17). 그래서 믿는 이들 안에 내주하시어 그들을 가르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또한 장래의 일도 알려 주신다. 그러므로 보혜사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잘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성령의 은혜를 받고 사는 복 있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새 예루살렘 안에까지 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계22:17).
그런데 오늘날 안타깝게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그것을 외면하면서 살거나 아니면 성령의 위대한 사역들 곧 치유와 기적의 역사를 아주 무시하거나 제한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을 무시하면 결국 자신이 죽을 때에 성령께서 그 사람을 떠나가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지금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어도 우리를 책망하시나 징계를 내리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결코 강제로 강요하시지 않는 매우 인격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성령이시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인도를 잘 따라가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 날 우리는 매우 후회하게 될 것이다(롬8:14). 고로 우리 성도들은 그분을 근심하게 해서는 아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는 점점 당신의 활동을 하지 않으시다가 그만 우리가 죽는 그날에 우리를 떠나가실 것이기 때문이다(엡4:30). 참된 믿음을 가진 자일수록 성령을 존중해드려야 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30일(목)
정보배목사